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촌구석의 따뜻함과 위로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아

“나 회사 안가.”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며 매일 아무 생각 없이 살던 어느 날, 문득 바람결에 날아온 벚꽃 잎을 발견하고 여름(설현)은 충동적으로 일탈을 선언한다. 모두가 서울로 출근하는 길, 그 정반대로 가는 전철을 타자 늘 지옥 같던 출근길과는 너무나 다른 마법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바쁜 사람 하나 없는 한가한 전철을 타고 목적지 없이 낯선 곳을 향해 가는 발걸음. 번아웃이 일상이 되어버린 도시인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상상해봤을 일이 아닐 수 없다. ENA 월화드라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는 그 도발적인 제목이 먼저 지친 마음을 툭툭 건드리며 시작하는 작품이다. 

 

마음의 양식이라는 책을 만드는 출판사지만, 사람의 영혼을 갉아먹는 얌체 상사가 어떻게든 부려먹고 갈취하고 심지어 성희롱을 일삼는 그런 곳에서 여름은 탈출한다. 그리고 그것이 누군가 만들어놓은 기준(이를 테면 직장을 다녀야 하고 승진을 해야 하고 돈을 벌어야 하는 식의) 속에서 모두가 한 방향으로만 달리게 되어 있는 사회 시스템이 작동하며 벌어지는 일이라는 걸 체감하게 된 여름은 모든 걸 정리해 배낭 하나에 꼭 필요한 것들만 담아 그 시스템 바깥으로 빠져나온다. 

 

그리고 도착한 곳이 어느 한적한 시골마을 안곡마을이다. 살 집도 집을 구할 돈도 변변찮은 상황, 부동산 아저씨는 그 곳에 오래도록 방치되어 있는 당구장 건물을 여름에게 월세 5만원에 내준다. 건물에 사람 온기를 만들어 집주인이 원하는 괜찮은 가격에 매매를 하기 위함이지만 어쨌든 여름에게는 월세 5만원이면 연세를 내고 1년 간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살 수 있는 곳이다. 여름은 그 곳에 머물며, 그 마을에 있는 도서관을 다니며 소일한다. 도시에서는 출판사에서 지옥 같은 삶을 살았던 여름이지만, 이 시골에서는 도서관에서 한가로이 소일하는 삶을 산다. 똑같은 책이지만 팔기 위해 애쓰는 도시의 계산과는 너무나 다른 시골의 풍경이다. 

 

제목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지만, 드라마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건 아니다. 여기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선언은 ‘남들의 기준에 맞춰 사는 삶’을 살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러니 그 바깥으로 나온 삶을 또 다른 세계에서 진정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삶을 그려낸다. 혼자 순댓국 하나를 시켜놓고 낮술을 마시고 거나하게 취해 시골을 돌아다니거나, 하릴없이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길에서 만난 할머니를 도와주거나 길 잃은 강아지를 챙겨 보살펴 준다. 

 

또 안곡마을이라는 촌구석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간다. 도서관에서 만난 남다른 따뜻함을 가진 사서 대범(임시완)과 실수로 얽히며 가까워지고, 도서관에서 만난 여고생 봄이(신은수)와 갈등과 화해를 거쳐 자매처럼 친해진다. 건물을 팔고 싶어 했지만 여름 때문에 못팔게 된 건물주의 아들 성민(곽민규)은 여름과 갈등하지만 결국 세상 마음 착하고 여린 인물이라는 게 드러나고 여름이 살고 있는 그 살풍경한 당구장에 중고물품들을 가져와 살만한 공간으로 만들어준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에서 도드라지는 관전 포인트는 ‘돈’으로 계산되는 세상과 마치 대결하는 것처럼 보이는 ‘마음’으로 연결된 사람들의 따뜻한 면면이다. 술에 취해 전 재산 450만원을 찾아 비닐봉지에 들고 다니다 잃어버린 여름을 위해 대범은 마치 제 일처럼 쓰레기더미들을 뒤져 돈을 찾으려 해주고, 성민의 아들이 주워 가지려 했다가 갖다 준 그 돈을 대범은 자신이 마치 챙긴 것처럼 거짓말을 하며 여름에게 돌려준다. 성민의 아들을 챙기기 위함이다. 그런 사실을 알게 된 성민은 여름을 찾아와 아들의 일을 사과하고 그 마음을 담아 당구장을 살만한 공간으로 꾸며준다. 

 

또 봄의 아버지가 술에 취해 봄과 실랑이를 벌이다 칼로 찌르는 사고가 발생하고, 아버지가 감옥에 가는 걸 막기 위해 봄이 스스로 찔렀다고 증언함으로써 보험 적용을 받을 수 없게 되자 그 병원비를 챙기기 위해 나서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도 그렇다. 여름은 보증금을 빼서 병원비를 내려하고, 성민은 아버지 카드를 훔쳐 가져온다. 누가 그 병원비를 냈는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아마도 그건 대범이 아닐까 싶다. 물리학 천재지만 이 시골마을의 사서로 지내고 있는 대범은 그 천재성으로 이론을 발표해 이름을 알리고픈 교수의 제안을 계속 거절해왔다. 하지만 결국 그 교수를 찾아간 건 당장 병원비가 필요하게 된 상황 때문이었다. 

 

돈은 어디든 필요하지만 그것이 나의 욕망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누군가를 위한 마음에서라는 게 이 안곡마을이라는 촌구석에서 다른 점이다. 거의 폐가에 가까운 당구장이 여름이 오고 나서 봄도 오고 또 겨울이라는 강아지도 살게 되면서 온기를 갖게 되고, 그 곳에 성민과 봄을 짝사랑하는 재훈(장재민)이 옥상을 예쁘게 꾸며 봄의 퇴원을 축하하는 파티를 열어주는 장면과, 교수를 만나고 나서 더 빨리 이 촌구석으로 돌아가려 하는 대범의 모습을 통해 이 드라마는 말하고 있다. 이것저것 하라고 하는 세상에서 벗어나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은 이들의 항변은 실상 저 돈으로만 환산되어 달려가는 세상 바깥에서 사람의 온기로 가득한 진짜 삶을 마주하고 싶은 목소리라는 것을. 

 

아쉽게도 안곡마을이라는 변방의 삶처럼 ENA라는 채널에 묶여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는 0%대 시청률에 머물러 있다. 혹자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무려 최고시청률 17.5%를 냈다는 사실을 들어 이런 시청률이 채널의 인지도와는 상관없는 작품의 문제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성공은 넷플릭스라는 OTT가 공조하면서 그 저변이 만들어지고 자연스럽게 ENA 본방을 찾게 되는 선순환 속에서 이뤄진 것이기 때문이다.

 

시즌이 티빙과 합병되고 그래서 이제 티빙을 통해 이 드라마를 접할 수 있게 된 상황은 그래서 이 작아 보이지만 한없이 가슴을 몽글몽글하게 만드는 드라마의 반등을 기대하게 만든다. 안곡마을이 보여주는 그 위로와 따뜻함을 더 많은 이들이 느끼기를. 저 여름과 대범이 애써 살고 싶어 하는 그 촌구석의 따뜻함을 더 많은 이들이 발견하기를 기대한다.(사진:ENA)

'안시성', 호불호 갈리는 압도적 볼거리와 약한 스토리 사이

영화 <안시성>은 지축을 뒤흔드는 말발굽 소리로부터 시작한다. 달리는 말과 창과 칼을 들고 맞붙는 당 태종의 군대와 고구려군의 치열한 전장. 살점이 잘려져 나가고 피가 튀는 그 현장이 마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 상황을 고스란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재연된다. 

그 영화의 도입 부분을 채운 전투 장면은 앞으로 이 영화가 어떤 걸 보여줄 건가를 말해준다. 제목만 들어도 그 내용을 모를 우리네 관객은 없을 소재. 20만 당나라 최강의 대군을 맞아 고작 5천의 병사들로 이를 물리친 양만춘 성주가 이끈 안시성 전투가 그것이다. 

KBS 대하사극 <대조영>에서도 다뤄졌고, SBS 드라마 <연개소문>에서는 제작비 400억 중 상당한 액수를 소진시켜 결국 전체 드라마를 휘청하게 만들었던 게 바로 초반 안시성 전투 스펙터클이었다. 그 정도로 안시성 전투라는 소재를 재연해내려는 역사 콘텐츠들의 야심은 계속 있어왔다. 그러니 영화 <안시성>이 다루는 이야기는 이미 우리네 관객들이 대부분 아는 것이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재연해낼 것인가가 이 영화가 가진 관건이었다.

<안시성>이 그려내는 인물들은 다소 전형적이고 도식적이다. 백성들에게 자애로운 성주 양만춘(조인성), 그와 정치적으로 부딪치는 연개소문(유오성), 양만춘을 따르는 무사들로 부관인 추수지(배성우), 도끼를 쓰는 부월수장인 활보(오대환), 그와 티격태격하면서도 서로를 챙기는 환도수장 풍(박병은)이 있고, 양만춘의 여동생인 백하부대장 백하(설현)와 그의 연인인 기마부대장 파소(엄태구)가 등장한다. 캐릭터 설명만으로도 그들이 앞으로 어떤 일들을 해나갈 것인가가 어느 정도는 예측 가능한 그런 인물들을 <안시성>은 배치해놓는다. 

이렇게 쉽게 전형적인 인물을 사용하고, 안시성 전투라는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 소재를 가져왔다는 건, 이 영화가 주력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전투 장면의 스펙터클이라는 걸 명백히 해준다. 그래서 영화는 이야기의 재미보다는 볼거리의 재미가 훨씬 더 관객을 몰입시킨다. 특히 우리네 사극에서 이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공성전’을 다룬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밀고 당기는 전투의 스펙터클은 관객의 시선을 압도하기에 충분하다. 

성을 부수고 들어오려는 당 태종과 이를 막아내면서 반격을 가하는 양만춘의 치열한 두뇌싸움은 흥미롭고, 도저히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은 공격 속에서 이를 뒤집는 전략들은 ‘전쟁 스펙터클’이 보여줄 수 있는 극점들을 보여준다. 특히 공간감을 잘 인지하게 만든 연출은 관객이 안시성에서 벌어지는 전투의 여러 국면들에 함께 하고 있다는 느낌을 전해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다만 이렇게 스펙터클이 강렬하게 전편에 채워지다 보니 가끔씩 전투의 소강상태에서 이어지는 드라마들이 너무 소소하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이것은 인물을 다소 전형적으로 그려 놓은데서 빚어진 결과이기도 하고, 애초부터 인물을 파기보다는 전쟁의 양상에 더 집중하겠다는 영화의 전략에 따른 결과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안시성>은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영화다. 볼거리를 찾는 관객이라면 <안시성>의 시종일관 이어지는 전쟁 스펙터클이 압도적인 재미로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보다 섬세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원하는 관객이라면 인물에 대한 평이한 이야기에 아쉬움을 느낄 수 있다. 다만 분명한 건 <안시성>은 극장에서 봐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영화라는 점이다. 시각과 청각이 아우러진 그 시스템 속에서 더더욱 생생하게 느껴질 수 있는.(사진:영화'안시성')

‘삼시세끼’의 일상, 낯설음보단 익숙한 게스트가 최적

이종석의 무엇이 tvN 예능 프로그램 <삼시세끼>의 풍경을 다르게 만든 걸까. 사실 지난 번 설현이 게스트로 등장했을 때 <삼시세끼>는 어딘가 지금껏 봐왔던 것과는 다른 공기를 느끼게 했다. 어딘지 잘 어우러지지 않는 느낌이랄까. 물론 그건 설현의 문제라기보다는 조합의 문제일 수 있고 나아가 <삼시세끼>라는 특정 프로그램의 색깔이 가진 부조화의 문제일 수 있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그래서 그것은 <삼시세끼>의 게스트 출연이 만들어낸 문제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건 그리 틀린 이야기도 아니다. 게스트가 들어온다는 건 기존의 분위기에 변화를 만들 수밖에 없다. 이서진과 에릭, 윤균상은 마치 삼형제처럼 이제 가까워졌고 그래서 뭐라 말 하지 않아도 척척 합이 잘 맞는다. 그런 분위기에 낯선 인물이 들어오면 조금 어색해질밖에. 그리고 그런 새로운 조합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게스트가 들어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종석이 게스트로 출연하고, 그를 위해 삼형제가 어설픈 몰카를 하기 위해 오히려 자기들이 더 힘든 노력들을 보이며 결국 몰카임이 밝혀지고 평소 친했던 윤균상과 이종석이 만나는 그 일련의 과정은 너무나 자연스러웠고 또 재미도 있었다. 도대체 같은 게스트인데도 이런 차이가 만들어진 건 왜일까.

그것은 <삼시세끼>라는 프로그램이 가진 특징이 그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과 동시에 살짝 낯선 것이 들어와 새로운 이야기를 전해주는 그 균형에서 재미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게스트가 너무 낯설면 본연의 색깔이 잘 보이지 않게 된다. 물론 너무 익숙해도 게스트의 효과가 나오지 않겠지만. 

그런 점에서 보면 윤균상 하나만 믿고 이 득량도에까지 들어온 이종석은 <삼시세끼>에 잘 어울리는 게스트 조합이다. 이미 평소에 잘 알고 지냈기 때문에 윤균상과 함께 있을 때는 <삼시세끼> 특유의 편안한 그림이 나오고(이건 편안함을 넘어서 거의 브로맨스에 가까운 그림이다), 그러다 이서진이나 에릭이 들어오면 살짝 긴장하는 새로운 재미가 만들어진다. 결국 윤균상과 가까워 득량도에 들어왔지만 어딘지 낯가림이 심해 가깝게 느껴지지 않던 이서진과 에릭 또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친숙해지는 그 과정은 시청자들이 원하는 풍경이 된다.

생각해보면 <삼시세끼>가 지금껏 써왔던 게스트의 법칙이 남달랐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그것은 아마도 나영석 PD가 가진 성향이 묻어난 것이겠지만, 무작정 낯설음보다는 어떤 친숙함을 더 게스트 선정에서 고려했다는 것이다. 초창기 정선에서 찍었던 <삼시세끼>에 이서진과 택연이 함께 하고 그 후에 게스트로 윤여정, 김지호, 류승수, 김광규 등이 찾아왔던 건 그들이 과거 <참 좋은 시절>에서 이미 한 가족처럼 가까운 관계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먹함 없이 바로 그 친숙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 

이번 ‘바다목장’편에서도 한지민이 게스트로 들어왔을 때 특히 시청자들이 반색했던 것도 이미 <이산>으로 이서진과 가까운 관계였고, 에릭과도 과거 드라마를 통해 연기호흡을 맞췄던 관계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과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마치 아침에 나갔다 돌아온 가족처럼 편안함이 있었고, 거기에 윤균상과는 조금 서먹했지만 차츰 알아가는 누나 동생 사이가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줬다. 

<삼시세끼>의 게스트는 그래서 완전히 낯설기보다는 어느 정도 친숙한 인물이 들어왔을 때 최적의 효과를 보인다. 그것은 이 프로그램이 무엇보다 ‘편안함’을 가장 큰 무기로 장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은 <삼시세끼>를 보며 대단히 놀라운 어떤 이야기를 기대하기보다는 늘 우리를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그 가족적인 분위기를 더 느끼고 싶어한다. 이종석이 게스트로 들어와 윤균상과 알콩달콩 보여준 케미에 시청자들이 반색할 수 있었던 건 그래서다.

새삼 고마움을 느끼게 되는 ‘삼시세끼’의 풍경들

정오에 먹는 아침 식사. 제빵왕 이서진이 만든 단팥빵에 얼려둔 커피에 산양유를 곁들여 마시는 라떼 한 잔. 그런데 옆집 할머니가 갑자기 무언가를 건네주신다. 갓 찐 옥수수다. 주시면서도 어딘가 계면쩍으셨는지 먹어보고 맛이 덜 들었으면 버리라고 하신다. 하지만 맛보다 그렇게 무언가를 챙겨주신 할머니의 마음이 먼저 마음의 입맛을 돋운다. 만들어놓은 단팥빵을 가져다드리자 뭘 이런 걸 가져오냐며 즐거워하시는 할머니의 표정에 마음의 포만감이 커진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tvN 예능 프로그램 <삼시세끼> 바다목장편은 득량도라는 섬에서 세끼 챙겨먹는 삼형제 이서진, 에릭, 윤균상의 일상을 담는다. 한지민과 이제훈 그리고 곧 등장할 설현까지, 게스트들이 주는 색다른 이야기가 더해지지만 그렇다고 이들의 일상이 크게 달라지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매 끼니마다 새로워지는 밥처럼 이 일상들을 계속 바라봐도 물리지 않는다. 거기에는 득량도라는 섬과, 그 섬의 제공하는 풍성한 먹거리들 그리고 무엇보다 어느새 이들을 가족처럼 대하는 섬의 어르신들이 주는 따뜻한 정이 묻어난다.

바다목장편에 핫 플레이스로 등장한 정자의 잭슨살롱은 어르신들이 함께 모여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넉넉한 그늘을 제공해 주는 나무 아래, 어르신들이 모여 수다도 떨고 화투패도 맞춰보는 곳. 그런데 그 곳에 출연진들이 산양유를 채워 넣어주기 위해 가거나 섬을 떠날 때나 혹은 다시 섬에 들어올 때 슬쩍 비춰지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그토록 훈훈할 수가 없다. 

이제훈이 돌아가는 날 다 함께 섬을 빠져나오는 걸 본 어르신들 중 한 분이, 다시 안 오는 것 아니냐고 묻자 이서진이 다음에 또 들어온다고 말하는 짧은 장면 속에 이분들이 이제 이 <삼시세끼> 출연진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담긴다. 그리고 다시 섬에 들어온 날 인사를 하고 손을 흔들어주는 어르신과 마을 분들에게서는 반가움이 묻어난다. 

어르신들이 주는 그 푸근함은 마치 이 득량도라는 섬을 그대로 닮았다. 뭐 대단히 노력한 것도 아니고 그저 슬쩍 던져놓은 투망에 고맙게도 게를 쫓아 들어온 문어가 자리하는 그런 풍경 속에는 섬이 주는 풍요로움이 새삼 느껴진다. 그렇게 잡은 문어를 보며 에릭과 윤균상이 한껏 기뻐하고, 잭슨살롱으로 돌아온 그들에게 마을 분들이 또한 문어 잡은 걸 같이 기뻐해주신다. 그러고 보면 바다가 보이는 곳에 마련된 목장에서 풀 먹여주고 물 갈아주고 청소해주는 대가로 꼬박꼬박 젖을 내주는 산양들이 마치 자연을 그대로 닮은 어머니의 모습 같다.

그렇게 산양들이 제공한 산양유를 어르신들이 나눠가며 맛을 보고, 냉장고에 넣어주신 소박하지만 그 정이 느껴지는 가지며 호박 같은 야채들이나 신선한 계란. 그 식재료들이 에릭의 손을 거쳐 가지 튀김이 되기도 하고 제빵왕 이서진이 만든 빵에 계란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사실 우리가 매일 밥상에서 마주하는 음식들이 다 그런 누군가의 손길을 거친 것들이라는 생각이 새삼스럽다.

<삼시세끼>를 보다보면 어쩌면 우리가 사는 삶은 너무 타산적이고 기계적이란 생각이 든다. 저렇게 조금만 움직이면 뭐든 내주는 자연과, 그 자연을 그대로 닮아있는 득량도의 어르신들. 그 풍경들이 그저 매번 섬을 찾아 삼시 세끼를 챙기는 것을 반복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것이 물리지 않고 매번 푸근한 포만감을 주는 이유가 아닐까. 우리도 그렇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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