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드라마의 총체적 추락, 심상찮다

 

지상파 드라마들의 추락이 심상찮다. 10시에 하는 드라마들의 시청률이 거의 10% 정도 선에 머물러 있고, 수목드라마는 아예 한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지경이다. 한때 국민드라마라고 불릴 정도의 4,50%에 육박하는 시청률은 기대조차 하기 어렵고, 이제 10%를 넘기면 선방했다고 말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TV 시청패턴이 달라지면서 현실적으로 잘 맞지 않는 시청률 추산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이건 좀 과하다 싶다. 어쩌다 이런 지경에 이르렀을까.

 

'왔다 장보리(사진출처:MBC)'

다 비슷해보여도 지상파 드라마는 월화드라마와 수목드라마 그리고 주말드라마가 약간의 차이가 있다. 즉 월화드라마는 MBC <야경꾼일지>처럼 장편드라마가 주로 배치되어왔고, 수목드라마는 미니시리즈가 편성되어왔으며, 주말드라마는 가족드라마 같은 형태의 드라마들이 주를 이뤄왔다. 물론 최근 들어 이런 패턴은 상당부분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즉 월화에도 미니시리즈가 들어가기도 하고, 주말에도 가족드라마 형태를 벗어난 복수극 같은 장르가 편성되기도 한다. 거의 유일하게 수목에만 미니시리즈가 고수되는 형국이다.

 

이런 편성의 변화 속에는 어떻게든 드라마를 살려보려는 안간힘이 느껴진다. 하지만 정작 지상파 드라마들이 힘을 발휘하는 건 딱 한 가지다. 우리가 흔히 막장드라마라고 부르는 자극은 강하고 패턴화 되어 있으며 무언가 새로운 시도를 한다기보다는 공식을 따르는 드라마들이 그것이다. 최근 4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낸 MBC <왔다 장보리>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 드라마들은 우리가 흔히 아침드라마라고 부르던 것이 이제는 저녁 시간에도 주말에도 들어오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왔다 장보리>같은 MBC 주말 저녁 시간대의 드라마는 사실상 아침드라마 형태를 띠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녁 시간대의 드라마가 4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낸다는 것이 어떤 착시현상을 만들어내고 있지만 본래 전통적으로 지상파 시청률의 수위를 차지한 것은 다름 아닌 아침드라마들이었다.

 

실제로 시청률표를 보면 SBS <청담동스캔들>이나 MBC <모두 다 김치> 같은 드라마는 저녁시간대의 드라마들을 압도하는 시청률을 내고 있다. 일일드라마나 주말드라마를 빼고 나면 그 다음이 아침드라마 순으로 시청률이 높게 나오는 걸 발견하게 된다. 이렇게 보면 지상파 드라마들에서 시청률을 가져가는 건 하나의 패턴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것은 가족드라마 형태이거나, 아니면 그 변형으로서의 복수극을 다루는 드라마라는 것이다.

 

이러한 시청률의 획일화는 지상파 드라마들로서는 위기감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완성도 높은 미니시리즈를 만들어내려 해도 그것이 시청률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예감한다는 사실이다. 일종의 시청률 포기현상은 결국 참신한 드라마를 시도하려는 의욕 자체를 꺾을 수 있다. 애초에 시청률 목표가 그리 높지 않은 케이블이나 종편의 드라마들이 더 도전적이고 참신한 느낌을 주는 건 그래서다.

 

최근 수목드라마들이 일제히 추락하고 있는 상황을 보면, 이러한 위기상황이 이제 거의 목전에 다다른 느낌이다. 시도하지 않으면 외면 받고, 시도한다 해도 좋은 성적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 난감한 상황이 향후 지상파 드라마들의 총체적인 아침드라마화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되는 심정이다.

 

 

월화수목 장르드라마 편성한 SBS의 의지

 

이제 우리 시청자들도 미드 같은 장르를 즐길 정도로 변하고 있습니다.” SBS 드라마국의 김영섭CP는 월화수목을 <신의 선물 14><쓰리데이즈> 같은 장르드라마로 모두 채워 넣은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실 맞는 이야기다. 최근 새로운 미드 열풍을 만들었던 <셜록>을 떠올려보라. 단 몇 초도 놓쳐서는 안 되는 집중력을 요하는 작품이지만 우리네 대중들은 이 미드를 그토록 즐겼지 않은가.

 

'쓰리데이즈(사진출처:SBS)'

멜로와 가족드라마 아니면 시청률이 안 된다는 편견 때문에 언제나 거기에만 머물러 있을 순 없죠.” 시청률 추산방식이 과거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장르드라마는 안 되고 멜로와 가족드라마만 된다는 착시현상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TV 시청방식은 급변하고 있다. 모바일 시청도 일반화되어가고 있고 IPTV 등으로 본방보다는 원하는 시간대에 콘텐츠를 찾아 시청하는 방식도 보편화되고 있다.

 

이른바 막장드라마가 시청률이 많이 나온다고 해서 광고가 완판되는 건 아닙니다.” 광고주들의 마인드 역시 조금씩 바뀌고 있다. 부정적인 이미지로 시청률이 높게 나온 작품에 자사의 광고를 붙이는 것을 광고주들도 꺼린다는 것. 시청률이 조금 적게 나와도 평이 좋고 완성도가 높은 드라마가 오히려 광고 효과가 더 좋다는 얘기다.

 

김영섭 CPSBS 드라마를 막장 없는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채워 넣을 것이라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주말 드라마도 지금처럼 수십 부작의 가족드라마 틀에만 묶어 두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주말 드라마도 미니시리즈처럼 꽉 짜인 작품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얘기다. 중견작가에 의지한 가족드라마는 높은 원고료와 긴 회차 때문에 비용은 꽤 많이 들지만 높은 시청률만큼 광고가 잘 되지는 않는다고 한다. 결국 상대적으로 원고료가 현실적인 신진작가들을 기용해 짧게 짧게 드라마를 이어가는 것이 훨씬 생산적인데다 작품의 완성도에도 좋다는 것이다.

 

사실 최근 지상파의 드라마 패턴을 보면 MBC는 예전의 드라마 공화국이라는 지칭이 무색해지고 있고, KBS 역시 일일극이나 주말극을 빼놓고는 이렇다 할 작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심지어 제작사와 출연자들 사이에 출연료를 놓고 갈등이 빚어지기도 한다. 무언가 새로운 시도를 하기 보다는 당장의 시청률에 급급한 인상도 짙다. 특히 MBC는 종영한 <오로라 공주>처럼 평일 저녁에도 막장드라마를 편성하고 주말드라마 역시 자극을 앞세운 공식적인 드라마들을 배치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SBS<신의 선물 14>이나 <쓰리데이즈> 같은 초강수의 모험을 시도하는 건 그래서 대단히 참신하게 다가온다. 또한 <너의 목소리가 들려><별에서 온 그대>처럼 이른바 복합장르라는 SBS드라마의 한 트렌드를 만들어낸 것도 주목할 만한 점이다. 지상파가 시청률에 급급할 때 오히려 약진하는 건 <응답하라> 시리즈를 만들어낸 tvN이나 <밀회> 같은 사회성 짙은 멜로를 보여주는 JTBC. 그래서 지상파로서는 SBS가 거의 유일하게 새로운 드라마를 개척해가고 있다고 여겨진다.

 

향후 드라마 시청패턴은 급속도로 변할 것으로 보인다. 수동적인 본방이 아닌 능동적인 선택시청이 자리하게 되면 결국은 콘텐츠 경쟁력만이 드라마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 되는 셈이다. 따라서 과거의 패턴을 반복하며 몇 십 프로의 시청률에 만족하는 것보다는 10% 남짓의 시청률을 내도 새로움을 시도하는 편이 훨씬 미래지향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네 시청자들은 멜로나 가족드라마 아니면 안 본다는 것도 사실 편견에 가깝다. 드라마 시청패턴도 일종의 반복된 학습의 결과다. 매번 멜로나 가족드라마만을 반복해서 보여주다 보니 우리 드라마에 늘 그 정도만을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왜 미드를 보는 자세와 우리 드라마를 보는 자세가 다르겠는가. 그것은 기존 드라마들이 만들어낸 기대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미드에 기대하는 만큼 우리 드라마의 기대치도 충분히 올려놓을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시도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다. 결국 변하지 않으면 더 기대치를 갖게 마련인 미드 같은 콘텐츠들에 우리네 시장이 잠식될 우려도 있다. <쓰리데이즈> 같은 작품은 그래서 시청률 12%로는 설명할 수 없는 존재가치를 가진다. SBS의 행보와 의지는 그것이 미래에 더 가치를 둔다는 점에서 충분히 박수 받을 만하다.

2회 만에 30% <참 좋은 시절>이 말해주는 것

 

달라도 너무 다르다. 새로 시작한 KBS 주말드라마 <참 좋은 시절>과 종영한 <왕가네 식구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왕가네 식구들>이 짜증 가득한 불쾌함을 종영까지 보여주었던 반면, <참 좋은 시절>은 이제 단 2회 밖에 안했지만 벌써부터 가슴 가득 따뜻함을 선사하고 있다.

 

'참 좋은 시절(사진출처:KBS)'

경주의 작은 마을로 15년 만에 금의환향하는 검사 강동석(이서진). 그가 15년 만에 귀향하게 된 것은 경주로 발령이 나면서다. 어린 시절 식모살이하던 엄마와, 사고로 머리를 다쳐 7세 지능에 멈춰버린 쌍둥이 누나 강동옥(김지호), 강동석의 배다른 동생으로 엇나가버린 남동생 강동희(택연)... 강동석에게 고향이란 잊고 싶은 아픈 과거로 남은 곳이다.

 

<참 좋은 시절>은 고향으로 돌아온 대쪽 같은 성격의 검사 강동석이 그간 없는 듯 치부하며 살아왔던 가족을 찾아와 그 온기와 정을 다시 찾아가는 드라마다. 아직까지 본격적인 이야기는 시작되지도 않았지만 강동석이 집을 찾아와 마음에 앙금과 죄송함이 함께 남아있는 어머니 장소심(윤여정)을 만나는 장면이나, 손자를 보고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흘리는 할아버지 강기수(오현경)를 만나는 장면만으로도 훈훈함을 전해주고 있다.

 

결국 이 드라마는 강동석 앞에 놓여진 가족들의 수많은 문제들이 하나씩 풀어 헤쳐지고 갈등과 화해를 이루는 과정을 담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고교 시절 서로 좋아했지만 집주인과 식모의 자식이라는 다른 배경 때문에 힘겨움을 겪었던 해원(김희선)과의 재회를 통해 다시 사랑을 일궈가는 이야기를 담아낼 것이다.

 

흥미로운 건 이 드라마가 전형적인 가족드라마의 공식과는 약간 다른 구성과 전개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가족드라마의 시작이란 문제를 가진 가족 구성원들을 나열식으로 소개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참 좋은 시절>은 미니시리즈의 구성처럼 강동석이 경주로 내려가는 과정을 통해 그를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를 교차시키면서 주변 인물들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있다. 특히 강동석과 해원의 사랑이야기는 차라리 멜로드라마의 밀도가 느껴진다.

 

이런 구성이나 이야기는 같은 시간대의 전작이었던 <왕가네 식구들>과는 너무나 다르다. 따라서 <왕가네 식구들>처럼 단순히 자극을 위한 자극을 반복하는 클리쉐 구조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게는 낯설게 다가왔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건 단 2회 만에 시청률 30%를 넘어섰다는 점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 걸까.

 

<참 좋은 시절>은 완성도 면에서나 인물을 다루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에서나 여러 모로 완성도 높은 착한 드라마를 기대하게 만든다. 하지만 착한 드라마라는 것이 밋밋하고 심심한 드라마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드라마의 극성은 그대로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잘 녹여내고 개연성 있는 인물에 공감시켜 풀어내느냐가 그 차이인 셈이다.

 

심지어 막장 소리를 들으면서도 <왕가네 식구들>이 줄곧 내세웠던 것은 시청률이다. 시청률이 좋으니 좋은 드라마라고 했던 것. 하지만 어디 그럴까. 시청률은 막장을 거둬낼 수 있는 지표가 아니다. 2회 만에 참 좋은느낌을 선사하면서도 30% 시청률을 가져갈 수 있는 <참 좋은 시절>은 그래서 이 주말드라마 시간대의 시청률이 가진 허상을 거꾸로 말해준다.

 

많은 막장드라마들이 시청률을 잣대로 내세워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하지만 공감을 통해 얻어내는 30%의 시청률과 온갖 짜증과 분노를 자극해 얻어내는 30% 시청률이 같을 수 없다.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는 <참 좋은 시절>이 거둬가는 30% 시청률은 그래서 <왕가네 식구들>이 그토록 내세웠던 시청률과는 질적으로 다르게 다가온다. 완성도 높고 좋은 드라마도 얼마든지 소위 국민드라마가 될 수 있다. 단지 시청률이 높다고 해서 국민드라마가 아니고.

<왕가네>를 통해 보는 가족주의의 해체

 

저렇게 될 줄 알았지. 시작부터 나 미스코리아 나갔던 여자야를 외치며 온갖 민폐를 끼치던 왕수박(오현경)이 집을 나와 식당에 취직했다가 쫓겨나고 노숙자처럼 길거리를 전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마도 많은 시청자들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왕가네 식구들>이 이제 종반으로 치달으면서 왕가네 가족들에게 패악질 하던 캐릭터들이 이제 권선징악, 개과천선의 결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것 또한 시청자들이 예상 못했던 일은 아닐 것이다.

 

'왕가네 식구들(사진출처:KBS)'

수박이 동생 호박(이태란)을 만나 오늘이 아부지 생신이라며 돈 봉투를 전하는 장면이나 호박아, 너하고 광박이한테 정말 고맙다. 집도 얻어주고. 난 맏이 노릇도 못하고 못난 짓만 하는데라는 대사를 던지는 것도 그래서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사실 <왕가네 식구들>의 등장인물들이 수박과 호박이라는 이름으로 정해진 순간부터 예정된 일이다. 즉 수박이 엄마로부터 편애를 받고 비뚤어지는 인물이며 호박이 구박을 받으나 결국은 성실하게 살아가는 인물이라는 것은 이름에 나타나 있다.

 

문영남 작가의 등장인물 작명 방식은 주말드라마의 공식과 패턴을 잘 드러낸다. 즉 아버지 왕봉(장용)은 가족의 봉이고, 이앙금(김해숙)은 마음 속 앙금으로 비뚤어진 엄마이며, 수박의 남편인 고민중(조성하)은 이혼을 고민하게 되는 캐릭터이고 호박의 남편 허세달(오만석)은 실속 없이 허세만 가득한 민폐형 캐릭터다. 마치 RPG 게임처럼 시청자들은 이들 앞으로의 전개를 예감케 하는 이름의 캐릭터들이 벌이는 마인드 게임에 들어가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름이 정해지는 순간부터 <왕가네 식구들>의 이야기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예기치 못한 전개나 드라마를 통해 새로운 의미의 발견 같은 것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권선징악이나 가족이 최고같은 누구나 다 아는 가치의 반복이면서 비슷비슷한 가족드라마 전개의 반복이지만 그래도 시청률이 45%에 육박하는 놀라운 수치다.

 

물론 막장드라마를 통해서 흔히 봐왔듯이 시청률과 완성도 혹은 작품성에는 아무런 비례관계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현재 드라마의 평균적인 시청률이 10%대이고 20%를 넘기면 성공작으로 치부되는 시대에 무려 50%를 넘보는 시청률을 내고 있다는 것은 작품성과 상관없이 이 시간대의 드라마가 보여주는 사회적인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도대체 무엇이 이 시간대의 가족드라마에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걸까.

 

<왕가네 식구들>만이 아닌 이 시간대의 KBS 주말극이 일정하게 높은 시청률을 내왔다는 것은 작품 그 자체보다 이 시간대가 가진 프리미엄이 있다는 걸 말해준다. 시청자들은 무슨 일인지 이 시간대에 KBS 주말극에 채널을 고정시키고 있다. 거기에는 편안한 기대감이 있고 그 기대감을 적절히 배반하다가도 채워주는 말 그대로 시청자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하는 드라마의 공식이 있다. 그 공식을 시청자들이 모르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알기 때문에 즐기는 면이 더 크다. 마치 한 시간 동안 벌어지는 게임처럼.

 

여기에는 이 시간대의 주말드라마가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가족주의가 큰 몫을 차지하는 것 같다. 즉 최근 주중 드라마들을 보면 가족주의보다는 해체되는 가족의 이야기가 더 많이 등장한다. <따뜻한 말 한 마디>가 불륜을 통해 결혼이라는 제도의 불완전함을 얘기하고, <미스코리아><별에서 온 그대> 같은 작품은 가족이 등장하긴 하지만 가족과는 상관없는 이야기 전개가 대부분이다. 최근 종편이나 케이블에서 방영되는 드라마들도 그렇다. 물론 시대극을 다루고 있는 <맏이>는 예외가 되겠지만(이 드라마 역시 과거 가족에 대한 향수를 다룬다는 점에서 현 가족의 해체를 역으로 보여주기도 하지만) <로맨스가 필요해3><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 같은 드라마들은 가족보다는 개인의 행복을 더 추구한다.

 

결국 작금의 현실에서 가족은 과거 같은 가족드라마 틀로는 더 이상 유지되지 못하는 변화를 겪고 있다. 늘 가족주의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던 김수현 작가마저 <세 번 결혼하는 여자>에서는 결혼에 대한 회의적인 담론들을 담고 있다. 이 드라마가 시청률이 저조한 이유는 김수현 작가의 팬들이라면 기대하기 마련인 가족주의의 틀을 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족의 해체가 드라마에서 하나의 흐름을 만들고 있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보면 <왕가네 식구들> 같은 KBS 주말드라마의 성공은 거꾸로 가족주의에 대한 판타지를 이어가는데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문영남 작가의 드라마가 과도한 민폐 캐릭터 때문에 막장 논란을 일으키면서도 높은 시청률을 이어가는 것은 결국 이 민폐 캐릭터가 권선징악의 형태로 결말을 맞을 것이며 또한 가족이라는 오히려 더 공고해진 틀 속으로 들어올 것이라고 시청자들은 안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왕가네 식구들>을 보다보면 해체되어가는 가족주의에 대한 지독한 향수와 반발을 느끼게 된다. 거기 등장하는 민폐 캐릭터들은 그것을 촉발시키는 촉매제인 셈이다. 그들을 미워하고 욕하고 결국은 용서하고 다시 끌어안는 동안 우리는 가족은 여전히 지켜져야 할 최후의 보루라고 느끼게 되는 것. 하지만 이러한 안간힘은 이 시간대가 마치 유일하게 남은 가족주의의 성전처럼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뻔하고 식상해도 자꾸만 되새기며 스스로를 안심시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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