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는 드라마들이 중반으로 치달으면서 호연을 펼치고 있는 연기자들이 유난히도 돋보인 한 주였습니다.

역시 배종옥, 변신 김정민
SBS의 월화드라마,‘내 남자의 여자’는 극의 흐름을 김희애의 독한 연기가 끌어왔는데 이번 주에는 반격에 나선 배종옥의 연기가 돋보였습니다. 남편의 외도로 인해 겪는 상처와 분노, 하지만 “그래도 용서해주세요”하는 아이의 애원에 흔들리는 엄마라는 복합적인 내면연기를 ‘역시 배종옥!’이라는 말이 어울리게 소화해냈습니다. 배종옥은 과장되지 않고 또 그렇다고 너무 가라앉지도 않는 역할에 딱 맞는 연기력을 선보였습니다.
MBC의 ‘히트’는 전문성에 대한 비판여론 탓인지 분위기를 멜로에서 전문직쪽으로 바꾸려는 시도로 소강상태를 보이는 가운데, 새롭게 전면에 나선 김영두 역의 김정민이 가수답지 않은(?) 훌륭한 연기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그의 거칠고 강한 인상을 주는 캐릭터는 멜로로 말랑말랑해진 ‘히트’에 조금은 강력계다운 강한 면모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성숙 공효진, 소름 주지훈
수목드라마에서 최강자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고맙습니다’는 달라진 공효진, 장혁의 물오른 연기가 시청자들을 감동에 젖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전 드라마에서 조금은 되바라진 캐릭터를 보였던 공효진은 이 드라마에서 바보스러울 정도로 착한 모성애 강한 미혼모역을 실감나게 소화해내며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한편 장혁의 깊어진 연기와 서신애의 아이답지 않은 연기력, 그리고 자타가 공인하는 신구, 강부자의 연기력들이 맞물려 따뜻한 드라마가 만들어지는데 강한 힘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시청률은 낮아도 여전히 화제에 중심에 있는 ‘마왕’은 주지훈의 야누스적인 캐릭터에 찬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무표정한 얼굴에는 그것이 선인지 악인지 알 수 없는 포커페이스를 보이다가, 순간 순간 씩 웃을 때 입꼬리가 올라가며 보이는 악마적인 느낌은 시청자들을 전율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과거의 아픔을 떠올릴 때면 그 고통을 공감할 수 있게 해주는 내면연기 역시 돋보이면서 이제 막 시작한 신인배우라고는 믿기기 어려운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캐릭터와 연기력이 드라마를 살린다
TV 프로그램의 성패가 된 리얼리티는 이제 드라마에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얼마나 리얼하냐는 것이 공감의 바로미터가 된 것입니다. 따라서 최근에는 캐릭터가 극의 중심으로 오면서 그 캐릭터를 연기하는 연기자가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과거 스토리 중심의 트렌디 드라마에서는 적당한(?) 연기력을 가진 외모출중한 배우들이 포진했던 반면, 최근에는 외모가 아닌 진정성이 느껴지는 연기를 하는 배우들이야말로 드라마를 살릴 수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제 착한 척하는 배우, 예쁜 척 하는 배우보다는 자신은 망가지더라도 극중 캐릭터를 100%로 살릴 수 있는 연기를 보이는 배우가 아름다운 시대입니다.
월화수목 드라마들이 중반을 치닫고 있는 지금이, 이제 제 궤도에 오른 연기자들의 명연기를 보는 맛이 가장 좋을 때입니다. 최고의 시청률을 보이고 있는 ‘내 남자의 여자’, ‘고맙습니다’ 뒤에는 연기자들의 호연이 빛나기 마련! 그러나 시청률과 상관없이 취향에 따라 그 다양한 맛에 취해보는 건 어떨까요.

재미로 보는 기대감 수치
▶ ‘내 남자의 여자’(기대감 80%) : 새로운 남자, 이종원이 등장하면서 배종옥의 갈등상황이 연출될 것으로 보입니다. 또 배종옥과 김희애의 대결구도는 여전히 기대감을 높이는 요인입니다.
▶ ‘고맙습니다’(기대감 80%) : 연기로 보자면 이 드라마 만큼 기대감을 높이는 드라마는 없을 것입니다. 모든 연기자들이 연기 9단의 모습을 보이는 드라마입니다. 공효진과 그 가족을 사이에 둔 장 혁과 신성록 간의 대결구도도 관전포인트입니다.
▶ ‘히트’(기대감 50%) : 아직까지 전문직 드라마로서의 긴박감이 살아나지 않는 반면, 김정민의 역할이 얼마나 그걸 해줄지 기대가 되는 드라마입니다.
▶ ‘마왕’(기대감 50%) : 주지훈의 야누스적인 카리스마는 물론이고, ‘인간으로서의 강오수’와 ‘형사로서의 강오수’ 사이에서 갈등하는 엄태웅의 연기도 기대감을 높여주고 있습니다.

이번 주는 월화 ‘내 남자의 여자’의 강품이 유난히도 강했던 한 주였습니다.

역시 김수현인가
김수현 작가의 독한 대본을 바탕으로 김희애의 독한 연기에 맞선 배종옥의 연기가 빛을 발하면서 시청률은 20%를 넘어 월화의 최강자로 군림하게 됐습니다. 이렇게 된 데는 ‘히트’의 부진이 또 한 몫을 했습니다. 여기에는 애초에 전문직 드라마라는 어려운 선택을 했던 것이 원인이 되었습니다. 차라리 멜로 드라마를 표방했다면 이런 어려움은 없었을 것입니다. 하정우의 재발견이라 할 만큼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캐릭터들의 멜로 라인이 압권이기 때문입니다. 혹자들은 전문직 드라마에 어울리지 않는 차수경이란 캐릭터와 그 연기를 하는 고현정으로 떨어진 시청률을 그나마, 하정우씨의 멜로가 유지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을 정도입니다.

한 주가 시작하는 월화에 독한 드라마로 풀어내며 이 악물고 일을 하다가 수목이 되면 슬슬 따뜻한 햇살이 간절해지기 마련, 이 욕구를 맞춰주듯 ‘고맙습니다’는 수목에 활짝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보기만 해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공효진과 서신애의 연기에 그들을 보호해주는 두 수호천사, 장 혁과 신성록의 따뜻한 연기는 월화에 맺힌 독기를 쪽 빼주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한가인을 빼고는 트렌디한 설정으로 지속되고 있는 ‘마녀유희’의 전선에는 한 자릿수 시청률로 전락하는 등 점점 먹구름이 끼어가고 있습니다. 한편 아예 시청률 따위는 아무 상관없다고 항변하듯 ‘마왕’은 꿋꿋이 자신의 노선을 밟아가며 매니아드라마로서의 명품드라마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주말드라마는?
주말 드라마는 별다른 진전 없이 대조영과 설인귀의 엎치락뒤치락 두뇌게임이 돋보이는 ‘대조영’의 선전이 눈에 뜨입니다. 부기원의 미친 행세가 사실 연기였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이야기는 더 흥미진진하게 흘러가고 있습니다만 언제까지 이런 작은 음모들로 극이 진행될 수 있을 지는 의문입니다. ‘연개소문’은 유동근이란 굵직한 배우가 등장하면서 무언가 변수를 가질 것을 기대했지만 아직까지는 기대 이하의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연개소문 역의 유동근과 당태종 이세민 역의 서인석의 본격 대결이 이루어지면 조금 약진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한편 동시간 대의 ‘케세라세라’는 ‘하얀거탑’의 뒷자리에 잘못 앉아 호평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이 떨어지는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아줌마를 잡아라
월화의 강자였던 ‘주몽’의 종영 이후, 춘추전국시대를 맞아 급변했던 드라마 기상은 이제 안정된 날씨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주몽’, ‘하얀거탑’으로 젊은 시청층의 기대감을 한층 높여놓았던 MBC는 그 기대감을 채워주지 못해 시청률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고, SBS는 좀더 강한 강도의 자극을 김수현이라는 작가를 통해 풀어내면서 전통적인 아줌마 시청층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KBS는 시청률과는 무관한 듯 제 행보를 유지하면서 전통적으로 보여왔던 사극의 강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재미로 보는 기대감 수치
▶ ‘내 남자의 여자’(기대감 90%) : 이제 등장할 배종옥의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그녀에게 빙의된 시청자들은 그녀의 곧 이어질 반격에 카타르시스를 느낄 것입니다.
▶ ‘고맙습니다’(기대감 90%) : 공효진과 그 가족을 사이에 둔 장 혁과 신성록 간의 애정공세가 본격화되면서 훈풍을 몰고 올 가능성이 짙습니다.
▶ ‘대조영’(기대감 70%) : 부기원의 변신, 하지만 여기에 속지 않을 대조영의 모습에서 기대가 되지만 그 다음은 또 누구의 반복이냐가 기대감을 낮추는 요인입니다.
▶ ‘히트’(기대감 60%) : 하정우의 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기대감 자체. 그러나 전문직 드라마에 대한 기대감은 갈수록 저하될 전망입니다.
▶ ‘마왕’(기대감 50%) : 시청률은 낮지만 죽 보아왔던 시청자라면 기대감 100%를 가질 수 있는 이야기 전개. 세 번 째 희생자는 어떻게 죽게 될 것인가가 관심의 요인입니다.

‘내 남자의 여자’ vs ‘고맙습니다’

주중 드라마의 향배가 정해져가고 있다. 월화는 김수현 작가 특유의 입담으로 승부하는 ‘내 남자의 여자’, 수목은 이경희 작가가 전하는 훈훈한 진심으로 승부하는 ‘고맙습니다’이다. 한쪽은 말많은 드라마로 시청자들의 수다를 자극하고, 다른 한쪽은 말없이 울게 하는 드라마로 시청자들의 가슴을 훈훈하게 달군다. 미드 열풍을 타고 온 전문직 드라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있지만 그 기대치에 맞는 드라마가 부재한 상황, 이 두 드라마는 전혀 다른 상반된 코드를 가지고 주중의 밤을 뜨겁게 만들고 있다. ‘수다와 손수건’, 당신이 좋아하는 드라마는 무엇인가.

분노 vs 눈물
‘내 남자의 여자’는 여성들 속에 잠재되어 있던 분노를 끄집어내 폭발시키는 드라마다. 이것은 모든 불륜드라마가 갖는 기본전략이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과거의 불륜드라마가 그 분노를 자해하듯 여성 속에 가두고 속으로 터뜨렸다면, ‘내 남자의 여자’는 거침없이 끄집어내 밖으로 터뜨린다는 데 있다. 죽이고 싶을 정도의 분노가 가진 두 얼굴은, 안으로 터질 때 자학 혹은 자살이 되며, 밖으로 터뜨릴 때 가해 혹은 살인이 된다. 그러니 불륜드라마가 가진 자극성은 바로 극중 은수(하유미)가 입만 열면 버릇처럼 쏟아져 나오는 욕설, “찢어 죽일” 정도의 강도를 숨기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폭력물을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과 유사하다. 무언가 내 안에 잠재된 불만과 분노를 애꿎은 기물을 파손하고 폭파시키는 장면을 통해 풀어내는 것. 그러나 폭력물에 바로 내 옆에서 언제든 벌어질 수 있다는 공감을 끌어내는 설정이 들어가면 그 강도는 더 강해진다. ‘내 남자의 여자’는 바로 그런 설정을 불륜을 통해 만들어놓고 분노와 카타르시스를 반복하는 심리적인 폭력물이다. 여기에는 그간 남자라는 속물들에 의해 쌓여온 분노를 ‘무시’라는 형태로 복수하고는, 곧바로 ‘가정 있는 여자’와 ‘그 가정을 파괴하려는 여자’라는 구도를 만들어 대결구도에 들어간다. 주먹이 오가고 프라이팬이 날아드는 걸  보고 속시원하다고 느낀 시청자라면 이 대결구도에서 오는 해소감을 맛본 것이다.

반면, ‘고맙습니다’는 분노보다는 눈물을 무기로 끄집어낸다. 그런데 이 눈물은 그저 강한 설정에 의해 억지로 짜내는 그런 종류가 아니다. 그것은 이 드라마가 가진 대결의식과 그 해결방법을 보면 드러난다. 드라마는 에이즈에 감염된 딸 봄(서신애)과 치매를 앓는 할아버지(신구)를 모시고 살아가는 영신(공효진)과 세상의 편견과의 대결구도로 이루어져 있다. 중요한 것은 특정 캐릭터가 그 세상의 편견을 대변하는 듯 보이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는 것이다. 석현(신성록)과 민기서(장혁)의 관계는 영신과 푸른도의 개발을 두고 묘한 대결구도를 가지면서도 서로 형제 같은 느낌을 준다. 박씨(김하균)와 석현모(강부자) 같은 모자란 듯한 섬사람들은 그 부족함이 때론 편견으로 드러나지만 그것은 모르기 때문일 뿐, 악함은 아니다.

이러한 구도 속에서 세상의 편견들 앞에서 영신이 하는 방식은 저 ‘내 남자의 여자’가 보여주는 ‘분노의 폭발’이 아니다. 그녀는 고작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말로 끊임없이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않는다. 심지어 에이즈라는 사실이 밝혀져 자신의 딸을 피하는 푸른도 사람들에게 분노를 표하지도 않는다. 그녀는 오히려 푸른도 사람들에게 “잘못했다”고 말하며, 그래도 딸 봄이와 할아버지와 함께 행복하게 지내려 노력하면서 이런 작은 행복감에도 “고맙습니다”라고 말한다. 이 장면들을 목격하는 시청자들의 눈에 흐르는 눈물은 작가가 이 가족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에서 비롯한다. 그것은 도처에 그 가족을 도우려는 인물들, 예를 들면 보건소 사람들이나 민기서, 석현, 서은희(김성은), 두섭모(전원주) 같은 인물들의 시선으로 처리된다.

직설화법 vs 간접화법
분노를 터뜨리는 방식으로서 ‘내 남자의 여자’는 직설화법을 선택한다. 욕은 차라리 순한 편이다. 대화내용은 너무나 직접적이어서 충격적이란 느낌마저 든다. 화영(김희애)을 찾아온 지수(배종옥)가 “왜 그랬니? 넌 내 친구였잖아.”라고 하는 항변에 화영의 답변은 이런 식이다. “불가항력이었어. 죽어도 좋았어. 너 따윈 아무 상관없었어.” 이것은 언어라는 형태를 띄었을 뿐, 거의 칼로 상대방의 마음을 찌르는 정도의 수위를 담고 있다. 여기에 가만있을 지수가 아니다. “너희 짐승이니?” 그러자 화영은 비웃듯 웃으며 말한다. “행복한 짐승.” 칼이 날아가고 피가 튀는 사극이나 조폭영화보다 더 강한 직설화법의 액션이다.

하지만 이런 자극적인 말의 대결 너머에서도 캐릭터를 잡아내는 게 김수현 작가의 힘이다. “내가 널 얼마나 잘 해줬는데..” 이런 지수의 한탄에 화영이 하는 말. “니가 해놓고 왜 빚준 것처럼 그래? 솔직해라.” 이것은 지수의 성격이 조금은 과잉되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모든 주변의 것들을 완벽하게 처리하고 자신은 늘 착한 천사표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착한 여자 콤플렉스’ 같은 것을 약점으로 갖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러니 지수의 일방적인 공세 속의 약점을 파고드는 화영의 한 자락 칼침이 더 강한 대결구도를 만들어낼 수 있는 요인이 된다. 평소에 시청자들이 속으로 품고 있었던 말들은 그녀들의 입을 통해 뿜어져 나오고 그 순간 시청자들은 캐릭터에 빙의 되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반면, ‘고맙습니다’는 극도로 우회하는 간접화법으로 시청자의 가슴을 파고든다. ‘고맙습니다’에 유독 많이 나오는 장면은 바로 ‘목격되는 장면’이다. 영신이 잠을 자다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민기서에게 목격되고, 술에 취해 민기서를 아버지로 대하는 그녀의 행동 역시 민기서에게 목격된다. 민기서가 살인의 누명을 쓰고 경찰서에 갔을 때 그 증언을 뒤집어줄 고씨네 집에서 비를 맞으며 애원하는 석현의 모습은 영신에게 목격된다. 에이즈 사실이 밝혀진 봄이를 데리러 학교에 간 영신은 석현에게 목격된다. 여기서 목격자는 바로 시청자의 역할을 해준다. 시청자들은 여러 따뜻한 인물들에게 빙의되면서 그 시선으로 같은 가슴저림, 아픔을 느끼게 된다.

돌아온 민기서는 “정말 잊지 못해 다시 돌아왔다”는 진심 어린 말을 영신 앞에서 해댄다. 그것은 직설화법처럼 느껴지지만 곧바로 민기서가 “내가 네 아버지다”라고 말함으로써 간접화법으로 되돌려진다. 과거 아버지가 돌아오신 것으로 착각해 민기서 앞에서 밥상을 차려주고 절을 했던 일을 이번에는 민기서가 간접화법으로 말하는 것. 여기에는 영신에 대한 애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점에서 에둘러 말하지만 진심은 시청자에게 곧바로 전달된다. 드라마는 이러한 간접화법을 통해 진심이란 말 몇 마디로 전해지지 않는 어떤 것이라 말해준다. ‘고맙습니다’는 저 신구라는 연기자의 치매연기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직접적인 말보다는 우회적인 말로, 때론 침묵이나 행동으로 진심을 전하는 드라마다.

네거티브 전략 vs 포지티브 전략
이 두 드라마가 취하는 전략은 사뭇 상반된다. ‘내 남자의 여자’는 말많고 자극적인 드라마로서의 전형적인 네거티브 전략을 따르고 있고, ‘고맙습니다’는 마음의 진심을 전해 감동을 주는 드라마로서의 포지티브 전략을 따르고 있다. 이것은 어느 것이 우위에 있다기보다는 세상을 대하는 두 가지 다른 방식이다. 세상이 내게 무언가를 저질렀을 때, 그것을 해결하는 방식은 이렇게도 다르다. 때론 불의와 맞서 싸우고 상대방을 때려눕히는 방식을 쓰기도 하고, 때론 참을 수 없는 분노를 일으킨 장본인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방식을 쓰기도 한다.

주중 드라마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는 ‘내 남자의 여자’와 ‘고맙습니다’는 이 두 방식에 대한 드라마다. 공교롭게도 여타의 드라마들보다 이 두 드라마가 수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시청자들이 그만큼 삶의 리얼한 문제에 더 민감하다는 것과 지금 우리 삶이 그만큼 각박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당신은 이 각박한 삶에서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각박한 삶을 만든 장본인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대결할 것인가, 아니면 그들에게 진심을 전하려는 대화를 계속할 것인가. 칼날 같은 수다를 통한 대결인가, 적마저 눈물 흘리게 하는 손수건인가. 당신은 어떤 방식을 선택할 것인가.

‘히트’의 멜로 vs ‘내 남자의 여자’의 불륜

월화 드라마 대전에 새롭게 등장한 김수현 작가의 ‘내 남자의 여자’ 바람이 거세다. ‘주몽’의 후속으로 부동의 1위 자리를 내주지 않을 것으로만 생각됐던 ‘히트’가 계속 부진의 늪을 헤매고 있는 사이, 단 4회만에 ‘내 남자의 여자’가 파죽지세로 거의 ‘히트’를 따라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 두 드라마는 단순한 비교대상이 되지 않는다. 단지 월화에 방영된다는 점에서 그 시청률이 비교될 뿐이다. 그런데 이 ‘월화의 경쟁’은 지금 우리나라 드라마가 겪고 있는 성장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가장 고전적인 드라마의 단골 소재인 ‘불륜’은 여전히 되지만, 변화의 바람 속에서 시도되었으나 지나치게 ‘멜로’가 강조된 전문직 드라마, 범죄수사물의 경우는 특히 더 안 된다는 것이다.

히트의 디테일 부족, 미드 때문이 아니다
물론 ‘외과의사 봉달희’ 역시 멜로가 있는 전문직 드라마로서 성공한 드라마지만 ‘히트’는 그것과는 양상이 다르다. 먼저 다른 것은 디테일이다. ‘외과의사 봉달희’ 역시 설정에서는 현실과 동떨어진 극적 상황이 전개되었지만 그래도 그 병원 장면이나 스토리에 있어서는 리얼한 디테일이 살아 있었다. 하지만 ‘히트’의 경우는 스토리 자체가 그다지 전문적이지 않다.

관습적인 액션들이 몇 번 오갈 뿐, ‘전문직 드라마’라면 보여줘야 할 시청자의 호기심을 자극할만한 ‘전문적인 디테일’이 부족하다. 처음 드라마가 시작했을 때는 이 디테일 부족이 단지 미국드라마에 익숙한 시청자들이 가진 선입견에서 비롯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8회가 끝난 지금 이 문제는 단순한 비교 때문에 벌어지는 것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홍콩 시퀀스에서 굳이 차수경(고현정)과 김재윤(하정우)을 크루즈에 태워 멜로 라인을 만들어야 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남는다. 그렇게 긴박한 상황에 멜로의 등장은 드라마 흐름의 맥을 끊어버리는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 여기에는 홍콩해외로케로 올라간 시청자들의 기대심리가 멜로로 인해 급격한 실망감으로 이어졌다는 점도 한몫을 차지한다. ‘도대체 홍콩에 가서 뭘 했다는 말인가’하는 비판이 나오는 건 당연하다.

멜로만 있는 전문직 드라마가 문제
크루즈에서 내려서 이어지는 사건의 해결(장형사를 구하는 것)에 있어서 너무나 손쉽게 처리한 점도 이 드라마가 과연 전문직 드라마를 표방할 수 있는가 하는 의구심을 만드는 요인이다. 찰리박(김병세)을 납치해서 장형사(최일하)와 맞바꾸는 장면은 그간 계속 어렵게 진행되어온 상황의 긴박감을 김빠지게 만들었다. 그 맥 빠진 자리를 채우는 건 장형사와 그 딸의 눈물겨운 상봉이다. 그러니 ‘히트’에서 무언가 긴박하고, 호기심과 아드레날린을 자극하는 전문직 드라마를 기대했던 시청자들의 실망은 시청률 부진으로 이어진다.

‘히트’의 시청자게시판은 이 ‘멜로’에 대한 공방이 한창이다. ‘히트의 멜로’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 애초부터 기획의도에 이 드라마는 ‘사랑이야기’라고 밝혀진 점을 들어 여타의 미국드라마와 비교하지 말자는 의견들이 있다. 그러나 기획의도를 보면 또한 ‘이 드라마는 전문직 드라마’라는 문구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멜로 있는 전문직 드라마’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멜로만 있는 전문직 드라마’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김수현의 불륜, 다른 건 자극의 강도일 뿐
반면 이 시간대에 새롭게 등장한 김수현의 ‘내 남자의 여자’는 그 자극적인 설정과 장면 연출로 여전히 ‘불륜 코드’는 된다는 걸 보여준다. 여기에 ‘김수현의 불륜드라마’는 무언가 다를 거라는 기대감이 작용했다. 그런데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있다. 김수현의 불륜드라마가 다르다면 도대체 뭐가 다르다는 말인가.

처음 김수현이라는 ‘언어의 마술사’가 하는 불륜드라마라고 해서 그것은 ‘불륜을 통한 인간욕망의 탐구’ 같은 깊이를 보여줄 것으로 생각됐다. 하지만 현 4회까지를 보면 그런 것은 좀체 눈에 띄지 않는다. 깊이는 없고 겉도는 자극만 가득하다. 저 액션을 표방한 ‘히트’보다도 더 액션(?)같은 주먹다짐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김희애의 소름끼치는 연기가 없었다면 이 드라마는 ‘사랑과 전쟁’과 같은 불륜드라마와 그닥 다를 것이 없다.

김수현이라서 달랐던 것은 자극의 강도였지 깊이가 아니었다. 의도적으로 화영 역의 김희애는 처음부터 노출신이 과도하게 등장했고, 홍준표(김상중)와의 애정행각은 ‘이러다 베드신 나오겠다’는 기대반 우려반의 시청자들의 반응을 끌어냈다. 욕망은 육체적인 것과 함께 정신적인 것을 동시에 포함하는데, 홍준표와 화영의 불륜에서는 정신적인 부분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이것은 욕망이 아니라 욕정이다.

욕망은 보이지 않고 욕정만 보인다
물론 적당한 선에서 화영과 홍준표의 불타는 욕정의 이유가 밝혀지면서 욕망으로의 전이를 꾀할 테지만 그것은 자극 끝에 달아놓는 변명이 될 수도 있다. 문제는 생활도 없고 삶도 없고 욕정만 가득한 이 ‘부족할 것 없는 사람들의 애정행각’을 왜 시청자들이 봐야하는가 하는 데 있다. 그 이유는 단 하나다. 자극적인 설정과 욕설과 주먹다짐이 난무하는, 액션보다 더 강력한 액션에 대한 호기심이다.

궁금한 것은 김수현이라는 부족할 것 없는 ‘언어의 마술사’가 왜 그 뛰어난 재능을 이렇게 쓰고 있느냐는 것이다. 불륜에도 격이 있다. 저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같은 영화에서 보여주는 불륜 속에는 육체적인 욕망을 뛰어넘는 그 무엇(셀레임 같은)이 있다. 불륜, 이룰 수 없는 욕망에 대한 자기성찰 없이 끝없는 파국을 통한 자극으로만 치닫는다면 이 드라마의 말미에서 ‘얻은 것은 시청률이요, 잃은 것은 작가다’라는 말이 나올 지도 모른다.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
월화 드라마 경쟁에서 보여지는 ‘멜로는 안되도 불륜은 되는’ 상황은 뒤집어 생각해보면 두 드라마의 완성도가 절반에만 미친다는 걸 말해준다. ‘히트’가 전문직 드라마를 성공시키지 못하고 멜로 드라마로 가고 있는 반면, ‘내 남자의 여자’는 불륜을 통한 인간욕망에 대한 탐구를 하지 못하고 그저 자극적인 불륜드라마로 가고 있다. 이 두 드라마가 이렇게 된 데는 아이러니하게도 모두 시청률 때문이다. 이것이 자칫 매니아 드라마가 우려되는 전문직 드라마에 적절한 멜로를 섞은 ‘히트’가 오히려 고전하는 이유이며, 불륜드라마로 시청률에 불을 붙인 ‘내 남자의 여자’가 자극적인 설정으로만 치닫는 이유이다. ‘멜로도 되고, 불륜도 되는’ 완성도 높은 드라마는 나오기 힘든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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