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외주화 고발, ‘닥터탐정’이 드라마화한 현실

 

“3년 전 우리는 그 곳에서 또 다른 하랑이를 보았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혼자서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열아홉 청년.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지만 하청업체 비정규직이란 낙인은 열아홉 김군의 빛나는 젊음과 남은 가족의 삶마저 무너뜨렸습니다. 제대로 된 끼니는 고사하고 라면 한 그릇조차 먹을 수 없었던 김군의 마지막 하루는 생일을 몇 시간 앞둔 날이었습니다. 7시간만 더 살아있었다면 스무살이 되었을 김군에게 축하대신 추모를 전해야 했던 3년 전 그 날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SBS 월화드라마 <닥터탐정>은 에필로그로 3년 전 구의역에서 있었던 열아홉 김군의 비극을 전했다. 비정규직으로 스크린도어 오작동 신고를 받고 홀로 점검에 나섰다가 승강장에 진입하던 열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어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청년. 당시 사고로 구의역 9-4 승강장과 대합실에는 추모 공간이 마련되었고, 이를 통해 열악한 노동 환경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닥터탐정>이 첫 번째 에피소드로 구의역 김군을 소재로 담은 건, 이 드라마가 가진 남다른 시도가 잘 엿보이는 대목이다.

 

드라마는 김군을 모델로 한 외주업체 비정규직 정하랑(곽동연)의 안타까운 죽음을 다뤘다. 정규직 전환을 목표로 몸이 힘들어도 쉬지 않고 일했던 정하랑은 2인1조로 해야 하는 작업을 혼자 하다 선로 밑으로 떨어져 사망했다. 사고가 터지자 TL그룹 측은 그것이 개인적인 과실에 의한 사고라고 은폐하기 위해 CCTV영상에 비춰진 사고 전 무언가를 마시는 정하랑의 모습을 음주로 몰아갔다. 하지만 이웃에 살며 그를 봐온 도중은(박진희)은 그가 사실은 세척제로 쓰인 노말핵산에 의한 중독으로 손에 힘이 빠져 청소를 하던 중 선로로 떨어지게 됐다는 걸 밝혀낸다.

 

드라마의 스토리와 에필로그를 통해 드러나듯이 <닥터탐정>이 특별한 시도를 하고 있는 건 그 제작진의 면면에서부터 드러난다. 산업의학전문의인 송윤희 작가와 <그것이 알고 싶다>의 박준우 PD가 만드는 드라마. 산업 현장에서의 위험요소들을 마치 셜록 탐정처럼 찾아내는 도중은이라는 인물이 탄생한 이유이고, 그 인물을 통해 구의역 김군으로 대변되는 비정규직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끄집어내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극화된 드라마지만 마치 시사고발 프로그램처럼 무게감 있는 현실이 얹어져 있는 드라마.

 

“시민의 안전을 위해 만든 문이 죽음의 관문이 되고만 현실. 우리가 누려온 안전이 누군가의 목숨을 담보로 한 것이었음을 모두가 안전하지 않다면 아무도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김군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모든 현장에서의 죽음은 결코 개인의 잘못이 아님을 알리고 떠난 청년. 우리는 그를 구의역 김군이라 부릅니다.”

 

에필로그에 도중은 역할을 연기하는 박진희의 목소리로 담긴 구의역 김군에 대한 추모는 이 드라마가 전하는 울림을 더 크게 만들어낸다. 그것이 드라마 속 하나의 소재에 머무는 게 아니라 이 땅에 살아가는 외주업체 비정규직의 현실을 대변하는 이야기로 확장되기 때문이다. “사실은 죽음을 외주화한다는 말을 저희가 하고 있거든요. 모든 그렇게 돌아가신 분들에게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에필로그에 담긴 공공운수노조 정책국장의 목소리가 남다른 울림으로 다가온 건 드라마화한 이야기를 통해 좀더 그 비극적인 현실을 생생하게 들여다봤기 때문이 아닐까.(사진:SBS)

‘라이프’, 명쾌한 고구마도 사이다도 드러내지 않는 이유

이 드라마는 마치 <그것이 알고 싶다> 같다. 민영화 되면서 돈벌이가 되어가는 의료계의 어두운 그림자를 다차원적인 각도로 파고 들어가는 이야기. <라이프>가 그 전면에 내세운 인물은 구승효(조승우) 사장과 예진우(이동욱) 응급의료센터 전문의다. 

왜 하필 사장과 응급실 전문의를 대립시켰는가 하는 점은 그것이 병원을 바라보는 갈라진 두 관점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사장은 병원도 기업체나 다름없다 여기며 수익을 내기 위해 경영을 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필요하다면 수익을 낼 수 없는 응급실을 빈껍데기로만 남겨놓더라도. 반면 응급실 전문의는 갑자기 실려 온 환자들을 보며 만일 응급실이 사라진다면 그들은 어떻게 될까를 질문한다. 다른 병원으로 이송하는 과정에서 위급한 상황을 맞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구승효 사장은 지역 병원을 돕는다는 명분을 내세워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상국대학병원의 응급실, 산부인과, 소아과를 그 곳으로 파견근무 보내려 한다. 의사들이 전부 반발하고 나서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응급실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 이상엽(엄효섭) 암 센터장은 내심 기꺼운 마음이 있다. 그건 응급실에서 올라오는 ‘가망 없는 환자들’을 받는 일이 그들에게도 부담으로 작용해왔기 때문이다. 반면 장민기(최광일) 장기이식센터장은 정반대다. 응급실이 없다면 뇌사자를 받아 장기 이식을 할 수 있는 기회가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즉 자본주의 논리로 병원의 경영을 정상화하자는 사장과 맞서 ‘의사’로서의 자존심과 본분을 지킨다는 대의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 각자의 입장에 따른 이해득실을 고민하는 중이다. 선우창(태인호) 장기 이식 코디네이터는 아예 사장의 편에서 일한다. 해당 3과가 모여 파업 논의를 할 때 그는 그 회의내용을 전화로 사장이 들을 수 있게 해준다. 

김태상 부원장(문성근)은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인물이다. 어딘가 이보훈(천호진) 병원장의 죽음과 연관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인물은 의사들끼리의 회의에서는 파업을 내세우더니, 사장에게는 어쩔 수 없이 파업이 결정된 것처럼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갈 것이라 말하며 은근히 자신의 존재감을 내세우려 한다.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하려 함이다. 그 회의내용을 다 들은 사장은 그 속내마저 꿰고 있지만.

물론 <라이프>에도 죽은 이보훈 병원장과 가까웠던 예진우와 주경문(유재명) 흉부외과 센터장 같은 대의를 따르는 인물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구승효 사장이라는 외부의 충격에 의해 저마다의 욕망에 따라 꿈틀대기 시작하는 이 병원의 여러 인간군상의 모습이 사실은 이 드라마가 보여주려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대의와 현실의 싸움이지만, 그 사이에 끼어 있는 많은 인물들의 선택들이 이 싸움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 오리무중으로 만들어 이야기를 더 흥미진진하게 만든다. 

그런데 이 병원에서 벌어지는 대립과 그 사이의 많은 선택들로 인해 만들어지는 결과들은 마치 우리네 사회가 굴러가는 그 구조들을 입체적으로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사회의 현상들을 극단적인 생각들이 부딪치고 그래서 어느 한쪽이 이기고 지는 것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은 그 중간 어디쯤을 선택하는 많은 보이지 않는 다수들의 욕망이 움직이면서 그 많은 결과들이 나온다는 이야기다. 

<라이프>의 이야기는 명쾌한 고구마나 사이다만을 던져주지 않는다. 그것은 판타지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일이니 말이다. 현실은 훨씬 더 복잡하다. 그 복잡한 양상들을 단순화하지 않고 입체적으로 보여준다는 것. 그래서 <라이프>는 지금 우리네 드라마들이 늘 명쾌하게만 접근했던 그 틀에 박힌 방식을 깨나가고 있다. 그걸 깨야 비로소 판타지가 아닌 현실이 보이기 때문이다. 마치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사진:JTBC)

만일 <뉴스룸><그알>마저 없었다면...

 

2016년이 저물어가는 이즈음 국민들의 소회는 그 어느 때보다 남다르다. 마치 억눌렸던 무언가가 터져버린 느낌. 숨겨졌던 국정 농단의 실체들이 하나둘 드러날 때마다 느꼈던 그 허탈함과 참담함. 그래서 끝내 광장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던 절실한 마음들이 새록새록 가슴에 피어난다. 다시금 되돌려 생각해보면 이런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일들이 그저 묻혀버렸다면 그 끔찍함은 상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국정 농단 사태에 우리가 다시 들여다봐야 할 건 언론이다. 언론은 과연 제 기능을 하고 있었을까.

 

'뉴스룸(사진출처:JTBC)'

MBCKBS의 기자들은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공영방송으로서 자신들이 나서 국민의 눈과 귀와 입이 되어줬어야 하지만 그들은 그러지 못했다. 물론 이것이 일선 기자들 때문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그들 역시 목소리를 내려 했으나 윗선들이 그걸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바른 목소리를 내는 기자들은 인사상의 불이익을 받기도 했다. 그 결과는 광장을 취재하는 것조차 국민들의 비아냥을 듣는 위치에 서게 됐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JTBC <뉴스룸>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이렇게 꽉 막혀버린 국민의 시야를 제대로 문제를 들여다볼 수 있도록 열어준 고마운 프로그램들이다. 만일 이런 시국이 국민들 모르게 돌아가고 있는 상황에 <뉴스룸>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국민이 뽑아 놓은 대통령이 최순실 같은 비선실세에 의해 좌지우지됐고, 그것이 모두 그들의 사익을 위한 일들로 채워졌다는 건 얼마나 기막힌 일인가. 그걸 우리가 몰랐다면...

 

<그것이 알고 싶다>처럼 합리적 의심을 어떤 사안이든 관계없이 던지는 프로그램이 없었다면 또 어땠을까. 우리는 무엇이 문제인지, 어떤 것들이 의혹을 남기고 있는지 의식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거기에는 상식적으로 판단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없었을 게다. 그런 생각을 해보면 정말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국민을 위한다는 식으로 앞에서는 얘기하면서 사실은 세월호 참사가 보여주듯 국민은 아랑곳하지 않았던 그 일들이 묻혀졌다면...

 

<뉴스룸>은 올해의 마지막 앵커브리핑을 통해 머피의 법칙에 대해 이야기했다. 머피의 법칙은 나쁜 일이 연거푸 벌어진다는 뜻이 아니라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나게 돼 있다는 뜻이라는 것. 결국 국정농단이라는 엄청난 비리들은 결코 숨겨지지 못한 채 하나하나 실체를 드러나며 터지고 있는 중이다. 그것들은 감춰지려 해도 감춰질 수 없는 일들이었다. 결국 일어날 일들이 우리 앞에 일어나고 있는 것이라는 얘기다.

 

혹자들은 뉴스를 보는 것만도 분노를 참을 수 없고 심지어 너무나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 정도라고 말한다. 하지만 지난 14일 앵커브리핑에서 손석희가 소설가 박민규의 이야기를 빌어 말한 것처럼,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우리는 눈을 떠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눈을 뜨지 않으면 끝내 눈을 감지 못할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방송의 가장 큰 역할이 국민들의 알권리를 충족시켜주는 것이라면, 그 눈을 뜨게 해주는 건 다름 아닌 언론의 역할이다. 그런 점에서 올해 방송에서 가장 중요했던 프로그램을 꼽으라면 단연 <뉴스룸><그것이 알고 싶다>가 되지 않을까. 이 프로그램들 같은 국민의 진정한 눈이 되어줄 수 있는 언론이 내년에는 더 많아지기를 기원한다. 또한 공영방송이 공영방송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줄 수 있기를.

기억’, 시국이 만든 올해의 대중문화 키워드

 

잊지 않겠습니다.” 아마도 올해 대중문화의 키워드 하나를 꼽으라면 이 한 마디, ‘기억이 아닐까.

 

'그것이 알고싶다(사진출처:SBS)'

SBS <그것이 알고 싶다>두 개의 밀실편을 방영한 건 여전히 증폭되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의혹들 때문이다. 그 날 세월호 화물칸에 실린 제주해군 기지로 가던 철근 278톤 이외에도 무언가 숨기려하는 수화물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인양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에도 인양업체 선정과정에 남겨진 의혹들이 있었고 그것은 마치 인양을 하지 않으려는 의도이거나 혹은 늦추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처럼 여겨지게 만들었다. 그것이 결국 그 숨기려는 수화물과 관련이 있을 거라는 추측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인지 세월호를 바다 밑에 그대로 놔두려는 이들은 아마도 이 모든 걸 망각 속으로 묻어두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벌써 2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세월호는 바로 어제 일어난 사건처럼 대중들의 가슴에 달려 있는 노란 리본처럼 생생하다. 마치 망각으로 묻어두려는 시도는 오히려 대중들로 하여금 더더욱 기억하려는 노력으로 이어지고 있는 듯하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다시금 세월호의 기억을 끄집어내 여전히 지속되는 의혹들에 질문들을 던졌다.

 

지금 상영되고 있는 영화 <판도라>에서도 세월호의 잔상은 지울 수가 없다. 최악의 원전사고라는 소재를 가져왔지만 대중들이 이 영화를 통해 떠올리는 건 다름 아닌 세월호 참사의 그 7시간 동안 비워져 있던 콘트롤 타워의 부재다. 콘트롤 타워가 사라진 절망적인 상황에 평범한 서민들이 나서 스스로를 희생해 작은 희망의 불씨를 틔운다는 이야기는 지금의 촛불정국을 고스란히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거기서 우리는 또한 기억하라는 목소리를 이어간다.

 

세월호 참사가 얼마나 큰 트라우마를 우리네 대중들에게 남겨놓았는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은 그저 평범할 수 있는 드라마 한 편에서조차 기억의 문제가 거의 무의식적으로 다뤄져왔다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시그널>에 우리가 그토록 열광했던 이유가 뭔가. 미제사건으로 남아 점점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져가던 것들을 심지어 무전기 판타지를 이용해 과거를 되돌려 현재를 바꾸고픈 그 간절함을 모두가 공감했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뺑소니 사고로 아이를 잃은 후 이혼하고 로펌에 들어가 승승장구하던 한 변호사가 알츠하이머를 갖게 되면서 겪게 되는 사건들을 다룬 <기억>에서는 아예 제목이 그러하듯이, 정의를 덮어버리는 망각을 담보로 성공을 보장하는 우리네 부조리한 사회 시스템을 고발했다. 알고 보니 로펌 사장의 아들이 뺑소니범이었던 것. 변호사는 자신의 승승장구가 결국 아들의 죽음에 대한 기억을 지우는 대가로 얻어진 것이란 사실을 알고는 절망하고 뒤늦게라도 진실을 위해 싸워나간다.

 

올 여름 블록버스터 시장을 강타했던 <밀정><덕혜옹주>는 서로 정반대의 호불호를 낳으며 기억의 문제를 건드렸다. 모두 일제강점기를 다뤘지만 <밀정>이 이름도 모른 채 스러져간 의열단원들 같은 독립투사들에 대한 기억을 되새겨 호평을 받은 반면, <덕혜옹주>는 거꾸로 독립운동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덕혜옹주를 마치 독립투사처럼 호도함으로써 비판받았다. 올바른 기억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냈던 올 여름 블록버스터 시장의 풍경이다.

 

<무한도전> 같은 예능 프로그램은 산타아카데미같은 지금의 시의성에 맞는 아이템을 방영하면서도 그 빨간 산타 복장에 노란 리본을 다는 걸 잊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기억은 이렇게 르뽀에서부터 드라마, 영화, 예능에 걸쳐 광범위하게 올 한 해의 주요정서로 자리했다. 그리고 이건 제대로 된 진상 규명이 명명백백하게 이뤄지지 않는 한 치유되지 않는 트라우마로 남아 여러 대중문화 콘텐츠들의 소재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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