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 <무도><1>이 찾는 역사가 더 감동적일까

 

역시 <12>이다. 하얼빈까지 날아간 데는 우리가 누구나 예상했던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발자취를 찾아가기 위함이었다. 물론 예능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대놓고 감동과 눈물을 전면에 내세우는 게 꺼려졌었던 모양이다. 이 특집이 시작하기 전 유호진 PD3.1절 특집의 성격이 아니라고 말했고, 실제로 방송의 앞부분은 하얼빈에서 벌이는 혹한기 체험을 통한 웃음이 채워졌다. 하지만 하얼빈까지 가서 어찌 안중근 의사의 역사적 순간들을 놓칠 수 있었으랴.

 


'1박2일(사진출처:KBS)'

<12>1909년으로 시간을 되돌려 당시 안중근 의사의 흔적을 되짚자, 교과서에 그저 짧은 문장 몇 줄로 나와 있던 그 역사가 생생히 우리 눈앞에 되살아났다. 당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의 사건이 당시 뉴욕 타임즈부터 이태리, 영국의 신문까지 대서특필되던 세계적인 사건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고, 중국 정부가 안중근 의사를 영웅으로 기리고 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고국에서 25백리나 떨어진 그 곳. 우덕순과 구체적 거사를 논의했던 조린공원에는 안중근 의사의 손도장과 이름이 새겨진 비석이 세워져 있었고, 하얼빈역에는 당시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던 그 장소가 특별하게 표시된 채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2년 전 건립된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는 지금까지 25만 명이 방문했는데, 그 중 90%가 중국인이라고 했다. 그만큼 안중근 의사는 국적을 뛰어넘어 존경받고 있었다는 것.

 

<12>이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을 되짚으며 출연자들마저 숙연하게 만들었던 건 그 역시 사사롭게는 아빠이고 남편이며 자식이었다는 점이다. 이미 많이 알려져 있는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의 편지는 더더욱 절절하게 다가왔다. 먼저 가는 걸 불효라 생각하지 말고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고 자식에게 전하는 어머니의 심정은 얼마나 만 갈래로 찢어졌을까.

 

이미 거사 직전에도 죽음을 예감했을 그지만 단정한 몸가짐을 하고 아침 기도를 하고 나서는 안중근 의사의 마음은 또 어땠을까. <12>의 행로는 그 마음을 헤아려보려는 노력이었다.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144일의 흔적이 남아있는 다롄 역의 뤼순 감옥에 도착한 차태현과 김준호는 새삼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옥중에서조차 신념과 사상으로 싸웠던 안중근 의사는 일본이 적이 아니라, 일본의 군국주의가 적이라는 걸 분명히 했다. 그리고 사형 집행 5분 전에 찍은 사진 속에서 그는 어머니가 보낸 수의를 입은 채 초연한 얼굴이었다.

 

<무한도전>배달의 무도특집에서 일본의 우토로 마을을 찾아가고, 하시마섬을 찾아가 그 감동이 컸던 것처럼, 이번 <12>이 하얼빈 특집으로 안중근 의사의 발자취를 찾아간 것 역시 더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아마도 교양 다큐멘터리 등에서 무수히 소개됐을 이야기지만 이토록 더 큰 감동이 느껴지는 건 아마도 이들 예능 프로그램들이 보통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그 역사적 현장들을 바라보기 때문일 것이다.

 

<12>의 하얼빈 특집은 그래서 역사책의 몇 줄로 기록된 그 박제된 역사를 생생히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물론 예능 프로그램이기에 지나친 무거움을 내세우는 것이 부담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행을 담는 <12>에서 역사적 현장을 찾아가 웃음이 아닌 숙연한 마음을 느끼는 것 역시 그 어떤 것보다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박찬호에 이은 추신수, <12>만 나오면 펄펄 나는 메이저리거

 

KBS 주말예능 <12>은 메이저리거들과 인연이 있는 게 분명하다. 과거 박찬호가 <12>에 출연했을 때 주었던 의외의 예능감과 진지함에 시청자들이 느꼈던 그 감흥을 이제 차세대 메이저리거인 추신수가 이어받았다. 그는 <12> 특유의 놀라운 야생 적응력을 보여주며 웃음을 주는가 하면 삶의 경험이 묻어나는 진솔한 이야기로 어떤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해주기도 했다.

 


'1박2일(사진출처:KBS)'

마침 맏형이었던 김주혁이 하차한 시점이라 새 멤버를 뽑는다는 설정으로 출연한 추신수는 전현무 아니냐는 얘기를 세 번이나 듣고는 발끈하는 모습으로 웃음을 주었다. 마치 새 선수를 입단시키는 듯한 상황을 설정하고, 일종의 입단테스트를 기성 출연자들에게 시켰지만 차태현이 말한 대로 그 상황 자체가 웃길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예능 프로그램이라면 꼭 출연시키고픈 인물이 추신수라는 스포츠스타가 아닌가.

 

압박면접에서 오히려 압박을 당하는 건 기성 출연자들이었다. 김준호는 짐짓 자신이 형이라며 반말을 하겠다고 하고는 뒤에 가서는 어쩔 수 없이 존칭을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출연자들은 압박면접이 아닌 추신수의 팬임을 인증하는 모습을 통해 역전된 상황의 웃음을 뽑아냈다. 특히 올 초에 겪었던 슬럼프에 대한 질문에 그는 삶의 경험이 묻어나는 답변을 들려주었다.

 

못하고 싶어서 못하는 사람은 없다. 시험지 답이 있는 게 아니다. 그때 당시는 뭘 해도 안됐다. 제가 느낀 거는 안 될 때 매듭을 굳이 풀려고 하지 말고 그냥 묶인 대로 놔두자. 그걸 인정하면 어느 순간에 (매듭이) 풀리더라.” 슬럼프에 대한 집착은 더 깊은 슬럼프에 빠지게 된다는 것. 오히려 그 슬럼프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거기서 빠져나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메이저리거들의 무엇이 이토록 <12>과 잘 어우러지게 하는 걸까. 메이저리거로서 살아온 이들이 갖기 마련인 승부욕은 <12>의 치기어린 대결구도와 만나게 될 때 빛을 발하곤 한다. 과거 박찬호가 출연했을 때 강호동과 묘한 긴장감을 이루던 그 장면들을 떠올려 보라. 두 사람은 이 대겨루도를 통해 결국 한 겨울 계곡 얼음을 깨고 입수하는 모습을 연출해보여주기도 했다.

 

경주에 도착해 이동차량을 놓고 벌이는 복불복 게임에서 추신수 역시 스포츠선수다운 승부욕을 드러내기도 했다. 김준호의 머리 위에 캔을 올려놓고 공으로 맞추는 미션에서 여러 차례 실패한 그는 얼굴에 잔뜩 낙서를 하는 대가로 결국은 미션에 성공하는 승부근성을 보여줬다.

 

메이저리거라는 위치는 우리에게 심정적인 지지를 갖게 만들기도 한다. 과거 박찬호은 IMF 시절의 어려운 현실을 잠시 잊게 해주는 희망이었다. 그가 메이저리그에서 선전하는 모습은 그래서 마치 우리 일이나 되는 것처럼 마음 한 구석을 위로해주는 면이 있었다. 추신수 역시 올 초에 있었던 슬럼프를 극복하는 드라마틱한 과정을 통해 우리에게 어떤 희망을 주는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이 지점은 왜 메이저리거들이 <12>에 나왔을 때 더 환영받는가를 잘 말해준다. <12>이라는 서민적 예능 속에서 메이저리거들이 보여주는 서민적인 모습은 그 자체로 우리들의 마음을 푸근하게 만든다. 복불복게임을 통해 추신수 같은 세계적인 선수가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승부욕을 보인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입단테스트? 고정해도 될 법한 <12> 특유의 훈훈함이 추신수에게서 묻어난다.



아쉬움도 예능으로, <12>의 이별이란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기 마련이지만 구탱이형 김주혁을 보내는 <12>의 마음이 헛헛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만큼 맏형으로서의 비빌 언덕 하나가 사라지는 듯한 아쉬움. 그러니 김주혁이 떠난 그 맏형의 자리를 김준호가 극구 싫다며 차태현에게 넘기려 한 건 단지 그 부담감 때문만은 아니었을 게다. 늘 김주혁이 서 있던 그 자리가 이제 빈다는 것이 낯설게 느껴졌을 테니.

 


'1박2일(사진출처:KBS)'

하지만 <12>은 그 아쉬움도 예능으로 풀어낸다. 들어올 땐 맘대로 들어와도 나갈 땐 맘대로 못 나간다며 김주혁의 마지막 촬영을 고난의 시간으로 채워 넣으려 한 것. 처음 만났을 때 그랬던 것처럼 새벽 잠자리에 기습해 잠을 깨우고, 미리 짜놓은 대로 가장 가기 힘든 여행지 고흥을 선택하게 만든다. 고흥에는 몸으로 하는 예능의 성지(?)’가 되어버린 갯벌과 꼬막채취가 기다리고 있다.

 

힘든 일정을 함께 소화해가며 멤버들은 이게 다 김주혁 탓이라고 몰아세운다. 김주혁이 하차하는 것 때문에 이렇게 어려운 하루를 보내게 됐다는 것. 그러니 뻘밭에서 게임을 하며 김주혁을 공격하는 일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얻은 꼬막으로 저녁 식사 요리를 놓고 벌인 경매에서도 동생들은 김주혁이 꿈꾸던 소박한 식사를 못하게 방해하며 즐거워한다.

 

부친인 고 김무생이 방송을 통해 증언한 것처럼 김주혁은 속내를 잘 표현하지 않는 무뚝뚝한 성격이란다. 그러니 괜스레 하차하는 걸 갖고 동생들이 울적해하거나 마음 쓰는 걸 김주혁은 원치 않았을 터다. <12>은 그래서 평상시보다 더 세게 하던 대로의 복불복을 진행했을 것이다. 동생들도 그 어느 때보다 김주혁에게 짓궂은 장난을 걸었을 테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보면 고흥으로 간 <12>은 김주혁의 마지막 촬영이라고 해도 특별히 다를 바 없는 한 회로 채워진 느낌이다. 이런 방식은 <12>이 왜 여전히 인기 있는지를 잘 설명해준다. 사실 <12>은 꽤 많은 변화가 있었다. 시즌2는 프로그램의 존폐를 얘기할 정도로 위기 상황도 겪었다. 하지만 시즌3에 와서 다시 안정기를 되찾았다.

 

출연자가 들어오고 나가는 상황은 사실 <12> 같은 리얼 버라이어티 형식에서는 큰 사건이지만, 유호진 PD가 이를 대하는 방식은 지극히 차분하다. 아쉬움이 있고 그 빈자리가 큰 건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대단히 호들갑을 떨거나 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어쩌면 유호진 PD가 생각하는 여행이고, <12>일 지도 모른다. 여행이라는 것이 본래 거창하지 않아도 함께 만나고 떠나고 헤어지는 일을 반복하는 일이 아닌가. 그것이 우리네 사는 모습이기도 하고.

 

유호진 PD가 그간 2년 동안 <12>이 찾아간 곳을 채워 넣은 지도는 전국 방방곡곡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만큼 빽빽했다. 그렇게 한 회 한 회 걷다보면 그렇게 거대한 족적이 남겨진다는 걸 그 지도 한 장이 보여준다. 그리고 그 지점 하나를 손으로 찍으면 그 때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돋아난다. 김주혁은 그 많은 기억들 속에서 오래도록 남아있을 것이다.

 

아쉬움을 예능으로 풀어낸 <12>이 맏형 김주혁을 떠나보내는 방식은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더 즐거워 보이면서도 그 안에서 페이소스가 묻어난다. 그것은 10년을 달려온 <12>을 우리가 떠올릴 때 갖게 되는 감정이기도 하다. 먼저 왁자한 웃음이 피어나오지만 한편으로는 아련한 느낌을 갖게 만드는 그런 감정. 그 많은 만남들이 사실은 늘 헤어짐을 내포하고 있었다는 데서 오는 흐뭇하고 아쉬운 그 느낌.



<무도><1>, 헛똑똑이 세상에 던지는 바보들의 일침

 

주말 내내 김종민은 바빴다. <무한도전> ‘바보전쟁에 빠질 수 없는 캐릭터이면서 동시에 <12>의 터줏대감(?)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바보 캐릭터’. 진짜 바보인가 아니면 바보를 가장한 천재인가에 대한 의문은 끊임없이 김종민에게 제기된 바 있다. 은지원이 그는 사실 천재라고 했던 말은 이런 의문에 불을 지폈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경북 성주군으로 떠난 <12>에서 마침 김종민이 보인 새로운 면면들은 이것이 단지 농담만은 아닐 거라는 심증을 줬다. 씨름 복불복에서 스모를 배웠다는 료헤이와 접전을 벌이다 결국 이기고, 퀴즈 대결에서도 척척 맞추는 모습을 보여줬다. 지금껏 김종민이 갖고 왔던 이른바 신바(신난 바보)’ 캐릭터와는 사뭇 다른 행보였다.

 

사실 방송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그 일을 이토록 오래도록 잘 해온 그가 진짜 바보일 리 만무다. 하지만 그토록 많은 의문 제기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캐릭터를 저버린 적이 없다. 그 이유는 하나다. 그것이 많은 시청자분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시청자분들이 보면서 훨씬 편안하게 볼 수 있게 만드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 이외에 무슨 이유가 있을까.

 

<무한도전>은 왜 갑자기 바보 전쟁이라는 타이틀로 이른바 바보 어벤져스를 모으고, 또 그렇게 어벤져스에 선택된 출연자들은 기꺼이 거기에 응했던 걸까. 물론 <무한도전>에 나간다는 건 심형탁이 말했듯 소속사가 축하 파티를 할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막상 프로그램에 나왔다고 해도 거기에서 적극적으로 조금은 모자란 모습을 보여주거나 자신이 희화화되는 걸 기꺼이 감수한다는 건 또다른 얘기다.

 

심형탁은 지금까지 우리가 보지 못했던 독특한 바보 캐릭터의 모습을 보여줬다. 댄스 신고식에서 무반부로 듣도 보도 못한 뚜찌빠찌뽀찌를 연발하며 <미니언스>의 노래를 부르는 그에게 거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처음에는 멍해졌다가 잠시 후에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평소 피규어 마니아다운 모습으로 그는 엉뚱한 매력을 쏟아냈다.

 

<12>에서 가장 드러내지 않고 바보 캐릭터를 연기하는 인물은 김준호다. 그는 프로그램을 위해 적당히 무식함을 드러낼 줄도 알고 기상미션으로 김종민의 노비가 되자 비굴함을 연기해 웃음을 만들어낸다. 그것은 누가 봐도 코미디언으로서의 연기다. 김준호가 대단하게 여겨지는 건 그가 광대의 역할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것이다. <12>의 맛을 계속 살려낸 건 다름 아닌 그가 자처한 바보스런 광대 역할 덕분이다.

 

김준호와 김종민이 떡 하니 붙어 양대 바보 캐릭터를 선보이니 게스트로 초대되어 그 중간에 선 존박이 두드러지게 보인다. 별로 중요하지도 않을 것 같은 일에 너무 열심히 하는 모습이 드러나면서 존박은 어딘지 김종민을 닮은 듯한 이미지로 캐릭터화되었다. 그러고 보면 <12>이든 <무한도전>이든 항상 그들은 바보 캐릭터가 가진 낮은 위치를 지향하고 있었다. 그것이 자신들이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주는 본분이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뇌섹남(뇌가 섹시한 남자), 뇌섹녀가 새로운 신조어로 올라왔고, 이를 표방한 예능 프로그램들도 생겼다. 하지만 이런 뇌섹남, 뇌섹녀보다 바보 캐릭터에 대한 갈증이 훨씬 깊었던 모양이다. <무한도전>이 바보 어벤져스를 꾸리고 <12>이 늘 그렇듯 바보 같은 복불복 게임에 집착하는 건 그래서가 아닐까.

 

<무한도전>의 이른바 바보 어벤져스가 찾아간 숙소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바보 같은 세상에 바보가 아닌 것이 바보다.’ 아마도 바보에 대한 희구는 어쩌면 바보 같은 세상에 의해 비롯되는 일일 게다. 저마다 똑똑하다고는 하지만 어째서 세상은 이토록 살기가 힘들어지는 걸까. 똑똑함을 주장하지만 그래서 헛똑똑이인 세상. 우리가 바보들에게서 심지어 삶의 위로를 받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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