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콘-젊은이의 양지’, 웃긴데 슬픈 건...

 

그깟 떨어지는 면접은 안 보면 되고, 직장은 안 가면 되며, 돈은 안 벌면 된다? <개그콘서트>의 새 코너 젊은이의 양지의 백수 김원효가 면접에서 떨어진 후배 취업준비생 이찬에게 건네는 조언이다. 행복을 묻는 이찬에게 김원효는 취직해 대기업 들어간다고 뭐가 행복하냐며 잘 돼봤자 빌 게이츠라고 말한다.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뭐가 좋은데? 빌 게이츠가 친구랑 피시방을 가봤겠나. 지 이름 넉자를 한자로 적을 줄 아나. 물냉 비냉을 구분할 줄 아나.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마을버스 타고 환승을 해봤겠나. 인생의 낙이 없다. 그렇게 살라 해도 그렇게 못살겠다.”

 

기막힌 역설이다. 김원효라는 백수의 역설은 그 아무 것도 없는 처지에 빌 게이츠의 삶을 불쌍하게 여기는 모습에서 빵 터진다. 하지만 그 가진 것 없이 살아가는 것이 체화되어 이제는 나름의 행복의 논리(?)’로 가진 자들의 불행을 논하는 모습에서는 마음 한 구석이 짠하게 느껴진다.

 

누구나 꿈꾸는 좋은 집에서 살아가는 그런 꿈조차 그는 좋은 집 살아봤자 펜트하우스라며 줄줄이 펜트하우스의 안 좋은 점들을 열거한다. “잠 좀 잘만하면 햇빛 엄청나게 들어오지. 환기 시키려고 문 열어놓으면 새 지나다니지. 혼자 전 층을 다 쓰니까 이웃 없지. 외롭지. 우울하지. 병 오지. 병 오면 죽지. 펜트하우스 살면 죽는다. 나는 그렇게 살라 해도 못살겠다. 인생에 낙이 없어요.”

 

하지만 이 말 뒤에는 햇빛 안 들어오는 반 지하에서 살아가며, 환기 시킬 창문조차 없는 방에 다닥다닥 붙은 이웃들과 지지고 볶으며 살아갈 법한 이 백수의 삶이 느껴진다. 백수의 허세. 게다가 그건 고착화되어 나름의 논리까지 세워져 있다. 소소한 행복을 얘기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안 바뀌는 현실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포기한 자의 넋두리처럼 들린다.

 

반면 재벌 2세 이문재는 면접에서 떨어진 취업준비생 친구 이찬에게 야 너는 이 회사 저 회사 면접 볼 자유라도 있지. 나는 그런 선택의 자유도 없어. ? 아빠 회사 물려받아야 하니까. 나 들어가자마자 사장이야.”라고 말한다. 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재벌2세가 취업준비생을 부러워하는 듯한 이 역설에 또 웃음이 터져 나온다.

 

회사 가면 오십 줄 넘은 직원들이 90도로 인사를 한다며 어른을 공경하려야 공경할 수가 없는그 상황이 얼마나 불편한 일인 줄 아냐고 되묻는다. 가진 자의 엄살이다. 그의 논리는 너는 뭐든지 될 수 있는 자유로운 백수지만 난 기껏해야 미래가 정해진 불쌍한 재벌2라는 데서 나온다.

 

젊은이의 양지라는 코너는 이처럼 자기 상황과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쏟아내는 청춘들의 군상을 통해 반전의 웃음을 만들어낸다. 백수는 자신의 삶이 빌 게이츠보다 낫다는 식으로 말하고, 재벌2세는 취업준비생의 삶이 자신보다 낫다는 식으로 말한다. 하지만 그 말들에 관객들이 빵빵 터지는 건, 그 말이 냉혹한 현실에서는 얼마나 공허한 이야기인가를 실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이들이 행복을 이야기하고 태생적으로 정해지는 삶이 아닌 자기 스스로가 개척해가는 삶을 이야기한다. 그 말이 잘못된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도저히 태생적으로 정해지는 삶을 바꿔나갈 수 없는 냉혹한 현실에서는 그 자족적인 행복에 대한 이야기나 개척하는 삶의 이야기가 패배의식이나 위선으로 들리기 마련이다.

 

젊은이의 양지는 그 아픈 현실의 이야기를 웃음의 코드 속에 녹여 제대로 짚어내고 있다. 웃다 보면 어딘지 슬퍼지는 건 그네들이 그토록 말로써 빌 게이츠를 불쌍히 여기고 재벌2세의 불행을 논해도 달라지는 현실은 아무 것도 없다는 점일 게다. 그들은 여전히 취업준비생이고 백수이고 재벌2세다. 자신의 노력으로 자신의 삶이 세워질 수 있는 세상. 우리네 청춘들에게는 사치인걸까.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과연 양지는 있는 것일까.

 

 '패션왕', 가슴 먹먹한 청춘들의 자화상

'패션왕'은 우리네 출구 없는 청춘들의 자화상 같은 드라마다. 비는 마치 그들의 처지처럼 추적추적 내리고 가영(신세경)과 영걸(유아인)은 우산도 없이 길바닥에 내쳐진다. 얼굴에 훈장처럼 상처를 달고 그들은 지금 맨바닥에서 몸부림치는 중이다. 살아남기 위해. 모욕감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버린 조마담(장미희)의 부띠끄에 의탁한 가영을 찾아온 영걸이 그녀에게 손을 내민다. 버스 안. 주머니에 있는 단돈 몇 천원. 속절없이 흐르는 눈물. 그 막막함. 아마도 지금의 청춘들이라면 이들이 흘리는 그 눈물에 가슴 한 켠이 먹먹해졌을 것이다.

 

'패션왕'(사진출처:SBS)

'패션왕'의 가영과 영걸이 태생으로부터 성장의 사다리가 끊겨 있는 인물이라고 해서 이 드라마를 단순히 계급적 차이에 의한 빈부의 대립이나, 그 빈부를 뛰어넘는 신데렐라 스토리로 오해할 필요는 없다. 전혀 다른 계급에 속해보이는 재혁(이제훈)과 안나(유리) 역시 출구가 보이지 않는 건 마찬가지니까. 겉보기엔 무엇 하나 부러울 것 없는 재혁이지만 그는 바로 그 태생의 덫에 걸려 있는 청춘이다. 그는 부모라는 이유로 재혁의 삶에까지 관여하는 정만호(김일우)와 윤향숙(이혜숙)의 그늘에서 숨 막혀 한다.

재혁은 엄마인 윤향숙을 CEO처럼 생각한다. "CEO 전에 네 엄마야."하고 말하는 윤향숙에게 재혁은 "엄마면 이래도 되는 거야?"하고 되묻는다. 그들은 편의에 의해 때론 부모 자식임을 내세우지만 재혁이 사업에 실패하자 가차 없이 뺨을 날리고는 "내 돈 함부로 굴리지 말라"는 엄포를 놓는 그런 CEO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인물들이다. 과장된 면이 있지만 돈과 물질 만능은 때론 자식마저 하나의 물건처럼 보게 만들기도 하나 보다. 그런 부모일수록 출신성분에 집착하는 법. 마치 물건 고르듯 출신성분을 따지는 그들에게 안나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일찍이 부모가 이혼하고 할머니 밑에서 자란 안나는 어떻게든 노력해 그 기득권자들의 세계로 들어가려 하지만 그것은 출신성분이라는 꼬리표에 의해, 또 부족한 실력에 의해 좌절된다. 마치 내세울 거라곤 그것밖에 없다는 듯 끊임없이 마이클이라는 명품 브랜드 디자이너가 자신의 디자인을 인정했다는 것을 자랑하는 영걸에게 안나는 "좋겠다. 마이클이 인정해줘서..."라고 자조 섞인 푸념을 내뱉는다.

'패션왕'이 태생적으로 갈라진 두 개의 삶, 즉 영걸과 가영의 가난한 청춘과 재혁과 안나의 부유한 환경의 대립으로 보이지 않는 것은 이 두 삶 모두 그다지 행복해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참을 보다 보면 재혁의 그 까칠함 이면에 놓여진 우수와 힘겨움이 보이고, 안나의 꼿꼿함 이면에 숨겨진 안간힘이 보인다. 이 네 명의 청춘은 지금 모두 현실에 질식 당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을 숨 막히게 하는 것은 뭘까. 그것은 기성세대로 대변되는 부조리들이다. 실력이 아닌 태생으로 결정되는 삶, 돈이면 뭐든 다 된다는 식의 물질 만능주의, 가진 자가 못 가진 자를 당연하다는 듯 밟고 서는 사회 시스템, 심지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그 관계의 굴레 혹은 폭력... 이것이 진짜 '패션왕'이 대결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태생과 빈부가 다른 네 명의 청춘들이 각자 위치는 달라도 마치 한 배를 탄 듯한 느낌을 주는 건 그 때문이다.

영걸이 은행에서 자금 대출을 하려 하자 대뜸 "담보 없어요?"하고 물으며 난색을 표하는 은행 직원. 그러자 영걸이 "중소기업 지원자금도 7천억이 풀렸다고 하는데 어디로 간 거예요?"하고 묻자 돌아오는 "고객님은 해당사항 없습니다" 라는 절망적인 답변. "그럼 저 같은 사람은 고리사채나 쓰라는 겁니까?"라고 외치는 영걸의 항변이 예사롭지가 않다. 또 정반대로 "엄마면 이래도 되는 거야?"하고 묻는 재혁의 목소리도 남달리 들린다. '패션왕'이 특별한 지점은 이 서로 다른 계급적 위치에 서 있는 청춘들이, 바로 그 청춘이라는 지점 하나로 기묘한 연대의식을 가질 때다. 재혁이 가영에게 우산을 씌워주는 장면이나, 영걸이 술 취한 안나의 신발을 벗겨주는 장면이, 가영과 영걸의 그 깊은 절망감을 보여주는 버스에서의 장면만큼 깊은 감흥을 주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1박2일' 폭포특집, 한 편의 우화 같았던 이유

'1박2일'(사진출처:KBS)

"5천원 더 갖고 가" 엄태웅은 대표로 제주행 비행기를 타는 이승기에게 5천원을 건네고는 식사라도 하라며 남긴 만 원마저 건네려 한다. "아니요. 만 원은 식사하세요. 사람이 밥은 먹고 살아야죠." 극구 거부하는 이승기에게 이제 은지원은 간절한 자신들의 소원을 새삼 되새긴다. "우리 소원알지?" 그러자 이승기는 날 믿으라며 반드시 소원을 이루겠다고 말한다. 은지원은 거기에 대고 "돈 팍팍 쓰면서 아이스크림 같은 거 사먹으면서" 꼭 일등을 하라고 보챈다. 서로를 꼭 껴안고 떠나는 이승기의 바지주머니에 엄태웅은 슬그머니 만원이 든 꼬깃꼬깃한 봉투를 넣는다. 그리고 출국장을 떠난 이승기에게 전화를 걸어 말한다. "오른쪽 바지 주머니 거기에 만원 넣었다."

이 풍경은 왠지 낯설지 않다. 과거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절, 유학을 떠나고 보내는 이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거기 가면 뭔가 대단한 것이 있을 것 같고, 그것으로 가난을 극복하고 소원을 이룰 수 있을 것 같던 그 희망. 그러니 당장 여기서는 굶더라도 보내는 이에게 주머니를 톡톡 털어주는 것이 뭐가 어려운 일일까. '1박2일' 폭포 특집은 '대한민국 1등 폭포를 찾아라'라는 미션으로, 제주도의 비가 올 때만 볼 수 있다는 엉또폭포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먼저 찾아가는 세 명의 소원을 들어주는 이 이야기는 그러나 갑자기 부자와 빈자의 이야기로 바뀌었다. 용돈을 받는 게임에서 돈을 많이 받은 김종민, 강호동, 이수근이 담합을 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담합을 바라보던 나영석 PD는 "여유 있게 들어가서 비행기타고 가셔서 여유 있게 찾아가서 여유 있게 1,2,3등 하는 아름다운 그림을" 보여줄 것이냐며 혀를 찼다. 그러자 강호동은 "이렇게 손 잡을 줄은 몰랐던 거지"라고 말했고, 이수근은 설명을 덧붙여 "예를 들어서 5만 원짜리랑 10만 원짜리랑 손을 잡아야 다 갈 수 있는 것."이라며 자신들의 여행경비 독과점을 마치 자랑이나 되는 것처럼 뽐냈다. 그러자 강호동이 현실을 얘기했다. "리얼 상황이 제일 좋은 게 뭔지 아니? 매번 9회말 투아웃에 역전홈런이 나올 수는 없는 거야. 가끔씩 1회 때부터 15대6으로 이길 수 있는 거야. 이것이 리얼이지." 이수근의 말처럼 현실은 어쨌든 나머지 세 사람, 이승기, 은지원, 엄태웅이 모두 제주도에는 못 온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마치 빈자와 부자의 운명이 이미 태생에서부터 정해진다는 얘기처럼 들린다.

하지만 한 가지 변수가 있었으니 그것이 세 사람 중 두 사람이 포기하고 한 사람을 밀어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변수는 실제로 일어난다. 은지원과 엄태웅이 자신의 돈을 톡톡 털어 이승기의 주머니에 넣어준 것. 이로써 이승기는 결국 이 레이스에서 1등을 차지했고 부자팀은 서로 2,3등을 차지하기 위해 배신과 담합을 이어갔다. 강호동과 김종민이 이수근을 버리고 2,3등을 차지했지만 이승기는 이 이야기의 반전을 소원에 담았다. 이승기의 소원으로 2,3등을 은지원, 엄태웅으로 바꾸겠다는 것.

폭포 특집 미션은 부자와 가난한 자들의 연합으로 이어지면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즉 돈으로 뭉쳐진 부자들은 결국 그 이기심 때문에 붕괴하고, 가난하여 마음으로 뭉치게 된 이들은 서로에 대한 간절함 때문에 서로 단합하게 된다는 걸 우화처럼 들려준 것. 어디 현실에서야 이런 일이 벌어질까 싶지만, 그것을 '1박2일'은 게임을 통해 판타지적인 우화로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렇게 마치 소원을 들어주는 마법의 램프 같은 상징물로 다가온 엉또폭포가 비가 올 때만 볼 수 있는 폭포라는 것 역시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결국 비가 오지 않아 폭포의 자태를 보지 못했던 것. 하지만 결과가 뭐가 중요할까. 이미 과정 속에서 어떤 이들은 그 아름다운 폭포를 보았을 것이니까. 많은 우화들이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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