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얼음 오디션을 따뜻하게 만드는 '코갓탤'의 비결

'코리아 갓 탤런트'(사진출처:tvN)

58세, 음식점에서 청국장을 끓이는 아저씨가 손을 가지런히 배에 모으고 진지하게 '울게 하소서'를 부를 때 그 훈훈하고 감동적인 느낌은 어디서 생겨나는 걸까. 노래를 다 듣고 난 후 심사위원 장진 감독은 "저는 심지어 청국장도 좋아하구요. 지금 만들어주신 무대는 더더욱 좋았습니다."라는 위트 있는 말로 그 감동을 표현했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과연 살벌하기만 할까. 시스템적으로 보면 그렇다. 무대에 단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지고 바로 그 순간 당락이 결정된다. 절실했다면 절실한 만큼 프로그램의 긴장감은 더 높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 심사위원의 독설에 가까운 직언이 곁들여지면 분위기는 더 살벌해진다. 바로 이 살풍경한 느낌에서 무대는 현실을 환기시킨다. 생존경쟁이다. 바로 이 서바이벌에 방점이 찍힌 오디션 프로그램은 이 살벌함을 자양분삼아 긴장감을 높이고 시청률도 높인다. 그런데 모든 오디션 프로그램이 다 그럴까? 과연?

그 예외가 바로 '코리아 갓 탤런트(이하 코갓탤)'다. 앳된 중학생 아이가 섹시댄스라며 어색하지만 열정적으로 춤출 때 심사위원 박칼린과 송윤아는 잠시 심사를 내려놓고 환호를 지른다. "저는 일곱 살입니다"라며 전형적인 초등학생 말투로 말하는 귀여운 두 아이들의 발랄한 줄넘기 퍼포먼스가 무대를 유쾌하고 즐겁게 만들 때, 박칼린의 박장대소가 이어진다. 할아버지의 노래에 반주를 해주겠다고 나온 아이는 오히려 그 흥미로운 바이올린 연주에 더 주목받고, 유기견 백호가 전해준 아픈 이야기는 잠시 이 무대가 오디션임을 잊게 만든다.

몇 번의 실수? 물론 그것이 당락을 결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코갓탤'에서는 어떤 유쾌함을 주거나 더 보고 싶게 만들거나 가능성을 보여준다면 그런 실수 정도는 넘어갈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 무대가 예선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예선을 넘어 결선을 향해 간다고 해도, 그래서 긴장감이 점점 고조되는 무대라고 하더라도 어쩐지 '코갓탤'의 무대는 여타의 오디션 프로그램의 그것과는 다를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왜 그럴까.

먼저 가장 큰 이유는 소재다. '코갓탤'은 노래나 연기 같은 특정분야를 소재로 하는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탤런트, 재능을 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무대에는 노래에서부터 연기, 기예, 개그, 운동 등등 거의 모든 소재들을 가진 다양한 인물군들이 올라온다. 같은 분야의 경쟁은 어쩔 수 없이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고 공정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심사방식도 더 냉철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코갓탤'은 다르다. 물론 이 프로그램도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의 재능을 보여야 하는 것은 맞지만 중요한 것은 '공감대'다. 그 퍼포먼스가 보는 이들에게 얼마나 큰 감흥을 주느냐가 관건이 되는 것. 바로 이 공감의 지점이 이 오디션을 훈훈하게 만들어주는 숨은 공신인 셈이다.

이러한 소재와 인물들이 좀 더 따뜻하게 그려질 수 있는 것은 잘 계산된 연출과 MC들의 힘도 크다. 박칼린의 카리스마 넘치면서도 인간적인 매력과, 송윤아의 따뜻한 시선, 그리고 장진 감독의 위트 있는 유머는 '코갓탤'이 어떤 훈훈한 의미화가 가능할 수 있는 기본전제가 된다. 연출은 이들을 좀 더 관객과 가까우면서 동시에 출연자에 다가갈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만들어준다.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과 달리 무대에서 등장하지 않고 관객들 사이를 지나 심사위원석에 앉는 연출은 이 프로그램의 심사위원과 관객 사이의 공감대를 미루어 짐작하게 해준다. 또한 무대 위에 오른 출연자들의 퍼포먼스를 보며 기꺼이 눈물 흘리고 박장대소를 해주며 따뜻한 말을 건네는 건 역시 MC들의 몫이다. 또한 무대 옆에서 출연자들을 응원해주고, 또 탈락한 출연자들에게는 위로를, 합격한 출연자들에게는 기쁨을 나눠주는 노홍철과 신영일 아나운서의 존재감도 빼놓을 수 없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핵심은 서바이벌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프로그램들이 살풍경인 것은 아니다. 합격자에게 그들보다 더 기쁘게 축하를 해주고픈 마음이 들고, 탈락자에게도 아낌없는 박수를 쳐주고픈 마음이 들게 하는 '코갓탤'은 그래서 긍정의 에너지가 더 넘치는 특별한 오디션이다. 오디션 프로그램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충분히 따뜻해질 수 있다는 것을 '코갓탤'은 보여주고 있다.

모자란 ‘무한도전’ VS 배고픈 ‘1박2일’

바야흐로 리얼 버라이어티쇼 전성시대. 소위 말해 캐릭터가 잡히면 프로그램은 뜬다. 이것은 진행형 스토리를 갖춘 리얼리티쇼에서 이제는 드라마나 시트콤만큼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캐릭터가 중요해졌다는 말이다. 리얼 버라이어티쇼 중 ‘캐릭터가 잡힌’ 프로그램은 그 캐릭터라이즈드 쇼(Characterized Show)의 선구자인 ‘무한도전’이 될 것이며, 후발주자로서 급속히 ‘캐릭터가 잡혀가고 있는’ 프로그램은 ‘1박2일’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두 프로그램이 제공하는 캐릭터들은 어떤 특징들을 갖고 있을까.

마이너리티 캐릭터들의 집합, ‘무한도전’
‘무한도전’을 이끄는 수장인 유반장(유재석)은 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들이대는 캐릭터들을 배려하고 조절하는 캐릭터다. 올 들어 새로 한 반장선거에서 거성 박명수가 반장에 당선됐어도 여전히 유반장의 실질적인 반장 역할을 기대하게 되는 것은 이 팀에서 유반장이 가진 이 캐릭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캐릭터는 유반장이 ‘무한도전’ 외 많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약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 이른바 리얼리티쇼 시대에 그 균형과 수위를 조절하는 유반장 캐릭터는 어디서든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부가되는 유재석만의 장점은 반장 역할을 하면서도 자연스럽게 팀원들과 동등한 눈높이에서 놀아준다는 점이다. 이 부분은 자칫 방관자 혹은 외부자 역할이 될 수 있는 그를 프로그램 속으로 안착시키는 힘이 된다.

그런 유반장이 이끌어가는 팀원들은 전체적으로 마이너리티 캐릭터들이다. 정형돈은 웃기지 못하는 개그맨 캐릭터이며, 뚱뚱보 정준하는 식신에서 점점 ‘노브레인 서바이벌’의 바보 캐릭터로 변신해가고 있다. 꼬마 하하는 키가 작은 신체적 결함을 극대화한 캐릭터이며, 퀵 마우스 노홍철은 쉴 새 없이 떠들어대는 소심한 수다쟁이에 저질댄스로 일관하는 캐릭터이다. 거성 박명수 역시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지만 사실상 힘은 없는 아버지 캐릭터이다. 무언가 사회적으로 보면 이들 캐릭터들은 나사 하나씩이 풀려 있거나 비하되는 입장에 서 있다.

여기서 특징적인 것은 거성 박명수 캐릭터다. 박명수는 자칫 이 ‘하향평준화된’ 쇼의 팀원들 속에서 자칫 당연한 것으로 매몰될 수 있는 바보스러움이나 마이너리티한 부분들을 다시 끄집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야 그것밖에 못해!”하며 버럭 소리를 지르는 것은 상대방의 마이너리티를 부각시키는 기능을 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캐릭터를 강화시킨다. 이러한 박명수 캐릭터의 효용성은 리얼리티쇼 시대에 유재석이 그러한 것처럼 타 프로그램 속에서 자연스럽게 요구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캐릭터가 버럭 댈 때 그 자칫 싸해질 수 있는 분위기를 유화시키는 캐릭터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것이 유재석과 박명수 캐릭터가 특유의 콤비를 이루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해피투게더’의 인기에는 이 명콤비의 역할이 그만큼 큰 자리를 차지한다.

이렇게 ‘무한도전’ 팀의 캐릭터가 구축된 것은 그 프로그램의 성격이 크게 좌우한 것이 사실이다. 때론 과장된 느낌의 도전을 하는 데 있어서 그 웃음을 극대화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모자란 캐릭터이다. 따라서 부족한 이들이 무언가에 도전을 하면서 실패하고 때론 이루기도 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재미를 준다. 그리고 이것은 캐릭터의 성장드라마를 만든다. 초반부 ‘무모한 도전’과 ‘무리한 도전’에서 말도 안 되는 도전을 하던 캐릭터들은 이제 스포츠댄스나 드라마 단역 같은 제대로 도전이 될 만한 일에 도전을 한다. 초반부 반 막노동 같은 몸 개그에서 시작한 쇼는 이제 점차 몸치에서 유발되는 몸 개그로 바뀌고 있으며, 이제는 구축된 캐릭터의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으로 나가고 있다.

배고픈 캐릭터들의 야생, ‘1박2일’
유재석이 쇼의 구성원이면서도 조절자 역할을 하는 것처럼 ‘1박2일’의 강호동도 같은 역할을 한다. 다만 그 역할 수행에 있어서의 성격은 다르다. 유재석은 한껏 몸을 낮춰 구성원과 거의 같은 위치에서 진행을 하는 반면, 강호동은 맏형 같은 캐릭터로 철저하게 쇼를 이끌어간다. 이것은 강호동 특유의 뚝심과 순발력으로 가능한 것이지만 ‘1박2일’의 성격과도 관계가 있다. 여행이라는 야생의 도전 상황 속에서 수평적인 눈높이보다 때로는 보호해주고 때로는 재미있게 상황을 이끌어 줄 수 있는 캐릭터에 대한 요구가 더 크기 때문이다. 복불복 게임 등을 통해 야생버라이어티의 재미를 부가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상대방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분위기를 이끌어간다고 해도 그가 모든 것을 조절하는 것은 리얼리티쇼를 그르친다. 그렇기에 필요한 캐릭터가 아무리 강압적으로 밀어붙여도 안 되는 캐릭터다. 바로 초딩 은지원이다. 그가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초딩이라는 닉네임을 달고 있는 한 그의 어떠한 야생 속에서의 행동도 초딩이란 아이의 정서적 본능으로 인정된다. 여기에 합세한 캐릭터가 야생몽키 MC몽이다. 은지원이 아이의 본능을 앞세워 강호동을 무력화시킨다면 MC몽은 말 그대로 야생의 본능에 충실한 그 자체로 강호동을 무력화시킨다.

‘1박2일’의 캐릭터 조합이 재미있는 것은 각각의 캐릭터들이 쇼의 부품처럼 잘 구조되어 있기 때문이다. MC몽의 야생이 무적일 것 같지만 그에게 대항하는 자는 도시의 샌님 역할을 하는 허당 이승기다. 그는 야생 속에서도 늘 외모를 관리하고 좀 더 편안한 것을 찾으려는 본능적인 몸부림을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두 번의 에피소드로 연결된 MC몽과 이승기의 탁구대회와 배드민턴 대회는 대결구도를 통해 두 캐릭터를 순식간에 강화시켰다.

여기에 나머지 두 캐릭터인 김C와 이수근의 역할도 구조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존재들이다. 김C는 야생을 야생처럼 만드는 역할을 한다. 그는 진짜로 늘 괴로운 얼굴을 하고 있다. 마치 고행을 하는 사람처럼. 여기에 이수근은 정반대다. 그 역시 힘든 것은 분명하지만 그는 너무나 야생에 적응을 잘한다. 시골생활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어 일꾼의 캐릭터가 되는 것은 이 여행이라는 컨셉트의 베이스를 형성한다. 이 둘은 상반되면서도 비슷하다. 둘다 야생에서 잘 버틴다는 점이다. 김C는 마치 삶은 고행이라는 것 같은 달관한 느낌을 주는 것으로, 이수근은 실제 생존능력을 갖춘 것으로.

이렇게 구성된 ‘1박2일’ 팀원들의 전체 캐릭터는 배고프고 고달픈 자의 본능으로 대변된다. ‘만성피로 프로젝트’라 강호동이 스스로 일컫는 것은 이런 본능적 캐릭터들을 강화시키기 위함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 야생 속에서의 투쟁(?)이 아귀다툼으로 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것은 맏형 강호동이나 인생 다 산 것 같은 김C, 무언가 어려운 일이 있어도 다 해결해줄 것 같은 이수근 같은 캐릭터들이 아이들처럼 노는 다른 캐릭터들 간의 끈끈한 정을 늘 유지해준다는 데 있다.

캐릭터가 중요해진 리얼 버라이어티쇼 시대에 이제 쇼는 하나의 시트콤이나 드라마처럼 되고 있다. 따라서 캐릭터는 그냥 그 자체가 재미있어서 구축된 것이 아니라 상황에 맞는 기능으로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으로 봐야 한다. 이것은 시트콤이나 드라마 속에서 캐릭터들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웃음과 유사하다. 이제 리얼 버라이어티쇼는 점점 캐릭터들의 살아있는 드라마가 되어가고 있고 ‘무한도전’과 ‘1박2일’의 캐릭터들이 그걸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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