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신잡3’, 시에나 캄포광장에서 떠올려진 우리의 포용성 수준

이것이 진정한 <알쓸신잡>의 묘미가 아닐까. 이탈리아 시에나의 캄포광장 이야기가 우리네 공동체 문화 이야기로 옮겨가고, 그 이야기는 포용성 문화가 얼마나 그 지역을 발전시키는데 중요한 코드가 되는가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그 이야기들은 이탈리아의 시에나 캄포광장에서 시작해 우리네 아파트 이야기, 산업혁명 시기의 영국이야기, 인구가 서울에만 집중되는 이유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심지어 음악하던 친구들이 모이던 홍대와 최근 새로운 음악인들의 공간으로 자리하고 있는 온라인으로까지 옮아간다. 대화를 통한 인식의 확장. 지식들이 겹쳐지면서 생겨나는 깨달음. <알쓸신잡3>가 시에나 캄포광장을 통해 우리의 포용성 수준을 질문하는 대목이 흥미로웠던 이유다. 

이야기는 김진애 교수가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갖고 있다는 시에나의 캄포광장을 다녀온 소감에서 비롯됐다. 마치 미로처럼 펼쳐진 이탈리아 특유의 좁은 골목길들을 헤매다 보면 어느 새 캄포광장에 와 닿아 있게 그 도시가 설계되어 있다는 것. 그러한 공간 설계는 각각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기회들을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탈리아의 골목들은 다니다 보면 조금 넓어지는 공간들이 존재하는데, 그 곳은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 역할을 해준다고 한다.

캄포 광장 이야기는 김영하로 하여금 우리네 아파트 문화를 떠올리게 한다. 우리는 왜 그렇게 아파트를 선호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그 이유로 김영하는 개인 공간을 인정하지 않고 치고 들어오는 우리네 문화를 지적한다. 유시민 작가는 거기에 더해 우리가 “너무 많은 공동체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개인을 무시하고 관계망을 중시하는” 사회라는 것. 그러면서 캄포 광장이 말해주는 건 “유럽의 공동체”가 “개인주의의 기반 위에 있다”는 사실이라고 했다. 

이 개인을 무시하는 사회의 문제에서 유시민은 ‘포용성’이 얼마나 그 지역 발전에 중요한 인자인가를 말해주는 이른바 ‘게이 지수(Gay Index)’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어떤 지역의 번창 혹은 몰락에 영향을 미치는 주된 요소’를 연구해 도시들의 순위를 나열해 보니, 그 순서가 게이 지수(도시마다 동성애자의 거주 비율)와 일치하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를 ‘3T이론’이라는 가설로 분석했다. 

도시가 발전하려면 테크놀로지(1T)가 높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재능 있는 사람(탤런트, 2T)이 많이 모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재능 있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이유는 톨러런스(포용성, 3T)라는 것이다. 게이지수가 포용성의 지표가 되는 건, 제일 마지막까지 차별받는 소수집단으로서의 동성애자들까지 별 문제를 느끼지 않고 살 수 있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란다. 그런 곳이라면 모든 유형, 모든 종류의 괴짜들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

김영하는 실제 그 사례로 지난 몇 십 년 간의 샌프란시스코를 들었다. 미국 5대 밀집지역으로서 성소수자의 상징적 도시이고 동시에 실리콘 밸리가 있는 곳이 그 곳이다. 유시민은 나치 독일이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 과학기술에서 완전히 뒤지게 된 이유가 바로 그 포용성이 사라지면서 많은 인재들이 전부 미국으로 빠져나갔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상욱 박사는 그 사례를 19세기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났던 이유에서도 찾았다. 당시 영국에 천재들이 많이 나왔는데 출신성분이 미천했던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가난한 집 7형제 중 막내로 태어나 방적기를 발명한 리처드 아크라이트나 빈민가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나 전기모터를 발명한 마이클 패러데이가 그 사례다. 즉 당시 영국사회는 일을 잘하고 능력이 있으면 성공할 수 있는 사회였다는 것이다. 

<알쓸신잡3>가 시에나의 캄포광장 이야기에서부터 비롯되어 나온 포용성 문화에 대한 이야기는 다시 우리의 현실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개인을 인정하지 않는 공동체 문화로 인해 똑같은 익명성으로 존재하는 아파트 속으로 숨어들어가는 우리들. 유시민이 말하듯 천만 인구가 서울에 모여사는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었다. 괴짜들이 이방인이 살 수 있도록 지역이 포용성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그나마 익명성으로 살 수 있는 서울로 모여 든다는 것이다. 

특히 이런 인식의 지평이 아픈 깨달음으로 다가오는 건 김상욱이 얘기한 산업혁명 시기의 영국사회처럼 우리는 “일 잘하고 능력 있으면 성공할 수 있는” 그런 사회일까 하는 의구심 때문이다. 스펙과 출신으로 미래가 결정되고, 성장의 사다리가 끊겨버린 우리 사회는 언젠가부터 일 잘하고 능력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그런 믿음이 사라져버린 건 아닐까.

이런 문제들은 이야기를 듣다 1990년대 홍대를 떠올린 유희열처럼 우리 사회 어디서나 발견되는 것들이다. 클럽 한두 개였던 당시 홍대에 몇몇 괴짜들이 음악을 시작하면서 실력 없는 친구들도 데뷔할 수 있는 포용성이 만들어지고 이른바 ‘홍대문화’가 생겨났는데, 자본이 들어오면서 클럽들이 사라져갔다는 것. 그런데 최근 들어 다시 괴짜들이 나오고 있는데 그 공간이 이제는 온라인 공간이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포용성을 찾기 힘든 우리네 현실(오프라인)의 씁쓸함을 보여주는 것이면서, 동시에 이 대안적으로 찾아낸 온라인 공간이 어째서 최근 들어 우리 사회를 변혁시키는 중요한 공간이 되고 있는가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유시민이 적어도 “뭘 하지 말라고 하는 거 좀 안했으면 좋겠다”고 한 말이 속 시원하게 느껴진 건, 포용성 없는 우리네 현실의 갑갑함을 우리가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사진:tvN)

‘알쓸신잡3’, 마치 소설을 읽는 것 같은 김영하의 여행

이건 소설가의 여행법이 아닐까. 피렌체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게 두오모 성당, 우피치 미술관이 있는 시내의 좁은 골목길과 오밀조밀한 집들 그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이지만, 김영하는 엉뚱하게도 ‘영국인 묘지’를 찾아간다. 여행을 하다보면 지치게 되기 마련, 그 때마다 이 소설가는 묘지를 찾아가곤 했단다. 그래서 피렌체에 와서 묘지를 검색해보니 ‘영국인 묘지’라는 게 있다 해서 가게 됐던 것. 

피렌체의 유서 깊은 레스토랑에서 벌어진 tvN 예능 프로그램 <알쓸신잡3>의 수다가 두오모 성당과 그 성당을 설계한 브루넬레스키 이야기 그리고 피렌체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메디치 가문의 이야기들을 쏟아내고 있을 때 김영하가 꺼내놓은 ‘영국인 묘지’ 이야기는 생소하기 때문에 참신하게 다가왔다. “도시에 묘지가 있으면 꼭 한 번씩 가본다”는 김영하의 말에 그 이유를 묻자 그는 재치있는 농담을 섞어 답한다. “일단 조용해요. 고요합니다. 산 사람이 별로 없으니까.”

실제로 김영하가 간 ‘영국인 묘지’는 생각보다 예쁜 조각공원 같은 분위기의 묘지였다. 아름답다고 하자 그 곳에 있는 수녀님은 4월에 오면 붓꽃이 만발해 더 아름답다고 말한다. 알고 보니 영국인만 묻힌 묘지는 아니라고 한다. 가톨릭 신자가 아닌 외국인들이 묻혔다고 한다. ‘피렌체의 이방인’들을 위한 묘지라는 것. 그러면서 슬쩍 꺼내놓는 생각. “도시를 설계할 때 우리도 산자와 죽은 자를 공존하는 방법을 고민해봐야 해요. 우리가 영원히 사는 게 아니니까.”

김영하의 여행을 들여다보면 그 흐름이 마치 소설을 읽는 것만 같다. 사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소재가 독자들을 사로잡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남들이 다 가는 곳이 아니라 가지 않는 곳을 찾아간다. 무엇보다 ‘영국인 묘지’라는 이름이 호기심을 이끌어낸다. 왜 영국인이 이 먼 곳에 와서 묻혔을까 하는 궁금증이다. 소설이 끊임없이 궁금증을 이끌어내는 이야기들을 통해 독자를 몰입시키듯이 김영하의 여행은 그 흐름을 따라간다.

그리고 그렇게 찾아간 곳에는 보석 같은 이야기들이 발견된다. 영국인 묘지에 존재하는 시인 엘리자베스 바렛 브라우닝의 묘지. 그러면서 그와 그의 남편 로버트 브라우닝과의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펼쳐진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겪어 사회 비판시를 많이 썼던 이 시인은 40세에 로버트 브라우닝과 사랑에 빠지면서 유명한 사랑 시를 썼던 인물이라고 한다. 편지를 통해 이어진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는 스산해져가는 초가을에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이 가봤던 묘지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가 생각하는 최고의 묘지는 파리의 페르 라셰즈. 파리 시내에 있는 이 거대한 묘지에는 쇼팽, 짐 모리슨의 묘가 있다. 김영하는 이 묘지의 장점이 “아름답고 파리의 도시에서 가깝고 유명인들의 묘지이고 잘 가꿔져 있다”고 말한다. ‘묘지 투어’를 할 정도로 여행을 할 때 묘지를 찾는다는 김영하를 보며 유시민은 “역시 소설가는 다르긴 다르다”라고 말했다. 김진애 교수는 “작가에게 묘지가 중요한 건 죽음이 있어야 새로운 시작이 생길 수가 있다”고 했다.

그러자 이 이야기는 김진애 교수가 썼다는 ‘묘비명’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간다. ‘인생은 의외로 멋지다’라고 썼다는 묘비명에서 김진애 교수는 ‘의외로’에 꼭 인용구 마크를 넣어달라고 했다고 한다. ‘항상’이 아니라 ‘의외로’ 라는 것. 이 말에 빗대 김영하라는 소설가의 여행법을 들여다보면 그는 그 ‘의외로’ 멋진 것들을 찾아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모두가 잠든 새벽. 아침 일찍 일어나 도보로 피렌체 도심에서 살짝 떨어져 있는 미켈란젤로 광장에 일출을 보기 위해 오르는 김영하는 여러 차례 피렌체를 방문하면서 느끼는 ‘시간의 흐름’을 이야기한다. 스무 살 남짓에 처음 찾아왔던 피렌체와 신인작가 시절 그리고 중년에 또 그 곳을 찾아오면서 변화한 건 자신뿐이라고 말한다. 그대로 변화하지 않고 있는 그 곳이 고맙게 느껴진다는 것. 그 와중에 시간이 흘렀고 그도 시간을 따라 흘러왔다. 그 흐름은 한 편의 소설 같다.

피렌체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김영하는 이렇게 말한다. “일출을 백 번 보든 천 번 보든 내 삶에 무슨 상관이 있어요. 근데 먹고 사는데 아무 상관없을 지라도 아름다운 것을 보고 감동할 때 내가 인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요.” 아마도 이것이 우리가 여행을 하는 이유이고, 또 소설 같은 예술 작품을 보는 이유가 아닐까. 김영하라는 소설가의 여행법이 새삼 특별하게 다가온다.(사진:tvN)

피렌체 간 ‘알쓸신잡3’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들은

“메디치가는 피렌체 지역의 만석꾼. 우리 개념으로 하면 만석꾼이죠. 왜 유명해졌냐하면 이 만석꾼이 그냥 돈만 밝힌 게 아니고 예술적인 성취를 중요하게 여기고 예술가를 키우고 후원하고 그 사람들이 실력발휘를 할 수 있게 뭘 짓고 이런 걸 엄청 많이 한 거예요. 예술을 아는 그래서 돈을 좀 쓴 만석꾼.” tvN <알쓸신잡3>가 찾아간 피렌체의 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며 나누는 수다에 이 지역에서 빼놓을 수 없는 메디치가를 유시민은 그렇게 평가했다. 

실제로 피렌체 곳곳에는 메디치 가문의 흔적들이 남아있었고, 이들이 후원한 예술가들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미켈란젤로, 보티첼리, 도나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포함해 브루넬레스키, 기베르티, 미켈로소, 마사초, 알베르티, 마르실리오 피치노, 베로키오, 프란체스카, 프라안젤리코, 갈릴레오 갈릴레이 등등 부지기수였다. 두오모 성당으로 유명한 피렌체가 왜 그토록 예술적이고 아름다운 도시적 풍모를 갖게 되었는가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피렌체로 오는 길 버스 안에서 나눈 대화 속에서 김진애 교수는 “다른 예술도 그런 점이 많겠지만 건축은 특히 자본과 권력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말한 바 있다. 도시의 아름다움은 위대한 예술가들과 건축가들에 의해 상상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실현되는 건 그 도시를 움직이는 자본과 권력이 어떤 방향을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 피렌체는 그 역할을 메디치 가문이 했다. 예술에 지원한 이 가문으로 인해 많은 예술가들이 탄생했고, 도시 곳곳에서 무언가를 지을 때마다 공정하게 이뤄지던 일종의 오디션을 통해 그 예술가들의 아이디어들이 받아들여졌다. 

물론 개발이라는 것이 모두 부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피렌체의 현재 모습을 우리의 서울과 비교해보면 여러모로 씁쓸해지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지금의 우리네 서울의 모습은 과거를 밀어내고 특징 없는 고층아파트들이 도처에 세워진 풍경이 아닌가. 도시의 정취보다는 아파트의 가격이 그 도시를 특징 짓게 만든 현실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권력과 자본을 가진 결정권자들이 해온 일련의 선택들이 물론 당대에는 중요한 일이었을 수 있으나 후대에는 깊은 후유증을 남기고 있으니 말이다.

두오모 성당 설계에 얽힌 브루넬레스키의 이야기 역시 우리로써는 부러울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당시에는 이러한 건축에 있어서 모든 걸 ‘설계 경기(일종의 오디션)’를 통해 했다는 김진애 교수는 두오모 성당의 상부 원형 구조의 덮개 아이디어가 천재가 아니면 가져올 수 없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지붕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이중 구조를 만들고 비계가 필요 없이 격자형태(헤링본)로 벽돌을 쌓는 방식을 채택했으며 윗부분에 구멍을 만들어 내부에서 생길 수 있는 압력문제까지 해결했다는 것. 

하지만 이러한 천재적인 아이디어보다 더 놀라운 건 이 두오모 성당이 브루넬레스키가 지은 첫 번째 건축물이었다는 점이었다고 김영하는 말했다. 그 설계 경기가 얼마나 공정했는가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었다. 금공예가로 이름을 날렸던 브루넬레스키였지만 건축 분야는 처음이었다는 것. 그럼에도 그의 아이디어가 채택되었다는 건 그만큼 이 오디션이 누구에게나 열려있다는 걸 말해주는 대목이었다. 스펙사회로까지 불리는 우리로서는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더더욱 놀라웠던 건 김영하와 유시민이 방문했던 브루넬레스키가 설계한 인노첸티 고아원의 이야기였다. 1445년에 시민들의 후원으로 개원해 지금껏 600년 간 실제로도 운영되고 있는 인노첸티 고아원. 그 곳 2층에는 놀랍게도 보티첼리 같은 유명한 예술가들의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하지만 김영하와 유시민을 놀라게 한 건, 은행 개인 금고처럼 된 작은 상자들 속에 무려 몇 백 년 전에 아이를 놓고 갔던 부모가 놓고 간 증표를 지금껏 보존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반쪽만 있는 증표들 중에는 소박하기 그지없는 단추 같은 것들도 있었다. 김영하는 “이런 고아원은 있지만 이런 걸 보존한 고아원은 여기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유시민은 “이탈리아라는 이 사회가 500년, 600년 기록을 이렇게 유지하는 사회인데 국가는 1500년 넘게 없었지만 근데 우리보다 1인당 GDP도 높고 인구도 많은 나라인데 이렇게 되는 게 무엇 때문인가를 느끼며 한 대 얻어맞았어요.”라고 말했다. 유시민은 이어 “이탈리아에 대한 선입견이 없어졌다. 이탈리아 시민 사회가 그렇게 만만치 않다는 걸 느꼈다”고 덧붙였다. “한국에도 이런 시설이 있냐”고 묻는 직원분의 질문을 잘못 들어 “많다”고 말했지만 “몇 년 됐냐”는 질문에 민망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우리는 그렇게 남기는 것들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탈리아도 1992년에 부패척결운동으로 벌어진 ‘마니 풀레테’처럼 큰 곤욕을 겪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 근간에도 남아있는 인노첸티 고아원 같은 곳에서 느껴지는 문화적 저력은 부러울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조선의 그 찬란하고 예술적이었던 공간들이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밀어내져 점점 사라져가고, 과거의 유산들을 예술적으로 받아들여 보존해나가기보다는 당장의 자본적 이익으로 바꿔나가는 우리네 현실이 가진 경박함이 못내 씁쓸하게 다가왔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아파트 숲을 만들고 거기서 모자라 4대강까지 밀어버린 이들이나, 예술가들이 기회를 얻을 수 있게 해주기는커녕,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핍박했던 이들이 사실상 개발시대를 이끌었던 권력가와 그 가문들이라는 점은 그래서 아프게도 다가온다. 지금 현재에 이르러 초라한 끝을 보고 있으니. 지금이라도 피렌체가 가졌던 예술과 문화와 시민사회의 위대함을 우리도 깊이 숙고해봐야 하지 않을까 <알쓸신잡3>가 피렌체를 보여주며 우리에게 시사하고 있는 것들이다.(사진:tvN)

‘알쓸신잡3’, 소피스트도 울고 갈 이야기꾼 유시민과 김영하

“정치적 삶(공동체의 삶)은 오직 말과 행동으로 이뤄진다. 말을 통해서 공공의 삶에 개입할 수 있다.” tvN <알쓸신잡3>에서 앞서나가던 그리스가 왜 기독교 문화가 들어오면서 무너지기 시작했는가를 묻는 질문에 김영하는 한나 아렌트의 그 말을 꺼내놓는다. 기독교적 세계관은 말과 정치의 참여를 죄의 근원으로 보고 ‘관조’를 중시하게 만들었다는 것. 공적인 삶이 아니라 사적인 삶으로서 기도하고 관조하는 삶을 강조함으로써 결국은 권력자들에게 유리한 시스템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던 유시민은 당시 공공교육이 전혀 존재하지 않던 그리스에서 사설교육을 담당하던 소피스트들이 부당하게 폄하된 면이 있다고 했다. 말하고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 중요했던 당대 그리스의 민주주의 태동을 소피스트들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유시민은 “내가 그 때 태어났으면 나도 일타강사를 했을지 모른다.”는 농담을 던졌다.

사실 그리스가 그토록 서구 문명의 발상지라고 말할 만큼 융성한 문화를 꽃피웠다가 고작 100년이 지난 후 스러지게 된 그 과정을 단 몇 마디의 말로 설명하긴 어렵다. 하지만 김영하나 유시민과 김영하의 이야기가 던지는 소피스트가 ‘민주주의’와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가를 들여다보면 그리스가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그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것도 ‘일타강사’ 같은 표현으로 지금의 시각으로 풀어 이야기해주니 귀에 쏙쏙 박힐밖에.

소피스트의 이야기에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건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그리스가 몰락하게 되는 징후로서 파악하고 있는 유시민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이 얼마나 천박한 표현인가를 강변한다. 자신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지만 독배를 받아들였던 소크라테스의 그 유명한 죽음의 일화는 ‘잘못된 법도 법이니 지키라’는 의미가 아니라, “폴리스가 절차에 따라 결정한 일을 내가 억울하다는 이유로 피하는 것이 옳은가? 그렇게 하면 폴리스가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담고 있다는 것이었다. 

죽음에 대해 굉장한 비극적 정조를 상상하지만 유시민도 김영하도 소크라테스는 죽음 앞에 의연했고 또 어떤 면에서는 죽음을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태도도 보였다고 했다. 독배를 마신 소크라테스가 우는 제자들에게 “왜 우느냐”고 물으며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사형선고를 받았다는 것을 모르시오?”라고 농담을 던질 정도였다는 것. 그가 죽기 전에 남긴 “아스클레오피스에게 닭 한 마리를 빚졌네.”라는 말은 의학의 신인 아스클레오피스를 거론하며, 육체가 주는 병에서 벗어나는 것을 죽음으로 바라봤던 그의 생각이 담긴 말이었다. 유시민은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산 것”이고 따라서 “죽음을 받아들이는 행위가 죽는 행위가 아니고 사는 행위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시민이 소크라테스 덕후를 자처하며 내놓은 이야기들이 그리스의 흥망성쇠를 이해할 수 있는 쉽지만 깊이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면, 김영하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통해 그리스 민주주의가 어떻게 가능했던가를 흥미롭게 추론해냈다. 그는 <일리아스>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아킬레우스가 자신의 친구인 파트로클로스를 죽인 헥토르를 잔인하게 죽이고 그리스가 승리하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했다. 헥토르의 아버지 트로이의 프리아모스왕이 아킬레우스를 찾아와 손에 입을 맞추며 아들의 장례를 치르게 해달라고 화해를 신청했고, 그 모습에서 아킬레우스 역시 자신의 아버지를 생각하며 공감의 눈물을 흘렸다는 것. 김영하는 그래서 <일리아스>가 그리스의 승리가 아니라 프리아모스왕이 보여준 ‘인간성’의 승리를 보여주는 것이고, 이러한 “적조차 포용하는 자세”가 그리스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했을 거라고 말했다.

사실 지식을 갖고 있는 것과 그것을 설득력 있게 이야기해주는 건 다른 문제다. 제아무리 많은 지식을 갖고 있어도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달리 들린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알쓸신잡3>에서 유독 유시민과 김영하의 존재감이 돋보이는 건 같은 지식이라도 자신들만의 생각으로 한 번 곱씹어져 나온 것이라, 쉬우면서도 깊이 있는 통찰이 담겨져 있어서다. 당대의 일타강사 역할을 했을 소피스트들도 울고 갈 이야기꾼의 면모가 이들에게는 느껴진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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