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라를 더하는 오디션, 아우라를 빼는 리얼 버라이어티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나는 가수다'(사진출처:MBC)

이소라가 정말 저런 가수였나. 과거 '이소라의 프로포즈'로 익숙하게 그녀를 봐왔던 이들이라면 '나는 가수다'의 첫 무대에 올라와 눈을 지그시 감고 온 몸 세포 하나하나로 감정을 노래에 실어 부르는 이소라의 모습에 전율을 느꼈을 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바람이 분다'를 부를 때 진짜 바람이 부는 듯한 그 스산함과 처연함과 강렬함을 느꼈을 지도. 아마도 '나는 가수다'에 대한 우려 섞인 시선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라고 하더라도 이 느낌만큼은 분명했을 것이다.

이소라라는 가수를 재발견하게 되는 것은 '나는 가수다'가 가진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는 형식 때문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밑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즉 일반인들은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조금씩 성장해 최후의 1인까지 올라간다. 이 과정에서 일반인은 스타가 된다. 경쟁에서 살아남고, 그 살아남는 과정의 스토리가 부여되고, 또 때로는 심사위원이 그 후보자에게 권위를 부여하면서 그 일반인은 하나의 스타로서의 아우라를 갖게 된다. 이것이 오디션 프로그램의 구조다.

이소라는 그 무대에 첫 발을 디딘 것이다. 이소라는 물론 이미 가창력을 인정받은 기성가수다. 하지만 대중들의 기억 속에는 가물가물한 존재다. 오래도록 활동을 하지 않았고 무대에 선 모습을 보여주지도 못했다. 가요계가 아이돌 중심으로 편제되면서 점점 설 자리는 줄어들었다. 아마 이것은 '나는 가수다'에 출연한 대부분의 가수들(가창력으로 승부하는 그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이소라는 그 첫 무대에서 확실하게 자기 존재감을 대중들에게 알렸다. 그 사실은 이미 음원차트 꼭대기에 랭크되어 있는 '바람이 분다'라는 곡을 통해 증명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시작일 뿐이다. 이소라는 앞으로 계속해서 '나는 가수다'라는 서바이버 과정을 통해 스토리를 만들 것이고, 이것은 그간 지워졌던 가수로서의 이소라라는 아우라를 만들어나갈 것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1박2일'에 합류한 엄태웅의 첫 신고식은 팬티 바람에 까치집 지은 머리칼로부터였다. '1박2일' 멤버들이 새벽에 엄태웅의 집을 급습해 그의 가감 없는 리얼한 모습을 끄집어냈다. 어찌 보면 무례할 수 있는 그 행동에 대해서 엄태웅은 오히려 사람 좋은 미소를 던졌다. 어딘지 어색하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하려는 자세를 보였다. 그 수수함과 꾸미지 않은 모습에 대중들을 반색했다.

엄태웅은 엄포스라고 불리며 독특한 자기만의 아우라를 가진 배우다. 하지만 첫 신고식에서 강호동이 이미 여러 차례 선언한 것처럼, 엄태웅은 앞으로 계속해서 이 아우라를 벗겨내는 위치에 서게 될 것이다. 그것이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구조이기 때문이다. 리얼 버라이어티쇼는 톱 연예인이 들어와 자신이 갖고 있던 이미지를 던져버리고 보통 사람과 똑같은 모습을 드러낼 때, 그 리얼리티에 열광하게 되는 형식을 갖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1박2일'(사진출처:KBS)

우리는 이승기가 첫 등장했던 그 어색한 첫 날을 기억하고 있다. 그는 추운 날씨에 찬물에 손 담그는 게 귀찮아 세수조차 안하는 멤버들과 달리, 세안을 하고 피부 관리까지 하는 '1박2일'의 야생에 적응 안 된 모습을 보였었다. 현재 이승기는 그 때의 모습과는 달리, 완전히 야생에 적응한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여전히 자신만의 아우라를 갖고 있지만, 아우라를 벗어내고 망가질 때는 확실히 망가지는 모습도 선사한다.

엄태웅도 그 길을 따라갈 것이다. 그는 첫 등장에서부터 확실하게 그 친근하고 털털하며 선한 이미지를 선보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굳이 예능에 적응하려 노력하지 않아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적응이 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엄포스의 아우라가 하나씩 벗겨져나갈 때마다 큰 웃음을 줄 것이다. 리얼 버라이어티쇼라는 형식이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한쪽에서는 새롭게 아우라가 덧붙여지고, 다른 한쪽에서는 아우라가 벗겨져나가는 이 두 모습은 아마도 작금의 예능 프로그램의 두 축을 보여주는 것일 게다. 오디션 프로그램과 리얼 버라이어티쇼. 위로 올라가는 구조와 한없이 대중들 가까이 내려오는 구조. 일반인들이 참여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한없이 일반인을 상승시켜 스타의 위치와 만나게 한다면, 기성가수가 참여하는 '나는 가수다'는 가수의 오디션의 심사를 일반인이 한다는 위치에서 접점을 만든다. 일반인의 위치를 높여놓은 것이다. 반면 리얼 버라이어티쇼는 스타를 한없이 낮춰 대중들과 만나게 한다. 결국 이 둘이 만나게 되는 것은 대중들과의 눈높이이고 공감이다.

'나는 가수다', 가수의 진심을 엿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나는 가수다'(사진출처:MBC)

이소라, 정엽, 백지영, 김범수, 윤도현, 박정현 그리고 김건모. 오롯이 이렇게 7명의 가수들을 TV에서 그것도 한 무대에서 만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MBC '우리들의 일밤'에서 새롭게 시작한 '나는 가수다'에 대한 우려는 오랜만에 TV 무대에 선 이소라가 '바람이 분다'를 열창하면서 기대감으로 바뀌었다.

서바이버 형식으로 기성가수들을 서열화한다는 비판적인 시선이 있었지만, 우려와 달리 '나는 가수다'가 보여준 무대는 제목처럼 가수의 존재감을 알리는데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일일이 인터뷰를 통해 "가수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저마다 갖고 있는 그 생각대로 무대를 펼쳐나갔다.

서바이버라는 형식은 이제 무대가 익숙해져 관성화된 프로 가수들에게 오히려 긴장감과 설렘을 부여했다. 마치 첫무대에 선 것처럼 그들은 한 음, 한 구절에 정성을 다해 노래를 불렀다. 그 진정성은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해졌고, 프로그램의 카메라는 그 장면들을 포착했다.

카메라는 그 라이브로 전해진 생생한 감동과, 가수라는 존재에 대한 의미부여를 어떻게든 영상으로 전달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노래 중간 중간에 인터뷰를 끼워 넣었는데 대중들의 노래에 대한 갈증은 오히려 그 편집 자체를 불편하게 느낄 정도였다. 노래만으로도 충분했다는 얘기다. 첫 방에 대한 부담감이 과도한 편집을 낳았던 셈이다.

관객들의 투표로 이루어지는 서바이버 형식이라고는 하지만, 어찌 보면 이것은 세대별로 나뉘어진 관객들의 호불호가 투표를 통해 이뤄진다는 점에서 서베이 형식을 닮아있다. 어떤 가수가 어떤 세대에 더 호감을 주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는 점이 그렇다. 서바이버 형식이 갖는 서열화의 느낌은 이 같은 서베이 형식들을 다양하게 부가함으로써 다양한 취향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 이것은 이 프로그램이 앞으로 해야 할 숙제처럼 보인다.

사실 이처럼 가창력이 월등한 가수들이 프라임타임대의 TV 프로그램에 자주 얼굴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만큼 대형기획사 중심의 아이돌과 비주얼에 편중된 음악 프로그램들의 획일성을 말해주는 이 비극적인 상황은,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의 존재 이유가 된다. 이 프로그램은 가수의 본질이 자꾸만 잊혀지고 있는 현 세태에, '가수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그 답에 접근해가는 과정을 전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겠지만 조금 시간을 갖고 남은 숙제와 해나가야 할 과제들을 풀어나간다면 분명 보상은 있을 것이다. 이런 예측을 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보다 서바이버라는 조금은 당혹스런 형식에도 불구하고 선뜻 출연에 응한 가수들의 진정성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서바이버 형식이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은 아니지만 '대중들의 원하는 방식'임으로, 그 무대에 서서 노래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는 태도를 보였다.

최고의 무대가 자신들의 노래실력을 자랑하는 무대가 아니라, 대중들을 위해 당혹스러움을 감수하고라도 기꺼이 서는 무대라는 진심을 담을 때, 대중들은 반응하기 마련이다. 적어도 이 프로그램이 가요계의 변해가는 제반 상황들 속에서 희석되어가고 있는 가수의 진심을 담아내길 기대한다.

'나는 가수다',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나는 가수다'(사진출처:MBC,OSEN)

오디션 프로그램은 이제 막 떠오르는 예능의 새로운 형식이다. '슈퍼스타K'의 성공, 그리고 이어 지상파에서 만들어진 '위대한 탄생'의 성공으로 어느 정도는 검증된 형식. 무엇보다 노래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노래하는 가수들이 대결을 벌이고, 누군가는 탈락한다는 사실이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절치부심 김영희 PD가 들고 나온 '나는 가수다' 라는 프로그램은 노래라는 정서적인 자극과 대결이라는 긴장감이 어우러지고, 거기에 저마다 노래로서는 한 획을 그은 가수들의 스토리가 겹쳐지면 그 폭발력은 분명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흥미로운 건 첫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가수들의 면면이다. 이소라, 윤도현, 김건모, 백지영, 김범수, 박정현, 정엽은 이미 가창력이 검증된 가수들이지만, 최근 들어 이른바 음악 프로그램에는 그다지 자주 출연하지 않는 가수들이다. 음악 프로그램 대부분은 아이돌들이 장악하고 있고, 이들이 출연할만한 프로그램들은 자정에 방영되는 라이브형 음악 프로그램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가수들 입장에서도 저녁 시간대에 자신의 음악을 선보일 수 있는 이 프로그램이 나쁜 건 아니다. 이미 검증된 가수들이기 때문에 당락은 대중들의 취향이 반영되는 것일 뿐, 가창력 같은 실력이 판가름 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이 프로그램은 음악만을 들려주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다양한 스토리를 전해주는 예능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방송 출연이 많지 않은 이들 가수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 만일 떨어진다고 해도 그 가수는 바로 그것 때문에 대중들에 의해 다시 재발견될 수 있다. 만일 떨어지지 않고 계속 살아남는다면 그것 또한 그 가수의 새로운 스토리가 되어 회자될 가능성이 높다. 요즘처럼 가수들에게 나름의 스토리가 중요한 시대에, '나는 가수다'는 프로그램 제목처럼 그 가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프로그램이 될 수 있다.

이렇게 노래를 중심에 세워두고 몰입해서 듣게 된 밑바탕은 '슈퍼스타K'나 '위대한 탄생' 같은 기존 오디션 프로그램들의 학습효과가 컸다. 대중들은 이제 노래를 들으면서 창법이나 발성, 성량, 스타일 같은 걸 자꾸만 찾아가며 듣게 되었다. 심사위원들의 멘트 하나하나가 대중들의 귀를 뚫어준 셈이다. 게다가 늘 기획형 가수들의 무대로 도배되는 음악 프로그램들 속에서 가창력만 오롯이 세워두고 노래 부르게 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들은 노래의 참맛을 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가수다'에서 누구나 인정하는 가창력을 가진 가수들이 부르는 노래는 바로 이런 최근 생겨난 진짜 노래에 대한 대중들의 갈증을 어느 정도 풀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성공하게 되면, 가장 큰 장점은 스토리가 기존 리얼 버라이어티쇼들보다 훨씬 다양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그 성격상 무대에 오르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새로운 이야기들을 끌고 온다. 이것은 매번 고정된 MC들이 출연해 어떤 동일한 목적의 미션을 부여받고 그걸 수행해가면서 만들어내는 스토리의 반복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꽤 오랫동안 리얼 버라이어티쇼라는 형식은 예능의 주도권을 장악해왔다. 하지만 앞으로도 이 형식이 계속 예능의 트렌드가 될 지는 미지수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그 주도권을 쥐게 되면 상황은 달라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가진 진화의 힘을 간과할 수도 없을 것이다. 만일 고정적인 MC들의 반복된 이야기가 어떤 한계로 지목될 때, MC들이 일반인들을 좀더 적극적으로 프로그램 속으로 끌어들이는 방식을 취한다면 상황은 또 달라진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가진 형식적인 강점은 현재의 대중정서와 맞물려 분명 힘을 발휘하고 있다. 하지만 꽤 오랫동안 아성을 지켜온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위기상황에서 진화를 멈춘 채 허망하게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과연 김영희 PD의 노림수는 통할 것인가.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