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의 비밀 시대는 갔어도, 관계의 비밀은 계속

도대체 저 관계는 본래 무엇이었을까. OCN 주말드라마 <터널>에서 스릴러만큼 관심을 집중시키는 건 박광호(최진혁)와 그를 둘러싼 인물들 간의 관계다. 30년 시간의 터널을 통과해 현재로 온 박광호는 제일 먼저 과거 화양경찰서의 막내였던 전성식(조희봉)을 만난다. 현재 팀장인 전성식이 새로 온 막내 박광호가 과거 자신이 존경해왔던 선임이었다는 걸 알게 되는 과정은 흥미로우면서 동시에 따뜻한 웃음을 짓게 만든 이야기였다. 

'터널(사진출처:OCN)'

하지만 관계의 비밀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박광호와 파트너가 된 김선재(윤현민)가 과거 자신이 뒤쫓던 연쇄살인범에 의해 무참히 살해된 여인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또 범죄심리학자인 신재이(이유영)가 바로 박광호의 아내가 남긴 딸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연쇄살인범 정호영(허성태)에 의해 살해될 위기에 처했을 때 신재이가 분 호각으로 박광호는 그녀가 자신의 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장면은 아마 부녀지간이라는 설정이 아니었다면 이만큼 극적인 상황으로 연출되긴 어려웠을 게다. 

과거 이른바 막장드라마의 공식으로 ‘출생의 비밀’ 코드가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되었던 건 핏줄이라는 관계로 얽혀져 다시 만나는 당사자들의 상황이 그만큼 극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타임리프나 전생, 판타지가 접목된 장르물들은 이 ‘출생의 비밀’ 코드는 세련되게 변주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관계의 비밀’이다. 

종영한 드라마 tvN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는 현재의 도깨비 김신(공유)과 저승사자(이동욱)의 브로맨스 관계가 과거에는 연원관계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극적 갈등을 만들었다. 저승사자가 현재 사랑에 빠진 써니(유인나)가 과거 그가 죽게 한 왕비였고 바로 김신의 여동생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갈등이 전개됐던 것. 전생과 후생 사이에 놓여진 차단막을 활용함으로써 이 드라마는 그 관계의 비밀을 통한 극적 전개를 추구했다.

현재 방영되고 있는 tvN <시카고 타자기> 역시 이 관계의 비밀 코드를 활용한다. 베스트셀러 작가 한세주(유아인)와 그에게 나타난 유령작가 유진오(고경표) 그리고 뮤즈 전설(임수정)의 관계는 일제강점기 경성을 배경으로 한 그들의 관계들이 병치되면서 도대체 그 정체가 무엇인가에 대한 궁금증을 만든다. 어떤 이유에 의해 유진오가 환생하지 못하고 타자기의 유령으로 빙의되어 살아가게 된 사실은 일제강점기 이들의 관계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지는 것. 

타임리프, 전생, 판타지를 동원한 이들 작품들은 모두 시간의 장벽을 훌쩍 뛰어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이러한 ‘관계의 비밀’ 코드가 제대로 작동하게 된다. 물론 그 기저에 있는 건 우리가 현재 만나는 모든 관계들이 그저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 전생이든 과거이든 어떤 인연의 고리에 의해 연결되어 있다는 ‘연기설’이다. 

이 ‘관계의 비밀’ 코드는 저 ‘출생의 비밀’처럼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장르물에 익숙하지 않은 시청자들까지 끌어들일 수 있는 장치가 되어준다. 또한 ‘출생의 비밀’ 코드처럼 자극을 위한 자극으로만 흘러가지 않고 장르물의 이야기 전개에 일종의 양념 역할을 해준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관계의 비밀’은 한때 가족주의 시대에 가족에 집착하며 만들어진 ‘출생의 비밀’ 코드를 가족 바깥으로까지 확장해낸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우리에게 특히 어떤 이유에 의해 ‘헤어졌던 이들이 다시 만나는 이야기’는 강렬하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이산’의 경험을 뿌리 깊게 간직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무엇보다 가족주의에 특히 집착하며 살아왔던 탓일 수도 있다. 어쨌든 ‘출생의 비밀’ 시대는 지나갔지만 ‘관계의 비밀’이라는 새로운 코드로 그 힘은 여전히 장르물 속으로까지 파고들고 있다.

 '시카고 타자기', 임수정에 더 집중해야 산다

기대했던 것에 비하면 너무 초라해져가는 시청률이다. 2.4%(닐슨 코리아)로 시작한 tvN <시카고 타자기>. <해를 품은 달>과 <킬미 힐미>의 진수완 작가의 신작인데다, 유아인이 출연했다는 소식만으로도 기대감은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 수준이었다. 하지만 2회에 잠깐 2.8% 시청률로 정점을 찍은 후 줄곧 시청률이 빠지더니 5회에는 1.9%까지 떨어졌다. 

'시카고 타자기(사진출처:tvN)'

작품의 완성도나 유아인, 임수정, 고경표의 연기 모두 명불허전인 건 사실이다. 특히 이 작품은 소설이라는 지금껏 드라마 소재로는 잘 다뤄지지 않은 세계를 담는 실험을 하고 있다. 1920년대 경성과 현재를 넘나들고 타자기와 회중시계가 일종의 판타지 장치처럼 활용되며 작가인 한세주(유아인)와 진짜 유령인 유령작가 유진오(고경표)라는 존재의 관계는 상상과 현실 사이의 경계마저도 흐릿하게 만들고 있다. 

시간과 공간 그리고 가상과 현실을 말 그대로 ‘종횡무진’하는 <시카고 타자기>는 그래서 굉장한 야심작이다. 그 안에는 스릴러에 판타지 로맨스 같은 다양한 장르들의 편린이 녹아 있다. 하지만 그래서인지 일반 시청자들에게 이 드라마는 ‘종을 잡을 수 없는’ 드라마처럼 다가온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하는 그 목표의식이 5회가 지난 지금까지도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있어서다.

이건 5회에 이르러 유진오가 그저 유령작가가 아니라 실제 유령이었다는 사실을 깜짝 밝히는 반전을 보여주는 그 장면에 잘 드러나 있다. 드라마는 지나치게 반전에 집착하며 어떤 이야기로 튈지 알 수 없게 현재 상황을 숨기고 있지만 시청자들은 그것이 궁금하기보다는 다소 복잡하고 나아가 답답하게 여겨진다. 드라마에서 반전 장치란 터트릴 때는 효과가 있지만 터지기 전까지 숨길 때는 이야기 전개의 원활한 흐름을 오히려 막아 시청자들을 답답하게 만들 수 있다. 

게다가 유진오가 유령일 거라는 추측은 이미 대부분 시청자들이 알고 있었던 사안이다. 이러니 반전의 효과는 줄어들고 대신 반전을 보이기 위해 그간 숨겨놓고 눌러놓았던 이야기 전개만 더 복잡하게 보이는 역효과가 생길 수밖에.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복잡한 이야기 속에서 시청자의 몰입 포인트를 드라마가 제대로 콕 집어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한세주라는 베스트셀러 소설가가 이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세워져 있지만 일반 대중들 입장에서 소설가가 겪는 창작의 고통이라는 지점은 그다지 큰 공감대를 만들지 못한다. 물론 창작자들에게는 이 드라마의 문제의식이 흥미롭게 다가올 테지만 말이다. 

대신 이 드라마에서 대중들이 쉽게 몰입할 수 있는 인물은 바로 한세주의 뮤즈로 나타난 전설(임수정)이라는 평범 속에 비범을 숨기고 있는 인물이다.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있지만 어째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었는지’ 늘 하던 일이 어그러지는 그런 인물. 그러면서도 끝까지 한세주 작가의 초심을 믿고 신뢰함으로서 그를 진정한 창작자로 살게 하는 존재. 

한세주와 전설의 관계는 그래서 창작자와 독자의 관계가 지금 현재 어떻게 역전되어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과거의 창작자와 독자의 관계는 창작자에서 독자로 향하는 일방향적 힘이 더 우세했지만, 지금은 거꾸로 독자가 창작자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기도 하는 뮤즈가 되기도 한다는 것. 

<시카고 타자기>가 좋은 실험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이렇다 할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까닭은 바로 이 ‘몰입의 대상’을 제대로 짚어내지 못하고 있어서라고 생각된다. 창작자의 고민은 분명 중요한 일이지만 시청자들이 관심을 갖는 사항은 아니다. 대신 시청자들이 더 주목하는 건 독자의 확장된 역할이 아닐까. 전설의 활약이 중요해진 이유다.

유아인, ‘시카고 타자기’라는 현실과 판타지의 미로를 읽는 법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판타지인가. 또 무엇이 소설이고 무엇이 현실인가. tvN 금토드라마 <시카고 타자기>는 그 모호한 경계 사이에 놓여 있다. 슬럼프에 빠진 베스트셀러 작가 한세주(유아인), 어느 날 시카고에서 보게 된 미스터리한 느낌을 주는 타자기, 그 타자기를 배달하며 그와 가까워진 전설(임수정) 그리고 슬럼프에 빠진 그에게 전속출판사 대표 갈지석(조우진)이 은근히 제시한 유령작가 유진오(고경표). 이들의 이야기는 현실과 판타지 사이에 걸쳐 있어 모호한 느낌을 준다. 

'시카고 타자기(사진출처:tvN)'

슬럼프에 글이 써지지 않는 한세주가 마감 스트레스에 차를 몰고 나왔다가 사고를 당하고, 그를 마침 전설이 구해주는 이야기는 현실적인 느낌이 별로 없다. 그런 큰 사고를 당하고도 살아있는 게 놀라운 데 마침 그 시각에 하필이면 아버지 기일에 맞춰 별장을 찾은 전설이 그를 발견해 구해내는 것도 지나친 우연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그러고 보면 한세주의 첫 번째 팬이었던 전설이 그 미스터리한 타자기를 다름 아닌 한세주에게 직접 배달하게 되는 상황도 우연이다. 문을 열어주지 않는 한세주의 집 앞에서 커다란 개를 만나고 그 개로 인해 그의 집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전설의 이야기 역시 개연성이 아닌 우연적인 사건이다. 

드라마는 이런 우연적 사건들을 계속해서 터트리면서 코미디를 통해 그 우연을 봉합하려 한다. 즉 전설이 한세주의 집으로 들어가게 되는 시퀀스는 개가 소설파일이 있는 USB를 먹는 상황이 만드는 왁자지껄하고 과장된 코미디로 처리되어 있다. 또 자동차 사고를 당한 한세주를 전설이 구해내는 장면 역시 영화 <미저리>의 패러디를 덧씌워 우스운 장면들로 연출된다. 

이런 우연적 사건들의 반복은 그 비현실성 때문에 그것이 실제로 벌어진 현실인지 아니면 한세주의 판타지거나 상상 혹은 환상인지를 의심하게 만든다. 즉 한세주와 전설 사이에 계속 벌어지는 우연은 마치 오래 전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엮어진 운명처럼도 이해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슬럼프에 빠져 정상적인 상태가 아닌 작가 한세주의 환상이나 판타지처럼도 보인다. 

유령작가 유진오의 등장 또한 마찬가지다. 사고를 당해 마감을 할 수 없었던 한세주 대신 유진오가 ‘시카고 타자기’의 첫 회 소설을 내보내지만 한세주는 그것이 자신이 쓴 것이고 자신은 잠시 단기기억상실을 겪은 것이라 합리화한다. 물론 갈지석이 유령작가 이야기를 운운한 건 맞지만 그것이 실제 유진오를 지칭하는 것인지도 모호하다. 결국 한세주는 자신이 집을 비운 사이 그 의문의 타자기로 소설을 쓰고 있는 유진오를 마주하게 된다. 그런데 그것 역시 실제인지 아니면 한세주의 환상인지가 애매하다. 

그것은 한세주가 문득 문득 보게 되는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전설과 유진오가 엮어가는 어떤 사건들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진짜 한세주와 전설 그리고 유진오가 과거부터 엮어진 어떤 운명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한세주의 환상이며 그가 지금 쓰고 있는 ‘시카고 타자기’의 소설 내용일 수도 있다. 

이런 현실과 환상 사이의 애매함은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안개처럼 시청자들의 시야를 가린다. 시청자들은 그 안개 속에서 호기심을 느끼며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상인가를 궁금해 하지만, 동시에 그 낯선 이야기의 미로 속에서 머리가 복잡해질 수도 있다. 이것은 <시카고 타자기>가 가진 신선함이면서 동시에 대중성의 한계로 지목된다. 

사실 이 안개 같은 흐릿한 미로의 끝이 어디로 갈지 전혀 종을 잡기가 어려운 드라마가 바로 <시카고 타자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애매모호한 걸음을 앞으로 나가게 하는 건 다름 아닌 한세주라는 인물과 그를 연기하는 유아인이라는 배우의 몰입 덕분이다. 사실 논리적으로 접근해 해석해보려 하면 이 드라마는 한없이 복잡한 미로를 들이밀지만, 한세주라는 캐릭터가 가진 심리적인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면 그리 어렵지 않게 이 길을 걸어 나갈 수 있다. 

그가 갖고 있는 자존심과 막막함 그리고 창작에서 오는 극심한 스트레스와 그럼에도 창작자이기에 어디서든 튀어나오는 뮤즈 같은 창작의 단초들. 그런 의식의 흐름들은 현실과 환상 사이에 걸쳐져 있지만 그래도 한세주라는 인물에게는 모든 것이 당장 눈앞에 닥친 현실일 수 있으니.

‘시카고 타자기’, 이토록 문학적 상징들이 가득한 드라마라니

독특한 드라마. 아마도 tvN 새 금토드라마 <시카고 타자기>를 한 마디로 말한다면 그런 표현이 적당하지 않을까. 총소리가 타자기 치는 소리를 닮았다고 해서 톰프슨 기관단총에 붙여진 별칭에서 따온 <시카고 타자기>라는 제목은 이 드라마가 어떤 스타일을 추구하고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그것은 일종의 문학적 해석이 가능한 상징들을 주요 모티브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시카고 타자기(사진출처:tvN)'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한세주(유아인)가 시카고에서 발견한 한 타자기는 그에게 기묘한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그 타자기는 1930년대 경성에서 글을 쓰던 자신과 친구인지 동료인지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한 인물 유진오(고경표), 그리고 심부름을 도맡아 하는 듯한 전설(임수정)이 함께 어울렸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그것이 실제로 벌어졌던 일인지 아니면 한세주라는 작가의 상상에 의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 타자기를 구입하려 하지만 팔지 않겠다던 주인은 타자기 스스로 자신을 한세주에게 보내달라고 찍어대는 기이한 광경에 놀라 결국 한세주에게 타자기를 보낸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타자기를 한세주에게 배달해주는 인물이 바로 전설이다. 어찌 보면 지나치게 우연이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드라마가 이를 허용해주는 건 다름 아닌 한세주라는 작가의 존재 덕분이다.

이 모든 우연적으로 보이는 사건들은 어쩌면 한세주라는 상상력이 넘쳐나지만 지금은 무슨 일인지 슬럼프에 빠져들어 점점 미칠 지경이 되어가는 작가가 재구성한 일들처럼 보여진다. 그것이 한세주의 욕망에서 비롯된 상상처럼 느껴진다는 점이다. 즉 슬럼프에 빠진 그에게 전설과 시카고에서 배달된 타자기는 마치 동격처럼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뮤즈’로 여겨진다는 점이다. 

1930년대 경성을 배경으로 전설이 계속해서 한세주에게 날리는 메시지는 “삼류소설 쓰지 말고 위대한 작품을 쓰라”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한세주가 베스트셀러 작가로 성공은 했지만 스스로에게 느끼는 어떤 자책감과 그래서 더 커지는 욕망의 목소리일 수 있다. 자신의 소설을 그대로 따라해 모방범죄를 저지른 스토커의 등장은 그를 더욱 혼란에 빠뜨린다. 자신의 소설은 마치 시카고 타자기라는 별칭으로 불리던 톰프슨 기관단총처럼 누군가에게 무시무시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 심지어 사람을 죽일 수도 있을 만큼. 

게다가 그 스토커가 한 말, 한세주가 자신에게 살인의 영감을 주었듯이 자신이 그에게 문학적 영감을 주었다는 말이 그에게는 날카로운 가시처럼 박힌다. 그래서 한세주에게는 너무나 상반된 영감을 제공하는 두 인물이 양편에 서 있는 셈이다. 하나는 장르 소설 속에서 누군가 살인을 저지르는 인물을 그려내게 하는 영감을 주는 스토커 같은 인물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 삼류소설 쓰지 말고 위대한 작품을 쓰라며 영감을 주는 전설 같은 인물이다. 

소설이 잘 써지지 않는 한세주를 끝없이 몰아세우는 건 전속 출판사인 황금곰 대표 갈지석(조우진)이다. 그는 소설을 작품이 아닌 상품으로 본다. 소설의 성공을 게임과 영화 등등으로 멀티유즈하여 엄청난 비즈니스로 만들어내려 한다. 그래서 슬럼프에 빠진 한세주에게 유령작가를 쓰자는 은밀한 제안을 한다. 여기서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유진오다. 그런데 드라마는 유진오라는 인물을 진짜 유령 같은 미스터리한 존재로 연출하고 있다. 어쩌면 그 역시 한세주가 만들어낸 상상 속의 인물일 가능성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시카고 타자기>는 이처럼 창작자와 뮤즈라는 영감을 주는 관계를 멜로와 미스터리 등의 장르를 통해 흥미롭게 풀어내는 작품이다. 그리고 이것이 가능해지는 건 전적으로 한세주라는 작가가 중심에 서 있기 때문이다. 많은 판타지적 설정들이 등장하지만 그것이 용인되고 이해되는 지점은 다름 아닌 성공은 했지만 어딘지 불안하면서도 해소될 수 없는 욕망을 가진 작가 한세주의 상상일 수도 있다는 문학적 개연성이 있어서다. 

이처럼 문학적인 상징들로 가득 차 있는 작품을 대중적으로 설득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다행스러운 건 이런 상징들을 인물들의 밀고 당기는 멜로와 스릴러가 덧붙여진 장르적 긴장감 그리고 판타지까지 동원해 흥미진진하게 만들어내는 진수완 작가와 김철규 감독의 공력이 있고, 이를 제대로 받쳐주는 유아인이나 임수정, 고경표 같은 믿고 보는 배우들이 있다는 점이다. 

<시카고 타자기>는 지금껏 이런 형태의 드라마가 국내에 별로 없었다는 점에서 제작진에게도 또 시청자들에게도 결코 쉽다고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그 독특함 안에서도 어떤 대중적인 공감을 이끌어가는 작가와 연출자 그리고 배우들의 힘이 느껴진다. 그리고 바로 이런 도전적인 시도 그 자체에 이 드라마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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