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에게도, 시청자에게도, 예능에도 좋지 않다

컴백한 비와 김종국이 예능을 장악했다. 거의 일주일 내내 채널을 돌리다 걸리는 예능 프로그램 속에서는 이들이 게스트로 출연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월드스타 비는 해외활동 때문에 국내에 그간 보이지 못한 얼굴을 한껏 보여주겠다는 의지로 거의 모든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진솔한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다. 김종국 역시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하느라 그간 뜸했던 방송에 새 앨범과 함께 컴백하면서, 특히 집중적으로 예능 프로그램을 공략하고 있다.

비는 ‘무릎팍 도사’, ‘예능선수촌’, ‘상상플러스’에 이어 ‘패밀리가 떴다’에 출연할 예정이고, 김종국은 ‘패밀리가 떴다’, ‘놀러와’에 이어 ‘상상플러스’에도 출연했다. 물론 그 동안 얼굴을 보지 못했던 팬들 입장에서는 그들의 방송출연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연거푸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비슷비슷한 이야기를 계속 반복하는 것은 시청자의 입장에서나 예능 프로그램의 입장에서나 또 비와 김종국 당사자들에게도 그다지 좋은 것은 아니다.

비가 출연해 진솔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냈던 ‘무릎팍 도사’는 한 청년의 세계를 향한 도전과 좌절, 그럼에도 그걸 딛고 일어선 비의 불굴의 의지를 볼 수 있었다. 비가 강조한 오기와 독기는 혼자 세계와 대항하는 듯한 그의 이미지를 세워주면서 동시에 힘겨운 젊은이들에게 어떤 힘을 불어 넣어주기까지 했다. 한편 배고팠던 시절의 이야기는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가 그 이야기를 ‘예능선수촌’과 ‘상상플러스’에서 반복해서 하자 그 의미는 상당부분 사라져버렸다. 그 진술은 반복되면서부터 진솔함의 토로에서 홍보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이것은 김종국도 마찬가지다. 김종국은 과거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여주었던 이미지를 대체로 그대로 반복했다. ‘패밀리가 떴다’는 사실상 김종국을 하나의 캐릭터로 구축하기 위해 온 패밀리가 김종국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해프닝을 벌였다. 그는 ‘놀러와’와 ‘상상플러스’에 연거푸 출연하고 앞으로도 ‘패밀리가 떴다’에 게스트의 입장으로 계속 출연할 예정이다.

하긴 그들의 출연목적은 본래부터가 홍보이기는 했다. 가수가 음반을 내고 홍보를 하기 위해 예전 같으면 가요 프로그램에 출연해야 하겠지만 지금은 그것보다는 예능 출연이 더 효과적인 세상이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예능 선택은 다다익선인 셈이다. 하지만 그들이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과거와 지금의 예능 사정은 달라졌다. 예능의 리얼리티화는 홍보 프로그램으로 전락한 예능 프로그램에 던진 시청자들의 외면에서부터 생겨난 것이다. 아무리 홍보를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매번 비슷한 식단을 들고 예능에 등장하는 것은 그들 입장에서도 그다지 유익한 것이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그로 인해 예능 프로그램이 홍보 프로그램으로 변질되면서 결국에는 시청자들의 볼 권리를 빼앗는다는 점이다. 이것은 그들이 아예 고정MC로 출연하는 것과는 성격이 다르다. 아예 고정이라면 프로그램 속에 어떤 캐릭터로서 기여하면서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선사하는 입장이 되지만 여기저기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게스트라면 프로그램의 진정성을 그 자체로 흐트러뜨리게 될 위험성이 있다.

탈신비주의도 좋고 보다 친근한 모습으로 대중들에게 다가간다는 취지도 좋다. 하지만 이들에게 집중적으로 쏠리는 예능 프로그램의 자력은 그다지 건설적이지 못하다. 오랜만에 돌아온 비와 김종국, 그 반가운 얼굴이 자칫 식상해지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말을 버리자 말장난이 된 ‘상상플러스’

‘상상플러스’라는 토크쇼의 미덕은 말이 가진 표현에 천착했던 점이다. 스타에 관한 재치가 넘치는 댓글들을 방 한 가득 붙여놓고 거기서 몇 개를 골라 스타의 이면을 얘기하는 포맷 속에는 기본적으로 네티즌의 참여와 그 참여한 네티즌의 재치 넘치는 댓글이 힘을 발휘한다. 이 토크쇼에서의 대화는 따라서 저들끼리의 이야기가 아닌 네티즌이 참여된 이야기가 된다.

이 미덕이 발전적으로 이어지면서 큰 인기를 끌었던 코너는 ‘세대공감 올드 앤 뉴’이다. 여기서 말은 코너의 중심주제로 부각되었다. 젊은이들의 언어와 기성세대의 언어를 끄집어내면서 세대간의 공감대를 형성하겠다는 취지가 있었기에 토크쇼라면 응당 있기 마련인 연예인들의 신변잡기는 인정되었다. 게다가 그러한 취지를 살리듯 프로그램의 중심에는 노현정이라는 아나운서가 앉아 있었다.

아나운서가 자리한다는 점은 그 자체로 언어에 대한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준다. 잘못된 표현은 거침없이 수정하고, “공부하세요”라고 말하는 노현정 아나운서는 오락프로그램의 말장난 속에서 오히려 더 빛나게 되었다. 문제는 점차 노현정 아나운서가 인기를 얻으면서 연예인화 되어갔다는 점이다. 이 도무지 어느 국적의 사람들인지 의심케 만드는 출연자들의 말장난을 수정하고 교정해주는 역할에서 함께 웃고 즐기는 상황으로 바뀌었던 것.

이것은 만일 이 코너의 취지가 말 그대로의 잘못된 언어사용이나 세대차이가 나는 언어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제대로 된 언어사용을 하는 아나운서마저 무너지게 만드는 잘못된 언어들의 공격을 통한 재미였다면 당연한 귀결이었을 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지는 않을 것이나, 결과적으로는 그런 과정을 따라간 것은 분명하다.

노현정 아나운서가 빠지고 백승주 아나운서나 최송현 아나운서가 그 자리에 앉자 이런 상황은 더 가속되었다. 아나운서가 해야 할 역할을 잃어버린 것이다. 노현정 아나운서는 적어도 아나운서로서의 위치를 지키는 과정에서 어떤 웃음을 주었지만, 나머지 두 아나운서는 그런 역할이 강조되지 않았다. 함께 출연진들과 웃고 떠들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자 아나운서들은 말 그대로 말발 센 개그맨들 앞에서 꿔다 논 보릿자루 신세가 되었다.

새로운 포맷으로 시작하는 ‘놀이의 탄생’은 이제 ‘상상플러스’가 댓글과 같은 언어의 세계를 버리고 전혀 다른 세계로 진입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놀이의 탄생’이 시청자들의 참여를 요구하는 부분은 재치 있는 말이 아니라 아이디어다. 따라서 이 포맷의 재미는 아이디어 자체라기보다는 그 아이디어를 실현해내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종의 몸 개그다.

‘상상플러스’는 ‘야심만만’처럼 점점 사라져가고 자리를 잃어가는 토크쇼들 속에서 몸 개그로의 전환을 하려 하는 것일까. 중요한 것은 토크쇼가 힘을 발휘하지 못했던 것은 저들만의 이야기, 신변잡기식 토크쇼에 물린 탓이라는 점이다. 말을 버리자 말장난이 되어버린 ‘상상플러스’를 보며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은, 애초부터 시청자 참여를 이끌며 나가려 했던 ‘상상플러스’만이 가진 말에 대한 감수성이 아쉽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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