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캐스팅', 액션 최강희, 웃음 김지영, 짠내 유인영

 

SBS 월화드라마 <굿캐스팅>은 마침 경쟁작이 없는 좋은 대진 운(?)을 타고 났지만, 그렇다고 운에만 기댄 드라마는 아니다. 대본의 짜임새는 허술해도, 나름의 볼거리와 마음을 잡아끄는 유인 요소들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건 다름 아닌 캐릭터의 매력이다.

 

드라마업계에서는 불문율처럼 자리한 이야기가 '캐릭터가 살면 드라마가 산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소 이야기가 약하다 해도 매력적인 캐릭터가 있으면 시청자들이 찾아보게 된다는 것. 거꾸로 이야기해서 이야기가 제 아무리 촘촘해도 캐릭터가 잘 살아나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도 업계의 불문율 중 하나다.

 

그 관점에서 보면 <굿캐스팅>은 캐릭터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보여주는 드라마의 전형처럼 보인다. 여기 등장하는 국정원 요원 백찬미(최강희), 임예은(유인영) 그리고 황미순(김지영)은 시청자들이 다소 허술한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를 보게 되는 가장 큰 이유이자 사실상의 드라마가 하려는 메시지의 전부다.

 

한국판 미녀삼총사의 콘셉트를 가져왔지만, <굿캐스팅>은 남녀의 성 역할 고정관념을 뒤집어 놓은 것이 진짜 콘셉트다. 백찬미, 임예은, 황미순이 작전의 전면에서 뛸 때, 팀장이지만 이를 보조해주는 동관수(이종혁)는 때론 현장에서 아이를 보기도 하는 면면을 보여준다. 겉으로는 동관수가 상사지만, 사실상은 백찬미에게 질질 끌려 다니는 이 관계의 역전은 성 역할은 물론이고 상하식 지위의 역할까지 뒤집는 것으로 통쾌한 웃음을 준다.

 

이것은 백찬미와 윤석호(이상엽)의 멜로 관계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주로 남녀 간의 멜로가 주로 남성의 주도로 흘러가던 방식과 달리, <굿캐스팅>은 그 주도권을 온전히 백찬미가 끌고 간다. 물론 두 사람의 겉에 드러난 관계 역시 백찬미가 윤석호의 비서로 상하관계가 설정되어 있지만 실질적인 관계의 면면은 정반대라는 것이다.

 

백찬미와 임예은 그리고 황미순은 그 캐릭터만으로 우리네 여성들의 현실을 뒤집는 면을 보여준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큰 볼거리이자 미덕으로 지목되는 액션을 담당하는 백찬미가 당당하고 대찬 능동적인 여성상을 보여준다면, 백수에 가까운 남편의 바가지를 긁는 황미순이나 어쩌다 싱글맘이 되어 일과 육아 사이에서 갈등하는 임예은은 그 여성으로서의 쉽지 않은 삶에도 불구하고 이를 뛰어넘는 작전을 수행해내는 인물들이다.

 

이 캐릭터들은 또한 그 색깔이 분명해 이 드라마가 가진 세 가지 색채를 만들어내는 장본인들이다. 백찬미가 시원시원한 액션의 색깔을 보여준다면, 임예은은 짠하면서도 귀여운 색깔을 보여주고, 황미순은 공감대와 함께 빵빵 터지는 웃음의 색깔을 더해준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굿캐스팅>을 보며 액션에 몰입되고, 짠한 현실에 공감하며, 빵빵 터지는 웃음에 즐거워진다.

 

물론 여기에는 이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제대로 표현해내는 연기자들의 매력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최강희는 실로 이 작품을 통해 액션배우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고, 유인영은 코믹함과 짠함을 귀여운 모습으로 소화해내고 있으며, 무엇보다 김지영은 몸 사리지 않는(?) 코미디 연기로 큰 웃음을 주고 있다. 실로 좋은 캐릭터에 좋은 캐스팅이 만나 이뤄낸 시너지가 아닐 수 없다.(사진:SBS)

‘굿캐스팅’의 캐릭터 판타지, 스파이 액션은 덤이다

 

한국판 <미녀삼총사>처럼 보인다. 똘끼 넘치는 막강 요원 백찬미(최강희)에 싱글맘 요원 임예은(유인영) 그리고 보험아줌마로 살아가며 임무를 수행하는 황미순(김지영)이 그 삼총사. SBS 새 월화드라마 <굿캐스팅>은 <미녀삼총사>를 우리 식으로 해석했다는 게 그 인물 구성을 통해서 먼저 느껴진다.

 

이들이 앞으로 펼쳐나갈 이야기는 물론 국제적인 산업스파이이자 동료 요원들을 살해한 마이클 리를 잡기 위한 작전이지만, 사실 그것보다 더 시청자들의 마음을 끄는 건 이들 캐릭터들의 면면이다. 작전 수행을 위해 교도소에 들어가 살인무기 같은 액션으로 순식간에 그 곳을 장악해버리는 백찬미가 통쾌한 걸 크러시의 매력을 보여준다면, 요원이라기보다는 보험아줌마에 가까운 황미순은 주부로서의 공감대를 끌어오며 웃음을 선사하는 인물이다. 또 현장보다는 안전한 데스크로 오래오래 버티는 게 꿈인 임예은은 홀로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으로서의 면면이 시청자들을 더 공감하게 만든다.

 

즉 <굿캐스팅>은 스파이액션에 뛰어들게 되는 지극히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요원들의 이야기가 핵심이다. 그런데 그 이야기는 싱글맘이나 주부 같은 우리네 현실 정서를 담아낸다는 점에서 <미녀삼총사>와는 궤를 달리한다. 어찌 보면 국정원 요원이긴 하지만 소외된 주변인물로 살아가는 아웃사이더들이 작전을 수행해가는 캐릭터 판타지를 이 드라마는 담으려 하고 있다.

 

<미녀삼총사>에 세 미녀를 관리하는 찰리가 있었다면 <굿캐스팅>에는 동관수(이종혁)가 그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도 우리 식의 정서가 이 캐릭터에 들어간다. 백찬미와 사내커플이었다가 헤어진 동관수는 어딘지 팀장이긴 해도 이들 3인방에게 질질 끌려 다닐 것 같은 그런 캐릭터다. 3인방이 보여줄 통쾌하고 유쾌한 작전 과정 속에서 그들에게 짓눌리면서도 인간미를 보여줄 동관수의 코미디가 기대되는 이유다.

 

전반적으로는 코미디에 방점을 찍고 있지만, 드라마의 추진력은 권민석(성혁)이 마이클 리에게 살해당한 사건이다. 임예은의 남자친구였고 그가 키우는 딸 소희(노하연)의 아빠였던 권민석이 사망한 그 사건현장에는 백찬미도 황미순도 있었다. 그의 죽음은 특히 당시 팀장이었던 백찬미에게 작지 않은 상처로 남았을 터였다. 그러니 마이클 리를 추격하게 하는 강력한 동기가 이들 모두에게 추진력을 만들어줄 것으로 보인다.

 

월화극으로 편성된 <굿캐스팅>은 그 편성 시점에 있어서도 운이 좋다. 동 시간대에 방영되고 있는 경쟁작들이 이렇다할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tvN <반의 반>은 12부작으로 조기종영을 앞두고 시청률이 1%대 밑으로 떨어질 위기에 처해있고 차기작인 <외출> 역시 2부작 단편이다. KBS <본 어게인>은 3%대 시청률에 머물며 이렇다 할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고 JTBC는 드라마페스타 단편 2부작 <탁구공>을 재방송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니 적수가 없는 <굿캐스팅>은 첫 회부터 12.3%(닐슨 코리아)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물론 <굿캐스팅>에도 약점이 없는 건 아니다. 전체적으로 코믹한 캐릭터에 집중하다 보니 작전 과정에 있어서 다소 개연성이 떨어지는 장면들은 시청자들의 몰입을 방해하는 면이 있다. 이 드라마는 코미디가 맞지만 그 코미디가 진지한 작전 상황을 뒤집는 데서 나온다는 걸 염두에 두면 작전 자체가 갖는 긴박감과 개연성 또한 중요하다는 걸 인지할 필요가 있다. 이런 약점들을 보완해나간다면, <굿캐스팅>은 정서적으로나 캐스팅으로나 편성에 있어서나 괜찮은 결과를 낼 것으로 보인다.(사진:SBS)

‘왜그래 풍상씨’ 돌아온 문영남 작가의 가족극, 이번에도 통할까

‘가족은 힘인가, 짐인가?’ KBS 수목드라마 <왜그래 풍상씨>의 기획의도에 들어간 이 한 줄은 아마도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를 가장 잘 압축해놓은 것일 게다. 이 드라마는 1인 가구가 보편적 삶이 되어가고 있는 가족 해체 시대에 특이하게도(?) 가족의 의미를 되묻고 있다. 그것도 트렌디한 장르물들이 주로 편성되는 수목의 시간대에. 


아마도 보통의 작가가 수목극에 가족드라마를 하겠다고 했다면 결코 받아들여지기 어려웠을 게다. 하지만 문영남 작가다. 항상 드라마가 나올 때마다 막장이냐 아니냐를 두고 논란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늘 기대 이상의 시청률을 만들어내는 작가이고, ‘민폐캐릭터’가 항상 등장해 시청자들을 뒷목 잡게 하는 비슷한 드라마 공식을 활용하지만 그래도 일정 부분의 메시지를 던지는 작가다. 무엇보다 그저 그런 가족드라마가 아니라 화제를 일으키는 가족드라마를 쓴다는 점이 문영남 작가가 가진 힘이다. 

실제로 <왜그래 풍상씨>는 2회 만에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와 캐릭터들을 일목요연하게 담아냈다. “동생을 자식처럼 착각하며” 살아가는 착한 중년 아저씨 풍상(유준상)을 중심으로 뒷목 잡게 하는 민폐캐릭터들이 줄줄이 등장했다. 이름에 캐릭터의 성격을 넣는 문영남 작가의 특징대로 동생들은 저마다 풍상(아마도 바람 잘 날 없는 인물이라는 뜻일 게다)을 가만 놔두지 않는다. 

도박 중독으로 하다못해 카센터 하는 풍상의 가게에서 타이어를 훔쳐다 내다팔아 도박을 하는 진상(오지호), 하는 일없이 자격지심만 강해 사기나 치고 다니며 할말 못할 말 쏟아내는 화상(이시영), 그나마 정상적으로 성공한 의사의 삶을 살고 있지만 어쩌다 유부남과 사랑에 빠진 정상(전혜빈) 그리고 배다른 자식으로 아버지가 버리려하는 걸 풍상이 거둬 키운 막내 외상(이창엽)이 그들이다. 

민폐캐릭터는 동생들만이 아니다. 집을 나간 후 소식이 없다 어느 날 갑자기 죽어 돌아온 아버지가 그렇고, 그가 죽자 남긴 유산은 없나 다른 남자와 찾아온 어머니 노양심(이보희)이 그렇다. 그나마 이 힘든 삶을 버텨내는 생활력 강한 풍상의 아내 분실(신동미)이 있지만, 그도 이제 더 이상 버티기 힘든 상황이다. 분실은 무려 18년 간이나 동생들을 거둬 살고 있지만 이제 자신의 친정아버지 보구(박인환)를 모시고 싶어한다. 그런데 어쩐지 이 친정아버지도 풍상의 짐이 될 인물처럼 보인다. 이런 바람 잘 날 없는 집안에서 풍상의 딸 중이(김지영) 역시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다. 

<왜그래 풍상씨>는 그래서 전형적인 문영남표 가족드라마의 틀을 가져온다. 민폐캐릭터들이 줄줄이 서서 풍상을 가만 놔두지 않는다. 하지만 풍상이라는 캐릭터가 특이하다. 이 정도면 가족이 아니라 원수로 보일 정도인데, 그는 “그래도 가족”이라며 함께 모여 밥 한 끼를 하는 걸 행복으로 여긴다. 도대체 풍상은 왜 이러는 걸까. 

<왜그래 풍상씨>는 그 제목에 담겨있는 것처럼 풍상이라는 인물이 왜 가족이 더 이상 힘이 아니라 짐이 되기도 하는 가족해체시대에도 이토록 가족에 집착하는가를 그린다. 가족드라마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어지고 있는 지금, 그것도 주로 트렌디한 장르물을 담던 수목 시간대에 이 드라마가 들어와 있는 건 그래서 자못 도발적이다. 이건 역발상일까 아니면 시대착오일까. 

역발상으로 본다면 <왜그래 풍상씨>는 의외로 가족해체시대에 오히려 갖게 되는 가족의 의미를 되묻는 드라마로 보일 수 있다. 풍상이라는 인물이 보여주는 헌신적인 가족애는 이제 현실에서 찾기 쉽지 않은 모습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먹먹함을 줄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이를 현실성 없는 이야기로 보게 되면 이 드라마는 시대착오적인 느낌으로만 다가올 수 있다. 과연 시청자들은 어느 쪽에 손을 들어줄까. 문영남 작가의 수목극이 어떤 반응을 일으킬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사진:KBS)


<펀치>, 김래원의 지독한 허무주의에 공감하는 까닭

 

그러니까 이걸로 너 나오게 할 거야. 하경아 세상 안 바뀌어. 너부터 살아.” <펀치>의 박정환(김래원)이 전 처인 신하경(김아중)에게 건네는 이 말 속에는 세상에 대한 지독한 허무주의가 깔려 있다. 세진자동차를 부도내 해고노동자 열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10조 원의 현금을 외부로 유출하고 단 한 푼도 갚지 않은 김상민 회장(정동환)과 그와 공조한 이태섭 대표(이기영), 이태준 총장(조재현)을 한꺼번에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는 진술서. 그 진술서를 받아내고도 박정환은 그들을 처벌하기보다 딸 예린(김지영)이의 엄마 신하경을 풀려나기 위한 카드로 그 진술서를 활용한다.

 

'펀치(사진출처:SBS)'

박정환에게 있어 세상의 현실이란 정글이다. 누구 한 사람의 비리를 파헤치고 그에게 법적인 처벌을 받게 한다고 해도 달라질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니다. “잡으면 딴 놈이 그 자리 앉을 거야. 똑같은 놈이거나 더 한 놈이.” 그가 이렇게 말하는 건 어찌 보면 자신이 살아온 삶에 비춰봤을 때 당연한 일이다. 박정환이 처한 상황을 보라. 그가 뇌수술을 받다 깨어나지 못할 것이란 이야기에 그와 평생을 같이할 것 같던 이태준은 그를 버렸다. 그리고 그가 빈 자리를 그의 숙적인 조강재(박혁권)가 차지했다.

 

반면 윤지숙(최명길) 장관과 정반대 위치에 서 있던 박정환은 이제 그녀의 편에 서서 이태준과 대결을 벌이는 입장이 됐다. 영원한 동지도 없고 영원한 적도 없다. 말 그대로 살아남는 것이 유일한 목적일 수밖에 없는 생존경쟁의 정글이다. 그러니 박정환에게 세상은 바뀌지 않는 허무의 공간이다. 그가 풀려나 집으로 돌아오는 신하경을 기다리며 딸 예린과 진술서로 종이비행기를 접어 날리는 장면은 그래서 기묘한 허무와 공감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결국 지켜야할 건 내 가족밖에 없는 세상. 그 세상에 대한 지독한 허무주의다.

 

유일하게 그가 허무주의를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최고의 권력을 갖겠다는 그 야망이었으나 이제 시한부 인생 선고를 받은 이상 그런 야망은 아무런 소용도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대신 그를 지탱하게 하는 유일한 힘은 예린이와의 약속이다. 엄마를 보호해주겠다는 약속. 그래서 가족을 지켜내겠다는 약속. 그것을 위해서는 진흙탕 속에라도 뛰어들겠다는 그 모습에서 발견되는 건 우리네 가장들의 얼굴이다. 나아질 전망도 없는 지독한 정글 속에서 어떻게든 버텨내 가족을 지켜내려는 가장들의 몸부림.

 

그런 세상에 대해 신하경은 조금 다른 생각을 말한다. 그녀는 이 정글이 앞으로 딸 예린이가 살아갈 세상이라고 말한다. 예린이에게는 집에서 위인전을 읽어줄 엄마가 필요하다는 박정환의 말에 그녀는 정직하고 성실하게 위인들은 살았어도 예린아 너는 그러면 안돼 그럴까?”하고 반문한다. “조금만 앞으로 가자고 애원한다.

 

신하경의 이상과 박정환의 현실. <펀치>는 어찌 보면 이 두 상반된 입장의 대결처럼 보인다. 물론 이 드라마는 막연한 이상의 판타지를 말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그 지독한 현실 속에서 허무주의의 늪에 매몰되려 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정환이 보여주는 지독한 허무주의에 깊은 공감을 하게 되는 것은 아프지만 그것이 우리네 현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한 인물 몇몇 바뀐다고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두 사람의 상반된 입장의 부딪침이 흥미롭게 다가오는 건 그 귀결점으로서 예린이라는 그들 공통의 미래가 놓여져 있기 때문이다. 과연 박정환은 이 지독한 허무주의를 넘어서 무언가 현실의 변화를 꿈꿀 수 있을까. <펀치>가 주는 흥미진진함은 바로 이 허무주의에 공감하게 되는 현실과 대결하는 드라마의 날선 의식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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