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말 한마디>, 왜 제목을 이렇게 잡은 걸까

 

<따뜻한 말 한마디>라니. 이 드라마 일단 제목이 수상하다. 그래서 드라마를 들여다보면 뭐 딱히 새롭다기보다는 그저 불륜을 다루는 드라마 정도로 처음에는 다가온다. 실제로 극 중에서 유재학(지진희)과 나은진(한혜진)은 불륜관계이고 그 사실은 물론이고 그 상대방이 나은진이라는 것도 유재학의 아내 송미경(김지수)은 알고 있다. 그녀는 짐짓 모르는 척 넘어가려 하지만 곧 도무지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폭발하고 만다.

 

'따뜻한 말 한마디(사진출처:SBS)'

불륜은 어쨌든 가장 강한 소재라는 점에서 이 드라마를 오인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 불륜은 사실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단박에 드러난다. 그것은 나은진의 남편 김성수(이상우)라는 인물을 통해서다. 그는 과거 불륜을 저질렀었고 그걸로 아내와 갈등을 빚었지만 그럭저럭 잘 살아가고 있다. 어딘지 퉁명스러운 인물이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경험을 한 후 그는 조금 달라진 모습으로 돌아온다.

 

아내에게 연애시절의 기분을 새삼 느끼게 하려 안 하던 짓을 하기도 하고, 자신의 불륜 사실이 처제에 의해 갑자기 들춰져 장모에게까지 알려지자 그는 처가댁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사죄도 하고 전복을 사갖고 가 기분을 풀어주려고도 노력한다. 퉁명스러웠던 인물이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인물로 돌아왔을 때 복잡한 감정의 문제는 의외로 쉽게 풀어진다.

 

반면 유재학과 송미경 사이에는 이러한 따뜻한 말 한마디가 없다. 유재학이 번번이 고마워’, ‘미안해로 넘어갈 때마다 송미경은 사랑해라고 말해 달라 요구한다. 하지만 유재학의 입에서는 그런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유재학의 불륜을 그저 넘기려 하다가도 넘길 수 없게 된 것은 어찌 보면 이 따뜻한 말 한마디의 부재 때문이기도 하다. 결국 따뜻한 대화 없이 엇갈리기만 하던 이 위기의 부부는 서로를 향해 폭발하고 만다.

 

보통의 드라마들이 이야기나 상황의 극적 전개에 더 많이 관심이 가 있다면 <따뜻한 말 한마디>는 그 극적 상황 속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에 집중하는 흔치 않은 시도를 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이 나누는 대화에 집중해서 바라보면 이 드라마는 훨씬 더 흥미로워진다. 늘 속내를 숨기고 있는 송미경과, 그녀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 난 듯 차가운 말만 골라 내뱉는 추여사(박정수), 명민한 딸 윤정(이채미)은 물론 주변사람들에게 늘 기분 좋은 말을 건네는 나은진, 하다못해 은행원으로 일하는 은진의 동생 은영(한그루)이 은행에서 말 한마디 때문에 겪는 작은 에피소드들까지 훨씬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그렇다면 결국 이 흔치 않은 제목의 드라마는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일까. 그 해답은 나은진과 송미경이라는 캐릭터와 그들이 구사하는 말 표현 속에 들어가 있다. 나은진은 그다지 친하지 않은 쿠킹클래스의 언니인 송미경 앞에서 지금이 최악의 상황이라며 진정어린 눈물을 흘릴 줄 아는(속내를 표현할 줄 아는) 인물이다. 하지만 송미경은 정반대다. 그녀는 나은진이 남편의 내연녀라는 걸 알면서도 모른 척 겉과 속을 달리한다. 따뜻한 말 한마디의 기준으로 보면 극과 극의 캐릭터가 바로 그 점 때문에 앞으로 어떤 결과를 맞이하게 될 것인가가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드라마에서는 물론 대사가 굉장히 큰 역할을 하고 있지만 지금껏 그것은 어쩌면 표면적인 기능만을 다뤘는지도 모르겠다. 즉 수사적이고 표현적인 대사의 상찬은 넘쳐났지만 그것이 극에서, 아니 우리네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를 진지하게 들여다보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따뜻한 말 한마디>는 어찌 보면 간단해 보이지만 결코 간단하지 않은 우리네 삶의 비의를 건드리고 있다고 보여진다. ‘말 한마디가 가진 삶의 변화라니. 실로 당찬 시도가 아닌가.

<네 이웃의 아내>, 불륜 넘어 공감 얻는 까닭

 

결혼 17년 차, 몸에는 아무런 이상도 없지만 아내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지는 남자 안선규(김유석). 그는 커리어우먼으로 집안일에는 영 신경을 쓰지 않는 아내 채송하(염정아)보다 앞집으로 이사 온 주부9단 홍경주(신은경)에게 자꾸 마음이 간다. 요리 솜씨가 일품인데다가 아이들과 남편을 살뜰히 챙기는 모습이 드센(?) 아내와는 비교되기 때문이다.

 

'네 이웃의 아내(사진출처:JTBC)'

한편 홍경주의 남편 민상식(정준호)은 사회생활을 전혀 모르는 아내 홍경주보다 우연히 프로젝트를 함께 하게 된 앞집 여자 채송하에게 눈길이 간다. 커리어우먼으로서 남자들도 버티기 힘든 광고판에서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아내와 비교되기 때문이다.

 

지독히도 원리원칙주의자인 남편 안선규와는 달리 자신을 도와주기 위해 원칙을 포기하는 민상식에게 마음이 가는 채송하나, 늘 부엌데기로 자신을 무시하는 민상식과는 달리 자상한 안선규에게 마음이 가는 홍경주도 마찬가지다.

 

<네 이웃의 아내>는 이처럼 불륜, 그것도 크로스를 소재로 하고 있는데다 중년의 성담론이나 리얼한 사회생활 속에서의 접대 문화 등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결코 자극이 약한 드라마는 아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우리가 흔히 불륜 드라마라고 부르는 드라마와는 완전히 상이한 느낌을 준다. 예를 들어 <왕가네 식구들>에서 옛 남자친구인 허우대(이상훈)를 만나는 왕수박(오현경)이나, 조강지처를 내버려두고 은미란(김윤경)의 돈에 빠져드는 허세달(오만석)의 불륜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이것은 불륜을 다뤄도 그 목적이 다른 데서 나오는 차이다. 즉 <왕가네 식구들>이 다루는 불륜은 그 뻔뻔함을 통해 보는 이들을 울화통 터지게 만드는 식으로 자극을 위한 자극이 목적이지만, <네 이웃의 아내>는 위기의 중년부부가 겪는 권태기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동시에 부부가 서로를 역지사지로 이해해가는 과정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

 

즉 정의로운 의사로서 원리원칙을 자존심으로 버텨온 안선규는 민상식을 통해 아내가 겪는 사회생활의 고충을 이해하게 되고 결국 아내를 위해 원칙을 꺾는 모습을 보여주며, 사회생활을 전혀 모르는 아내를 늘 가정부처럼 부리며 무시하던 민상식은 채송하를 통해 그의 아내 역시 사랑받기를 원하는 여자라는 사실을 조금씩 깨달아간다.

 

이 드라마가 취하고 있는 불륜의 구조는 다분히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에 대한 공감대를 바탕으로 깔고 있다. 즉 민상식과 채송하는 살벌한 직장생활의 공감대를 보여주고, 안선규와 홍경주는 가정생활의 공감대를 보여준다. 흥미로운 건 이 네 인물이 보여주는 각자의 입장들이 모두 이해되고 공감이 간다는 점이다.

 

가족을 위해 물라면 물고 짖으라면 짖으며 개처럼 사회생활을 해온 민상식이나, 여성으로서의 차별을 뛰어넘어 커리어우먼으로서 당당히 서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채송하, 돈은 못 벌어도 환자를 위한다는 그 의사의 자존심 하나로 살아가는 안선규나, 가족을 위해 묵묵히 희생하며 살아왔지만 그래도 마음 한 구석 자신을 위한 삶을 꿈꾸는 홍경주 모두 중년의 시청자라면 고개가 끄덕여질 인물들이다.

 

이렇게 각자의 처지에 대한 공감대를 가진 인물들이 잠시 잠깐 타인에게 눈길이 가는 과정을 통해 오히려 둔감해진 부부 사이의 위기를 역지사지로 넘어서는 드라마가 바로 <네 이웃의 아내>다. 따라서 <네 이웃의 아내>는 불륜의 설정은 갖고 있어도 그 일정 수준의 선은 넘지 않는 거리두기의 균형감각을 보여준다. 상상 불륜이라고나 할까. 누구나 한번쯤 상상했을 법하지만 그렇다고 실행에 옮기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자극제로 부부관계를 되돌아보는 것.

 

그러고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네 이웃의 아내>와 <왕가네 식구들>은 제목과는 다른 정반대의 양상을 보여주는 셈이다. ‘네 이웃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는 십계명에서 따온 <네 이웃의 아내>가 아예 대놓고 불륜을 소재로 내세우면서도 불륜의 늪에 빠지지 않는 반면, <왕가네 식구들>은 마치 전형적인 가족의 이야기를 담아낼 것처럼 보이면서도 오히려 불륜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으니 말이다.

 

드라마에서 불륜이라는 소재는 그 자체로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그 숱한 고전들 속의 남자들이 ‘이웃의 아내’를 탐해왔다는 것은 이것이 결혼제도를 갖게 된 인간의 본능적인 서사라는 것을 말해준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다루느냐다. 단지 불륜 코드가 갖는 자극만을 담아내기 때문에 흔히들 ‘불륜 드라마’라며 손가락질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점에서 <네 이웃의 아내>는 ‘불륜드라마’라기보다는 간만에 보는 ‘성인들을 위한 공감드라마’라고 여겨진다.

<오로라공주>가 던진 비난 떡밥들, 입질은 있었나

 

아예 작정을 한 걸까. 임성한 작가의 새 드라마 <오로라공주> 첫 회는 욕 먹기를 작정하기라도 한 듯한 장면과 대사와 상황이 쏟아졌다. 시작부터가 불륜이다. 오금성(손창민)이 내연녀에게 “한 달만 기다려. 정리하고 올께. 약속해.”라고 천연덕스럽게 던지는 말은 자못 도발적이다. 저녁 7시 대 일일드라마로서 첫 장면에 불륜 장면을, 그것도 너무나 버젓이 던지는 건 이 드라마가 가진 색깔을 명확히 해준다.

 

'오로라공주(사진출처:MBC)'

다음 시퀀스는 임성한 월드의 특징을 정확히 보여준다. 여주인공 오로라(전소민)가 검사인 남자친구의 어머니와 대면하는 장면. 위 아래로 훑어보며 “다 해봐야 십만 원 밖에 안되겠네”라고 대놓고 말하는 속물근성 덩어리 어머니의 안하무인격 태도에 발끈하게 될 즈음, 갑자기 극 흐름과는 별 상관없어 보이는 남자친구 어머니의 코털이 인서트된다. 임성한 작가의 전작들이 가끔씩 상상 신을 활용해 인물들의 꿈틀대는 속내를 꺼내보였던 것처럼, 이 장면에서 오로라는 남자친구 어머니의 턱을 잡고 코털을 자르는 상상을 한다.

 

아마도 드라마에서 이런 코털 장면은 흔한 일이 아닐 것이다. 뾰족한 가위를 코 속에 넣어 자른다는 점에서 그 장면은 특이하면서 자극적이다. 하지만 그 뿐이다. 이 시퀀스는 이 드라마의 이야기 흐름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그저 시청자의 이목을 끌거나 화제가 될 만한 장면을 집어넣었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이것은 임성한 월드가 늘 추구해오던 것이기도 하다. 언제 주제의식이나 스토리의 일관성을 따졌던가. 그저 자극적이거나 눈요기 거리거나 화제(아니 나아가 논란)가 될 만한 것이 있다면 언제든 끼워 넣는 것이 임성한 월드의 특징이다.

 

품격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찾아보기 힘든 막가파식의 설정과 대사 역시 빠질 수 없다. 오금성과 아내 이강숙(이아현)이 함께 안마를 받는 자리에서 오금성이 이혼을 선언하자 이강숙이 알몸을 가린 가운을 열어 보여주며 하는 대사는 리얼하다기보다는 자극을 위한 자극처럼 보인다. “뭐가 부족해 내가! 호강에 겨워서 뭐에 빠진다고... 마흔 셋에 이 정도 유지하는 여자 봤어? 누구는 주물러 터트려서 귀찮아 죽겠대. 뭐가 그리 잘났는데? 나니까 살아줬어. 토끼 주제에...” 그러자 남편 오금성도 못지않은 막말을 쏟아낸다. “식어 빠진 사발면을 그럼 1,2분이면 해치우지 2,30분에 먹냐.” 실로 19금딱지 붙은 드라마에서도 듣기 힘든 대사들이 아닌가.

 

비상식적인 가족의 대화는 오왕성(박영규), 오금성, 오수성(오대규)이 저녁을 먹으며 불륜에 빠진 오금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절정에 이른다. 동생 오수성은 바람난 형에게 연실 장난치듯 비아냥대고, 형인 오왕성은 책망을 하지는 못할망정 내연녀의 나이를 궁금해 하고 부러워한다. 오금성이 내연녀가 서른다섯 처녀라고 말하자 이 두 형제는 심지어 “대박!”이라고 감격하기까지 한다. 형제들이 바람피는 것을 부러워하고 은근히 자랑질 하는 이 장면을 정상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런 장면이 야기하는 짜증은 임성한 월드가 굴러가는 연료이기도 하다. 분노하고 욕하기 위해 본다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아마도 임성한 월드는 이 잘나가는 가족들의 속물근성을 끄집어내 보여주고 싶은 것일 게다. 이 가족 속에 등장하는 계급들의 모습, 이를테면 오로라를 시중드는 하녀들이 여전히 존재한다거나, 평범한 옷을 입고 명품백을 사러 온 오로라를 불친절하게 대하는 종업원의 모습 역시 속물 자본주의가 가진 여전히 봉건적인 요소들을 보여주고는 있다. 또 임성한 월드에 꼭 등장하는 무속이나 종교적인 행태들(이번 드라마에도 잠자는 황마마(오창석) 옆에서 불경을 외우는 누나들이 등장한다) 역시 21세기에도 존재하는 전근대적이고 비이성적인 행동들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속물 자본주의나 전근대적인 행동들을 끄집어내 보여주는 목적은 전혀 다르다. 그것은 풍자나 비판의식을 담재하고 있다기보다는 그저 그 비상식적인 장면들이 만들어내는 짜증을 증폭시키기 위함으로 보인다. 즉 임성한 월드가 움직이는 동력은 바로 이러한 시청자의 감정을 낚는 이른바 ‘비난 떡밥들’이 도처에 던져져 있기 때문이다. 첫 회만 봐도 이런 논란이 될 만한 떡밥들은 거의 매 시퀀스마다 등장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과거에 그토록 욕을 하면서도 챙겨봤던 것처럼(어쩌면 욕하기 위해) 지금의 시청자들도 이 떡밥들을 덥석 물것인가. 첫 회에 시청률 11%를 기록할 정도로 임성한 월드가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 끝없이 던져지는 짜증나는 시퀀스들에 이제 진력이 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어쩌면 이번 <오로라 공주>의 성패는 시청자들의 성향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비난을 먹고 자라는 이상한 임성한 월드는 여전히 그 기능을 할 것인가. 아니면 이제 지나가버린 퇴행적인 세계로 기록될 것인가. 그 결과가 자못 궁금하다.

한 남자를 가진 '두 여자', 서로를 이해하다

남편의 불륜녀, 만약 당신이라면 궁금한가. '두 여자'는 바로 이 모티브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그래서 찾아낸 불륜녀와 조강지처가 드잡이를 하는 장면을 떠올리지는 말자. 이 영화는 그런 통속적인 치정극이 아니다. 오히려 이 두 여자가 서로 만나는 지점에서부터 영화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선회한다.

흔한 치정극이었다면, 불륜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조합은 두 가지다. 하나는 결국 남편이 뒤늦게 뉘우치고 조강지처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아예 조강지처를 버리고 불륜녀에게로 가는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제 3의 길을 선택한다. 조강지처와 불륜녀가 만나 여자로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것. 

산부인과 의사인 소영(신은경)은 남편 지석(정준호)의 제자이자 불륜녀인 수지(심이영)를 알게 되지만 분노하기는커녕 그런 상황에 놓이게 된 수지의 입장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소영은 수지에게 "너는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여자"라고 말하고, 그녀의 남편이 자신이 사랑하는 지석인 줄 모르는 수지는 "어떻게 이렇게 멋진 여자를 두고 바람을 피우냐"고 말한다.

즉 불륜이라는 상황을 소영이 마치 자신의 일이 아닌 것인 양 객관화하자 두 여자는 서로의 처지에 대해 공감하게 되었던 것. 두 여자가 여행을 떠나 벌거벗은 채 함께 목욕을 하며 서로의 이야기에 웃고 울고 화내는 시퀀스는 그래서 이 영화를 가장 핵심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조강지처니 불륜녀로 규정되던 그녀들의 관계는 훌훌 벗겨지고 대신 같은 여성으로서의 존재가 서로를 바라보게 된다.

이 영화는 한 남자와 두 여자가 함께 누워있는 포스터가 환기하는 것처럼 상당히 노출수위가 높고 파격적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하다기보다는 슬프게 느껴지는 베드신은 영화가 표피적인 자극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몸짓 이면에 숨겨진 두 여성의 절절한 심리를 진지하게 포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은경은 분노와 공감이 교차하는 이 복잡한 심리를 온몸을 던져 표현해낸다. 어찌 보면 두 여자 사이에서 이리저리 휘둘리는 남자에 머무를 수도 있었던 지석이라는 캐릭터를 그저 피상적인 불륜남 이상으로 연기해낸 정준호의 존재감도 빛난다. 물론 수지라는 또 하나의 축을 제대로 연기해낸 심이영의 때론 풋풋하고 때론 요염한 면면도 빼놓을 수 없다. 바로 이들의 팽팽한 연기가 균형을 이루었기에, '두 여자'가 보여주는 독특한 공감이 가능해졌다.

이 영화가 바라보는 사랑에 대한 시선은 비관적이다. 소영의 내레이션을 통해 전해지듯 사랑은 결국 부질없는 환상이고 결국 우리 모두는 혼자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사랑에 대한 비관적인 시선 끝에 이 영화는 여성과 여성 사이에 어떤 동지의식 같은 것을 그려 넣는다. 소영과 수지가 긴 터널을 지나 어렵게 잡게 된 그 두 손이 억지스럽지 않고 오히려 잔잔한 여운으로 남는 것은 이 영화의 공감이 적지 않다는 반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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