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와이프> 유지태, 짧은 분량에도 강렬한 존재감

 

참회하고 아내를 돕는 남편인가, 아니면 아내를 이용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권력자인가. tvN <굿와이프>의 이태준(유지태)은 그 정체가 애매모호하다. 스캔들에 휘말린 대쪽 검사지만, 그는 그것이 누군가에 의도된 함정이라고 말한다. 배신감을 느끼는 아내 김혜경(전도연)에게 잘못을 빌며 그녀를 위해서는 뭐든 다 하겠다고 말하는 그다.

 

'굿와이프(사진출처:tvN)'

실제로 이태준은 감옥에 있으면서도 아내가 원하는 걸 뒤에서 돕는 인물처럼 보인다. 재벌3세의 성폭행 사건이 그냥 덮어져버리자 김혜경은 남편을 찾아와 윗선에 닿는 사람을 통해 재수사를 요구한다. 그러자 실제로 사건은 재수사를 받게 되고 재벌3세는 성폭행 혐의로 미디어에 노출되는 치명적인 대가를 치르게 된다.

 

이태준이라는 인물이 흥미로운 건 그가 단순히 업소녀와의 스캔들로 억울함을 토로하는 남편의 면면만을 보여주는 단순한 캐릭터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감옥에 있어도 그 넓은 인맥으로 바깥의 정황을 움직일 수 있는 권력을 갖고 있다. 그에게는 정보를 지속적으로 알려주는 인물도 있고 그의 말 한 마디에 따라주는 네트워크도 있다.

 

그러니 이태준의 또 다른 모습이 슬쩍 비춰진다. 그저 억울한 남편이 아니라 자신을 그런 함정에 몰아넣은 배후들을 캐서 복수하고 복권하려는 만만찮은 속내를 숨긴 권력자의 모습이 그것이다. 알고 보면 아내 김혜경이 맡은 사건들이 이태준의 주선에 의해 의뢰된 것들이고, 그것이 그의 스캔들과 연관이 있다는 건 그가 아내를 통해 무언가 자신의 또 다른 목적을 추구하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마치 감옥에 있으면서도 아내를 돕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내도 모르게 그녀를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는 듯한 모습은 이재준이라는 인물에 대한 궁금증을 높여 놓는다. 사실 <굿와이프>는 제목에 들어 있는 것처럼 김혜경이라는 좋은 아내가 변호사로서 홀로 서는 그 성장과정을 담고 있다. 그러니 오롯이 카메라는 김혜경을 따라다니며 그녀가 사건들의 변호를 어떻게 해결해나가는가를 담는다.

 

하지만 김혜경 뒤에 분량을 짧지만 이태준이 갖고 있는 존재감은 어떤 면에서는 더 크게 다가온다. 김혜경이 맡는 사건들 하나하나가 어쩌면 이태준과 연관되어 있다는 느낌 때문이다. 바로 이런 점은 <굿와이프>라는 드라마의 이야기 구조가 그저 단순한 한 여성의 성장드라마에 머물지 않는다는 걸 말해준다. 거기에는 이야기의 겉면에 싸여진 무언가 숨겨진 내막이 저 밑바닥에서부터 움직인다.

 

물론 <굿와이프>의 전체를 이끌어가는 가장 큰 동력은 김혜경을 연기하는 전도연의 몫인 게 분명하지만, 그래서 그녀의 뒤에 있는 이태준 역할의 유지태 역시 만만찮게 여겨진다. 전도연이 평범한 아내이자 아이들의 엄마 그리고 공감 능력이 뛰어난 변호사 같은 여러 모습을 연기해낸다면, 유지태 역시 평범한 남편처럼 보이다가도 금세 권력자의 면면이 드러나고 때로는 무언가를 뒤에서 꾸미고 있는 모습까지 겹쳐진다.

 

그리고 바로 이 부분, 아내를 돕는 남편일 뿐인가 아니면 그녀를 이용하는 권력자인가 하는 점은 <굿와이프>라는 드라마를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다. 향후 김혜경의 갈등은 바로 이 알 수 없는 이태준의 정체와 속내로부터 비롯될 것이기 때문이다. 짧은 분량에도 이토록 강렬한 존재감이라니. 이태준을 연기하는 유지태라는 연기자의 공력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굿와이프>, 아내와 변호사 넘나드는 전도연의 클래스

 

역시 전도연이다. tvN의 새 금토드라마 <굿와이프>에서 전도연은 아내이자 변호사인 김혜경이라는 인물을 연기한다. 사실 아내와 변호사라는 두 캐릭터는 어찌 보면 잘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아내가 등장하는 드라마들이 늘 틀에 박힌 이야기에 머물러 있었고, 변호사라는 직업 역시 장르물의 견고한 틀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굿와이프(사진출처:tvN)'

하지만 <굿와이프>는 다르다. 이 드라마가 짚어내고 있는 핵심적인 포인트는 아내이자 변호사라는 김혜경의 위치다. 그녀는 남편 이태준(유지태)이 불륜스캔들에 휘말려 아내로서 배신감을 느끼고 있으면서, 동시에 생계를 위해 무려 15년 동안 헌신했던 가정을 박차고 나와 변호사로서 자신을 세워야하는 입장에 서 있다. 그녀가 처음으로 맡게 된 변호가 불륜 사실 때문에 남편을 살해했다는 혐의를 가진 한 아이의 엄마라는 건 그래서 흥미로워진다. 자신과 유사한 처지에 놓여진 의뢰인에 대해 그녀는 동병상련의 깊은 공감을 통해 더 변호에 집중할 수 있었고 결국 이길 수 있었다.

 

즉 김혜경이 해온 15년 간의 아내로서의 삶은 남편의 배신 때문에 허탈한 시간처럼 여겨지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그 삶을 통해 접하게 된 여성들의 입장에 좀 더 공감할 수 있게 됨으로써 실제 변호에 있어서도 그것이 큰 힘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굿와이프>가 여타의 아내들이 등장하는 드라마들이나, 변호사가 등장하는 장르물과 차별화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김혜경이 다시 변호사로 돌아와 첫 번째 사건을 이기는 그 과정은 그래서 아내로서 살아가는 많은 여성들에게 작은 카타르시스를 안기기에 충분하다. 누군가의 엄마이고 누군가의 아내가 아닌 김혜경이라는 본인으로서 서게 됐을 때의 그 성취감. 그런 것들이 첫 번째 승소를 하고 법정을 나오는 김혜경의 기쁜 얼굴을 통해 시청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지기 때문이다.

 

결국 <굿와이프>는 이렇게 변호사라는 직업을 통해 홀로 독립해 서게 되는 김혜경이라는 여성의 성장스토리를 다루지만, 의외로 숨겨놓은 반전 요소들도 들어 있어 훨씬 극적 재미를 줄 것으로 여겨진다. 즉 억울하게 정치적인 희생양이 되었다는 그녀의 남편 이태준이 아내인 김혜경을 통해 자신을 그렇게 만든 이들에 대한 반격을 준비하는 듯한 모습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김혜경의 성장은 시청자들이 관심을 갖는 이 드라마의 주요 포인트지만, 그 뒤에는 또한 이태준의 욕망이 어른거린다. 이 부분은 단순해 보이는 성장드라마가 다양한 이야기들로 변주될 있는 가능성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변화와 성장, 그리고 아내로서의 모습과 변호사라는 직업으로서의 면면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소화해내는 전도연의 연기는 <굿와이프>에 대한 몰입을 가능하게 한다. 작은 표정 하나에도 다양한 감정을 담아내는 그녀의 연기는 역시 명불허전이다. 법정극이 그려내는 반전에 반전의 이야기와 아내에서 독립해 한 명의 여성으로서 성장해가는 그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은 온전히 전도연이라는 든든한 배우로부터 비롯된다고 말해도 무방할 듯 싶다.

<리멤버> 납득 안 되는 전개 무엇이 문제일까

 

변호사가 저리도 허술하게 도망자 신세가 될 수 있을까. SBS <리멤버-아들의 전쟁(이하 리멤버)>에서 갑작스레 살인사건의 누명을 쓰고 도망자 신세가 된 서진우(유승호)의 이야기에 시청자들은 고개가 갸웃해졌다. 살인죄로 사형수가 된 아버지의 무고를 풀어줄 결정적 증인을 찾아간 서진우가 살해당한 그녀를 발견한 후 갑자기 들이닥친 형사들로부터 도망치는 장면이 잘 이해가 가지 않기 때문이다.

 


'리멤버-아들의 전쟁(사진출처:SBS)'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라. 애초에 서진우가 그 곳에 가게 된 건 살해당한 증인으로부터 증언을 해 주겠다는 문자를 받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함정이지만 현장에서 형사에게 붙잡힌다고 해도 그 문자 메시지만으로 충분히 자신이 그녀를 살해한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그는 변호사가 아닌가. 현장에서 도망친다는 건 그 자체로 자신에게 불리하다는 것을 변호사인 그가 모른다는 게 이해가 되는가.

 

누명을 쓰고 도망자 신세가 되자마자 서진우가 그 여자를 죽이고 도주했다는 뉴스가 나오는 것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제아무리 클리쉐라고 해도 구체적인 증거도 없이 무작정 방송에서 그런 뉴스를 내보낸다는 게 현실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드라마라고 해도 지켜져야 할 개연성은 있는 법이다. 그 상식적인 룰이 깨져버리면 이야기에 대한 몰입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리멤버>는 한 마디로 빠른 전개를 보이고 있다. 보통 빠른 전개라고 하면 긍정적인 의미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지지부진한 이야기 전개보다는 계속 치고 나가는 빠른 전개가 시청자들에게는 긴박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의 <리멤버>가 보여주는 빠른 전개는 정반대의 의미다. 개연성 없이 흘러가는 빠른 전개는 시청자들의 공감을 일으키지 못하고 드라마의 완성도를 떨어뜨릴 뿐이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리멤버>의 시작은 실로 기대감을 자아내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누명을 쓰고 사형수가 된 채 점점 기억을 잃어가는 아버지. 그 아버지를 구해내기 위해 변호사가 된 절대 기억의 아들. 게다가 그를 도울 인물로 나타났지만 현실 앞에서 굴복하게 된 조폭 변호사. 이 캐릭터들은 향후 이 드라마가 추구해나갈 정의의 문제에 대한 충분한 밑그림을 그려놓았다.

 

그런데 그토록 매력적이던 조폭 변호사 박동호(박성웅)는 서진우를 배신하게 되면서 너무 평이한 캐릭터로 주저앉고 있고, 서진우의 옆에서 그와 함께 할 이인아(박민영)도 그다지 극에 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있다. 그 와중에 고립되어 버린 서진우는 홀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상황에 처해있지만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그 상황이 그리 납득할만한 것들은 아니다. 결국 이 드라마의 유일하게 남은 힘은 악역인 남규만(남궁민)에서 나온다고밖에 말할 수 없게 됐다.

 

이것은 대본의 문제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 대본을 제대로 영상에 담아내지 못하는 연출의 문제일 수도 있다. 그게 무엇이든 <리멤버>는 좀 더 완성도에 세심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개연성 문제를 지목하며 불만을 토로하는 시청자들의 목소리와는 별개로 시청률이 점점 오르고 있다는 얘기는 이 드라마에 대한 시청자들의 관심이 높다는 반증이다. 그 관심만큼 그럴 법한 이야기 전개는 필수적이지 않을까. 이야기가 산으로 가기 전에 <리멤버>는 그 중심을 잡는 재정비가 절실해 보인다



<육룡><리멤버>, 멜로에 대한 기대와 우려

 

SBS <육룡이 나르샤> 도화전에서 벌어진 이성계파와 조민수파의 혈투는 약 20분간 숨 가쁠 정도로 휘몰아쳤다. 이성계와 그 일파를 제거하기 위해 조민수는 수많은 살수들을 세워놓았지만 삼한제일검 이방지(변요한)와 각성한 무휼(윤균상)의 칼 앞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결국 이방원(유아인)과 가별초들이 들이닥치면서 조민수의 암살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육룡이 나르샤(사진출처:SBS)'

그런데 이 한 편의 액션 활극을 본 것처럼 여겨지는 이야기는 어린 시절 연희(정유미)를 겁탈했던 사내의 뒤를 따라간다. 그를 쫓는 이방지와 분이(신세경) 그리고 그 앞에 나타난 연희. 연희와 이방지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와 굴욕을 안겼던 그 사내는 결국 이 두 사람의 손에 의해 처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두 사람의 관계를 깨뜨려 놓았던 사내의 죽음으로 인해 새록새록 피어나는 건 향후 연희와 이방지가 다시 사랑하는 사이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이다. <육룡이 나르샤>는 그 촘촘한 이야기와 긴박감 넘치는 대결구도가 압권이지만 상대적으로 멜로는 별로 없는 드라마다. 그래서 한 편에서는 멜로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낸다. 이방지와 연희 그리고 이방원과 분이의 멜로가 이 사극에서는 가능한 부분이다.

 

하지만 정반대로 굳이 멜로가 필요한가 하는 의견도 심심찮게 나온다. 어설픈 멜로는 오히려 극의 긴장감을 흐트러뜨리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육룡이 나르샤>는 고려 말 혼돈기를 깨치고 나와 조선을 건국하는 여섯 용의 영웅담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니 그 과정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더 흥미진진해질 수 있다는 것.

 

멜로에 대한 이런 상반된 입장은 이제 지상파 드라마가 어떤 과도기에 놓여있다는 걸 말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과거 지상파 드라마는 어떤 식으로든 어떤 장르든 항상 멜로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전통적인 지상파 시청층은 드라마는 멜로라는 어떤 공식화된 틀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알고 있듯이 <미생>이 지상파가 아닌 케이블 채널 tvN에서 방영되게 된 것도 결국이 멜로의 부재 때문이었다. 그런데 과연 지금도 멜로에 대한 이러한 강박은 여전히 유효할까.

 

SBS 수목드라마 <리멤버-아들의 전쟁>은 복합장르 드라마다. 변호사가 나오는 법정극 장르에 사회극 요소가 가미되어 있고 거기에는 또한 조폭물의 흔적들도 들어가 있다. 그런데 이 복합장르에서도 빠질 수 없는 것이 멜로다. 주인공인 서진우(유승호)와 이인아(박민영)가 그 멜로의 대상이다. 이 둘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사형수가 된 서진우 부친의 무고함을 풀어내기 위해 변호사가 된 인물이다.

 

그런데 누가 봐도 다분히 멜로 구도를 예감케 하는 서진우와 이인아의 관계설정에 대해 굳이 멜로가 필요한가를 묻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공분을 일으키는 갑질 재벌 후계자를 응징하는 복수극이자 사회극에 더 충실해지는 것이 작품의 몰입도를 올릴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5년 만에 서진우를 만난 이인아가 달라진 그의 모습에 실망하고 술에 취해 그를 불러내는 에피소드는 현실적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검사와 변호사가 그런 식으로 만나는 것이 비현실적이지만 그건 다분히 두 사람의 멜로를 위한 설정으로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

 

드라마 시청자들의 눈높이가 높아지면서 드라마 하면 무조건 멜로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조금씩 사라지고 있는 추세다. 물론 멜로에 대한 기대는 어떤 순간에서도 불쑥불쑥 수면 위로 피어오르지만 그만큼 우려 섞인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 아예 멜로드라마거나 아니면 반드시 필요한 멜로가 아니라면 그것이 물과 기름처럼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이제는 시청자들도 몰입감의 차이로서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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