섹시와 현란함에 빠진 아이돌 편향 음악방송

 

세월호 참사로 인해 지상파 음악방송들은 모두 멈춰 섰다. KBS<뮤직뱅크>SBS<인기가요>도 또 MBC<음악중심>도 녹화 자체가 취소됐다. 애도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 속에는 음악과 음악방송에 대한 비뚤어진 편견도 들어가 있다. 음악이 어째서 애도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얘기인가. 음악은 때로는 아픈 이들을 위로해주는 기능도 있지 않던가.

 

'생방송 인기가요(사진출처:SBS)'

하지만 이런 편견에 대한 지적은 적어도 지상파 음악방송에는 해당되지 않는 얘기다. 그것은 지금껏 지상파 음악방송들이 거의 섹시와 현란함으로 무장한 아이돌에 편향된 모습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 음악에 대한 편견을 지적하다가도 그간 이들 지상파 음악방송들이 마치 경쟁적으로 내보내곤 했던 섹시 걸 그룹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과도한 노출을 떠올려 보면 도무지 이런 참담한 분위기에서 이 음악방송들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된다.

 

이건 결국 음악의 기능에 대한 편견의 문제가 아니라, 편견을 갖게 만드는 음악방송의 편향의 문제다. 가요라고 하면 늘 섹시 걸 그룹과 아이돌들만 잔뜩 있는 것처럼 오인하게 만드는 지상파 음악방송들의 편향은, 음악의 또 다른 기능이라고 할 수 있는 깊이 있는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나 위로를 배제시키고 있다. 실로 다양한 음악들이 있고 그 음악들이 전하는 다양한 결과 삶이 있지만 과연 우리네 지상파 음악방송들은 그것을 제대로 담아내고 있을까.

 

MBC 음악 프로그램 <예스터데이>가 방송 4개월만에 폐지된 것에 대해 대중들이 안타까움을 표한 것은 이 프로그램이 그나마 대중음악의 다양한 결을 담보해내려 노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야밤에 편성되어 당연히 낮을 수밖에 없는 시청률을 이유로 폐지된다는 것은, 어째서 저녁 시간대에 편성되지만 역시 낮은 시청률을 내고 있는 <음악중심>이나 <인기가요> 같은 프로그램들이 여전히 존속되고 있는지 의구심을 자아내게 만든다. 시청률이 문제가 아니라 이건 기획사들과 방송사 사이에 놓여진 암묵적인 관계의 문제다.

 

세월호 참사에 맞춰 음악 전문 케이블 채널인 엠넷은 <뮤직테라피>라는 음악 프로그램을 내보냈다. 기존에 <윤도현의 MUST> 같은 라이브 프로그램을 통해 소개됐던 아티스트들의 음악들을 선별해 편집한 프로그램이다. <뮤직테라피>라는 제목에 걸맞게 세월호 참사를 애도하고 위로하는 곡들이 소개됐다. 김범수의 보고싶다’,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 YB흰수염고래등등. 노래가 그저 오락만이 아니라 우리의 상처 난 마음을 어루만지고 위로해주는 기능이 있다는 걸 보여준 감동적인 무대였다.

 

우리는 너무 음악을 오락으로만 여기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리고 이런 편견을 만들어낸 것은 천편일률적인 아이돌들만 보여주고 있는 지상파 음악 방송의 책임이 크다. 물론 최후의 보루처럼 몇몇 다양한 음악을 들려주는 라이브 프로그램이 겨우겨우 남아있지만 편성에서 밀려난 이들 프로그램에 대한 집중도는 낮을 수밖에 없다. 최근 벌어진 뷰티풀 민트 라이프2014’ 등 일부 공연들의 취소사태는 음악에 대한 이러한 편견들이 만들어낸 사안이다. C음악은 흥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며 질타했다. 하지만 우리네 음악방송의 현실은 김C의 노래하는 모습을 방송에서 그다지 보지 못했다는 점일 것이다.

 

EBS <스페이스 공감> 10주년 기념으로 열린 한국대중음악과 미디어의 역할이라는 포럼에서 김창남 성공회대 교수는 방송에서 대중음악은 한 번도 오락의 지위를 벗어난 적이 없으며 교양적 대상이 된 적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음악을 그저 오락으로 치부하는 방송의 태도. 이것이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 갑자기 취소된 뷰티플 민트 라이프공연에 대한 반발과는 사뭇 다르게, 올 스톱되어버린 음악방송들을 당연하게 여기게 만드는 이유일 것이다.

솔솔 피어나는 연예인 논란, 눈 가리기 시작인가

 

26YTN 뉴스는 뜬금없이 방송인 이경규의 골프 논란을 뉴스로 끄집어냈다. “세월호 참사로 온 국민이 슬픔에 빠져 있는 가운데 방송인 이경규씨가 (지인들과) 골프를 쳐 논란이 일고 있다는 것. 이 보도 내용은 세계일보에 의해 그대로 기사화됐다. YTN 뉴스의 앵커는 이경규씨의 골프는 부적절한 행동이었다며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진출처: 코엔미디어'

마치 이 뉴스는 정치인들이 국내에서 해결해야 할 사안들이 산적한 상황에서 외유성 해외 연수를 가던 것을 비판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논란이 일 것이라는 예상처럼 역시 논란이 일어났다. 하지만 그 논란은 예상과 달리, 이경규의 행동을 질타하는 것보다 이걸 굳이 보도해 논란을 만들어내려는 YTN 뉴스와 그걸 받아 적은 세계일보쪽을 질타하는 방향으로 일어났다. 왜 이런 역풍이 생겨난 걸까.

 

먼저 이경규의 골프 회동을 잘 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모두가 애도에 동참하고 있는 분위기가 아닌가. 특히 보이지 않는 기부와 선행을 하고 있는 연예인들의 온정은 세월호 참사로 우울에 빠진 우리 사회에 훈훈함을 전해주고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골프를 치든 여행을 가든, 혹은 기부와 추모를 하든 그것은 개인적 선택이니 강요할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공인으로서의 책임은 아니라고 해도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 연예인으로서 조심해야 할 부분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것을 굳이 악의적으로 보도해서 논란을 이끌어내려는 매체의 행태는 그 의도가 의심스러워 보인다. 왜 하필 연예인인가. 세월호 참사로 인해 질타 받아야 할 이들은 너무나 많다. 침몰할 게 뻔할 정도로 개조를 하고 과적을 하는 것을 그냥 내버려둔 해수부 관계자들이나 참사 속에서 승객들은 구하지 않고 살아나와 변명만 해대는 선장과 선원들, 승객의 안전보다는 돈 벌기에만 급급했던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았던 실세 경영진들, 참사가 터진 후 우왕좌왕함으로서 실종자 가족들에게 이중 삼중의 고통을 가한 정부 당국자들 등등 문제가 되는 이들이 한 둘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연예인 논란을 끄집어내는 건 전형적인 물타기처럼 보인다. 실질적인 소유주라고 할 수 있는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이름이 거론될 때 이른바 구원파 연예인이 먼저 구설에 떠오른 점도 그렇다. ‘구원파’. 마치 이단종교와 조폭이 뒤섞인 듯한 이 기묘한 이름의 집단이 우선 논란의 중심에 서야 하지만, 매체들은 구원파 연예인이 있다며 실명까지 들어 그쪽으로 관심을 꺾는 느낌마저 주었다.

 

지난 25JTBC <뉴스9>에서는 지난 해 해양수산부가 만든 해양사고 위기관리실무 매뉴얼의 내용을 보도해 이러한 정부의 언론 관리가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이 매뉴얼에는 언론담당자가 할 일로 충격 상쇄용 기사 아이템 발굴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해수부측에서는 그 내용이 엉뚱한 보도를 막기 위함이라고 얘기했지만 충격 상쇄용이라는 표현은 그 이상을 담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세월호 참사를 특집으로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도 취재 도중 사복경찰이 인터뷰 내용을 은밀히 녹음하는 현장이 포착되어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 녹음에 대해서 해당 경찰은 홍가혜 보도 같은 잘못된 보도를 막기 위한 조치라고 말했지만 그것을 위해 사복경찰까지 투입된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세월호 참사 앞에서 그 직업의 특성 상 연예인들의 행동은 신중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대중들의 호불호로 판단되는 것일 뿐, 강요해야 될 성질의 것은 아니다. 이것을 굳이 끄집어내 논란화 하려는 매체의 태도는 그래서 대중들에게는 본말을 뒤집으려는 불순한 의도로까지 읽힐 수밖에 없다. 이경규의 행동을 잘 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것을 굳이 논란으로 만들어내려는 매체의 행태는 대중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숫자가 아닌 사람을 보니 세월호의 참상 실감

 

JTBC<마녀사냥> 대신 세월호 참사 관련 소재로 특별 제작된 <다큐쇼> ‘그 배엔 사람이 타고 있었다를 방영했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후 우리의 시선은 줄곧 TV의 상단 우측이나 좌측에 쏠려 있었다. 거기에는 실종자 수와 사망자 수 같은 숫자들이 적혀 있었다. 그 숫자가 실종자에서 사망자로 바뀔 때마다 마음 한 구석이 허물어졌다.

 

'다큐쇼(사진출처:JTBC)'

하지만 숫자는 폭력적이었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후 정부의 실종자 발표는 계속해서 오락가락했다. 처음에는 전원 구조라는 희망 섞인 이야기가 나왔다가 곧 정정되었고 그 숫자도 계속 바뀌었다. 그 때마다 정부의 변명은 계산 착오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계산 착오에 실종자 가족들은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들에게는 숫자에 불과할지 모르겠지만 가족들에게는 그 숫자 하나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들이기 때문이었다.

 

<다큐쇼>에서 마련한 그 배엔 사람이 타고 있었다는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세월호 참사라는 막연한 문구 아래 가려진 무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 사람 한 사람 찾아간다. 그 배에는 두렵다는 친구에게 구명조끼를 건네준 의로운 분도 타고 있었다. 그렇게 구명조끼를 받고 구조된 친구는 사망자로 돌아온 친구 앞에서 얼마나 망연자실했을까. 그 분의 가족들은 애써 의연하려 노력했다. 자식의 정의로운 선택 앞에 입을 앙다물었지만 그래도 보내는 마지막 길에서는 울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 배에는 마지막 순간에 구조된 부부도 타고 있었다. 제주도에서의 새로운 삶을 꿈꾸던 부부는 세월호 참사를 겪은 후 모든 시간이 거기에 멈춰 있었다. 아내는 충격의 후유증으로 고통받고 있었고 남편은 그 아내를 어쩌지 못해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그 구조되는 순간 부모와 형제를 잃고 혼자 살아남은 8세 아이를 함께 탈출시키며 그 부부는 또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 아이는 그 어린 나이에도 죽음에 대해 묻고 또 물었다고 했다. 살아남은 자들은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 배에는 중국인 부부도 있었다. 착실하게 돈을 모아 여행을 떠났다는 그 부부는 그러나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그 부부의 가족들은 외국인이라고 확인도 되지 않는 상황에 놀라움과 분노를 표했다. 마지막 순간 배에 들어가는 그 부부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자꾸만 들여다보며 눈물을 훔치는 유가족들은 결국 이 부부의 영혼결혼식을 치러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배에는 승무원은 맨 마지막이라고 외치며 끝까지 승객들을 구조하다가 저 세상으로 떠난 박지영 승무원도 있었다. 한 생존자는 그녀가 배가 기울어진 상황에서도 승객들에게 구명조끼를 나눠주고 또 자신을 도와주어 살아날 수 있었다고 증언했다. 이제 겨우 22살의 꽃다운 나이에 떠난 그녀에게 사람들은 당신이 진정한 선장이었다는 메모를 남겼다.

 

그 배엔 사람이 타고 있었다. 무수한 숫자들과, 막연한 세월호 참사라는 문구가 아니라 그 숫자와 문구 뒤에는 무수한 사람들의 오열이 남겨져 있었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숫자가 아닌 그 분들의 면면과 마지막 행적으로 잊지 않고 기억해내는 일. 그것이 아프지만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 우리가 해야될 일인지도 모른다. 그저 침몰한 배가 아니다. 숫자가 아니다. 그 배엔 사람이 타고 있었다.

입체적인 복합 캐릭터, 이 시대의 얼굴이 된 까닭

 

정은표 하면 먼저 떠오르는 건 내시의 얼굴이다. MBC <해를 품은 달>에서 김수현과 짝패를 이뤄 했던 연기가 너무나 강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정은표의 일면밖에 모르는 얘기다. 사실 그는 꽤 많은 작품 속에서 다양한 결의 얼굴들을 보여준 바 있다.

 

'<쓰리데이즈>와 <신의 선물 14일> 사진출처 SBS'

MBC <구암 허준>에서 그가 한 임오근이라는 역할은 허준(김주혁)과 함께 동고동락하는 유의태의 제자이면서 한때는 자신의 욕망 때문에 그를 배신하기도 하는 복합적인 인물이었다. SBS <돈의 화신>에서는 황장식이라는 변호사 역할로 이 복마전 같은 드라마를 흥미진진하게 만들었고, SBS <싸인>에서는 김완태라는 국과수 연구사로 등장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중적인 모습을 연기하기도 했다.

 

그가 맞는 역할들은 복합적이면서 입체적인 인물인 경우가 많다. 그것은 그가 가진 얼굴이 꽤 다양한 야누스의 변신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신의 선물 14>에서의 기동호 역할은 그 정점처럼 여겨진다. 기동호에게서는 세 가지 얼굴이 동시에 보인다. 그것은 살인자의 얼굴과 지능이 떨어지는 바보의 얼굴 그리고 한없이 순박한 형의 얼굴이다.

 

지능이 조금 낮은 모습은 그가 진짜 살인자인지 아니면 그저 착하기만 한 형인지 알 수 없게 만든다. 바로 이 점은 <신의 선물 14>의 후반 반전을 가능하게 만든다. 사실은 동생 기동찬(조승우)이 살인을 저지른 줄 알고 그걸 자신이 뒤집어쓰려 했다는 것. <신의 선물 14>에서 정은표가 동시에 보여주는 이 세 가지 얼굴의 연기는 아마도 이 드라마의 백미이면서 가장 중요한 장면이 될 것이다.

 

한편 SBS <쓰리데이즈>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자본의 얼굴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김도진 회장 역할의 최원영 역시 이 복합적인 얼굴의 연기를 보여준다. 최원영이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보여준 건 아마도 MBC <백년의 유산>에서 미워할 수 없는 마마보이 김철규 역할을 소화해냈을 때일 것이다. 그는 이 역할을 통해 전형성에서 벗어난 새로운 캐릭터를 선보였다.

 

SBS <상속자들>에서 최원영은 제국그룹의 비서실장으로서의 철두철미한 프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찬영(강민혁)의 프렌디(friend+ daddy)로서의 따뜻함과 RS인터내셔널 대표인 이에스더(윤손하)와의 강렬한 밀당을 선보이기도 했다. 하나의 얼굴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그 때 그 때 달라지는 얼굴을 보여주었던 것.

 

<쓰리데이즈>의 김도진 회장은 젠틀한 신사의 외관에 잔인한 면모를 동시에 갖고 있는 살인마다. 돈을 벌 수 있다면 사람 목숨 따위는 쉽게 거둘 수 있는 그런 인물. 대통령을 좌지우지 하는 인물로서 이 드라마에서 김도진 회장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힘은 절대적이다. 드라마의 추진력이 여기서 나오기 때문이다.

 

배우의 변신은 무죄?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한 역할에서도 다양한 얼굴을 동시에 보여주는 복합적인 연기는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정은표와 최원영이 심지어 한 캐릭터에서도 보여주는 야누스의 얼굴은 작품의 결과 방향성을 다양하게 변신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새삼 느껴진다. 단순한 일면적 캐릭터는 어쩌면 이 복잡한 시대에는 구시대의 산물이 된 지도 모른다.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캐릭터, 그것이 이 시대가 새롭게 요구하는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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