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좋냐’, 시즌송을 뒤집은 시즌송

 

봄만 오면 좀비처럼 되살아나는 벚꽃엔딩’. 이제는 거꾸로 벚꽃엔딩이 들려오기 시작하면 봄이 왔나보다 할 정도다. 그래서 봄을 노래하는 시즌송들은 올해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2013년 로이킴의 봄봄봄에 이어 2014년 아이유가 발표한 봄 사랑 벚꽃 말고가 나왔고 올해는 레드벨벳 웬디와 에릭남이 부른 봄인가봐’, 윤아와 십센치(10cm)가 부른 덕수궁 돌담길의 봄’, 서인국의 너라는 계절’, 비투비의 봄날의 기억등등 시즌송이 한 마디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사진출처:'봄이 좋냐' 뮤직비디오

시즌송이 마치 새로운 것처럼 느껴지지만 딱히 그런 것만은 아니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나오곤 하는 캐럴들이 시즌송이고, 여름이면 해변가에서 듣기 딱 좋은 댄스 뮤직 역시 여름 시즌송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가을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가을하면 떠올리는 고 김광석의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나 최백호의 내 마음 갈 곳을 잃어같은 곡들을 기억한다. 계절을 노래하는 시즌 송은 언제나 있어왔다. 다만 벚꽃엔딩이라는 메가히트 시즌송이 탄생한 게 이례적일 뿐이다.

 

봄 시즌송이 그 어떤 계절보다 이토록 주목되는 건 아무래도 봄이라는 계절적 요인이 있다고 여겨진다. 긴긴 겨울을 지나 봄을 기다리는 마음은 인지상정이다. 그러니 그 봄을 노래하는 곡들에 반가움을 표하는 건 당연한 일. 게다가 피어나는 꽃들과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 바람은 자연스럽게 벚꽃엔딩같은 노래를 떠올리게 하고 또 떠올리고 싶게 한다. 이 지점이 봄 시즌송의 힘을 만드는 것일 게다.

 

하지만 쏟아져 나오는 봄 시즌송은 마치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고 벚꽃이 활짝 피어나기 시작하면 인산인해가 되어버리는 여의도처럼 모두에게 즐겁기만 한 일은 아닐 성 싶다. 그래서일까. 봄 시즌송들을 뒤집어버린 10센티의 봄이 좋냐라는 도발적인 질문의 노래가 모든 시즌송들을 훌쩍 뛰어넘어 음원차트를 석권한 것은.

 

봄이 그렇게도 좋냐 멍청이들아/벚꽃이 그렇게도 예쁘디 바보들아/결국 꽃잎은 떨어지지/니네도 떨어져라/몽땅 망해라여기저기 봄 시즌송들이 봄을 찬양하고 봄날의 사랑하는 이와의 달달한 멜로(?)를 그려나갈 때 아마도 애인 없는 이들은 두 배의 박탈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10센티의 봄이 좋냐는 이런 이들의 취향을 그대로 저격한다.

 

또한 이것은 어찌 보면 벚꽃엔딩의 메가 히트 이후 봄만 되면 쏟아져 나오는 시즌송들에 대한 일침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천편일률적인 봄날의 찬양이 이제는 식상하다는 것. 모두가 애인이 없는 비틀린 심사를 공감했다기보다는 어쩌면 이 비슷비슷한 코드들로 무장한 시즌송들에 대한 대중들의 식상함에 오히려 더 공감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흥미로운 건 10센티의 봄이 좋냐역시 시즌송이라는 것이다. 다만 봄에 대한 다른 정서를 담아낸 것이 다를 뿐. ‘벚꽃엔딩은 물론이고 여수 밤바다까지 다시 음원차트로 소환시키는 봄이라는 시즌이 갖는 힘은 이제 매년 벌어지는 상례적인 일이 되어가고 있다. 봄을 상찬하고 봄날의 설렘을 담은 곡들이 또 잘못된 것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10센티의 봄이 좋냐같은 조금은 도발적이어도 다른 이야기와 정서를 담아내는 곡이 주는 다양성의 통쾌함은 분명하다. 같은 시즌송이라도 좀 더 다양함이 담기기를 바라는 마음. 그것이 봄이 좋냐는 곡에 대해 대중들이 반응하는 이유일 것이다.

<12>, OST만 틀어놔도 확 달라지는 여행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년 개봉 당시 봤던 분들이라고 해도 그 영화 속 줄거리들을 줄줄이 꿰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절대로 잊혀지지 않는 명장면들이 있다. 마지막 클라이맥스에서 철길에서 안성기와 박중훈이 치고 박던 장면들이 그것이고, 추적추적 내리며 빗 속 계단을 내려오는 안성기를 배경으로 흐르던 OST, 비지스의 ‘Holyday’가 그것이다. 듣기만 해도 시간여행을 가능하게 하는 노래, 그것도 영화의 한 장면과 연결되는 OST. 그 장면의 촬영지로의 여행. 실로 탁월한 조합이 아닐까.

 


'1박2일(사진출처:KBS)'

<12>이 이른바 ‘OST로드를 따라가는 여행을 제안한 것은 그것이 가을의 감성과 너무나 잘 어우러지기 때문이다. 물론 과거에 이미 <12>은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옛 노래와 함께 하는 여행을 선보인 바 있다. 하지만 이건 OST. 노래가 순식간에 우리의 시간을 과거로 되돌려준다면, 그 노래가 흘러나왔던 영화의 한 장면은 그 때의 감성들을 새록새록 다시 깨워낸다. 바로 그 장면이 찍혀진 장소로의 여행은 그래서 과거의 한 때로 떠나는 여행이 된다.

 

영화 <봄날은 간다>가 촬영된 대나무숲이 있는 삼척 신흥사는 2001년 개봉 당시 꽤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을 잡아끈 촬영지였다. 영화 속 남자주인공이었던 유지태가 하던 일이 바로 소리를 채집하는 것이었는데, 대나무들이 서로 바람에 부대끼며 내는 소리를 유지태와 이영애가 함께 앉아 담아내던 그 장면이 촬영된 곳이었다. 시간이 흘렀어도 여전히 바람에 흔들리며 내는 대나무들의 아우성이 들릴 그 곳이 주는 아련한 감성이란.

 

물론 <12>은 이 추억 돋는 영화OST라는 타임머신을 타고 떠나는 시간여행에서도 본분인 웃음을 잊지 않는다. 영화 속 장면들은 기발한 복불복 게임으로 패러디되어 포복절도의 웃음을 만들어낸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마지막 격투신은 <12>의 물 풍선을 옷 안에 넣고 벌이는 복불복 게임으로 바뀌어 기묘하고 이상야릇한 장면들을 연출해낸다. 격투신이 에로틱한 분위기의 브로맨스(?) 장면처럼 바뀌고, 멋진 액션이 얼굴에 검댕을 묻히는 드잡이로 바뀔 때 <12>만의 웃음이 피어난다.

 

<봄날은 간다>의 그 유명한 명대사 라면 먹고 갈래요?”<12>을 통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게임으로 변모했고 각종 컵라면을 먹으며 술래에게 다가서는 장면들이 <12> 특유의 캐릭터들과 만나면서 큰 웃음을 주었다. 라면 하나하나의 특성까지 파악해 자막으로 끼워 넣고 거기에 난이도를 부여하는 디테일들은 게임의 묘미를 더욱 흥미있게 만들었다.

 

돌아보면 모든 게 아름답다고 했던가. <12> OST로드는 누구나 공유했던 한 시절을 영화 OST라는 장치 하나로 떠올리게 하고는 그 감성을 되살려 놓는 동시에 그걸 뒤집어 복불복 게임의 웃음으로 이어가는 변주를 보여줬다. 추억의 한 자락이 주는 흐뭇한 공감대와 동시에 어딘지 가라앉을 수 있는 가을의 감성을 명랑한 웃음으로 전화시켜 놓았던 것.

 

가을은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계절이다. 바쁘게 봄과 여름을 달려왔다면 이제 조금은 멈춰 서서 되돌아보고 싶은 계절이기도 하다. 그렇게 떠난 여행에 한 때의 추억을 돋워주는 OST가 함께 한다면 어떨까.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이 된 양, 흐뭇하고 유쾌한 추억의 시간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12>이 음악과 영화와 여행의 기막힌 조합을 통해 보여준 것처럼.



 

'제주에서 보았던 하늘'


어느새 선선하다.
올 여름은 내내 하늘이 쾅쾅대고 비를 쏟아내고 바람을 몰아오는 통에
마치 전쟁통 같았다.

그런데 오늘 바라본 하늘은
정말 높고 파랗다.
그 파란 하늘 위에 떠있는 구름은
'천공의 성 라퓨타'를 보는 듯 심지어 신비롭다.

쨍쨍 햇볕이 쏟아져도
바람이 좋은 계절이다.
이런 날에는 나무 그늘에 누워
파란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을 쳐다보고 있어도 좋을 것이다.

참 좋은 시간들은
빨리도 지나간다.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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