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트’의 멜로 vs ‘내 남자의 여자’의 불륜

월화 드라마 대전에 새롭게 등장한 김수현 작가의 ‘내 남자의 여자’ 바람이 거세다. ‘주몽’의 후속으로 부동의 1위 자리를 내주지 않을 것으로만 생각됐던 ‘히트’가 계속 부진의 늪을 헤매고 있는 사이, 단 4회만에 ‘내 남자의 여자’가 파죽지세로 거의 ‘히트’를 따라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 두 드라마는 단순한 비교대상이 되지 않는다. 단지 월화에 방영된다는 점에서 그 시청률이 비교될 뿐이다. 그런데 이 ‘월화의 경쟁’은 지금 우리나라 드라마가 겪고 있는 성장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가장 고전적인 드라마의 단골 소재인 ‘불륜’은 여전히 되지만, 변화의 바람 속에서 시도되었으나 지나치게 ‘멜로’가 강조된 전문직 드라마, 범죄수사물의 경우는 특히 더 안 된다는 것이다.

히트의 디테일 부족, 미드 때문이 아니다
물론 ‘외과의사 봉달희’ 역시 멜로가 있는 전문직 드라마로서 성공한 드라마지만 ‘히트’는 그것과는 양상이 다르다. 먼저 다른 것은 디테일이다. ‘외과의사 봉달희’ 역시 설정에서는 현실과 동떨어진 극적 상황이 전개되었지만 그래도 그 병원 장면이나 스토리에 있어서는 리얼한 디테일이 살아 있었다. 하지만 ‘히트’의 경우는 스토리 자체가 그다지 전문적이지 않다.

관습적인 액션들이 몇 번 오갈 뿐, ‘전문직 드라마’라면 보여줘야 할 시청자의 호기심을 자극할만한 ‘전문적인 디테일’이 부족하다. 처음 드라마가 시작했을 때는 이 디테일 부족이 단지 미국드라마에 익숙한 시청자들이 가진 선입견에서 비롯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8회가 끝난 지금 이 문제는 단순한 비교 때문에 벌어지는 것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홍콩 시퀀스에서 굳이 차수경(고현정)과 김재윤(하정우)을 크루즈에 태워 멜로 라인을 만들어야 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남는다. 그렇게 긴박한 상황에 멜로의 등장은 드라마 흐름의 맥을 끊어버리는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 여기에는 홍콩해외로케로 올라간 시청자들의 기대심리가 멜로로 인해 급격한 실망감으로 이어졌다는 점도 한몫을 차지한다. ‘도대체 홍콩에 가서 뭘 했다는 말인가’하는 비판이 나오는 건 당연하다.

멜로만 있는 전문직 드라마가 문제
크루즈에서 내려서 이어지는 사건의 해결(장형사를 구하는 것)에 있어서 너무나 손쉽게 처리한 점도 이 드라마가 과연 전문직 드라마를 표방할 수 있는가 하는 의구심을 만드는 요인이다. 찰리박(김병세)을 납치해서 장형사(최일하)와 맞바꾸는 장면은 그간 계속 어렵게 진행되어온 상황의 긴박감을 김빠지게 만들었다. 그 맥 빠진 자리를 채우는 건 장형사와 그 딸의 눈물겨운 상봉이다. 그러니 ‘히트’에서 무언가 긴박하고, 호기심과 아드레날린을 자극하는 전문직 드라마를 기대했던 시청자들의 실망은 시청률 부진으로 이어진다.

‘히트’의 시청자게시판은 이 ‘멜로’에 대한 공방이 한창이다. ‘히트의 멜로’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 애초부터 기획의도에 이 드라마는 ‘사랑이야기’라고 밝혀진 점을 들어 여타의 미국드라마와 비교하지 말자는 의견들이 있다. 그러나 기획의도를 보면 또한 ‘이 드라마는 전문직 드라마’라는 문구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멜로 있는 전문직 드라마’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멜로만 있는 전문직 드라마’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김수현의 불륜, 다른 건 자극의 강도일 뿐
반면 이 시간대에 새롭게 등장한 김수현의 ‘내 남자의 여자’는 그 자극적인 설정과 장면 연출로 여전히 ‘불륜 코드’는 된다는 걸 보여준다. 여기에 ‘김수현의 불륜드라마’는 무언가 다를 거라는 기대감이 작용했다. 그런데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있다. 김수현의 불륜드라마가 다르다면 도대체 뭐가 다르다는 말인가.

처음 김수현이라는 ‘언어의 마술사’가 하는 불륜드라마라고 해서 그것은 ‘불륜을 통한 인간욕망의 탐구’ 같은 깊이를 보여줄 것으로 생각됐다. 하지만 현 4회까지를 보면 그런 것은 좀체 눈에 띄지 않는다. 깊이는 없고 겉도는 자극만 가득하다. 저 액션을 표방한 ‘히트’보다도 더 액션(?)같은 주먹다짐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김희애의 소름끼치는 연기가 없었다면 이 드라마는 ‘사랑과 전쟁’과 같은 불륜드라마와 그닥 다를 것이 없다.

김수현이라서 달랐던 것은 자극의 강도였지 깊이가 아니었다. 의도적으로 화영 역의 김희애는 처음부터 노출신이 과도하게 등장했고, 홍준표(김상중)와의 애정행각은 ‘이러다 베드신 나오겠다’는 기대반 우려반의 시청자들의 반응을 끌어냈다. 욕망은 육체적인 것과 함께 정신적인 것을 동시에 포함하는데, 홍준표와 화영의 불륜에서는 정신적인 부분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이것은 욕망이 아니라 욕정이다.

욕망은 보이지 않고 욕정만 보인다
물론 적당한 선에서 화영과 홍준표의 불타는 욕정의 이유가 밝혀지면서 욕망으로의 전이를 꾀할 테지만 그것은 자극 끝에 달아놓는 변명이 될 수도 있다. 문제는 생활도 없고 삶도 없고 욕정만 가득한 이 ‘부족할 것 없는 사람들의 애정행각’을 왜 시청자들이 봐야하는가 하는 데 있다. 그 이유는 단 하나다. 자극적인 설정과 욕설과 주먹다짐이 난무하는, 액션보다 더 강력한 액션에 대한 호기심이다.

궁금한 것은 김수현이라는 부족할 것 없는 ‘언어의 마술사’가 왜 그 뛰어난 재능을 이렇게 쓰고 있느냐는 것이다. 불륜에도 격이 있다. 저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같은 영화에서 보여주는 불륜 속에는 육체적인 욕망을 뛰어넘는 그 무엇(셀레임 같은)이 있다. 불륜, 이룰 수 없는 욕망에 대한 자기성찰 없이 끝없는 파국을 통한 자극으로만 치닫는다면 이 드라마의 말미에서 ‘얻은 것은 시청률이요, 잃은 것은 작가다’라는 말이 나올 지도 모른다.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
월화 드라마 경쟁에서 보여지는 ‘멜로는 안되도 불륜은 되는’ 상황은 뒤집어 생각해보면 두 드라마의 완성도가 절반에만 미친다는 걸 말해준다. ‘히트’가 전문직 드라마를 성공시키지 못하고 멜로 드라마로 가고 있는 반면, ‘내 남자의 여자’는 불륜을 통한 인간욕망에 대한 탐구를 하지 못하고 그저 자극적인 불륜드라마로 가고 있다. 이 두 드라마가 이렇게 된 데는 아이러니하게도 모두 시청률 때문이다. 이것이 자칫 매니아 드라마가 우려되는 전문직 드라마에 적절한 멜로를 섞은 ‘히트’가 오히려 고전하는 이유이며, 불륜드라마로 시청률에 불을 붙인 ‘내 남자의 여자’가 자극적인 설정으로만 치닫는 이유이다. ‘멜로도 되고, 불륜도 되는’ 완성도 높은 드라마는 나오기 힘든 걸까.

답은 신파²이 아닌 사랑과 욕망의 방정식

MBC 수목 드라마, ‘90일, 사랑할 시간’은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은 현지석(강지환 분)이 죽기 전 세 달 동안 옛 애인과 사랑을 나눈다는 설정의 이야기다. 현지석과 그의 옛 애인 고미연(김하늘 분)이 각각 결혼을 한 유부남, 유부녀라는 점에서 이 드라마는 불치병 코드에 불륜 코드까지 뒤섞여 있는 셈이다. 어느 하나만 소재로 잡아도 신파의 혐의가 짙어지는 이 드라마. 그래서 이 드라마는 두 개의 자극적인 소재를 합쳐 두 배의 신파극을 연출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 만일 신파로 끌고 가려 했다면 불륜이나 불치의 코드는 더 많이 가려지고 숨겨졌어야 옳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일찍부터 현지석과 고미연의 불치, 불륜의 이야기를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현지석의 아내, 박정란(정혜영 분)과 고미연의 남편, 김태훈(윤희석 분)에게 드러내놓는다. 따라서 드라마는 불륜과 불치가 이끄는 신파로 흐르지 않고 이 극한적 상황, ‘90일, 사랑할 시간’이란 실험대 위에 올라선 ‘네 인물의 사랑과 욕망 방정식’을 보여준다.

사랑이냐 욕망이냐 그것이 문제
프로이트는 <쾌락원리를 넘어서>에서 욕망을 충족시키는 유일한 대상은 죽음뿐이라고 했다. 이 말은 이런 말도 된다. 인간을 살아가게 하는 건 욕망이지 욕망은 채워지지 않는다. 욕망은 미망이고 허상이다. 하지만 그것이 실재가 아니기에 우리는 또한 살아가게 된다. ‘90일, 사랑할 시간’이 네 명의 등장인물에게 제시하는 건 바로 이 죽기 전 남은 90일 간의 시간이다. 그들에게 갑작스레 던져진 이 시험은 그들을 사랑과 욕망 사이에서 방황하게 만든다.

현지석은 죽음이 다가오는 걸 느끼는 그 순간, 자신의 삶이 잘못되었다고 느낀다. 남은 시간이라도 제대로 사랑하는 사람과 보내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고미연에게 달려간다. 그런데 그것은 과연 그가 바라던 사랑이었을까. 막상 고미연을 만난 그는 그것이 사랑인지 욕망인지 헷갈리게 된다. 그녀의 행복을 위해서 가만 내버려두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단 한 순간이라도 진정한 사랑을 불태워야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고미연 역시, 자신에게 헌신적인 남편 태훈을 버리고 현지석에게 달려간다는 것이 욕망인지 사랑인지 알 수가 없다. 이것은 정란이나 태훈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남편과 아내가 사랑한 사람이 자신이 아닌 타인이었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을 것. 그렇다고 얼마 남지 않은 삶, 이미 진실도 알아버린 상황에 그들을 붙들고 있는 것이 진정한 사랑일까. 혹시 그건 자신의 욕망일 뿐 아닌가.

당신은 정말 잘 하고 있나요
현지석과 고미연은 자신들을 붙들고 있는 현실에서 도망치려하는 중이고, 정란과 태훈은 자신들을 떠나려는 현실을 붙잡아매려는 중이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고민한다. ‘과연 내가 제대로 잘 하고 있는 것인가’ 하고 말이다. 이로써 드라마는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얄팍하고 깨지기 쉬운 것인가를 보여준다. 극화된 것은 우리의 긴 삶을 90일이라는 시간에 가둔 것뿐이지만 그것은 또한 우리 삶 속에서의 사랑과 욕망이라는 주제로 의미가 확장된다. 그들은 거기 욕망이 있다고 생각하면 달려갈 것이고, 그 욕망이 충족되는 순간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게될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그들은 그 욕망으로서 살아간다. 프로이트 식으로 말하면 이 네 사람의 사랑과 욕망 줄다리기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죽음뿐이다. 이 방정식을 통해 드라마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고 있는 것 같다. 당신은 정말 잘 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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