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산다>, 잘 나가는 이유? 남자들에 있다

 

설 특집으로 방영된 <남자가 혼자 살 때>가 정규편성 되면서 굳이 몇 번의 제목을 고치더니 <나 혼자 산다>가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다. <남자가 혼자 살 때>의 뉘앙스가 어딘지 소극적이고 궁상맞은 느낌을 주었던 반면, <나 혼자 산다>는 좀 더 당당하고 즐기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기 모인 무지개 회원들은 구호를 굳이 이렇게 외친다. “나 혼자 산다! 자알-”

 

'나 혼자 산다'(사진출처:MBC)

사실 혼자 사는 남자들의 이야기가 뭐 그리 재미있을까 한번쯤 의구심을 갖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지금껏 그런 이야기를 방송을 통해서(특히 예능에서) 본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방송이 조명하는 남자들의 이야기란 여행을 가거나(1박2일) 특별한 도전을 하거나(무한도전, 남자의 자격) 게임이나 스포츠를 하는(우리동네 예체능) 식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방송은 이 남자들이 지금껏 보여주지 않았던 면들을 보여주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아빠 어디가>는 대표적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아빠들은 지금껏 바쁘다는 핑계로 좀체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했던 아이들과 1박2일의 추억 여행을 떠난다. 처음에는 아내 없는 아이와의 여행이 어색하기도 하고 영 적응이 안 될 정도로 낯설기도 했지만, 몇 주가 지난 지금 아빠들은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잠이 들고 스스로 척척 아이들의 아침밥을 차려낸다. 조금 투박하긴 해도 아빠와 함께 놀고 아빠가 차려주는 밥을 맛있게 먹는 아이들의 이야기는 그래서 새롭다. <아빠 어디가>의 성공은 아이들이라는 순수의 지대가 일등공신임에 분명하지만 거기 새로운 남자들의 이야기가 주는 호기심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관전 포인트인 셈이다. <일밤>이 남자들의 군대이야기를 새롭게 시작하는 것도 같은 의도가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이 새로운 남자들의 이야기가 핵심적인 재미를 만들어내는 프로그램은 <나 혼자 산다>가 아닐까 싶다. 이 프로그램의 남자 이야기가 새로운 것은 지금껏 우리가 잘 보지 못했던 남자들의 수다와 놀이(그것도 남자들끼리 놀거나 혼자 노는)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사실 노홍철과 김태원, 이성재, 서인국, 김광규, 데프콘 같은 너무나 다른 색깔을 가진 남자들이 카페 같은 공간에 둘러앉아서 신나게 수다를 떠는 모습은 그 자체로 우습다.

 

<우리 결혼했어요>에 나간다면 누구랑 나가고 싶냐는 노홍철의 질문에 김태원이 강수연을 얘기하고, 서인국이 김혜수를 떠올리며, 김광규가 김완선을 지목하는 것보다 더 재미있는 건 이렇게 남자들끼리 둘러앉아서도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이야기꽃이 주는 새로움이다. 그 누가 수다를 여성들의 전유물이라고 했던가. 누군가와의 정이 그리울 수밖에 없는 이 혼자 사는 남자들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모였을 때 끊임없이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심지어 이성재처럼 프로그램이 끝나고도 자리를 뜨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그리고 또 한 가지의 재미는 이들의 놀이다. 서인국의 집을 방문한 노홍철이 그 구질구질한 방에서 삼겹살을 구워먹으며 그 방에 동화되는 즐거움을 느끼거나, 노홍철의 제안으로 한강변에서 야경을 즐기는 장면은 그것이 너무나 일상에 닿아있어 지금껏 여타의 예능에서 보지 못했던 새로운 감흥을 만들어낸다. 여행이나 도전 같은 특별한 계기가 아닌 다음에야, 지극히 일상적인 공간에서 남자와 남자가 함께 노는 장면은 그리 흔하지 않다. 기껏해야 남자들의 만남이란 술자리에서 시작해 술자리로 끝나기 일쑤가 아닌가. 그만큼 우리네 남자들은 일할 줄은 알아도 놀 줄은 잘 모른 채 살아왔던 게 사실이다.

 

김광규의 집을 방문한 김태원이 즉석에서 기타를 조율해 주고 레드 제플린의 곡을 연주하며 노는 모습이나, 데프콘의 집을 방문한 이성재가 힙합 리듬에 맞춰 어색하지만 즉석에서 랩을 하는 장면은 그래서 흥미롭다. 수다 떠는 남자들이나 저들끼리 노는 남자들의 모습은 어쩌면 과거와는 갑자기 달라진 시대에 어쩔 줄 몰라 하는 남자들에게는 하나의 판타지가 되기도 한다. 왜 남자들이라고 그렇게 한가롭게 수다를 떨거나 놀고 싶지 않겠는가. 다만 그렇게 사는 남자가 무능력하고 무책임하다 교육받아온 탓이 클 뿐이다.

 

<나 혼자 산다>는 그래서 독신자들(혹은 독거자들. 제목에서 남자를 뺏으니 여자도 출연이 가능해졌다)의 라이프스타일을 하나의 트렌드로 보여주는 프로그램이지만, 그것은 또한 달라지고 있는 가족 관계 속에서 남자들에게 새로운 삶의 방식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남편, 가장, 아빠, 회사원 같은 누군가의 관계 속에서만 늘 서왔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혼자 남겨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남자들이라면 그래서 이 프로그램을 보며 그 삶이 또한 유쾌하고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노홍철이 말한 것처럼 자신이 스스로를 아끼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 때로는 그 어떤 즐거움보다 크다는 것을 판타지처럼 발견할 수도 있을 게다.

예능에 몰아친 ‘브라우니 신드롬’의 실체

 

“브라우니, 물어!” <개그콘서트>의 <정여사>라는 코너는 아이러니하지만 정여사보다 브라우니가 더 떴다. 물론 그렇다고 정여사라는 캐릭터를 만든 정태호의 존재감이 약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감사합니다>에서 가능성을 보이고 <용감한 녀석들>로 주목받게 된 정태호는 <정여사>를 통해 <개그콘서트>의 중심축으로 올라섰다. 그만큼 존재감이 강하지만 브라우니의 열풍이 워낙 거세다는 얘기일 뿐이다.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무언가 말 못하는 존재를 캐릭터로 세워두고 정여사는 끊임없이 제 멋대로 해석을 단다. 누굴 더 좋아하느냐고 선택을 강요하고는 (당연히) 가만있는 모습에 “브라우니 공평해!”라고 의미를 붙이는 식이다. 브라우니는 당연하지만 짖지도 않고 말하지도 않으며 심지어 움직이지도 않는다. 그러니 주인이 데리고 다니면서 마음껏 의미를 부여하는 걸 허락한다. 바로 이 제 멋대로의 해석과 의미부여를 놀이화 한 것이 바로 브라우니 열풍의 실체다.

 

<우리 결혼했어요>에 새내기로 출연하고 있는 시크릿의 선화와 제국의 아이들의 광희가 호핑볼 두 개를 놓고 벌이는 놀이는 전형적인 브라우니 놀이의 연장선이다. 시어머니와 시아버지라고 호핑볼의 캐릭터를 세우고는 그 첫 만남의 떨림을 상황극을 통해 놀이로 만들어낸다. 광희는 그 과정에서 자신의 아버지가 키가 작다며 선화에게 한껏 몸을 낮추라고 하기도 하고, 콩글리쉬로 아버지가 63빌딩만하다고 얘기하게 만들기도 했다. 물론 이것은 누군가를 상정한 것이 다르지만 본질적으로는 브라우니 놀이와 비슷하다.

 

<우리 결혼했어요>의 또 다른 커플인 이준과 오연서 역시 비슷한 브라우니 놀이를 보여준다. 즉 이준의 숙소에서 단이라는 이름의 인형을 발견하고 누구냐고 오연서가 묻자 ‘옛 애인’이라며 하는 놀이가 그렇다. 오연서가 묘한 질투의 모습을 보이자 이준은 단이를 바닥에 내팽개치는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둘이 함께 지낼 우결마을의 집에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나타난 이준이 단이를 자신의 발목에 묶고 나타난 것도 같은 맥락의 놀이다. 오연서는 질투하고 이준은 마치 두 여자 사이에서 괴롭다는 표정을 짓고.

 

도대체 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브라우니 같은 존재들과의 놀이에 빠져드는 이유는 뭘까.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이것은 거꾸로 그들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심지어 아무런 능동성도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더 빠져들게 되는 놀이다. 자기표현을 한 가지로 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이 거기에 마음대로 의미부여를 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인터넷 상으로 이른바 브라우니 관련된 수많은 놀이들이 행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는 누구나 브라우니를 통해 내 입장을 대변시킬 수 있다. 그는 어느 누구에게나 자신을 기꺼이 빌려주는(빌려줌으로써 가능한) 그런 존재다.

 

하지만 브라우니는 거꾸로 우리가 지금 어떤 상황에 봉착해 있는가를 에둘러 말해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소통에 대한 갈증과 더불어 그 완전한 소통은 불가하다는 현실이 브라우니 같은 존재에 대한 열광으로 이어진다. 뭐든 끝까지 들어주고 완전히 이해해주며 그들이 원하는 대로 이뤄주는 그런 존재를 우리는 현실에서 발견하기가 어렵다. 심지어 가족 간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전화 하나만 들면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 바로 연결될 수 있고, 인터넷으로 들어오면 순식간에 엄청난 수의 사람들과 접속하고 교류할 수 있다. 작은 단문 하나를 트윗하는 것으로 세상의 무수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시대지만 그래도 남는 아쉬움과 허전함은 있다. 우리는 과연 진정으로 소통하고 있는 걸까. 브라우니처럼 내 맘을 그대로 받아주고 투영해주는 그런 소통의 존재가 우리에겐 얼마나 있는 걸까. 말없는 브라우니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게임 버라이어티의 무한진화, '런닝맨'이 보여주는 것

'런닝맨'(사진출처:SBS)

세상은 넓고, 할 '게임'은 많다. 사실 게임만큼 예능의 오랜 '고정(?) 소재'는 없다. 멀게는 '명랑운동회'에서부터 '캠퍼스 최강전'이나 '출발 드림팀' 같은 예능을 거쳐 단련되어온 게임 버라이어티의 세계는 스튜디오든 야외든 어떤 특정 공간에서의 게임을 다루었다. 그러다 이 공간에 변화가 일어난 것은 '무한도전' 같은 리얼 버라이어티쇼를 만나면서다. 이것은 카메라가 단순히 실내에서 야외로 나간 것이 아니라, 게임의 공간 자체가 확장된 것이다.

'무한도전'은 '여드름 브레이크'나 '경주보물찾기' 같은 특집에서 볼 수 있듯이 실제 도시 전체를 게임의 공간으로 삼기도 한다. '1박2일'은 여행지를 복불복 같은 게임의 공간으로 활용하고 '패밀리가 떴다'는 시골을 배경으로 그 지형지물을 이용한 게임을 한다. 게임의 종목도 가지가지다. 축구나 족구, 배드민턴, 탁구 같은 일반적인 스포츠가 게임의 소재가 되기도 하고, 퀴즈 풀기나 머리를 써서 통과해야 하는 미션이 게임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런닝맨'은 바로 이 다양한 소재의 게임을 전면에 내세운 버라이어티쇼.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런닝맨'이 끊임없이 자체 진화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도시의 어떤 특정 랜드마크를 공간으로 해서 런닝볼을 찾는 비교적 단순한(?) 게임으로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에는 추격자와 도망자로 팀이 나뉘어져 추격전을 벌이다가(여기서 그 유명한 방울이 등장한다) 이제는 게스트를 찾는 게임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숨은 게스트를 찾는 게임에서, 게스트가 숨은 런닝맨들을 찾는 단계로 넘어서더니, 이제는 아예 런닝맨 속에 게스트를 숨겨놓는 제작진의 두뇌게임이 추가된다. 유재석이 사실은 숨겨진 게스트로 활동하면서 다른 런닝맨들의 이름에 물총을 쏘았던 미션은 '런닝맨'의 새로운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이 지점에서부터 런닝맨들은 제작진들을 믿지 않게 되었고, 그러자 미션은 좀 더 복잡해졌다.

서울에서 대구까지 전국을 횡단하는 미션은 아예 목적지도 그날의 게스트도 숨긴 채 시작되었다. 따라서 목표도 룰도 모르는 이 미션 속에서 런닝맨들은 중간 중간 주어지는 단서들을 찾아나가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것은 마치 컴퓨터 게임의 진화처럼 단순한 대전에서 복잡한 RPG나 시뮬레이션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보는 것 같다. 그런데 이것이 또 끝이 아니다. 최근 '런닝맨'은 한 광고회사를(실제로 일하는 공간) 아예 게임의 공간으로 삼았고, 회식자리에 사원들을 더 많이 유치하는 게임을 벌였다.

'런닝맨'이 보여준 이 다양한 게임들과 그 진화과정들은(현재도 진행형인) 대단히 흥미롭고 심지어 놀랍기까지 하다. '런닝맨'은 이 과정들을 통해서 사실 어떤 공간이든 '놀이의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 같다. 우리가 늘 스포츠를 관람하던 경기장이나, 물건을 사러 갔던 백화점, 아니면 그저 걸어 다녔던 어떤 거리 혹은 심지어 치열하게 살아왔던 일터까지 '런닝맨'은 순식간에 '놀이의 공간'으로 바꾸어놓는다. 이 얼마나 발랄하고 유쾌한 상상력인가.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고? 천만에. 적어도 '런닝맨'이 보여주는 건 세상은 넓고 즐겁게 할 수 있는 놀이는 많다는 사실이다. 엄격한 일의 공간을 해체해 놀이의 공간으로 바꾸어버린 이 '런닝맨'의 진화과정이 흥미롭고 또 앞으로도 기대되는 것은, 일 권하는 사회를 무화시키는 이 발랄한 시각이 못내 유쾌하기 때문이다. 게임 버라이어티의 진화를 보여주고 있는 '런닝맨'. 이제 이 어디로 튈 지 모르는 놀이의 상상력은 우리가 가진 어떤 고정관념을 또 깨주게 될까. 실로 기대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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