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스펙터>, 볼거리는 화려한데 어째 부족한 건 왜일까
007 제임스 본드가 돌아왔다. 무려 24번이나 만들어진 시리즈니 이제 더 이상 구구절절 장르적 특성이나 주인공을 설명할 필요가 없는 영화다. 멋진 수트를 입고 살벌한 테러 속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주인공.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임무를 수행하는 그런 인물. 바람둥이처럼 이 여자 저 여자를 넘나들지만 그래도 한 여자에게 순정을 보이기도 하는 인물. 제임스 본드는 영국 신사의 이미지를 스파이물과 버무려 기막힌 스타일로 탄생된 인물이다.
사진출처:영화<007스펙터>
하지만 24번이나 만들어지는 사이 세상은 참 많이도 변했다. 처음 이 시리즈가 성공적일 수 있었던 건 냉전시대의 대결구도 덕분이다. 러시아로 대변되는 적수들이 강력했고 거기에 맞서는 제임스 본드는 전 세계를 배경으로 종횡무진 활약한다. 설원에서 스키를 타고 벌어지는 추격전이나 늘 등장하는 특수 제작된 본드 카의 비밀 스위치로 흥미를 돋우는 차량 추격신, 때로는 바닷 속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때로는 우주까지 날아가는 스케일. 그런 화려한 액션들이 그저 편편이 흩어지는 시퀀스들이 아니라 하나로 엮어질 수 있었던 건 역시 냉전의 대결구도 때문이었다.
하지만 냉전시대가 지나면서 007은 적수를 잃었다. 심지어 시리즈 중단 이야기까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007이 다시 부활할 수 있었던 건 다행스럽게도(?) 테러리즘이 새로운 시대의 적으로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007스카이폴>이 괜찮은 반응을 얻어냈던 건 이러한 적수가 막연히 인류를 공격하는 식의 이야기가 아니라 제임스 본드가 속한 MI6를 직접 타격하는 이야기가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껏 세워진 007시리즈의 본거지가 공격받는다는 이야기는 막연한 테러리즘보다 더 절실한 제임스 본드의 이야기를 가능하게 했다.
그렇다면 그 이야기의 연장선에 있는 <007 스펙터>는 어떨까. 결과적으로 얘기하면 액션은 더할 나위 없이 화려해졌지만 어딘지 부족한 느낌이다. 그것은 적수가 제공하는 인류의 위협이 그리 새롭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제목에 들어있는 ‘스펙터’라는 문구가 이미 암시하고 있듯이 이 영화의 적은 결국 디지털 감시 시대의 ‘빅브라더’라고 할 수 있다. 헌데 화려한 액션 속에서 그 빅브라더가 구체적으로 인류를 어떻게 위기에 몰아넣을 것인가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게다가 빅브라더라는 적수가 그리 새로운 것도 아니다. 007 시리즈가 지금껏 계속 주목받을 수 있었던 건 그 시대마다 생겨나는 새로운 과학기술과 그것으로 인해 우리가 직면하게 되는 새로운 적들을 확인시켜주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007 포 유어 아이즈 온리>는 해양시대가 가져온 위협들을 보여주었고, <007 문레이커>는 우주시대의 위협을 제임스 본드의 활약으로 그려낸 바 있다. 물론 <007 스펙터>가 지목하고 있는 빅브라더는 우리 시대의 위협인 것이 맞지만 그것이 새로운 것도 아니며 또한 효과적으로 그려지지도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007 시리즈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는 분들이라면 또 다시 달리기 시작한 이 제임스 본드의 2시간이 훌쩍 넘는 활약에 기꺼이 시선을 빼앗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의외로 마지막 적과의 대결 장면에서 네트워크를 형상화한 듯한 연출 구성 같은 묘미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영화관을 벗어날 때 느끼게 되는 허전함은 어쩔 수 없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온다’는 이 영화의 화두처럼 007은 그렇게 다시 살아났다. 하지만 그가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새로운 적수를 찾는 건 역시 쉽지 않은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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