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으로 간 ‘라인업’, 그 살림의 손길

“야 이거 어떻게 하냐?” “정말 화난다 화나.” SBS ‘라인업’의 ‘서해안을 살리자’편에는 개그맨들의 웃음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모두 침통한 얼굴이었고 바다가 오일천지가 되어버린 안타까운 광경 앞에 아연실색했다. 하지만 웃음을 주는 프로그램에 몇 회 정도 웃음이 없는 게 대수일까. 조금이라도 기름을 제거하고자 온몸으로 뛰어든 그들의 땀은 웃음보다 값진 것이었다.

화면을 가득 메운 기름유출사고로 태안에 밀어닥친 절망감은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왜 분노하게 된 걸까. 그것은 마치 신성한 몸을 더럽힌 파렴치범들의 행위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 가해자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피해자들만 발을 동동 구르며 울고 있었다. 우리의 어머니 같은 바다는 가해자의 손에 잔인하게 유린되었다. 한동안 생명을 잉태할 수 없을 만큼.

처음 기름유출사고 소식이 나왔을 때는 그 심각한 상황 속에서도 방송은 연일 대선정국에 대한 것으로 가득했다. 누가 몇 프로 차이로 앞서고 있다는 둥, 누가 무슨 발표를 했다는 둥, 그렇고 그런 매일 똑같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도대체 왜 이 심각한 사항에 대해서는 이리도 인색한지 이해할 수 없었다. 심지어 누군가는 이런 얘기도 했다. 한 몇 일만 치우면 깨끗해진다고.

TV에서 태안의 상황을 그래도 정확하게 짚어준 것은 놀랍게도 뉴스가 아니라 ‘라인업’이라는 버라이어티쇼 프로그램이었다. 개그맨들이 등장해 한참 사람들을 웃겨야할 상황에 ‘라인업’은 한 시간 동안 침통한 얼굴의 개그맨들을 보여주었다. 태안의 상황에 넋을 잃은 것은 개그맨들뿐만이 아니었다. 그 프로그램을 보던 시청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괜찮다고 여겼던 바다가 온통 기름띠였다. 그 후 ‘추적60분’에서 이 상황을 심층적으로 다루었는데 카메라맨들을 향해서 주민들은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우리 이젠 다 죽게 생겼는데 도대체 나라에선 뭐하는 거냐구!”

한 회의 이벤트로 끝날 줄 알았던 ‘라인업’의 멤버들이 또다시 태안으로 달려간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단 한 마디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었다. 누군가 쉽게 말한 것처럼 태안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고. 그리고 그것은 앞으로도 꽤 오랜 기간 동안 싸워 나가야할 일이라고. 그러니 도움을 달라고. 개그맨 몇 명이 태안에 내려가서 하루 동안의 일을 한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싶지만 ‘라인업’은 그것을 몸소 보여줌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참담한 실상을 충분히 알려주었다.

그들은 해안가의 자갈에 묻은 기름을 손으로 퍼내고 양동이에 담아 치웠다. 마치 오물을 뒤집어쓴 집을 치우는 주부의 모습처럼 그들은 퍼내고 닦고 치우기를 반복했다. 그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그것이 살림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있기 때문이었다. 늘 묵묵히 누군가 더럽혀 놓은 것을 치우고 닦는 살림. 가만 놔두면 죽게되는 것을 살리는 것. 그 살림의 몸 동작은 몸 개그를 통해 주었던 큰 웃음보다 더 아름답고 값진 것이었다.

MBC 무한도전, KBS 1박2일, SBS 라인업 특징 비교

리얼 버라이어티쇼 전성시대. MBC ‘무한도전’이 그 포문을 열고 나머지 방송사들이 연달아 ‘리얼’을 내세운 프로그램을 꺼내놓으면서 이제 방송3사는 모두 저마다 색깔을 갖춘 리얼 버라이어티쇼를 제공하고 있다. MBC의 ‘무한도전’, KBS의 ‘1박2일’, SBS의 ‘라인업’이 그것이다.

도전하는 MBC의 ‘무한도전’
MBC의 방송 성격을 보면 공격적이고 도전적인 면모들이 드러난다. 이것은 MBC의 사풍과도 어느 정도 연관되어 있다. 프로그램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MBC는 드라마에서부터 예능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일단 시도하는 것에 인색하지 않다. ‘무한도전’은 바로 그런 도전정신 속에서 나올 수 있었던 프로그램으로 자체 포맷도 그 도전정신이 그대로 투영된 리얼 버라이어티쇼다. 초반 4%의 시청률을 기록하던 ‘무한도전’의 도전을 방송사가 감당하지 않았다면, 또한 ‘무한도전’ 스스로 끝없는 변신의 도전을 취하지 않았다면 현 20%에 육박하는 예능의 지존이 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무한도전’이 보여주는 리얼리티의 세계는 초반부 얼토당토않은 상황(무리한 도전, 무모한 도전에서 보여준)에서부터 시작해, 차츰 출연진들에 걸맞는 리얼한 상황들(패션쇼나 드라마 같은)을 보여주다가 이제는 도전 목표를 조금씩 상향하고 있다. ‘댄스스포츠 특집’편이 큰 웃음과 함께 어떤 감동까지 주는 이유는 이제 ‘무한도전’의 도전이 현실에 더 바탕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들은 댄스스포츠대회에 실제 참가하기 위해 몇 달에 걸쳐 피나는 노력을 하는데, 그 몸치들의 도전은 그것이 현실에 기반 한다는 점에서 웃음과 함께 감동을 준다. 지존의 자리는 이처럼 끝없는 도전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말하는 MBC는 ‘무한도전’을 통해 그 사풍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건 아닐까.

건전한 KBS의 ‘1박2일’
후발주자로 시작했지만 최근 ‘1박2일’은 점점 그 팬층을 넓혀가며 주말의 강자 자리를 노리고 있다. ‘1박2일’에는 무리하지 않고 보수적이지만 그 안에서 충분한 재미를 끌어내는 저력을 가진 KBS 방송의 성격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가질 수 있는 도에 지나친 몸 개그나 신변잡기적 요소들은 ‘1박2일’로 들어오면 여행이라는 건전한 코드 속에서 용인된다. ‘1박2일’이 주장하는 야생은 그 야생 속에서 벌어질 수 있는 모든 일들을 우리가 가진 동물적인 본능으로 이해시킨다. 배가 고프고, 춥고, 졸리고 하는 원초적인 상황들이 주는 웃음은 여행의 양면성(낯선 세계에 대한 설렘, 동경과 낯선 세계의 불편함)에서부터 비롯된다.

여행이 주는 장점은 거기서 의미를 도출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1박2일-독도편’이 보여준 웃음과 감동은 독도라는 오지에서 겪는 출연진들의 불편함과 그 불편함을 감당하며 묵묵히 오지를 지키는 사람들이 교차하는데서 나오는 것이다. 또한 같은 출연진들(물론 조금씩 바뀌긴 하지만)이 매회 여행을 떠난다는 상황은 출연진들 개개인의 캐릭터를 구축함과 동시에 그들간의 끈끈한 유사가족의 틀을 만들어낸다. 어찌 보면 오랜 전통을 가진 여행지 소개 프로그램을 예능 프로그램화 한 ‘1박2일’은 완전히 새로운 재미를 준다기보다는 익숙한 소재를 재해석하면서 재미를 유발한다.

절박한 SBS의 ‘라인업’
반면 SBS의 ‘라인업’은 절박하다. ‘라인업’은 리얼리티의 요소로서 생계를 직접적으로 끌어들인다. 마치 막장에 몰린 듯한 개그맨들이 대거 출연해 서로 살기 위해 웃기는 마당이 펼쳐진다. 물론 이것은 어느 정도는 설정이지만 그것이 실제 상황인 경우도 있다. 김경민이 방송 도중 흘린 눈물은 ‘라인업’이 보여주는 리얼리티의 성격을 정확히 집어낸다. 상황이 리얼한 게 아니고 출연진 자체가 리얼한 것이다. 프로그램이 제시하는 ‘라인’은 규라인, 용라인처럼 우스운 상황으로 보여지지만, 이것은 실제 개그계의 생존모드를 집약적으로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라인업’의 절박함은 SBS 예능프로그램의 절박한 심경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SBS는 MBC ‘무한도전’이 등장하기 전까지 예능의 지존자리에 있었다. ‘야심만만’과 ‘X맨’은 사실상 지금의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근간을 만든 개그맨들을 배출한 간판 프로그램이었다.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개그맨 자체의 캐릭터를 중심에 세운다는 점에서 SBS는 사실상 지금의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출발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SBS는 예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끝없이 생겼다 사라지는 예능 프로그램들의 처절함은 ‘라인업’에서 사라지지 않기 위해 온 몸을 던지는 개그맨들의 리얼리티를 고스란히 닮아있다.

도전모드를 갖춘 MBC의 ‘무한도전’, 건전모드를 가진 KBS의 ‘1박2일’, 절박모드를 가진 SBS의 ‘라인업’은 공교롭게도 각각 방송사의 색깔을 그 리얼 버라이어티쇼 속에서 드러내고 있다. 물론 상황 속에 개그맨들이 리얼한 애드립을 보여준다는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성격상 비슷한 구석을 보이긴 하지만, 적어도 그 색깔이 유지된다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그만큼 주말 밤 시청자들의 선택 폭이 넓어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생계는 웃기면서도 슬프다

리얼 버라이어티쇼라는 웃음을 주어야 하는 코너에서 개그맨 김경민이 눈물을 흘린다. 항상 요상한 동물모양의 옷차림을 하고는 뒤뚱뒤뚱 걸어가는 모습으로 기억되어 있던 그. 대중들에 잊혀져 생활고에 힘겹게 살면서도 웃고 있어야 그 생계를 이을 수 있었던 그도 도저히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를 보던 다른 개그맨들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나이도 잊고 후배개그맨들에게 면박을 받아가며 웃음을 주어야 생계를 해나갈 수 있다는 그 개그맨의 현실은 단지 김경민만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혹 그걸 보다가 함께 울컥한 시청자분들이 있다면 그것은 그 개그맨의 눈물에서 무한경쟁 속에 살아가는 우리네 눈물과 땀을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서민들 삶이 갈수록 힘들어져 웃음을 찾기가 힘들어져서일까. 아니면 개그맨이란 직업 자체가 우리네 서민의 삶을 고스란히 대변하기 때문일까. 개그맨들은 언제부터인가부터 재치 있는 입만 갖고는 먹고살기 힘든 무한경쟁 속에 떨어졌다. 그들은 자신들을 보호해주었던 안정적인 프로그램에서 쫓겨나 무대 위에 올려지거나 거리로 나서고, 말도 안 되는 불가능한 도전을 해야하며, 야생에서 노숙에 가까운 밤을 지새야 한다. 때론 묘기 같은 몸 동작을 하거나 자신의 몸을 연실 때려야 하며, 땅바닥에 떨어진 음식을 주워먹어야 하고 사람들 앞에서 몸이든 사생활이든 발가벗겨져야 한다.

짜놓고 하는 개그에 더 이상 웃음을 주지 않는 사회 속에서 개그맨들은 진짜 자신의 모습을 끄집어내려는 리얼리티쇼라는 틀과 마주해야 한다. 리얼리티쇼는 수많은 카메라를 동원해 집요하게 개그맨들을 따라다니면서 그들의 숨기려는 얼굴 이면의 맨 얼굴을 잡아내려 한다. 굴욕을 당하고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을 짓다가 한순간 무너지는 얼굴을 보였을 때, 시청자들은 웃음을 터뜨린다. 진지하게 무언가를 해나가겠다는 결연한 얼굴을 보여주다 그것이 순식간에 깨졌을 때 웃음은 터져 나온다. 리얼리티쇼의 카메라는 그걸 잘 알고 있다.

리얼 버라이어티쇼 전성시대가 되면서 개그맨은 일상에서 승부해야 한다. 실제 개그맨이라는 선후배 관계가 확실한 직업 속에서 일상적인 라인의 삶은 이제 무대 위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물론 거기에는 설정이 있겠지만 적어도 그 설정은 실제 삶을 바탕으로 생겨난 것이 분명하다. ‘라인업’이 생계형 리얼 버라이어티를 내세우는 것은 그것이 여타의 리얼리티쇼와 다르게 실제 일상과 살을 맞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김경민은 바로 이 ‘라인업’이 보여주려는 개그의 진짜 맨 얼굴인 셈이다.

‘라인업’이 저 독한 개그맨의 삶 자체를 리얼리티쇼로 끌어들였다면, ‘1박2일’은 문명에 적응하고 있는 개그맨들을 야생에 풀어놓고 그 날 것의 모습을 가감 없이 끌어낸다. 혹한기에 야외에서 밥을 지어먹고 노숙에 가까운 잠을 자야 하는 그들이 그 살벌한 하룻밤을 놓고 단순한 게임으로 그 대상자를 선정하는 모습은 그 장난 같은 게임이 가져올 괴로운 결과에 웃음 짓게 만든다. 그 행동들은 하룻밤의 야생체험이라는 경쾌함을 갖고 있지만 그 계속되는 여정들을 놓고 보면 참 개그맨이라는 직업의 삶이 점점 어려워진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리얼리티쇼가 가진 독한 개그의 세계는 한 때 무한경쟁의 틀 속에서 독하다 여겨졌던 무대개그 프로그램마저 더 독하게 만든다. 몇 초의 대사를 치기 위해 일주일간을 준비했다가 그마저 편집으로 날아가는 그네들의 상황은 그 자체가 생계의 절박함을 갖고 있지만, 그것은 무대라는 장치로 인해 가려진다. 무대 뒤편에서 어느 날 개그맨들이 소주 몇 병을 놓고 신세한탄을 하다가 누군가 불쑥 던진 한 마디에 울음바다가 되어버렸다는 이야기만 간간이 들려올 뿐이다.

리얼리티쇼는 무대를 거둬냄으로써 그 일상의 울음마저 웃음으로 전이시킨다. 개그맨 김대희가 실제 삭발을 하는 장면을 보게 되는 그 순간에 웃음이 터지면서도 마음이 뭉클한 것은 그 온몸으로 던지는 개그가 그 무대에서만 머물지 않고 우리네 삶의 한 단면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그 실체는 바로 생계다. 웃으면서 웃음을 주려는 그 얼굴의 이면에는 웃겨야 살 수 있다는 생계의 현실에서 흘려야 하는 그들의 눈물과 땀이 숨겨져 있다. 그리고 그 눈물과 땀마저 고스란히 보여주는 리얼리티쇼 전성시대에 웃음은 때론 잔인하다. 생계를 건드렸을 때 웃음은 터지지만, 그래서 그 웃음은 때론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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