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에서 읽는 드라마업계 위기극복법

지금 드라마업계는 위기라는 말이 실감나는 상황이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제작비에 비해 장르화되고 공식화된 문법 속에서 차별화된 작품이 나오지 않는 현실 때문이다. 그래서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의 성공은 눈에 띤다. 금기를 깨고 거둔 성취이기 때문이다.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범죄 스릴러는 성공 가능성 낮다? 천만에!

종영한 MBC 드라마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는 범죄 스릴러다. 시청률이 과거만큼 중요한 지표는 아니지만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는 지상파에서 스릴러는 그다지 유리한 장르는 아니다. 특히 요즘처럼 이른바 고구마-사이다의 이분법으로 드라마를 선택하는 경향에서는, 뒷부분에 이르러야 겨우 사건의 진상에 도달하고, 진범을 잡는 사이다 전개가 이어지기 마련인 범죄 스릴러는 불리하다. 사건이 터지고 시청자들을 복잡한 미로 속으로 빠뜨리는 그 과정은 자칫 긴긴 고구마 전개처럼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역시 초반 기대감이 그리 높진 않았다. 워낙 주인공인 프로파일러 장태수(한석규)가 처한 상황이 비극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장태수는 과거 어린 아들을 잃었고 그 때 함께 있었던 장하빈(채원빈)을 의심했다. 평범하지 않은 딸이었기 때문이다. 사이코패스는 아니지만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 딸이었다. 하지만 이 의심 하나는 그의 가족을 파탄지경으로 몰고 갔다. 이혼한 아내는 자살을 했고, 딸은 장태수와는 말도 섞지 않은 채 엇나가기 시작했다. 딸에게서 무언가 일을 꾸미는 듯한 불안감을 느끼던 와중, 장태수는 수사하는 사건에서 자꾸만 딸의 흔적이 발견되는 일을 겪는다. 프로파일러로서 사건의 진실만을 냉철하게 바라봐야 하지만 그 정황과 증거들이 딸을 범인으로 지목하는 상황 속에서 장태수는 딜레마에 빠진다. 

 

이런 비극이 가진 무거움에도 불구하고 첫 시청률이 5.6%(닐슨 코리아)로 시작한 건 한석규 같은 대배우의 아우라가 작용한 면이 있었다. 실제로 그는 초반 시청자들의 마음을 장태수라는 인물에 몰입하게 만드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다. 스릴러의 고구마적인 성격 때문에 2회에 4.7%로 떨어졌지만, 한석규의 차분하면서도 고통스러워하는 아버지이자 프로파일러인 인물의 심리를 제대로 표현해낸 연기는 시청자들의 시선을 붙잡는 힘을 발휘했다. 그렇게 시청자들을 그 미로의 덫에 빠뜨리며 점점 텐션을 높인 드라마는, 갈수록 반전의 반전을 이어가며 열광적인 반응들을 이끌어냈고 마지막회에 이르러서는 최고 시청률 9.6%의 높은 수치로 마무리 됐다. 

 

무엇이 그 저력이었을까. 그건 스릴러라 처음부터 폭발적인 힘을 발휘하기는 어렵지만 차곡차곡 빌드업해나가다 보면 끝내 폭발력을 발휘할거라는 그 뚝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런 흐름은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바로 직전에 방영됐던 변영주 감독의 범죄 스릴러 ‘백설공주에게 죽음을-Black Out’에서도 똑같이 발견된 결과였다. 첫 회 2.8%로 시작한 드라마는 마지막회 8.8% 최고시청률로 마무리됐다. 스릴러가 고구마 전개라 안되는 것이 아니라, 차곡차곡 빌드업을 제대로 했는가 아닌가가 성패의 관건이라는 걸 이 두 편의 범죄 스릴러는 수치로 확인시켜줬다.

 

신인 감독, 작가는 어렵다? 글쎄...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가 더더욱 놀라운 건 이 대본을 쓴 한아영 작가나 작품을 연출한 송연화 감독 모두 신인 작가, 감독이라는 사실이다.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는 한아영 작가가 2021년 MBC 드라마 극본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은 작품이다. 본래는 ‘거북의 목을 노려라’였지만 제목만 바꿨다. 신인이지만 워낙 촘촘한 심리변화와 반전의 묘미가 가득한 정교한 플롯으로 심사위원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고 한다. 또 이 작품을 연출한 송연화 감독은 2021년 방영됐던 ‘옷소매 붉은 끝동’에서 경험을 쌓고 그 다음해에 4부작 ‘멧돼지 사냥’을 연출했다. 아직까지 신인이라고 해도 무방한 경력의 감독인 셈이다. 

 

신인 작가의 대본에 아직은 경험이 많지 않은 감독에게 10부작의 범죄 스릴러를 맡겼다는 건 이 작품이 얼마나 도전적이었는가를 잘 말해준다. 드라마업계에서는 파격적인 선택인데다, 요즘처럼 업계가 힘든 상황에서는 더더욱 어려운 선택일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이러한 도전적인 선택은 오히려 식상함을 깨고 참신한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가 되어주었다. 

 

범죄 스릴러지만 가족이라는 코드를 넣어 치밀한 심리 대결이 펼쳐지는 색다른 서사가 시청자들을 열광케 했다. 그리고 의심이 만들어낸 파국 속에서도 끝까지 진실을 찾아가고 나아가 불신했던 자신의 과오를 뉘우침으로써 가족이 신뢰를 찾아가는 그 과정이 작위적인 느낌없이 펼쳐졌다. 여기에 송연화 감독의 ‘미친 디테일’과 심리 묘사가 담긴 연출이 빛을 발했다. 자칫 시청자들을 답답하게 만들 수도 있는 어두운 연출과, 반복되는 미장센을 통한 심리 묘사는 뚝심 있게 밀고 나감으로써 끝내 빌드업의 카타르시스를 만들어냈다. 

 

신인이어서 리스크가 크다는 드라마업계의 오랜 금기는 이 작품에서는 오히려 깨버려야할 어떤 틀에 박힌 공식이라는 걸 드러냈다. 거꾸로 이야기하면 중견이어서 갖게 되는 리스크 또한 클 수 있다는 걸 이 작품은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도망치고 추격하는 범죄 스릴러의 그 흔한 공식은 이제 시청자들도 식상해하는 것이 아닌가. 또 어디서 본 듯한 적당한 고구마와 사이다를 반복하는 연출방식도 마찬가지다.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는 그래서 이러한 금기로 여겨진 틀들이 어쩌면 우리네 드라마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일 수 있다는 걸 드러내줬다. 

 

한국 드라마 업계의 위기, 결국 작품으로 돌파해야

최근 한국 드라마 업계는 ‘위기’라는 말이 일상어가 되었다. K드라마의 위상이 높아졌지만, 그만큼 제작비도 급상승함으로써 제작하면 할수록 손실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높아진 제작비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글로벌 시장을 겨냥해야 하지만, 글로벌에서 통하는 배우들도 한정적이다. 출연하기만 해도 해외 판권이 팔리는 배우들이 있는 반면, 연기력으로는 국내에서 누구나 인정받지만 글로벌 시장에서는 팔리지 않는 배우들도 적지 않다. 이러한 양극화는 출연료의 양극화도 만들어내면서, 전반적인 제작비 상승을 부추긴다. 이건 물론 액수의 차이는 있지만 스타 작가나 스타 연출자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처럼 해외에서 이른바 ‘팔리는 배우’를 세우고 들어가는 제작은 작품의 부실을 가져올 위험성이 있다. 실제로 과거 2000년대 초반 ‘겨울연가’가 욘사마 열풍을 타고 한류 바람을 일으켰을 때, 몇몇 스타 배우들을 앞세운 기획들이 연달아 실패하는 일들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스타 배우에 집중한다는 건, 제작비의 쏠림 현상도 만들어 상대적으로 작품의 완성도는 부실하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최근 글로벌 OTT를 상대로 이른바 잘 나가는 제작사들이 내놓은 일련의 작품들이 들인만큼의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하고 있는 건 어쩌면 이러한 기형적 흐름이 ‘본질’에 충실하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가 도드라져 보이는 건 그래서다. 특정 장르가 어렵다거나 혹은 신인은 안된다는 관행들을 깨고 그것이 오히려 성공 가능성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어서다. 결국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은, 본질로 다시 돌아가는데서 나올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재기발랄한 신인들을 찾아내 작품 본질에 집중할 것인가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글:시사저널, 사진:MBC)

'노는 언니'가 그저 놀기만 해도 다른 건 박세리가 있어서다

 

E채널 예능 <노는 언니>에서 생애 처음 캠핑을 간 언니들이 캠프파이어를 하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조심스럽게 스포츠 선수들의 연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 자리라면 보통 연애 이야기가 나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스포츠 선수이기 때문에 그 얘기를 꺼내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자, 박세리가 한 마디를 툭 던진다.

 

"근데 선수생활들 오래 했잖아. 솔직히 남자친구 안 사귀어봤다 그러면 거짓말이겠지. 솔직히 (대중들은)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많지 (그런데) 선수들은 아니거든. 그런데 보는 시선들은 그렇게 생각 안하는 거지. 운동할 때 이성한테 관심 있으면 그만큼 운동하는데 집중 안되고 훈련하는데 지장 있고 그렇게 얘기하지만 절대 안 그렇잖아."

 

박세리의 이야기는 다른 언니들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김은혜는 선수 시절에 이성을 만나고 있었는데 감독님이 알아서 그 친구한테 직접적으로 돌려 헤어지라고 해서 결국 헤어졌다는 이야기였다. 그 말을 들은 친구 한유미는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박세리의 한 마디가 더해진다.

 

"스트레스가 많이 받는데 그게 반대로 서로 의지하면서 스트레스가 더 풀리게 되니까 집중하는데 있어서 더 좋지." 박세리는 연애가 선수생활에 더 이롭다는 자신의 소신 있는 이야기를 전한다. 어찌 보면 스포츠인들 그것도 여성들에게 특히 편견의 시선으로 보곤 했던 이성문제가 잘못된 것이 아니고,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걸 그는 말하고 있었다.

 

<노는 언니>가 그저 언니들이 모여 노는 것만을 보여줬다면 이만한 대중들의 관심을 얻지는 못했을 게다. 하지만 박세리가 가끔씩 툭툭 던지는 말들 속에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스포츠인 특히 여성 스포츠인들이어서 겪어야 했던 일들은 이들이 '노는 행위'에 남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박세리는 연애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슬쩍 농담을 섞어 이 프로그램이 자신을 위해 그런 걸 해줘야 하지 않겠냐는 말을 건넨다. 만일 이것이 실제로 방송화 된다면 그것 또한 그저 연애를 담는 소재 그 이상의 의미와 가치를 더하게 될 것이다.

 

<노는 언니>는 못 놀아본 여성 스포츠 스타들이 이제 좀 놀아보자는 콘셉트로 '생애 최초의 캠핑' 같은 시도들을 담아내고 있지만, 여성이고 스포츠 선수들이었다는 공통점이 꺼내놓는 특별한 대화가 의외로 묵직한 울림을 담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 날이 왔을 때 운동 또한 병행해야 하는 그 고충을 에둘러 말하지 않고 당당하고 솔직하게 꺼내놓는 이들의 모습은 여성 스포츠 선수들의 삶에 대해 좀 더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또 늘 체중관리에 신경 쓰며 마음껏 먹지도 못했던 선수 시절의 이야기는, 이들이 캠핑에서 온전히 먹고 또 먹는 시간을 만끽하는 모습에 남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애초 <노는 언니>는 처음 만나 고깃집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부터 스포츠 선수로서 살아오며 보통 사람들처럼 하지 못했던 것들이 의외로 많다는 걸 드러낸 바 있다. 곽민정은 늘 훈련이 일상이었던 자신의 삶이 '노잼'이고 그래서 친구가 없다고 했고, 정유인은 결혼하면 아예 수영선수들은 계약을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임신하게 되면 훈련을 받을 수가 없어서란다. 펜싱 선수였던 남현희 역시 자신이 결혼한 선수로는 처음이라 잘 해서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남현희는 아이들을 가르치며 자신이 갖지 못했던 "여유"를 가지라고 한다고 했고, 음료나 음주 역시 즐기는 선수들도 있었지만 박세리는 선수 시절 탄산음료조차 먹지 못했다고 했다. 운동선수들은 금욕적인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게 당연한 선수시절의 분위기였다는 것. 하지만 박세리는 솔직히 음주가 괜찮다고 생각한다 말했다. 운동을 할 때는 하고 풀 때는 풀어야 더 오랫동안 자기 관리가 가능하기 때문이란다.

 

<노는 언니>는 캠핑을 떠나 하루 종일 먹고 또 먹으며 말 그대로 노는 언니들의 시간들을 담아내고 있다. 하지만 그 노는 행위가 남다른 가치와 의미로 다가오는 건 여성 스포츠선수들로서 겪어왔던 일들이 그 밑바닥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박세리의 에둘러 말하지 않는 묵직한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그래서 <노는 언니>의 중요한 공기를 만들어낸다. 시청자들이 기꺼이 이 언니들의 놀이를 응원하게 만드는.(사진:E채널)

‘예쁜 누나’, 팍팍한 일상 손예진, 그래서 더 간절해지는 설렘 정해인

어째서 그저 밥 한 끼를 같이 먹고 평범한 농담을 나누며 집까지 바래다주는 그 일상을 보여줄 뿐인데 이토록 설레는 걸까. 새로 시작된 JTBC 금토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윤진아(손예진)와 서준희(정해인)는 누나 동생의 관계처럼 등장하지만 벌써부터 왠지 모를 멜로의 향기가 느껴진다. 그들이 함께 있을 때 보이는 눈빛과 작은 손짓들까지 누나 동생의 관계 그 이상의 무언가를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이야기는 그 겉면만 보면 그리 특별한 일들이 벌어졌다고 보기 힘들다. 즉 남자친구와 헤어진 윤진아와 그를 위로해주는 절친 서경선(장소연) 그리고 그의 동생 서준희가 자연스럽게 누나 동생 관계로 엮어져 있고, 윤진아와 서준희의 관계가 조금씩 발전해가는 모습을 보여줬을 뿐이다. 흔히 멜로에서 보게 되는 우연적이거나 운명적 만남 같은 것도 없고, 그렇다고 신데렐라와 왕자님의 만남도 없다. 그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날 법한 흔한 만남 같은 그런 평범한 이야기가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것이 남다른 설렘으로 다가오게 되는 건 윤진아가 겪고 있는 일상의 피로함이 안판석 감독 특유의 디테일로 살아있기 때문이다. ‘만남이 곤약 같다’며 이별을 통보하는 남자친구에, 가맹점 관리를 하며 벌어지는 업무 스트레스들과 술자리에서 일상으로 벌어지는 성희롱들까지 마치 우리가 겪는 현실을 그대로 가져다 놓은 듯한 디테일들이 담기면서 윤진아가 가질 삶의 피로를 공감하게 된다. 그런데 그에게서 느껴지는 공감대와 그에 대한 일종의 연민 같은 시선을 고스란히 대리해주는 인물이 바로 서준희다. 

오픈 기념 선물이 도착하지 않아 가맹점으로부터 호된 곤욕을 치른 윤진아는 사실 그 실수가 남호균 이사(박혁권)가 결재를 하지 않아 생긴 일이었지만 그걸 굳이 드러내지 않고 자신의 잘못으로 떠안았다. 그것이 회사생활이기 때문이다. 더러워도 버티기 위해서는 상사의 실수를 덮고 자신의 실수로 떠안는 것.

그런데 이렇게 마음이 상한 윤진아에게 은근슬쩍 다가와 어깨에 손을 얹어주는 서준희가 있다. 밥 사달라는 핑계로 만난 윤진아를 만난 서준희는 점심에 “금기를 깬다”며 와인을 시켜 마시고 계산도 자신이 한다. 그러니 지친 윤진아는 금세 점심 한 끼에 마음이 풀어진다. “덕분에 맛있게 분위기도 밥도 잘 먹었다. 금기도”라는 윤진아의 말에 “맛을 봤으니 윤진아 이제 큰일 났다”고 하는 서준희의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건 그의 존재가 윤진아에게 이미 특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상사들의 성희롱이 난무하는 회식 자리의 피곤을 그대로 떠안고 다시 회사로 돌아와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일을 처리하기 위해 또 일을 하는 윤진아는 편의점에서 산 맥주를 마시며 노래를 틀어놓고 춤을 춘다. 마침 클럽에 놀러간다던 서준희의 이야기가 마음 한 구석에 남았을 테고, 그렇게라도 자신을 위로하는 몸짓을 해보고 싶었을 터다. 그런데 그 순간 윤진아를 다시 찾아온 서준희가 그의 춤추는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짓는다. 그저 시선을 주고 따뜻한 미소를 짓는 것뿐이지만 그 장면에 시청자들은 설렐 수밖에 없다. 피곤한 일상을 누군가 바라봐주는 그 따뜻한 시선이 있다는 사실이 주는 설렘이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는 그 제목처럼 멜로가 일상에 닿아 있다. 그들의 멜로는 엄청난 위치에 있는 이들이 보여주는 판타지적인 사랑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루어질 수 없어 목숨을 거는 운명적 사랑도 아니다. 그저 ‘밥 잘 사주는’ 일상에서부터 비롯되어 생겨나는 사랑의 감정을 잔잔한 디테일 속에 담아낼 뿐이다. 그래서 더더욱 그 설렘은 깊어진다. 손에 닿을 듯한 일상의 공감이 보다 강력한 현실감을 주기 때문이다.(사진:JTBC)

정치발언에 대한 금기시, 그것이 더 정치적이다

 

김무성 대표 사위 A, 마약 15차례 투약에도 집행유예,’ 이 한 줄의 뉴스 제목만 봐도 보통 힘없는 서민들은 한숨부터 쉬게 된다. 도무지 살길이 없어 물건 하나를 훔치다 잡혀 몇 년 동안 징역살이를 했다는 어떤 생계형 범죄자의 이야기가 그 옆에서 솔솔 피어나온다. <용팔이> 같은 드라마나 <베테랑> 같은 영화를 보다 보면 이게 과연 허구가 맞나 싶을 때가 많다. 돈이 있으면 죽을 사람도 살려내지만, 돈이 없으면 산 사람도 죽어나가는 현실. 이게 어디 허구의 이야기인가.

 


'히든싱어(사진출처:JTBC)'

그 한 줄의 뉴스 제목을 끌어와 이승환은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겼다. ‘저희 아버지께서는 제게 감기약도 조심하며 먹어라. 그것 가지고 트집 잡으면 어떡하냐고 하시는데...’ 아마도 이승환이 남긴 이 한 줄의 글귀에 고개를 끄덕인 분들은 저 허구가 현실이 되어버린 세상을 실감하시는 분들일 것이다.

 

연예인은 작은 꼬투리 하나만 잡혀도 여기저기 씹어댄다. 그럴 법하다.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살아가는 존재이니 그 실망감을 대중들은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치인에 대한 실망감을 표현하는 일에는 으레 색안경을 끼고 쳐다본다. 마치 그 발언 하나가 그 사람의 정치색을 드러내는 것처럼 바라보고, 나아가 그런 이야기가 반복되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얘기까지 나온다. “너 정치 할 거냐?”

 

연예인 이야기는 시시콜콜 그렇게들 하시면서 왜 정작 먹고 사는 아니 죽고 사는 정치에 대한 이야기는 금기시하는 겁니까? 누군가가 그러길 바라고 그렇게 만들어 놓았다는 생각은 안드십니까?’ 이승환이 페이스북에 남긴 이 글은 우리가 자꾸만 오해하고 있는 정치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에 대한 일침이다.

 

그는 이어 이런 이야기도 남긴다. ‘자꾸 제게 정치하려고 그러냐는 분들... 상식에 어긋나는 일에 대해 제 상식을 얘기하면 정치인 하려고 그러는 거란 편협하고 조잡한 생각은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겁니까? 정치인 단 한 명도 모르고 혹여라도 연락 오시는 분들, 다 정중히 거절합니다.’ 이승환이 페이스북 등을 통해 소신발언 하는 것에 대한 이상한 시선들에 대해 선을 그은 것.

 

사실 정치라고 하면 우리는 특정한 사람들이 하는 특정한 짓거리라는 이미지를 먼저 떠올린다. 그도 그럴 것이 정치인들이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기던 장면이란 국회에서 하라는 일은 안하고 서로 드잡이를 하며 세력 다툼을 하는 모습이다. 또 선거철에 반짝 나타나 마치 모든 걸 다 해주겠다는 듯이 고개를 숙이고는 나중에 당선되고 나면 언제 그런 얘기를 했느냐는 식으로 말을 바꾸는 모습이다. 공인으로서 부적절한 일을 하고도 마치 아무 죄도 없다는 듯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심지어 미소까지 지으며 여유 있게 질문에 답하는 모습에 서민들은 깜박 속기도 한다. 정말 잘못이 없나?

 

하지만 이승환이 얘기하듯 정치란 그렇게 국회에만 있는 게 아니고 선거철에만 반짝 나타나는 게 아니며 물의를 빚고도 뻔뻔한 정치인들의 얼굴에만 있는 게 아니다. 우리가 깨어나고 먹고 자고 일하고 숨 쉬는 모든 게 사실은 다 정치다. 다함께 잘 살지 못하면 누군가는 소외되거나 밀려난 삶에 비참하게 사라지는 게 지금 우리네 연결된 사회의 모습이다. 우리가 점심에 어디서 누구와 무얼 먹는가조차도 정치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니 정치에 대해 이승환이 아니라 저 길거리에 내몰린 노숙자라도 할 말을 하는 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그건 이승환이 말하듯 상식에 해당한다. 연예계 이야기? 그것 역시 정치적이지 않은 것이 없다. 연예계라고 특정 부류로 선을 그어놓고 마치 가벼운 집단들의 대명사처럼 치부하고 있지만 그들은 대중문화에 종사하는 이들이다. 대중들의 문화를 함께 만들어가는 그들이 왜 대중과 무관할 수 없는 정치에 대한 소신이 없겠는가. 그건 없어서도 안 되는 일이다.

 

정치를 동떨어진 세계로 나누어놓는 일들이나 정치 발언에 대한 금기시는 그래서 더더욱 정치적인 일이다. 그것은 정치에 대한 발언을 무섭거나 더러워서안하게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정치에 대해 소신 발언을 할 수 있는 연예인, 아니 대중문화 종사자들은 그래서 더더욱 많아져야 한다. 그 정치적 소신을 자신들이 하는 일에 담아낼 수 있다면 더더욱 좋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이승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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