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드라마 ‘눈이 부시게’가 약자들을 바라보는 시각

JTBC 월화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알츠하이머 설정은 놀라운 반전이다. 그리고 그 반전이 가진 의미도 새롭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시계라는 타임리프 설정이 혜자(김혜자)라는 한 어르신의 알츠하이머라는 반전은 이 판타지와 코미디가 어떻게 현실로 이어지는가를 잘 설명해준다. 기억의 조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알츠하이머라는 질환은 그렇게 어르신들이 가진 ‘시간을 되돌리고픈 욕망’을 투영시켜 혜자로 하여금 타임리프할 수 있는 시계를 갖게 만들었다.

물론 그건 환상이다. 하지만 그것이 그저 아무 의미 없는 신기루라고 그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알츠하이머를 가진 어르신에게 그 기억의 조작은 환상이 아니라 현실 그 자체일 수 있으니 말이다. 시청자들이 본 것은 그래서 그 현실로서 다가오는 환상을 경험하는 어르신의 모험담일 수 있었다. 지금껏 그 어떤 드라마가 알츠하이머를 소재로 환상 경험을 하는 어르신의 속내를 들여다 본 적이 있을까. 

그러고 보면 효도원이라는 공간도 또 더 나이 든 몸이 되어 아빠(안내상)와 엄마(이정은)를 대하던 혜자가 이해가 된다. 나이 들면 아이가 된다는 그런 이야기는 알츠하이머를 가진 혜자로 하여금 자식을 부모로 인지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효도원은 그렇다면 요양원 같은 공간일 것이고 준하라는 인물은 그 곳에서 자신을 잘 대해준 의사였을 게다. 

이 드라마가 놀라운 건 알츠하이머를 가진 혜자가 겪는 환상체험을 코미디와 활극 같은 경쾌함으로 담아내고 있다는 점이다. 효도원에 감금된 준하(남주혁)를 구해내기 위해 혜자가 리더가 되어 모인 이른바 ‘할벤져스’는 이 드라마가 약자가 되어 소외된 어르신들을 바라보는 따뜻하고 유쾌한 시각을 잘 드러낸다. 

효도원에서 음식이든 뭐든 옷 속에 집어넣고 또 뭔가 필요할 때면 그 속에서 뭐든 꺼내줘 이른바 ‘도라에몽 할머니’라 불리는 어르신은 준하 구출작전에서 필요한 연장을 뭐든 꺼내주는 역할을 맡는다.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어르신은 어둠 속에서 지팡이로 바닥을 치기만 하면 어느 방에 누가 있는가를 찾아내는 능력자가 되고, 쌍둥이 어르신은 길을 거울로 착각하게 만들어 다른 어르신들이 그 길로 탈출하게 해준다. 할벤져스에서 가장 빵 터지는 대목은 몸이 불편해 보조기를 끌고 천천히 걸을 수밖에 없는 어르신이 좁은 길을 막고 천천히 걷는 통에 뒤쫓아 오던 조폭들이 길을 뚫지 못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 <엑스맨>에 퀵실버가 등장할 때 흐르던 짐 크로스의 ‘Time in a Bottle’을 깔아놓은 대목에서 빵 터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다소 과장된 할벤져스의 코믹한 구출작전에 깔려 있는 건 이 소외되어 뭐 하나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처럼 여기던 어르신들이 사실은 저마다의 능력을 가진 인물이라 바라보는 시각이다. 몸이 늙어 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오히려 능력으로 바꿔 보여주는 그 과장된 코미디의 웃음 끝에 어떤 감동이 담겨지게 되는 건 바로 이런 시각이 주는 따뜻함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장된 활극이 한 알츠하이머를 앓는 어르신의 상상이었다는 게 드러나는 반전은 그 놀라움과 더불어 요양원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어르신들의 현실을 떠올리게 만든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몸과 그럼에도 무언가를 하고픈 젊은 마인드의 공존은 어쩌면 우리의 기억을 왜곡시켜서라도 그 힘겨운 삶을 버텨내게 하는 게 아닐까. 

“긴 꿈을 꾼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모르겠습니다. 젊은 내가 늙은 꿈을 꾸는 건지, 늙은 내가 젊은 꿈을 꾸는 건지.” 장자의 호접몽을 떠올리게 하는 이 혜자의 읊조림 속에서 이 코믹했던 한 바탕 소란의 이야기는 우리네 삶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누구에게나 삶은 한 바탕 꿈같은 웃음과 눈물과 반전일 수 있다는 걸 알츠하이머를 앓는 한 어르신의 내면 깊숙이 따뜻한 시선으로 들여다본 이 드라마의 성취가 아닐 수 없다.(사진:JTBC)

'알쓸신잡3' 김영하는 왜 유시민이 원효대사를 닮았다고 했나

“서핑하면서 뭐가 달라지셨어요?” 하고 묻는 김영하의 질문에 양양에서 만난 한 서퍼는 “여유로워졌어요”라고 말했다. “서울에서 사는 것처럼 각박하지가 않다”는 것. “여기로 이사 오면서 서울처럼 살려면 못 살죠. 욕심 다 버리고 그냥...” 속초, 고성, 양양으로 떠난 tvN 예능 <알쓸신잡3>에서 서핑하는 이들을 지긋이 바라보며 김영하는 그 파도타기와 우리네 인생의 닮은 점을 생각한다. 

“자연은 인간과 경쟁하지 않잖아요. 파도가 나를 평가하지 않아요. 파도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오는 거예요. 그 파도를 잘 타면 기분이 좋은 거고 아니면 마는 거고. 내가 노력한다고 좋은 파도가 오는 게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오늘 좋은 파도가 오면 감사히 타고 안 오면 그냥 ‘내일은 좋은 파도가 오겠지’ 그러면서 또 놀고. 인생의 운도 그렇잖아요. 좋을 때는 좋은 파도가 오는 거고 그 파도에 잘 타면 되고 아니면 다음 파도를 기다리고...”

욜로니 워라밸이니 하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들이 등장하고 있는 건, 김영하 작가나 김진애 교수나 모두 “열심히 해도 안 되는 삶”을 이유로 들었다. 김진애는 “더 이상 열심히 해도” 나아지지 않기에 ‘지금을 즐기는’ 삶을 선택한다고 했고, 김영하는 “사회가 요구하는 것들”을 거부하고 자신의 기쁨을 찾아가려는 ‘젊은 층의 반란’을 바람직하게 본다고 했다. 

그 이야기는 기묘하게 이들이 찾아간 동해바다의 그 여유로움과 파도타기를 하는 서퍼들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것이었다. 서울에서부터 오늘의 파도가 어떤가를 앱으로 확인하면서 파도가 좋은 날이라면 만사 제쳐두고 동해바다를 향해 달려와 서핑에 푹 빠지는 삶. 미니 보드를 타보기도 했다는 김영하는 파도를 탈 때는 ‘현재’만을 생각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벌어지지 않은 미래를 막연히 불안해하면서 현재를 희생하며 사는 삶보다는 지금 내 앞에 놓인 현재에 집중하는 파도타기 같은 삶이 좋다는 이야기.

삶의 태도에 대한 이야기는 유시민의 달라진 삶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한 때 정치인으로서의 삶을 살았던 유시민은 어린이날 다른 집 어린이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정작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했던 그 때의 삶에 그다지 미련이 없어보였다. 그는 이제 그 길을 떠나 작가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고, 그것은 그 때의 삶과 비교해보면 너무나 다른 ‘인생 반전’임에 틀림없다.

김영하는 유시민의 삶을 파도타기에 비유해, 큰 파도 작은 파도 다 오라고 뛰어들던 유시민이 “파도에 지쳐” 낚시나 하자고 마음먹었다며 농담을 했다. 그런데 그건 그저 농담처럼만 들리지는 않았다. 실제 ‘반전’의 삶을 선택해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유시민은 양양의 의상대사가 지었다는 낙산사 이야기를 하며 슬쩍 원효대사의 ‘반전 있는 삶’에 동조하는 자신의 입장을 피력한다.

그 유명한 해골물 이야기를 경험한 후, 의상대사는 중국으로 가 화엄경을 공부하고 돌아와 학승의 길을 갔지만, 원효대사는 그 경험 후 모든 격신, 의전, 형식을 깨는 삶을 살아갔다고 했다. 결국 부처는 마음에 있다는 것. 그래서 파계가 되기도 했지만 원효대사는 이런 선택을 통해 저잣거리로 내려와 민초들과 어울리며 포교를 했다. 후대의 평가는 원효대사를 더 알아준다며 그가 더 많은 불교관련 저작을 남겼다고 유시민은 말했다. 그 이야기에 김영하는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며 은근히 그 삶이 유시민과 닮았다는 걸 말해주었다. 

<알쓸신잡3>는 유시민과 김영하가 말하듯 달라진 우리네 삶의 방식을 저 양양에서 파도타기를 하는 서퍼들과 그 곳에 지어진 낙산사에서 떠오른 원효대사의 이야기를 통해 들려준다. 파도가 시시때때로 바뀌어가듯 사람들이 선택하는 삶의 방식들도 변화해가기 마련이다. 한때 먹고사는 생존의 길이 그 무엇보다 중요해 모두가 가던 길을 다함께 갔던 시대의 파도가 있었다면, 지금은 그 곳에서 빠져나와 저마다의 길을 찾아가는 새로운 시대의 파도가 오고 있다. 애쓰기보다는 그 자연스러운 흐름에 균형을 맞춰가는 삶의 파도가.(사진:tvN)

‘무법변호사’, 사이다에 대한 갈증 알지만 어딘지 아쉬운 건

어쩌면 애초 기획부터 tvN 주말드라마 <무법변호사>는 고구마 현실 속에서의 사이다 드라마를 꿈꿨는지도 모르겠다. ‘결국은 돈 있는 자가 이긴다’는 ‘법’에 대해 서민들의 감정을 이미 기획에서 끌고 온 것이고, 그래서 ‘무법(無法)’ 천지인 현실을 드라마를 통해서나마 뒤집어보겠다는 것. <무법변호사>는 ‘무법(無法)’에 법으로 싸운다(武法)는 판타지를 동력으로 삼은 드라마다. 

그래서 이 드라마가 배경으로 삼은 기성은 우리네 고구마 현실을 환기시키는 여럿 장면들이 등장한다. ‘법꾸라지’가 떠오르기도 하고, ‘문고리 3인방’이 떠오르는 인물들도 등장한다. 깡패에서 시장이 된 안오주(최민수) 같은 인물이나, 겉보기엔 기성을 위해 헌신하는 판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부패한 기성시의 정점에 서 있는 차문숙(이혜영) 같은 인물, 그리고 거기 붙어 문고리 역할을 하다가 뒤통수를 맞는 남순자(염혜란) 같은 인물이 그렇다. 

<무법변호사>는 그래서 이들 악역들을 전제로 세우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고구마 상황들을 통해 시청자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킨 후, 이를 뒤집는 봉상필(이준기) 변호사의 사이다 반격이라는 마치 공식적인 전개를 이어가고 있다. 이를테면 봉상필의 눈앞에서 그를 키워준 최대웅(안내상) 같은 인물이 죽음을 맞게 되는 회차에서 시청률이 높게 나온 건 그 고구마 전개가 가진 힘이다. 

하지만 위기가 만들어내는 고구마와 그를 뒤집는 전형적인 복수극의 사이다를 반복하고 있는 <무법변호사>는 그래서 어딘지 뻔한 틀에 들어와 있는 느낌을 준다. 하재이(서예지)의 엄마인 노현주(백주희)가 차문숙(이혜영)의 안마사로 잠입하고 있다 붙잡혀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되는 상황에서 그만한 긴박감이나 긴장감이 잘 느껴지지 않는 건 반복된 이야기 틀 때문에 그것 역시 봉상필의 반전으로 쉽게 해결될 것이라 예측되기 때문이다. 

노현주가 드럼통에 넣어져 강물에 던져질 위기에 처한 순간, 마침 봉상필의 이야기를 듣고 그 곳을 안오주(최민수)가 찾아오고, 그래서 잠시 태광수(김병희)가 자리를 비운 순간 봉상필과 손을 잡은 전갈(김용운)에 의해 노현주가 탈출하게 되는 시퀀스는 그래서 너무나 우연적이면서 또한 예측 가능한 전개가 된다. 또한 그렇게 두 번 노현주를 죽이라고 사주한 남순자(염혜란)가 그 사실 때문에 검거되는 과정도 너무 쉽게 그려진다. 

하지만 이런 우연의 반복과 단순한 틀을 반복하는 데도 불구하고 드라마가 굴러가는 이유는 개연성이나 신선한 이야기 그 자체보다 단지 ‘고구마-사이다’라는 그 효과 때문이다. 시청자들은 어딘지 어색해도 그간 꾹꾹 고구마로 눌러놓았던 전개 속에서 하나씩 풀어주는 사이다에 그럭저럭 갈증을 풀어낼 수밖에 없다. 

언제부턴가 드라마가 고구마 혹은 사이다로 단순 구분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희극이냐 비극이냐로 한 드라마를 재단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그 중간 지점에 놓여진 다양한 드라마의 결들을 놓치게 될 수 있다. 그리고 어떤 드라마들은 아예 고구마와 사이다를 기획 포인트로 삼기도 한다. 그것이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단지 고구마-사이다가 주는 효과에만 기대게 된다면, 이야기는 퇴행될 수밖에 없다. 

<무법변호사>가 만들어내는 사이다에 대한 시청자들의 갈증은 당연히 이해되는 일이다. 하지만 그 효과에만 기대 어딘지 이야기의 촘촘함이나 섬세함 혹은 신선함을 찾기가 어렵게 된다면 사이다 전개를 보면서도 그만한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단계를 맞을 수 있다. 이제 몇 회 남지 않은 <무법변호사>가 사이다지만 뻔한 결말이 아닌 시청자들을 놀랍게 만드는 반전을 제시할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사진:tvN)

‘반드시 잡는다’, 스릴러도 따뜻하게 바꾼 백윤식의 아우라

스릴러가 어떻게 이리도 따뜻할 수 있을까. 영화 <반드시 잡는다>는 그 예고편만 보고 나면 “또 연쇄살인이야?”하는 선입견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영화를 보고나면 그 선입견이 틀렸다는 걸 확인하게 되게 나아가 스릴러라는 장르 속에서도 이토록 따뜻한 이야기와 사회적 함의를 던져줄 수 있다는 것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그 중심에 서 있는 배우가 바로 이 작품의 주인공인 심덕수 역할을 연기한 백윤식이다. <반드시 잡는다>가 색다른 스릴러가 될 수 있었던 건 출연자들의 특별함 때문이다. 이 영화는 백윤식을 비롯해, 성동일, 천호진, 배종옥, 손종학 같은 중견 배우들이 대부분의 역할을 채우고 있다. 그것은 이 작품이 담고 있는 ‘어른’에 대한 남다른 시선 덕분이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서민들이 살아갈 것 같은 허름한 집들이 모여 있는 동네에 벌어지는 연쇄살인. 처음에는 어르신들의 고독사이거나 비관자살로 위장되어 있었지만 차츰 그것이 연쇄살인이라는 걸 알게 되고 범인을 찾아 나선 심덕수와 전직 경찰 박평달(성동일). 영화는 살해된 피해자들의 가난하고 고독한 삶의 편린들을 훑어내며 우리 사회가 마치 없는 존재로 여기거나 혹은 ‘꼰대’로 치부하곤 하는 노인들의 자화상을 아프게도 잡아낸다. 

처음에는 가난한 서민들의 처지는 아랑곳없이 그저 월세나 독촉하는 구두쇠 영감으로만 알았던 인물이 차츰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고, 위협받는 그들의 생명을 위해 죽을 위기 속으로까지 뛰어드는 그 면면들은 그래서 스릴러 장르 속에서도 어떤 따뜻한 감동 같은 걸 자연스럽게 만들어낸다. 그래서 이 스릴러의 해결과정은 마치 진정한 어른이 어른대우를 받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스스로 나서 ‘자기 존재를 증명하는’ 그 과정처럼 보인다.

놀라운 건 이 작품에서 젊은 용의자들을 추격하고 범인과의 사투를 벌이는 그 심덕수를 연기하는 백윤식이다. 70세의 노장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온몸을 던지는 연기를 보여주면서도 이 배우는 그 안에 깊은 페이소스 같은 걸 새겨 넣는다. 그래서 조금은 힘겨울 수 있는 추격과정이나 추리가 오히려 스릴러로서의 긴박감을 더욱 높여주는 장치로서 활용되고, 동시에 순간순간 나이든 어른이 갖는 삶에 대한 경의 같은 것이 뭉클함을 안겨주기도 한다. 

물론 그렇다고 <반드시 잡는다>가 그런 휴먼드라마적인 요소가 부각된 스릴러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 작품은 스릴러로서 가져야할 긴박감과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 또한 잘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시작은 다소 걷는 느낌으로 흘러가지만 차츰 달려가는 이야기의 속도감에 빠져들게 되고 뒤통수를 치는 반전이 적절한 자극을 제공한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건 인생 경험이 풍부한 노인만이 가질 수 있는 ‘용기’와 ‘여유’ 같은 것들이 특별한 스릴러의 경험을 하게 해준다는 점이다. 손에 땀을 쥐는 스릴러의 긴장감 속에서도 심덕수라는 어른의 관점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관객들은 조금은 느긋한 시점이 가능해진다. 스릴러지만 이 작품이 이렇게 따뜻하고 어떤 면에서는 사회적인 통찰까지 담아낼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심덕수라는 독특한 캐릭터와 그걸 200% 연기해낸 백윤식이 있어서가 아닐까. 실로 ‘노장은 살아있다’는 걸 증명해낸 작품이 아닐 수 없다.(사진:영화 '반드시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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