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시세끼>, 더할 나위 없었던 손호준이라는 대타

 

이런 친구가 잘 돼야 하는데...” <삼시세끼>의 손호준을 본 네티즌들의 반응이다. 나영석 PD는 물론이고 제작진마저 좀 쉬면서 하라고 할 정도로 손호준은 쉴 새 없이 일을 찾았다. 차가워진 날씨에 맨손으로 설거지를 하는 건 기본이고, 아궁이에 불을 때고 요리를 하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수수밭으로 들어갔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다소곳이 앉은 모습은 영락없는 이서진이라는 대선배 앞에서 칭찬받고 싶은 후배의 모습 그대로였다. 게스트로 방문한 최지우에게 지금껏 본 사람 중 제일 예쁘다고 말하는 모습 역시 그저 예의가 아니라 진심이 묻어났다. 신문지를 구겨 건네주는 최지우 때문에 절로 미소가 번지는 손호준은 진심 그녀가 옆에 있다는 게 신기한 눈치였다. 김장을 담그기 위해 고춧가루를 빻으면서도 손호준은 최지우에게 칭찬받고 싶은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꽃보다 청춘>에서 이미 알려진 것이지만 손호준은 20대를 그리 평탄하게 보내지 못했다. 일이 없어 배고픈 나날들을 보낸 적도 많았고 그럴 때 도움을 준 지인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그러면서 어언 30대에 접어들어 겨우 청춘의 꽃이 핀 인물이다. <응답하라 1994>로 이름을 알린 손호준은 신원호 PD와 이우정 작가를 은인으로 생각했다.

 

<삼시세끼>라는 프로그램에 옥택연의 빈 자리를 채워주기 위해 잠시 출연한 것이지만 손호준은 확실한 자기만의 존재감을 남겼다. 그는 거의 말을 하지 않은 편이었지만 어딘지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표정과 시키지 않아도 척척 알아서 일을 하는 몸에 밴 습관은 보는 이들마저 짠하게 만들었다. 도대체 그 짠함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그에게서 느껴지는 건 우리네 청춘들의 고단함이다. 열심히 하려고 해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청춘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누구보다 열심히 하려는 모습이 그에게서는 역력히 느껴졌다. 이서진이나 최지우 같은 선배들이 자신이 만든 된장국을 먹고 맛있어 하자 얼굴 가득 숨길 수 없이 번지는 미소에서는 웃음과 함께 짠함도 동시에 묻어났다. 도대체 얼마나 절실한 삶을 그는 살아왔던 것일까.

 

옥택연의 대타로 잠깐 들어왔지만 이서진의 말대로 택연이보다 더 잘 한다는 소리를 들은 손호준에게서는 저 <미생>의 장그래가 느껴진다. 자신 앞에 놓여진 현실 앞에서 노력이 부족했다고 오히려 자신을 탓하는 장그래처럼 <삼시세끼>의 손호준은 마치 남다른 노력을 자신이 가장 잘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처럼 보였다. 자신의 노력은 질이 다르다고.

 

<삼시세끼>의 손호준을 보며 <미생>의 장그래가 떠오른 건 그 남다른 노력이 지금의 청춘들이 겪고 있는 심지어 자학적인 절실함으로까지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옥택연의 빈자리를 대신 채워준 손호준은 <미생>의 장그래에게 오차장이 써준 문구처럼 더 할 나위 없는출연자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실로 이런 친구들이 잘 되는 세상이어야 하지 않을까.

 

이젠 <헬로 이방인>같은 외국인 예능도 농촌으로

 

이젠 외국인들도 농촌으로 간다? 2% 시청률에서 허덕이는 MBC <헬로 이방인>이 꺼낸 카드는 농촌이다. <헬로 이방인>은 강원도 모운동 마을을 방문해 현지 주민들과의 12일을 보내는 장면을 내보냈다. 워낙 침체의 늪이 깊어 그다지 큰 효과가 즉각 드러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껏 나왔던 <헬로 이방인>의 그 어떤 장면들보다 이 시골 어르신들과 외국인들의 만남은 각별하게 다가왔던 것이 사실이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몇 안 되는 집들에 홀로 살아가시는 어르신들과 외국인들의 만남. 그 장면 자체로도 왠지 모를 뭉클함을 전해주었다. 특유의 친화력으로 어르신들과 스스럼없는 모습을 보여준 강남이나, 첫 출연이지만 정이 느껴지는 터키의 핫산, 어르신들 앞에서 곰 세 마리를 부르며 재롱잔치를 한 후지이 미나, 할머니를 쉬게 해주려고 열심히 콩 타작을 한 제이크... 별 것 아닌 장면처럼 보였지만 시골 어르신들과 이방인들의 교감은 훈훈한 정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농촌이 어느새 예능의 텃밭으로 떠오르고 있다. 물론 <헬로 이방인>은 프로그램의 형식적 한계 때문에 그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지만 <12>이나 <삼시세끼>는 대표적인 성공사례다. 김제 신덕마을로 내려가 할머니들과의 하룻밤으로 깊은 감동을 전해주었던 <12>은 왜 농촌이 그 공간만으로도 보는 이들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지를 잘 보여주었다. 어딘지 소외된 공간으로서의 농촌은 프로그램이 방문하는 것만으로도 정서적인 공감을 만들어낸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하룻밤도 특별해지는 이유다.

 

나영석 PD<삼시세끼>는 농촌의 라이프 스타일을 하나의 예능으로 끌어안은 프로그램이다. 어찌 보면 고립되고, 또 고된 노동의 현장으로 피하게 되는 그 시골이란 공간을 이 프로그램은 즐기는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문명의 이기가 전혀 없는 이 곳에서는 난방조차 직접 장작을 패 때워야 하고, 한 끼 먹기 위해 한 나절을 준비하거나, 텃밭을 키우고 수수를 거둬들이기 위해 힘겨운 노동을 해야 하지만, 그것은 <삼시세끼>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들여다보면 또 하나의 즐거움으로 변모한다.

 

불 피우고 가마솥에 밥을 지어 먹는 게 하나의 로망으로 다가오고, 깜깜절벽에 올려다 보면 지천으로 떨어지는 별이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설렘을 만드는 이 곳에서는 떨어지는 빗물 소리 하나, 소소한 읍내 나들이 하나마저 하나의 사건처럼 다가온다. 그러다 가끔 찾아오는 누군가의 방문은 그래서 더 각별할 수밖에 없다. 별 특별할 것이 없어 더 특별해지는 <삼시세끼>라는 시골이 만들어내는 놀라운 마법이다.

 

사실 농촌으로 예능 프로그램이 간 건 지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오래전 서세원의 <좋은 세상 만들기>라는 프로그램이 그랬고, <12>은 초창기부터 시골과 오지를 텃밭으로 삼았으며 <패밀리가 떴다><청춘불패> 역시 시골의 라이프 스타일을 배경으로 삼아왔었다. 하지만 최근 예능이 다루는 시골의 풍경은 막연한 고립과 소외의 이미지에서 한 차원 더 나간 느낌이다. <삼시세끼>를 통해 보여지듯이 이제 그 시골은 도시인들이 가끔 꿈꾸는 공간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제주도에 내려간 이효리가 시골의 소소한 삶을 즐기며 콩 수확을 벌이는 모습이나 <삼시세끼>의 이서진과 옥택연이 티격태격하면서 즐기는 시골의 삶은 이제 복잡한 도시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잊고 있던 그 무언가를 깨닫게 하는 면이 있다. 그것은 삶의 본질이다. 모두가 바쁘게 저마다의 욕망을 안고 뛰고 또 뛰고 있지만, 삶은 오히려 가끔 그렇게 멈춰서는 곳에서 제 모습을 드러내준다는 것. 요즘 농촌이 텃밭이 된 예능 프로그램들이 보여주는 훈훈함의 정체다.

 

<삼시세끼>부터 <미생>까지 금요일 장악한 케이블

 

이제 금요일 밤의 주도권은 지상파에서 케이블로 넘어가고 있는 것일까. 물론 시청률 전체 수위를 차지하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은 여전히 SBS <정글의 법칙>이다. 시청률 13.5%. 하지만 예전만큼 화제성이 뜨거운 프로그램은 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이런 시청률이 나오는 건 이미 이 프로그램이 고정 시청자들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정글의 법칙>은 중장년 시청층에게도 충성도가 높은 프로그램이다.

 

'띠동갑내기 과외하기(사진출처:MBC)'

MBC가 새롭게 편성한 <띠동갑내기 과외하기>의 시청률은 3%에 머물고 있다. 기획적인 포인트나 시도 자체는 괜찮게 보인다. 하지만 금요일 밤의 치열한 경쟁을 염두에 두고 보면 너무 임팩트가 약하다는 게 약점이다. 큰 기대감을 만들지 못하기 때문에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인 프로그램이 되고 있다.

 

KBS <나는 남자다>는 유재석을 메인 MC로 두고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시청률이 4% 대다. 포커스를 남자들에 맞춰 놓는 차별화를 시도했지만 역시 스튜디오 토크쇼가 갖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최근에는 여성들을 객석에 초대하는 변화를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 효과는 별로 없었다. 무언가 형식 자체가 특화된 것이 아니라면 명 MC라도 어쩔 수 없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오히려 이 금요일 밤에 살아나고 있는 지상파 예능은 SBS <웃찾사>. KBS <개그콘서트> 이외에 그다지 무대 개그 프로그램으로서 주목받지 못했던 <웃찾사>는 최근 지속적인 아이디어로 호평을 이끌어내고 있다. 현실 풍자 개그를 보여주는 ‘LTE뉴스나 혀 짧은 임금 캐릭터가 등장하는 뿌리 없는 나무같은 코너는 <개그콘서트>의 패턴화된 개그와는 색다른 묘미를 선사하고 있다.

 

MBC <나 혼자 산다>는 새로운 인물의 투입과 하차가 자유로운 형식의 이점 때문에 계속 신선함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역시 예전만은 점점 못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노홍철의 하차가 주는 빈 자리는 확연히 느껴진다. 무엇보다 이제 나홀로 족에 대한 콘텐츠들이 너무 많아진 것도 프로그램의 신선함이 덜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다.

 

반면 시청률면에서도 또 화제성 면에서도 압도적인 건 최근 tvN<미생>, <삼시세끼> 그리고 종영한 <슈퍼스타K6>의 라인업이다. 케이블로서는 이례적으로 <미생>6%, <삼시세끼>7% 그리고 <슈퍼스타K6>도 평균 4.6%의 괜찮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런 시청률보다 더 고무적인 건 화제성이다. 다음날 토요일판 포털을 들여다보면 거의 이들 케이블 프로그램들의 기사들로 도배되다시피 되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금요일 밤 지상파 프로그램들의 존재감은 점점 시들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지상파 프로그램에 파괴력이 느껴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신선함이 없다는 점이다. <정글의 법칙>이나 <나 혼자 산다>처럼 처음에는 신선했던 프로그램도 반복적으로 비슷한 패턴을 보여주면서 그 신선함이 사라지고 있고, <나는 남자다><띠동갑내기 과외하기> 같은 새롭게 출시된 프로그램들은 굳이 봐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다.

 

육아예능처럼 뭔가 잘 되면 우 몰려 비슷한 프로그램들을 양산하면서 결국에는 더 빠른 소비로 동반 추락을 겪는 것도 지상파 프로그램들의 한계로 지목된다. 완전히 새로운 시도 자체를 하기 보다는 스타 MC를 기용하거나 이미 성공했던 아이템을 가져와 변용하는 식으로 안전함을 선택하는 것도 지상파 프로그램이 식상해지는 이유다.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유기농 예능에 도전해 하나의 트렌드를 만들어내고 있는 나영석 PD<삼시세끼>, 드라마 내용상 불필요한 멜로 따위는 애초에 접어버림으로써 오히려 호평을 이끌어내고 있는 <미생> 같은 프로그램에서 이제 지상파가 배워야할 때다. 이제 안전한 시도에서 가져갈 것은 없는 상황이라는 걸 인식하지 못하고 기존의 패턴을 유지한다면 이미 케이블로 넘어가고 있는 주도권을 되돌릴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삼시세끼>, 김범수의 집밥이 전하는 따뜻함이란

 

집 밥 너무 그리워. 가족의 마법. 본가 따뜻한 집으로. 내가 쉴 수 있는 곳-’ 도대체 집밥이 주는 이 놀라운 위로는 어디서 비롯되는 걸까. 최근 김범수는 정규 8집을 내면서 타이틀곡으로 집밥의 뮤직비디오를 공개했다.

 

사진출처: 김범수의 '집밥' 뮤직비디오

바쁜 도시인들의 일상과 혼자 꾸역꾸역 한 끼를 때우기 위해 샌드위치에 햄버거를 입안에 밀어 넣는 모습. 뮤직비디오에 등장한 양동근은 샌드위치를 씹다가 문득 한숨 같은 것을 툭 뱉는 장면을 연출해 보여준다. 아마도 그 한 숨이 우리들 마음 그대로일 것이다.

 

그러면서 뮤직비디오는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집밥을 보여준다. 막 지은 듯한 따뜻한 밥 한 공기와 정성스레 만들어진 계란말이, 투박해보여도 군침 돌게 만드는 콩자반과, 색깔만으로도 식욕을 자극하는 김치, 불고기... 늘 외지생활에 혼자 생활에 도시생활에 화려해 보이는 외식이 주식이 됐던 이들이라면 그 장면 하나가 주는 알 수 없는 가슴 먹먹함을 김범수의 노래를 통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비주얼 가수로서 더 이미지화된 김범수. 아마도 이번 정규 8집에서는 초심이 그리웠나 보다. 뮤직비디오 중간에 엄마에게 전화를 건 김범수가 집밥 먹고 싶어서라고 하자 엄마가 얼마든지 해줄게라고 말하는 장면은 별것 아닌데도 우리의 마음을 훈훈하게 만든다. 그건 김범수의 진심이기도 할 것이다.

 

집밥이 새롭게 주목되고 있다. 나영석 PD가 들고 온 <삼시세끼>가 예능에 새로운 파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이 집밥의 위력이다. 나영석 PD 스스로도 망할 줄 알았던프로그램이 이렇게 하나의 트렌드 리더로서 자리한 건 놀라운 일이었을 게다. 그는 <삼시세끼>를 설명하며 굵직한 메인 스토리가 없다는 게 이 프로그램의 약점이라고 말했지만, 바로 그 점이 이 프로그램의 강점이 된 셈이다. 뭐 특별할 것 없어도 마음의 허기를 건드리는 집밥처럼.

 

그렇다면 도대체 왜 집밥이 이렇게 콘텐츠의 강력한 소재가 된 것일까. 혹자들은 이것이 전체 가구의 4분의 1이 싱글족이 된 현 생활 패턴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한다. 맞는 이야기다. 혼자 사는 이들은 김범수가 집밥의 첫 구절로 노래한 것처럼 기다려지지 않는 퇴근길을 경험한다. 따뜻한 집밥 한 끼가 주는 퇴근길에 대한 기대가 없는 허전함이란.

 

하지만 단지 싱글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만으로 집밥의 울림을 모두 설명하긴 어렵다. 거기에는 정신없이 바쁘고 복잡해진 현대인들의 삶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니 <삼시세끼>가 보여주는 시골 공간처럼 모든 바쁘고 복잡한 생활에서 벗어난 하루의 세끼 챙겨먹는단순한 삶이 하나의 로망처럼 다가오는 것일 게다.

 

결국 사는 건 그 삼시세끼를 챙겨먹는 일의 반복일 뿐이라는 전언은 우리의 마음을 깊게 위로해준다. 뭐가 그리 대단할 것이며 뭐가 그리 못났을 것인가. 그저 다 같은 한 끼 밥을 챙겨먹는 것으로 살아가는 게 우리네 삶이다. 세상을 힘들게 만드는 모든 서열 체계와 격차들은 집밥 하나로 무너져내린다. 그저 단순해 보이는 소박한 집밥에는 그토록 우리의 마음을 훈훈하게 만드는 위로가 담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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