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어 심청, 춘향이 보였던 <도리화가>의 배수지

 

이제 아이돌 그룹의 수지라는 호칭보다는 연기자 배수지라는 이름이 더 어울릴 듯싶다. <건축학개론>으로 얻은 국민첫사랑 수지는 이제 <도리화가>를 통해 연기자 배수지로 기억되지 않을까. 극중 배수지가 연기한 채선이 신재효(류승룡)쑥대머리를 들으며 아프고 슬프고 아름답다고 표현했던 것처럼 <도리화가>의 배수지는 아프고 슬프고 아름답다.

 


사진출처:영화<도리화가>

그것은 그녀의 외모를 말하는 게 아니다. 그녀가 하고 있는 연기가 그렇다는 거다. 어찌 보면 배수지 본인이 아이돌로서 그 연습생 시절 겪었던 일들이 채선이라는 인물을 통해 제대로 접신하고 있는 느낌이다. <도리화가>라는 작품이 아프고 슬프고 아름답게 여겨지는 데는 연기자 배수지와 극중 인물 채선이 시대를 한참 뛰어넘어 같은 예인으로서 주고받는 공감대가 깔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극중 인물인 채선은 슬픔을 잉태하고 자라난 인물. 아비는 어린 시절 처자식 버리고 떠나버렸고, 어미는 가난 속에서 죽어가는 자신을 알고선 딸을 기방에 맡기고 먼저 떠나버렸다. 그러니 어느 날 저잣거리에서 듣게 된 심청가의 애끓는 한 자락이 제 맘 같이 여겨질 수밖에 없었을 게다. 그걸 보며 한없이 눈물을 흘리는 어린 채선에게 신재효 선생이 다가가 던진 말, “그래 맘껏 울거라. 그러다보면 웃게 될 것이다라는 그 말은 판소리가 가진 사람의 마음을 휘어잡는 그 힘이 어디서 나오는가를 잘 말해준다. 한을 뛰어넘으면 거기 남는 게 예술이 아닌가.

 

조선 말기 대원군이 집권하던 시기, 여성들은 결코 오를 수 없었던 그 판소리 무대에 당당히 올라 개방을 반대하던 대원군 앞에서 펼친 낙성연(1867년 흥선대원군이 전국의 소리꾼들을 위해 열었던 경연)으로 조선 최초의 여성 소리꾼이 된 진채선이라는 실존인물의 이야기다. 그녀가 심청가와 춘향전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그 힘은 아마도 그녀 스스로가 심청이 되기도 하고 춘향이 되기도 했던 삶 그 자체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그것이 바로 이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너름새(연기)의 핵심이다.

 

진채선은 판에 올라 심청과 춘향을 연기하고, 배수지는 그런 진채선을 연기한다. 그리고 그 진채선과 배수지는 직업적으로 노래하고 연기하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 기묘한 어우러짐은 그래서 한참 영화를 보다보면 배수지에게서 심지어 심청과 춘향이 보이기도 하는 그런 몰입감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판소리라는 소재가 떠올리는 것은 저 <서편제>의 분위기지만 <도리화가>는 그렇게 한의 정서를 처절하게 담으려 하지는 않는다. 그것보다는 오히려 판소리 경연에 대한 현대적인 해석을 시도하고, 대신 유려하고도 아름다운 영상으로 그 정조를 담아내는 연출을 택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경복궁에서 펼치는 낙성연은 마치 지금의 오디션 프로그램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다이내믹하다. 또 눈발을 헤치고 나아가는 채선의 영상은 이 영화의 정조가 되고 있는 아프고 슬프고 아름다운 장면으로 기억된다.

 

무엇보다 그 중심에 배수지라는 예사롭지 않은 잠재력의 배우가 있다. 사실 <건축학개론>에서 그녀가 한 것은 연기라기보다는 그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는 일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도리화가>에서 배수지는 확실히 자신 속에 내재되어 있는 연기 잠재력을 살짝 끄집어내 보여준다. 이것이 가능했던 건 저 진채선이라는 인물이 가진 힘일 것이다. 어쩌면 관객들은 그녀의 연기에 한없이 몰입되어 눈물을 흘리다 어느 순간 웃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지도 모른다. 저 극중의 어린 채선이 그랬듯이. 또 배수지라는 연기자가 <도리화가>라는 작품을 통해 경험했을.



열애보도, 이민호보다 수지 후폭풍이 거센 까닭

 

이민호와 수지. 대한민국 청춘 남녀들에게 이 두 사람의 열애보도는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다. 특히 이민호의 경우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까지 비상한 관심을 보일 정도다. 홍콩 여배우 원영의는 이 열애보도가 나간 후 기쁘면서도 슬프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만큼 국내를 넘어 범 아시아적인 팬덤을 가진 스타들이다.

 

사진출처: 영화 <건축학개론>

그만큼 이 두 사람의 열애사실이 가져올 파장은 적지 않다. 그것은 이 두 사람이 만인의 연인처럼 이미지화되어 있고 그 이미지가 그들의 상품적인 가치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해온 일련의 광고 속에는 이런 이미지들이 상품 속으로 투영되어 소비되는 그 화학작용이 들어가 있다. 그러니 이제 만인의 연인에서 특정인의 연인이 된 두 사람에게는 어떤 식으로든 파장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이번 열애보도에서 그 후폭풍은 수지에게 더 크게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열애사실이 보도된 이후 수지의 소속사 주가는 요동을 쳤다. 열애설이 나온 후 주가가 뚝 떨어졌고 그 사실을 인정하면서 주가는 다시 회복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항간에 수지는 JYP엔터테인먼트를 먹여 살리는 존재처럼 알려지기도 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사실과는 다르다. 하지만 그래도 수지가 JYP의 실적에 어느 정도의 지분을 갖고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열애보도가 이민호보다 수지쪽에 더 많은 후폭풍이 생기는 이유는 이 두 사람의 활동과 무관하지 않다. 이민호는 꾸준히 드라마와 영화로 자기만의 콘텐츠 영역을 구축해왔다.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로 스타덤에 오른 이민호는 이후에도 <시티헌터>, <상속자들> 등을 통해 연기 스펙트럼을 넓혀왔다. 게다가 최근에는 영화 <강남1970>을 통해 새로운 연기영역을 만들기도 했다. 그가 중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게된 건 다 이런 연기에 몰두한 노력 덕분이다.

 

하지만 수지는 사정이 다르다. 그녀는 <건축학개론>을 통해 단순에 국민 첫사랑으로 등극한 이래 이렇다 할 콘텐츠를 선보이지 못했다. 드라마 <>, <구가의서>에 등장했지만 확실한 존재감을 만들지 못했고 그렇다고 본업인 미스에이 활동 역시 그다지 성공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수지는 <건축학개론>의 그 국민 첫사랑이미지를 CF를 통해 반복 소비해온 것이 그녀의 활동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결국 이런 상황은 이번 열애 보도로 인해 무너져버린 국민 첫사랑의 이미지가 가져올 후폭풍이 이민호보다 훨씬 클 수박에 없는 결과를 만든다. 건강하고 젊은 남녀가 만나고 사랑하는 건 지극히 정상적이고 심지어 바람직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들이 이미지를 통해 상품화되는 연예인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이런 파장들이 만들어진다. 결국 이럴 때 중요한 건 이미지만이 아니라 자기만의 직능적인 영역을 갖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수지는 이미지는 있으되 콘텐츠는 부족한 상황이다.

 

이것은 수지의 활동이 지금껏 상당 부분 왜곡되어 왔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콘텐츠 없이 이미지로만 굳어지는 경우 그 이미지가 언젠가 사라지는 상황이 오면(이런 순간은 당연히 도래한다) 연예인이로서의 생명 또한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어차피 연기 영역에서 만들어진 이미지라면 힘겹더라도 연기에 대한 보다 진지한 접근이 필요했다는 점이다. 이미지는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너무 오래 지속되면 족쇄가 되기 마련이다.

 

이미 열애 보도는 나왔고 그 사실은 인정되었다. 남은 건 그 파장을 제대로 수습하는 일이다. 수지로서는 이제라도 지금껏 가져왔던 국민 첫사랑의 이미지를 내려놓고 본격적인 연기 영역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거기서 우리가 보지 못했던 그녀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해준다면 수지는 어쩌면 이번 일을 계기로 국민 첫사랑이라는 굴레(?)를 벗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위기를 기회로 살리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여자 연예인에게 섹시 콘셉트는 양 날의 칼

 

또 섹시 콘셉트인가. JYP측은 걸 그룹 미스에이의 정규 2집 ‘허쉬(Hush)’를 소개하면서 “지금까지 발표한 앨범 콘셉트 중에 가장 파격적이다. '섹시 수지'를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고 밝혔다고 한다. 왜 미스에이라는 걸 그룹의 신보를 소개하면서 굳이 ‘섹시 수지’를 전면에 내세웠을까. 당연하게도 미스에이의 신보에서 수지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가장 크기 때문일 게다.

 

사진출처:건축학개론

영화 한 편으로 순식간에 국민첫사랑의 이미지를 꿰찬 수지가 아닌가. 이 첫사랑의 이미지와 섹시 이미지는 사뭇 충돌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그러니 JYP측은 오히려 이 부분을 강조해 대중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려는 의도에서 ‘섹시 수지’를 강조했을 게다. 사실 미스에이의 섹시 콘셉트는 이미 ‘터치’의 붕대 의상에서부터 선보여졌고 심지어 선정성 논란에 휘말리기까지 했었다. 그러니 미스에이의 섹시 콘셉트가 새로운 건 아닐 것이다. 다만 수지가 가진 국민첫사랑의 이미지를 오히려 섹시 코드로 반전시킴으로써 발생하는 효과를 기대했을 뿐이라는 점이다. 결국 섹시 코드를 내세워 국민첫사랑이라는 이미지를 소비시키는 셈이다.

 

하지만 여가수의 섹시 콘셉트는 확실한 음악적 성취가 따라주지 않을 때 득보다는 독이 될 가능성이 더 크다. 물론 확실히 ‘섹시 수지’라는 이미지는 대중들의 이목을 주목시킬 것이다. 하지만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 수지의 청순 이미지는 상당 부분 희석되어버릴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첫사랑의 아이콘으로까지 불리던 청순 이미지가 수지가 가진 가장 큰 에너지라는 점이다.

 

알다시피 수지의 영향력은 가수로서 생겨난 것이 아니다. <드림하이>와 <건축학개론>이라는 두 작품을 통해 그녀는 자신의 입지를 세웠다. 하지만 이것 역시 그녀의 연기력 때문은 아니다. 작품의 캐릭터와 그녀의 이미지가 맞아 떨어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구가의 서>에서 수지가 보여준 연기를 생각해보라. 팬덤이 없었다면 연기력 논란에서 벗어나기 어려웠을 게다.

 

결국 수지가 갖고 있는 힘은 이미지다. 청순한 외모와 순수한 느낌으로 <건축학개론>의 서연 같은 첫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 그런데 그 이미지를 ‘섹시’로 바꾸겠다는 거다. 물론 가수나 연기자나 다양한 이미지에 도전하는 것이 나쁠 것은 없을게다. 하지만 수지의 경우는 자꾸만 새로운 이미지를 덧대기보다는 노래든 연기든 어느 쪽에 좀 더 자신의 공력을 키울 필요가 있다. 이것이 부족한 상태에서 이런 저런 이미지를 쓰는 것은 자칫 스스로를 알맹이 없는 껍질로 만들 수 있다.

 

알다시피 대중문화에서 섹시 이미지란 여성들에게는 거의 마지막에 쓰는 카드나 다름없다. 물론 적당한 섹스어필은 여자 연예인들에게 어느 정도 요구될 수도 있을 게다. 하지만 어느 정도를 넘어서는 것은 오히려 해당 연예인의 이미지 소비만 빠르게 할 뿐이다. 과거 박진영에 의해 본인 스스로도 별로 원하지 않은 과감한 섹시 콘셉트를 선보였던 박지윤의 사례를 떠올려보라. 결국 그녀는 다시 가요계로 돌아오는데 상당한 세월이 걸리게 되었다.

 

최근 ‘24시간이 모자라’로 과감한 섹시 콘셉트을 선보인 JYP의 선미도 마찬가지다. 무릎을 꿇고 골반을 튕기는 춤은 잠시간 화제가 되었지만 노래가 받쳐주지 못하면서 그다지 주목을 끌지 못했다. 결국 섹시 콘셉트로 화제가 되고 대중들의 시선을 잡아끄는데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노래가 대중들의 귀를 자극하지 못한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섹시 콘셉트를 내세운 가수의 부담만 늘어나게 된다.

 

여가수의 섹시콘셉트는 물론 수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대부분의 여가수들은 ‘섹시’가 무슨 필수품인 양 달고 노래를 발표한다. 심지어 국민여동생의 이미지를 갖고 있던 아이유도 새 앨범의 포장을 ‘섹시’로 했고, 김예림 같은 독특한 음색의 가수 역시 팬티를 노출하는 티저로 섹시 이미지를 포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과 수지는 다르다. 아이유나 김예림이나 음악적으로 이미 충분한 성취를 갖고 있는 가수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들은 본격 활동에 들어가면서 처음 이목을 끌기 위해 내놓았던 ‘섹시’ 이미지를 슬그머니 지워버렸다. 영민한 전략이다.

 

최근 현아와 현승의 트러블메이커가 새롭게 발표한 ‘내일은 없어’의 뮤직비디오에 대해 무수한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지나치게 선정적이라는 비판도 있고 뮤직비디오의 구성이 해외 뮤지션의 것을 그대로 베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한편에는 공개 3일 만에 유튜브 조회수 5백만 뷰를 넘어섰다는 식으로 ‘19금 열풍’의 성공을 예고한다. 물론 이 정도의 수위를 보여주면서 이런 반응이 안 나타날 리는 없다. 하지만 현아의 노출과 섹시 이미지는 어쩌면 그녀에게는 갈수록 부담이 될 가능성도 높다.

 

클라라가 시구 한 방으로 드라마와 예능의 핫한 아이콘이 되는 과정은 지금의 섹시 과열 경쟁의 맨얼굴을 보여준다. 어떻게든 시선을 끄는 데 있어서 여자 연예인에게 섹시 이미지만큼 강력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클라라의 경우에서 드러나듯이 거기에 걸맞는 연기력이나 예능감 혹은 음악성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성공가능성은 오히려 더 희박해진다.

 

수지는 아직 어리다. 이제 겨우 19살이다. 연기든 노래든 부족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가능성이 더 많은 연예인이다. 당장의 수익을 위해 소모되기보다는 좀 더 큰 가능성을 내다보고 부족한 면을 먼저 채워나갈 수는 없는 일일까. 섹시 수지를 기대하라고 하지만 사실 우려가 더 큰 이유다.

 

<이순신> 어쩌다 남자 캐릭터가 전멸했을까

 

남자 캐릭터가 전혀 없는 드라마. 있다고 해도 보조적인 역할에 머무는 드라마. 어쩌다 <최고다 이순신>은 이런 이상한 드라마가 되어 버렸을까.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신준호 역할을 연기하는 조정석은 그 이름만으로도 이 드라마를 보게 되는 이유이기도 했으니까.

 

'최고다 이순신(사진출처:KBS)'

초반 신준호는 기획사 대표답게 연기를 지망하는 이순신(아이유)을 최고의 위치로 끌어올릴 백마 탄 왕자님으로 주목받았다. 물론 너무나 틀에 박힌 식상한 설정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 역할을 연기할 조정석의 남다른 매력이 있어 색다른 몇 가지의 변주만으로도 충분하다 여겨졌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조정석은 드라마의 중심에서 밀려나기 시작했다. ‘출생의 비밀’이 본격화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그 때부터 드라마는 두 엄마, 즉 김정애(고두심)와 송미령(이미숙)의 대결 중심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가운데 끼어버린 이순신이 상처받고 눈물 흘리고 토로하는 장면들만 반복되었다.

 

조정석의 역할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한 걸음 떨어진 곳에서 이순신을 바라보고 걱정하는 모습이 최근 그가 맡은 역할의 대부분이다. 이것은 그간 조정석이라는 연기자에 대한 시청자들의 기대감을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건축학 개론>에서 조역이지만 주인공만큼 주목을 받았던 납득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었고, <더킹 투하츠>에서는 그와는 상반된 진지한 매력으로 여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그가 아닌가.

 

그런 그가 <최고다 이순신>에서 그저 그런 역할에 머물고 있다는 건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것은 전적으로 작품과 캐릭터의 문제이지 조정석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이런 사실은 이 작품의 다른 남자 캐릭터들을 봐도 알 수 있다. 이순신의 언니인 유순신(유인나)과 멜로를 만들어가는 박찬우(고주원)도 드라마가 ‘출생의 비밀’에 허우적대기 시작하면서 그 역할이 미미해져버렸다.

 

이것은 이순신네 집의 맏언니인 이혜신(손태영)도 마찬가지다. 이혜신은 이혼사실이 들통 나면서 좀 더 비중을 가질 수도 있었고 동시에 그 멜로 상대인 서진욱(정우)과의 알콩달콩한 이야기도 더 진행될 수 있었다. 서진욱이라는 캐릭터는 본래보다 더 많은 기대감을 갖게 만든 인물이다. 살짝 살짝 등장했음에도 그 풋풋함이 시청자들에게 많은 호평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정애와 송미령 두 엄마가 한 딸을 두고 서로 자기 딸이다 싸우는 이 출생의 비밀이라는 상투적인 덫에 발목이 잡혀 유순신과 이혜신이 독자적인 이야기를 펼쳐나가지 못하게 되자 그 상대역인 남자들도 덩달아 비중이 줄어든 탓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지금 현재 <최고다 이순신>에는 여성 캐릭터만 그나마 보일 뿐, 남자 캐릭터들이 보이지 않는다. 조정석 같은 가능성 많은 배우를 데려다 놓고 이 정도에 머물고 있다는 건 직무유기가 아닐까.

 

물론 이것은 이 드라마가 지금 현재 ‘출생의 비밀’이라는 코드에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생기는 일시적인 현상일 수 있다. 추락한 이순신의 위기 상황에 신준호가 제 직분에 걸맞게 그녀의 매니저(물론 사적인 부분까지)를 자처하고 나서면서 캐릭터는 다시 살아날 수도 있을 게다. 또 한바탕 ‘출생의 비밀’의 폭풍이 지나고 나면 박찬우나 서진욱 같은 캐릭터도 의외의 반짝반짝한 매력을 발휘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고다 이순신>의 출생의 비밀 이야기는 이게 끝이 아니라는 복선이 이런 기대감마저 희석시킨다. 이순신의 친부가 죽은 이창훈(정동환)이 아닐 거라는 암시는 이미 여러 대목에서 드러난 바 있다. 출생의 비밀 코드가 시청률을 끌어올리는 효과적인 장치라는 것은 맞지만 이렇게 이중의 출생의 비밀 코드까지 쓰게 된다면 자칫 몇몇 캐릭터들은 진짜 병풍이 되고 말 수도 있을 것이다. 제 아무리 시청률도 좋지만 과연 그렇게까지 해야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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