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꽃', 지하에 숨겨진 진실이 수면 위로 올라올 때

 

믿기 힘든 진실 앞에 우리는 과연 제대로 마주할 수 있을까. tvN 새 수목드라마 <악의 꽃>의 시작은 양 손이 묶인 채 물 속에서 피 흘리며 죽어가고 있는 백희성(이준기)에게 차지원(문채원)이 다가와 그를 깨우고 키스를 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짧은 장면이지만 은유적으로 표현된 이 오프닝은 앞으로 <악의 꽃>이 어떤 이야기를 그려나갈 것인가를 암시한다. 수면 아래 감춰진 백희성의 진실 앞에 서게 되는 차지원은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아이 앞에서는 그토록 자상한 꿀미소를 뚝뚝 떨어뜨리던 백희성이 뒤돌아서자 얼굴빛이 살벌하게 굳어지는 장면은 그 자체로 섬뜩함을 안긴다. 그건 이 문제적 인물의 앞면과 뒷면이 완전히 다르다는 걸 보여준다. 그리고 이런 사실은 그의 생일에 초대된 그의 부모 백만우(손종학)와 공미자(남기애)를 통해 금세 드러난다.

 

백희성의 딸 백은하(정서연)가 조부모에 대한 두려움을 이야기하고, 실제로 손주 앞에서도 시종일관 굳은 표정만 짓고 있는 백만우와 공미자는 상식적인 모습이 아니다. 게다가 이들은 며느리 차지원에게 대놓고 불편한 이야기들을 꺼내고, 그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아들 백희성이 이 결혼생활을 잘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고 말한다. 그러자 백희성은 차지원이 "쉬운 여자"라며 그는 보는 것만 믿고, 자신은 그래서 그에게 보이고 싶은 것만 보여준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 긴장감을 부여하는 건 차지원이 강력계 형사라는 사실이다. 그는 한 아이가 아빠가 계단 위에서 밀어 자신을 죽이려 했다고 진술한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남다른 섬세한 관찰력의 소유자라는 걸 드러낸다. 친구와 술을 마시다 아이가 다친 소식을 듣고 급하게 달려왔다는 걸 식당 슬리퍼를 끌고 온 것과 그의 한쪽 양말만 더럽혀진 것을 통해 추리해낸다.

 

차지원과 같은 팀의 베테랑 형사 최재섭(최영준)은 그 아빠를 의심하고 추적한 결과 불륜 정황을 찾아냄으로써 그가 범인이라고 확신하지만, 마침 이웃 아이가 자신의 반려견 때문에 사고가 생겼다고 증언함으로써 그렇게 사건은 일단락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건의 진실은 아이의 자작극이었다. 아빠의 불륜을 목격하고 무언가 약을 건네는 걸 본 아이는 그걸 엄마가 먹지 못하게 하려고 약통에 벌레를 넣고, 그렇게 쏟은 약이 비타민이 아니라는 걸 차지원은 알아내고는 아이의 아빠를 체포한다.

 

그런데 여기서 이 사건은 차지원이 앞으로 맞닥뜨리게 될 일들에 대한 암시를 던진다. 즉 아이 엄마는 이미 남편이 비타민이 아닌 다른 약을 준 것을 알면서도 그냥 먹었을 거라는 것이다. 진실 앞에서 그걸 드러내면 모든 게 무너질 걸 두려워하는 인간은 이를 유예하기 위해 진실을 외면한다는 것. 차지원은 그 엄마의 입장을 공감함으로서 앞으로 자신의 남편 백희성의 진실 앞에서 겪을 갈등을 예고한다.

 

백희성이 분명 과거 연쇄살인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김무진(서현우) 기자가 그의 공방을 찾아오면서 밝혀진다. 그는 신분을 바꾸기 전 백희성의 과거를 아는 인물이다. 과거 고향에서 벌어진 연쇄살인사건 이후 사라진 그에 대한 의심을 하는 김무진을 백희성은 기절시켜 자신의 집이자 공방 지하실에 감금해 놓는다.

 

이번 작품에서도 공간에 대한 은유를 연출해내는 김철규 PD는 백희성이 사는 집을 이 드라마가 하려는 진실과 비밀의 공간으로 형상화해낸다. 1층에 공방이 있고 2층으로 백희성이 가족과 함께 사는 집이 있으며 공방 바닥에 숨겨진 문을 통해 내려가면 음침한 지하실이 있다. 지상에서는 멀쩡한 금속공예가이자 한 아이의 아빠 그리고 한 여자의 남편으로 살아가지만 지하에는 갇혀있는 김무진 같은 어두운 진실이 숨겨져 있다.

 

과연 백희성은 진짜 살인범일까. 아직 확신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무엇 때문인지 과거를 은폐하기 위해 신분을 바꿔 살고 있지만 그것이 그가 살인범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를 둘러싼 다른 인물들 예를 들면 부모들 같은 인물들 때문인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과연 차지원은 사랑하는 백희성에 대한 의심 앞에서 진실을 향해 나아갈까. 그것이 파국일 수도 있다는 사실 앞에서 그는 얼마나 갈등하게 될까.

 

<악의 꽃>은 그래서 이 진실을 찾아가는 스릴러 장르의 짜릿하고 섬뜩한 이야기 속에 진실 앞에 선 인간의 무력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하는 어떤 행위에 대한 숭고함 같은 걸 다루려 하고 있다. 그저 누군가를 죽고 죽이고 범인을 찾는 단순한 스릴러 장르들과는 다른 어떤 걸 기대하게 되는 이유다.(사진:tvN)

<굿바이 미스터 블랙>, 왜 뻔한 복수극처럼 보일까

 

MBC 새 수목드라마 <굿바이 미스터 블랙>은 시작 전부터 시청자들에게 많은 기대를 갖게 만든 작품이다. 무엇보다 황미나 작가의 걸작으로 기억되는 원작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물론 원작에서의 배경은 우리나라가 아니라 영국과 호주이고 인물들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니다. 하지만 83년도에 나온 이 작품에 열광했던 중년들이라면 이 작품이 우리식으로 재해석된다는 것에 충분히 반색할만하다.

 


'굿바이 미스터 블랙(사진출처:MBC)'

첫 회만 보면 쉽게 눈치 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저 알렉상드르 뒤마의 장편소설인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모티브로 하고 있는 복수극이다.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당한 주인공이 어려운 길을 돌아 복수를 하는 전형적인 이야기. 원작이 복수극에 집중했다면 드라마화 되는 <굿바이 미스터 블랙>은 여기에 멜로를 강화한 것으로 보인다. 이진욱, 문채원, 김강우 같은 캐스팅은 우리 식으로 해석된 이 작품이 어떻게 나올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을 만들었다.

 

하지만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첫 방영된 <굿바이 미스터 블랙>의 시청률은 고작 3.9%(닐슨 코리아)로 동시간대 지상파 드라마들 중 꼴찌를 기록했다. 물론 워낙 강력한 상대인 KBS <태양의 후예>가 이제 거의 30% 시청률을 목전에 두고 있을 정도이기 때문에 대진 운이 안 좋았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SBS <돌아와요 아저씨>4.0% 시청률로 떨어진 걸 보면 <태양의 후예>가 거의 차지해버린 수목드라마 점유율의 나머지를 이제 <굿바이 미스터 블랙><돌아와요 아저씨>가 나눠가진 느낌이다.

 

하지만 단지 <굿바이 미스터 블랙> 같은 기대작이 겨우 이 정도의 힘을 발휘한다는 건 그 내적인 문제가 있다는 걸 부인하기 어렵다. 어찌 된 일인지 원작 만화가 갖는 이국적이면서도 세련된 느낌이 드라마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야기 전개나 연출 방식이 전형적인 국내의 복수극 연출의 틀을 거의 답습하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그 이야기 전개와 연출이 막장드라마의 시작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기까지 한다.

 

차지원(이진욱)과 민선재(김강우)의 우정과 미묘한 질투, 그리고 부정을 저지르게 된 선재가 그 수렁에서 헤어 나오려 하다 결국 지원의 아버지까지 총에 맞게 되는 상황을 만들고 이로써 엇갈리게 될 두 사람의 운명. 극단적인 상황에 몰린 차지원이 태국 현지에서 만나게 된 스완(문채원)과 가까워지는 이야기. 빠른 이야기 전개는 좋지만 이미 너무 많이 반복된 전형적인 복수극의 스토리에 어딘지 허술해 보이는 연출로 인해 떨어지는 완성도는 향후 <굿바이 미스터 블랙>의 가장 큰 숙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어쩌면 최근 들어 <시그널>이나 <태양의 후예> 같은 마치 영화 같은 드라마들의 영상연출에 눈이 높아져서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전형적인 복수극의 이야기를 전형적인 연출방식으로 보여주다 보니 MBC 주말드라마에서 자주 봐왔던 그런 장면들이 자꾸 연상되는 건 이 드라마가 가진 치명적인 약점이 아닐까.

 

어쩌면 이런 연출방식이 지상파에서 늘 상정하던 그 충성도 높은 시청층에게 더 어필할 것이라고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지금의 시청자들의 눈높이는 그것보다 훨씬 더 높아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째서 원작만화가 갖고 있던 그 아우라와 이국적인 세련됨 같은 것들이 드라마에서는 느껴지지 않을까. 외국을 배경으로 했던 내용을 국내 버전으로 바꿔서일까. 아니면 그 리메이크가 너무 국내의 막장드라마에서 익숙해져버린 복수극의 틀을 따르고 있어서일까

‘윤복-홍도’ 라인보다 강했던 ‘윤복-정향’ 라인, 왜?

‘바람의 화원’이 그 베일을 벗기 전부터 세간의 관심은 남장여자로 등장하는 신윤복(문근영)과 스승이자 연인으로 등장할 김홍도(박신양)의 러브 라인에 쏠렸다. 혹자들은 제2의 ‘커피 프린스 1호점’을 예상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막상 드라마가 시작되면서 우리는 뜻밖의 인물에 주목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정향(문채원)이라는 기생이었다.

정향과 홍도 사이에 선 윤복, 그 무게중심은?
어떻게 보면 이 사극의 멜로 구도는 남장여자인 신윤복을 가운데 두고 한편에는 김홍도가 다른 한편에는 정향이 서 있는 형국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 정향을 사로잡아 두려는 김조년(류승룡)까지 포함시키면 전형적인 사각 구도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이 멜로 구도의 독특한 점은 그 중심에 서 있는 신윤복이 그 어느 쪽을 선택할 수도 포기할 수도 없는 입장에 서 있다는 점이다.

정향과는 실제 육체적인 동성이고, 김홍도와는 대외적으로 알려진 성으로서의 동성이다. 이 상황은 신윤복으로 하여금 보통의 남녀 간의 사랑을 허락하지 않음으로써, 사극의 멜로를 그 이상의 것으로 끌어올리는 원동력이 된다. 즉 정향과는 육체적인 사랑이 아닌 미에 대한 사랑으로 승화되고, 김홍도와는 단순한 남녀 관계를 넘어선 사제이자 동료로서의 애정까지를 포함하는 사랑으로 다루어진다.

여기서 그림은 그 닿지 않는 사랑에 대한 그리움의 매개체로서 위치를 잡는다. 김홍도와 신윤복이 함께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는 장면이나, 손에 묻은 먹 자국을 닦아주는 장면은 그 어떤 육체적 접촉보다 더 아련하게 다가왔고, 정향과 신윤복이 나누는 눈빛이나, 가야금과 그림이 어우러지는 장면 역시 그 어떤 달콤한 대사보다 더 강렬하게 다가왔다.

그런데 전반적인 사극의 흐름 속에서 살펴보면 정작 초기에 기대했던 김홍도와 신윤복의 멜로 라인은 그다지 살아나지 않았고, 대신 신윤복과 정향의 멜로 라인이 부각되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멜로 라인의 균형을 깨게 만든 것일까.

왜 윤복과 홍도의 멜로가 살지 않은 것일까
그것은 신윤복 신드롬이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화되면서 남장여자라는 설정이 갖는 극의 부담감 때문이었을 수가 있다. 신윤복과 김홍도의 러브라인을 깊게 파고 들어가면 이 사극의 아킬레스건이자 매력인 동성애 코드가 부각되게 된다. 물론 정향과 신윤복의 관계 역시 동성애적 상황인 건 마찬가지지만, 우리나라에서 남-남의 동성애 코드를 보는 시각과 여-여의 동성애 코드를 보는 시각에는 큰 차이가 있다. 즉 여-여의 동성애 코드는 과거부터 남성들의 성적 소비 대상으로서 받아들여져 왔던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단정은 조금 과도한 듯하다. 이 사극 속에서는 그 멜로의 힘의 균형이 윤복-정향 쪽으로 기울었다 뿐이지, 여전히 윤복-홍도의 멜로가 사라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사극은 전체적으로 멜로 구도를 그리면서 육체적인 애정표현을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만큼 그림 같은 것을 통해 예술적으로 승화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중간에 윤복과 홍도가 키스하는 장면을 연출하려 했다가 뺀 것은 아마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히려 설득력이 있게 들리는 것은 박신양의 사극 연기 논란과 관련된 것이다. 연전연승을 거듭해온 박신양이 연기하는 김홍도에서 ‘쩐의 전쟁’의 금나라가 자꾸 연상되었다는 점이다. 연기로만 두고 봤을 때, 사실 박신양이 ‘바람의 화원’을 통해 떨어지는 연기력을 보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박신양의 고정된 이미지가 김홍도로 고스란히 이어졌다는 지점에 있다. 이것은 대중들에게 식상하게 다가왔다.

익숙한 배우의 익숙한 캐릭터? 참신한 배우의 참신한 캐릭터!
반면, 아직 새내기로 연기 역시 서투른 문채원은 ‘여성을 사랑하는 여성’이라는 신선한 캐릭터로 주목받았다. ‘닷냥 커플’로 대변되는 정향과 윤복의 러브라인이 힘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이 배우와 캐릭터가 조합된 결과로 보여진다. 이미 연기력이 검증된 익숙한 배우의 늘 봐왔던 캐릭터(혹은 연기)보다, 연기력은 아직 떨어지지만 참신한 배우의 참신한 캐릭터가 더 주목받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로써 문근영을 빼고 이 사극으로 가장 큰 수혜를 입은 배우는 박신양이 아닌 문채원이 되었다.

문근영이 과거 힘겨웠던 것은 국민여동생이라는 고정된 이미지를 탈피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남장여자 설정의 신윤복으로 그 이미지를 탈피해 이제 한 연기자로 발돋움하게 된 문근영과는 상반되게, 한편으로 점점 고착되어가는 박신양은 이 사극을 통해 숙제 하나를 갖게 된 셈이다. 최고의 연기자라면 늘 같은 이미지에서 뱅뱅 돌기보다는 새로운 영역에서 새로운 이미지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