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 K팝 한류 타고 예능 한류도 전파하나

 

싸이의 성공에 <무한도전>의 지분이 있다면 얼마나 될까. ‘강남스타일’이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으로 뮤직비디오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뮤직비디오의 성공에 <무한도전>은 상당한 역할을 했다. 이것은 싸이가 <무한도전>에 출연해 노홍철에게 직접 밝힌 얘기다. “여기 할로윈 때 너 옷하고 재석이형 옷이 제일 많았어. 너한테 고맙다는 얘길 해야 되는 게 어떤 네티즌분들이 그런 얘길 많이 하시더라고. 이 뮤직비디오에 지분이 있었으면 노홍철 지분이 한 30%는 된다고. 외국 애들은 제일 터지는 게 이 장면이야. 되게 좋아해. 너무 더럽다고(웃음).”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이것은 아마도 싸이의 진심일 것이다. 싸이가 한창 미국에서 국제가수로서의 주가를 올리며 눈코 뜰 새 없는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는 와중에도 시간을 내서 <무한도전>에 출연했던 것은 그가 진정으로 고마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는 노홍철을 만나기 위해 심지어 지인의 도움을 얻어 헬기를 타고 한달음에 달려왔다. 이 정도면 버선발로 나선 격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타임스퀘어의 신년맞이 행사에서 싸이는 <무한도전>을 초청했고 노홍철과 유재석, 하하는 그와 함께 무대에 올라 ‘강남스타일’의 뮤직비디오를 재연하기도 했다.

 

싸이의 신곡, ‘젠틀맨’의 뮤직비디오에 <무한도전> 멤버들이 대거 출연한 것은 그래서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무한도전>은 이제 마치 싸이의 곡과 항상 같이 할 것만 같은 크루의 이미지마저 풍긴다. ‘젠틀맨’에서 유재석은 화장실이 급해 엘리베이터에 오르지만 싸이가 층층의 버튼을 모두 눌러버리는 바람에 고통스러워하는 장면에 출연한다. 노홍철은 여전히 저질댄스를 일관되게 보여주고, 정준하와 박명수는 특유의 ‘불장난 댄스’를 선보였다. 하하는 ‘하이브리드’ 콘셉트로 미친 듯 춤을 추는 장면을, 길은 민머리를 드라이하는 장면을 보여주었고, 정형돈은 넘어진 여자를 일으켜줄 듯하면서 다시 넘어뜨리는 장면에 출연했다. <무한도전>의 캐릭터들이 거의 그대로 사용된 것이다.

 

<무한도전>의 관점에서 보자면 ‘강남스타일’은 일종의 맛보기였던 셈이다. ‘젠틀맨’은 <무한도전>의 캐릭터들이 모두 소개되었고, 그 안에는 과거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에서 이른바 ‘겨땀’으로 큰 웃음을 주었던 싸이의 영상이 그대로 들어가 있기도 하다. 장차 전 세계를 강타할 ‘젠틀맨’의 뮤직비디오에 <무한도전>의 영상을 넣었다는 건 애정을 넘어 일종의 동반자의 의미까지 담겨진다. 거기에는 아마도 뮤직비디오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김태호 PD에 대한 헌사도 들어 있었을 것이다.

 

‘젠틀맨’에 <무한도전>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의 영상이 들어 있는 것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와 무관하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당시 이 가요제가 보여준 이른바 B급 정서는 이른바 개가수들의 열풍으로까지 이어졌다. 애초에 전 세계를 겨냥했던 것이 아니라 국내의 트렌드에 충실했던 ‘강남스타일’은 여러 모로 당시 음원시장에 파란을 일으켰던 <무한도전> 가요제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었을 게다. 우연인지 아니면 의식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무한도전> 가요제의 음악이 갖는 B급 정서는 그만큼 싸이의 ‘강남스타일’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중요한 것은 싸이의 이 남다른 <무도>에 대한 애정이 K팝 한류를 타고 예능 한류까지 전파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강남스타일’로 주목받은 ‘엘리베이터 가이’ 노홍철과 ‘옐로우 가이’ 유재석이 그렇다. 만일 ‘젠틀맨’이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킨다면(이미 현실화되고 있지 않은가!) 그 뮤직비디오에 계속 출연하고 있는 이들에 대한 관심으로 자연스럽게 옮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싸이의 전 세계적인 성공에서 유머의 지분은 결코 낮지 않다. 싸이 스스로도 웃음이 없었다면 세계의 벽을 그렇게 쉽게 넘지 못했을 거라 증언하고 있다. 그러니 싸이의 성공을 그저 K팝 한류의 성공으로 치부하는 것은 어딘지 우리네 예능으로서는 억울할만한 일이다. 드라마, 영화, K팝이 모두 한류의 선봉으로 나서고 있는 지금 예능이라고 가능성이 없을까. 이미 일반인 리얼리티쇼가 트렌드로 자리잡은 해외의 예능계에서는 실제로 한류 예능이 가진 연예인 출연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이런 시점에 싸이의 성공과 그와 함께한 <무한도전>은 한류 예능에 큰 의미가 있다. 의식했든 의식하지 않았든 싸이는 K팝 한류와 예능 한류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는 중이다.

<나 혼자 산다>, 잘 나가는 이유? 남자들에 있다

 

설 특집으로 방영된 <남자가 혼자 살 때>가 정규편성 되면서 굳이 몇 번의 제목을 고치더니 <나 혼자 산다>가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다. <남자가 혼자 살 때>의 뉘앙스가 어딘지 소극적이고 궁상맞은 느낌을 주었던 반면, <나 혼자 산다>는 좀 더 당당하고 즐기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기 모인 무지개 회원들은 구호를 굳이 이렇게 외친다. “나 혼자 산다! 자알-”

 

'나 혼자 산다'(사진출처:MBC)

사실 혼자 사는 남자들의 이야기가 뭐 그리 재미있을까 한번쯤 의구심을 갖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지금껏 그런 이야기를 방송을 통해서(특히 예능에서) 본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방송이 조명하는 남자들의 이야기란 여행을 가거나(1박2일) 특별한 도전을 하거나(무한도전, 남자의 자격) 게임이나 스포츠를 하는(우리동네 예체능) 식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방송은 이 남자들이 지금껏 보여주지 않았던 면들을 보여주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아빠 어디가>는 대표적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아빠들은 지금껏 바쁘다는 핑계로 좀체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했던 아이들과 1박2일의 추억 여행을 떠난다. 처음에는 아내 없는 아이와의 여행이 어색하기도 하고 영 적응이 안 될 정도로 낯설기도 했지만, 몇 주가 지난 지금 아빠들은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잠이 들고 스스로 척척 아이들의 아침밥을 차려낸다. 조금 투박하긴 해도 아빠와 함께 놀고 아빠가 차려주는 밥을 맛있게 먹는 아이들의 이야기는 그래서 새롭다. <아빠 어디가>의 성공은 아이들이라는 순수의 지대가 일등공신임에 분명하지만 거기 새로운 남자들의 이야기가 주는 호기심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관전 포인트인 셈이다. <일밤>이 남자들의 군대이야기를 새롭게 시작하는 것도 같은 의도가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이 새로운 남자들의 이야기가 핵심적인 재미를 만들어내는 프로그램은 <나 혼자 산다>가 아닐까 싶다. 이 프로그램의 남자 이야기가 새로운 것은 지금껏 우리가 잘 보지 못했던 남자들의 수다와 놀이(그것도 남자들끼리 놀거나 혼자 노는)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사실 노홍철과 김태원, 이성재, 서인국, 김광규, 데프콘 같은 너무나 다른 색깔을 가진 남자들이 카페 같은 공간에 둘러앉아서 신나게 수다를 떠는 모습은 그 자체로 우습다.

 

<우리 결혼했어요>에 나간다면 누구랑 나가고 싶냐는 노홍철의 질문에 김태원이 강수연을 얘기하고, 서인국이 김혜수를 떠올리며, 김광규가 김완선을 지목하는 것보다 더 재미있는 건 이렇게 남자들끼리 둘러앉아서도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이야기꽃이 주는 새로움이다. 그 누가 수다를 여성들의 전유물이라고 했던가. 누군가와의 정이 그리울 수밖에 없는 이 혼자 사는 남자들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모였을 때 끊임없이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심지어 이성재처럼 프로그램이 끝나고도 자리를 뜨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그리고 또 한 가지의 재미는 이들의 놀이다. 서인국의 집을 방문한 노홍철이 그 구질구질한 방에서 삼겹살을 구워먹으며 그 방에 동화되는 즐거움을 느끼거나, 노홍철의 제안으로 한강변에서 야경을 즐기는 장면은 그것이 너무나 일상에 닿아있어 지금껏 여타의 예능에서 보지 못했던 새로운 감흥을 만들어낸다. 여행이나 도전 같은 특별한 계기가 아닌 다음에야, 지극히 일상적인 공간에서 남자와 남자가 함께 노는 장면은 그리 흔하지 않다. 기껏해야 남자들의 만남이란 술자리에서 시작해 술자리로 끝나기 일쑤가 아닌가. 그만큼 우리네 남자들은 일할 줄은 알아도 놀 줄은 잘 모른 채 살아왔던 게 사실이다.

 

김광규의 집을 방문한 김태원이 즉석에서 기타를 조율해 주고 레드 제플린의 곡을 연주하며 노는 모습이나, 데프콘의 집을 방문한 이성재가 힙합 리듬에 맞춰 어색하지만 즉석에서 랩을 하는 장면은 그래서 흥미롭다. 수다 떠는 남자들이나 저들끼리 노는 남자들의 모습은 어쩌면 과거와는 갑자기 달라진 시대에 어쩔 줄 몰라 하는 남자들에게는 하나의 판타지가 되기도 한다. 왜 남자들이라고 그렇게 한가롭게 수다를 떨거나 놀고 싶지 않겠는가. 다만 그렇게 사는 남자가 무능력하고 무책임하다 교육받아온 탓이 클 뿐이다.

 

<나 혼자 산다>는 그래서 독신자들(혹은 독거자들. 제목에서 남자를 뺏으니 여자도 출연이 가능해졌다)의 라이프스타일을 하나의 트렌드로 보여주는 프로그램이지만, 그것은 또한 달라지고 있는 가족 관계 속에서 남자들에게 새로운 삶의 방식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남편, 가장, 아빠, 회사원 같은 누군가의 관계 속에서만 늘 서왔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혼자 남겨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남자들이라면 그래서 이 프로그램을 보며 그 삶이 또한 유쾌하고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노홍철이 말한 것처럼 자신이 스스로를 아끼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 때로는 그 어떤 즐거움보다 크다는 것을 판타지처럼 발견할 수도 있을 게다.

<무도>와 <개콘> 그리고 일인자 패러독스

 

우리네 예능 프로그램 중 대표격을 꼽으라면 아마도 <무한도전(이하 무도)>과 <개그콘서트(이하 개콘)>를 지목해야 할 것이다. 단순히 재미의 차원이나 시청률을 두고 말하는 게 아니다. 우리네 전체 예능에 끼친 영향력이나 꽤 오랜 세월을 지켜낸 저력(<무도>는 8년, <개콘>은 무려 14년이다) 그리고 지금 현재 위치까지를 모두 두고 봤을 때 이 두 예능은 확실히 우리 예능의 대표선수들임이 분명하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물론 여전히 이 두 프로그램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은 뜨겁다. 하지만 최근 들어 약간 다른 징후들도 포착된다. 그것은 과거에는 좀체 없었던 비판적인 시선들이 등장했고, 식상해졌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보인다는 점이다. 실제로 시청률도 과거에 비해 많이 떨어졌다. 제작진들이나 출연진들 또한 어떤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무도>의 하와이 특집은 그 시작에서 하와이에 도착하자마자 길을 탈락시키는 것으로 충격적인 반전을 만들었다. 또 2편에서는 박명수와 길, 유재석, 노홍철이 글라이더를 타고 활강을 하면서 돈을 세는 강도 높은 미션을 수행하기도 했다. 특히 고소공포증을 호소했던 유재석은 글라이더에서 내리자 다리가 풀려 주저앉기도 했다. 하지만 <무도>의 이런 미션들은 과거만큼의 흥미와 팽팽한 긴장감을 주지는 못하고 있다.

 

하와이 특집에 이어 시작한 술래잡기 특집도 긴장감이 떨어진 것만은 분명하다. 우리는 이제 <무도>의 추격전 미션이 갖고 있는 스토리를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홍철은 늘 반전의 키를 쥔 배신자 역할을 자임할 것이고, 박명수는 고군분투하다 짜증을 폭발시킬 것이고, 그 와중에서도 유재석은 누구보다 열심히 뛰면서 미션을 수행해나갈 것이다. 물론 조금씩 다른 상황들이 생겨나지만 그다지 큰 변화는 잘 보이지 않는다. 패턴이 조금씩 읽힌다고나 할까.

 

이런 사정은 <개콘>도 마찬가지다. 서수민 PD가 자리한 이후 <개콘>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거의 1년 넘게 전체 예능 시청률 1위를 한 번도 내주지 않았고, 출연 개그맨들은 심지어 광고계에서도 블루칩이 되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개콘>은 새로운 코너들을 꽤 선보였지만 과거만큼의 뜨거운 반응이 이어지지 않고 있다. 이미 뜬 코너와 개그맨들에 대한 피로도도 높아졌다.

 

최고의 주가를 올리는 개그맨들에 대한 집중도가 높아지면서 <개콘>의 핵심적인 힘이라고 할 수 있는 적당한 시기의 세대교체가 이뤄지지 않았다. 김기리나 김대성, 이문재, 이희경 같은 친구들이 새 코너들을 통해 중심으로 들어오려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그 존재감이 확실히 생기지는 못했다. 새 코너에 대한 화제도 그다지 높지 않고 시청률도 많이 추락했다.

 

<무도>나 <개콘>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은 오랜 세월 동안 축적된 필자 같은 고정 팬들의 여전한 성원 덕분이 아닐까. 그것조차 경쟁력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어쨌든 현재가 불안하다는 것은 프로그램으로서는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하긴 이렇게 오랜 세월을 정상에 머무르면서 계속 새로울 수 있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것일 게다. 그 기적의 길을 <무도> 같은 프로그램은 분명 걸어왔다.

 

<무도>나 <개콘>의 위기는 외부적인 것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꽤 오랜 세월동안 줄곧 일인자로 서왔던 것에서 비롯되는 힘겨움이다. 밑에 있을 때는 위로 올라갈 수 있지만 제일 꼭대기에 오르면 할 수 있는 게 지키는 것이나 내려오는 길밖에 없게 된다. 이른바 일인자 패러독스다. <개콘>의 서수민 PD는 그 일인자의 고충을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때로는 2등이었으면 할 때가 있다”고.

 

누군가에게 웃음을 주는 개그맨이나 예능인의 위치는 분명 낮은 위치에 있을 때 더 큰 폭발력을 내는 것이 사실이다. <무도>의 힘은 확실히 ‘대한민국 평균 이하’의 위치에 있을 때 더 폭발적이었다. <개콘>도 개그맨들이 생계를 걱정할 정도로 어려울 때 더 열광적인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무도>의 출연자들은 모두 지금 현재 예능계의 최정상의 위치에 서게 되었고, <개콘>의 개그맨들도 이제는 생계 걱정하지 않고 개그만을 해도 먹고 살만큼 위상이 높아졌다.

 

뿐만 아니라 정상의 위치를 오래도록 유지하면서 그만큼 주목도도 높아진 만큼 소비도 빨라진 면이 있다. 이제 과거랑 똑같은 강도의 웃음을 주어도 그 힘이 약하게 느껴진다. <무도>처럼 아예 형식의 무한도전을 해온 프로그램도 꽤 오래 지속되면서 패턴이 읽히는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어떤 예능이든 패턴이 생기고 일찌감치 이야기가 노출되기 시작하면 요즘처럼 반전과 새로움에 목말라 있는 대중들에게는 흥미를 끌기가 그만큼 어려워진다.

 

<무도>든 <개콘>이든 그 노력이 얼마나 치열하고 힘겨운 지 아는 입장에서 이들이 처한 일인자 패러독스는 진정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어쩌랴. 일인자라는 위치가 갖는 무게감이 만들어내는 일인 것을. 의외로 이 문제는 시간이 해결해 줄 수도 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서 그만큼 대중들의 기대치가 조금 낮아지게 되면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상승의 기회도 생길 수 있다는 얘기다. 또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기적적인 노력으로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반전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것이든 힘겨워도 끊임없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그나마 가능한 일이다.

 

물론 팬의 입장에서는 조금 아쉬워도 기다려주는 게 인지상정이지 싶다. 하지만 보통의 시청자들에게는 이 시간이 달리 느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착한 유재석만 있나, 나쁜 유재석도 있다

 

<무한도전>에서 유재석의 변화가 심상찮다. 그간 늘 착한 이미지로만 각인되어 왔던 유재석이 ‘잔소리꾼’이라는 또 다른 캐릭터를 조금씩 끄집어내고 있는 것. 하와이로 가기 위해 모인 멤버들에게 유재석은 지난 회에 이어서 “형제 4호 발령”을 알렸다. 여기서 ‘형제 4호’란 <무한도전>이 어떤 위기의식을 갖고 심기일전을 하기 위해 유재석이 보내곤 했던 문자에서 비롯된 것이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유재석은 오프닝에서도 정준하의 새로 한 머리를 꼬투리삼아 그 헤어스타일을 ‘버르장머리’라고 불러 면박을 주었고, 박명수가 딸 민서가 해준 매니큐어를 자랑하며 벌써 “키가 1미터 10 나온다”고 하자 “계속 크겠죠. 2미터 되겠네요.” 해서 그를 자극시키기도 했다. 하와이로 떠나는 공항에서는 ‘무한상사’를 즉석에서 재연하면서 유국장이 된 유재석은 “재미없으면 하와이에서 못 돌아올 줄 알아”라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또 “다들 힘든 상황에서 하고 있는 거 알고 계시죠?”라고 묻는 유재석에게 너무 부담주고 그러지 말라는 멤버들의 원성이 자자하자 유재석은 “여러분이 바캉스로 가든 촬영으로 가든 휴가를 가든 재미만 있게 해오라니까.”하고 잔소리를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무한상사’에서의 상황극 캐릭터가 ‘스트레th' 특집에서 다시 끄집어내진 후 ‘하와이’ 특집으로 이어진 셈이다. 재미에 대한 강박이 강해진 유재석은 이제 그 재미를 위해서는 ‘착한 캐릭터’마저 훌훌 벗어던질 기세다.

 

유재석의 이런 변화는 <런닝맨>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김수로의 이름표를 송지효가 떼어버리는 놀라운 결과로 혼자 월요 커플을 상대해야 하는 유재석은 그간의 모습과는 달리 안간힘을 쓰며 개리의 이름표를 먼저 떼기도 했다. 결국 송지효의 간지럼 공격에 무너지긴 했지만 전력을 다하는 모습이었던 것. 부표 위에서 벌어진 수중고싸움에서도 유재석은 공격하는 김종국과 하하 송지효를 모두 밀어내는 반전을 선보이기도 했다. 게임에 좀 더 집중하는 느낌이랄까.

 

유재석이 물론 자신의 캐릭터를 완전히 바꾸려는 건 아닐 것이다(이건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다만 지금껏 ‘착한 유재석’만 있었다면 이제는 ‘나쁜 유재석’ 같은 새로운 면모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된 것은 유재석 스스로 느끼는 위기감과 연관되어 있다. 오래도록 유재석의 착한 캐릭터를 끌어와 착한 토크쇼로 안방을 지켜왔던 <놀러와>가 폐지되었고, <무한도전>의 시청률도 과거만 못한 결과가 나오고 있다.

 

물론 이건 일시적인 결과일 수 있지만, 최근 들어 예능 프로그램의 성패는 몇몇 팬덤에 의해 유지되던 과거와는 달라진 양상이다. 이것은 팬덤이 사라졌다기보다는 늘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면서 새로운 팬층을 끌어들이지 못한 탓이 크다. 오래도록 착한 캐릭터로 고착화되다보면 의도치 않게 프로그램의 색깔 또한 고정시켜버릴 수도 있다. 워낙 유재석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보니 그가 나오는 토크쇼는 모두 착한 토크쇼가 되고, 그가 나오는 버라이어티쇼는 게스트를 배려하는 미션과 도전이 된다. <놀러와>, <해피투게더> 같은 토크쇼가 그렇고, <무한도전>이나 <런닝맨>이 그렇다.

 

늘 1인자다운 모습, 늘 배려의 아이콘다운 착한 이미지는 물론 유재석이 버릴 수 없는(버려서도 안 되는) 그만의 가장 큰 자산이지만 그렇게 고정된 이미지는 본인에게도 부담이 될 수 있다. 유재석 하면 떠오르는 그 인상은 그가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신뢰를 주기에 부족함이 없지만, 유재석은 여기서 이제 한 발 더 나아가 좀 더 다채로운 캐릭터로 새로운 재미를 선사하려는 듯하다.

 

최근 서병기 대중문화 전문기자는 <해피투게더3> 촬영장을 찾은 자리에서 유재석의 이런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시청자에게 재미를 줄 수 있다면 방송에서 착한 유재석뿐 아니라 나쁜 유재석도 보여줄 수 있다”고. 유재석의 변화는 그 목적이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한 것이다. 하와이로 떠나는 공항에서 유국장으로 분한 유재석이 “재미만 있게 해오라니까”라고 잔소리를 하는 모습은 어쩌면 자기 자신에 대한 다짐일 게다. 그 도전이 시청자들을 위한 것일 때 그 캐릭터가 무엇이든 유재석의 변신은 무죄다. 유재석의 새로운 무한도전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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