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도 어쩔 수 없나, 기획은 좋은데 내용은 영

 

애초 기대감은 꽤 컸다. 하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기대감이 꺾이더니 이내 배신감이 느껴진다. 최근 tvN에서 주중에 방영되고 있는 두 드라마, <위대한 쇼>와 <청일전자 미쓰리> 이야기다. 그간 어느 정도 완성도에 대한 신뢰감을 갖게 된 tvN 드라마지만, 이 두 작품을 보다보면 tvN도 어쩔 수 없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위대한 쇼>는 시작이 괜찮았다. 위대한(송승헌)이라는 승승장구하던 젊은 정치인이 갑자기 나타난 아버지 때문에 ‘국민패륜아’가 되어 낙마하고, 다시 정치일선에 복귀하기 위해 자신의 딸이라며 나타난 한다정(노정의)과 아이들을 부양하는 ‘정치쇼’를 한다는 설정이 흥미로웠다. 물론 그 정치쇼는 점점 진짜 가족의 면면을 찾아가게 되는 것이지만.

 

정치쇼와 가족 소동극을 엮어 지금의 달라진 대안가족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또 중간 중간 미혼모 문제나 낙태, 학교 내 집단 따돌림 문제 같은 사안들을 담아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위대한 쇼>는 어딘지 이야기가 진척되어간다기보다는 적당한 위기와 쉬운 해결을 반복하는 지지부진함으로 빠져들었다. 공천을 받느냐 못받느냐 하는 상황과 한다정이 친딸이 아니라는 일종의 ‘출생의 비밀’ 코드 같은 걸로 한 회가 채워진다. 코미디라고 해도 그 내용에 있어서는 치열해야 할 텐데 드라마가 너무 한가롭다는 느낌마저 든다. 결국 기대감은 점점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청일전자 미쓰리>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애초 예고편을 봤을 때만 해도 직장 내 말단 경리직원 이선심(이혜리)이 사장이 되어 벌어지는 시원한 반전 코미디 드라마인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시작되자 이 드라마는 갑질에 망하기 일보직전에 처한 청일전자 사람들의 짠내 가득한 이야기로만 채워진다. 그저 착하기만 한 선심이 이 위급한 회사를 의외의 능력을 발휘해 살려낼 거라는 기대감을 갖기도 어렵게 됐다.

 

그나마 믿고 있던 유진욱 부장(김상경)도 결국 사표를 썼다. 그는 다시 돌아올 것으로 보이지만, 그가 사표를 쓰게 되는 과정이 한 회로 거의 채워졌다. 무언가 새로운 반전을 기대했던 시청자들은 또 그렇게 한 회가 지나가는 걸 보며 애초 <청일전자 미쓰리>라는 드라마를 오인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이건 사이다 코미디가 아니라 고구마만 가득한 지지부진한 드라마라고.

 

어째서 tvN처럼 괜찮은 기획력의 드라마들을 계속 포진해온 채널에서 연달아 이런 드라마들이 나오게 된 걸까. 그건 기획만 괜찮고 내용은 그걸 따라가 주지 못하는 시스템의 문제는 아닐까 싶다. 물론 최근 들어 드라마에서 기획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하지만 그 기획도 결국 작품으로 내용이 제대로 채워지지 않으면 완성도 높은 결과물이 나오기 어려운 일이다.

 

애초의 기대감이 컸기에 실망감이 나아가 배신감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일 게다. tvN 드라마가 그 브랜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제 기획만이 아닌 내실을 다질 수 있는 내공 있는 작가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래도 2~3% 정도로 평타를 치는 시청률이 나온다고 만족할 일이 아니라.(사진:tvN)

장르물의 선구자였던 SBS드라마, 잇따른 부진의 이유

물론 지상파 드라마들의 시청률이 10% 넘기가 어려워진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어느 특정 채널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그만큼 종편과 케이블까지 더해 늘어난 채널수와, 점점 달라지는 드라마 시청패턴(본방사수란 옛말이 되어가고 있다)으로 인해 전반적인 시청률 하락은 이제 지상파 드라마들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때 한국형 장르물들을 대거 쏟아내며 지상파 드라마의 권좌에 올랐던 SBS 드라마가 최근 들어 뚜렷한 추락을 보이고 있는 건 눈에 띄는 일이다. 현재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들, 월화에 방영되고 있는 <기름진 멜로>가 5%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고, 수목에 방영됐던 <스위치>가 6,7%의 시청률에 머무른 데다 새롭게 편성된 <훈남정음>도 5.3% 시청률을 기록했다. 주말드라마로 새롭게 들어온 <시크릿 마더> 역시 6.6% 시청률이다. 전반적인 드라마들이 모두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셈이다. 

시청률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최근 장르물에 있어서도 과거만큼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한번쯤 생각해볼 문제다. <스위치>가 장근석을 주연으로 내세웠지만 지나치게 가벼운 틀을 가져와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은 바 있고, <리턴>은 방영 도중 연기자가 바뀌는 파행을 겪었다. 제목과 달리 의문의 일패를 당한 <의문의 일승>이나 제목처럼 너무 나가버린 <이판사판> 같은 드라마들이 모두 실패의 고배를 마셨다는 건 SBS 드라마로서는 뼈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잇따른 부진을 만들어낸 걸까. 가장 큰 건 tvN이나 JTBC처럼 채널이 다변화되고 드라마가 설 자리가 늘어나면서 작가들의 이탈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과거 <연인> 시리즈부터 SBS에서 뼈가 굵어온 김은숙 작가가 KBS에서 <태양의 후예>를, 또 tvN에서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를 연달아 히트시켰고, 역시 SBS에서 스릴러 장르로 주목받았던 김은희 작가가 tvN에서 <시그널>로 드디어 큰 성공을 거뒀으며, 역시 SBS 작가군의 한 명으로 여겨졌던 소현경 작가도 KBS에서 <황금빛 내 인생>을 성공시켰다. 

물론 작가들은 기본적으로 프리인 경우가 많고, 또 지금의 드라마판은 외주제작이 하나의 틀로 잡혀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이런 결과가 나온 건 방송사가 그 작품이나 작가를 잡지 못해서 생겨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작품이나 작가를 잡지 못하게 되는 이유는 원고료가 너무 비싸 채산성이 없어 포기하는 경우도 있고, 작품을 두고 벌어지는 작가와의 갈등 때문에 빚어지는 경우도 있다. 어떤 경우에는 방송사가 가진 이미지 때문에 자신의 작품을 그 방송사와 하기를 꺼리는 작가들도 있다. 

결과적으로 보면 SBS드라마의 전반적인 부진은 ‘기획’의 부진이고, 거기에는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투자’의 부진이라는 점이다. tvN처럼 공격적인 투자를 하는 방송사 앞에서 작가들의 이탈(?)이 많아지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SBS 역시 시대의 변화를 재빨리 읽어내지 못한 부진한 기획의 책임을 피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한때 이른바 복합장르물을 통해 한국적 장르물의 선구자처럼 여겨져왔던 SBS 드라마지만 이제 미드 등을 통해 장르물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이 본격 장르물을 찾기 시작했다는 걸 SBS 드라마국은 자꾸만 놓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머뭇댈 것이 아니라 과거처럼 과감한 기획과 투자가 이뤄져야 지금의 위기를 넘어설 수 있다는 걸 깊이 생각해봐야할 시점이다.(사진:SBS)

‘무도’ 미래예능연구소, 어째서 미래가 잘 안보였을까

이건 현 예능에 대한 고도의 비판인가 아니면 그저 안이한 기획의 결과인가.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이 새로이 시작한 ‘미래예능연구소’ 특집은 한 공간에 11명의 피실험자들을 모아놓고 주어진 미션을 수행하며 그들을 관찰하는 콘셉트로 시작했다. “미래의 웃음을 연구한다”는 기치를 내걸었지만 특별한 그 실험 상황 속에서 저마다 드러내는 본능과 속내를 관찰하는 쪽에 더 무게중심이 실렸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별것도 아닐 수 있는 이름 대신 사용될 1번부터 11번까지의 등번호를 선택하는 과정에서부터 출연자들은 신경전을 벌였다. 그것이 향후 서열이 될 수도 있다는 예상 때문이었다. 서열을 정하기 위해 한바탕 벌인 닭싸움에서는 연합과 배신이 계속 이어졌다. 이른바 땅꼬마 유니언으로 연합한 하하, 양세형, 딘딘, 유병재가 그 연합과 배신의 주역들이었으나 그들이 급기야는 서로 싸우기 시작하면서 가만히 멍하게 서 있기만 했던 크러쉬가 1번을 차지했다. 

그리고 이어진 건 피, 땀, 눈물을 모으는 미션. 이 미션에는 100만원의 참가비가 걸려 있었다. 저마다 땀을 흘리기 위해 운동을 하고 감정을 짜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역시 이어진 건 난투극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저녁 시간대에 땀과 눈물을 모으는 미션은 자칫 시청자들이 보기에 불편한 장면들일 수 있었다. 웃음을 위해 시도하는 미션들이었지만 그래서 억지로 짜내는 땀과 눈물은 웃음마저도 너무 억지로 짜낸 듯한 인상을 주었다. 

다음으로 이어진 미션은 ‘먹방의 효과’에 대한 실험이었다. 즉 짜장면을 먹는 먹방을 보고는 짜장면 앞에서 30분을 먹지 않고 버티면 전원이 음식을 제공받는 미션이었지만, 모두가 예상했을 것처럼 이기주의가 미션을 망치고 순식간에 짜장면이 사라져버리는 아수라장이 연출됐다. 그 이기주의의 주인공은 역시 누구나 쉽게 예상했을 박명수였다. 

그리고 반복된 김치찜, 라면을 두고 벌어지는 먹방 실험. 하지만 실험이라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한 번 무너져버린 신뢰는 더 쉽게 무너졌다. 나중에는 그 뜨거운 라면을 냄비째 들고 뛰고 맨 손으로 집는 등의 자칫 위험할 수 있는 장면도 이어졌다. 배정남의 반전 배신이 웃음을 주었지만 미션 자체는 그리 신선한 느낌이 없었다. 그건 결국 ‘미래예능연구’라는 포장을 했을 뿐, 또 다른 먹방처럼 느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 미래예능연구소 특집의 첫 번째 방영분만을 두고 보면 ‘서열게임’, ‘땀, 눈물 짜내기’, ‘먹방 게임’이 그 내용이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런 소재는 ‘미래예능’이라고 붙이기에는 너무나 과거 예능들의 반복이 아닐까. 늘 게임을 다루는 예능 프로그램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놓는 미션들이 바로 이 서열게임이고 억지상황에 땀과 눈물 짜내기이며 먹방이 아닌가. 

물론 후반부에 어떤 반전이 있을 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이러한 ‘과거 예능’들의 식상함을 오히려 비판하고 풍자하기 위한 밑그림이 전반부의 내용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몇 회에 나뉘어 방영되는 예능 프로그램은 그 회차분 자체만으로도 시청자들이 충분히 즐길 수 있을만한 내용이 되어야 마땅하다. 그런 점에서 보면 적어도 이번 미래예능연구소 특집의 전반부는 제목이 만들어내는 기대에 못 미치는 아쉬움이 남는다. ‘미래예능연구소’라고 했지만 미래보다 과거의 반복이 더 많이 보였으니.

기획 포인트 많은 <혼술남녀>, 그래서 메시지는?

 

tvN <혼술남녀>의 박하나(박하선)노그래라 불린다. 노량진 학원가에 들어온 장그래라는 의미다. 그녀가 공무원 수험생들을 위한 이 학원가에서 살아가는 모습은 저 <미생>의 장그래처럼 짠하다. 자신을 종합반에 넣어준 스타강사 진정석(하석진)가능성을 보고넣어줬다고 하자, 무얼 시킬 때마다 가능성 있는 제가라는 말을 수식어처럼 달고 말한다.

 

'혼술남녀(사진출처:tvN)'

그녀를 노그래라는 캐릭터로 세운 건 다분히 의도적이다. <미생>이 그러했듯이 직업의 세계에서 힘겨운 현실을 살아내는 주인공을 내세우기 위함이다. 그래야 보통의 샐러리맨들의 공감대가 커질 테니까. 게다가 그를 이끌어주는 상대로 진정석이라는 돈 잘 벌고 스펙 좋고 잘 나가는 남자를 세워둔 것도 일에서는 물론이고 사랑에 있어서도 어떤 판타지를 제공하려는 포석이다.

 

하지만 <혼술남녀>에는 또 하나의 기획 포인트가 있다. 그것은 혼술(혼자 마시는 술)’이라는 최근 나홀로족들이 늘어나면서 생겨난 새로운 나홀로 문화가 들어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시작 부분에 항상 진정석이 혼술을 하며 왜 자신이 혼술을 하고 그게 왜 좋은지에 대한 내레이션이 들어간다.

 

또한 이 드라마에는 학원 강사들이 치열하게 살아가는 직업의 세계만이 아니라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취준생들의 공부만이 살길인 그 현실 이야기도 들어가 있다. 물론 이 이야기는 학원 강사와 자연스럽게 연결되지만 그것이 보여주는 공통의 주제의식 같은 것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통일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혼술남녀>는 여러 가지 트렌디한 요소들을 한 드라마 곳곳에 세워두었다. 물론 드라마가 다양한 측면의 이야기들을 던지는 건 나쁜 일이 아니다. 그만큼 이야기가 풍부하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이 많은 이야기들이 하나로 엮어지지 않으면 너무 산만해질 수 있는 단점이 있다. <혼술남녀>는 그런 점에서 보면 샐러리맨의 힘겨운 현실을 넣고 있지만 그것이 <미생>만큼 강렬하게 다가오지는 않고, ‘혼술문화를 담고 있지만 그 나홀로 문화가 어떤 함의를 갖고 있는지가 드라마의 메시지로서 전면에 등장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취준생들의 이야기 역시 하나의 에피소드로 등장할 뿐, 전체 이야기의 맥락으로 묶어지지는 않고 있다.

 

이렇게 되면 남는 건 멜로뿐이다. 결국 박하나와 진정석이 일로 엮어지다가 사랑하게 된다는 그런 이야기. 그것은 아마도 혼술하던 진정석이 박하나와 함께 술을 마시게 되는 그런 그림으로 귀결되지 않을까. 그런데 이것은 애초에 혼술이라는 새로운 나홀로 문화를 제시할 때 시청자들이 기대했던 그림은 아닐 것이다. 진정석이라는 혼술하는 캐릭터가 어딘지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합리적인 개인주의자로서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는 새로운 인간형이라는 것이 오히려 시청자들이 바라는 이야기다.

 

<혼술남녀>에서 학원강사 민진웅은 학생들을 위해 항상 새로운 패러디를 준비한다. <베테랑>의 유아인을 흉내 내기도 하고, <태양의 후예>의 송중기를 따라 하기도 하며 심지어 <곡성>의 황정민과 김환희를 패러디하기도 한다. 뜬금없이 등장해 패러디하는 모습은 우습다. 그런 깨알 웃음은 드라마에서도 중요하고 그래서 민진웅이라는 배우는 이 드라마의 미친 존재감으로 세워지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런 하나하나의 재미들이 어떤 주제의식이나 맥락으로 엮어지지 않을 때 드라마의 힘은 하나로 모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혼술남녀>의 잔 펀치들은 굉장히 많다. 그래서 그 자잘한 이야기들이 주는 잔재미들 역시 많다. 하지만 지금 <혼술남녀>에 필요한 것은 그런 잔 펀치, 잔재미가 아니다. 그런 잔재미들을 깔아놓고 그저 멜로로 엮어 놓기에는 그 소재들이 가진 무게가 작지 않다. 샐러리맨들과 취준생의 현실이 그렇고 그들이 어쩌다 혼술을 하게 됐는가 하는 그 문화적인 이유들이 그렇다. <혼술남녀>에는 잔 펀치만큼 묵직한 한 방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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