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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 드라마의 변하지 않는 한계들

 

KBS <태양의 후예>가 방영될 때까지만 해도 지상파 드라마의 부활을 기대하게 했었다. 무려 4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했고, 화제성은 국내는 물론이고 중국이 들썩거릴 정도였다. 대사는 유행어가 되고 드라마에 등장한 PPL이 논란이 될 정도로 업계를 들었다 놨다 했다. 심지어 종영 후 스페셜 방송으로 편성된 프로그램이 본방 드라마 시청률을 압도했으니 무슨 말이 필요하겠나.

 


'굿바이 미스터 블랙(MBC)'

하지만 <태양의 후예>가 지나간 자리를 보면 다시 본래의 지상파 드라마로 돌아간 느낌이다. <태양의 후예> 종영 후 수목드라마의 패권을 두고 각축전이 벌어질 것으로 여겨졌지만 어째 드라마 대결은 시시해져가는 양상이다. <태양의 후예>를 이어 KBS가 야심차게 준비한 <국수의 신>은 첫 회 7.6%로 시작해 2회에는 6.5%로 대폭 하락해 동시간대 꼴찌를 기록했다.

 

드라마의 완성도는 낮은 편이 아니다. 하지만 시청자들이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너무 무겁고 어둡고 독한 복수극. 2회 만에 네 명이 죽어나갔다. 그것도 주인공의 부모는 어린아이의 눈앞에서 불에 타 죽었다. 게다가 어디선가 봤던 구도와 소재 그리고 성장드라마라는 틀이 시청자들에게는 그리 참신하게 다가오지 못하고 있다. 드라마가 연출적인 면에서 완성도가 높다고 해도 결국 그 최종 결과의 키는 시청자들의 선택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다. 그잖아도 어두운 현실에 드라마까지 어두운 걸 봐야 할까.

 

동시간대에 방영되는 MBC <굿바이 미스터 블랙><태양의 후예> 이후 반사이익을 얻어 시청률 1위를 차지하고는 있지만 그것이 드라마의 내적인 힘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 드라마 역시 지상파 드라마에서 늘 등장하곤 하는 복수극, 출생의 비밀, 로미오와 줄리엣 설정 같은 것들이 얼기설기 이어져 있다. 스토리도 올드한 데다 연출은 가히 재앙급이다. 마치 아이들 만화를 보는 듯한 유치함 때문에 몰입이 안 되고 실소가 터질 때가 많다.

 

그나마 SBS <딴따라>는 나은 편이다. 6.2%(닐슨 코리아)로 저조하게 시작했지만 꾸준히 상승세를 이어가 8.3%를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음악이라는 소재와 지성이라는 배우의 존재감 그리고 무엇보다 전체적으로 따뜻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 주효한 덕분이다. 첫 회 완성도는 시청자들에게 많은 지적을 받았지만 그것이 자극이 되었는지 갈수록 안정적인 느낌을 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딴따라> 역시 무언가 임팩트가 느껴지지 않는 건 어쩔 수 없다.

 

물론 큰 성공을 거둔 드라마의 후속 드라마들은 대부분 성공하기 어렵다는 게 속설이다. 그만큼 높아진 기대치를 맞추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지금 방영되고 있는 수목드라마들의 모습은 너무나 전형적인 지상파 느낌이 강하다. 늘 해왔던 문법들 안에서 뱅뱅 돌고 있고, 비슷한 패턴들의 반복이다. 특히 비슷한 방식으로 전개되는 복수극이라는 닳고 닳은 소재에 대해서 시청자들은 식상함을 느끼고 있다.

 

<태양의 후예>가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지상파 방식이 아닌 영화적 방식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사전 제작이나 글로벌 투자 방식 같은 새로운 접근이 새로운 드라마를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시그널> 같은 비지상파 드라마들이 주목받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지상파와는 완전히 다른 제작시스템은 마치 영화 같은 심도와 완성도의 드라마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런 드라마들에 이미 눈이 떠진 시청자들이다. 구태의연한 과거의 틀을 답습하는 드라마가 눈에 들어올 리 있겠는가.

 

물론 드라마 라인업은 당장 만들어질 수 있는 건 아니다. 지금 준비해도 빠르면 내년쯤에나 가능한 게 드라마 라인업이다. 그래서 <태양의 후예>의 성공을 예측하지 못했다면 후속드라마들이 예전의 지상파 드라마로 돌아가는 건 당연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냉정하다. 일단 높아진 눈높이에 지상파 드라마들도 맞춰나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태양의 후예>의 영광만을 계속 회고하며 살아가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니.

Posted by 더키앙

<딴따라>, 우리네 가요계 현실과 판타지의 조화

 

SBS 새 수목드라마 <딴따라>는 그 인물들의 관계 구조만 보면 영화 <비긴 어게인>이 떠오른다. 물론 미국의 상황과 우리가 같을 수는 없다. 그래서 그 정서적인 느낌이나 드라마가 가져올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이야기들도 완전히 다른 건 사실이다. 하지만 최고로 잘 나가던 매니저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그 밑바닥에서 가능성 있는 가수의 목소리를 듣고는 마치 구원을 받은 듯한 표정을 짓는 장면은 <비긴 어게인>에서 프로듀서 댄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레타의 노래로 구원받는 장면과 그리 다르지 않다.

 


'딴따라(사진출처:SBS)'

사실 이건 음악이라는 소재가 동일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유사성일 수 있다. 즉 음악이란 실로 기적 같은 것이어서 진정 절망의 벼랑 끝에 선 이들을 다시 구원할 수도 있는 마력을 발휘한다. 그것이 미국이든 우리나라든 상관없이. <딴따라>라는 드라마에 대한 기대감 역시 바로 이 음악이 만들어내는 기적 같은 순간들에서 나온다는 점에서 그 유사성들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요한 건 그 이야기가 그려내는 현실들이 우리 것이어야 공감대가 커질 수 있다는 점일 게다.

 

그런 점에서 보면 <딴따라>는 첫 회에 꽤 많은 우리네 가요계의 문제들을 들춰냈다. 신석호(지성)라는 매니저의 뒤를 따라가 보면 연예 매니지먼트 사업과 파파라치 매체의 비즈니스가 슬쩍 드러나기도 하도, 아이돌 그룹의 자작곡의 이면에서 눈물 흘리는 실제 원작곡자들과 기획사 사이의 은밀한 거래가 보이기도 하며, 또 음원 차트 1위를 기록하기 위해 이른바 공장이 동원되어 음원사재기가 횡행하는 우리네 가요계의 어두운 면들이 폭로되기도 한다.

 

여기에 방송사와 기획사의 관계, 나아가 기획사 내부에서도 오너와 매니저들의 관계까지 비교적 자세하게 가요계의 네트워크들이 <딴따라>에는 잘 그려져 있다. 이러한 현실적인 밑그림들은 이 드라마가 궁극적으로 그리려는 기적 같은 음악의 순간들과 잘 대비되어 드라마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최고의 위치에 있다가 하루아침에 밑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매니저들의 이야기는 가요계 나아가 연예계에 넘치고 넘친다. 물론 그들이 다시 부활하는 기적 같은 이야기들도.

 

하지만 <비긴 어게인>에서도 이미 시스템화 되어 있는 팝 시장에서 댄이 상업적일 것 같지 않은 보석 같은 그레타의 목소리를 찾아내 상업적인 성공까지 거두게 되는 판타지를 통해 천편일률적인 팝 음악 산업의 대안 같은 걸 보여줬듯이, <딴따라> 역시 거대 기획사와 아이돌로 대변되는 우리네 가요계 시장의 어떤 대안들을 보여줄 것인가가 관건이다. 하늘(강민혁)은 그 원석이 되어줄 것이고, 신석호와 그린(혜리)은 그 원석이 빛날 수 있게 기존 가요계의 흐름과는 다른 새로운 그림을 그려줄 것이다.

 

결국 신석호의 추락을 통해 보여진 우리네 가요계의 부조리한 현실들을 하나하나 깨치고 나가는 과정들이 <딴따라>의 판타지이며 성공 스토리가 된다는 점이다. 물론 이런 이야기들은 이미 그 많은 가요계의 대안으로 제시됐던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많이들 들고 나왔던 것들이긴 하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이 대안으로 제시되는 스토리와 거기 얹어진 음악들이 시너지를 이루며 대중들을 매료시켰던 형식이다.

 

<딴따라>는 이 오디션 프로그램이 했던 방식을 드라마타이즈하고 있다. 음악은 그래서 이 드라마에 스토리만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인물들의 이야기와 성장은 어쩌면 이 드라마가 제시하는 음악들을 통해 감동적으로 전해질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딴따라>는 겨우 원석인 하늘과 밑바닥으로 내려온 신석호가 노래를 통해 만나는 지점에 서 있다. 그들이 함께 현실과 판타지를 뒤섞어 그려갈 가요계의 대안들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Posted by 더키앙

광대는 어떻게 대중들을 대변했나

 

이병헌 주연의 영화 <광해>는 자꾸만 ‘광대’로 읽힌다. 그 영화 속 주인공이 다름 아닌 기방에서 왕 흉내 내며 웃음을 주는 대가로 살아가는 광대다. 그 광대가 광해를 대신한다. 처음엔 연기였는데 하다 보니 점점 왕의 역할을 제대로 해나가기 시작한다. 광대가 광해가 되어 광해보다 더 민초들을 생각하는 정치를 하게 되는 이야기. 1천만 관객 돌파에 스크린 독점과 지나친 마케팅이 일조한 것이 사실이지만 <광해>의 흥행에는 바로 이 ‘광대’라는 위치가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다.

 

'강남스타일'과 '광해'(사진출처:YG엔테테인먼트, 영화 광해)

지금으로 치면 연예인에 해당할 것이다. 대중들에게 값싼 대중문화를 통해 심지어 희망까지 주는 존재. 청소년들 세 명 중 한 명이 희망하는 직업. 물론 그만큼 치러야할 대가도 만만치 않지만 대중들의 마음을 고스란히 대변하는 그런 사람들. 영화 <광해> 속 하선(이병헌)은 분명 작금의 연예인을 빼닮았다.

 

요즘 연예인들은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고 그런 발언이 대중들의 귀에 쏙쏙 들어온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러고 보니 영화 속 하선이 던지는 “그대들이 죽고 못 사는 사대의 명분보다 내 나라, 내 백성이 열 갑절 백 갑절은 더 소중하오!”라는 대사는 SNS 시대에 때론 소셜테이너들이 던지기도 하는 속 시원한 한 줄 촌철살인 그대로다. <광해>는 여러모로 광대로 읽힌다.

 

또 한 명의 광대가 있다. 이 시대를 온통 말춤으로 들썩거리게 만든. 바로 싸이다. 광대나 딴따라라는 표현은 어딘지 비하적인 뉘앙스가 있어 많은 연예인들이 피해왔던 것이 사실이지만, 싸이는 아예 자신이 광대임을 드러냈다. “내 직업은 광대, 떴다고 모범적으로 살지 않겠다.” 싸이의 이 발언은 아예 광대의 본분과 철학을 담고 있다.

 

월드스타니 한류스타, 혹은 국민가수(?) 같은 호칭을 거부하고 국제가수라는 애매한 명칭을 스스로 부여한 것에도 광대의 철학이 묻어난다. 국제가수라는 명칭에는 국가나 민족이라는 뉘앙스가 없다. 그저 해외에도 활동하는 가수라는 의미만 있을 뿐. 광대는 국가나 민족의 부름에 구획되어 모범적으로 억지로 살고 싶지 않았던 거다. 저 하선이 저잣거리에서 왕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웃음거리로 만들며 살아가듯이. 저 하던 대로 그대로.

 

사실 ‘강남스타일’이 미국에서 빵 터지기 전까지 국내에서 싸이에 대한 관심은 그냥 그랬다. 국가가 관심을 가졌던 적도 없다. ‘라잇나우’ 같은 곡에 19금 딱지를 붙이는 것이 국가가 가진 관심의 표현(?)이었다. 그런데 미국에서 비롯되어 전 세계로 싸이에 대한 관심이 번져나가자 상황은 역전되었다.

 

시청 앞 광장이 월드컵을 재연하고, ‘라잇나우’는 19금 딱지를 떼었으며 심지어 국가는 싸이에게 훈장을 부여할 준비를 하고 있다. 해외에 그만큼 우리나라를 알렸으니 훈장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정부가 대중문화를 이끌어가는 이 시대의 광대들을 위해 해주는 것이 고작 결과를 만들어낸 자들을 공치사 하는 일 밖에 없는가 하는 의구심은 있다. 이것은 싸이의 공을 치하하는 것인가 아니면 싸이에게 훈장을 줌으로써 정부도 한 일이 있다는 식의 또 다른 숟가락 얹기인가.

 

사실 정치인들보다 더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건 이 시대의 광대, 연예인들이다. 하지만 지금껏 연예인들은 정치적인 상황에 이용되기 일쑤였다. 하지만 문제는 시대가 바뀌었다는 거다. 정치가 대중문화에 종사하는 연예인들을 딴따라 취급하며 저 발톱의 때처럼 바라보던 시대가 가고, 이제는 대중문화가 정치적인 힘을 발휘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올해 대선에서 3강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가 모두 <힐링캠프>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제 정치인들은 어떻게 하면 대중문화라는 말 등 위에 올라탈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저마다 말 춤을 추며 광대 싸이를 코스프레 하고 있다. 이것이 대중의 시대의 새로운 정치 스타일이다.

 

<광해>가 광대로 읽히고, 싸이가 스스로를 광대로 내세우게 된 건 대중문화가 이제 우리네 정치적 입장까지를 대변해주고 있다는 반증이다. 그러니 제발 대중문화나 광대를 우습게 보지 말라. 선거 때 반짝 광대 흉내 내고는 막상 정치권에 들어가면 언제 그랬냐 싶게 저 <광해>의 신하들처럼 저들 이익에만 휘둘리면서, 대중문화의 토대와 저변을 마련해주기 보다는 뜬 대중문화에 서둘러 숟가락이나 얹는 그런 짓은 하지 말라. 저 왕을 연기한 광대가 대중들의 입을 빌려 한 그 준엄한 꾸짖음을 잊지 말라.

Posted by 더키앙


'빛과 그림자', 이토록 유쾌해도 되는 걸까

'빛과 그림자'(사진출처:MBC)

'빛과 그림자'가 그리는 시대는 우리가 흔히 '어두웠던 시절'이라 부르는 독재시절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그 어두움이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다. 심지어 이렇게 유쾌해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 하지만 이 특유의 유쾌함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빛과 그림자가 대결하던 시대를 살아온 우리는 빛과 그림자의 싸움을 머릿속에 늘 그려왔지만, 사실 빛이 그림자를 내모는 방식은 그런 것이 아니다. 그림자는 빛이 더 빛나면 사라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빛과 그림자'의 유쾌함은 마치 시대의 어둠을 유쾌함으로 이겨내려는 시도처럼 보인다. 정치의 암울함에 맞서 딴따라라 불렸던 발랄한 쇼가 대결하는 드라마, 바로 '빛과 그림자'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기 마련. '빛과 그림자'라는 드라마는 그 통상적이지만 영원한 우리네 삶의 진실을 보여준다. 먼저 이 드라마의 인물들은 성공과 실패, 그 빛과 그림자를 오간다. 강기태(안재욱)는 순양극장을 소유하고 있는 지방유지 강만식(전국환)의 아들로 고민 없이 부유하게 자라지만, 밉보인 장철환(전광렬) 의원에 의해 몰락하게 되는 인물. 장철환의 사주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간 아버지가 싸늘한 시체로 돌아온 후, 집안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반면 강기태네 집 식모의 아들인 차수혁(이필모)은 친구인 강기태를 배신하고 장철환 의원을 보좌함으로써 그와 함께 권력의 핵심으로 들어가게 된다. 한편 빛나라쇼단의 단장 신정구(성지루)는 강기태의 돈을 떼먹고 야반도주 하지만 그렇게 1년을 탕자처럼 지내고는 길바닥을 전전하는 삶을 살아간다. 반면 양태성(김희원)은 정혜(남상미)에게 빌붙어 살아가는 전형적인 건달이었지만 월남에 가서 무기 밀거래를 하며 벼락부자가 되어 돌아온다. '빛과 그림자'들의 인물들의 인생역정은 이처럼 다이내믹하다. 하루아침에 그림자로 전락했다가도 어느 순간 빛으로 떠오르는 그런 인생.

이것은 그 시대가 가진 빛과 그림자를 떠올리게 한다. 군부 독재 시절로서 이유 없이 남산에 끌려가 모진 고문 끝에 시체로 나오던 그 어두운 시대였지만, 또한 성공의 사다리가 지금처럼 꽉 막혀 있지 않고 도처에 있던 시대. 물론 그 성공에는 값비싼 대가가 치러졌지만 향수어린 시각으로 바라보는 당대란 그림자마저 추억처럼 여겨지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 모두가 멈춰 서서 국기를 향해 경례를 하던 그 잿빛의 암울함은, 신정구과 강기태가 그 정지화면 위에서 도망치고 추격하는 장면이 발랄하게 삽입될 정도의 추억으로 그려진다.

사실 강기태라는 캐릭터 자체가 하나의 향수이자 추억이다. 도무지 이 인물은 절망하거나 비관할 줄 모른다. '골치 아픈 건 딱 질색'인 이 인물은 아버지가 죽고 몰락한 집안에서도 여전히 큰 소리 뻥뻥이다. 그래서 보통의 드라마가 누군가에 의해 몰락한 집안을 다시 세우기 위해 복수를 꿈꾸지만, 이 드라마는 사뭇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강기태라는 캐릭터는 복수보다는 자신의 성공을 더 꿈꾸는 인물처럼 보인다. 그래서인지 이 드라마는 가장 무거울 수 있는 강기태의 몰락을 그리면서도 시종일관 유쾌하다. 이것은 강기태라는 캐릭터의 힘이면서 지나간 일을 추억어린 눈으로 회고하는 이 시대극의 시선이 가진 힘이기도 하다.

물론 이러한 발랄함의 시선이 유지되는 가장 큰 이유는 이 드라마가 '쇼'를 소재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의 부음을 듣고도 쇼 무대에 올라 바보 연기를 했다는 과거 코미디언들의 유명한 일화들처럼, 이 시대극의 쇼는 그 무대 뒤편의 그림자들을 덮어줄 만큼 빛으로 가득하다. 당대의 쇼 비즈니스는 안가에 연예인들이 불려가 노래를 불러야 할 정도로 어두운 면이 있었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쇼란 그 어둠마저 덮어버리는 화려한 무대가 아니던가. '빛과 그림자'는 그래서 정치와 얽혀진 어두운 시대의 쇼가 보여주는 양면을 보여주면서도, 거기에 어둠마저 시간이 지나면 빛으로 환산시키는 기억이 만들어내는 마법을 집어넣는다.

'빛과 그림자'가 주목을 끄는 것은 바로 이 추억의 시간여행이 가져다주는 특유의 유쾌함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한때 딴따라라 불리던 연예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어두운 정치권력, 그리고 뒷골목 건달들의 이야기들이 얽혀 있는 시대극의 무게를 갖고 있으면서도, 결코 발랄함을 잊지 않는다. 당대의 힘겨웠던 삶조차 이렇게 몇 십 년이 흐른 뒤 바라보면 한 바탕의 쇼처럼 아련해지는 모양이다. 그리고 바로 이런 시각은 지금 현재 결코 쉽지 않은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작은 위안을 준다. 힘겨워도 이것을 이겨내고 나면 이 또한 한 바탕 우리 삶의 즐거운 쇼가 되지 않겠느냐는 것. 딴따라라 불리던 그들이 이제 우리의 가슴 속에 별로 남은 건 그 힘겨운 현실 속에서도 유쾌한 쇼를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딴따라라 불렸던 쇼가 당대 권력인 정치를 이겨내는 방식은 바로 이런 것이다. 힘겨워도 빛을 잃지 않는 것. 그리고 스스로 빛나는 것.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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