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의 낭군님’, 진지함과 코믹함 다 되는 남지현과 도경수

사실 새로 시작한 tvN 월화드라마 <백일의 낭군님>의 인물관계도를 보면 그 이야기가 구조가 그리 새롭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원수지간인 부모의 관계 속에서 이뤄진 첫사랑, 왕세자라는 캐릭터, 몰락한 가문의 여인, 사고로 기억을 잃고 평민이 된 왕세자와 어쩌다 보니 혼인을 하게 된 여인,... 많이 봐왔던 조선시대판 멜로사극의 풍경이 그 안에 고스란히 들어있다. 

하지만 <백일의 낭군님>이 시선을 끄는 건 시작 전부터 화제가 되었던 캐스팅이다. 이제는 아이돌 배우에서 ‘아이돌’ 딱지를 떼도 충분할 만큼 연기의 성장을 보여왔던 도경수와, 사극에서부터 현대극까지 아울러 아역에서 성인역으로 성장해왔던 남지현이 그들이다. 첫 회에서 두 사람은 아련한 사랑의 감정과 아픈 가족사를 담아내면서도, 특유의 코믹한 설정들을 소화해내는 연기를 보여줬다. 

특히 눈에 띄는 건 왕세자 이율을 연기하는 도경수다. 시작부터 “불편한 건 나뿐인가”라는 유행어가 될 법한 대사를 반복하며 궁궐 생활의 ‘불편함’을 토로하는 것으로 묘한 코믹함을 만들어내는 이 인물은, 동시에 아버지인 왕(조한철)과 갈등하는 모습 또한 드러낸다. 결국 아버지의 사주로 인해 자신이 좋아했던 윤이서(남지현)의 아버지가 역도로 몰려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또 자신의 어머니 역시. 

그래서 궁궐 생활을 하면서 계속 엇나가는 이 왕세자는 아버지를 왕으로 세운 김차언(조성하)의 딸 김소혜(한소희)와 혼인을 맺지만 그를 피한다. 오랜 가뭄이 왕세자가 세자빈과 합방을 하지 않아 생긴 음양의 부조화 때문이라는 신하들의 이야기에, 왕세자는 조선의 노처녀, 노총각들도 모두 혼사를 시키라는 명을 내리지만 그것을 자신이 겪게 될 줄은 알지 못했다. 결국 저잣거리로 나오게 될 그는 자신의 명 때문에 윤이서와 함께 살아야 하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궁궐 내에서 그가 툭하면 내뱉었던 ‘불편함’은 그래서 향후 저잣거리에서 그가 겪을 진짜 불편함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코믹한 상황이 연출된다. “얼굴만 번지르르하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사내”가 된 그는 악처로 돌변한 윤이서에게 갖은 구박을 받는 존재가 된다. 살짝 비틀어진 관계의 역전이 이 멜로 사극의 코미디적 요소가 된다. 

이율과 윤이서는 각각 저잣거리의 이름을 갖고 있다. 원득과 흠심이라는 이름. 그래서 그들은 100일 간 일종의 가상부부 생활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지만, 때론 가상이 현실이 되기도 하는 법이라 두 사람 사이에 피어날 멜로는 기대되는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그들이 그 저잣거리의 서민적 삶을 통해 진솔한 사랑을 피워내고, 자신의 이름인 이율과 윤이서로 돌아왔을 때 바뀌게 될 변화들 또한.

많은 것들이 이미 예상되는 범위 안에서 전개되는 이야기지만, 그래도 이 드라마가 시선을 끄는 건 역시 남지현과 도경수라는 믿고 보는 배우들 덕분이다. 그들이 만들어갈 코믹하고 절절한 멜로 사극이 <구르미 그린 달빛>이나 <해를 품은 달> 같은 대중적 반향을 일으킬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박보검-김유정, 김수현-한가인 같은 그림 같은 커플의 탄생이 될 테니.(사진:tvN)

'왕사'도 빠져버린 퓨전사극의 늪

어린 시절 겪은 사건과 성장해서 다시 재회해 인연을 이어가는 남녀. 세자와 신하로 만났지만 서로 우정을 키워온 남남. 그리고 이 세 남녀가 미묘하게 얽히는 삼각관계. 세자이긴 하지만 원나라 왕비에게서 태어나 오랑캐의 피가 섞였다 왕으로부터 천대받는 세자. 대부호의 딸로 태어났지만 그 권세를 얻기 위해 정략적으로 다가오는 남자들에 둘러싸인 여인. 그로 인해 어머니마저 죽음을 맞는 비극을 겪은 여인. 두 남녀의 운명적인 사랑....

'왕은 사랑한다(사진출처:MBC)'

MBC 월화드라마 <왕은 사랑한다>의 첫 회는 최근 퓨전사극의 공식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의 포석을 깔아놓았다. 세자 왕원(임시완)과 고려 최고의 거부 은영백(이기영)의 외동딸 은산(임윤아)은 결국 사랑에 빠지게 될 것이다. 두 사람의 절절한 사랑과 그 사랑을 가로막는 권력자들의 암투가 이어지고 이를 지키면서 한편으로는 그녀를 바라볼 왕린(홍종현)의 짝사랑이 또 한 축을 이룬다. 

퓨전사극하면 늘 등장하는 무협 액션과 삼각 멜로 그리고 적당한 정치적 상황과 복수극. <왕은 사랑한다>는 이 모든 걸 갖추고 있지만, 그래서인지 너무 뻔한 느낌이다. 상투적인 장면들도 넘쳐난다. 7년 만에 재회하게 된 왕원과 은산이 툭탁대다가 “나 너 알아”하고 과거 회상으로 넘어가는 장면이나, 왕원을 오히려 압도하는 무술이나 격구 실력 같은 것으로 드러나는 은산의 캐릭터가 그렇다. 질문에 답을 구하기 위해 이승휴(엄효섭)를 찾았다가 술독을 깨버리고 그것 때문에 술을 구하기 위해 세 사람이 산꼭대기에 올라가 구름다리에서 벌이는 모험 역시 너무 뻔하다. 구하려다 서로 껴안게 되는 그런 장면은 너무 흔해져 버렸다. 

고려 충렬왕이 등장하고는 있지만 퓨전사극이기 때문에 역사적 상황을 배경 정도로 그려진다고 해도 너무 역사적인 사건들이 별로 없다는 건 이야기를 너무 가볍게 만든다. 물론 <구르미 그린 달빛> 같은 작품이 역사적 사건을 배제하고도 퓨전사극으로서 충분히 성공을 거두었지만, 거기에는 사극을 빌어 건드린 우리네 현재의 청춘들의 현실 같은 것들이 만들어내는 어떤 공감대가 있었다. <왕은 사랑한다>는 어떤 공감대를 그려낼까. 첫 회만으로는 아직 느끼기 어려운 대목이다. 

역사적 사건이 사라지고 남는 자리를 채우는 건 무협 액션과 멜로다. 물론 무협 액션과 멜로 역시 신선한 스토리와 엮어지면 충분히 흥미로울 수 있지만, <왕은 사랑한다>의 첫 회는 적어도 그런 흥미로움이 있을 것이라는 걸 시청자들에게 설득시키지는 못했다. 그래서 마치 중국 무협드라마를 보는 듯한 이질적인 느낌이 남았다. 토착적인 정서를 잘 부각시키지 못하게 되면서 이야기가 허공에 붕 뜬 듯한 느낌이 드는 것. 

물론 원작이 있는 작품이지만 <왕은 사랑한다>의 삼각 멜로는 송지나 작가의 오래전 작품인 <모래시계>에서 봐왔던(어쩌면 이게 1990년대 드라마의 공식이었는지 모르지만) 그 관계를 변주하는 느낌이다. 보디가드가 호위무사 같은 친구로 바뀐 듯한 그런 구도. 송지나 작가 정도의 경륜이 있는 작가가 왜 이런 뻔한 평작을 하는 지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물론 이건 <왕은 사랑한다>만의 문제가 아니라 최근 우후죽순 쏟아져 나온 퓨전 사극들의 문제다. 아마도 중국을 겨냥한 듯한 작품들이 만든 이야기성에 지나치게 천착하다보니 나온 결과겠지만 깊이 있는 성찰이나 현재를 관통하는 메시지 같은 것들을 찾기가 어려워졌다. SBS <엽기적인 그녀>가 그렇고, 잘 나가다 범작으로 끝을 맺은 MBC <군주>가 그렇다. 

역사 바깥으로 나와 상상력을 한껏 펼치는 것에 무슨 잘못이 있으랴. 다만 그 상상력이라는 것이 너무 성공 공식들만 반복하는 건 굳이 역사 바깥으로 나온 그 이유마저 퇴색시킨다. 사극이 그저 남녀 사이에 벌어지는 멜로의 배경 정도로 다뤄지기 시작한다면 굳이 퓨전사극처럼 ‘사극’이라는 지칭 자체가 의미 없어질 것이다. 이러다 우리네 드라마의 독특한 색깔일 수 있는 사극이라는 장르 자체가 흐릿해지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군주’, 가면과 권력에 대한 중독의 상관관계

가면의 주인은 과연 누가 될까. MBC 수목드라마 <군주>에서 편수회에 의해 죽을 위기까지 처했지만 가까스로 살아남아 보부상 두령이 된 세자 이선(유승호)은 궁 밖에서 힘을 모아 편수회를 무너뜨리고 자신의 왕좌를 되찾으려 한다. 본래 ‘왕세자’라는 가면의 주인은 그였지만 지금 그는 ‘보부상 두령’이라는 가면의 주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군주(사진출처:MBC)'

하지만 여기서 흥미로워지는 지점은 세자 이선의 빈자리에 편수회가 허수아비로 세워놓은 천민 이선(엘)에게 일어나는 변화다. 처음 그는 세자를 위해 기꺼이 자신이 가짜 세자 역할을 하겠다고 나섰지만, 이것이 편수회에 의해 발각되고 세자의 죽음(물론 그건 진짜 죽음이 아니었지만)을 목격하며 대신 세자의 자리에 올라 허수아비 왕이 되자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다.

“내가 진짜 왕이 돼 편수회와 싸워 이기고, 만백성을 구하고, 가은 아가씨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그런 꿈을 꾸게 된다” 천민 이선은 왕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면서 차츰 그 가면의 주인이 되고 싶어 한다. 그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건 자신의 사적인 일들과 무관하지 않다. 편수회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자신의 삶이 자신에게 끝나는 게 아니라 자신의 가족의 운명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그가 편수회를 이겨내고 싶은 욕망을 갖게 만든다. 

그리고 그러한 사적인 욕망은 고스란히 공적인 욕망으로도 이어진다. 그것이 백성을 구하는 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의 사적인 욕망은 가은(김소현)에 대한 연정과도 연결되어 있다. 천민 시절부터 마음에 두고 있었지만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던 그녀가 아닌가. 마침 가은이 궁녀가 되어 궁으로 들어오게 된다는 건 향후 천민 이선이 가은과 맺게 될 애증을 예상하게 한다. 천민 이선은 가은을 마음에 두고 있지만, 가은은 그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게 한 세자라고 생각한다. 이제 ‘가면의 주인’이 되려는 세자 이선과 천민 이선이 겪게 되는 욕망의 충돌은 그래서 가은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사적 멜로로도 연결된다. 

하지만 <군주>의 이야기가 흥미로운 건 단지 이런 ‘가면의 주인’ 자리를 두고 벌어지는 대결과 삼각 멜로 때문이 아니다. 사극으로서는 다소 파격적인 가면 설정에 담겨진 또 다른 의미가 새롭기 때문이다. <군주>의 이야기는 애초에 왕(김명수)이 편수회에 짐꽃에 중독되는 입단식을 치르는 것에서 시작한다. 편수회는 그를 왕으로 세우지만 그 왕은 그 대가로 짐꽃에 중독되어 편수회가 주는 해독약을 정기적으로 먹지 않으면 죽음을 맞게 되어버린다. 이 초반 설정은 권력에 대한 욕망이 중독과 같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즉 가면은 처음 얼굴을 가리고 정체를 숨기는 용도로 등장하지만, 차츰 그것이 왕과 권력의 상징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그 가면을 쓰는 순간부터 그것을 벗기가 어려워지는 ‘중독’ 상태가 되어버린다. 천민 이선이 갖게 되는 욕망은 그래서 권력에 대한 중독의 의미가 담겨진다. 정반대로 궁 밖으로 내쳐진 세자 이선은 그 왕세자의 가면을 벗은 후 민초들의 삶 속으로 들어감으로써 비로소 진짜 왕의 면모를 갖춰가기 시작한다. 그것은 단지 가면을 통한 치기어린 욕망이 아니라 진심으로 민초들을 생각하는데서 나오는 희망이다. 

<군주>는 편수회라는 비선실세와 대결하는 왕세자의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또한 그 안에 천민 이선과 왕세자 이선의 ‘가면의 주인’ 자리를 두고 벌어지는 대결 역시 다루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천민 이선과 왕세자 이선 그리고 백성들까지 모두 중독(권력욕)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신의 주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다소 낮선 가면 설정이지만 <군주>가 이를 선택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보인다. 평이한 사극의 틀을 넘어서 다양한 의미들을 그 설정을 통해 담아내고 있으니.

‘엽기적인 그녀’, 주원은 이 난관마저 이겨낼 수 있을까

아마도 사극이어서 “이게 뭐지” 했을 시청자분들도 많지 않았을까. SBS 월화드라마 <엽기적인 그녀>는 우리에게는 레전드가 되어버린 영화 <엽기적인 그녀>를 원작으로 가져왔다. 하지만 영화가 현대극으로서 대학생들의 청춘 로맨스였다면, 드라마는 아예 사극으로 시대적 배경 자체를 바꿔놓았다. 

'엽기적인 그녀(사진출처:SBS)'

이런 선택을 했다는 것은 얼마나 드라마 <엽기적인 그녀>가 원작의 무게감을 덜어내려 안간힘을 썼는가를 잘 보여준다. 레전드가 된 작품과 비교되기 시작하면 리메이크된 작품의 운명이란 그 결과가 뻔해질 수밖에 없다. 원작에 대한 향수가 있는 시청자들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니 드라마는 아예 사극이라는 틀을 가져와 새로운 작품으로서의 <엽기적인 그녀>를 구상하게 됐을 게다. 

물론 사극이라고 해도 그 안의 이야기 설정은 원작 영화가 가진 것에서 많이 따왔다는 것을 첫 회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견우(주원)가 혜명공주(오연서)를 처음 만나 인연을 만드는 그 장면에서 술에 취한 그녀가 견우에게 토를 하는 대목이 그렇다. 영화에서는 지하철에서 그녀(전지현)가 견우(차태현)에게 토를 하는 장면이 나오고, 어쩔 수 없이 모텔에 그녀를 데려간 견우가 토 냄새를 지우기 위해 샤워를 하다 오해를 받는 장면이 이어진다. 이 이야기 모티브는 사극으로 리메이크된 드라마 속에서도 그대로 사용된다. 

사극으로 재해석되었다고 해도 이처럼 <엽기적인 그녀>는 원작의 그림자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원작을 통해 스타덤에 올랐던 전지현과 차태현의 그림자는 너무 짙다. 이런 한계를 갖고 있는 작품이지만 이렇게 드라마화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 중국이라는 시장을 빼놓을 수 없다. 중국에서 <엽기적인 그녀>에 대한 팬덤은 여전히 뜨거운데, 최근 전지현이 <별에서 온 그대>로 화제가 된 후 다시 이 작품까지 주목받았다. 그러니 이런 분위기에서 <엽기적인 그녀>의 리메이크는 꽤 괜찮은 기획으로 다가왔을 게다. 

물론 사드 배치로 인해 생겨난 한한령으로 <엽기적인 그녀>는 그 애초의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끄는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중국의 한한령은 조금 수그러드는 양상이지만 그 여파는 여전하다. 그렇다고 이미 만들어놓은 작품을 방치할 수도 없는 일, <엽기적인 그녀>는 그런 우여곡절 끝에 방영되게 됐다. 

원작이 드리우는 그림자의 부담감과 중국과의 관계변화에 의해 영향을 받은 콘텐츠라는 한계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엽기적인 그녀>에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그 가능성은 다름 아닌 주원이라는 배우에게서 나온다. <제빵왕 김탁구>부터 시작해, <각시탈>로 우뚝 서고, 쉽지 않을 거라는 <7급공무원>, <굿닥터> 그리고 모두가 실패를 예견하기도 했던 일드 리메이크작 <내일도 칸타빌레>까지 주원은 드라마 불패를 써온 배우다. 그러니 <엽기적인 그녀> 역시 이 난관들을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그저 운이라는 뜻은 아니다. 주원은 캐릭터를 200% 살려내는 남다른 연기력을 통해 드라마의 성공까지 거뒀던 배우다. 이번 <엽기적인 그녀>에서도 상대 역할을 연기하는 오연서의 액션을 코믹하게 받아내는 주원의 리액션이 코미디의 상황을 더 빵빵 터트리게 만들어주고 있다. 물론 액면은 난관과 한계가 다분하지만 ‘그래도 주원이라면...’ 하는 생각이 드는 건 그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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