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토일드라마 ‘작은 아씨들’, 여성 서사의 정점 보여줄까

작은 아씨들

드라마 <마더>와 영화 <헤어질 결심>의 정서경 작가. <왕이 된 남자>, <빈센조>의 김희원 감독. 그리고 김고은, 남지현, 박지후 세 여성 배우들이 중심 롤을 맡은 작품. tvN 토일드라마 <작은 아씨들>은 대본, 연출, 연기 모두에서 여성 서사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다. 

 

정서경 작가, 김희원 감독의 만남만으로도

tvN 토일드라마 <작은 아씨들>은 그 제작진의 면면만 봐도 어떤 기대감을 갖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최근 박찬욱 감독에게 칸 영화제 감독상을 안겨준 작품 <헤어질 결심>을 쓴 정서경 작가에, <빈센조>로 대중적이면서도 완성도 높은 연출을 보여줬던 김희원 감독의 만남이 그것이다. <친절한 금자씨>,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박쥐>, <아가씨>로 박찬욱 감독과 꾸준히 작업해온 정서경 작가는 영화 시나리오 작가로 더 알려져 있지만, 드라마업계에서도 그가 쓴 <마더>는 일본 원작의 아우라를 지울 만큼 탁월했던 작품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러니 <작은 아씨들>이라는 다소 여성 서사의 고전을 제목으로 가져와 새롭게 우리 식으로 해석한 드라마를 선보인다는 사실만으로도 시청자들의 기대감은 커진다. 이미 <아가씨>나 <헤어질 결심> 같은 작품을 통해서도 보여진 것처럼 그가 가진 남다른 여성 서사에 대한 매력이 이 작품에서는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가 자못 궁금해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여성 감독으로서 최근 몇 년 간 주목받고 있는 김희원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는 사실이 더해지자 기대감은 더 커졌다. <돈꽃> 같은 어찌 보면 막장드라마가 될 수 있었던 작품을 유려한 연출로 그 색깔을 바꿔 놓았던 김희원 감독은 그 후 <왕이 된 남자>를 통해 여성 감독 사극의 시대를 열었다. 섬세한 연출이 돋보이는 여성 감독들이 연출한 사극의 흐름은 <옷소매 붉은 끝동>의 정지인 감독, <붉은 단심>의 유영은 감독으로 이어졌다. 또 김희원 감독은 <빈센조>를 통해 액션 느와르에도 탁월한 연출 능력을 증명했다. 이번 <작은 아씨들>에서도 자매들이 겪게 되는 일련의 충격적인 사건들이 그려지는데, 이 부분에 담겨지는 액션 느와르적인 색깔은 다분히 김희원 감독의 이러한 폭넓은 연출의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여성 작가가 쓰고 여성 감독이 연출한 작품에 타이틀 롤을 맡은 세 자매 역할의 김고은, 남지현, 박지후 여성 배우들이 포진했으니, 이 작품에 ‘본격 여성서사’를 기대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 같다. 실제로 <작은 아씨들>은 첫 2회 분량에 오인주(김고은), 오인경(남지현), 오인혜(박지후) 세 자매가 대결하게 되는 부조리한 세상에 박재상(엄기준) 같은 절대 빌런을 세워 두었다. 이러한 대결구도는 자연스럽게 이 세 자매의 자매애를 통한 여성들의 연대를 드러내면서 저 박재상으로 대변되는 비뚤어진 남성 중심의 권력화되고 부패한 시스템과의 파열음을 예고한다. 정서경 작가가 그리고 있는 <작은 아씨들>의 큰 그림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작은 아씨들> 무슨 이야기일까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의 모티브는 루이자 메이 올컷의 자전적 소설 <작은 아씨들>에서 따왔다. 물론 20세기 들어 중요한 여성 문학으로 재조명되었지만 1800년대에 쓰인 이 작품은 한동안 가부장적인 문학의 전통 속에서 무시되어 왔던 게 사실이다. 여성들의 성장소설에 담겨진 새로운 여성상이나 그들 간의 연대는 지금껏 세대를 뛰어넘는 독자들을 확보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2022년 한국드라마로 재해석된 <작은 아씨들>은 여기에 현재적 의미와 한국적 현실이 담겨졌다. 

 

오키드 건설에서 경리로 일하는 오인주는 회사에서 같은 왕따 취급을 받는 언니 화영(추자현)이 자신에게 20억 현금을 남기고 집에서 자살한 채 발견되자 큰 충격에 빠진다. 그런데 오인주는 화영이 15년간이나 신현민 이사(오정세)와 함께 회사의 불법 비자금을 운용해왔고, 죽기 직전 700억의 불법 비자금을 빼돌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화영 이전에 비자금을 운용하는 일을 했던 여직원이 화영처럼 똑같이 죽었다는 걸 알게 된 오인주는 신현민 이사가 화영을 죽였다고 의심하지만 그 역시 의문의 자동차 사고를 당하면서 비자금을 둘러싼 배후가 존재한다는 게 드러난다. 한편 오인주의 동생으로 사회부 기자인 오인경(남지현)은 정치인을 꿈꾸며 청년들을 위한 재단까지 만든 박재상(엄기준)이 과거 보배저축은행 사건의 배후라 의심하며 과거사를 파고 들지만 그 과정에서 역시 의문의 자동차 사고로 제보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겪는다. 화영과 신현민 이사 그리고 제보자까지 이들의 죽음 옆에는 모두 동일한 꽃이 놓여있다. 그들의 죽음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암시다. 여기에 오인경은 막내 동생으로 예고에 다니는 오인혜(박지후)가 박재상의 딸 효린(전채은)의 그림을 대신 그려줘 상을 받게 해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즉 <작은 아씨들>의 서사는 세 자매가 모두 저마다 박재상이라는 인물과 대결구도를 그려내고 있다. 오인주는 화영과 신현민 이사의 죽음 앞에서 비자금을 둘러싼 거대한 비리를 마주하게 될 것이고, 오인경은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박재상의 실체를 기자로서 파헤쳐나갈 것이다. 그리고 오인혜 역시 돈을 받고 효린의 그림을 대신 그려줬다는 사실이 언니들이 마주한 사건들과 연결되면서 저들과 대결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즉 과거사로부터 이어진 부조리한 권력 시스템과 그 시스템을 유지시켜주는 검은 자본의 흐름에 휘말리게 된 세 자매가 이를 헤쳐 나가며 진실을 파헤치고 정의를 그려내며 성장해가는 이야기가 <작은 아씨들>이 될 거라는 점이다. 

 

정서경 작가가 자본화된 세상과 맞서는 방식

영화 시나리오를 주로 써왔던 작가라서 그런지 정서경 작가가 쓴 <작은 아씨들>의 전개 속도는 거침이 없다. 그 흔한 드라마 공식을 따르는 질질 끄는 느낌이 없다. 1회 만에 화영의 죽음이 주는 충격으로 열린 세계에 2회 만에 신현민 이사의 죽음이 만든 반전이 더해지며 향후 벌어질 대결구도를 더 팽팽하게 만들었다. 

 

흥미로운 건 이러한 자본화된 세상과 대결하는 정서경 작가의 방식이다. 그건 오인경이나 오인주라는 인물을 통해 담아내는 남다른 ‘감수성’이다. 이들은 자본화된 세상이 굴러가는 그 익숙한 방식들을 그저 익숙하게 바라보지 못하는 남다른 감수성을 가진 인물들로 그려진다. 즉 오인주는 죽은 화영이 말하듯, “경리는 (의사가 환자 몸을 보는 것처럼) 돈을 숫자로만 봐야 된다”는 그 말을 실천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그에게 돈은 숫자가 아니라 현실이다. 그래서 20억이 갑자기 생긴 일에 결코 초연해하지 못한다. 그가 그저 20억이 아니라 거기에 담긴 사건의 진실이나 내막을 궁금해 하는 이유다. 오인경은 기자로서 무감하게 사건을 리포트해야 하지만 결코 아픈 비극을 겪은 이들을 리포트하며 감정을 숨기지 못한다. 그래서 술을 조금씩 마시게 되고 알코올 중독 판정까지 받지만, 그건 거꾸로 이야기하면 그런 알코올 중독이 되어야 비로소 감정을 숨길만큼 독하디 독한 부조리한 세상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모두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무감하게 자본화된 세상을 살아가지만 오인경과 오인주 같은 남다른 감수성으로 그걸 바라보는 이들은 그걸 결코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바로 이 지점이 정서경 작가가 세상과 대결하는 방식이다. <작은 아씨들>이 가진 여성 서사가 보다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도 바로 이 지점에서 생겨난다. 부조리가 일상화된 세상에서 그걸 달리 볼 수 있는 눈이란 그 세상이 배제한 이들의 시선일 수 있어서다. 자매들은 그래서 더 확장되어 세상이 배제한 사회적 약자들의 연대로까지 나아가는 여성서사를 그려나갈 작정이다.(글:매일신문, 사진:tvN)

‘벌새’, 이 작은 영화가 세계를 쏜 까닭

 

벌새는 현존하는 새 중 가장 작은 새들로 가장 작은 건 몸길이가 5cm에 몸무게는 2.8g에 불과하다고 한다. 가만히 보면 마치 헬리콥터처럼 정지해 서 있는 것처럼도 보이지만, 사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이 가능한 건 엄청난 속도의 날갯짓 때문이다. 빠른 벌새는 초당 55회의 날갯짓을 하기도 한다고 한다.

 

영화 <벌새>에는 벌새가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제목을 단 건 아무래도 여기 등장하는 14살 중학생 은희(박지후)라는 인물과 그 인물을 들여다보는 카메라가 마치 벌새와 그 벌새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시선을 닮아 있기 때문일 게다. 아주 작은 존재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끊임없이 날갯짓을 하며 세계와 대결하고 자신을 성장시켜 나가는 그런 위대한 존재.

 

<벌새>가 다루는 이야기의 시공간은 1994년 대치동이다. 이 영화에서 이 시공간이 중요한 건, 그 시점에 벌어진 성수대교 붕괴 같은 거대한 사건과 은희가 대치동 아파트에서 당대의 가부장적 집안 분위기 속에서 살아가는 그 일상이 중요한 사건으로 다뤄지기 때문이다.

 

그 일상은 사실 영화가 주로 다루는 극적인 사건 같은 것들을 끌어오지는 않는다. 방앗간을 하는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때론 지나치게 권위적인 남편과 맞서기도 하지만 결국은 순종적인 어머니, 동생에게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는 오빠와 그런 집안에서 탈출하듯 부모가 원하는 반대방향으로의 삶을 살아가는 언니.

 

어찌 보면 당대의 여느 집안과 크게 다르지 않은 그 집안 풍경들은 그러나 은희라는 섬세한 인물의 시선으로 아주 자세히 천천히 들여다보자 무수한 감정들을 품어낸다. 관심 밖으로 밀려난 은희가 남자아이와 연애를 하고 유일한 친구인 지숙과 때론 탈선을 하기도 하며 자신을 따르는 여자 후배와도 연애 감정을 갖는 그 일련의 과정들이 자잘하게 보여진다.

 

그 평이해 보이는 일상 속에서 사건이랄 수 있는 건 힘겨워 하는 은희가 자신을 이해해주고 지지해주는 유일한 어른 영지 선생님(김새벽)을 만난 일이다. 마음을 다치고 찾아온 은희에게 항상 따뜻한 차를 대접해주며 “누가 널 때리면 어떻게든 맞서 싸워”라고 말해준 인물. 영지라는 인물의 존재는 이 평이해 보이는 일상과 대비되면서 그것이 평범하지 않은 폭력적인 것들을 내포하고 있다는 걸 드러내준다.

 

디테일이 클리셰를 극복하게 해준다는 건 영화를 안다는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이야기다. <벌새>는 평이한 일상들에 카메라를 고정시키고 좀 더 오래도록 들여다봄으로써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은 것 같은 인물들에게 벌어지고 있는 감정 같은 것들을 찾아내게 해준다. 그건 마치 멈춰서 있는 것 같지만 무수한 날갯짓에 의해 버텨지고 있는 것들이라는 걸 카메라의 ‘오래 들여다보는’ 시선이 보여준다.

 

이 부분은 <벌새>라는 작은 영화가 외국 영화제에서 20여개가 넘는 상을 받는 놀라운 성과를 보여준 이유가 아닐까 싶다. 한 사람의 작은 일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기 하나의 세계가 보인다는 것. 그리고 그 세계는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 세상에게 잔잔하지만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는 사건일 수 있다는 걸 영화는 은희라는 인물을 통해 보여준다.

 

그래서 1994년의 성수대교 붕괴 같은 사건 또한 당대의 가족과 사회의 공기로 자리 잡던 가부장적 세계관이 만들어낸 결과처럼 여겨지게 된다. 그 거대한 사건이 사실은 우리의 이런 작은 날갯짓들이 전하는 항변과 버텨냄을 무시함으로써 생겨난 비극이라는 것.

 

요즘처럼 현란하고 빠른 속도감의 영상들이 마치 콘텐츠의 금과옥조처럼 되어 있는 시대에 <벌새>는 그래서 정반대로 가는 영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수수하고 너무나 느려 심지어 정지된 영상이 아닐까 여겨지기도 하는 장면들을 오래도록 들여다보는 재미가 의외로 쏠쏠하다는 걸 이 영화는 보여준다. 여백이 많은 만큼, 그 영상을 통해 저마다의 추억과 생각들이 더해지면서 더더욱 풍부해지는 영화. 역주행하며 10만 돌파를 눈앞에 둔 <벌새>의 작은 날갯짓이 의외로 큰 감동으로 다가오는 이유다.(사진:영화'벌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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