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 동거, 워킹맘, 졸혼...‘아이해’가 보여주는 가족의 변화

KBS 주말드라마는 사실상 가족드라마의 최후보루나 마찬가지다. 기본이 20% 시청률부터 시작한다는 이 KBS 주말드라마는 가족드라마의 전통적인 시청층의 충성도가 대단히 높다. 별다른 일이 없으면 채널을 이 주말드라마에 고정시켜놓는 것이 당연한 주말의 풍경이 되어버릴 정도로. 

'아버지가 이상해(사진출처:KBS)'

하지만 주말드라마는 최근 들어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그것은 그 가족드라마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네 가족의 형태가 급격한 변화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1인가구가 전체 가구 수의 4분의 1을 넘어선 지 오래고, 결혼률은 물론이고 출산률 또한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현실의 가족이 가족드라마가 늘 구성하던 대가족 형태에서 이미 벗어나 있기 때문에 주말드라마의 양태들은 어찌 보면 시대와 맞지 않는 틀로 보이기 십상이다. 

지금 현재 방영되고 있는 <아버지가 이상해>를 보면 그래서 이러한 시대성을 따라가기 위한 현실적 상황들을 다수 포진시키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변미영(정소민)과 김유주(이미도) 사이를 통해 보여줬던 왕따문제, 변준영(민진웅)이라는 공시생을 통해 보여준 우리네 청춘들의 취업현실, 변혜영(이유리)과 차정환(류수영)의 동거, 계약결혼 등을 통해 보여준 현 세대들의 달라진 결혼관, 임신을 하게 된 후 겪는 경력 단절의 고충을 통해 김유주가 간접적으로 드러내준 워킹맘의 비애, 실력이 출중해도 돈이 없어 아이를 보낼 수 없는 나영식(이준혁)과 이보미(장소연)의 고충을 통해 드러낸 특목고의 문제, 그리고 차규택(강석우)과 오복녀(송옥숙)를 통해 보여준 졸혼이라는 새로운 노년의 풍경까지.

물론 <아버지가 이상해>는 이토록 많은 현실적 문제들을 담으면서도 우리가 익숙하게 봐온 가족드라마의 공식들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안전한 방식을 취했다. 즉 변라영(류화영)과 박철수(안효섭)를 통해 여전히 등장하는 신데렐라 이야기가 그렇고, 변혜영과 차정환의 결혼 과정을 통해 그려내는 혼사장애의 이야기도 그렇다. 여기에 배우 안중희(이준)가 뒤늦게 변한수(김영철)가 자신의 친부가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는 ‘출생의 비밀’ 코드도 빠지지 않았다. 

즉 <아버지가 이상해>는 우리네 가족이 변화하고 있다는 걸 인식하면서도 동시에 과거의 가족 형태에 대한 여전한 향수를 가족드라마라는 틀에 녹여내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식상할 수 있는 가족드라마의 여전한 공식들을 가져오지만(그래서 주제 역시 가족애라는 틀로 많은 갈등들이 봉합되는 보수적 형태를 유지한다), 그래도 그 안에 많은 현실적인 질문거리들을 담아내려 노력했다는 점이다. 

특히 변혜영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보여준 달라진 여성의 면면은 주목할 만하다. 기성세대는 이해하기 어려운 동거를 당당히 밝히는 모습이나, 결혼에 계약 조건을 단다거나, 시댁에 살면서도 시부모와 거리를 유지하며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려는 모습은 지금의 결혼 세대들이 충분히 공감할만한 이야기다. 

사회 현실이 대중들의 생각만큼 변화하지 않는 것도 많다. 그래서 김유주 같은 인물이 임신을 한 후 일에서 점점 배제되고 그래서 더 무리하게 되는 그 안간힘은 달라지는 가족의 변화만큼 달라지지 않고 있는 우리네 사회의 면면을 꼬집는다. 아이를 결국 잃게 된 김유주가 뒤늦게 그것이 자신의 탓이라며 후회하는 장면은 그래서 이런 문제들이 여전히 개인의 차원에서 그들의 희생으로 덮여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드러낸다. 

물론 가족드라마는 앞으로도 한동안 지속될 것이다. 하지만 가족의 양태가 바뀌고 있는 한 그 가족드라마의 틀이 언제까지 그대로 유지될 것인가는 미지수다. <아버지가 이상해>는 그 과도기적 성격을 잘 드러내는 작품이다. 가족을 향수하는 보수적 틀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생각해볼만한 많은 현실적인 변화와 문제들을 꺼내놓고 있다.

‘아버지가 이상해’, 이 시대에 가족드라마는 여전히 유효한가

과연 이 시대에도 가족드라마는 여전히 유효한가. 한 때는 가족드라마가 우리네 드라마의 근간이었던 시절이 있었다는 걸 떠올려보면 이 같은 질문은 우리 시대가 얼마나 많이 달라졌는가를 말해준다. 이른바 ‘가족 해체 시대’가 아닌가. 물론 뿌리 깊은 가족주의의 틀은 여전하지만, 우리가 사는 삶의 양태는 1인 가구로 대변되는 ‘개인주의’ 시대로 접어든 지 오래다. 홀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시대에 가족의 가치를 내세우는 가족드라마의 풍경들은 그래서 낯설거나 혹은 향수어린 추억처럼 다가오는 면이 있다. 

'아버지가 이상해(사진출처:KBS)'

KBS 주말드라마는 그래도 이 가족드라마라는 틀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최후의 보루다. 그래서 세상은 바뀌어도 여기 포진되는 가족드라마들은 기본이 시청률 30%라고 얘기될 정도로 충성도 높은 시청층을 확보하고 있다. 현재 방영되고 있는 <아버지가 이상해> 역시 가뿐히 30% 시청률을 뛰어넘었다. 하지만 이러한 고정적인(?) 시청률이 그 드라마가 가진 가치의 바로미터가 되던 시절은 지나갔다. 더 중요해진 건 반응이다. 

그렇다면 <아버지가 이상해>는 어떤가. 괜찮은 시청률만큼 반응도 괜찮다. 이렇게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데는 이 가족드라마가 가족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해체되어가고 있는 현 가족의 양태들을 다양하게 담아내려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변혜영(이유리)과 차정환(류수영)의 혼전동거와 ‘결혼인턴제(?)’ 같은 것일 게다. 사실 변혜영과 차정환의 사랑이야기는 양가가 반대하는 전형적인 ‘혼사장애’의 클리셰를 가져왔지만, 그 안에서 이들이 대처하는 방식은 실로 도발적이다. 

과거의 가족드라마였다면 아마도 혼전동거를 하다 들킨 자식들은 부모 앞에서 마치 죄인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을 게다. 하지만 변혜영은 부모를 힘겹게 한 부분에 대해서는 잘못했다 말하지만, 자신이 혼전에 동거를 하는 것이 무슨 잘못이냐고 똑 부러지게 자기 생각을 드러낸다. 사실상 동거는 가족주의의 틀을 깨는 삶의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과거 가족주의 시대에 동거는 금기시되던 면이 있었다. 

하지만 결혼 자체를 선택으로 보는 현 가족 해체의 시대에 동거는 정반대로 결혼으로 가는 과정이 될 수 있다는 걸 이 드라마는 변혜영이라는 인물을 통해 보여준다. 변혜영은 그래서 결혼을 하더라도 혼인신고를 늦추고 1년 정도의 인턴 기간을 갖자는 도발적인 제안을 한다. 이것은 <아버지가 이상해>가 갖고 있는 가족주의와 가족 해체의 현실 사이의 어떤 타협점으로 보인다. 

이런 지점은 이 드라마 도처에서 발견된다. 안중희(이준)와 변한수(김영철)의 관계가 그렇다. 어느 날 변한수가 자신의 아버지라고 생각하고 찾아온(사실은 변한수의 친구 아들인) 안중희를 변한수는 자식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어린 시절 안중희가 홀로 버려져 아버지와 하지 못했던 것들을 변한수는 기꺼이 그와 늦게나마 해주려고 한다. 엄밀히 말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타인이지만 가족으로 받아들여지는 이 풍경은 가족 해체 시대에 대안적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점점 핏줄로부터 분리되고 있는 가족은 이제 타인을 끌어안는 방식으로 재구성되어가고 있다. 

가족이 만들어내는 때론 지지고 볶고 때론 따뜻한 위로가 되는 그 끈끈함은 여전하지만, 그들 각각이 처한 현실들이 어떤 면에서는 더 중요해진다. 이를테면 장남인 변준영(민진웅)이 처한 청년들의 취업문제가 그렇고, 나영실(김해숙)과 오복녀(송옥숙) 사이에 벌어지는 혼사갈등보다 더 크게 다가온 건 건물주와 세입자 사이의 갑을갈등이다. 가까스로 취업의 문을 넘은 변미영(정소민)은 가족이라는 틀로 갑자기 묶여진 과거 자신을 왕따시킨 김유주(이미도) 때문에 갈등을 겪는다. 그녀에게 가족이라는 틀은 오히려 원치 않는 관계의 시작으로 다가온다. 

<아버지가 이상해>의 이야기는 그래서 가족을 그리곤 있지만 달라진 현실들이 드리워져 있다. 똑같은 상황이라고 해도 과거의 가족드라마가 그리던 풍경과 <아버지가 이상해>가 보여주는 풍경이 다르다는 점은 이 드라마가 흥미로워지는 지점이다. 거기에는 과거의 가족주의적 가치와 현재의 개인주의적 가치 사이의 부딪침이 보인다. 과거의 가족드라마는 세대가 갈등을 해도 가부장적 가치로 회귀하며 끝을 맺었다. 자식들이 결혼을 하고 가족으로 다시 모여 잘 살게 되었다는 보수적인 가치관이 그것. 그렇다면 <아버지가 이상해>는 어떤 결말을 보여줄까. 여전히 가족주의의 가치로 회귀할 것인가, 아니면 현 시대의 새로운 가치들을 보여줄 것인가.

김수현 작가는 여전한데, 세상은 바뀌었다

 

종영한 SBS <그래 그런거야>는 실패했다. 김수현 작가는 흥행 보증수표라는 공식도 깨졌다. 물론 이것은 김수현 작가가 예전만 못하다는 뜻도 아니고, <그래 그런거야>의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뜻도 아니다. 김수현 작가는 여전히 자신만의 작법으로 시청자들의 눈을 잡아끌 수 있는 능력을 보였고, <그래 그런거야>는 대가족의 여러 캐릭터들을 능수능란하게 이끌어가면서 어떤 인생의 통찰을 포착해내는 완성도도 분명히 있는 드라마였다. 무엇보다 자극적인 막장 설정으로 치닫는 드라마들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갔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시도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 그런거야(사진출처:SBS)'

하지만 실패는 실패다. 최고의 고료를 받는 김수현 작가를 SBS가 주말드라마 시간대에 세웠던 건 그간 참패의 늪을 벗어나지 못했던 주말시간대의 부활을 도모하기 위함이었다. 의미도 중요하지만 성과도 중요했다. 하지만 시청률은 줄곧 한 자릿수에 머물렀고 시청자들의 반응도 뜨겁지 못했다. 시청자들은 심지어 옛날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는 혹평까지 내놓았다.

 

어째서 김수현 작가는 변함이 없는데 드라마에 대한 정반대의 반응들이 나왔을까. 그건 세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래 그런거야>는 물론 의도적으로 가족의 가치를 내세우기 위해 3대 대가족을 그렸지만, 그건 이제 네 가구 중 한 가구가 1인 가구가 된 작금의 현실과는 너무나 유리된 것이었다.

 

변화된 것은 이런 소재적 내용만이 아니었다. 김수현 작가의 작품은 주로 대사 중심으로 이어진다. 즉 어떤 면에서는 TV를 보지 않고 귀로만 들어도 그 내용이 이해가 갈 정도다. 라디오 드라마 같은 느낌을 줄 때도 있다. 게다가 김수현 작가의 대사는 속사포다. 인물들마다 끊임없이 수다처럼 이야기를 쏟아낸다. 이런 방식의 드라마 작법은 지금의 시청자들에게는 너무 고루한 느낌을 준다. 이른바 대사가 아닌 영상을 통해 어떤 뉘앙스와 의미를 던져주기도 하고, 때로는 영상미를 발견할 수 있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지금의 시청자들이 드라마에서 요구하는 것이 아닌가.

 

한 때는 본격 장르물을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많아도 성공하는 경우는 드물었던 시절이 있었다. 단 몇 년 전의 이야기다. 하지만 최근 들어 멜로 없이도 가족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아도 성공하는 본격 장르물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tvN에서 시도됐던 몇몇 본격 장르물들은 호평은 물론이고 시청률도 가져갔다. 심지어 영화제작인력이 투입되어 영상미까지 더해진 tvN 드라마들은 시청자들의 눈을 높인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시청자들은 이미 변화했는데, <그래 그런거야>는 여전히 몇 년 전에 머물러 있었다. 물론 그것은 이 드라마가 추구하려는 것처럼 의도된 회귀일 수 있었지만, 이미 김수현 작가의 늘 비슷한 패턴을 반복하는 가족드라마의 틀에 이제 시청자들은 그만한 호응을 보여주지 않았다. 게다가 출연자들까지 매번 비슷한 김수현 작가 사단으로 채워지니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그게 그거인 드라마처럼 여겨질 수밖에.

 

결과적으로 <그래 그런거야>는 시대착오적 드라마가 되었다. 그건 김수현 작가가 의도한 것도 아니고 또 필력이 떨어져서도 아니다. 다만 세상은 변화하고 있는데, 드라마는 변화하지 않고 멈춰져 있었던 결과다. 하지만 이것 역시 김수현 작가의 책임이라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다. 현재와 호흡하려 노력하지 않는다면 모든 작가는 과거의 작가가 되기 마련이니까. 제아무리 대작가라 하더라도.

<그래 그런거야>, 김수현 작가 최대의 위기

 

SBS 주말드라마 <그래 그런거야>는 첫 회가 방영되기 전까지만 해도 상당한 기대감을 갖게 만들었다. 다른 이도 아니고 김수현 작가가 아닌가. 막장드라마들이 주말 시간대를 장악하고 있는 현재, 김수현 작가라면 이를 깨치고 가족드라마의 부활을 알려주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 그런거야(사진출처:SBS)'

하지만 결과는 최악이다. 첫 회 시청률 4%(닐슨 코리아). 물론 2회에 5.8%를 기록하긴 했지만 이것이 시청률 상승의 신호탄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것은 다분히 tvN <시그널>이 금토드라마로서 일요일에 방영되지 않았다는 점과 무관하다 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시청률이야 지상파에서 가장 높은 게 막장드라마들이니 그렇다 칠 수 있겠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래 그런거야>에 대한 시청자들의 평도 그다지 좋지 않다. ‘기대 이하라는 평가 속에는 김수현 작가에 대한 실망감이 상당부분 엿보인다. 무엇보다 늘 비슷비슷한 패턴의 김수현식 가족드라마가 이제는 식상하다는 평가가 압도적이다.

 

늘 어르신들의 교훈조의 이야기들이 따발총 대사로 이어지고 젊은 등장인물들은 그 어르신들의 눈에 포획된 존재들처럼 보이는 것도 그렇고, 새로운 형태의 가족구성과는 어울리지 않는 대가족은 심지어 보수적인 가치를 강요하는 듯한 뉘앙스로까지 느껴진다. 특별한 사건들이 벌어지기보다는 그저 일상적인 일들이 수다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것도 전형적인 김수현식 가족드라마의 문법들이다.

 

이 비슷한 문법에 등장인물 또한 매번 비슷비슷하다보니 죄다 그 나물에 그 밥 같은 인상을 주는 건 당연한 일이다. 물론 이 보수적인 가치가 결국은 본래부터 가족드라마가 지향하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 그런거야>에는 지금 시대의 공기가 잘 느껴지지 않는다. 어찌 보면 한 10, 아니 20년 정도 옛날 가족 이야기를 재탕하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어째서 이런 느낌이 들게 된 것일까. 가장 큰 것은 제 아무리 가족드라마라고는 해도 현재의 젊은이들의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2회가 방영되었지만 이 드라마는 어르신들의 이야기들만으로 꽉 채워져 있다. 그들이 속사포로 쏘아대는 대사들을 듣고 있노라면 이 드라마의 제목처럼 보수적인 가치를 설파하는 어떤 어르신이 젊은이들에게 인생이란 그래 그런거야라고 달관하듯 가르치려는 모습이 연상된다.

 

김수현 작가가 고령에도 대작가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건 그 나이와 상관없이 당대의 젊은이들과도 호응할 수 있는 혁신적인 이야기들을 심지어 가족드라마 속에서도 거침없이 보여줬기 때문이다. 한 평생을 가족 뒤치다꺼리 하며 살아왔던 엄마의 파업(?) 선언을 다뤘던 <엄마가 뿔났다>가 그렇고, 불륜을 그 끝까지 밀어붙여 그 밑바닥을 보여줬던 <내 남자의 여자>가 그랬으며, 동성애라는 새로운 문제를 가족드라마 틀로 끌어들여 화제가 됐던 <인생은 아름다워>가 그랬다. 그런데 <그래 그런거야>에는 아직까지 그런 파격과 혁신적인 소재에 대한 도전이 잘 보이지 않는다.

 

<응답하라1988>이 가족드라마이면서도 그토록 화제가 되고 기적적인 시청률까지 거둬갈 수 있었던 건 흔한 지상파들의 가족드라마를 재현하거나, 그 변종으로서의 막장드라마를 그려내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응답하라1988>은 젊은이들의 눈높이에 새롭게 맞춰 가족드라마를 재구성했다. 어르신들의 가르치는 목소리가 아니라 젊은이들이 어르신들에게 보내는 존경과 헌사가 들어 있었기 때문에 <응답하라1988>이 가족드라마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래 그런거야>는 정반대다. 이 드라마에는 젊은이들의 목소리가 아니라 어르신들의 목소리만이 들려온다. 그것도 너무 빠르게 너무 많이. 이래서는 젊은 시청자층은 물론이고 중장년 시청자층도 그리 공감하기가 어려워진다. 중년의 시청자라고 해도 드라마를 통해 보고 싶고 듣고 싶은 건 젊은이들의 이야기다.

 

물론 막장드라마와 대결하겠다는 그 취지는 나쁘지 않다. 그래서 파괴되어가는 가족의 가치를 되새기겠다는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막장드라마만큼 보기 힘겨운 것이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건네는 보수적인 드라마다. 가족의 가치를 다시 세우겠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옛날식의 가족으로 돌아가자는 건 퇴행이다. 이제 2회가 끝났을 뿐이니 섣부르게 모든 걸 판단하기는 어려울 것이지만 그래도 기대한 만큼 남는 아쉬움도 크다. 김수현 작가는 시청률도 시청률이지만 평가도 그리 좋지 않은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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