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퀸>, 아역 분량 왜 이렇게 길까

 

“아동학대로 확 신고해버려!”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신 후, 그 죽음을 자기 탓으로 돌리는 아이 해주(김유정)를 끝내 내쫒는 계모. 다음날 벼랑 위에 쓰러진 해주를 업고 온 산(박지빈)이와 창희(박건태)에게 “뭐 하러 그 애를 데리고 왔냐”고 계모가 화를 내자, 산은 아동학대로 신고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이것은 <메이퀸>이란 드라마를 스스로 설명해주는 장면이다. 아무리 불행했던 시대를 다루는 드라마라지만 어른이 아이를 이토록 학대하는 모습은 너무 과하다는 인상이 짙다.

 

'메이퀸'(사진출처:MBC)

어린 해주의 삶은 어린이라고 보기 어렵다. 아기 때 어른들의 욕망에 의해 버려지고 계모의 구박덩이로 자라난 해주의 모습은 어른과 아이의 역할이 역전된 상황을 보여준다. 계모는 아이를 가졌다는 이유로 해주에게 모든 집안일을 맡기고, 식구를 챙기게 한다. 병을 모아 판 돈으로 어렵게 음식을 준비하지만 계모는 거꾸로 반찬투정이다. 게다가 어린 아이를 같은 방에 잘 수 없다며 차디찬 마룻바닥에 재운다.

 

물론 이것은 과거 신파극의 전매특허와 같은 소재들이다. 힘겨웠던 어린 시절을 살아낸 해주라는 아이의 성장과정을 다루는 것이 이 드라마가 가려는 방향인 것은 분명하지만, 이 부분을 이토록 자극적인 장면으로 수회에 걸쳐 보여주는 건 신파적인 극성을 끌어내려는 의도가 분명하다. 물론 신파극이 윤리적으로 잘못된 것은 없지만, 그것이 어른이 아이에게 가하는(심지어 스스로도 학대행위라고 말하는) 것이라면 TV라는 매체에 과연 어울릴 수 있는 것일까.

 

특히 폭력배 앞에 아이가 내몰리는 장면은 가뜩이나 아동 폭행 사건들로 흉흉한 요즘, 너무 버젓이 방영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또 극적인 장면을 보여주려 한 목적이라고 해도 아이들끼리 배를 몰고 바다로 나가 침몰되는 장면은 지나치게 자극적이다. 이런 장면들이 반복적으로 보여지면서 이 어린 해주는 어린이 같은 느낌이 없어졌다. 심지어 해주가 계모의 아기까지 받아내는 장면이 나올 정도이니.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 학대받는 아이는 해주만이 아니다. 장도현(이덕화)의 집에서 하인처럼 기거하는 박기출(김규철)의 아들 창희(박건태) 역시 학대받는 아이의 모습이다. 장도현의 아들 일문(서영주)은 아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나쁜 어른의 모습 그대로다) 창희와 그 아버지 기출을 괴롭힌다. 물론 그런 짓을 하고 있는 일문 역시 장도현이라는 어른에게 학대받는 아이처럼 보인다. 왜 이토록 이 드라마는 어른들에 의해 고통 받는 아이들을 이렇게 긴 분량(아역분량이 유독 길다)으로 다루고 있는 걸까.

 

물론 드라마로서 성장을 위한 고난을 극대화하려 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분량이 너무 많고 반복적인 것은 의도를 의심하게 만든다. 자칫 아이들이 학대받는 모습을 자극적으로 다루다보면 그것이 대중들에게 미칠 영향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아역을 이토록 길게 다루는 이유는 물론 김유정이나 박지빈, 박건태 같은 어른 못잖은 명품 아역연기가 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아역을 세웠을 때 그 자극의 강도가 더 크다는 계산도 있다고 여겨진다. 무한 시청률 경쟁 속에 자극을 위해 전면에 세워지고 학대받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다보면 그래서 마음 한 구석이 참담해진다. 이건 현실의 축소판이 아닌가 하는.

<슈퍼피쉬>, 오랜만에 느끼는 다큐의 맛

 

새롭게 <메이퀸>과 <다섯손가락>이 동시에 시작했던 지난 8월18일, 이례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통상적으로 주말극의 동시출격으로 시선이 가기 마련이지만, 이 날 이 두 드라마는 <슈퍼피쉬>라는 다큐멘터리에 무릎을 꿇었다. 시청률 13.8%. 같은 시간대의 <메이퀸>과 <다섯손가락>은 11%대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물론 그 후에는 자극으로 무장한 주말극이 이 다큐멘터리의 시청률을 앞질렀지만, 그래도 12%대의 고른 시청률을 유지한 <슈퍼피쉬>의 저력은 놀라운 것이었다.

 

'슈퍼피쉬'(사진출처:KBS)

<슈퍼피쉬>의 그 놀라운 저력은 그림 같은 압도적인 영상과 그 속에 담겨진 흥미로운 내용이 잘 어우러진 결과다. 거친 목탄으로 그려진 그림에서 시작해 서서히 영상으로 바뀌는 오프닝은 <슈퍼피쉬>의 영상에 대한 자신감을 보여준다. 사람 키를 훌쩍 넘긴 크기의 참치가 펄떡 펄떡 뛰고, 고대 로마시절부터 전해져온 참치 잡이 방식인 마탄차(학살이란 뜻이다)는 바다를 피와 희뿌연 정액으로 물들인다. 말리의 안토고 호수에서는 1년에 딱 한 번 허락된 고기잡이를 위해 수많은 인파들이 호수로 뛰어드는 장관을 연출한다.

 

라오스 곤파펭에서는 당장이라도 삼켜버릴 듯한 급류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목숨을 건 물고기 잡이가 벌어지고, 중국에서는 삼키지 못하게 목줄을 감은 가마우지를 이용한 물고기 잡이를 보여준다. 이 모든 장면들은 고속 카메라에 담겨 펄떡임 하나, 튀는 물방울 하나까지 세세하게 담겨진다. 육안으로라면 볼 수 없는 장면들이 다큐 안에 그득 채워지는 것은 고속 카메라, 헬리 캠 같은 인간의 시각을 넘어서는 카메라 영상 기술 덕분이다.

 

하지만 <슈퍼피쉬>에 빠져들게 한 것은 이런 시각적인 스펙터클 때문만이 아니다. 물고기의 생태가 아닌 물고기와 인간 사이의 관계를 시간적으로는 태곳적부터 현재까지, 공간적으로는 전 지구 곳곳까지 파고 들어가 살펴보는 이 다큐의 지적인 호기심은 보는 이들을 감탄하게 만든다.

 

이 다큐는 사냥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덜 위험한 물고기를 잡아 단백질을 지속적으로 섭취할 수 있었던 것이 어떻게 문명의 발달과 관계를 맺는지를 보여주고, 쉬 상하기 마련인 물고기를 오래도록 저장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을 보여주며, 물고기가 종교와 만나 어떻게 세계사를 변화시켰는지를 보여준다. 실로 지구와 인간의 역사는 물고기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져왔다는 것이 이 다큐의 증언이다.

 

<슈퍼피쉬>가 특히 주목되는 것은 그 시선이다. 지중해에서 북유럽, 아프리카, 중국, 라오스, 호주 등등 거의 지구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이 다큐는 지구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물고기와 인간의 공존을 마치 옆 동네 일처럼 담담히 펼쳐 보여준다. 바로 이런 시선은 굳이 지구촌 운운하지 않아도 우리 인류가 국가와 민족으로 나뉘어 있었지만 그 안에서의 삶은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동질성을 드러내준다. 물고기를 주제로 하지만 거기서 보편적인 인류사의 중요한 자산인 쌀, 소금, 종교 같은 이야기를 발견하게 되는 건 그 때문이다.

 

얼마 만에 맛보는 다큐의 맛인가. KBS의 <차마고도>, <누들로드>나 MBC의 <남극의 눈물> 같은 눈물 시리즈 다큐 이후 오랜만에 느끼는 다큐의 전율이다. 주말 저녁 비슷비슷한 자극적인 설정으로 치닫는 주말극에 지친 이들에게 그래서 <슈퍼피쉬>는 편안하고도 놀라운 지적인 여행을 떠나게 해주었다. 일상화된 영상의 시대, 일상적인 다큐가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그럴수록 제대로 된 다큐에 대한 갈증도 커지고 있다. <슈퍼피쉬>는 오랜 만에 그 다큐의 갈증을 풀어주었다.

명품 아역 연기에 남는 씁쓸한 뒤끝

 

이건 아이들이 아이들이 아니다. 주말극 <다섯손가락>과 <메이퀸> 속에 등장하는 아이들 얘기다. 이 두 주말극은 모두 성공에 대한 욕망과 대결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한 전략을 가진 드라마다. <제빵왕 김탁구>의 성공 이후에 전가의 보도처럼 다뤄지던 출생의 비밀과 대결, 그리고 성장드라마의 요소를 이 두 드라마에서 모두 발견할 수 있다. 이 두 드라마가 초반부에 아이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그들이 어른들 못지않은 대결의 날을 세우고 있는 건 이러한 유사한 전략적 바탕에서 비롯된 것이다.

 

'메이퀸(좌)'과 '다섯손가락(우)'(사진출처:MBC,SBS)

<다섯손가락>에서 인하(김지훈)는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가 데려온 배다른 형 지호(강이석)를 사사건건 무시하고, 밀어내기 위해 거짓말도 일삼는다. 피아노 대결에서 지호를 이기기 위해 다치지도 않은 손에 깁스를 하고 동정표를 얻어 1등을 차지하는가 하면, 대결 당일 지호를 참가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있지도 않은 지호의 친 엄마를 봤다고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인하는 어린 아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강렬한 욕망을 드러내 보여주는데, 이 아이를 이렇게 만드는 건 다름 아닌 아빠인 유만세(조민기)다. 유만세는 어린 아이들 앞에서 후계 운운 하면서 경쟁 구도를 노골화하는 혹독함을 보여준다.

 

<메이퀸>에서 해주(김유정)는 어린 시절 버려져 천홍철(안내상)의 집에서 자라난다. 천홍철이 바깥에서 데려온 자식이라고 생각하는 그의 아내 조달순(금보라)은 그런 해주를 구박하고 못살게 군다. 이 드라마에서 해주는 마치 옛 드라마의 억척 어머니 같은 역할을 해낸다. 동생을 챙기고, 가족의 밥을 챙기고 집안의 궂은일을 도맡아 한다.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지나칠 정도다. 또 이 드라마의 창희(박건태)는 천지그룹의 오너인 장도현(이덕화)의 집에 얹혀사는 아버지 때문에 늘 그의 아들인 일문(서영주)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그런데 이 일문은 창희의 아버지인 박기출(김규철)을 창희 앞에서도 하인 부리듯 하는 패악을 저지른다. 역시 아이로서는 보기 힘든 지나친 행태가 아닐 수 없다.

 

두 드라마가 아역들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그 역할을 연기하는 아이들이 주목받는 것도 사실이다. 아이들이 아이들이 아니라는 얘기는 그래서 여기 등장하는 아이들이 그 나이에 맞는 행동을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그 역할을 연기하는 아역들이 어른 못지않은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다섯손가락>의 인하와 지호를 각각 연기하는 김지훈과 강이석이 그렇고, <메이퀸>의 김유정이나 박지빈, 박건태가 그렇다. 특히 김유정은 아역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극 전체를 이끌어가는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해를 품은 달>에 이어 그녀는 이 작품을 통해 확실히 아역의 선을 넘어서버린 느낌이 있다.

 

이렇게 연기력이 어른 못지않은 아역들이 투입되면서 자칫 막장으로 흘러갈 수 있을 정도로 자극이 강한 이 두 드라마는 확실한 두 가지 이점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어른들이 당해도 참혹할 정도의 상황을 아이들이 겪게 됨으로써 그 자극을 더 높여주었다는 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에 막장의 느낌을 상당히 상쇄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아역 분량이 드라마에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은 그만큼 연기력으로 무장한 아역들이 많아지는 이유도 있지만, 이러한 드라마로서의 이점들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드라마의 장점이 분명하다고 해도 이를 통해 아이들 같지 않은 아이들이 방송에 점점 버젓이 등장하고 있다는 점은 그다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드라마의 설정이 점점 막장에 가까운 자극으로 흘러가고, 그 속에 아이들이 배치된 상황은 그래서 마치 우리네 현실을 표징하고 있는 것만 같아 안타깝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막장 같은 세상에 아이들까지 동원하고 있는 듯한 느낌. <다섯손가락>과 <메이퀸>의 아역들을 보면서 어쩜 저렇게 아이들 같지 않게 배역을 잘 소화하고 있는가 감탄하면서도, 씁쓸한 뒤끝이 남는 건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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