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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들호2’, 자극적인 전개로 시청률은 얻었지만...

KBS 월화드라마 <동네변호사 조들호2>는 아마도 시즌2라는 점과, 그간 너무 많이 쏟아져 나온 법정드라마, 변호사 캐릭터 등으로 부담이 컸던 모양이다. 아예 기획의도에 ‘법조인을 다룬 드라마가 봇물’이라 돌파구로 ‘천편일률적이지 않아야 한다’를 첫 번째 기획 포인트로 내세웠다고 명시했다. ‘법 얘기를 중심에 놓지 않고도 재미있는 법조 드라마를 해보자’는 것.

그래서일까. <동네변호사 조들호2>의 첫 시퀀스는 법정이 아니라 어느 차가운 바다로 던져지는 드럼통과 그 드럼통 안에 손이 묶인 채 갇힌 조들호(박신양)가 차오르는 물속에서 살아나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장면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2회까지 이 드라마는 스토리를 전개한다기보다는 조들호와 이자경(고현정)이라는 캐릭터를 중심으로 벌어진 자극적인 장면들을 나열했다. 

성폭력 가해자에게 속아 그를 변호함으로써 피해자가 갑자기 조들호의 차량으로 뛰어들어 나는 처참한 사고는 마치 그 참혹한 상황을 어떻게 하면 제대로 보여줄 것인가 고민한 듯, 아주 천천히 슬로우모션을 섞어 보여줬다. 피해자가 차량 앞 유리에 얼굴을 부딪칠 때 조들호를 쳐다보는 그 장면이 그대로 보여지고, 날아간 피해자가 바닥에 떨어져 피를 철철 흘리는 장면과 그 앞에서 너무 놀라 소리가 나오지 않는 조들호가 “도와달라” 외치는 장면이 이어졌다.

1회 마지막 장면에는 어느 낯선 공간(아마도 폐쇄된 병동으로 보이는)에 이자경이 실종된 윤정건(주진모)을 마주하는 장면과 그 곳을 찾아온 조들호가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스산한 풍경의 복도를 찾아들어가는 장면으로 끝이 났다. 그리고 이어진 2회에서는 윤정건이 독살되는 장면, 국일 그룹의 셋째인 국종복(정준원)이 마약 파티를 즐기는 장면 그리고 갯벌에서 발견된 윤정건의 사체로 인해 오열하며 뻘밭을 뒹구는 조들호의 모습이 보여진다. 

확실히 기획의도에 명시한 대로 ‘천편일률적’이지는 않다. 또 법 얘기가 전면에 등장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스토리도 없다. 그저 막연히 조들호와 이자경이 윤정건의 사망을 두고 대립하고 있고, 이자경의 뒤에는 국일그룹 국현일(변희봉) 같은 냉혹한 사업가가 존재한다는 것 정도다. 그 국일그룹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는 또 다른 피해자가 있고, 도움을 요청하는 그 피해자를 조들호는 무시하지 못한다는 것이나, 죽은 윤정건의 딸 윤소미(이민지)를 끝까지 보호하려는 모습이 ‘동네변호사’라는 캐릭터를 설명해주는 정도. 

스토리가 주는 몰입보다는 장면 자체가 주는 자극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조들호나 이자경의 캐릭터는 다소 도식적인 인물처럼 다뤄진다. 스토리로 이어지는 대립이 아니라 그냥 두 사람의 대립이 있다는 것만 막연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러니 그 캐릭터를 연기하는 박신양이나 고현정에게서 남다른 이 캐릭터만의 색깔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연기하면 한가락 했던 이 배우들에게서 이 드라마에 맞는 새로운 캐릭터의 매력을 느끼기보다는 어디선가 봐왔던 연기를 또 보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되는 건 그래서다. 

박신양은 여러 작품들에서 많이 보였던 쓰레기통에 뒹굴고, 넘어지고, 얼굴과 머리 그리고 온 몸에 진흙을 묻힌 채, 슬리퍼를 질질 끌고 다니는 그 익숙한 모습을 여기서도 반복한다. 고현정 역시 어디선가 봤던 표독스런 표정 연기를 보여준다. 연기자들은 저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그 역할의 표현을 하려 애쓰고 있지만, 스토리 없는 캐릭터는 과거 그들이 출연했던 작품들 속 캐릭터와 자꾸 중첩되어 보인다. 

이래서는 ‘천편일률적’이지는 않아도 드라마와 캐릭터에 몰입하기가 쉽지 않다. 자극적인 장면이 주는 주목은 실제로 이 드라마가 동시간대 지상파 드라마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게 만들지만, 그것이 유지되려면 더 자극적인 장면을 계속 보여줘야 한다. 그건 KBS 드라마 그것도 15세 드라마로 되어 있는 이 작품에는 갈수록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자극적인 장면을 통한 주목이 아니라, 스토리와 캐릭터가 주는 그 감정선과 궁금증 속으로 자연스럽게 시청자들을 몰입시켜야 하지 않을까. 이런 전개로는 제 아무리 박신양이나 고현정이라도 매력을 찾기가 어려워진다. 심지어 과거의 비슷한 연기만 반복하는 듯한 느낌을 줘, 시청자들에게 식상함만을 줄 뿐.

Posted by 더키앙

거대담론보다 소시민적 삶에 공감한 대중들

 

월화극의 대결구도는 이제 12소로 굳어지는 모양새다. 애초 예상은 그 1강이 SBS <대박>이었다. 사극인데다 <육룡이 나르샤>의 후광이 있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또한 MBC <몬스터> 역시 만만찮은 힘을 발휘할 것으로 예상됐다. <기황후>, <자이언트> 같은 대작을 성공시켰던 장영철 작가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1강은 가장 약할 것으로 여겨졌던 KBS <동네변호사 조들호>에게로 돌아갔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반전을 만든 것일까.

 


'동네변호사 조들호(사진출처:KBS)'

먼저 <대박>은 예상과 달리 <육룡이 나르샤>의 후광이 아니라 오히려 비교점을 만들면서 힘이 빠졌다. 무언가 강렬한 극적 상황들이 계속 해서 등장하긴 하지만 그 사건과 사건이 맥락없이 연결되어 힘이 모이지 않는 상황이다. <육룡이 나르샤>가 무려 여섯 명의 주인공을 세워두고 여러 사건들을 겹치게 하면서도 그것이 하나의 일관된 힘으로 묶을 수 있었던 것은 조선 개국이라는 분명한 목표의식을 제시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대박>의 대길(장근석)이나 연잉군(여진구)이 그토록 이인좌(전광렬)와 대결하는 그 과정들이 어떤 목표를 추구하는지가 애매모호하다. 물론 대길은 복수하려는 것이고 연잉군은 날개를 펼 수 없는 자신의 한계를 어떻게든 극복하려는 것이지만 그런 사적인 욕망들이 시청자들에게 어떤 공감대를 형성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하다. 그들에 몰입하고 그들의 사적 욕망이 이뤄지길 바라는 마음을 시청자들이 갖기 위해서는 그들의 목표가 지금의 시청자들을 끌어들일 만큼 공적이어야 한다. 이런 목표제시가 제대로 공감대를 주지 못하기 때문에 <대박>은 그저 도박과 복수극의 자극적인 이야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몬스터> 역시 마찬가지다. 50부작에 이르는 거대한 서사를 강기탄(강지환)이라는 인물의 복수극으로 끌고 간다는 것은 소소한 재미는 있을지 몰라도 그다지 마음이 얹어지는 이야기는 아니다. 강기탄이 싸우고 있는 도도그룹이라는 세력이 보통의 시청자들에게 어떤 의미를 던져주는가가 이 드라마에는 빠져 있다. 그래서 강기탄의 복수극은 마치 현실이 아닌 게임처럼 여겨진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연상시키는 연수과정의 이야기는 너무나 비현실적이라 드라마가 아닌 만화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몬스터>의 최대 약점은 이 안에 배치된 많은 이야기들과 캐릭터들이 너무나 스테레오타입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애초에 시력을 잃어 오히려 청력이 좋아진 이국철(이기광)이었을 때만 해도 그 주인공은 참신한 면이 있었지만 강기탄으로 돌아오고 나서는 그마저 사라졌다. 도도그룹의 연수 최종 미션이었던 실제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강기탄이 증인인 오승덕을 법정으로 데려와 상황을 반전시키는 이야기는 너무 깊이 없이 다뤄져 마치 하나의 가상극 같은 느낌마저 주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어떤 자극적인 이야기의 전개가 들어와도 시청자들이 몰입하기가 어려워진다.

 

반면 <동네변호사 조들호>는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거대담론의 거창함을 피하고 동네변호사라는 소시민적 삶으로 내려옴으로써 오히려 공감대를 넓혔다. 물론 이 드라마도 법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현실적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사건들이 전하는 메시지들이 아버지의 자식을 위하는 마음이라든가 악덕 건물주에 의해 쫓겨나게 된 세입자들의 입장 혹은 아버지로서의 조들호의 이야기 같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는 점은 분명하다.

 

결국 대중들은 허황되고 뜬구름 잡는 이야기 같은 거대담론보다는 마치 내 이야기 같은 소시민적인 삶의 이야기에 더 공감했다. 물론 이것은 아직 시작일 뿐일 것이다. <대박>24부작이고 <몬스터>는 무려 50부작이다. 그러니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다. 만일 <대박>이나 <몬스터>가 이 상황을 반전시키고 싶다면 자잘한 이야기 전개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가 지금의 시청자들의 마음을 끌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져봐야 하지 않을까

Posted by 더키앙

약점들이 분명한 드라마들, 남은 건 채워주는 연기력

 

월화드라마의 경쟁이 한 치 앞도 모를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 시작은 SBS <대박>이 시청률 1위로 치고 나갔지만 KBS <동네변호사 조들호>가 조금씩 시청률을 올리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대박>을 앞질렀다. MBC <몬스터>는 지금까지 3사 대결에서 계속 꼴찌 시청률을 기록하고는 있지만 갈수록 시청률이 나아지는 양상이다. 이런 흐름이라면 <몬스터>가 언제 또 수위로 치고나갈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동네변호사 조들호(사진출처:KBS)'

이 흐름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여겨진다. 즉 방영 전까지의 액면으로 보면 <대박>이 단연 셀 수밖에 없는 드라마의 요소들을 갖추고 있다. 사극인데다가 도박이라는 소재를 담고 있다. 게다가 장근석이나 최민수, 전광렬 같은 배우들의 면면도 확실히 끄는 매력이 있다. 그러니 <대박>이 첫 시청률에서 1위를 차지한 건 이런 요소들이 만들어낸 기대감 덕분이다.

 

하지만 드라마가 방영되고 나서 호불호는 당연히 나눠진다. 사극이라고는 하지만 상상력이 가미되어 어떤 면으로 보면 역사극을 보는 듯한 느낌이 덜할 수 있다. 이를 테면 역대 장희빈의 머리채를 잡은 숙종은 처음이라며 상찬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그게 너무 과하게 다가오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타인의 부인이었다가 도박으로 숙종의 빈이 된 숙빈 최씨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물론 그래도 <대박>의 힘은 여전히 세다. 한번 그 내용을 들여다 본 시청자라면 계속 어떤 전개가 나오게 될지 궁금해지는 면이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모든 걸 다 내려놓은 듯한 장근석의 연기변신은 칭찬할만하다.

 

반면 <동네변호사 조들호>는 처음부터 확 땡기는 드라마는 아닐지 몰라도 각성한 인물이 억울한 이들의 편에 서서 변호를 해나간다는 그 이야기가 정서적으로 끌리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물론 이 드라마는 웹툰이 원작이라고 해도 너무 비현실적인 장면들이 많다. 변호사가 법정에서 거의 농담에 가까운 이야기를 던진다거나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식의 장면들은 드라마에 대한 몰입을 떨어뜨린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런 약점들에도 불구하고 그걸 잘 채워주는 박신양이라는 연기자가 있다는 점이다. 이 드라마는 물론 조들호라는 캐릭터에 의지하는 면이 많지만 박신양이라는 연기자의 힘을 확실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몬스터> 역시 강점과 약점이 분명하다. 강점은 장영철 작가의 드라마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끊임없이 몰아치는 이야기 전개의 힘이다. 복수극이라는 틀을 갖고 있어 드라마가 어떤 결말을 향해 갈 지는 뻔하다. 하지만 장영철 작가는 이 정해진 결말에도 불구하고 예측할 수 없는 과정의 재미를 만들어낼 줄 아는 작가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약점은 역시 비현실적이고 나아가 만화적이기까지 하다는 점이다. 사극과 무협의 틀을 현대극으로 가져온 듯한 이야기들은 그래서 호불호가 나뉠 수 있다. 중요한 건 이 드라마 역시 이런 약점들을 채워주는 연기자들의 호연이 있다는 점이다. 이기광이 초반에 확실히 드라마에 대한 몰입을 만들어냈다면 그 힘을 강지환이 잘 이어가고 있다.

 

결국 월화드라마가 어느 한 작품이 확고한 선두를 치고 나가지 못하고 엎치락뒤치락 하게 된 건 압도적인 작품이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저마다 강점도 있지만 약점 또한 분명하다. 그래서 주목되는 건 강점은 살리고 약점은 채워주는 연기자들의 연기력이다. 월화드라마의 대결은 이제 연기력 대결로 치닫고 있다

Posted by 더키앙

<배우학교>를 통해 장수원도 이원종도 찾는 것은

 

배우니까 배우세요.’ tvN <배우학교> 첫 회에 등장한 문구다. 배우는 그냥 연기하는 게 아니라 충분히 배움으로써 더 잘 연기할 수 있다는 뜻일 게다. 발연기 논란을 겪었던 남태현이나 연기하는 것마다 로봇이라고 비아냥을 받다 아예 그게 캐릭터가 되어버린 장수원. 이제 원로급 배우지만 연기하는 즐거움을 잃었다는 이원종이나 어떻게 하면 웃길까만을 고민하다 연기의 진지함을 간과해온 유병재 등등. 이 학교에 온 출연자들은 저마다 연기에 대한 고충들을 안고 있다.

 


'배우학교(사진출처:tvN)'

배우니까 배우라는 캐치 프레이즈에 맞게 이들은 아침 일찍부터 산을 오르며 발성연습을 하고 운동장에 있는 사물들을 몸으로 표현해보기도 하며 때로는 돗자리라는 단어 하나로 대화를 나눠보기도 한다. 또 결국은 몸의 자연스러운 표현이 중요한 연기를 위해 발레리나 김주원이 찾아와 일러주는 발레 동작들을 연습하고 표현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외적인 준비와 연습이 귀결되는 곳은 따로 있다. 그것은 처음 이 학교에 들어왔을 때 박신양이 던졌던 질문. 즉 연기란 무엇이며 나는 왜 연기를 하려는가 라는 그 화두다. 즉 나를 알고 그 껍질을 깨치지 않으면 연기는 그저 흉내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들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어찌 보면 연기란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사물을 몸으로 연기하라는 박신양의 숙제에서 가장 주목되는 인물은 장수원이었다. ‘로봇 연기라는 소리를 꼬리표처럼 달고 다니는 그는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에도 제대로 자신의 진면목을 드러내지 못했다. 마음 속의 무언가가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막고 있었던 것. 노력해도 안되는 자신이 스스로도 답답했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무심코 학교 운동장 한 구석에 놓여진 쓰레기봉지에 마음이 갔고 그것을 몸으로 표현하려고 했다. 자신의 처지가 그렇게 버려진 쓰레기봉지 같았다는 것.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상의 속으로 쏙 들어간 장수원은 마치 그 껍질을 벗고 나오려 몸부림치는 듯한 모습을 연기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모습 그대로였다. 자신을 표현하려 하지만 무언가가 그걸 막고 있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모습. 선생인 박신양은 장수원에게 그가 연기한 것이 쓰레기인지 쓰레기봉투인지를 물었다. 사실 그것들은 겉과 속으로 분리되어 있는 것들이지만 장수원은 그것들을 하나로 혼동할 정도로 겉이 단단하게 속을 감싸고 있었던 것. 장수원은 아마도 이 연기수업을 통해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바라볼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연기란 자신을 정확히 바라보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일이 아니던가.

 

이원종은 노틀담의 꼽추의 꽈지모도를 연기했다. 에스메랄다를 데려와 놓고 욕망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꽈지모도였다. 그 연기를 본 동료들은 진심어린 칭찬을 해주었지만 박신양은 여기서도 질문을 그치지 않았다. 그 연기가 너무 느리게 나왔다는 것. 또 에스메랄다라는 존재를 드러내는 연기가 아니라 꽈지모도 스스로를 드러내는 연기였다는 것을 지적했다. 이원종은 박신양의 질문에 수긍했다. 연기는 연기하는 나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연기하는 대상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박신양의 지적에 이원종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도록 연기를 하면서 자신에 대한 치장들이 드러내야 할 것들을 오히려 가리고 자신을 강조하고 있었던 걸 그는 명확히 깨달았다.

 

<배우학교>가 보여주는 이런 장면들은 과연 연기를 하는 배우들에게나 중요한 이야기일까. 그렇지 않다. 그것은 어찌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배우가 아니라도 배울만한 것들이다. 자기 자신을 정확히 들여다보고 자신의 마음을 정확히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방법. 소통과 공감의 시대에 이만큼 중요한 일이 있을까. <배우학교>가 배우가 아닌 보통의 시청자들에게도 흥미롭게 다가오는 이유다

Posted by 더키앙

<배우학교>, 다큐 찍은 박신양, 예능 하려던 유병재

 

그저 그런 연기 오디션이나 연기를 소재로 한 예능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가졌던 시청자들이라면 tvN <배우학교>의 첫 방송이 사뭇 낯설게 다가왔을 수 있다. 그것은 아마도 여기 출연한 출연자들도 마찬가지였을 게다. 물론 스스로의 연기력이 부족하다는 걸 인정하면서 프로그램에 합류했다는 건 그만한 용기를 냈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그래도 자신들이 출연하는 이 프로그램이 예능이라는 점은 이만큼의 진지함과 압박감을 요구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배우학교(사진출처:tvN)'

첫 회만 두고 얘기하자면 <배우학교>는 예능이라기보다는 다큐에 가까웠다. 박신양은 진심으로 그 학교를 찾아온 출연자들에게 연기를 가르쳐주려 했고 그래서 그 첫 번째 관문으로서 자기소개 시간에 왜 연기를 하려는가에 대한 압박질문을 던졌다. 처음 자기소개를 하러 나온 남태현에게 집요하게 왜 연기를 하려는가를 물었고, 자꾸만 머뭇거리며 회피하려 하는 속 얘기를 결국은 꺼내게 만들었다. 자신의 연기력 논란에 드라마 제작진들부터 연기자들까지 모두가 피해를 입는 상황을 견디기 힘들었고 최소한 그런 피해를 입히지 않기 위해서라도 연기를 제대로 배우고 싶다고 그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다.

 

예능 프로그램이 이토록 압박감과 긴장감을 유발하고 첫 모습을 선보이는 자리에서 눈물까지 흘리는 이 장면은 <배우학교>가 향후 어떤 모습의 프로그램이 될 것인가를 가늠하게 해주었다. 박신양의 어찌 보면 가혹하다싶을 정도로 그냥 넘어가지 않는 독한 질문들은 일종의 화두였다. 지금껏 어찌어찌해 캐스팅된 연기를 하기는 했었지만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못했던 질문들. 연기란 무엇이고 나는 왜 연기를 하려하는가에 대한 연기자에게는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졌던 것이다.

 

유병재는 아마도 자신이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해왔던 대로 이 프로그램 역시 배우수업이라는 상황에서의 재미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유병재의 이 생각이 깨지는 건 단 몇 분 간의 질문세례면 충분했다. 박신양에게 심지어 자신이 선생님으로서 합격시켰다는 식의 무례한 얘기까지 꺼낸 건 분명 웃음을 주기 위한 것이었겠지만, 그 말은 웃음이 아닌 무거운 분위기로 돌아왔다. 결국 거듭된 박신양의 질문 속에 압박감을 느낀 유병재는 가슴에 통증을 느끼며 말을 더 이상 할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됐다.

 

유병재를 데리고 침대가 놓여져 있는 숙소로 간 박신양은 그를 다독이며 마음을 가라앉히게 해주었고, 그날 밤 그에게 두 번째 주어진 자기소개 시간에는 훨씬 더 차분한 목소리로 왜 연기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할 수 있게 했다. 발표하는 것 자체가 훨씬 편해진 그에게 박신양은 연기 또한 그렇게 몸과 마음이 편안해야 잘 나올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결국 박신양이 압박질문을 통해 하게 했던 자기소개 시간은 사실은 여기 참가한 출연자들이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시간이기도 했고 또 단단한 껍질을 깨고 그 속살을 드러내는 시간이기도 했다. 연기가 누군가를 흉내 내는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 속에 있는 또 다른 나를 만나는 과정이라면 먼저 자신을 제대로 보고 인정할 수 있는 눈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박신양의 첫 수업은 그래서 연기자라면 가져야 될 가장 기본적인 자세를 끄집어낸 시간들이 될 수 있었다.

 

<배우학교>는 결코 웃기려는 예능이 아니라는 것을 첫 방송은 보여줬다. 예능을 하려던 유병재를 진지한 연기의 세계로 이끄는 박신양의 진심이 느껴졌다. 물론 상황 자체가 웃음을 유발할 수는 있을 것이나 그것이 목적이 되지는 않는 새로운 예능 프로그램. <배우학교>는 웃음보다는 눈물과 땀이 더 느껴질 예능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것이 이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주는 가장 큰 이유다

Posted by 더키앙

<배우학교>의 박신양, 연기에 대한 진정성 보여줄 수 있을까

 

박신양과 예능. 어딘지 낯선 조합이다. tvN이 새롭게 시도하는 리얼 예능 프로그램 <배우학교>가 시작 전부터 관심을 끌어모은 건 바로 이 낯선 조합에 대한 호기심 덕분이다. 왜 박신양은 <배우학교>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선택했을까. 지금껏 해왔던 배우로서의 행보를 생각해보면 실로 이례적인 선택이 아닐 수 없다.

 


'배우학교(사진출처:tvN)'

박신양이 누군가. <편지>, <약속> 같은 영화로 또 <파리의 연인>, <쩐의 전쟁>, <바람의 화원>같은 드라마로 그 누구보다 화려한 필모그라피를 보여주는 배우다. 물론 최근에는 2011년 작품인 <싸인> 이후에 이렇다 할 작품을 하고 있지 않지만 그래도 연기력에 있어서 누구나 인정했던 배우가 바로 박신양이다.

 

하지만 박신양은 2007<쩐의 전쟁>에서 이른바 고액 출연료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쩐의 전쟁>이 인기를 끌면서 연장방송된 번외편에서 회당 155백만 원의 출연료로 추가계약을 한 사실은 당시 제작사였던 이김프로덕션과의 법정 분쟁을 통해 드러난 바 있다. 결국 밥정은 박신양의 손을 들어줘 이김프로덕션이 추가 계약대로 386십만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지만 문제는 이 고액의 액수가 만들어낸 적지 않은 파장이었다.

 

드라마 제작사 협회가 나서 박신양이 거액의 출연료 요구로 드라마 발전을 방해하고 시장을 교란시켰다는 명목으로 박신양의 드라마 출연을 무기한 정지하기로 의결했고, 그 액수가 알려지면서 대중들의 박신양을 바라보는 시선도 차가워졌다. 결국 이 여파로 박신양은 2011<싸인>에 출연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 안방극장에 얼굴을 내밀 수가 없었다.

 

사실 연장방송을 한 것이 더 잘못이고, 거기서 추가계약을 했다면 그 액수대로 지급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박신양에게 이러한 계약이나 출연료보다 더 큰 문제는 연기에 대한 진정성이 이 논란에 의해 상당히 흐려져 버렸다는 점이다. 물론 그건 진짜라기보다는 이미지의 문제다. 그런 돈의 이미지가 배우로서 온전히 서 있던 박신양에게 드리워지게 됐다는 것.

 

이런 일련의 흐름을 통해 볼 때 박신양의 <배우학교>라는 예능 프로그램 선택은 꽤 괜찮은 행보라고 보인다. 다른 예능도 아니고 연기로 소재로 하는 예능이 아닌가. 게다가 박신양이 제작발표회에서 했던 이야기들을 분석해보면 그는 결코 이 프로그램을 예능으로서 받아들이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는 연기에 대한 진심을 담아서 이 프로그램을 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배우학교>는 그런 점에서 박신양의 연기에 대한 진정성을 드러내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여기 출연하는 이른바 발연기제자들의 진정성도 빼놓을 수 없다. 그들은 여기 출연하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발연기임을 인정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그 정도로 드러내놓겠다는 건 진짜 연기를 하고 싶다는 열망의 다른 말이 아닐 것이다.

 

과연 <배우학교>는 박신양과 그 제자들의 진심을 보여줄 수 있을까. 담당 PD인 백승룡 PD는 이 프로그램이 예능인지 드라마인지 다큐인지 헷갈린다고 말했다. 바로 그 헷갈리는 지점에 그 진정성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배우학교>도 또 박신양도.

Posted by 더키앙

실장님부터 초능력자까지, 남자주인공들의 진화사

 

미소년의 얼굴에 어린 나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카리스마. 독특한 아우라를 갖고 있는 김수현에게 <드림하이>의 송삼동은 잘 맞지 않는 옷이었다. 하지만 <해를 품은 달>의 군왕이나,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능력을 숨긴 채 살아가는 남파간첩(거의 아이돌에 가깝다)을 거쳐 <별에서 온 그대>의 초능력 외계인 캐릭터는 그의 아우라를 완성시켰다.

 

'별에서 온 그대(사진출처:SBS)'

지금 현재 김수현은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성공을 보장받는 남자주인공의 끝판왕이다. <별에서 온 그대>의 도민준이라는 캐릭터가 사실상 지금껏 드라마 속 남자주인공들이 여성들에게 주던 판타지를 거의 모두 가진 인물이며, 그 복합적이고 비현실적인 인물을 아무런 이물감 없이 그가 연기해내고 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외계에서 와 조선시대부터 4백년을 산 인물 도민준. 그는 일찍이 사둔 잠실벌과 압구정의 땅으로 어마어마한 재벌급의 재산을 갖고 있는 인물인데다, 4백년 동안 의사에서부터 변호사까지 안 해본 직업이 없는 능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그의 집 한 켠에 마련된 도서관을 방불케하는 서재는 그의 지적이고 감성적인 능력을 표상하고, 시간을 멈추고 사물을 움직이는 초능력은 실현 불가능한 일들까지 가능하게 만든다.

 

물론 여기서 핵심은 이런 재산, 능력, 지성, 감성 게다가 초능력까지 가진 인물이 오로지 천송이(전지현) 한 사람만을 마음에 두고 보호하려 한다는 것이다. 제 아무리 초능력을 가진 인물이라고 해도 인류를 위해 한 목숨 바치는 영웅을 여성들은 원하지 않는다. 지극히 사적으로 자신만을 위한 판타지를 제공해줄 수 있는 인물. 게다가 4백년의 공력으로 이 모든 걸 갖추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늙지 않는 미소년 외모의 소유자. 그가 바로 도민준이라는 남자 주인공의 정체다.

 

초능력을 가진 남자주인공 캐릭터는 작년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박수하(이종석)라는 인물을 통해서도 그 매력이 입증된 바 있다. 타인의 마음을 읽는 초능력자인 박수하는 그 놀라운 소통능력으로 억울한 이들의 문제들을 해결해주기도 하지만 결국 그것은 장혜성(이보영)이라는 한 여성을 위한 일이다. 천송이와 도민준, 장혜성과 박수하라는 커플의 공통점은 남자주인공이 미소년에 초능력자라는 점이다. 여성들은 젊고 아름다운 육체와 함께 초능력에 가까운 능력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남자주인공은 <파리의 연인>의 박신양에서부터 <시크릿 가든>의 현빈, <상속자들>의 이민호로 이어지는 김은숙표 멜로의 재벌이거나, 주상욱이나 이동욱 같은 성공적인 실장님 캐릭터, 혹은 전문분야에 능력을 갖췄으나 성격은 모난 <베토벤 바이러스>의 김명민이나 <외과의사 봉달희>의 이범수 같은 인물들이 얼굴을 달리 하며 반복해서 등장해왔다. 하지만 이종석과 김수현에 이르면 이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판타지로까지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

 

남자주인공이 이처럼 점점 초능력을 갖춘 인물로 등장한다는 것은 거꾸로 말하면 현실의 채워지지 않는 욕망이 점점 커져간다는 걸 말해준다. 슈퍼히어로들은 불가능한 것에 대한 욕망이 만들어낸 상징들이 아닌가. 하지만 서구의 슈퍼히어로들이 전 지구적인 위기와 맞서 인류를 구원하는 메시아적인 존재로 그려지는 반면, 우리네 슈퍼히어로들은 지극히 일상적이고 사적인 삶에 오히려 집중한다는 것이 완전히 다른 특징이다. 이것은 무얼 말해주는 걸까.

 

일단 국가나 인류 같은 거창한 꿈에 대한 허무주의가 그 안에는 들어 있다. 정치인들이나 국가 지도자들이 말해온 거대 담론들이 정작 서민들에게 무엇을 해주었단 말인가. 그러니 퇴행적이라고 비판받을지언정 바로 직접적으로 나를 돕는 슈퍼히어로를 꿈꾸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장혜성 변호사를 돕는 박수하는 신드롬을 만들고 있는 <변호인>의 송우석 변호사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 <변호인>이 서민들을 신뢰하게 한 점은 국가와 국민을 얘기해도 그것이 거대담론으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친조카 같은 한 국밥집 아들을 위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별에서 온 그대>의 남자주인공 도민준이라는 슈퍼히어로는 국가나 인류 같은 거대담론에 대한 극도의 허무주의를 보여준다. 그가 천송이라는 한 여성을 위해서만 자신의 능력을 온전히 다 사용하는 것은 오로지 거기서 운명적인 사랑을 느끼기 때문이다. 4백년을 살다보면 그도 그럴 것이다. 조선이 대한민국으로 바뀌고 일제와 남북분단을 경험한 인물이라면 세상의 변화에 초탈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인물 속에 담겨진 사적인 욕망과 사회적 현실에 대한 허무는 씁쓸함을 남긴다.

 

김수현이라는 배우는 그래서 지금 현재 우리네 사회가 갖고 있는 욕망과 좌절을 모두 함께 캐릭터를 통해 껴안고 있는 셈이다. 그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미소년의 여전한 장난기와 때로는 어른스럽게 여성을 보호해주는 카리스마, 그리고 한 편에 느껴지는 어두운 허무의 그림자는 그래서 그가 도민준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드러내는 이 시대의 징후이기도 하다. 또한 그의 얼굴 속에는 그간 남자 주인공이라는 이름으로 탄생했던 수많은 캐릭터들의 면면들이 혼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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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인'의 그 많은 약점을 강점으로 바꾼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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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인'(사진출처:SBS)

'싸인'의 시청률이 드디어 20%를 넘어섰다. 초반 승승장구했지만 차츰 고개를 숙인 '마이 프린세스'와는 사뭇 다른 행보다. 그리고 이것은 최근 일련의 용두사미 드라마들, 즉 초반에 기선을 잡았다가 중반부터 힘이 달려 시청률이 떨어지던 드라마들 속에서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싸인'의 무엇이 우리를 그토록 빠져들게 하는 걸까.

무엇보다 '싸인'의 풍부한 스토리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싸인'은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전체적으로 이어져 있지만, 에피소드가 병렬적으로 소개되는 스토리 구조를 갖고 있다. 어느 스타의 죽음을 다룬 후, 연쇄살인범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어느 기업에서 벌어지는 연쇄 의문사 사건이 이어지는 식이다.

연속극에 익숙한 우리나라 드라마 시청 패턴 상 병렬적인 스토리 구조를 가진 드라마는 한계를 가지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싸인'은 예외적이다. 이유는 병렬적인 스토리들을 박신양과 김아중, 전광렬, 엄지원, 정겨운 같은 굵직한 배우들이 캐릭터를 통해 촘촘한 연결고리를 만들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20년 전 벌어진 윤지훈(박신양)의 아버지와 정병도(송재호) 사이에 벌어진 소견 조작 사건은, 20년 후 윤지훈이 맞게 되는 연쇄 독살사건과 연결된다. 각각의 사건처럼 보이지만, 그것을 주인공과 연결시킴으로써 전체적인 흐름을 유지하고 있는 것.

연결이 끊기지 않는 병렬적인 스토리 구조는 약점이 아니라 강점으로 바뀐다. 보다 풍부한 스토리를 접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것은 경쟁작이라 할 수 있는 '마이 프린세스'와 대적할 수 있는 확실한 경쟁력을 만들어준다. 지지부진한 진행, 반복적인 스토리에 인물들 간의 멜로만 부각되는 '마이 프린세스'와, 멜로가 약하지만 매번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미스테리한 사건들이 펼쳐지는 '싸인'은 확실히 대비된다.

게다가 '싸인'이 가져온 사건들이 현실에서 벌어졌던 실제 사건들을 계속해서 연상시킨다는 점도 시청률 상승의 원인으로 빼놓을 수 없다. 가수 고 김성재군의 의문사 사건이라든지, 화성 연쇄살인사건, 그리고 최근에는 매 값 논란을 일으켰던 사건들까지 이 드라마는 화제로 끌어들인다. 물론 직접적으로 그 사건을 다루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뉘앙스는 시청자들로 하여금 현실감을 느끼게 해준다. 정의 없는 부조리한 현실을 드라마 속으로 끌어들여 어떤 대리만족을 이끌어낸다는 것이다.

아쉬운 점은 멜로가 빈약하다는 것이다. 과거 멜로는 '싸인' 같은 전문직을 다루는 드라마의 독이 되는 경향이 짙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여기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 사건과 그 속에 잘 어우러지는 멜로의 조화는 오히려 드라마의 몰입도를 더 끌어올릴 수 있다. '외과의사 봉달희'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사실 전문직의 사건들만으로 20% 이상의 시청률을 계속 끌고 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멜로가 적절히 이어진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멜로에 빠져 사건이 지지부진해진다면 오히려 독이 되겠지만.

'싸인'은 기존 드라마 관행 속에서 여러 약점들, 예를 들면 병렬적인 스토리 구조나 멜로의 부재 같은 것들을 갖고 시작했지만 그것을 거꾸로 강점을 잘 바꿔놓은 드라마다. 무엇보다 박신양과 전광렬의 팽팽한 연기대결, 그리고 송재호의 관록과 김아중의 발랄함이 잘 어우러져 있는 점도 시청자들을 끄는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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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인', 그 무서운 뒷심은 어디서 오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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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인'(사진출처:SBS)

'싸인'의 상승세가 무섭다. 첫 번째 에피소드였던 한 유명가수의 죽음은 고 김성재의 의문사를 떠올렸지만 그다지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아마도 CSI 같은 세련됨을 기대했던 시청자들의 기대치에는 맞지 않는 우리식의 법의학 드라마라는 점도 작용했을 듯 싶다. 하지만 회를 거듭하면서 오히려 우리 식의 정서가 묻어나는 '싸인'은 힘을 발하고 있다. 두 번째 에피소드로 연쇄살인범의 등장과 함께, 긴박한 사건들을 다차원적으로 엮어내는 연출의 힘이 예사롭지 않다.

하지만 우리네 드라마에서 스릴러 같은 장르적 성격이 성공한 적은 극히 드물다. 고현정이 출연했던 '히트'가 그랬고, 손예진이 맹렬 기자로 등장했던 '스포트라이트(물론 이 작품은 스릴러는 아니지만 그런 요소가 강했다)'도 그랬다. 이유는 당연했다. 우리 드라마에는 멜로 같은 말랑말랑함에 시청자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싸인'은 이례적이다. 물론 멜로가 예고되어 있지만, 아직까지 본격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스릴러적인 사건들만으로 시청률이 급상승했다. 도대체 무엇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잡아 끈 걸까.

사실 작년 내내 우리 문화계에 불어 닥친 '정의' 신드롬은 이례적이다.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베스트셀러에 오른 건 출판전문가들의 분석에 의하면 '정의'라는 키워드가 대중들에게 자극하는 부분이 컸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이 책은 미국 내에서는 그다지 큰 반향을 얻지 못했다고 한다. '정의' 신드롬은 EBS에서 방영하는 샌델 교수의 강의로 이어지고 있다. 한번쯤 본 사람들은 그 강의가 대단히 매력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유머가 넘치는데다가 어려운 철학적 문제도 명쾌하게 구체적 사례를 통해 풀어내주는 샌델 교수의 힘이다.

작년 영화계를 강타한 건 스릴러 장르였다. '아저씨', '이끼', '악마를 보았다', '부당거래' 등등 그 어느 때보다 스릴러가 강세를 보였다. 그 안을 들여다보면 역시 '정의'라는 키워드가 보인다. 특히 '아저씨'의 대성공은 물론 원빈이라는 배우의 힘이 작용했지만, 현실적으로 구현되지 않고 있는 사회정의라는 차원과 거기에 어떤 부채감 같은 걸 느끼는 고개 숙인 아저씨 감성이 맞물리면서 흥행에 불씨를 던졌다. 그만큼 현실이 채워주지 않는 '정의'에 대한 갈망을 영화라는 판타지 속에서나마 충족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싸인'은 영화가 아니라 드라마다. 스릴러에도 어느 정도의 수위조절이 필요한 상황이다. 연쇄살인범이 여주인공을 잡아 두고 마치 장난치듯 죽음으로 몰아넣는 장면은 그래서 영화보다는 약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싸인'이 힘을 발휘하는 건 이 '정의'에 대한 갈망이 안방극장으로도 침투하는 것만 같다.

여기에는 장항준 감독의 촘촘한 연출력과 그저 연기로 부딪치는 박신양과 전광렬의 팽팽한 대결, 그리고 푼수 같은 털털한 이미지로 변신에 성공한 김아중의 몫이 크다.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와 긴장을 풀어주는 코믹한 설정들, 그리고 적절히 이어지는 멜로의 균형 감각도 좋은 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목을 끄는 건, 역시 올바른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그 '정의'에 대한 갈망이다. '싸인'의 다음 에피소드는 과연 그 갈망을 더 키워놓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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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근영의 발견, 장태유 PD의 성과 그리고 박신양의 숙제

'바람의 화원'은 시작하기 전부터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그 이유는 이 범상치 않은 사극이 제시하는 세 가지 도전 상황 때문이었다. 그 첫째는 박신양이 첫 사극 도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며, 둘째는 문근영이 남장여자 출연으로 그녀에게 족쇄로 작용하던 국민여동생 이미지를 벗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셋째는 장태유 PD가 역시 첫 사극 도전을 어떻게 해낼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그렇다면 종영에 와서 이 도전은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

문근영의 발견, 국민여동생에서 연기자로
'바람의 화원'의 최대 성과는 아마도 문근영이라는 배우의 재발견일 것이다. 문근영은 이미 국민여동생이라는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었지만 바로 그 이미지가 족쇄로 작용했던 게 사실이다. 한 때 '사랑따윈 필요 없어'같은 영화에 출연하면서 성인연기자로의 변신을 노렸던 문근영이지만 대중들은 그 이미지 변신을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바람의 화원'에서 남장여자 설정의 신윤복이란 캐릭터를 만나 문근영은 비로소 이 족쇄를 벗어버릴 수 있었다. 여성의 이미지를 남장여자라는 캐릭터 속에서 중화시켜버리자 비로소 문근영의 연기자로서의 면모가 드러났고, 그것은 대중들의 호평으로 이어졌다. 극중 신윤복이 당대 사회에 갇힌 새로써 당당히 새장을 빠져 날아간 것처럼, 문근영은 이 작품을 통해 국민여동생이라는 새장을 벗어나 연기의 세계로 훨훨 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장태유 PD의 성과, 사극에서 더 빛난 연출
'쩐의 전쟁'을 연출했던 장태유 PD의 연출 스타일은 꼼꼼하고 빡빡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이 완벽주의자의 연출에 걸리면 배우들은 죽어난다는 곡소리를 하면서도 그 완벽한 결과물에 환호성을 지른다고 한다. '바람의 화원'으로 첫 사극 연출에 도전한 장태유 PD는 특유의 꼼꼼함으로 군더더기 없는 영상을 선보였다.

게다가 실험적일 수 있는 그림 속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풀어내는 연출은 오래된 시간 속에 박제된 옛 그림을 눈앞에 생생하게 살려놓는 특별함을 선사했다. 그림 대결과 감동(감상)을 통해 설명되는 그림의 묘미는 사극 외적으로도 충분한 미술적인 즐거움을 제공해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현대물과 사극을 오가는 그 연출력을 인정받음으로써 장태유 PD는 앞으로 좀 더 폭넓은 연출의 세계로 뛰어들 수 있는 가능성을 보였다.

박신양의 사극 도전, 비슷한 캐릭터 이미지가 발목 잡아
아쉬운 점은 박신양의 사극 도전이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그가 사극 연기에 실패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사극 속에서도 그는 여전히 훌륭한 연기력을 보였지만, 그 김홍도라는 캐릭터의 해석에 있어서 지나치게 기존 캐릭터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보였다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즉 김홍도에게서 '쩐의 전쟁'의 금나라 이미지가 반복되어 보이자 그 역할은 박신양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처럼 보였다.

물론 후반부에 와서는 어느 정도 역할에 적응이 된 모습을 보였지만 어쨌든 박신양에게 이 사극은 이제는 새로운 캐릭터에 대한 도전의 필요성을 알게 해주었다. 자칫 하나의 패턴으로 고정된 이미지는 아무리 좋은 연기력이라 해도 대중들에게 외면 받게 된다는 점을 숙지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여러모로 박신양에게는 연기자로서 숙제로 남은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바람의 화원'은 여러 모로 새로운 소재와 새로운 연출, 연기가 어우러져 독특한 사극의 한 세계를 열어놓았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말할 수 있다. 그 도전이 아름다웠고 그 성과 또한 의미가 있었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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