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두꽃’, 죽을 걸 알면서도 나선 의병들, 그건 전쟁 아닌 사랑

 

막강한 화력으로 무장한 일본군들이 지키고 있는 우금티 고개. 도적이 출몰해 소가 지나는 걸 금했다는데서 이름 붙여진 우금티는 공주로 들어가는 길목으로서 뚫고 들어가기가 결코 쉽지 않은 요지다. 일본군들이 기관포로 쏴대면 속수무책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그 길. 하지만 실제 역사에서도 그랬고 그걸 재연해낸 SBS 금토드라마 <녹두꽃>에서도 그러하듯이 그들은 죽을 줄 알면서도 그 고개를 넘기 위해 뛰어든다. 전투가 아니라 학살에 가까웠다는 우금티 전투. 그 처절한 의병들의 사투가 이제 <녹두꽃>에서 서막을 올렸다.

 

도대체 이들은 왜 그 죽음이 예고된 길을 피하지 않고 기꺼이 나아갔을까. 아마도 <녹두꽃>이라는 동학농민혁명을 소재로 다룬 드라마가 담으려 했던 건 이 혁명의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었을 게다. 결과야 우리는 이미 역사를 통해 다 알고 있다. 우금티 전투에서 일본군과 맞서게 된 동학 의병들은 결국 그 막강한 화력에 의해 패하고 전봉준은 동학군을 해산시킨다. 결국 그해 배반자의 밀고로 전봉준이 순창에서 체포되면서 동학농민혁명은 미완으로 끝으로 맺는다.

 

사실 실패로 끝나버린 혁명을 드라마로 담는다는 건 여러모로 부담이 되는 일이다. 시청자들에게는 그 비극적 정조가 드라마를 보는 데 만만찮은 무거움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녹두꽃>이 동학농민혁명을 재조명한 건 단지 그것을 ‘실패의 역사’로 놔두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을 게다. 그들이 당대에 깨어낸 민중의식은 당시 혁명에서는 꽃을 피우지 못했지만, 결국 지지 않고 이어져 현재로 그대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이어져온 민중의 역사 그 과정으로 보면 <녹두꽃>이 담고 있는 동학농민혁명은 그래서 실패가 아닌 미래의 성공을 위한 초석이 되는 셈이다.

 

여기서 중요해지는 건 그들이 어떤 이유로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그 혁명에 뛰어들었는가 하는 점이다. 고종의 “거병하라”는 밀서에 의해 조용히 거병 준비를 마치던 차에 일제의 강압으로 고종이 쓰게 된 효유문은 동학 의병들을 허탈하게 만든다. 이제는 나라의 지지도 받지 못한 채 일본군과 싸워야 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런 싸움에 왜 사람들이 뛰어들고 있는가를 묻는 전봉준(김무성)에게 백이강(조정석)은 “저마다 지켜야할 소중한 것들을 위해서”라고 말한다. 왕을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족과 터전 같은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그러자 전봉준은 백이강에게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이 전쟁이 아니라 혁명이라는 걸 얘기해준다. “전쟁은 증오가 만들지만 이건 사랑이 만든다” 라며 그것이 바로 “혁명‘이라는 것.

 

이 말은 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엇나간 선택을 한 백이강의 동생 백이현(윤시윤)의 친일행각이 무엇이었는가를 분명히 하고 있다. 그건 증오가 만들어낸 ‘전쟁’일 뿐이었다. 문명의 탈을 쓴 ‘야만’의 전쟁. 그는 끝까지 문명은 더 많은 희생을 줄이기 위해 일부 희생을 감수하려 한다고 변명하지만, 일본의 지령에 담긴 “모조리 살육”이라는 글귀에 충격을 받는다. 어리석고 참담한 친일행각의 변명과 합리화가 모두 자신의 착각일 뿐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이제 다음 주에 그려질 우금티 전투는 바로 이 가슴 뜨거워지는 혁명의 눈물과 땀과 피가 그려질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아픈 실패로 끝나버릴지라도 죽은 채 살아가는 것보다, 단 하루를 싸우다 죽어도 산 사람으로 죽기를 원한 당대 의병들의 숭고한 선택을 그려낼 것이다. 또한 그들이 있어 지금의 우리가 있으며, 그러니 그건 결코 실패한 혁명이 아니었다는 것을.(사진:SBS)

정치발언에 대한 금기시, 그것이 더 정치적이다

 

김무성 대표 사위 A, 마약 15차례 투약에도 집행유예,’ 이 한 줄의 뉴스 제목만 봐도 보통 힘없는 서민들은 한숨부터 쉬게 된다. 도무지 살길이 없어 물건 하나를 훔치다 잡혀 몇 년 동안 징역살이를 했다는 어떤 생계형 범죄자의 이야기가 그 옆에서 솔솔 피어나온다. <용팔이> 같은 드라마나 <베테랑> 같은 영화를 보다 보면 이게 과연 허구가 맞나 싶을 때가 많다. 돈이 있으면 죽을 사람도 살려내지만, 돈이 없으면 산 사람도 죽어나가는 현실. 이게 어디 허구의 이야기인가.

 


'히든싱어(사진출처:JTBC)'

그 한 줄의 뉴스 제목을 끌어와 이승환은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겼다. ‘저희 아버지께서는 제게 감기약도 조심하며 먹어라. 그것 가지고 트집 잡으면 어떡하냐고 하시는데...’ 아마도 이승환이 남긴 이 한 줄의 글귀에 고개를 끄덕인 분들은 저 허구가 현실이 되어버린 세상을 실감하시는 분들일 것이다.

 

연예인은 작은 꼬투리 하나만 잡혀도 여기저기 씹어댄다. 그럴 법하다.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살아가는 존재이니 그 실망감을 대중들은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치인에 대한 실망감을 표현하는 일에는 으레 색안경을 끼고 쳐다본다. 마치 그 발언 하나가 그 사람의 정치색을 드러내는 것처럼 바라보고, 나아가 그런 이야기가 반복되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얘기까지 나온다. “너 정치 할 거냐?”

 

연예인 이야기는 시시콜콜 그렇게들 하시면서 왜 정작 먹고 사는 아니 죽고 사는 정치에 대한 이야기는 금기시하는 겁니까? 누군가가 그러길 바라고 그렇게 만들어 놓았다는 생각은 안드십니까?’ 이승환이 페이스북에 남긴 이 글은 우리가 자꾸만 오해하고 있는 정치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에 대한 일침이다.

 

그는 이어 이런 이야기도 남긴다. ‘자꾸 제게 정치하려고 그러냐는 분들... 상식에 어긋나는 일에 대해 제 상식을 얘기하면 정치인 하려고 그러는 거란 편협하고 조잡한 생각은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겁니까? 정치인 단 한 명도 모르고 혹여라도 연락 오시는 분들, 다 정중히 거절합니다.’ 이승환이 페이스북 등을 통해 소신발언 하는 것에 대한 이상한 시선들에 대해 선을 그은 것.

 

사실 정치라고 하면 우리는 특정한 사람들이 하는 특정한 짓거리라는 이미지를 먼저 떠올린다. 그도 그럴 것이 정치인들이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기던 장면이란 국회에서 하라는 일은 안하고 서로 드잡이를 하며 세력 다툼을 하는 모습이다. 또 선거철에 반짝 나타나 마치 모든 걸 다 해주겠다는 듯이 고개를 숙이고는 나중에 당선되고 나면 언제 그런 얘기를 했느냐는 식으로 말을 바꾸는 모습이다. 공인으로서 부적절한 일을 하고도 마치 아무 죄도 없다는 듯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심지어 미소까지 지으며 여유 있게 질문에 답하는 모습에 서민들은 깜박 속기도 한다. 정말 잘못이 없나?

 

하지만 이승환이 얘기하듯 정치란 그렇게 국회에만 있는 게 아니고 선거철에만 반짝 나타나는 게 아니며 물의를 빚고도 뻔뻔한 정치인들의 얼굴에만 있는 게 아니다. 우리가 깨어나고 먹고 자고 일하고 숨 쉬는 모든 게 사실은 다 정치다. 다함께 잘 살지 못하면 누군가는 소외되거나 밀려난 삶에 비참하게 사라지는 게 지금 우리네 연결된 사회의 모습이다. 우리가 점심에 어디서 누구와 무얼 먹는가조차도 정치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니 정치에 대해 이승환이 아니라 저 길거리에 내몰린 노숙자라도 할 말을 하는 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그건 이승환이 말하듯 상식에 해당한다. 연예계 이야기? 그것 역시 정치적이지 않은 것이 없다. 연예계라고 특정 부류로 선을 그어놓고 마치 가벼운 집단들의 대명사처럼 치부하고 있지만 그들은 대중문화에 종사하는 이들이다. 대중들의 문화를 함께 만들어가는 그들이 왜 대중과 무관할 수 없는 정치에 대한 소신이 없겠는가. 그건 없어서도 안 되는 일이다.

 

정치를 동떨어진 세계로 나누어놓는 일들이나 정치 발언에 대한 금기시는 그래서 더더욱 정치적인 일이다. 그것은 정치에 대한 발언을 무섭거나 더러워서안하게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정치에 대해 소신 발언을 할 수 있는 연예인, 아니 대중문화 종사자들은 그래서 더더욱 많아져야 한다. 그 정치적 소신을 자신들이 하는 일에 담아낼 수 있다면 더더욱 좋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이승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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