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니멀’, 끔찍한 인간들 속 공존을 위한 안간힘들

 

덴마크령 페로제도의 흐반나준트 마을. 북유럽의 보석이라고 불릴 만큼 아름답고 평화로워 보이는 마을에 무슨 일인지 시끌시끌한 소리들이 들려온다. 해안가에 잔뜩 모여든 사람들. 아이들은 물론이고 그 부모들과 건장한 사내들까지 무얼 하려는 걸까 싶은 순간 저 편에서 배 몇 척이 무언가를 몰고 들어온다. 자세히 보니 놀랍게도 돌고래 수십 마리가 배들의 위협적인 소리에 밀려 해안가로 오고 있다.

 

그런데 이 평화로운 풍경 속에서 갑자기 마치 호러 무비를 보는 듯한 믿기 힘든 광경들이 벌어진다. 해안가 근처로 온 돌고래들을 향해 마을 장정들이 달려 들어가 쇠꼬챙이로 머리를 찍어 뭍으로 끌어올리는 광경. 꼬챙이에 찔리고 머리가 잘린 돌고래들로 해안가는 순식간에 핏 빛으로 물들어 버린다. 부감으로 찍혀진 그 장면은 대살육의 현장 그대로다.

 

MBC 창사특집 다큐멘터리 <휴머니멀>이 보여준 이 장면에 붙은 부제는 ‘어떤 전통’이다. 그것이 페로 마을 사람들의 전통이란다. 물론 과거에는 척박한 토양 때문에 먹을 것이 없어 돌고래를 잡았다고 하지만 지금은 충분히 대체 식량이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1년에 한 번씩 이런 대살육을 벌이는 건 ‘전통’이기 때문이라는 것. 그 전통에 참여한 한 사내는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흥분을 이야기했다. 죽은 돌고래들을 아이들이 다가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만지고 있었다. 그 아이들은 또 자라서 그 전통을 이어갈 것이다. 만일 그것이 대살육일 뿐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없다면.

 

돌고래쇼 같은 체험 관광으로 특화되어 있는 일본 타이지 마을에서는 돌고래를 포획하고 죽여 고기로 팔거나 훈련시켜 평생을 가두리에 가둬둔 채 쇼를 하고, 전 세계 아쿠아리움에 파는 일들이 하나의 시스템화된 산업이 되어있다. 배들이 바다로 나가 돌고래를 해안가를 몰아오고 그물을 쳐서 나가지 못하게 막은 후 잠수부들이 투입되어 대량 살상이 벌어진다. 잘 생기지 못한 돌고래는 그 자리에서 살해되어 온통 피바다가 되는 광경이 외부에 공개되어 논란이 되자 지금은 더 영악한 방법이 사용된다. 척수만 끊어 놓고 그 부분을 막아 피가 나오지 않게 꾸미는 것. 그렇게 죽은 돌고래들은 고기로 팔려나간다. 살아남은 돌고래들은 가족과 뿔뿔이 흩어져 쇼를 하거나 아쿠아리움에 팔려간다.

 

돌고래들은 자신의 존재를 인지하고 기억한다고 한다. 또 유대감이 높아 가족을 버리고 떠나는 일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돌고래들은 태풍으로 인해 가두리가 망가졌어도 갇힌 가족을 떠나지 못해 손쉽게 다시 포획되고 있었다. 타이지 마을 사람들은 돌고래들 때문에 차도 몇 대씩 사고 집도 바꿀 정도로 돈을 벌고 있다고 했다. 결국 그건 생존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일이라는 것. 그 욕망에 의해 돌고래들은 가족 단위로 처참한 비극을 맞이하고 있었다.

 

<휴머니멀>은 지금껏 우리가 별 생각 없이 보면서 착각해왔던 동물들의 불편한 진실을 끄집어낸다. 돌고래쇼라고 하면 돌고래들이 별 무리 없이 붙잡혀 행복하게 지내고 있을 거라 착각하지만 결코 그건 진실이 아니었다. 가까이서 보니 쇼를 하는 돌고래들의 온 몸에는 상처가 나 있었다. 그 상처들이 그들의 비극을 적나라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상아 때문에 머리가 통째로 잘려져 죽는 아프리카의 코끼리들, 인간을 위해 노동을 하거나 관광상품화된 쇼에 나가기 위해 아기 때부터 갇혀 갖은 고문을 당하는 태국의 코끼리들,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대량 살상을 당하는 페로 마을에 붙잡혀온 돌고래들 그리고 욕망을 채우기 위해 살육당하고 사육당하며 팔려나가는 일본 타이지마을의 돌고래들...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내는 동물들의 처참한 현실들을 <휴머니멀>은 똑바로 바라보라 말하고 있다.

 

그나마 그 속에서도 어떤 희망을 찾게 되는 건 이런 상황들을 찍어 전 세계에 알리거나 멸종되어 가는 동물들을 지켜내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아프리카 코끼리를 살리기 위해 일일이 GPS를 달아 그 움직임을 주시하는 이도 있고, 평생을 고문당해 온 코끼리들을 거둬 말년이나마 평화로운 삶을 지낼 수 있게 노력하는 이도 있었다. 또 돌고래들이 어떻게 살육당하고 사육 당하는가를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태풍 속에서도 가두리에 갇혀 몸부림치는 돌고래를 찍는 이들도 있었다.

 

유해진이 찾아간 미국 뉴햄프셔에서 야생 흑곰의 멸종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벤 킬햄 박사는 바로 그런 인간과 동물과의 공존이 어떤 의미인가를 제대로 알려주는 인물이다.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새끼 곰들을 거둬 키우는 벤은 2년 이상을 키우지 않는다고 했다. 그 이상을 키우면 야생으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란다. 마치 부모처럼 먹이를 주고 야생에 적응시키기 위해 매일 산책을 하는 그가 성장한 곰을 떠나보내는데 어찌 소회가 없을까. 하지만 그는 말했다.

 

“모든 곰들은 곰으로 살고 싶어 해요. 야생 서식지에서 다른 곰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말예요. 곰들은 사람들과 함께 지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제 감정은 상관없어요. 저는 곰들이 행복하길 바라고 방사해줘야 곰들이 행복해져요.” 기꺼이 동물들을 위해 헌신하고도 그들이 행복해질 수 있게 자연으로 보내주는 사람. 그리고 전통 혹은 관광산업이라는 명목으로 대량 살상을 일삼는 사람. 우리는 과연 어떤 쪽을 택해야할까. 불편한 진실 앞에서 최소한 부끄럽지 않은 선택이어야 하지 않을까.(사진:MBC)

‘휴머니멀’, 경고하던 동물다큐 이제 분노하기 시작했다

 

정말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라이온킹> 같은 애니메이션에서 평화롭게만 보였던 아프리카 동물들의 실상은 너무나 살풍경했다. 박신혜가 함께 헬기를 타고 따라간 그 곳에는 코끼리 사체들이 덤불에 가려진 채 쓰러져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놀랍게도 얼굴 전체가 도려내져 사라지고 없었다. 국경없는 코끼리회 대표 마이크 체이스 박사는 밀렵꾼들이 먼저 코끼리의 척추를 끊어놓고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게 만든 후 살아있는 상태에서 톱으로 얼굴을 도려냈다고 말했다. 자신들의 위치가 노출될 수 있는 총 사용을 피하고 또 총알을 아끼기 위해서란다.

 

MBC 창사특집 다큐멘터리 <휴머니멀>은 휴먼과 애니멀이 더해진 제목으로 인간과 동물의 공존을 묻는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그저 아름다운 인간과 동물 사이의 교감만을 담지는 않았다. 그것보다는 동물을 죽이고 사냥하며 학대하는 인간의 잔인함을 전면에 드러냈다. 죽어있는 코끼리 앞에서 말문이 막힌 채 눈시울이 붉어진 박신혜의 마음은 아마도 그 장면을 본 시청자들의 마음과 다르지 않았을 게다. 어떻게 인간이 이렇게 잔인할 수 있을까.

 

코끼리를 숭배한다는 태국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유해진이 찾아간 태국 치앙마이의 코끼리 생태공원. 그 곳을 만든 야생동물보호 활동가 생드언 차일런트는 코끼리들과 거의 가족처럼 교감하고 스킨십하며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평화롭게만 보이는 풍경 이면을 알게 된 유해진은 결국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 곳에 온 코끼리들이 사실은 한평생을 잔인한 고문과 학대로 살아오다 오게 됐다는 것. 벌목이나 트래킹 관광, 코끼리 쇼 나아가 종교행사에까지 동원되는 코끼리들은 어려서부터 학대받아 왔다. 그 속에서 코끼리들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코끼리쇼를 보여주는 곳을 찾아간 유해진은 그 곳에서 갖가지 묘기와 재롱을 보여주는 쇼를 보며 마음이 착잡해졌다. 결코 웃거나 그들과 기념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그 이면을 봤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방송을 본 시청자들이라면 유해진과 같은 마음일 수밖에 없을 게다. 쇼를 하는 코끼리들이 어려서부터 그 긴 시간을 학대받으며 살아왔다는 걸 알고 있는 이상 어찌 그런 쇼를 볼 수 있을까.

 

트로피헌팅이라는 명목으로 마치 아프리카를 돕는 것처럼 포장되는 사실상 살상행위 역시 충격적이었다. 돈을 냈다는 이유로 당당하게 자신들이 죽인 동물들을 박제해 집안에 전시해놓은 올리비아 오프레는 오히려 자신이 마녀사냥을 당하고 있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짐바브웨의 아름다운 사자 세실이 트로피 헌터들의 ‘작전’에 의해 살해당하면서 생긴 세계적인 공분은 트로피헌팅이 얼마나 잔인한 사냥인가를 알려줬다. 세실이 사냥꾼들의 유인으로 넘어섰던 철로가에 선 류승룡은 그 곳에서 저 편에 세실이 서 있는 것만 같다며 그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휴머니멀>은 그저 단순한 인간과 동물의 공존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잔인한 인간들에 의해 어떻게 동물들이 학살당하고 학대당하는가를 보여준다. 박신혜, 유해진, 류승룡이 그랬던 것처럼 시청자들은 그걸 보면서 미안해지다가 분노하고 눈물을 흘리게 된다. 하지만 태국의 코끼리 생태공원의 활동가 생드언 차일런트가 한 말처럼 “누구나 눈물은 흘릴 수 있지만 땀은 누가 흘리냐”는 질문이 던져진다. <휴머니멀>은 우리의 선택과 행동을 요구하고 있다. 인간과 동물이 공존하기 위해서는 미안해하고 분노하고 눈물 흘리는 것을 넘어 행동을 해야 한다고.(사진:MBC)

‘더 마스터’, 음악장르는 달라도 저마다 감동을 준다는 건

클래식과 국악, 재즈, 뮤지컬, 대중가요, 밴드음악. 어찌 보면 우리는 이런 서로 다른 장르의 음악들과 그 음악들이 서는 무대가 저마다 다르다고 생각해왔다. 실제로 클래식 공연을 보러가면 느껴지는 건 숨조차 크게 내쉬지 못하는 진중함 같은 것이었고, 국악 공연하면 먼저 떠오르는 건 마당 같은 널찍한 공간에 둘러 앉아 그 절창의 목소리에 빠져드는 관객의 모습이었다. 또 재즈라면 어딘가 바 한 구석에 앉아 있어야 될 것 같은 기분이 들고, 뮤지컬이라면 감동적인 공연무대의 한 장면을 떠올린다. 이런 다른 느낌은 대중가요나 밴드음악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tvN <더 마스터-음악의 공존>은 이렇게 전혀 다른 무대를 떠올리는 음악 장르들이 한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게 가능하고, 또 그렇게 다른 장르들이라고 해도 똑같은 관객들이 저마다의 감동을 받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음악의 공존’이라는 부제는 그저 그럴 듯한 수사가 아니라 이 프로그램이 도전적으로 시도하는 음악의 새로운 가치지향을 드러내준다.

매회 하나의 주제를 갖고 6명의 각 장르 마스터들이 자신들이 준비한 무대를 보여주는 <더 마스터>는 첫 회 첫 무대부터 놀라운 감동을 선사한 바 있다. 클래식의 마스터 임선혜가 들려주는 ‘울게 하소서’는 이미 일반 대중들도 잘 알고 있는 곡이지만 자유자재로 구사되는 고음과 특히 한 음 한 음 낼 때마다 저마다의 색깔이 다르게 느껴지는 음색을 통해 클래식의 묘미가 무엇인가를 제대로 보여줬다. 그리고 임선혜는 ‘사랑’을 주제로 한 2회에서 패티김의 ‘이별’을 담백하게 불러 클래식도 충분히 친숙한 장르라는 걸 확인시켜줬다. 

국악 마스터인 장문희는 2회에서 ‘하늘이여’라는 곡을 통해 아이를 잃은 엄마의 마음을 절절하게 표현해 관객들을 눈물짓게 만들었다. 국악 특유의 한이 서린 그 목소리가 가진 힘이 제대로 느껴지는 무대였다. 최백호는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를 불러 특유의 쓸쓸한 목소리에 관객의 귀를 집중시켰다. 대중가요가 갖는 대중적인 정서를 최백호다운 무대로 보여줬던 것.

<더 마스터> 2회에서 그랜드 마스터가 된 최정원은 에디뜨 피아프의 ‘사랑의 찬가’를 한 편의 뮤지컬을 보는 것처럼 소화해냈다. 실제 사랑했던 연인의 갑작스런 죽음에 대한 애도를 담은 이 곡을 대사까지 담아 &#47583; 연기하듯 해석해낸 것. 뮤지컬이 가진 장르적 매력을 가장 잘 보여준 무대였다. 

밴드 마스터인 이승환이 부른 자신의 곡 ‘내게만 일어나는 일’은 발라드지만 록 코러스와 하모니를 만들어 웅장하고 스펙터클한 무대를 선사했고, 재즈 마스터 윤희정의 ‘서울의 달’은 폭풍 성량을 가진 그 목소리에 재즈 특유의 다양한 변주를 보여줌으로써 재즈가 가진 자유로움을 잘 표현해냈다. 

매회 관객들의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이를 선정해 그랜드마스터를 뽑지만 그건 그래서 전혀 순위적인 의미를 갖고 있지는 않다. 다만 다양한 장르들의 저마다 다른 색깔들 중 그 날의 무대에서 인상 깊었던 한 무대를 선정하는 것 뿐. 무엇보다 이 다양한 장르들이 한 무대에서 공연되는 것 자체가 자연스럽게 다가온다는 점은 <더 마스터>가 이미 성취한 음악 다양성의 가치를 잘 드러내준다. 흔히 음악하면 저마다 떠올리는 한두 가지의 장르들. 그 편견을 깨는 것은 물론이고 <더 마스터>는 저마다의 장르가 얼마나 색다른 음악의 매력을 드러내주는가를 감동적인 무대를 통해 설득시키고 있다.

‘한끼줍쇼’ 1년, 무엇이 바뀌었을까

어느새 1년이 흘렀다. 처음 길바닥에 숟가락 하나씩 들고 나와 낯선 동네를 어슬렁거리고 모르는 집의 초인종을 누르던 그 순간의 긴장감은 그 1년 사이 많이 사라졌다. “이경규인데요”라고 말했을 때 초인종 저 편에서 들려오는 “그런데요?”라는 반문이 주던 그 당혹감도 이젠 익숙해졌다. 물론 지금은 그런 반응을 보이는 목소리는 잘 들려오지 않는다. JTBC <한끼줍쇼>라는 예능 프로그램은 이제 우리네 대중들이라면 한번쯤 봤거나 혹은 들어봤을 테고, 그래서 어느 날 갑자기 내 집에 초인종을 누른다면 적어도 낯설어 거부하진 않을 정도는 됐다. 

'한끼줍쇼(사진출처:JTBC)'

그 1년 사이 무엇이 바뀌었을까. <한끼줍쇼>가 1주년을 맞이해 그 첫 회를 했던 망원동을 다시 가보는 그 행보는 그 달라진 점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어주었다. 이미 망리단길을 알고 또 tvN <알쓸신잡>에서 나왔던 ‘젠트리피케이션’을 들어본 시청자라면 망원동의 주택가가 상가로 바뀌고 있는 것을 보며 남다른 느낌을 가질 수 있을 게다. 물론 망리단길이 <한끼줍쇼>로 인해 주목받은 건 아니다. 이미 <나 혼자 산다>의 육중완이 망원시장을 제집 드나들 듯 드나드는 장면이 방송을 타면서부터 망리단길은 서서히 만들어져 왔다. <한끼줍쇼>는 방송의 힘이 심지어 동네의 풍경을 1년 사이에 그렇게 바뀌게 해줄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줬다. 물론 그건 좋은 일만은 아니다. 외부 자본으로 인해 원주민들이 밀려나는 형국이니.

경리단길, 망리단길, 연남동길... 이처럼 많은 길들이 마침 생겨나고 상권도 형성되기 시작할 즈음 방영되기 시작했던 터라 <한끼줍쇼>는 그렇게 새로운 동네와 길들을 재조명하는 프로그램처럼 보였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지난 1년을 되돌아보니 <한끼줍쇼>가 바꾼 건 그런 동네의 외적인 풍경만이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동네 사람들이 저마다 가진 타인들에 보여주는 따뜻함 같은 것들이 더 큰 것이었다. 

물론 지금도 낯선 이들의 방문에 문을 열어주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게다. 하지만 적어도 <한끼줍쇼>가 1년 동안 방영되면서 그 불가능해보였던 일들이 완전히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라는 걸 우리는 확인하게 됐다. 그리고 그렇게 문을 닫고 있는 동네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살 일이 바빠서 타인에게 거리를 두고 있을 뿐, 어떤 기회가 되면 그토록 따뜻할 수 없다는 걸 이 프로그램에 나온 많은 ‘식구’들이 확인시켜줬다. 

1년 만에 다시 찾은 망원동에서 이경규와 강호동이 각각 찾은 집은 너무나 상반된 풍경을 보여줬다. 이경규가 이연희와 찾은 집이 추석을 맞아 3대가 모여 잔치 같은 분위기를 보여줬다면, 강호동과 차태현이 찾은 집은 홀로 자유롭게 살아가는 욜로족 청춘의 단출하지만 유쾌한 한 때를 보여줬다. 대가족과 나홀로족. 그 두 집의 풍경은 우리 시대에 공존하는 너무나 다른 삶의 양태를 표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게 달라도 그들이 낯선 이들에게 문을 열어주고 그 안에서 밥 한 끼를 나누며 보여준 환대는 다를 바가 없었다. 

<한끼줍쇼>가 1년 간 바꾼 것은 그래서 망리단길처럼 동네에 들어온 자본의 물결 같은 외적인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는 따뜻한 정 같은 것을 새삼 복원한 것이 아닐까. 저마다 정글 같은 일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경쟁하며 살아가지만 그래도 남아 있는 서민적인 사람에 대한 정과 호의. 방송 프로그램이 현실에 어떤 영향력을 줄 수 있다면 이것만큼 좋은 건 없을 것이다. 

이경규는 이미 <일밤> 시절부터 ‘양심냉장고’ 같은 프로그램들을 통해 방송이 현실에 어떤 영향력을 줄 수 있는가를 보여준 바 있다. 이런 사정은 강호동을 일약 스타덤에 올렸던 <1박2일>이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우리네 숨겨진 비경과 오지에서 살아도 정만은 그토록 깊었던 분들을 통해 우리가 갖고 있는 꽤 큰 자산들을 확인시켜줬던 경험과도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다. 

그러고 보면 <한끼줍쇼>가 바꿔 놓은 건 동네가 주는 따뜻한 정감만이 아니었다. 이경규와 강호동 역시 이 프로그램을 통해 본래 자신들이 잘 해왔던 그 초심을 이 시대에 맞게 되찾아낸 것으로 보인다. 황소걸음이지만 성실하게 그 길을 오래도록 걸어서야 만이 비로소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진정성이고, 그것을 통해서 어쩌면 현실도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이들은 그 1년 동안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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