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멘토이자 가수, 위대한 김경호의 탄생

'위대한 탄생'(사진출처:MBC)

'위대한 탄생' 백청강은 늘 두 가지 지적을 받아왔다. 비음과 모창. 하지만 톱2를 뽑는 경연에서 백청강은 심사위원들의 이 두 지적을 넘어서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OST 부르기' 미션에서 '왕의 남자'의 주제가였던 '인연'을 선택한 백청강에게 김태원 멘토는 "이제 비음을 살려도 된다"며 "너무 억누르는 모습은 듣는 이에게도 불편함을 준다"고 말했다. 김태원의 마법 때문일까. '인연'을 열창하는 백청강의 비음 섞인 목소리는 그의 단점이 아니라 특징처럼 들렸다. 애절함과 처연함을 덧붙여주는.

하지만 백청강의 무대에서 더 돋보인 인물은 그와 듀엣을 부른 김경호였다. 모창에 대한 지적에 대한 정면승부처럼 보인 이 무대에서 그들이 부른 '아버지'라는 노래는 이 날 무대의 최고 압권이 되었다. 한 때 성대결절로 고생을 했지만 최고의 가창력으로 돌아온 김경호의 파워풀하면서도 섬세한 보컬은 역시 명불허전. 그러나 그 노래보다 더 감명을 준 것은 노래를 부르며 김경호가 보인 백청강에 대한 태도다. 그는 마치 소중한 아들을 바라보는 것처럼 따스한 미소를 연신 백청강에게 던져주었다.

김경호는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고음부분에서는 오히려 백청강의 음색을 살려주기 위해 자신의 목소리를 조절하는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사실 당연하게도 실력의 차이는 두드러졌다. 김경호와 백청강이 함께 선 무대가 백청강을 위한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또 김경호의 그런 노력이 절절히 묻어남에도 불구하고 김경호의 가창력은 숨겨지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김경호의 그 모습을 보며 '나는 가수다'를 떠올린 이유다.

노래를 마친 김경호는 백청강에 대한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백청강이 모창을 한다는 얘기들이 있었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맑고 고운 고음에 슬픔까지 간직한 목소리다"라고 말했다. 백청강의 모창을 얘기할 때 심사위원들이 떠올린 인물은 바로 김경호다. 그러니 그 당사자가 모창이 아니라고 선언한 것. 김경호의 이런 태도와 말들은 그 어떤 멘토들의 그것보다 더 따뜻하게 전해졌다.

'위대한 탄생'은 멘토제를 차별점으로 내세운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멘토제 자체는 훌륭한 장치라는데 이견이 없다. 왜냐하면 오디션 프로그램이 갖는 자칫 경쟁적인 분위기에 멘토제는 어떤 인간적인 따뜻함을 부여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톱2까지 진행되는 과정을 통해 보면 과연 그 멘토제의 따뜻함이 얼마나 부각되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누구에게는 점수를 몰아주고 또 누구에게는 혹평을 일삼는다는 멘토들에게 쏟아진 수많은 의혹들은 그것이 설혹 오해하고 하더라도 그저 근거 없는 것이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차이를 만들어내는 건 멘토의 태도다. 똑같은 말이라도 어떤 태도로 하느냐에 따라 그 뉘앙스는 백 프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 태도가 어긋나면 자칫 멘토들이 제 새끼들만 챙기려고 서로 헐뜯는다는, 본래 멘토제를 하려한 의도 자체가 흐려지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김경호의 심지어 자신을 낮추는 태도와 진심어린 말 한 마디는 멘토의 의미를 다시 되새기게 해주었다. 톱2를 가려내는 '위대한 탄생'은 그래서 김경호라는 위대한 가수이자 멘토의 탄생을 보여주었다.


오디션 프로그램 심사위원을 위한 멘토링

'위대한 탄생'(사진출처:MBC)

“위대한 탄생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드라마를 사랑하는 분들이 유독 많은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위대한 탄생은 음악을 통한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이은미가 백청강을 심사한 후 한 발언이다. 짧은 발언이지만 이 속에는 이은미가 오디션 프로그램을 어떻게 생각하는가가 잘 담겨져 있다. 에둘러 표현했지만 이은미는 이 발언을 통해 '위대한 탄생'이 드라마가 아니라 음악을 평가하는 오디션임을 강조했다.

사실 '위대한 탄생'이 그저 기획사 같은 곳에서 가수지망생들을 뽑는 오디션이라면 이 말은 틀린 게 없다. 하지만 '위대한 탄생'은 그런 오디션이 아니라, 이 과정이 TV로 방영되는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이 둘은 확연히 다르다. 즉 일반적인 오디션에서 후보자를 뽑는 당사자는 심사위원이지만, 오디션 프로그램은 그 형식상 후보자를 뽑는 당사자가 심사위원이 아닌 투표에 참여하는 일반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은미의 이 발언은 (드라마를 사랑하는) 일반인들의 선택을 꼬집은 것이고, 자신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하고 있는 '음악을 통한 오디션' 심사가 정당한 것임을 밝힌 것이다. 소신을 밝힌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잘못됐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은미의 생각과 그 소신 있는 발언이 대중들과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오디션 프로그램 속에서 그녀의 심사와 평가가 대중들의 투표에 영향을 주기 어렵고, 때론 정반대의 결과로만 흘러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 오디션에서 심사위원은 말 그대로 심사하는 사람이지만,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심사위원이라는 존재는 대중들의 인식에 의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는다. 즉 오디션 프로그램의 심사위원은 평가자이면서도 대중들의 가이드 역할을 하며 나아가서는 대중들의 감정이입 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즉 심사위원의 독설은 대중들의 반감을 갖게 만들기도 하지만 공감 가는 독설은 대중들을 속 시원하게 한다. 이때 심사위원은 대리충족을 시켜주는 대변자 역할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심사위원 역할이 늘 대중들과의 관계 속에 놓이기 때문에, 여기서 심사위원은 사실상 이 오디션 프로그램이 흘러가는 방향(어쩌면 스토리)을 읽어야 한다. 대중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간파해야 한다. 이것은 대중들의 생각에 휘둘린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들의 생각을 알아야 거기에 맞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그것으로 소기의 성과를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 비교점으로 생각해야할 인물이 '슈퍼스타K'에서 독설가였지만 많은 대중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켰던 심사위원 이승철이다. 그는 도대체 어떻게 했기에 이은미와는 사뭇 다른 결과를 만든 걸까. 이승철은 우선 '슈퍼스타K'의 흐름 전체와 거기서 심사위원의 역할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즉 초반 경쟁자들의 수가 많을 때는 이를 걸러내기 위해 거침없는 독설을 내뿜었다. 지적도 발성문제에서부터 음정문제까지 구체적이었다. 때론 지나치다 싶은 독설 때문에 그걸 바라보는 대중들과의 대립적인 관계가 형성되기까지 했다.

하지만 후반부로 가면서 10여 명으로 경쟁자들이 좁혀졌을 때 이승철은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구체적인 지적은 피했고(사실 이 단계에 올라온 경쟁자들에게 이런 지적은 큰 의미가 없다) 오히려 그토록 까칠하던 그가 칭찬을 아끼지 않음으로써 무대에 선 경쟁자들에게 권위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이러한 변화 지점에서 대중들은 심지어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얻기도 했다. 이것은 단순히 대중들을 의식한 인기발언이 아니다. 이승철은 이 지점부터 심사위원의 역할은 심사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거기 무대 위에 선 경쟁자들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보통 기획사에서 치러지는 오디션과 TV로 방영되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다른 점 중에 또 한 가지는 그 심사위원 역시 재평가된다는 점이다. 즉 이승철은 '슈퍼스타K'를 통해 가수로서의 자신의 권위를 다시 세웠고 대중들은 이를 수긍했다. 하지만 이은미의 경우는 어떤가. 사실 '위대한 탄생'의 심사위원으로 서기 전까지 이은미는 우리들에게 '맨발의 디바'였다. 가창력 하면 떠오르는 인물. 오로지 노래 그 자체로 대중들을 쥐고 흔드는 카리스마. 그런 것이 이은미의 아우라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위대한 탄생'을 거치면서 그녀는 어딘지 대중들과는 동떨어져 혼자 달려가는 독선적인 이미지를 덧씌우게 되었다. 이것은 분명 이은미의 진정한 모습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위대한 탄생'이라는 드라마 속에서 이은미는 지금 그 악역이 되어가고 있다. '위대한 탄생'이라는 드라마를 이해하지 못한 결과치고는 가혹한 일이다.

경험치를 갖고 절절히 공감해주는 그들, '남자의 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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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자격'(사진출처:KBS)

혜민이는 18년 동안 살았지만 과묵한 아빠랑 아직도 잘 친해지지 않아서 고민이라고 했다. 김국진은 말이 없는 만큼 아빠 생각이 깊은 거라고 했다. 효진이는 말라서 차갑게 보여 고민이라며 눈물까지 흘렸다. 김국진은 실수하고 뭐가 잘 안될 때 고칠 수 있으면 고치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고칠 수 없는 단점은 자기의 장점으로 바꾸라고 했다. 보경이는 얼굴이 빨개지는 게 고민이라고 했다. 김태원은 그것은 지극히 정상이라고 말해주었다. 송아진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학생은 이름 때문에 고민이라고 했다. 김태원은 이름을 가치 있게 만드는 건 자기 자신이라고 했다.

긴 얘기도 아니고 그저 짧게 짧게 답변을 해주었지만 고민 한 가득 갖고 온 아이들의 얼굴은 금세 밝아졌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촌철살인의 힘을 발휘하게 한 걸까. 그것은 답변이 무엇을 가르치기보다는 자신의 경험을 그대로 얘기해주었기 때문이다. 과묵한 아빠는 김국진 자신이었고, 말라서 고민한 효진이는 역시 말라서 고민했던 김국진 자신이었다. 또 송아진이라는 이름은 김태원이 처음 그룹을 만들었을 때의 '부활'이라는 이름의 촌스러움 그대로였다. 그들은 아이들의 고민에 답변을 해준 것이라기보다는 자신이 겪었던 똑같은 경험을 끄집어내 고민을 함께 나눈 것이었다.

그게 무슨 실제적인 큰 도움이 되었을까. 아니다. 말하기보다는 들어주는 것 자체만으로도 고민은 해결되었을 것이다. 아이들이 고민이라 생각하는 것들은 사실 인생을 더 살아온 이들에게는 그다지 큰 고민이 아닌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아무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기에 아이들에게 그것은 큰 고민이 되었을 뿐이다. 늘 듣는 귀로만 앉아 그저 공부 공부만을 묵묵히 해야만 하는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에게 속내를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누군가 귀를 열고 그 앞에 앉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감동을 받았을 것이다.

'남자의 자격'이라는 프로그램만이 갖는 독특한 특징은 바로 이런 자세에서 나온다. 평균나이 마흔 두 살의 이 중년사내들은 저마다 그 짧지 않은 시간들을 살아오면서 쌓아온 경험치들이 있다. 겉으로 보기엔 어딘지 기운 빠져 보이고 실제로 체력도 예전 같지 않지만, 어떤 미션을 치루는 것을 보면 놀라울 만큼 삶의 지혜들이 쏟아져 나온다. 흔히들 도전 프로그램이라고 하면 자칫 무리할 수 있기 마련이지만, 이들은 열심히 하면서도 힘겨운 걸 힘겹다고 말한다. 겪는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지, 미션을 반드시 성공하고 말고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걸 이미 삶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경규는 유재석이나 강호동처럼 전면에 서서 미션 성공을 위해 팔을 걷어부치고 나서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위치에서 가능한 것과 가능하지 않은 것을 분명히 알고 그걸 자연스럽게 밝힌다. '하모니'편에서도 그는 옆자리로 살짝 물러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런 무리하지 않는 점은 '남자의 자격'이 갖는 어떤 품격을 만든다. 상담은 물론 전문가들의 영역일 수 있지만, 그래도 자기들의 경험치를 가져와 열렬히 고민들을 공감해주는 아저씨들이 그 어떤 전문가들보다 더 반짝반짝 빛나는 건 그 때문이다.

흔히들 나이를 무슨 죄라도 되는 양 얘기하곤 한다. 평균 나이 마흔 두 살의 아저씨들은 그러나 그 어떤 나이보다 빛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건 가르치지 않아도 그저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어떤 깨달음을 전해준다. 참 열심히들 사는 구나. 저 나이에서도 할 수 있는 해야 할 것들은 넘쳐나는구나. 좀 몸이 안 따라주면 어떤가. 열심히 사는 모습 자체가 아름다운 걸. '남자의 자격'이 때론 자격있는 멘토처럼 여겨지는 건 그 때문이다.

멘토형 악역 미실이 시사하는 것들

'선덕여왕'에서 덕만(이요원)은 미실(고현정)에게 귀족들이 결국에는 구휼미로 내놓을 것을 왜 손해를 감수하면서 비싼 값에도 곡물을 매점매석하는 이유를 묻는다. 그러자 미실은 덕만에게 농부들에도 자영농과 소작농이 있다면서 그들이 어떻게 되겠느냐고 재차 질문을 함으로써 덕만에게 그 답의 단서를 제시한다. 그 단서를 얻은 덕만은 궁의 비축미를 시장에 풀어 가격을 낮춤으로써 비싼 값에 곡물을 산 귀족들에게 역공격을 가하고, 백성들은 싼 가격에 곡물을 살 수 있게 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한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 과정은 덕만이 그 적이라 할 수 있는 미실이 제공한 정보를 통해 문제를 해결한 셈이 된다. 여타의 사극이라면 특이한 상황이겠지만 '선덕여왕'에서 이런 식의 전개는 그다지 이상한 것이 아니다. 이유는 악역이면서도 멘토의 역할을 하는 미실이라는 인물이 있기 때문이다. '선덕여왕'에서 미실은 이처럼 덕만에게 문제를 제시하는 존재이면서 때로는 그 문제의 해법을 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렇게 된 것은 덕만의 캐릭터와도 조응한다. 덕만은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적에게도 질문을 던지고 때로는 적의 방식을 그대로 활용하는 인물이다. 곡물의 매점매석을 시장의 논리로서 해결하는 것도 그렇고, 미실이 일식 같은 자연현상을 이용해 백성들을 공포로 몰아넣어 정치에 활용하는 방식은 덕만이 궁으로 다시 돌아오는 그 방식으로 활용된다. 덕만은 어찌 보면 문제의 해결을 위해 늘 미실을 연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덕만의 성장은 그녀를 도와주고 돌봐주는 인물들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녀에게 문제를 내는 인물들에 의한 것이다.

덕만과 미실이 정치란 무엇인가에 대해 두고 벌이는 대화는 마치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 스승과 제자의 그것 같다. 미실이 백성들은 환상을 원하고 그 환상을 통해 통치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미실 앞에서 덕만은 자신만의 비전을 궁구하고, 결국 답으로서 환상이 아닌 희망을 제시한다. 그러자 미실은 "자기보다 더 지독한 짓"이라고 말하고, 거기에 대해 덕만은 긍정도 부정도 아닌 미소를 짓는다. 이것은 비전과 현실정치 사이의 괴리를 말하는 것이다. 덕만은 현실정치를 위해 미실의 방식을 차용하되, 그것이 속이는 환상이 아니라 꿈꾸게 하는 희망으로 비전을 내세운 것이다.

결국 덕만의 방식은 미실이 갖고 있는 정보의 독점을 통한 통제가 아니라, 정보의 공유를 통한 공통 비전의 제시에 있다. 그런데 이것은 상당부분 미실의 통치방식을 연구한데서 나온 것들이다. 적이 문제를 제시하고, 그 문제를 해결했을 때 자신의 성장을 이루는 이 방식은 '선덕여왕'이 갖고 있는 이야기의 주된 방식이라고 할 때, 그 문제출제자이자 기존 정보의 제공자인 미실은 이 사극의 실제적인 추동력이라고 볼 수 있다. 때로는 멘토가 되고, 때로는 악역으로 서는 미실이라는 존재가 있어 '선덕여왕'은 비로소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작금의 현실정치에도 의미하는 바가 크다. 비전이 다른 존재들이 서로 문제를 제기하고 그 문제를 풀어나가는 그 과정이 정치의 성장 과정이 아닐까. 백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적에게도 질문을 던지고, 또 그 적이 답변을 해주는 이 덕만과 미실의 이야기는 대화와 소통부재의 정치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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