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춘기' 정준하·권상우가 전한 메시지

가출을 했더니 가족이 보인다. 싸우고 났더니 친구가 보인다. 혼자 있어 봤더니 함께 했던 시간들의 소중함이 보인다. 멀리 떠나왔더니 비로소 가까이 있던 것들의 의미들이 새록새록 피어난다... MBC 예능 <사십춘기>는 역설적이다. 이야기는 40대 가장들이 무작정 계획 없이 가출여행을 떠나는 것이지만, 그렇게 멀리 블라디보스토크의 칼바람을 맞으며 그들이 그리워하는 건 떠나온 곳, 자신들이 돌아갈 곳에 있는 가족들이었다. 

'사십춘기(사진출처:MBC)'

젊은 시절부터 오랜 친분을 쌓아왔지만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권상우가 급한 성격에 뭐든 기다리지 못하고 빨리 빨리를 외치는 와중에도 정준하는 특유의 느긋한 성격으로 느릿느릿 움직인다. 두 사람은 각자의 속도를 추구하는 것뿐이지만 상대방의 성향이 못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제아무리 방송이지만 답답한 속내를 드러내기도 한다. “너 성격 바꿔”라고 정준하는 말하고, 여기에 대해 권상우도 속 터지는 답답함을 드러낸다. 

사실상 이들이 블라디보스토크까지 한 일들을 떠올려보면 생고생의 연속이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반야라는 러시아인들이 즐긴다는 눈밭 위의 사우나는 아무도 찾지 않는 한겨울의 살풍경함을 보여주었고, 권상우가 꿈꾸던 눈썰매의 풍경은 마치 우리나라 동네 야산 같은 곳을 올라 눈썰매를 타는 그런 초라한 풍경으로 끝이 났다. 

권상우가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내고 꼭 가보고 싶어했던 루스키섬은 상상과 달리 살벌한 느낌마저 주었다. 물론 새로운 숙소를 찾아내고 <무한도전> 촬영을 위해 귀국했다 다시 돌아온 정준하가 함께 하면서 온기를 되찾았지만, 호숫가 차가운 칼바람을 맞으며 야외에서 벌이는 바비큐는 초라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래서 권상우는 마지막날 그들의 블라디보스토크에서의 여정을 회상하며, 자신들이 갔던 곳은 사실 러시아 사람들은 그 겨울에 가지 않는 곳들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너무 추워 아무도 가지 않는 곳을 이방인이 여행이랍시고 다녔다니 그 시간들은 사실 얼마나 우스운가. 

하지만 그 생고생의 연속 속에서 힘겨워하기도 했지만 그들은 의외로 툭탁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반야를 찾아서는 눈밭 위에서 서로 껴안고 뒹굴기도 했고, 비록 초라한 동네 야산 같은 곳이었지만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그들은 눈썰매를 탔다. 여름이면 아름다운 풍광으로 사람들이 가득 모이는 곳이지만 한겨울 텅 빈 루스키섬의 바다가 보이는 언덕길을 두 사람은 함께 걸으며 이런 저런 자신들의 삶을 되돌아봤다. 

섬의 한때는 벙커였던 곳으로 보이는 곳에 앉아 바다 저편으로 지는 해를 바라보며 그들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새삼 떠올렸고, 너무 달라 사사건건 부딪쳤지만 그래도 그렇게 오랜 세월 옆에 있어주었던 친구로서의 우정을 되새겼다. 한 겨울 살풍경은 색채를 지워버려 마치 흑백필름 속에 그들을 채워 넣었지만, 그 장면은 마치 짐 자무쉬 감독의 흑백영화 <천국보다 낯선>의 한 자락을 떠올리게 할 만큼 깊이가 있었다. 멀리 왔는데도 별 다를 게 없다는 것. 멀리 떠나왔지만 떠나왔던 곳을 그리워하고 있는 자신들을 발견했다는 것. 

<사십춘기>는 그래서 중년의 나이라는 세월만큼 멀리 떠나온 것 같지만 여전히 소년에 머물러 있고 그 때를 그리워하고 있는 자신들을 발견하는 시간이 되었다. 이 무작정 떠난 여행기가 단순히 이국적인 곳에 대한 호기심에 머물지 않고 우리가 사는 삶을 들여다보게 한 건 이들 여행기가 그려내는 메시지가 예사롭지 않아서일 게다.

현실 앞에 음악은 어떠해야 할까

 

길을 잃었다는 것은 새로운 길을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부터 새로운 길찾기 1일입니다. 국민이 버려진 것이 아닌 나쁜 대통령을 버리는 것입니다. 해고한 것입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승환과 이규호가 공동프로듀싱하고 이승환, 이효리, 전인권이 함께 부른 길가에 버려지다라는 곡에 대해 SNS에 이런 글을 남겼다. 이 곡이 건드리고 있는 현 시국에 대한 메시지를 공감하고 있다는 표현이다.

 

'길가에 버려지다(사진출처:드림팩토리)'

길가에 버려지다는 현 시국에 의해 상처받은 국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어지고 무료 배포된 국민 위로곡’. 노래가 발표되기 전 현 시국에 대한 국민적 분노를 떠올리며 어딘지 행진곡같은 풍의 곡이 아닐까 생각했던 분들이라면 이 노래가 가진 잔잔함에 놀랐을 지도 모른다. 또한 그 잔잔함에 얹어진 아름다운 가사에도.

 

내 꿈에 날개가 돋아서 진실의 끝에 꽃이 필 수 있길.’ 같은 가사나 감정이 절정에 오른 지점에 들어가 있는 난 길을 잃고 다시 길을 찾고 없는 길을 뚫다 길가에 버려지다라는 가사는 지극히 서정적이다. 물론 이런 서정성에 현 시국의 문제를 담는 세상은 거꾸로 돌아가려 하고 고장난 시계는 눈치로 돌아가려 하네같은 가사나 내 의지에 날개가 돋아서 정의의 비상구라도 찾을 수 있길같은 가사는 이 노래가 가진 메시지를 명확히 한다.

 

침착한 분노’. 지난 12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 켜진 100만 개의 촛불을 누군가는 그렇게 불렀다. 그 많은 인파들이 모여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질서정연한 모습을 보였고, 비폭력을 외치며 마치 문화 행사의 하나같은 새로운 집회 문화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길가에 버려지다라는 노래 역시 이 침착한 분노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곡이다. 잔잔하지만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어떤 힘이 그 노래에는 담겨져 있다.

 

그 실체는 굉장한 멜로디나 우리의 마음을 격동시키는 리듬 같은 것이 아니라 진정성이다. 노래 역시 마치 이야기를 건네는 것처럼 담담하기 이를 데 없다. 하지만 그 담담한 목소리의 노래를 이승환이나 이효리 같은 자신의 생각하는 삶을 당당하게 행동으로 살아가는 가수들이 함께 부른다는 건 듣는 이들에게는 더 강렬한 진정성으로 다가온다.

 

사실 밥 딜런 같은 가수가 60년대 반전 운동의 메시지를 담아 부른 ‘Blowing in the wind’‘Times They are a-Changin’ 같은 곡은 굉장히 멜로디가 강조되거나 했던 그런 곡은 아니다. 하지만 이 곡이 시대를 바꿔놓았던 건 거기 담겨진 메시지가 당대의 현실을 음악적으로 승화해내면서 그 깊은 진정성으로 대중들의 마음을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길가에 버려지다는 그래서 우리에게 지금 현 시국이 나가야할 길을 묻는 동시에 다시금 음악의 길을 묻고 있다. 물론 음악이 가진 상업성을 우리가 부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음악은 그저 돈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위로해주는 어떤 것이라는 걸 새삼 되새겨볼 필요는 있지 않을까. 또한 그 마음과 위로란 현실과 무관할 수 없는 것일 게다.

 

현실의 부조리를 비판하거나 그래서 받은 상처들을 위로하는 그런 노래들이 더 많이 등장하길 기대한다. 당장의 돈벌이로서의 가수가 아니라 자신의 길을 찾고 없는 길을 뚫고 나가 그 삶 자체가 노래가 되는 그런 가수들이 더 많아지길 기대한다. 혹여나 우리도 모르게 길가에 버려진 노래와 가수들이 또 다른 꽃으로 피어나 번져가길

<W>, 어째서 이 만화 같은 이야기에 빠져들까

 

말도 안 되게 재밌다? 아마도 이 말은 <W>라는 드라마에 딱 어울리는 평가일 듯싶다. 이 드라마의 설정은 한 마디로 만화 같기때문이다. 만화 속 세계로 들어가는 여주인공이나, 현실 세계로 나와 자신을 만든 작가와 한 판 대결을 벌이는 만화 속 주인공이나 현실적으로는 말이 안되기 때문이다.

 

'W(사진출처:MBC)'

그런데 이 말이 안 되는 이야기가 말도 안 되게 재밌다. 한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시청자들을 몰입시킨다.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 거기에는 송재정 작가의 발칙한 상상력과 그 상상력을 뒷받침해주는 판타지의 욕망이 작용한다. 말도 안 되지만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꿔봤을 상상. 그것을 눈앞에 던져주고 나름의 법칙들을 세워둠으로써 마치 게임 같은 몰입을 만들어낸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설득되게 된 건 송재정 작가의 치밀한 전략이 깔려있다. 처음 만화 속 세계로 들어온 오연주(한효주)가 빨리 그 회의 연재를 끝내기 위해 강철(이종석)의 뺨을 때리고 키스를 하는 설정은 하나의 유머처럼 처리되지만 그것이 하나의 법칙이라는 걸 은연 중에 인지시킨다. 즉 만화 속에는 그런 법칙들이 존재한다는 걸 유머를 통해 슬쩍 제시해 놓은 것.

 

그러면서 차츰 차츰 다양한 법칙들을 소개한다. 즉 만화 속 세계의 시간은 현실과는 다르며 주인공의 시점으로만 전개된다는 것이나, 만화 속으로 들어간 오연주는 총에 맞아도 죽지 않는다는 것 같은 법칙들이다. 이렇게 마치 게임 같은 법칙들이 조금씩 소개되고 그것에 대해 시청자들이 더 이상 의문을 품지 않게 되자 <W>의 상상력은 더 과감해진다. 이제 만화 속 주인공인 강철이 현실로 빠져나오지만 여기에 대해서 시청자들은 그다지 개연성을 의심하지 않게 된다. 그동안 많은 만화 속 세계의 법칙과 설정들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만일 그만한 적응 기간을 두지 않고 처음부터 강철이 현실로 빠져나오는 이야기를 보여줬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말도 안 된다는 반응들이 나왔을 수 있다. 말 그대로 만화 같다는 건 드라마로서는 성공적이지 못하다는 얘기와 다르지 않다. 드라마는 타 장르들보다 리얼리티에 대한 요구가 더 크다. 그래서 비현실적인 상상력을 동원한다는 건 그 자체로 리스크를 감수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기서 비현실적인 상상력이 만들어내는 리스크를 뛰어넘을 수 있는 건 그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전하려는 함의가 무엇이냐는 점이다. <시그널>에서 시청자들이 과거와 현재를 잇는 무전기라는 말도 안 되는 설정을 허용한 건, 그 함의가 진실이나 정의의 실현 같은 이야기의 메시지에 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W>는 아직 그 함의를 온전히 다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흥미롭게 여겨지는 메시지들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 그것은 작가와 작품의 관계를 말하는 예술에 대한 이야기일 수 있고, 혹은 판타지와 현실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으며, 나아가 신과 관계하는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이런 발칙한 상상력을 끝까지 밀어붙이면서 그것이 비현실적이라도 이야기의 깊은 몰입감을 선사하는 송재정 작가의 도전은 박수 받을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네 드라마가 가족과 멜로와 몇몇 장르물들 사이에서 마치 도돌이표처럼 어디서 봤던 설정들을 뱅뱅 돌리며 반복하고 있었다면, <W>의 상상력은 그 바깥으로 어디든 나갈 수 있다고 도발하는 듯하다. 늘 되는 드라마의 법칙에만 매몰되지 말고 끝까지 상상력을 밀어붙이라고 <W>는 우리네 드라마들에 말하고 있다

<디마프>, 그 어떤 드라마보다 극성이 강한 까닭

 

이토록 강한 이야기들이 있을까. tvN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 희자(김혜자)는 치매를 앓고 난희(고두심)는 간암 판정을 받았다. 난희의 절친 영원(박원숙) 역시 암 투병을 해왔던 사실은 이미 서두에 그녀가 벗은 가발 아래 듬성듬성 난 머리칼로 보여진 바 있다. 정아(나문희)는 뒤늦게 딸이 남편에게 상습적인 폭력을 당해왔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것이 늘 폭력적인 상황에서도 다 그렇게 사는 것이라 치부해온 자신 탓이라 여기며 후회한다. 결국 그녀는 집을 나와 꼰대 남편 석균(신구)과 떨어져 지낸다.

 

'디어 마이 프렌즈(사진출처:tvN)'

난희의 엄마 오쌍분(김영옥) 여사의 삶은 또 어떤가. 평생을 폭력 남편 아래서 장애인 아들 장인봉(김정환)을 건사하며 살아왔다. 그렇게 나이 들어 이제는 자신의 손길이 아니면 혼자 살아가기 힘든 남편과 아들을 챙기며 살아간다. 아무 걱정 없이 살아갈 것 같은 오충남(윤여정) 역시 가족 친지들을 위해 한 평생을 희생하며 살아온 장본인이다. 교육을 못 받은 것에 대한 한을 화가 먹물들을 만나며 위로받지만 그들이 점점 속물이 되어가는 걸 보면서 후회하기도 하는 인물.

 

상대적으로 젊은 인물들도 삶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 완이(고현정)는 사랑하는 사람이 눈앞에서 교통사고를 당하는 걸 목격한다. 결국 장애인이 되어버린 그를 버리고 도망치듯 귀국하지만, 그녀는 그런 자신의 선택을 용서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녀가 어린 시절 남편의 외도를 목격한 엄마가 절망감에 자살을 시도하면서 자신에게도 약을 먹였던 사실을 들먹이며 이 모든 선택이 엄마 탓으로 몰아붙이기도 한다. 장애인과 유부남은 안 된다는 엄마의 말은 지금도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는 일에 커다란 벽을 세워놓는다.

 

<디어 마이 프렌즈>의 이야기들은 이처럼 강하고 아프다.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그 인물들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면 한 사람이 한 편의 드라마를 써도 될 정도로 아픈 사연들이 넘쳐난다. 이렇게 된 건 아마도 이 드라마가 그리고 있는 것이 노년의 삶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제 죽을 날이 가까운 나이에 그들에게 치매나 암 같은 건 더 이상 영화나 드라마 속 이야기가 아니다. 게다가 그 한 평생의 삶 속에서 그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 사건들이 어느 누구에게나 하나쯤은 있기 마련일 게다.

 

꼰대 드라마를 표방한 것처럼 노년들의 삶을 다룬다고 했을 때 그것이 과연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끌 수 있을 것인가 의구심이 들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을 통해 보면 이 노년의 삶이야말로 그 어떤 드라마들보다 드라마틱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어떤 갈등이나 사건도 살아왔던 한 인생을 절단 낼 정도의 파괴력을 발휘하는 나이에 서 있다.

 

하지만 이 도처에 놓여져 있는 아픔과 상처와 고통들 속에서도 <디어 마이 프렌즈>는 어떤 따뜻함과 희망 같은 걸 자꾸만 들여다보게 만든다. 그것이 가능해지는 건 결국 그 아픔과 상처와 고통을 보듬는 친구라는 존재들이 있기 때문이다. 희자가 치매라는 사실을 알 밤마다 집밖을 나가려는 그녀를 붙잡아주는 충남이나, 한 밤중에 잠옷 바람으로 성당을 가는 그녀를 먼발치에서나마 따라다니며 보살피는 성재(주현), 그리고 그 사실을 듣고는 부정하면서 진심어린 눈물을 흘려주는 절친 정아가 있어 희자의 불행은 그나마 감당할 수 있는 따뜻함으로 다가온다. 암 판정을 받은 난희 옆에 친구 영원과 친구 같은 딸 완이 있어주는 것처럼.

 

이것은 <디어 마이 프렌즈>가 전하는 삶의 메시지다. 삶이란 결국 많은 아픔과 고통을 겪기 마련이고 결국은 죽음 앞에서 비극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웃으며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똑같은 운명 앞에 서 있는 많은 이들이 서로를 보듬어주기 때문이 아닐까. ‘디어 마이 프렌즈’. ‘내 친구들앞에 친애하는이란 수식어를 붙이는 건 그래서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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