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즈'에는 왜 잭슨이나 산체가 없을까

 

가짜가 아닌 진짜를 보고픈 욕망은 이제 아이를 넘어서 동물로까지 예능의 영역을 넓혀놓았다. MBC <일밤><아빠 어디가>를 잠정적으로 폐지하고 <애니멀즈>를 세운 건 그래서 이러한 예능의 변화를 읽어내게 만드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애니멀즈(사진출처:MBC)'

동물들은 본능적인 리액션만을 보인다. <OK목장> 코너에서 카메라가 있다고 해서 라마가 출연자들에게 침을 퉤 뱉지 않고 고분고분 목에 방울을 달아줄 리 만무다. 은혁이 아예 작정하고 다가갔다가 얼굴에 온통 라마 침 범벅을 당하는 장면은 그래서 의심할 여지없이 100% 진짜다.

 

<곰 세 마리> 코너에서 중국의 팬더 곰에 푹 빠져 계속 안아주던 박준형이 곰의 순간적인 발놀림에 턱에 상처를 입는 것도 100% 리얼이다. 박준형은 훈장처럼 밴드를 붙인 채 팬더 곰이 자신을 따르던 그 벅찬 느낌에 대해 인터뷰를 했다.

 

<유치원에 간 강아지> 코너에서 강아지가 무서워 눈물을 흘리는 윤석에게 치즈를 입에 물려줬다가 떨어지자 강아지가 달려들어 아이의 입에 묻은 치즈를 핥는 장면도 연출로는 나올 수 없는 것이다. 이 코너는 윤석이 같은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에 강아지들의 반응까지 더해 보다 강력한 리얼 리액션을 보여주는 힘을 발휘한다.

 

그런데 이 <애니멀즈>가 그토록 관찰카메라의 제1 덕목이라고 하는 100% 리얼 리액션에 근접하고 있지만, 어찌된 일인지 시청자 반응은 시원찮다. 시청률도 첫 회 4.7%에 이어 4.3%로 떨어지며 동시간대 최하위를 기록했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당연하게도 예능 프로그램의 관건은 리얼에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그 예능에 걸맞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 <애니멀즈>의 재미라고 하면 제목이 보여주듯이 동물에게서 나와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에 들어 있는 세 코너들을 살펴보면 재미가 동물에서 나온다기보다는 동물과 함께 지내느라 생고생을 하는 출연자들에게서 나온다는 걸 알 수 있다.

 

<OK목장>은 동물과 동거를 한다는 점에서 생고생의 강도가 가장 높을 수밖에 없다. 냄새도 냄새거니와 끊임없이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는 노동도 만만찮다. 그것도 부족해 간간히 들어오는 미션은 목장생활이 낯설 수밖에 없는 출연자들에게 멘붕을 안긴다. 동물들 또한 일상적으로 접하는 동물(강아지나 고양이)이 아니기 때문에 시청자들에게도 그 경험은 친숙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이러니 고생하는 출연자는 보이는데 정작 보여야할 동물들이 잘 보이지 않게 된다.

 

<곰 세 마리>는 물론 이 인형 같은 곰 세 마리의 캐릭터가 분명하게 보이지만 중요한 건 그 이상의 접근이나 교감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점이다. 곰은 야생성이 있기 때문에 잠깐의 방심으로도 큰 사고를 당할 수 있다. 그러니 그저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바라보는 정도나 다가간다 해도 한두 번 안아주는 것이 방송의 한계일 수 있다.

 

<유치원에 간 강아지>는 너무 복잡하다. 강아지를 너무 많이 한정된 공간에 넣어두다 보니 그 한 마리 한 마리의 캐릭터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강아지에 의해 반응하는 아이들과 이 둘을 챙기느라 생고생 하는 서장훈이나 돈스파이크, 강남만 보이게 된다. 그게 나쁜 건 아니지만 이것 역시 <애니멀즈>라는 큰 기획의도에서는 조금 벗어난 포인트다.

 

우리는 tvN <삼시세끼>를 통해 잭슨이라는 염소나 밍키라는 강아지, 또 산체라는 강아지의 강렬한 존재감을 경험한 적이 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각각의 동물들과 출연자 사이의 내밀한 교감의 장면들을 하나하나 디테일하게 엮으면서 일관된 스토리를 읽어낼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삼시세끼>는 동물이 주인공이 아니기 때문에 그 숫자가 적었고 그래서 더 주목도는 높아졌다고도 말할 수 있다.

 

결국 <애니멀즈>가 동물 버라이어티를 꿈꾼다면 바로 이런 잭슨이나 산체 같은 동물 캐릭터가 강렬한 존재감으로 읽혀질 수 있는 스토리를 가져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현재 <애니멀즈>에는 그 어떤 동물 캐릭터도 기억에 잘 남아 있지 않다. 그저 출연자들이 동물과 함께 지내는 어려움과 생고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줄 뿐이다.

 

최근 들어 예능의 경향은 생고생 버라이어티에서 점점 워너비 버라이어티로 바뀌고 있다. 낯선 곳에서 생고생을 하는 출연자들을 보며 웃기보다는 저런 곳에 나도 가고 싶다는 그 판타지가 훨씬 더 마음을 잡아끌고 있는 것이다.

 

물론 <애니멀즈>의 생고생이 재미와 의미가 없는 건 아니다. 그것은 동물과의 공존이라는 의미가 있으며 또한 그 고생스러움이 주는 재미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지금의 대중들이 진정으로 보고 싶은 것인지는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적어도 주말 저녁에 반드시 보고 싶은 동물 한두 마리 정도는 떠오르게 해줘야 <애니멀즈>라는 제목에 걸맞지 않을까.

 

<삼시세끼>, 말 못하는 산체 힐링의 존재 된 까닭

 

tvN <삼시세끼> 어촌편에 첫 게스트로 출연한 손호준에게 산체는 어떤 의미였을까. 어색하고 부담스럽기 이를 데 없는 대선배들을 찾아온 손호준은 낮잠을 자는 그들을 깨우지 못할 정도로 어려워했다. 그 불편한 첫 만남에서 그를 반겨준 건 다름 아닌 이 만재도의 귀요미로 자리한 산체였다. 손호준은 보자마자 산체에게 푹 빠져 연실 뽀뽀를 해댔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삼시세끼> 강원도편의 밍키에 이어 만재도편에서는 산체가 화제다. 너무 작아서 방안에서조차 숨어버리면 찾기 어려운 이 어린 강아지는 아직까지 거친 어촌의 바깥을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방안에서 지낼 수밖에 없는데 특유의 귀여운 자태(?) 때문에 출연자들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다.

 

유해진도 바깥일(낚시)을 하고 돌아오면 먼저 방안의 산체를 들여다보기 일쑤다. 방안에 싼 앙증맞은 똥을 치워주고 끼니 때가 되면 딱 50일씩 줘야 하는 사료에 덤으로 10알을 얹어주며 애정을 과시한다. 차승원 역시 힘든 하루를 보내고 난 후 산체와의 망중한을 보낸다. 커다랗지만 지친 몸들이 자그마한 산체와 토닥거리며 장난을 칠 때, 그들은 잠시 동안의 힐링을 맞본다.

 

잠깐 잠깐 등장하는 것뿐이고, 게다가 뭔가 특별한 행동을 하는 것도 아닌데 산체에 대한 관심은 출연자들 이상이다. 혹자는 산체를 보기 위해 <삼시세끼>를 본다는 얘기를 한다. 그만큼 산체 없는 <삼시세끼>는 이제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됐다. 도대체 이 말 못하는 강아지의 어떤 마성의 미력이 대중들을 사로잡았을까.

 

<삼시세끼>의 산체가 출연자들에게 주는 힐링은 아마도 반려견을 키우는 이들에게는 모두가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일이 될 것이다. 직장 생활의 고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무런 조건도 없이 달려와 가슴에 안기는 반려견의 그 따뜻함은 하루의 고단함을 순식간에 날려버리는 힘을 발휘한다. 폭풍이 몰아치고 때론 눈보라가 날리는 어촌에서 한 끼 한 끼를 챙겨먹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들이 잠시 그 현실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안을 얻는 존재가 바로 산체다.

 

그래서 그 작은 방안에서 산체와 노니는 출연자들의 모습은 마치 그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한없이 푸근해지고 따뜻해지는 마음이 그 작은 방안에서 느껴지기 때문이다. 산체는 그렇게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도 그 방을 찾는 이들의 마음을 건드린다. 그는 어느새 출연자는 물론이고 그 느낌을 고스란히 전해 받는 시청자들에게도 힐링의 존재가 된 것이다.

 

물론 나영석 PD는 이를 우연한 결과라고 말하지만 결코 그냥 일어난 일은 아니다. 거기에는 나영석 PD를 위시한 제작진들의 세심한 편집과 연출의 힘이 들어 있다. 산체라는 존재 자체가 귀요미인 것만은 분명하지만, 그것을 극대화한 건 연출의 몫이 있었다는 점이다. 출연부터 슬로우모션으로 달리는 산체의 모습을 마치 거친 야생의 동물처럼 표현한 건, 본래의 모습과 반전효과를 주며 시청자들의 관심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출연자들마다 한 번씩 이 귀요미에 빠져드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산체의 존재감은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연출을 통해 힘겨운 바깥의 생활이 끝난 후 산체를 찾는 출연자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 것은 산체를 휴식힐링의 존재로 각인시켰다. 이러니 거기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과거 <12>의 상근이부터, <삼시세끼> 강원도편의 밍키, 그리고 만재도편의 산체까지 하나같이 귀여움을 독차지하게 된 것은 그들의 존재자체가 주는 매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행동에 일정한 스토리텔링을 투사해 만들어낸 캐릭터의 힘이기도 하다. 그가 힐링의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는 걸 이해한다면 이제 산체를 보기 위해 <삼시세끼>를 본다는 말이 그저 과장이 아니라는 데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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