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 백선생>이 낮춰놓은 요리에 대한 진입장벽

 

보통 육개장이라고 하면 세 시간은 족히 공을 들여야 만들 수 있는 요리다. 고기를 푹 삶아야 하고 그렇게 삶아낸 고기는 일일이 먹기 좋게 잘라내야 한다. 국물을 내고 갖가지 재료들을 손질해 넣고 다시 끓여내야 비로소 육개장이 탄생한다. 물론 특별한 날에 엄마들이 정성을 들여 끓여낸 육개장 맛을 따를 건 없을 게다. 하지만 혼자 사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가족이 함께 산다고 해도 맞벌이 부부들이 많아져 누구 하나 이렇게 시간 들여 요리를 할 여력은 현실적으로 많지 않다. 그러니 정식은 아니지만 단 20분의 속성으로 그 육개장 맛을 내는 백종원표 레시피가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다.

 


'집밥 백선생(사진출처:tvN)'

20분에 뚝딱 만들어낸 육개장이 저 엄마들이 정성들여 끓인 육개장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사먹는 것보다야 낫지 않을까. 요리는 결과물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 또한 중요하다. 스스로 그럭저럭 만들어 끓여낸 육개장은 비록 간소화된 것이라도 우리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해주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20분 육개장이 갖고 있는 이 간편함은 아마도 <집밥 백선생>의 백종원 레시피가 갖는 가장 강력한 힘일 것이다.

 

요리는 어렵다? 사실 어려움보다 더 큰 문제는 귀차니즘이다. 삼시세끼를 해먹는다는 것은 물론 먹는 사람 입장에서는 즐거운 일일 수 있겠지만 요리를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귀찮은 일거리일 수 있다. <집밥 백선생>이 정곡을 찌른 곳은 바로 이 귀차니즘이다. 백종원의 역할은 대단히 특별한 요리를 선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나 익숙한 일상적인 요리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낸 것에 있다.

 

지난 5월부터 지금까지 <집밥 백선생>은 꽤 많은 레시피들을 공개했다. 우리를 처음 놀라게 한 건 만능간장처럼 한 번 만들어놓으면 두고두고 이런저런 요리에 사용할 수 있는 간편함이 요리에 가능하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이후에도 파스타를 라면 끓이듯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만능오일’, 다양한 고기 양념에 사용하는 만능소스같은 만능 시리즈를 소개했다. 이처럼 만능이 많아진 건 요리에 문외한인 남성들을 제자로 키운 덕(?)이다. 복잡한 건 딱 싫어하는 남자들에게 만능같은 요리 공식은 머리에 쏙쏙 들어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만능시리즈들에 주목하는 건 남자들만이 아니었다. 꽤 오랫동안 요리를 해온 주부들도 이 만능 시리즈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그 간편함 때문이었다. 굴전 하나를 만들어도 그냥 굴전이 아니라 초간단 굴전을 선보인다. 큰 사발에 굴을 넣고 부침가루를 넣어 조물조물 반죽하고 사발 한 켠에 계란을 풀어 계란 묻힌 굴을 기름에 부쳐내면 끝. 도대체 굴전 하나 만드는데 사발 하나로 계란 부치듯 쉽게 만든다는데 눈이 가지 않을 수 있을까.

 

물론 혹자들은 이처럼 간편한 레시피가 본래 음식의 고유한 맛과는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집밥 백선생>이 백종원표 간편한 레시피를 알려주는 건 본래 음식의 고유한 맛을 지워버리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그 간편함을 더해 요리의 문턱을 낮춰주는데 그 목적이 있다. 그렇게 요리의 세계에 첫발을 디디고 혹 시간 여력이 있다면 더 본연의 음식을 시도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집밥 백선생>1월 말을 기점으로 휴식을 갖는다고 한다. 6개월 남짓의 시간들이었지만 그간 꽤 많은 레시피들을 알려주었고 그것이 요리의 저변을 확대시킨 것도 분명하다. 된장찌개를 하나 끓이는 것도 또 김치로 전을 부치는 것도 그 레시피 자체보다 힘든 건 요리에 뛰어들기 위해 넘어야 하는 심리적인 진입장벽이다. <집밥 백선생>은 그 간편한 레시피를 통해 진입장벽을 한층 낮춰놓은 점에서 그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총과 봉 잡은 여성들, 부엌칼 든 남성들

 

소림사라는 이름 석 자에는 그 자체로 가슴을 뛰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중국 무협영화들을 섭렵해왔거나 혹은 무협지에 푹 빠졌던 경험이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SBS <주먹 쥐고 소림사>가 저 강호동이 이끌어온 <스타킹>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들어오게 된 가장 큰 요인은 아무래도 이 소림사라는 이름이 주는 로망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주먹쥐고 소림사(사진출처:SBS)'

물론 같은 로망을 갖고 자라오며 심지어 무술을 개그 소재로까지 썼던 김병만이라는 독보적 존재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기는 하다. <정글의 법칙>이 정글이라는 막연한 호기심과 기대감을 자극하는 장소에 대체불가 달인 김병만을 세워 확고한 영역을 개척했던 건 그래서 <주먹 쥐고 소림사>가 또 다른 김병만 프로젝트라는 걸 실감하게 한다. 지난 파일럿에서도 김병만은 남다른 습득력으로 소림사의 스님들로부터 극찬을 받은 바 있다.

 

그런데 파일럿이 아니라 정규로 들어온 <주먹 쥐고 소림사>에 눈에 띄는 건 여성 출연자들이다. 사실 무술 수련에 남녀가 따로 있겠냐마는 그래도 남다른 체력을 요구하는 이 프로그램에 여성들의 출연은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잠깐 편집해서 보여준 훈련 과정은 여자들이라고 해서 봐주지 않는다는 이 프로그램의 강도를 제대로 드러내 주었다. 그들은 심지어 욕 나오는(?) 기초체력 훈련에 눈물을 쏟기도 하고, 지붕 위를 걷거나 물 위에 놓여진 부표 위를 달려 나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런데 이 <주먹 쥐고 소림사>의 여성 출연자들을 보면서 먼저 떠오르는 그림이 있다. 그건 <진짜사나이> 여군특집이다. 물론 군대와 소림사는 공간적 특징이 완연히 다르다. 하지만 두 프로그램을 연관해서 생각해보면 이제 여성 출연자들의 생고생은 하나의 프로그램 트렌드가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진짜사나이> 여군특집이 성공하면서 오히려 남자들의 군대 체험이 시들하게 여겨지게 된 건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즉 그 강도는 물론 남자들이 훨씬 세지만, 남자들의 군대체험은 어딘지 당연하고 뻔하게 여겨지는 반면 여자들의 군대체험은 그 자체로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든다.

 

그러니 맨 몸으로 부딪칠 수밖에 없는 소림사라고 해서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물론 김병만과 육중완이 이미 보여줬던 비교체험 극과 극이 궁금하고, 또 새로 출연한 온주완의 남다른 무술 적응기가 눈에 띄기는 하지만, 땀과 눈물에 젖은 여성 출연자들의 소림사 체험이 그것보다 훨씬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고 보면 <정글의 법칙>에서도 여지없이 주목을 끈 건 단연 여성 출연자였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그 많던 남자 게스트들이 기억에 가물가물하지만 여성 출연자들은 홍일점으로서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박시은, 전혜빈, 유이, 하니 등등. 그것은 지금껏 우리가 봐오던 여성 출연자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들을 정글이라는 생존 공간이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최근 여성 출연자들이 예능에서 설 자리가 없다는 얘기가 많이 나온다. 실제가 그렇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 출연자들은 최근 들어 새로운 영역에서 남성들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진짜 사나이>에서의 총잡은 여성들이 그렇고, <정글의 법칙>에서 외모를 포기한 채 생존의 칼을 든 여성들이 그러하다. <주먹 쥐고 소림사>에서 봉을 휘두르는 여성 역시 남성들보다 더 주목되는 건 어쩔 수 없다.

 

반면 최근 예능에 비춰지는 남성 출연자들의 모습이 흥미롭다. 거꾸로 여성들이 그간 해왔던 영역 속으로 남성 출연자들이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쿡방, 먹방을 전면에서 이끌고 있는 건 다름 아닌 남성들이다. 또 그 많은 육아예능에서 육아를 전담하고 나선 것도 남성들이다.

 

물론 이렇게 된 건 예능의 특성 상 이질적인 조합이 훨씬 더 재미의 포인트를 만들어내기 때문일 것이다. 즉 여성이 요리를 하는 것보다 사람들은 남성이 요리를 하는 것에 더 재미를 느낀다. 육아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남성이 군대에 가는 것보다 여성이 군대 가는 것이 더 호기심을 자아내고 소림사의 무술 단련이나 정글 체험에서도 남성보다는 여성이 주목되는 것일 게다.

 

하지만 제 아무리 예능의 조합이라고 하더라도 거기에는 현실적인 공감대 또한 있기 마련이다. 요리 육아하는 남성과 정글이나 군대, 소림사에서 생존하고 훈련하는 여성이라는 이미지는 그래서 남녀 성 역할의 구분을 뛰어넘으려는 우리 사회의 욕망이 담겨 있다. 총과 봉을 잡은 여성들과 부엌칼을 든 남성들. 예능이 그려내는 이 새로운 풍경 속에는 그래서 달라지고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읽어낼 수 있다.



'미세스캅', 아줌마의 촉과 오지랖 어떻게 볼 것인가

 

아줌마들 특유의 촉과 오지랖은 일에 있어서 장점일까 단점일까. <미세스캅>의 최형사(김희애)라는 캐릭터는 제목에 걸맞게 아줌마들의 특성을 오히려 장점으로 장착한 인물이다. 첫 회에서 연쇄살인범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당한 여자의 집에서 시루떡을 보고는 그것이 '이사 떡'을 빙자한 침입이었다는 걸 간파하는 장면은 이 최형사의 캐릭터를 제대로 보여준다.

 


'미세스캅(사진출처:SBS)'

이 드라마는 기획의도에 들어있듯이 아줌마이기 때문에 가진 능력(?)을 전면에 내세운다. '내 가족의 건강과 재산을 위해서라면 쪽팔릴 것 없고 못할 것 없는 가족의 수호자'인데다, '남자의 직감보다 20배 이상' 뛰어난 아줌마의 '수사적 직감'이 그것이다. 기획의도에 따르면 아줌마의 촉이란 '예컨대, 남편 자동차 조수석 의자가 기울어진 각도만 보고서도 내 남자가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웠다는 증거를 잡아낸다거나, 셔츠에 묻은 낯선 머리카락 한 올만으로도 국과수 따위의 감정결과 없이 누구의 머리카락인지 추정하는 능력, 심지어 짙은 스킨과 향수로 도배를 해도 낯선 여자의 향취를 맡아내는 경이로운 능력'을 말한다.

 

기획의도이니 다소간 과장이 있을 것이지만 여성들의 직감이 남성들과는 사뭇 다르다는 건 인정할만한 이야기다. 게다가 아줌마들의 오지랖을 '쪽팔릴 것 없고 못할 것 없는' 장점으로 부각시킨 건 흥미로운 지점이다. 최형사가 연쇄살인범이 투항의지를 밝힘에도 참지 못하고 총을 쏜 후 감사를 받는 입장에서 거짓이 아닌 사실 그대로를 밝힘으로써 파출소장으로 강등되는 이야기나, 그랬던 그녀가 아줌마 특유의 오지랖으로 자칫 자살사건으로 종결될 수 있었던 연예지망생의 죽음이 타살이라는 것을 밝혀내는 이야기는 모두 이 '미세스캅'이라는 캐릭터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이 최형사의 캐릭터는 이상하게도 불편한 느낌을 준다. 그것은 그 모습이 우리가 지금까지 형사물에서 봐왔던 형사와는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살벌한 범죄 현장에서 최형사 같은 인물이 과연 있을까 싶은 의구심에서 비롯되는 일이다. 설혹 그런 인물이 있다고 해도 그것이 실제로 드라마 같은 효과를 발휘할 것인가에 대해 고개가 갸웃 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한 마디로 비현실적인 캐릭터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가 본래 판타지를 그리기 마련이고, 따라서 비현실적인 캐릭터가 판타지로 그려지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왜 불편한 느낌을 줄까. 그것은 혹시 지금껏 남성들의 세계로 여겨져 왔던 형사라는 직업의 세계에 뛰어든 아줌마의 이야기가 주는 이물감은 아닐까. 조직의 부정이 잘못됐다는 것을 이해하면서도 사실 '조직의 생리가 다 그렇지' 하며 생겨난 일종의 포기상태에 갑작스레 그것이 잘못됐다 얘기하며 나서는 아줌마 형사의 오지랖이 불편함을 주는 건 아닐까.

 

이런 의심이 드는 건 이 드라마가 상당 부분 그 대결구도를 남성과 여성으로 나뉘어 보여주고 있다는 데서 생겨나는 것이기도 하다. 미세스캅 최형사는 여동생과 딸, 이렇게 세 여자가 한 가족을 이뤄 살아가고, 범죄 현장에서 살해당하는 이들은 모두가 여성들이며, 그 범죄를 저지르는 범죄자들이나 사건을 애써 덮으려는 그룹 회장과 2, 그리고 비리 경찰까지 모두 남성들이다. 그러니 마치 최형사 특유의 아줌마 오지랖이 깨나가는 건 단지 잘못된 수사가 아니라 잘못된 시스템으로 굳어져 있는 남성들의 세계처럼 보인다.

 

즉 최형사의 도발은 어쩌면 상명하복의 구악으로 남아있는 폭력적이고 나아가 범죄적인 남성들의 시스템을 향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 남성들의 시스템 앞에 한때는 저항했지만 도무지 변하지 않는 견고함에 포기하고 심지어 순응했던 남성들에게 최형사의 도발은 통쾌함과 불편함을 동시에 안겨준다. 잘못된 것과의 대결이 주는 통쾌함이지만, 그것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불편함이다.

 

<미세스캅>이라는 드라마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 캐릭터나 캐릭터가 해나가는 성취 또한 현실적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누구도 던지지 않는 그 불편한 질문을 던져본다는 건 중요한 일이다. <미세스캅>의 최형사는 물론 비현실성으로 인해 불편함을 준다. 하지만 지극히 상식적인 일들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세계가 말하는 비현실성이란 오히려 그 세계의 비상식을 말해주는 건 아닐까.



<어벤져스>와는 다른 <매드맥스>의 입소문 질주

 

79년도에 상영되어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이끌어냈던 멜 깁슨의 <매드맥스>를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훨씬 다이내믹한 카메라 기술과 CG로 총무장해 다시 돌아온 조지 밀러 감독의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는 더더욱 흥미로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과거의 <매드맥스>가 사막과 펑키한 폭주족들 그리고 헤비메탈한 스타일을 엮어낸 그 기발한 아이디어에 환호 받았다면 돌아온 <매드맥스>는 이것을 심지어 예술적인 영상연출로 만들어낸 하나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사진출처 : 영화 <매드맥스>

모래 폭풍 속으로 뛰어 들어가 질주하는 차들을 잡아낸 영상은 마치 초현실주의 예술 작품의 세계 속에 관객이 앉아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사람을 피 주머니라고 부를 정도로 물질화되어 보이는 육체가 터지는 폭탄 위로 날아다니고, 질주하는 자동차 위에서 다른 자동차로 뛰어오르는 장면들은 액션을 넘어선 퍼포먼스로 보인다. 장대 위에 사람을 태워 마치 낚시질하듯 도망치는 여자들을 낚는 장면의 기발함은 이 감독의 상징체계가 얼마나 남다른가를 잘 보여준다.

 

놀라운 건 영상연출만이 아니다. <매드맥스> 특유의 의상과 헤비메탈 스타일은 하나하나가 캐릭터처럼 보인다. 자동차 앞에 매달려 진군의 헤비메탈 연주를 하는 괴상한 사내가 주는 기묘함은 <매드맥스>만의 독특한 세계를 잘 대변해준다. 온몸에 하얀 칠을 하고 죽음을 구원이라 부르며 전쟁 속으로 뛰어드는 워보이들이나, 자유와 희망을 찾아 도주하는 여성들 그리고 그녀를 돕는 퓨리오사(샤를리즈 테론) 같은 인물들은 하나하나가 잘 구축된 캐릭터들이다.

 

무엇보다 맥스보다 더 주목되는 여주인공 퓨리오사의 카리스마는 압도적이다. 한쪽 팔이 잘려져 기계 팔을 덧대고 있는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강렬한 존재감은 영화 전체를 이끌어가는 힘이다. 주인공 맥스는 마치 퓨리오사를 돕는 조력자처럼 보인다. 그것은 이 영화가 폭력에 맞서는 여성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퓨리오사는 똑같은 폭력으로 남성적 폭력의 세계에 대항하고 있지만 그녀가 지키는 여성들은 척박한 사막 위에 씨앗을 심으려는 여성성을 상징한다.

 

사막은 이 영화의 숨겨진 주인공이다. <매드맥스>가 호주라는 공간에서 탄생할 수밖에 없었던 건 그 드라이 랜드라고도 불리는 호주의 특징을 이 영화가 가장 잘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사막화가 진행되는 그 곳의 풍경들은 아마도 조지 밀러 감독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 사막이라는 텅 빈 공간은 그래서 감독의 손길에 의해 기막힌 스타일의 이야기들이 채워지는 가능성의 스크린이 되었다.

 

<매드맥스>는 새삼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어벤져스2>의 수치가 얼마나 무색한 것인가를 확인하게 해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마케팅과 극장의 몰아주기로 탄생한 천만 관객이 영화의 질적 우수함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2시간이 어떻게 훌쩍 지나갔는지 알 수 없는 압도적인 몰입감의 재미에 심지어 예술미까지 느끼게 되는 영상 연출, 그리고 결코 유치하게 보이지 않는 영화적 메시지까지. <매드맥스>의 입소문 질주는 천만 <어벤져스2>와는 사뭇 달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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