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에 꼭 있는 화제의 장면들

종영한 ‘쩐의 전쟁’의 한 장면. 갑자기 사채업소인 동포사가 춤바람에 휘말린다. 금나라(박신양)와 서주희(박진희)가 음악에 맞춰 스텝을 밟으며 춤을 춘다. 단지 발랄하고 경쾌한 분위기만 드라마 상의 감정라인과 조우할 뿐 스토리와는 그다지 상관없는 장면이다. 하지만 이 몇 장면이 가진 효과는 커서, 다음날 인터넷에는 어김없이 이 장면들에 대한 이야기가 네티즌들 사이에 화젯거리가 된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의 한 장면. MT를 간 카페 직원들과 사장이 함께 냇가에서 물놀이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이 장면은 그대로 UCC로 변모하면서 ‘완소한결’, ‘어라라은찬’ 같은 문구들이 달라붙는다. 극중에서 은새(한예인)가 이 UCC를 올려 카페가 인기를 끌게 된 것처럼, 드라마가 방영된 후, 인터넷은 이 UCC 동영상이 화제가 되었다.

드라마와 인터넷은 언제부턴가 긴밀한 관계를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그저 방영된 드라마에 대한 평가에서 그치지 않는다. 드라마에서 나온 이야기는 이제 인터넷으로 오면서 새롭게 재창조되기도 한다. 장면들이 재편집되거나 서로 다른 드라마들이 엮어져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패러디는 물론이고, 캐릭터에 간략한 특징을 붙여 만드는 사자캐릭터 창조는 이제 일상화되었다.

이러한 인터넷의 화제성을 가장 잘 활용한 드라마가 ‘거침없이 하이킥’이다. 거의 모든 캐릭터에 사자캐릭터가 붙은 이 시트콤은 그 날 밤 어떤 장면을 연출했는가가 어김없이 다음날 화젯거리가 되었다. 이순재가 야동을 보고 악플을 다는 장면이 네티즌들에게 큰 호응과 반응을 얻어낸 것은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이 시트콤이 처음부터 인터넷의 화제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던 결과이다.

화제를 일으키는 방법도 가지가지. 그 중 여성 캐릭터들의 주먹다짐 역시 화제를 끌어 모으는 한 장치가 되었다. ‘내 남자의 여자’의 화영(김희애)을 업어치는 은수(하유미)의 장면은 오래도록 네티즌들 수다의 소재가 되어주었다. 최근 ‘강남엄마 따라잡기’에서 강북엄마 현민주(하희라)와 강남엄마 윤수미(임성민)가 한바탕 붙는 장면에서 ‘내 남자의 여자’의 주먹다짐을 연상하게 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과거라면 그저 심한 말다툼 정도로 처리되었을 이런 장면들은 이제 머리끄댕이 제대로 잡아 당겨주고 주먹과 발길질이 오가는 막싸움으로 변모했다. 그만큼 화제성이 충분한 장면이기 때문이다.

이미 화제가 되었던 장면을 다시 끌어다 쓰는 경우도 있다. 최근 종영한 ‘불량커플’의 준수(유건)가 한영(최정윤)에게 피아노를 치며 프로포즈하는 장면은 ‘파리의 연인’에서 박신양이 했던 장면을 그대로 패러디한 것. 창피해 자리를 뜨려하는 한영에게 “어이 거기, 핑크는 자리에 좀 앉지”라고 외치는 장면에 이은 유리상자의 ‘사랑해도 될까요’ 열창은 화제가 된 시퀀스 전체를 가져와도 여전히 화제가 된다는 것을 보여준 경우이다.

드라마가 네티즌 혹은 시청자를 의식한다는 것은 그만큼 드라마들의 홍보경쟁도 치열해졌다는 것을 말해준다. 네티즌들의 입 소문은 이제 드라마를 소위 띄우는데 있어서 절대적인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팬 서비스 같은 이런 장면들의 연출은 드라마의 흐름과 잘 맞물리는 한 그다지 나쁠 게 없다. 하지만 때론 화제가 공감으로 가지 않고 비호감으로 가는 경우도 생긴다. 과도한 장면들의 남발이 그것이다. 드라마 진행과 상관없는 과도한 노출이나, 아직 충분히 무르익지도 않은 관계의 남녀가 갑자기 키스신을 보여준다든지 하는 것들은 공감보다는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가장 좋은 것은 드라마 자체가 갖는 이야기와 화제가 될만한 장면이 빈틈없이 딱 맞는 경우이다. 특별히 연출할 것도 없이 그런 장면들은 고스란히 화제가 되고 후에도 명장면으로 남는다. 그 대표적인 예가 ‘커피 프린스 1호점’의 연타석 홈런을 날린 은찬(윤은혜)과 한결(공유)의 포옹신에 이은 키스신이나, ‘쩐의 전쟁’에서 금나라와 서주희가 보여준 오이키스신 같은 것들이다. 저 드라마에 흔하디 흔한 포옹과 키스 장면이 이다지도 가슴 떨리고 오랜 잔향을 남기는 것은 그 이면에 있는 수많은 감정들이 그 한 장면에서 느껴지기 때문이다. 화제를 만들어내는 장면의 연출보다는 장면의 극적 상황 자체가 화제가 될 때, 시청자들은 깊은 공감 속에 기꺼이 화제에 동참할 것이다.

드라마의 성공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시청자와의 공감대가 아닐까. “정말 리얼하다”거나 “대사가 마음에 팍팍 꽂힌다”거나 혹은 “재미있어 죽겠다”는 것은 모두 공감의 표현이다. 그러나 이러한 공감을 얻어내기 위해 드라마들은 제각각의 방식을 추구한다. 최근 들어 보여지는 그 경향은 ‘리얼하거나 만화 같거나 혹은 그 둘 다이거나’한 것이다.

리얼한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 vs ‘에어시티’
불륜이라는 소재만 놓고 보면 ‘내 남자의 여자’는 자칫 천편일률적인 드라마 공식에 빠질 위험성이 있었다. 그랬다면 공감은커녕 비난만 받았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시청자들의 가슴에 팍팍 꽂히는 김수현식의 대사의 맛에, 인물의 심리를 파고드는 집요함으로 공감을 끌어냈다. 폼잡지도 않고 또 과장하지도 않는 드라마 전개는 충분히 시청자들에게 ‘정말 리얼하다’는 반응을 끌어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결국 이 불륜드라마는 시청률에서의 성공과 함께 불륜이란 소재를 한 차원 더 넓혔다는 가치평가까지 동시에 얻었다.

반면 리얼함으로 따지면 억울할 정도로 탄탄한 현장의 기록들을 해나간 ‘에어시티’의 경우엔 어떨까. 일단 실제 인천공항에서 촬영을 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 드라마의 리얼함을 설명해주는 단적인 예가 될 것이다. 게다가 이 드라마는 제작 전부터 국정원에서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도움을 줄 정도로 전문직 장르 드라마라면 반드시 필요한 든든한 지원이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그다지 좋지 않다. 시청률도 시청률이지만 드라마적인 완성도가 떨어지는 기현상을 보인 것이다. 이유는 이 좋은 소재들이 제대로 된 스토리를 만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러자 그 무게를 감당 못한 ‘에어시티’라는 비행기는 점점 떨어지고 있다. 드라마에서 리얼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차라리 만화 같은 이야기라도 시청자를 몰입하게 만드는 스토리라는 걸 이 드라마는 잘 보여주고 있다.

만화 같은 드라마, ‘쩐의 전쟁’ vs ‘메리 대구 공방전’
반면 현재 방영되고 있는 수목드라마들은 모두 만화의 속성을 갖고 있다. 만일 이들 드라마들을 만화적 장르의 틀로 구분한다면 ‘쩐의 전쟁’은 사실극화가 될 것이고, ‘메리 대구 공방전’이나 ‘경성스캔들’은 순정만화가 될 것이다. 이들 드라마 속의 대사들이나 액션은 현실적이지 않다. 하지만 만화적인 프레임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그 현실적이지 않은 과장된 장면들을 오히려 재미로 전환할 수 있다. 그것은 마치 게임과 같아서 일단 그 드라마가 취하는 룰을 인정하기만 하면 그 다음부터는 그 룰에 따라서 과장은 오히려 리얼한 재미로 둔갑하게 된다.

그렇다면 똑같이 만화의 속성을 취하고 있는 이들 드라마들은 왜 성패가 갈리게 된 걸까. 특히 ‘쩐의 전쟁’과 ‘메리 대구 공방전’은 그 이야기 소재에 있어서 돈을 다루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이유는 그 소재를 다루는 방식에 있다. ‘메리 대구 공방전’은 멜로 드라마의 퇴조가 가져온 여파에 억울할 것 같다.

이 톡톡 튀는 새로운 형식을 가진 드라마는 그 기본구도를 멜로 드라마로 가져가면서, 만화적인 참신한 시도가 자칫 네 명의 청춘남녀가 벌이는 가벼운 드라마로 오인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메리 대구 공방전’이 그렇게 만화처럼 키득대는 것으로 끝나는 가벼운 드라마가 아니라는 점이다. 반면 ‘쩐의 전쟁’은 만화적인 연출을 가져가면서도 그 태도는 늘 진지함에 머물러 있다. 그것이 ‘쩐의 전쟁’에 더 무게를 두게 하는 요인이다.

리얼함과 만화 같음, 그 얇아진 경계
재미있는 것은 어찌 보면 이 상충될 것 같은 ‘리얼함’과 ‘만화 같음’의 경계가 점점 모호해져 간다는 점이다. 과거라면 ‘만화 같은 스토리’라는 문구 속에는 부정적인 의미가 섞여 있었지만 요즘은 정반대가 되었다. 만화 같은 스토리는 이제 ‘재미있다’는 의미로 더 많이 읽힌다. ‘풀하우스’나 ‘궁’의 성공이 그걸 말해주고, 만화는 아니지만 만화적 감수성으로 성공한 ‘환상의 커플’은 만화적 재미가 이제 드라마 자체로도 생산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된 것은 만화가 그만큼 하위장르에서 상위장르로 승격되었다는 의미도 있지만, 이제 드라마의 리얼함이라는 것이 늘 검증될 수 있는 환경에서 살아가게 된 것도 한 몫을 차지한다. 인터넷에 몇 마디 키워드만 넣으면 여기저기 쏟아져 나오는 현장의 목소리 앞에서 드라마의 리얼함이란 알몸은 그대로 시청자들 앞에 노출된다. 그러니 만화적 감수성을 담은 연출은 여러모로 장점을 갖게 된다. 리얼함의 시험대에 오르지 않아도 되면서, 그 만화라는 장르적 특징 속에서 재미있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점을 갖고 있는 것이 바로 ‘쩐의 전쟁’이다. 만화적인 연출이 의도적으로 사용되지만 그 상황이 늘 긴박한 이유는 바로 이런 장점들을 잘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드라마의 공감대를 말할 때 우리는 장르나 소재 같은 겉으로 드러난 드라마의 모습 이면을 들여다봐야 하는 상황에 도달했다. 보여지는 건 만화적이지만 보면 볼수록 리얼한 드라마가 있는 반면, 보여지는 건 리얼하지만 그 안에 특별한 이야기가 없어 리얼하지 못한 드라마가 있는 것이다. 결국 드라마에서 중요해진 건 탄탄한 스토리와 그 스토리를 전달하는 태도로서의 진정성이다. 그것이 담보될 때, 드라마는 리얼하거나 만화 같거나 상관없이 공감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내 남자의 여자’, 불륜 소재 한계 넘었다

‘내 남자의 여자’가 가진 스토리를 보면 그다지 대단할 것 없는 전개를 보여준다. 친구와 남편이 바람을 피고, 그 바람 핀 것이 발각되고, 결국 살림까지 따로 차리고 이혼했는데, 정작 친구와 남편은 파경을 맞게 된다는 이야기. 놀라운 반전도 없고,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번뜩이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불륜이란 소재로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르면서도 이 드라마의 어떤 점이 도대체 시청자들을 몰입하게 만들었을까.

과거의 불륜드라마들은 대부분 가부장적인 남성이 중심에 있었다. 그래서 불륜도 남자가 저지르고, 그 불륜을 저지른 남자와 여자가 파멸에 이르는 권선징악적 결론에 다다르며, 배신당했던 조강지처는 멋진 새로운 남자를 만난다는 식의 끝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어찌 보면 주부들의 시각을 대변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환타지라는 점에서 고스란히 가부장적 체계 속으로 귀납되는 결과를 보여준다.

대신 ‘내 남자의 여자’는 여자가 주도적인 불륜드라마이다. 준표(김상중)는 우유부단한 인물로 어떤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존재로 그려지는 반면, 지수(배종옥)와 화영(김희애)은 주도적으로 자기 인생을 그려나간다. 불륜을 저지르고(화영), 불륜에 아파하다가 자립의 길을 걸어가는(지수) 이 둘은 마치 대결구도처럼 보이지만 순간순간 여자라는 입장을 통해 서로를 소통한다. 이것은 달라진 세태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지만 또한 불륜이라는 현상 이면에 존재하는 여자들의 삶에 천착한 결과이기도 하다.

당연한 결과지만 그리하여 이 드라마는 불륜이 갖는 환타지를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불륜 속에 깃든 사회현실 같은 것들을 건드린다. 결혼이라는 틀 속에 엮어지게 되는 수많은 관계들이 주는 억압을 들춰내는 것이다. 그 관계의 억압은 화영을 불륜이란 극단적 선택을 하게 만든 장본인이자, 그 불륜 또한 성공하지 못하게 만든 요인이다. 불륜에 피해를 본 지수가 불륜을 저지른 화영과 대화를 나누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은, 바로 똑같이 관계의 억압을 받았던 여자라는 동질감이 주는 어떤 유대감에서 비롯된다.

모두가 궁금해했던 결말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이 드라마가 깨려고 하는 것은 불륜, 그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히려 결혼이라는 사회적 통념에 대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결과적으로 사회적 통념과 부딪쳐 상처 입은 것은 이 세 남녀지만, 적어도 그들이 다시 결혼이란 틀로 들어오지 않고 각자 홀로 서서 “이게 더 편하다”고 말하는 단계에 다다르기 때문이다. 불륜이란 소재를 선택했지만 표피적인 접근이 아닌 진지함에 도달한 것은 확실한 이 드라마의 성과라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드라마가 그간 ‘불륜’이란 소재를 죄악시하게 만들었던 여타의 불륜드라마가 가진 한계를 넘어섰다는 점이다. 따라서 “불륜도 다루기에 따라 다르다”고 말한 김수현 작가의 말은 실증된 셈이다. 이것은 아무리 진부하고 식상한 소재라고 하더라도 접근방식에 따라 잘 만들어진 드라마가 가능하다는 점을 말해준다. 적어도 한 편 정도는 이런 불륜드라마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이토록 재주 많은 작가가 왜 하필 불륜이란 소재를 다루었냐는 아쉬움이 남는 것은 아직도 다양한 소재에 대한 갈증이 ‘성공한 불륜드라마’보다 더 크기 때문일 것이다.

화영이 보여주는 ‘내 남자의 여자’의 진실

SBS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는 지수(배종옥)만이 주인공인 이야기가 아니다. 만일 그랬다면 이 드라마는 자극과 신파로만 치닫는 한심한 불륜드라마의 틀 안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대신 이 드라마는 제목처럼 세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지수의 정반대의 캐릭터를 가진 화영(김희애)과 그들 사이에서 우유부단한 준표(김상중)가 그 나머지 주인공들이다. 준표야 그렇다 쳐도 화영이란 캐릭터를 그저 멀쩡한 친구 남편 꼬드긴 ‘쳐죽일’ 불륜녀로만 생각하는 건 이 드라마의 나머지 축을 버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 참 사랑하기 어려운 여자, 하지만 이해는 되는 화영이란 캐릭터가 이 드라마를 통해 말해주는 진실은 무엇일까.

어떻게 지수는 화영을 이해하는 걸까
화영에 대해 지수는 “딱하다”고 “이해가 된다”고 말한다. 어떻게 자기 남편과 바람이 나 가정까지 버리게 한 친구를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런 그녀들의 관계를 준표는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늘 받기만 했지, 누군가에게 무엇을 줘본 기억이 별로 없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들은 다르다. 입장이 서로를 반대쪽에 세우게 했을 뿐이지 그녀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온 몸을 던진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 지수는 20년 간 남편과 가족을 위해 헌신했고, 화영은 준표를 얻기 위해 1년 동안 겪을 수 있는 모든 수모를 겪었다. 이 공유점에서 지수는 두 가지 상반된 마음을 갖게 된다.

준표가 화영의 고통을 이해한다는 지수에게 “당신네 우정은 참 이상하다”고 고개를 갸웃거릴 때, 지수는 ‘경민의 엄마로서 고맙다’고 말한다. 화영을 절망에 빠뜨린 준표의 ‘아이거부’를 같은 여자로서 이해하면서도 그것이 엄마로서는 또한 고맙기도 하다는 것. 이런 상반된 감정이 가능한 것은 지수에게도 이른바 관계의 역할이라는 것이 다양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여자로서 20년 동안 헌신한 대가로 돌아온 고통을 겪은 지수는, 1년 동안 자신을 버려가며 얻으려 했던 사랑이 무의미해진 화영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게된다. 지수의 마음은, 또한 시청자들의 마음이기도 하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심지어는 분노를 일으키게 만드는 화영이란 캐릭터에 문득 ‘안됐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수가 이해하고, 시청자들이 안됐다고 생각하는 화영의 고통은 도대체 무엇일까.

관계의 거미줄에 걸린 화영
화영은 관계라는 거미줄에 걸린 나비 같다. 그녀가 미국사회에서 생활하다 국내로 들어왔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이토록 거미줄처럼 얽히고 설킨 가족과 사회란 관계에 진저리를 칠만 할 것이다. 그녀 자신의 미국생활조차도 가족들의 뒷바라지에 자신이란 개인적 존재는 없었던 시간들이었으니까. 그런 그녀가 한 남자에게 빠져들고 그것은 개인적 존재로서의 자신을 일깨우는 것이었기에 앞뒤 가리지 않는 절실함으로 변한다.

하지만 그녀가 몰랐던 것, 아니 알면서도 어쩔 수 없었던 것이 있다. 준표라는 남자 뒤에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관계의 거미줄들이 쳐져 있었다는 것. 화영은 먼저 친구인 지수와 연결된 거미줄을 잘라야 했고, 지수의 언니, 은수(하유미)와 아들 경민, 그리고 준표가 그다지도 끊기 어렵게 생각했던 부모와의 거미줄조차 잘라야 했다. 그렇게 준표를 거미줄로부터 떼어내어 둘만의 공간으로 오자, 이제는 준표의 속에 남아있는 거미줄의 기억과 습관이 그녀를 괴롭힌다. 준표는 지수의 밥에 끌리고, 경민에게 끌리고, 사회적 관계, 부자지간의 관계에 어쩔 수 없이 끌린다.

문제는 준표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 안타깝게도 화영은 지수 같은 아버지를 갖고 있지 못하다. 화영을 옭아매고 있는 거미줄들은 그 둘의 관계를 자꾸만 뒤틀어버린다. 1년 동안 그녀가 해온 일은 바로 그 복잡한 관계의 거미줄들과의 사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결과는? 자식을 원치 않는 준표는 그간의 관계를 부부관계가 아닌 정부관계로 돌려놓고, 그녀가 발견한 처리되지 않은 준표와 지수의 이혼서류는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준표 속에 있는 관계의 거미줄은 여전히 튼튼히 연결되어 있었던 것. 게다가 결혼을 가족과 가족의 결합으로 여기는 사회적 풍토와 그 풍토 속에 동화되어 살아가는 준표에 화영은 더 이상 자신이 없어진다.

화영의 분노가 이해되는 것은
“내가 겁나는 건 당신부모도 당신도 아냐. 바로 내 자신이야. 조심해. 잠잘 때도. 내가 당신 목을 조를 지도 몰라. 밥에도 독을 탈지도 몰라.” 화영이 이렇게 분노하는 이유는 그녀가 겪었던 “모욕, 수치, 경멸을 아무 의미 없게 만들어버린” 준표 때문이다. 그녀는 “내 사랑, 내 선택, 당신이란 남자, 당신 사랑의 의미를 찾는 중”이라 말한다. 살면서 보상해주겠다는 준표의 말에 그것은 “오히려 지긋지긋한 올가미가 아닐까”하고 쏘아댄다. 준표가 원하는 것은 영원히 친구처럼 연인처럼 사는 것이지,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그 관계의 거미줄의 일원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화영이 말한다. “당신 사랑은 비겁해. 아주 아주 비겁해.”

여기서 주목할 것은 마치 지수의 주부생활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온 준표의 사고를 깨버리는 화영의 존재다. “나를 지수로 만들려고 하는 게 화가 나. 나 자신도 지수처럼 되가는 거 싫어. 아내는 아내지 종이 아냐. 밥해주기 싫은 날이 있어. 그런데 해줬어. 그래서 지수가 되가는 거 같애.” 화영은 지수 같은 천사표 아내의 삶을 당연시 생각하는 이 시대 남성들의 생각에 일침을 가한다. 그리고 냄비를 내주며 해장국을 사다달라고 한다. 준표 같은 남자가 평생 해보지 않았을 그 일을.

화영이 지수와 전화통화를 하는 내용은 한국이란 사회에서 결혼해 살아가는 여자들이 새로운 가족이란 관계 속에서 당해야하는 관계의 부당함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나는 이해 받지 못하면서 왜 이해해야하는 지 모르겠어. 네가 경탄스러워.” “나는 모자라잖아. 모자라서 그렇겠지. 살면서 일어나는 일들 별거 아니잖아. 자꾸 파면 좋을 거 없잖아.” 그녀들이 공유하는 이 부당한 대접은 과거 가부장적 가족의 틀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관계와 서열로 대변되는 가부장적 가족의 틀. 김수현 작가는 이 불륜극을 통해 바로 그 틀의 견고함과 그 안에서 개인으로서는 존재하지 않는 여성의 삶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불륜이란 두 가지 힘의 충돌을 말한다. 그 하나는 사회가 가진 규범, 틀의 힘이고, 또 하나는 그 틀로부터 벗어나려는 힘이다. 김수현 작가는 이 두 힘의 충돌을 그리면서 그 화학작용 속에 숨겨진 보이지 않는 관계의 거미줄들을 잡아낸다. 비굴하고 치사하게 만드는 그 관계들 속에서 결국 그녀들이 얻은 것은, 관계 속에 매몰된 삶이 아닌 자신의 당당한 삶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홀로 서서 마주보는’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 남자의 여자’가 불륜극에서 시작해 심리극으로 치닫다가 말미에 사회극의 뉘앙스를 풍기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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