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박은빈의 부모가 그려낼 장애에 대한 두 시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고래사냥법 중 가장 유명한 건 새끼부터 죽이기야. 연약한 새끼에게 작살을 던져 새끼가 고통스러워하며 주위를 맴돌면 어미는 절대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대. 아파하는 새끼를 버리지 못하는 거야. 그 때 최종 표적인 어미를 향해 두 번째 작살을 던지는 거지. 고래들은 지능이 높아. 새끼를 버리지 않으면 자기도 죽는다는 걸 알았을 거야. 그래도 끝까지 버리지 않아. 만약 내가 고래였다면 엄마도 날 안 버렸을까?”

 

ENA 수목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우영우(박은빈)는 함께 탈북자의 폭행상해 사건을 맡은 동료 변호사 최수연(하윤경)에게 엄마 고래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남다른 고래에 대한 애정을 보이고 그래서 업무 중에도 불쑥 고래 이야기가 튀어나오곤 하는 우영우. 이 드라마에서 고래는 여러 가지 상징으로 사용된다. 바다에서 살지만 포유류라는 다소 이질적인 존재라는 점에서 자폐스펙트럼을 갖고 있지만 사회에 나와 살아가는 우영우를 상징하기도 하고, 수족관에 갇힌 돌고래 이야기를 통해 여전히 사회에서의 편견에 갇혀 있는 우영우를 말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우영우가 엄마 고래 이야기를 꺼내놓은 것처럼, 이 드라마에서 고래는 ‘위대한 엄마’의 상징이기도 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새끼를 버리지 않는 엄마. 하지만 자신에게는 없는 그런 엄마. 우영우가 맡은 폭행 상해 사건의 가해자인 탈북여성은 또 다른 엄마 고래 같은 존재다. 빌려준 돈을 받기 위해 어쩌다 사건에 휘말리게 됐지만, 이 엄마는 아이 때문에 5년 간이나 도망자 생활을 한다. 아이가 너무 어려 엄마를 기억하지 못할까봐 그렇게 5년 간 지낸 후, 죗값을 받기 위해 자수한다. 처벌을 받는 두려움보다 아이를 잃을까 싶은 두려움이 더 큰 모성이다. 

 

그런데 우영우의 엄마 고래 이야기는 탈북여성에 대한 이야기에서 꺼내진 것이지만, 실상은 자신에 대한 이야기다. “만약 내가 고래였다면 엄마도 날 안 버렸을까?”라는 말이 아프게 다가오는 건 그래서다. 우영우는 버려졌다. 그런데 그는 왜 엄마로부터 버려졌을까. 이 부분은 드라마가 차후에 조금씩 사연을 풀어놓을 것이지만, 어쩌면 이 드라마가 말하려는 장애에 대한 시선과 이를 갖고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 그리고 이를 도외시하고 있는 사회의 엇나간 편견 같은 것들을 담은 것일 수 있다고 생각된다. 

 

그 단서는 정반대의 위치에 서 있는 우영우의 아버지 우광호(전배수)를 통해 찾아진다. 엄마는 버렸지만 아버지는 많은 걸 희생해가며 우영우를 끝까지 지키고 키웠다. 재혼을 한다거나 하는, 자신을 위한 삶보다 딸을 위한 삶을 선택하고 그의 재능을 알아내고 관심 있어 하는 법 공부를 시켜 변호사가 되는 길을 열어 주었다. 한 사람의 희생이 장애를 가진 이의 가능성을 살려냈다. 

 

그런데 엄마는 왜 버렸을까. 아직 그 엄마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았지만, 드라마의 스토리텔링 구조로 봤을 때 우영우의 엄마는 법무법인 한바다와 라이벌 관계에 있는 태산의 대표 태수미(진경)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건 아직까지 추정이지만 이런 추론은 라이벌 관계를 가진 두 회사의 이름으로도 어느 정도 유추된다. 우영우라는 고래를 받아준 건 ‘한바다’다. 태수미가 대표로 있는 회사 ‘태산’은 고래가 살 수 없는 곳이다. 위로만 올라가려 해서 더 이상 고래를 받아줄 수 없는 곳. 

 

만일 태수미가 우영우의 엄마이고, 남다른 야망으로 더 높이 오르기 위해 장애를 가진 아이를 버렸다면 그 상황은 장애에 대해 사회가 갖는 편견이 드리워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성공을 위해 앞으로만 달려가는 사회는 장애를 가진 소수자들을 마치 없는 것처럼 치부하지 않던가. 

 

모성으로 표현됐지만 사실 이건 좀 더 확장해서 장애를 사회가 어떻게 수용하고 끌어안는가에 대한 화두처럼 보인다. 단순하게 보면 장애가 있어도 끝까지 옆에서 지켜준 우광호와 끝내 버린 엄마를 대척점으로 세워 어떤 선택이 우리 사회가 좀 더 나은 길로 갈 것인가를 묻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한바다의 정명석(강기영), 한선영(백지원), 이준호(강태오), 최수연(하윤경)처럼 장애가 있어도 함께 살아가는 길을 찾는 사람이 될 것인가 아니면 아이를 버리고 떠나버린 우영우의 엄마 같은 사람이 될 것인가. 

 

우영우가 꺼낸 엄마 고래 이야기가 특히 슬픈 건 그래서다. 그는 그래도 몇 프로 안 되는 서번트 증후군이고, 그래서 사회에 어느 정도 적응해 잘 살아내고 있는 인물이며 나아가 이건 드라마로서 어느 정도 판타지가 더해진 인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려진 존재’라는 상처가 거기서도 느껴지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은 그래서 슬프면서도 이 인물을 보듬고 싶고 세상 밖으로 당당히 나오게 하고픈 마음이 일었을 게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누군가에 의해 지워져온 그 삶이 “저는 우영우입니다. 앞으로 읽어도 뒤로 읽어도...”라고 당당히 소개될 수 있게.(사진:ENA)

부끄럽습니다... 박은빈의 한 마디 그 어떤 일침보다 아프다(‘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미친 상승세다.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5회 시청률이 9.1%(닐슨 코리아)를 기록했다. 첫 회 0.9%로 시작했던 드라마가 5회 만에 9%대라니. 이런 흐름이라면 10%도 돌파도 시간문제다. 현실과 판타지를 잘 엮어 장애를 바라보는 균형 잡힌 시선과 희망 섞인 비전을 전하고 있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그래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고 있는 건 고개가 끄덕여지는 일이지만, 이 정도면 신드롬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드라마의 무엇이 대중들의 정서를 건드린 걸까. 

 

그 단서는 5회에서 다뤄진 ‘법의 딜레마’라는 소재에서 찾아진다. 이화와 금강 두 ATM 회사가 저작권 문제로 소송을 벌이는 상황. 이화는 자신들의 ATM 기술을 독자 개발한 것으로 금강이 이를 무단으로 도용했다며 판매 금지 가처분 소송을 냈다. 이화를 변호를 맡게 된 우영우(박은빈)는 이 사건을 함께 맡은 권민우(주종혁)의 도발로 점점 경쟁심을 갖게 되고 어떻게든 이겨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려 한다. 급기야 이화가 그 기술을 독자 개발한 것이 아니라는 진실을 알아 차렸지만 승소를 위해 참고인을 연습까지 시켜 법정에 세운다. 

 

결국 가처분 소송에서 이화가 이기고 이로써 금강은 은행 거래처 계약이 대거 이화로 넘어가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다. 하지만 금강에서 가까스로 찾아낸 증거로 인해, 소송은 뒤집어진다. 이화의 기술이 독자적인 게 아니라, 미국에서 소개된 오픈 소스를 가져와 만든 거라는 진실이 밝혀진다. 결국 진실은 밝혀졌고 소송도 뒤집어졌지만 이화의 대표는 별로 놀라지도 않고 오히려 득의만만한 표정이다. 그 사이 이미 계약을 다 했다는 것. 우영우는 자신이 한 짓이 승소를 위해 진실을 왜곡하고 한 회사를 나락에 빠뜨렸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결국 저는 이화 ATM이 법을 이용하도록 도와준 셈입니다. 실용신안권 출원도 가처분 신청도 모두 계약을 독접하기 위한 거짓된 행동이었는데 저는 그 행동을 말리지 못하고 오히려 도왔습니다. 게다가 저는 그걸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영우는 이화 ATM을 함께 방문했던 이준호(강태오)에게 이렇게 말하면서 그에게도 묻는다. “이화 ATM에 방문했을 때 이준호씨는 황두용 부장님과 배성철 팀장님이 진실을 말한다고 생각했습니까?” 

 

그 질문에 이준호도 선뜻 답을 못한다. 실제로 당시 팀장은 잔뜩 긴장해 있었고 손으로 허벅지를 쓸어내리면서 코끝을 긁는 등 드러나게 거짓말을 하는 모습이었다. 우영우는 아프지만 자신의 잘못을 있는 그대로 꺼내놓는다. “결국 저는 진실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저 자신을 속였던 겁니다. 이기고 싶어서요.” 그러면서 울먹이며 말한다. “부끄럽습니다.”

 

이 장면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그리고 있는 세계의 특징을 잘 드러낸다. 즉 누구든 잘못을 저지를 수 있지만 중요한 건 그 다음이라는 것. 이화 ATM이 한바다 로펌의 의뢰인이고 그래서 직업인으로서 의뢰인이 이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당연하다 치부하는 권민우는 자신이 한 행동들을 합리화한다. “사실이라고 생각했든 안 했든 의뢰인을 믿기로 했으면 끝까지 믿어요. 그게 변호사가 의뢰인한테 지켜야 되는 예의잖아요.”

 

이건 직업인의 딜레마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합리화로 모든 게 용서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래서 이 로펌의 변호사들이 하는 일은 순간 ‘이상하게’ 느껴진다. 법은 정의와 진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 믿고 있지만, 로펌이 의뢰인을 통해 하게 되는 법 활용은 저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 되기도 한다. 우영우의 질문과 자성은 그래서 결코 작지 않은 울림을 만든다. 누가 이상한가? 저들이 이상한가 아니면 잘못한 일을 깨닫고 후회하고 반성하는 우영우가 이상한가.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변호사가 주인공이고 그래서 자폐라는 장애에 대한 결코 얕지 않은 무게감으로 접근하고 있지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지목하고 있는 건 그래서 오히려 장애에 빠져버린 세상이다. 진실이 통하지 않고 권모술수가 통하기도 하며 진실이 밝혀져도 거짓을 말한 자들이 이익을 보는 우리 사회의 장애. 게다가 가장 큰 장애는 이런 잘못을 저지르고도 ‘부끄럽게 조차’ 느끼지 않는 사회의 불감증이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지금의 대중들의 정서를 건드린 부분은 아마도 이것이 아닐까. 우리는 의식하지 않으면 그것이 무슨 잘못이 되는가도 모른 채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스스로를 돌아보고 그것이 잘못이었다면 그걸 최소한 부끄럽게 여기고 그래서 반성함으로써 바꿔나가려는 노력을 하는 것. 그것만이 이상한 사회를 되돌릴 수 있는 길이라고 드라마는 말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첫 회에 우영우가 한바다 로펌에 처음 왔을 때 상사인 정명석(강기영) 변호사가 툭 던져 놓은 대사에 이미 이 작품이 가진 이러한 시각이 담겨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아, 저기 그, 병원 가야 되지? 직원 붙여 줄 테니까 같이 갔다 와. 외부에서 피고인 피해자 만나는 거 어려워. 그냥 보통 변호사들한테도 어려운 일이야.” 그래도 우영우를 생각해준답시고 이렇게 별 생각 없이 툭 던진 말을 곰곰이 생각하던 정명석은 금세 그게 어딘가 잘못됐다는 걸 알고는 이렇게 말한다. “하, 미안해요. 그냥 보통 변호사라는 말은 좀 실례인 거 같다.” 누구나 저도 모르는 사이 잘못을 할 수 있다. 그걸 바꿔나갈 수 있는가가 중요할 뿐.(사진: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극악한 법정 속, 선한 변호사 박은빈의 존재감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모두 진술에 앞서 양해 말씀 드립니다. 저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가지고 있어 여, 여러분이 보시기에 어, 말이 어눌하고 행동이 어색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법을 사랑하고 피고인을 존중하는 마음만은 여느 변호사와 다르지 않습니다. 변호인으로서 피고인을 도와 음.. 사건의 진실을 밝힐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NA 채널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처음으로 법정에 선 변호사 우영우(박은빈)는 어색하고 어눌하지만 또박또박 자신의 의지를 밝힌다. 자폐 장애를 가진 변호사.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제목처럼 이 특별한 인물이 주인공이자 그 자체로 메시지인 드라마다. 자신을 소개할 때,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라며 기러기, 토마토, 스위스, 인도인, 별똥별을 이야기하고, 공적인 장소에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고래 이야기를 줄줄이 늘어놓는 이상한 변호사. 

 

과연 이런 장애를 갖고도 법정에서 누군가를 위해 변호를 할 수 있을까 싶지만, 바로 그런 것이 우리의 편견이라는 걸 기분 좋게 깨주는 그런 인물이다. 당연히 이 인물이 법정에서 혹은 만만찮은 로펌 생활에서 마주하는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는 과정을 시청자들은 응원하는 마음으로 보게 된다. 

 

‘이상하다’는 표현은 ‘특별하다’는 긍정적 의미도 있지만 ‘정상이 아니다’라는 부정적인 의미도 들어있다. 보통과 다르다는 것이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고, 그래서 편견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현실을 우영우 또한 잘 안다. 그래서 첫 사건으로 맡은 노부부 폭행사건에서 언변이 좋지 못한 우영우가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게 낫지 않겠냐는 상사의 말에 그는 이렇게 말한다. “피고인의 사정이 딱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핵심 아닌가요? 사정이 딱해 보이기로는 장애만 한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갖고 있고요.”

 

하지만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우영우가 변호를 해가는 과정들을 보면 다른 변호사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는 그의 남다른 시선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화가 나 다리미를 들어 남편의 머리를 내리친 할머니가 ‘살인 미수’ 혐의로 몰리게 된 사건. 모두가 다리미의 그 우악스러운 이미지에 경도되어 할아버지의 뇌출혈이 다리미에 맞아서라고만 생각할 때 우영우는 그 원인이 다리미가 아닌 남편의 지병 때문이었다는 진실을 들여다본다.

 

우영우의 첫 번째 사건으로 다룬 다리미 폭행 에피소드는 겉으로 드러난 어떤 이미지와 편견에 사로잡혀 제대로 진실을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 현실을 에둘러 담아낸다. 그리고 그건 다름 아닌 우영우라는 이상한 변호사가 이 드라마를 통해 그 존재 자체로 전하려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우영우는 자폐를 갖고 있어 엉뚱하게 보이고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른바 ‘정상’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 역시 봐야 할 것을 보지 못하는 ‘편견’이라는 ‘장애’를 갖고 있다고 드라마가 에둘러 말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사건으로 등장하는 에피소드도 우영우의 이런 캐릭터와 메시지를 잘 드러낸다. 신부의 드레스가 벗겨지는 바람에 파혼의 위기에 처한 신부의 아버지가 예식장을 상대로 거액의 위자료 소송을 하려 하고, 이를 맡게 된 우영우가 위자료로는 도무지 받아낼 수 없는 거액 대신 결혼을 전제로 물려주기로 한 땅을 받지 못하게 된 손해 배상금으로 청구하는 대목이 그렇다. 물론 우영우는 의뢰인이 진정 원하는 것이 따로 있다는 것도 간파하지만, 이런 식으로 통상적인 관점을 뛰어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함으로써 변호에 있어 우위를 가져간다. 

 

이처럼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우영우라는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편견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변호사가 오히려 편견에 빠져 진실을 보지 못하는 이들을 꼬집는 드라마다. 우영우라는 ‘선한’ 인물이 주인공이자 메시지가 되고 있어서인지, 이 법정드라마는 최근 쏟아져 나오는 극악한 사건들과 악마 같은 인물들이 피 튀기며 대적하곤 하는 여타의 법정물들과 사뭇 다른 매력을 드러낸다. 그건 선한 의지가 주는 기분 좋은 감동이다. 

 

최근의 법정드라마는 변호인들마저 승소를 위해 ‘악한’ 선택도 마다하지 않는 비정함을 드러낸다. 그만큼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고, 악을 이기기 위해서는 악만큼 치열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래서 얻는 정의와 공적으로 포장된 사적 복수가 우리에게 남기는 여운은 어딘지 찜찜하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우리의 마음을 파고드는 것은 바로 이러한 찜찜함을 날려주는 ‘선한 의지’의 변호사라는 캐릭터를 세워서다. 물론 자폐라는 장애를 갖고 있어 오히려 편견 뒤에 숨겨진 진실을 본다는 이 인물의 설정은 여전한 현실의 조악함을 드러내는 것이지만, 그래서 더더욱 이 인물에 빠져든다. 

 

박은빈은 한 마디로 연기에 물이 올랐다. <청춘시대> 송지원이라는 인물을 통해 보이시한 매력을 드러냈던 그는 <스토브리그> 이세영의 씩씩함과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채송아의 순수함과 수줍음을 오가더니 <연모>의 이휘로 사극은 물론이고 남장여자라는 어려운 역할을 소화해내더니 이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로 자폐장애 변호사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연기해내고 있다. 그런 점에서 박은빈은 이 작품 속 우영우를 닮았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닌’ 그런 반전의 면면들을 보여주고 있다는 의미에서.(사진:ENA채널)

시청자 홀리는 ‘연모’, 말 안 되는 데 박은빈, 로운에 빠져든다

연모

KBS 월화드라마 <연모>는 이상한 드라마다. 말이 안 되는 걸 뻔히 알면서도, 또 이 남장여자 콘셉트의 드라마가 어떤 꼬인 관계를 보여줄 걸 어느 정도 짐작하면서도 빠져든다. 정지운(로운)이 달밤에 이휘를 찾아와 자신의 진심을 고백하는 장면은, 사실상 정지운의 입장에서 보면 남자인 이휘(박은빈)에게 일종의 커밍아웃을 하는 것이지만 이상하게 가슴을 설레게 만든다. 

 

“신하의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충심인 줄 알았으나 연심이었습니다. 연모합니다. 저하. 사내이신 저하를 이 나라의 주군이신 저하를 제가 연모합니다.” 물론 이 대사는 <커피 프린스 1호점>에서 최한결(공유)이 남장여자 고은찬(윤은혜)에게 했던 그 대사를 떠올리게 한다. “ 너 좋아해. 네가 남자건 외계인이건 이제 상관 안해. 정리하는 거 힘들어서 못해먹겠으니까. 가보자 갈 때까지. 가보자.”

 

당황스럽게도 자신이 동성을 좋아한다는 그 사실을 애써 부인했지만 도저히 그 마음을 숨길 수 없어 내놓는 이들의 커밍아웃에는, 그만큼 그들 앞에 놓여진 어떠한 난관들도 좋아하는 마음을 이길 수 없다는 그 진심이 묻어남으로써 보는 이들은 더욱 절절하게 만든다. 이휘는 정지운의 그 마음을 읽는다. 얼마나 깊이 자신을 연모하는 지를. 그래서 눈빛이 흔들린다. 세자로서 정체를 드러낼 수 없지만 그 조차 뛰어넘어 마음을 전하는 이의 그 절실함이 너무나 깊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연모>는 <커피 프린스 1호점> 같은 현대가 아닌 조선시대이고, 정지운이 커밍아웃 하는 대상은 다름 아닌 왕세자다. 그러니 커밍아웃이 야기할 난관은 더욱 커진다. <연모>의 고백이 훨씬 더 시청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이유다. 하지만 현실을 생각해보면 그러한 조선시대에 세자에게 그런 말을 건네거나, 그로 인해 진짜로 두 사람의 관계가 진전되거나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휘 또한 정지운에 대한 연심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이들이 하는 선택들은 이 멜로를 더욱 애틋하게 만든다. 이휘는 정지운(로운)을 찾아와 즐거운 하루를 보낸 후, 비를 피한 자리에서 이휘는 자신이 하고픈 삶과 살아가야만 하는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처럼 웃고 울며 살고 싶지만, 자신은 결코 그렇게 살 수 없는 운명이라고. 그러면서 정지운에게 지금의 사서직에서 다른 직으로 옮기라고 권한다. 자신은 세자빈 간택을 받아 들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그 말을 전하고 비를 맞으며 돌아오는 길 빗물과 눈물이 범벅이 되어 있는 이휘에게 이현(남윤수)이 다가와 우선을 씌워준다. 그는 이휘가 여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숨기며 옆에서 연심을 숨긴 채 바라만 보던 인물이다. 그는 이휘에게 “힘든 일이 있었나”보라고 말하며 자신도 오늘이 그런 날이라 말한다. 엇갈린 관계지만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생각해보면 <연모>의 이런 장면들이나 상황, 대사들은 조선사회에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다. 세자에게 신하가 임금으로서가 아닌 사랑의 대상으로서 연모한다 말하고, 세자 역시 그런 신하와 즐거운 하루를 추억으로 남긴 채 헤어지며 눈물을 흘린다. 술기운을 빌어 신하가 세자에게 볼 뽀뽀를 하고, 세자는 술에 취해 잠든 신하에게 입맞춤을 한다... 이런 게 어찌 가능한 이야기겠나.

 

하지만 이런 불가능도 가능한 일처럼 만들어내고 심지어 그들의 감정에 몰입해 똑같이 울컥하는 마음까지 먹게 만든다는 건, 스토리가 가진 강력한 힘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그럴 듯하게 믿게 만드는 그 지점에서 더 강력한 판타지가 생겨나기도 하는 법이다. <연모>는 그런 점에서 시청자들을 홀리는 드라마다. 유려하게 꾸며진 이야기의 매력과 무엇보다 박은빈과 로운의 매력이 더해져 어느새 시청자들을 그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빠뜨리니 말이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저런 게 말이 돼 하면서도 자꾸만 채널을 고정해 놓고 빨려 들어간다. 이들의 애틋하고 절절한 멜로 속으로.(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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