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가 클래식을 통해 담아낸 청춘의 꿈과 사랑

 

"밖에 비가 오더라고요. 송아씨 악기 메고 있었는데. 그래서 송아씨가 혹시 우산이 없으면 밖에 못나가고 있을까봐. 그래서 우산을 가지고 내려갔어요. 송아씨가 못 나가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우산을 줬어요. 쓰고 가라고. 제가 매일 우산 갖고 다니겠다고 송아씨는 비 걱정 말라고 했었는데. 제가 송아씨를 힘들게 했어요. 송아씨가 행복하지 않대요. 저 때문에."

 

SBS 월화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박준영(김민재)은 채송아(박은빈)와 헤어진 날 비가 온다는 사실을 알고는 뛰어 내려가 그녀의 손에 우산을 쥐어줬다. 비가 와도 우산을 챙겨온 박준영 덕에 함께 우산 속에서 행복했던 두 사람이었다. 하지만 더 거세게 쏟아져 내린 현실의 빗속에서 채송아는 함께 버티지 못할 만큼 버거워졌다. 박준영을 사랑하지만 그와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 현실은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버틸 수 없던 채송아는 아프게 이별을 고했다.

 

채송아에게 박준영에 대한 사랑은 마치 뒤늦게 좋아해 뛰어들게 된 바이올린과 같았다. 그는 박준영에게 자신의 짝사랑이 브람스를 닮았다고 했다. 결국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면서도 애쓰는 사랑. 사랑도 꿈도 그는 너무 늦은 현실을 절감했다. 그래서 박준영과의 이별은 동시에 바이올린과의 이별을 뜻하기도 했다.

 

가난해서, 늘 재단의 도움을 받았고 그래서 그들의 눈치를 봐야했던 박준영은 그런 환경 속에서 자기 속내를 이야기하지 않는 사람이 됐다. 떠나는 채송아를 붙잡고 그의 마음을 전하기보다는 떠나는 길에 비를 맞을까봐 우산을 챙겨주는 그런 사람. 그런 그도 채송아와의 이별은 꾹꾹 눌러두고 숨겨온 감정을 더 이상 숨길 수 없을 만큼 힘겹게 만든다.

 

늘 준영에게 미안한 감정을 가진 엄마가 찾아와 얼굴이 많이 상한 것 같다며 무슨 일 있냐고 물어도 신경 쓰지 말라며 괜찮다며 나가려던 준영은 "밤에 비올 지도 모른다"며 우산 챙겨가라는 엄마의 말에 무너져 내린다. 엄마의 품에 안겨 아이처럼 울며 "너무 힘들다"고 말하는 준영은 그 아픔 속에서 드디어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그래서 그는 고인이 된 나문숙(예수정)의 상가에서 만난 채송아가 바이올린을 그만두겠다며 졸업연주회가 마지막이라는 말에 선뜻 자신이 반주를 하겠다고 나선다.

 

그리고 그 곡은 박준영이 그토록 싫어했던 브람스의 'F-A-E 소나타'다. 그것은 '자유롭지만 고독하게'란 뜻이란다. 늘 누군가를 짝사랑하듯 살아왔고 그렇게 연주해옴으로써 자기 마음 가는 대로 살아보지 못한 박준영에게 브람스와 그의 곡은 애증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연주를 피하고 있었지만 그 금기를 넘어서게 해준 건 채송아에 대한 사랑이었다. 함께 졸업연주회에서 피아노와 바이올린의 선율이 만들어낸 브람스의 곡은 그래서 단순한 연주의 차원을 넘어 헤어졌어도 여전히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과 동시에 '좋아하는 마음을 따라가지 못하던' 이들의 꿈이 깃들었다.

 

연주가 끝난 후 채송아는 박준영에 대한 마음을 에둘러 표현하며 그가 좀 더 자유로워지고 또 행복하기를 기원한다. "트로이메라이요 생각을 해봤어요. 왜 교수님이 준영씨의 트로이메라이를 훔쳤을까. 준영씨가 그날 그 피아노로 여러 곡을 쳤을 텐데 왜 교수님은 트로이메라이를 골랐을까. 어쩌면요. 준영씨가 그날 쳤던 곡 중에서 교수님의 마음에 가장 와 닿았던 연주가 트로이메라이 아니었을까요? 준영씨의 트로이메라이는 준영씨 마음을 따라간 연주였으니까요.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준영씨가 준영씨 마음을 따라가는 그런 연주를 했으면 좋겠어요. 오늘 우리 연주한 곡요. F-A-E 소나타. 자유롭지만 고독하게란 뜻이잖아요 하지만 나는 준영씨가 자유롭고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채송아의 그 말은 박준영이 앞으로 피아노를 행복하게 연주했으면 하는 마음을 담은 것이었지만 동시에 그가 좀 더 자유롭게 마음가는대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기도 했다. 박준영은 그래서 드디어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다. "사랑해요. 사랑해요. 내 마음을 따라 가라고 했었죠. 그래서 말하는 거예요. 내가 이런 말할 자격 없는 것도 알고, 이렇게 말하면 송아씨가 힘들어질 수도 있다는 걸 아는데, 내가 너무 힘들어서 지금 이렇게 말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서 말해요. 미안해요. 하지만 지금은 나도 내 생각만 하고 싶어요. 사랑해요."

 

이들은 과연 다시금 함께 우산을 쓰고 걸어갈 수 있을까. 모질고 냉정한 현실의 폭우 속에서도 함께 우산을 쓴 채 꿈과 사랑을 향해 자유롭지만 행복하게 걸어 나갈 수 있을까. 그건 쉽지 않은 일일 게다. 자유롭지만 행복하길 원했어도 결과적으로는 고독한 삶을 살았던 브람스처럼. 하지만 내리던 비가 눈이 되어 흩날리듯 시간이 흐르고 난 어느 시점에 돌아보면 그 아팠던 시절들도 행복한 추억이 될지도.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클래식을 소재로 한 멜로드라마지만 그 안에 결코 가볍지 않은 현실의 무게를 얹어 뒀다. 꿈도 사랑도 쉽게 허락하지 않는 현실의 무게. 아마도 그래서 채송아와 박준영의 안타까운 사랑과 꿈의 이야기에 시청자들은 더더욱 응원의 마음을 가졌을 게다. 이 땅의 많은 청춘들이 현실의 무게 때문에 꿈꾸던 것들이 꺾이지 않기를 바라며.(사진:SBS)

 

'브람스', 아름다운 클래식? 추한 적폐들과 힘겨운 청춘들

 

어째서 이 청춘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클래식을 더 이상 좋아할 수 없게 되었을까. SBS 월화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아름다운 피아노와 바이올린, 첼로의 선율이 흐르는 드라마지만, 그걸 연주하는 청춘들을 둘러싼 현실들은 보기 불편할 정도다. 교수라고 부르기조차 꺼려지는 이들은 선생이 아니라 적폐다. 학생들 위에 군림해 실력도 없으면서 젊은 청춘들의 열정과 꿈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적폐들.

 

은근히 대학원 제자 운운하면서 사실은 체임버를 꾸리는 일을 시켜 먹는 이수경(백지원) 교수 때문에 채송아(박은빈)는 갖은 잔심부름까지 마다치 않았다. 대전까지 가서 중고거래로 교수의 브로치까지 사다줘야 하는 일도 꾹 눌러 참으며 감수했다. 단원들에게 티켓을 판매하는 일에도 앞장서고, 이수경 교수가 원치 않는 단원을 잘라내는 일도 대신했다. 하지만 당연히 체임버 단원의 일원이라 생각했던 채송아가 사실은 그저 '총무'였다는 걸 직접 이수경 교수에게 듣는 순간 그는 깨달았다. 이건 아니라는 걸. 결국 그는 그 일을 그만 하겠다고 말했고 이수경 교수는 그런 선택이 채송아에게는 대단한 실수가 된다고 으름장을 논다.

 

이정경(박지현) 역시 송정희(길해연) 교수의 제자 양지원(고소현)의 레슨을 도와줬다는 사실 때문에 버려졌다. 송정희 교수와 알력이 있던 이수경 교수가 그 사실을 폭로했고, 결국 분노한 송정희 교수는 이정경에게 대놓고 '실패자'라는 막말과 함께 그를 버렸다. 이런 사정은 박준영(김민재)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그를 지도하는 유태진(주석태) 교수가 그의 연주를 자신의 이름으로 온라인에 올려놓고 있었던 것.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클래식을 소재로 이를 은유해 멜로로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지만, 갈수록 이 클래식업계의 '불편한 현실'을 끄집어내고 있다. 이렇게 된 건 이 아름다운 클래식을 선택한 청춘들이 어쩌다 그 자체를 좋아하지 못하고 또 좋아할 수 없게 되었는가를 담으면서다. 채송아는 뒤늦게 바이올린을 시작한 탓에 늘 꼴찌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니며 무시당하고, 박준영은 가난해 재단의 도움을 음으로 양으로 받으면서 피아노 연주가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의무가 되어버린다. 부유하게 자란 이정경 역시 사고로 사망한 엄마의 그늘 아래서 바이올린 연주가 더 이상 즐거울 수 없었다. 어려서는 천재 소리를 들었지만 갈수록 평범해진 자신에게 가해지는 외부의 시선들 앞에서.

 

클래식이라는 소재를 통한 평범한 청춘 멜로로 여겼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이제 사회극으로의 면모까지를 더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클래식이라는 우리가 겉으로 보기에 아름답게만 보이던 세계가 사실은 경쟁사회와 스펙사회 그리고 부조리한 조직문화 같은 적폐적 현실 속에서 결코 아름답게만 볼 수 없다는 걸 이 드라마가 드러내고 있어서다.

 

물론 이런 사회극적 요소들은 드라마를 그저 달달하고 설레는 마음을 즐길 수 없게 만들지만 그렇다고 이 드라마가 애초부터 그리려던 청춘멜로와 엇박자를 낸다고 보긴 어렵다. 결국 이 작품이 하려는 이야기는 '꿈'과 '사랑'을 추구하는데 있어서 '좋아하는 마음'으로 자유롭게 할 수는 없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고 있어서다. 꿈에 대한 이야기가 클래식의 현실을 가져와 사회극적인 분위기를 만든다면,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빈부와 스펙의 현실이 드리워진 청춘멜로의 풍경을 그려낸다.

 

결국 무언가(누군가)를 좋아하고 그래서 그걸 하면서 행복을 느끼는 일이 어째서 청춘들에게 이토록 어려워졌는가를 드라마는 꼬집고 있다. 채송아와 박준영 그리고 한현호와 이정경의 음악과 사랑의 변주가 절절하고 아프게 다가오는 건 이 순수한 청춘들 앞에 놓인 암담한 현실 때문이다.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고 그 현실을 만들어내는 적폐들이 있어 이 청춘들이 아프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이 청춘들의 현실을 직시함으로써 그저 달달한 청춘 멜로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사진:SBS)

'브람스', 박은빈이 절감하는 시간의 장벽을 넘는 법

 

"정경씨랑 사이에 그러니까 그 시간들 사이에 제가 들어갈 자리가 있어요?" SBS 월화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채송아(박은빈)는 박준영(김민재)과 이정경(박지현)이 함께 연주하는 모습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한다. 채송아는 박준영을 사랑하지만 박준영과 이정경 사이에 오래도록 함께 해왔던 시간의 장벽을 절감한다.

 

그것은 채송아에게 뒤늦게 시작한 바이올린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졸업 후에도 계속 바이올린을 연주할 거라는 채송아에게 박성재(최대훈)는 아픈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던진다. 아주 어려서부터 바이올린을 시작한 다른 친구들의 그 시간을 도저히 채송아는 따라잡을 수 없을 거라고.

 

함께 한 시간은 실제로 헤어진 연인인 이정경과 한현호(김성철)에게도 여전히 오래도록 남아 서로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이정경과 연인이었다는 사실 때문에 한현호는 이수경(백지원) 교수의 채임버 단원에서 제외된다. 이수경 교수가 이정경을 데리고 있는 송정희(길해연) 교수와 알력이 있어서다.

 

이정경과 한현호는 헤어졌지만, 친구가 없어 홀로 술을 마시러 갔다는 이정경이 어느 술집을 갔는지도 정확히 알고 찾아온다. 그리고 술에 취해 쓰러진 이정경을 호텔방에 눕혀주고 방을 나선다. 헤어졌지만 그들이 함께 했던 시간들은 그들 사이에 여전히 흐른다.

 

채송아는 박준영에게 연습하던 곡을 바꿀까 고민한다고 말한다. 잘 할 것 같았는데 해낼 수 없는 곡이란 생각에 자신이 없어져서란다. 박준영은 자신도 그런 적이 있었지만 바꿔도 나아지지 않더라는 얘기를 꺼낸다. 놓아버린 곡에 대한 목마름과 괴로움과 그리움이 남는다고, 채송아는 그 말에서 박준영과 이정경 사이에 놓인 시간을 떠올린다. 바꾸려 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는 박준영의 말이 그래서 채송아에게는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늦게 시작했다고, 그만한 시간을 함께 하지 못했다고 꿈도 사랑도 늦었다 말하는 현실 앞에서 채송아는 우울하다. 그런 그에게 이수경 교수는 무리한 부탁까지 한다. 사고 싶은 물건을 중고거래로 사려는데 대전까지 직접 가서 물건을 받아오라는 것. 하지만 우울하게 대전까지 가는 길은 박준영이 함께 하면서 즐거운 시간으로 바뀐다.

 

이정경과 함께 할 연주 시간을 빼내 채송아와 대전까지 다녀오는 그 함께 한 시간 속에서 박준영과 채송아는 그들만의 시간을 쌓아간다. 그 누구에게도 숨기고 싶었던 것들을 공유한다. 식당에서 일하는 박준영의 엄마를 우연히 만나 그 곳에서 함께 식사를 하고, 채송아는 자신이 대전까지 온 진짜 이유가 이수경 교수의 그런 부탁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꺼낸다. 그 상처에 대한 시간들은 그들이 공유함으로써 위로받는다.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 안에서 서로 기대고 있는 두 사람 사이의 시간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채송아를 통해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늦게 시작해 꿈도 사랑도 채워지지 않는 시간들. 하지만 드라마는 그런 지나간 과거의 시간들보다 앞으로 이들이 꿈꾸고 사랑해갈 시간이 더 소중하다는 걸 두 사람이 함께 보내는 시간을 통해 담아낸다. 늦은 꿈도 사랑도 없다며.(사진:SBS)

 

'브람스', 무례한 세상이어서 김민재의 조심스러움이 이해된다

 

"이정경, 한현호, 이 두 사람과는 피아노 트리오 이제 그만 하죠. 이 두 사람과는 취미로만 하세요. 준여 씨한테 득 될 게 없는 조합입니다. 뭐 다이렉트로 말씀드리자면 준영 씨와 급이 안 맞습니다." 경후재단에서 나와 박준영(김민재)을 매니지먼트하는 기획사의 한국지부를 맡게 된 박성재(최대훈)는 대놓고 박준영에게 그렇게 말한다. 그들이 오랜 친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급'을 이야기한다.

 

SBS 월화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는 세상을 급으로 나누고 성적순으로 세워놓고 이른바 '낮은 급'의 사람들에게 무례한 박성재 같은 이들이 등장한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이 성과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어른들 때문에 고통 받는 건 다름 아닌 청춘들이다.

 

이제는 퇴물에 가깝지만 옛 명성에 기대 그 인맥으로 살아가는 송정희(길해연)나, 채송아(박은빈)에게 대학원 제의를 하며 자신의 조교로 일하게 한 지도교수 이수경(백지원) 그리고 박준영이 쇼팽 콩쿠르에 입상할 때까지 가르쳤던 유태진(주석태) 교수가 그런 어른들이다. 송정희는 대놓고 급을 나누며 채송아를 무시하고, 이수경은 도와주는 척 하면서 채송아를 이용해먹으려고만 한다.

 

유태진은 박준영이 아티스트로서 성장해가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오로지 그를 콩쿠르에서 우승시켜 자신의 입지를 마련하는 것만이 관심일 뿐. "학생 반주 한 번 해줬다고 내가 무슨 어린 애들 반주 전문인 줄 아네. 어이가 없네. 야 너도 너 만난다는 여자애나 뭐 다른 누구와도 반주해주네 뭐 그런 생각 하지도 마. 급 떨어지는 애들 반주 해줘봤자 너도 같이 급 떨어지는 것밖에 안돼." 유태진은 만일 박준영이 채송아의 반주를 해줘 '인생연주'를 하게 된다 해도 그것이 전부 박준영의 '연주빨'이라는 얘기밖에 못 듣는다고 말한다.

 

답답하지만 세상이 그 모양이다. 모든 것을 순위로 나누고 급의 차이를 이야기한다. 좋아해서 하는 음악이 아니라 성과를 내기 위한 음악이다. 그런 현실 속에서 채송아는 힘겨워한다. 오케스트라의 자리 배치도에 맨 꼴찌로 들어가 있는 자신의 이름이 몹시도 걸린다. 그래서 박준영과 만나면서도 그와의 급 차이를 의식하게 된다. "월드클래스 아티스트랑 학교 오케스트라 끝자리에 앉는 사람은 아무래도 급이 안 맞을까요?"

 

하지만 박준영은 그런 거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며 채송아가 그런 일에 마음을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말한다. 하지만 늘 맨 끝자리에 앉던 채송아에게 급의 벽은 높게만 느껴진다. "오케스트라 자리요, 의미 없지 않아요. 너무 큰 의미에요 나한테. 그래서 연연해요. 한 자리만 더 옆이었으면 한 줄만 더 앞이었으면. 지난 4년 내내 그랬어요. 이해 안 되죠? 아마 평생 이해 못할 거예요. 그래서 내가 어쩌면 내가 준영 씨하고 나란히 서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신이 좀 없어져요."

 

채송아의 이런 자격지심에 대해 박준영은 실망하지만, 그를 둘러싸고 있는 무례한 어른들의 면면들은 왜 그가 그렇게까지 주눅이 들었는가를 공감하게 한다. 뒤늦게 바이올린이 좋아졌고 그래서 하던 공부도 접고 새로 시작한 음악의 길이다. 더 오래 음악을 해온 다른 이들을 따라가기는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급을 나눠 무시하고 헛된 꿈이라 싹조차 밟아버리는 게 상식적인 일인가.

 

물론 그런 어른들만 있는 건 아니다. 재단의 최고참 차영인(서정연)은 사람을 있는 그대로 대하는 어른이다. 인턴으로 들어온 채송아에게도 인간적으로 대해주는 인물. 그는 흔들리는 채송아에게 자신을 믿어보라고 조언한다. 한번 마음을 주면 절대 먼저 걷어갈 아이가 아니라며. 그리고 박준영이 왜 그렇게 답답할 정도로 자기 생각을 잘 말하지 않는가의 이유를 들려준다. 그 이유는 그가 늘 자신을 후순위에 두기 때문이란다.

 

이 드라마에서 박준영은 사실 조금 답답한 면이 느껴질 정도로 표현을 안하는 캐릭터다. 하지만 그 이유는 차영인이 말하듯 그가 급 따위는 나누지 않고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해 말 한 마디 하는데도 조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채송아처럼 늘 급으로 나뉘어 차별받아온 인물은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넘길 수가 없다. 그래서 박준영이 이정경(박지현)의 독주에 친구로서 반주를 해주고 싶다는 얘기를 했을 때 채송아는 실망감을 드러낸다. 결국 그 마음을 알게 된 박준영은 채송아가 듣고 싶은 말 "좋아한다"는 말을 하고 키스를 함으로써 진심을 표현한다.

 

음악을 좋아하고, 또 심지어 누군가를 좋아하는데도 급을 나누는 무례한 세상. 채송아와 박준영이 그저 좋아하고 함께 연주를 하는 것조차 커리어에 누가 된다며 막는 그런 세상이다. 그러니 별 의도 없이 던져지는 말 한 마디도 누군가에는 돌맹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박준영의 답답할 정도로 조심스러운 말들은 그래서 이해되는 면이 있다. 그건 이미 무례해진 세상에서 애써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는 그 마음 때문이니까.(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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