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열의 음악앨범', 실속은 못 챙긴 까닭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은 시작 전까지만 해도 올 가을 극장가를 촉촉이 적실 기대작으로 손꼽혔다. 그도 그럴 것이 일단 동명의 라디오 프로그램이 자극하는 추억과 향수가 적지 않다. 1994년부터 전파를 탔던 ‘유열의 음악앨범’. 당연히 당대의 음악들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그 음악을 배경으로 이 작품에 캐스팅된 정해인과 김고은이 차곡차곡 시간을 채워 넣어 만들어내는 멜로라니. 기대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하지만 이런 기대는 생각만큼의 결과로 이어지지 못했다. 지난달 28일 개봉한 후 현재까지 스코어가 100만 관객을 조금 넘고 있어, 손익분기점인 180만 관객을 넘길 수 있을 지도 미지수다. 추석 시즌을 맞아 극장가는 새로운 라인업이 채워지고 있다. <타짜: 원 아이드 잭>, <나쁜 녀석들: 더 무비>, <힘을 내요, 미스터 리> 등이 개봉하면서 <유열의 음악앨범>은 이제 상영관이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어째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사실 조금 심심할 순 있어도 <유열의 음악앨범>은 그리 나쁘지 않은 멜로영화라고 볼 수 있다. 시간과 공간의 변화를 사랑과 얹어 놓으면 괜찮은 질감이 만들어진다는 걸 정지우 감독은 잘 알고 있다. 엄마가 남긴 빵집에서 일하는 미수(김고은)와 어느 날 불쑥 그 빵집으로 들어온 현우(정해인)의 엇갈리는 만남과 헤어짐의 이야기. 그 이야기 구조는 다소 단조롭지만 관객들은 ‘시간의 흐름’을 관조하며 삶과 사랑의 의미 같은 걸 떠올릴 수 있었을 게다.

 

특히 변화하는 공간과, 과거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의 변화 속에서도 변치 않는 것들이 있다는 것에 안도감과 위로를 느꼈을 지도 모른다. 즉 이들의 사랑과, 그 사랑을 기억하게 하는 음악들은 그 변화들 틈바구니에서 변화하지 않는 아름다움으로 제시된다.

 

라디오라는 아날로그적 감성을 가진 매체가 주는 따뜻함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인간에게는 목소리에 대한 기억이 가장 오래 남는다고 하던가. 라디오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바로 내 귓가에 속삭이는 그 느낌을 전해주는 매체다. 그러니 유열의 목소리와 그가 전하는 음악들이 순식간에 그 때의 시간대로 우리를 이끌어주는 것을 게다.

 

하지만 괜찮은 잔잔한 영화이긴 해도 <유열의 음악앨범>이 모두가 감탄하고 감동할 만큼 특별한 영화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래서 이 영화가 의외로 부진하게 된 이유를 개봉 전부터 너무 과하게 느껴졌던 홍보에서 찾게 된다. <유열의 음악앨범> 개봉 전부터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정해인과 김고은의 출연과 노골적 홍보가 부쩍 잦았다. JTBC <비긴어게인3>에 한 회 분량으로 출연한 건 그래서 이 프로그램의 팬들에게는 적지 않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사실 <유열의 음악앨범> 같은 영화는 과한 홍보보다는 내버려 둠으로써 자생적으로 만들어지는 ‘입소문’이 훨씬 나은 방식이 아니었을까 싶다. 과한 홍보는 오히려 반감을 일으키기도 하는데다가, 이 영화가 가진 어떤 순수한 사랑의 이야기에 너무 돈 냄새를 풍기게 만들기 때문이다. 홍보도 영화의 성격에 따라 달리해야 효과가 나기 마련이다. 블록버스터도 아닌 잔잔한 영화에 너무 상업적 색채를 드리운 건 아니었을까. 그냥 조용히 보게 놔뒀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영화다.(사진:영화'유열의 음악앨범')

‘비긴어게인3’의 즉흥성에 성큼 우리 옆으로 온 음악

 

풍경만 봐도 이게 실화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아름다운 이태리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포지타노 전망대. 레몬의 마을에서 레모네이드를 한 컵씩 마신 JTBC <비긴어게인3>의 가수들은 갑자기 흥이 오른다. 수현의 제안으로 부르게 된 박혜경의 ‘레몬 트리’. 하림의 우쿨렐레 연주가 전부지만 거기에 맞춰 경쾌하게 부르는 수현의 노래에 박정현이 화음까지 맞춰주자 모두의 어깨가 들썩거린다.

 

사전에 계획된 무대도 아니고 또 사전에 준비한 곡도 아니었지만 오순도순 모여 개다리춤까지 춰가며 부르는 노래는 그 어떤 화려한 무대에서 부르는 노래보다 더 흥겹다. 역시 준비해 온 관객들도 아닌 행인들이 이들의 노래를 듣고는 발길을 멈추고, 어떤 이들은 그 노래를 카메라에 담는다. 순간 음악은 성큼 우리 옆으로 다가온다. 마치 보이지 않던 어떤 선 저편에서 경계를 넘어 바로 우리 옆으로.

 

그 곳에서 작은 버스킹을 마치고 차로 라벨로를 찾아가는 길, 좁은 해안도로로 밀리는 차들 때문에 지쳐갈 즈음, 수현이 문득 라벨로를 담아 즉석에서 우쿨렐레 곡을 만들어 부른다. 언덕길 위에 있는 라벨로는 세계적인 음악가들이 와서 영감을 얻어갔던 곳으로 유명한 곳. 여유로운 사람들이 카페에 앉아 저마다의 시간을 보내는 광장에서 악기세팅을 시작하자 벌써부터 사람들이 몰려와 박수갈채로 노래를 부추긴다.

 

흥겨운 곡으로 노래를 부르는 와중에 갑자기 난입한 꼬마들의 흥겹고 귀여운 춤은 그 어떤 무대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음악의 의외성을 더해준다. 갑자기 꾸려진 무대에서 불리는 노래들이지만 가수들과 관객들은 순식간에 흥겨운 노래로 하나가 된다. 낯선 가요들에도 호응해주는 이태리 사람들. 그 곳을 찾았던 이들에게는 이역만리에서 날아온 아티스트들의 음악이 어쩌면 앞으로도 좀체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테다.

 

라벨로에서 아말피 해변으로 내려와 어둑어둑해진 바닷가에서 부르는 노래는 <비긴어게인3>만이 보여줄 수 있는 즉흥성과 현장성의 극치를 보여준다.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소리가 간간히 들려오고, 모래사장 위에서 수현이 부르는 보아의 ‘아틀란티스 소녀’는 아름다운 아말피 바다와 어우러져 기막힌 조화를 만든다. 마치 그 ‘아틀란티스 소녀’가 수현이 된 듯.

 

헨리가 부르는 미발매곡 ‘I LUV U’ 역시 그 아말피 해변의 밤풍경과 어우러져 그 절절함이 더해지고, 김필과 박정현이 듀엣으로 처음 입을 맞춘 프랭크 시나트라와 낸시 시나트라가 부른 ‘Something stupid’는 너무 긴장한 김필이 가사실수를 하기도 했지만 그래서 곡이 가진 풋풋함 같은 것이 더 묻어난다.

 

도대체 완벽하다고 말할 수 없고, 오히려 불완전하기까지 한 <비긴어게인3>의 음악들의 무엇이 우리의 마음을 이토록 사로잡는 것일까. 그건 어쩌면 우리가 너무 완벽한 음향시설이 갖춰진 무대 위나 스튜디오에서 부르는 노래들을 듣다보니 조금은 멀게 만 느껴졌던 음악이 성큼성큼 우리 곁으로 걸어오는 듯한 느낌에서 만들어지는 음악의 진가가 아닐까. 숭배의 대상이 아닌 우리의 일상 속에서 귀를 간지럽히는 그런 노래들. 진짜 음악이란 이런 게 아니었던가.(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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