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저씨’, 우리에게 이런 퇴근길이 있다는 것만으로

tvN 수목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정희네 가게에는 이제 일터에서 퇴근한 아저씨들이 모여든다. 술판이 벌어진다. 일터에서 겪은 스트레스들을 그 퇴근길 술 한 잔으로 풀어낸다. 왁자한 분위기에 술기운에 내놓는 과장된 이야기들은 그래서 어딘지 쓸쓸하지만 그래도 그들은 그렇게 한바탕 웃음으로 하루를 버텨낸다. 퇴근길이 그나마 주는 위로다. 

하지만 정작 정희네 가게를 운영하는 정희(오나라)는 퇴근이 없다. 1층이 주점이고 2층이 집이니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2층에서 1층으로 내려오는 것이 그의 일과다. 모두가 돌아가는 밤 시간, 정희는 퇴근하는 이들을 부러워한다. 그래서 자신도 퇴근하겠다고 그들을 따라나선다. 퇴근 기분을 내며 동네 한 바퀴를 돌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정희의 발길 역시 쓸쓸하다. 

정희네 가게가 문을 내리고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아저씨들과, 그 아저씨들을 따라나선 정희 는 이제 퇴근하고 돌아오는 박동훈(이선균)과 이지안(이지은)을 만난다. 박동훈은 바람을 피운 아내 때문에 퇴근길이 고역이 되었고, 이지안은 늘 그랬듯 휴식보다는 챙겨야할 것들이 더 많은 퇴근길이 힘들었다. 하지만 아저씨들과 정희 그리고 박동훈과 이지안이 함께 골목길을 걸으며 퇴근하는 그 길이 달라보인다.

수다쟁이 아저씨 제철(박수영)은 같은 동네에 사는 여직원을 퇴사하고 나서야 알았다고 하고, 그의 이야기에 그만큼 직장 상사가 싫은 거라며 그의 친구가 대꾸한다. 그러면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직장 여직원의 퇴근길을 함께 하는 박동훈이 눈치 없다는 쪽으로 흘러간다. 하릴없는 이야기지만 그들의 이야기가 정겹고 훈훈하다. 제철은 세상의 모든 부장놈들은 “미친 놈, 개놈, 죽일 놈들”이라며 굳이 혼자 가도 된다는데 오버한다며 너스레를 떤다. 

정희는 갑자기 살갑게 이지안에게 자신들도 아가씨 같은 20대가 있었다며 이렇게 나이들 거 생각하니까 끔찍하지 않냐고 묻는다. 하지만 이지안은 뜻밖에도 이렇게 말한다. “전 빨리 그 나이 됐으면 좋겠어요. 인생이 덜 힘들 거잖아요.” 이지안의 그 말에 정희도 아저씨들도 자못 진지해진다. 너스레를 떨며 농담을 하던 아저씨들은 그 자리에 멈춰서 이 20대 같지 않은 이지안을 바라본다. 그 의미심장한 말에 깊은 공감을 하는 눈치다.

계단을 올라 이지안의 집 앞까지 가는 길. 늘 혼자 외롭게 혼자 걸었던 그 길을 함께 걷는다. 집 앞은 이지안에게는 상처가 떠오르는 곳이다. 빚독촉을 하는 이광일(장기용)에게 두드려 맞기도 했던 곳. 그래서 늘 불안함이 느껴지는 곳이지만 이렇게 함께 걸어 도착한 그 곳은 완전히 다른 곳처럼 느껴진다. 동훈의 형 상훈(박호산)은 갑자기 그 집 앞이 내려다보이는 건물 창을 향해 누군가를 부른다. 동네 아는 동생이 창문을 열자, 상훈은 그에게 이 집에 사는 이지안의 안전을 잘 챙겨달라고 부탁한다. 

“잘 자요”라고 말하며 돌아서는 정희와 아저씨들 뒤로 이지안은 “감사합니다”라고 말한다. 그 말에 상훈은 “잘 자요. 또 봅시다.”라고 말하고 고개 숙여 인사하는 이지안에게 정희는 “우리 가게 놀러오라”고 말한다. 박동훈은 들어가라며 “문단속 잘하고” 무슨 일 있으면 아까 봤던 이웃집 동생에게 도움을 요청하라고 한다. 돌아가는 그들을 이지안은 오래도록 문 앞에 서서 바라본다. 

직장을 다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는 퇴근길. 그 흔한 퇴근길이 새롭게 다가온다. <나의 아저씨>가 그려낸 이 퇴근길 풍경은 어쩌면 우리가 하루하루 힘들게 살면서도 버텨낼 수 있었던 힘이었을 거라는 것. 그건 나이 들어 이제 퇴직을 앞둔 중년들이나, 이제 막 세상으로 나온 청춘들이나 마찬가지다. <나의 아저씨>는 그 퇴근길 풍경 하나 속에 누구에게나 마주하고 있는 힘겨운 현실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퇴근길 하나가 주는 위안을 담아낸다. 

이지안을 데려다주고 돌아가는 길 정희가 문득 입을 연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어려서도 인생이 안 힘들지는 않았어.” 인생 다 산 것처럼 자신들만 힘들다 생각했던 이 중년들은 문득 청춘들의 힘겨움도 만만찮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우리 가게에 놀러오라는 정희의 말은 그런 뜻이었다. 적어도 퇴근길에서의 작은 위로 정도라도 함께 나누자는. 그래야 최소한 무너지지 않고 또 다른 하루를 버텨낼 수 있을 테니.(사진:tvN)

‘무도’로 돌아온 이효리, 보기만 해도 힐링 됐던 까닭

이효리가 돌아왔다.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으로는 3년 만이지만 사실 대중들이 느끼는 체감은 더 길다. 물론 본격적인 활동을 하지는 않았어도 그녀의 제주에서의 삶이나 간간히 들려오는 소식들로 그녀가 그리 멀리 떠나 있다고 느끼는 대중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지난해 말만 해도 촛불집회에 전인권, 이승환과 함께 ‘길가에 버려지다’를 불러 대중들의 입가에서 맴돌던 이효리가 아니었던가. 너무 멀리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항상 가까이 있는 것도 아닌 그 자리에 있어서일 게다. 이효리가 복귀하기까지 기간이 길게 느껴지고 또 그만큼 반가운 까닭은.

'무한도전(사진출처:MBC)'

<무한도전>에서 이효리는 스스로 “달라졌다”고 말했다. 물론 그렇다고 그녀가 과거에 보였던 독보적인 예능감이 사라졌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것보다는 훨씬 자연스러워졌다고 해야 할까. 솔직함이야 예나 지금이나 그녀가 가진 매력의 원천이지만, 어떤 무거움을 조금은 내려놓고 편안해졌다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무한도전> 멤버들과 이효리가 만나는 그 광경은 3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멤버들은 그녀의 강한 캐릭터 앞에 주눅 드는 모습으로 웃음을 주었고 이효리 역시 특유의 시원시원한 모습으로 그 웃음에 호응했다. 하지만 한 가지 달랐던 점은 줄곧 예전처럼 화를 내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모습을 보이며 합장을 하고 마음을 다스리는 장면을 보여줬던 점이다.

물론 그런 장면 역시 간간히 화를 다스리지 못하고 튀어나오는 욱하는 모습으로 인해 웃음이 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그녀가 진정으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건 놀라운 요가 동작을 통해서도 드러나는 일이었다. 요가가 그저 몸의 유연성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마음을 다스리는 수행이라며, 아픔을 피하지 않고 견딤으로써 그것을 넘어서는 과정으로서 요가를 설명했다. 

그녀의 진심이 가장 느껴진 대목은 “천천히 내려가는 것도 받아들일 때가 됐다”고 말한 부분이었다. 톱스타로서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걸 접고 사라지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했다. 다만 그렇게 내려오는 과정들을 하나하나 겪는 것이 진짜 어려운 일이라는 것. 과거에도 또 현재도 여전히 톱스타의 위치에 있는 그녀지만 이제 내려가는 일을 선선히 받아들인다는 그 말은 아마도 누구나 나이 들어가는 우리들 모두를 공감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효리는 스스로도 그걸 배워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그래서 사실은 “잊혀질까봐 무서웠다”고 말하기도 했고, 때론 욱하는 옛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 웃음을 주기도 했다. 그만큼 모든 걸 내려놓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고, 다만 그녀는 그것을 지향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 이런 부분은 득도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 더 현실감 있게 우리를 공감시키는 면이 있었다. 

이효리는 나이 들었고 또 나이 들어가고 있다. 그래서 웃을 때 눈가의 잔주름도 보이지만, 그런 것들이 오히려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 아름다움은 자연스러움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나이 들어가는 것을 거부하기보다는 순순히 받아들이는 자연스러움에서 나오는 아름다움. 

사실 빵빵 터지는 예능감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그것보다 그녀가 <무한도전>에서 시청자들에게 전한 진짜 선물은 그렇게 자연스레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준 그녀 자신이었다. 그것이 그녀의 모습을 보며 그 자체만으로도 어떤 힐링을 받는 느낌의 이유였다. 천천히 내려오고 있는 걸 받아들이고, 자연스럽게 나이 들어가는 걸 인정하는 데서 오는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 그런 그녀의 모습은 그 어떤 젊은 연예인에게보다도 오히려 찬란하다는 수식어가 어울리지 않을까.

저렇게 나이 들고 싶다…‘윤식당’ 윤여정의 아름다움

저렇게 나이 들고 싶다. 사실 그 누가 나이 들고 싶을까.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나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면 저렇게 나이 들고 싶다. tvN 예능 프로그램 <윤식당>의 윤여정을 보며 많은 중년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그녀에게서 나이를 실감할 수 있는 면들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할 이야기는 똑 부러지게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권위적이라는 느낌은 거의 없다. 

'윤식당(사진출처:tvN)'

<윤식당>의 사장으로서 윤여정이 상무인 이서진과 보이는 관계를 보면 그녀는 여전히 소녀 같다. 이서진이 무언가 새로운 걸 시도하자고 하면 처음에는 그게 되겠냐며 손사래를 치다가도 차츰 스스로 아이디어를 내고 그 이야기에 빠져든다. 그래서 결국은 그녀가 주동적으로 그 일을 하게 된다. 뭐 대단한 걸 시도하는 건 아니고 그저 점심 메뉴를 정하거나 하는 것 정도지만 그래도 적당히 져주며 이서진에게 맞춰가면서도, “너도 나영석이 만큼 날 시켜먹어”하고 투덜대는 모습은 귀엽다. 

처음 하는 식당 요리 도전에서 첫 손님에게 요리를 내놓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걱정하고 설레어하는 모습은 아이 같았다. 손님이 몰려들어 정신없이 요리를 하느라 혼이 빠질 지경이 되어 힘들어 하다가도, 손님이 또 없어 한가로운 주방에서는 누구든 나타나기만 해봐라 정말 맛있게 더 많이 줄 거야 하는 모습을 드러낼 때도 칭찬받고픈 아이 같은 순진무구한 얼굴이 나타난다.

보조를 해주는 정유미와 둘이 나란히 주방에서 일하는 모습은 마치 친한 자매의 언니 같다. 사실 정유미에게는 대선배일 것이다. 하지만 격의 없는 윤여정에게 정유미는 마치 그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척척 준비하고 챙겨준다. 어찌 보면 정유미가 엄마 같고 윤여정이 아이 같다. 물론 그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그렇다는 것이다. 윤여정은 정유미에 대해서 자신과는 정반대로 “굉장히 침착한 아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윤여정이 그녀를 잘 알고 있었으며 그러면서 그녀가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 만큼 마음을 열어놓고 있었다는 것이다.

신구 앞에서 윤여정은 선배님을 진심으로 챙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손님이 없는데도 웨이터 아르바이트생이라는 설정에 맞게 절대 앉으려 하지 않는 신구가 마음에 걸려 윤여정은 자꾸 앉으시라고 권한다. 영업이 끝나고 직원들끼리 챙겨먹는 늦은 점심에 내놓은 비빔국수를 먹고 신구가 “정말 맛있다”고 말하면 금세 얼굴이 활짝 펴진다. 선배에 대한 진심어린 존경이 있기 때문에 칭찬이 그만큼 달은 것일 게다. 

사실 우리네 현실에서 윤여정의 나이에 그렇게 일할 수 있는 것도, 또 나아가 개업이나 요리 같은 새로운 것들에 대한 도전을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마도 윤여정이 그래왔듯이 중년의 나이부터 중단 없는 노력과 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노년에도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단지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다. 여전히 젊은 세대들과 마음을 열고 소통하며 어우러질 수 있는가의 문제가 어떤 면에서는 능력치보다 더 중요하다.

윤여정은 아름답다. 그것은 그 사는 모습에서 나타나는 아름다움이다. 자신이 하는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고 나이 차이와 상관없이 스스럼없게 어우러진다. 그리고 나이가 세월의 무게를 얹어 주름을 만들어도 여전히 소녀 같은, 아이 같은 모습을 잃지 않는다. 아이 같이 순수한 모습을 가진 채 세월의 무게가 얹어져가는 모습은 아름답지만 슬프기도 한 일이다. 슬프면서도 아름답다. 

영업이 끝나고 일몰을 바라보며 윤여정은 말한다. 노을을 보는 게 너무나 슬프다고. 너무 아름다워서 슬프다고. 그래서 혼자일 때는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고. 마치 아이처럼. 윤여정은 그녀가 말하는 노을을 닮았다. 그리고 중년들은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그녀처럼 나이 들어가고 싶다고. 너무 아름다워서 슬픈, 아이 어쩌면 슬픔을 간직하고 있어서 아름다운 노을처럼.

<삼시세끼>, 재미 요소 줄었지만 그래도 충분히 즐거운

 

비가 추적추적 오는 득량도의 밤. tvN <삼시세끼>의 윤균상은 정말 술 마실 분위기가 나는 날이라고 했다. 빗소리에 장작 타는 소리가 들려온다. 에릭은 문득 이서진의 다음 시즌이 궁금하다. “형은 만일 다음 시즌에 삼시세끼를 또 가면 어촌이랑 농촌이란 계곡이 있어 어떤 걸 원해?” 이서진은 엉뚱하게도 축산이라고 말한다. 그 말에 윤균상은 재미있겠다고 맞장구를 쳐주고 에릭은 예전 꿈이 목장 하는 것이었다고 덧붙인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그리고 이어지는 나이 이야기. 이제 서른을 맞은 윤균상이 스물다섯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하자 에릭은 나이는 지나면 지날수록 빨라진다고 얘기한다. 이서진은 나이 마흔 다섯을 지나면 산 날보다 살 날이 작다는 걸 느낀다고 다소 쓸쓸한 소회를 꺼내놓는다. 술 한 잔이 곁들여진데다 윤균상의 말처럼 빗소리 장작소리에 고즈넉해지는 밤. 그들의 이야기는 지극히 평범한데 이상하게도 시청자들의 마음을 잡아끈다.

 

엄밀하게 말하면 이번 득량도에서의 <삼시세끼> 어촌편은 지난 시즌들과 비교해 재미적 요소가 많이 사라진 게 사실이다. 과거 만재도에서의 유해진과 차승원이 했던 <삼시세끼> 어촌편을 떠올려보라. 낚시에 피시뱅크에 화려한 요리와 게스트들까지 한 마디로 재미요소들이 버라이어티했다. 하지만 이번 득량도의 <삼시세끼>는 다르다. 거의 전 편이 에릭의 요리와 그 요리 때문에 조금씩 변해가는 이서진과 윤균상에 집중되어 있다.

 

이런 사정을 가장 잘 보여준 건 그들 스스로도 재미요소가 적다는 걸 알고 있었는지 뭍으로의 탈출을 시도하는 장면이다. 보통 이런 일탈이 벌어지면 더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고 그만큼 재미요소도 많아지는 게 정상이다. <삼시세끼> 정선편은 시장으로 마실만 한 번 가도 이야기들이 쏟아지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들의 탈출은 돈을 챙겨오지 못한 사정 하나로 허무하게 끝이 나버렸다.

 

낚시도 재미의 중요한 요소지만 낚시는 그 특성상 물고기가 잡히는 장면까지의 기다림이 지루할 수밖에 없다. 유해진은 그 지루함을 특유의 정서와 너스레로 풀어내면서 채워넣어줬다. 하지만 이번 시즌에서 낚시의 재능을 새롭게 알게 된 윤균상이 물고기를 척척 잡아주는 장면과 이서진이 한 마리를 잡아 명예회복을 하는 장면을 빼고 나면 그다지 분량이 많지 않다. 기대했던 강태공 에릭의 낚시도 심지어 감성돔을 잡았지만 워낙 작아 풀어줘야 했기 때문에 그리 큰 감흥은 없었다.

 

빗소리 들려오는 밤, 에릭이 슬쩍 그 아쉬움을 꺼내놓는다. “전체적인 거는 다 잘 맞고 다 좋은데 딱 하나 아쉬운 거는 웃음 포인트 하는 게 형밖에 없는 게 아쉬운 거지.” 에릭은 스스로 알고 있다. 자신이 그리 웃기는 캐릭터는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그런 에릭에게 이서진은 말한다.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야. 결국 사람은 그찮아 정혁아. 그냥 진심인거야. 내가 보기에는. 진심은 언젠가는 통하게 돼있어. 나는 결국 그런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사실 이서진의 이 이야기는 <삼시세끼>가 왜 많은 예능의 MSG를 빼놓고도 그렇게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끄는가를 잘 설명해준다. 예능이지만 웃음의 포인트에만 집착하지 않고 대신 그 상황과 그 속에서의 인물들이 말하는 진심을 전해준다는 것이 <삼시세끼>가 가진 놀라운 반전이라는 점이다. 기존의 예능적 의미로 보면 재미없는것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재미있는새로운 것들이 보이게 됐다는 것.

 

그 진심의 힘은 신뢰를 만들고 그래서 다소 심심할 수 있는 재미라고 해도 기꺼이 맛나게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가능하게 한다. 그건 이들이 이야기하는 요리와도 같다. “봐봐 아무리 맛있게 요리를 해도 먹는 사람이 그걸 즐겁지 않으면 맛있지가 않아.” 우리는 어느새 <삼시세끼>라는 요리를 그것이 어떤 것이든 기꺼이 즐겁게 맛보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하는 요리의 즐거움에 괜스레 우리도 즐거워지게 됐다. “요리는 정혁이형이 다 했는데 괜히 맛있다고 하면 내가 기분이 좋아요.”라고 말하는 윤균상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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