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브리그’, 리얼리티에 사이다 캐릭터들의 판타지

 

“지랄하네... 이 씨.. 선은 니가 넘었어!” 연봉 협상에서 백승수 단장(남궁민)을 오라가라 하고 룸싸롱에 불러 술을 무릎에 부어버리는 무례한 행동을 한 서영주(차엽)에게 운영팀장 이세영(박은빈)은 잔을 던져 깨버리고 그렇게 일갈한다. 그 순간 백승수는 깜짝 놀라지만 나오자마자 이세영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무리 화가 나도 선수 다칠만한 행동은 하지 마십쇼.”

 

SBS 금토드라마 <스토브리그>의 이 장면은 이 드라마가 어째서 이렇게 펄펄 나는가를 잘 보여준다. 상당한 취재가 들어가 있어 프로야구 세계의 깊은 뒷얘기들이 야구를 잘 아는 사람들조차 빨려 들게 만들지만, 그러면서도 이 작품은 적재적소에 시청자들의 속을 시원하게 해주는 사이다 요소들을 채워 넣는다.

 

매번 그 역할은 백승수가 해왔지만, 의외로 연봉 협상 이야기에서 사이다를 안겨준 건 그와 함께 다니던 이세영 운영팀장이었다. 지난 회 마지막 장면에 그가 서영주에게 던진 “선은 니가 넘었어!”라는 한 마디는 그래서 시청자들 사이에 두고두고 회자됐다. ‘걸 크러시’ 엔딩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연봉 협상에 있어서 갑자기 복병으로 등장한 악역은 다름 아닌 스카우트팀에서 비리로 쫓겨난 고세혁(이준혁)이었다. 그는 에이전시를 꾸려 의도적으로 드림즈 선수들의 연봉협상을 대리하겠다고 나선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연봉을 제시해 백승수를 곤란하게 만든 것. 여기에 권경민 상무(오정세)가 갑자기 전체 연봉 예산의 30%를 깎겠다고 하면서 백승수는 사면초가에 놓였다.

 

만년 꼴찌팀 드림주의 모기업인 재송그룹에서도 구단을 해체하고픈 욕망을 드러내는 상황. 연봉 삭감 같은 카드는 어쩌면 당연해 보이는 현실적인 문제들이다. 하지만 <스토브리그>는 이러한 프로야구 뒤에서 벌어지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소재로 가져오지만 그렇다고 현실의 이야기로만 전개하지는 않는다. 그 위에 ‘이랬으면 좋겠다’하는 사이다 판타지적 요소를 더한 스토리텔링을 구사하는 것.

 

백승수 단장은 그 사이다 캐릭터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다. 그는 이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다른 팀 단장들과 의도적으로 만나 트레이드 이야기를 나누고, 그런 소문이 선수들 귀에도 들어가게 만든다. 결국 고세혁을 연봉협상 대리인으로 내세우던 선수들도 불안해진다. 자신들이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되게 되면 거기서는 주전으로 뛸 수 없을 수도 있고 다시 다른 지역으로 가족이 이사해야 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그런 현실적인 문제들을 환기시킨 후 백승수 단장은 이세영과 한재희(조병규)와 팀 플레이를 통해 각각 선수들을 설득해 연봉협상을 마무리한다.

 

하지만 백승수 단장은 그게 끝이 아니다. 그는 아무런 이유 없이 전체 연봉 예산 30%를 삭감해 선수들을 모두 불편하게 만든 권경민에게 회심의 일격을 날린다. 스스로 연봉을 자진반납하겠다는 기사를 내는 것으로 모기업인 재송그룹에도 무슨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소문을 만들고 결국 주가 하락까지 벌어지게 만든 것.

 

이처럼 <스토브리그>에는 지극히 현실적인 리얼리티를 사건의 소재로 펼쳐 놓지만 그 해결점은 백승수 단장 같은 판타지 캐릭터에 의해 속 시원한 결말로 이어지게 한다. 이 부분은 이 드라마가 가진 ‘단짠’의 적절한 균형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또 다른 난관을 백승수 앞에 펼쳐놓는다. 그가 스카우트한 길창주(이용우) 선수의 인터뷰가 악의적으로 편집되고, 전략분석팀에 입사하게 된 동생 백영수(윤선우)가 취업 비리로 보도된 것. “단장실로가서 짐 싸 이 새끼야!” 이렇게 외치는 권경민 상무는 또다시 시청자들을 뒷목 잡게 만든다.

 

결국 단장직을 내려놔야 될 상황에까지 몰리지만 시청자들은 이미 지금껏 봐왔던 백승수의 행보들을 통해 또 기대하게 된다. 그가 이번에는 또 어떤 놀라운 해법을 들고 나타날 것인가를. <스토브리그>의 힘은 현실이 주는 고구마와 이를 훌쩍 넘어서는 사이다 캐릭터들의 판타지 사이에서 나온다. 우리가 백승수라는 인물은 물론이고 이세영이나 한재희 같은 인물의 마력에 점점 빠져드는 이유다.(사진:SBS)

'검사내전', 같은 이야기도 스토리텔링이 다르면 

 

전국구 연쇄 사기범 검거. 물론 액수가 수백억에 달하는 사기지만 그간 드라마에서 피가 튀고 시체가 넘쳐나던 사건들을 무수히 봐왔던 시청자들에게는 다소 평범한 소재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 평범한 소재가 저 마다의 검사 캐릭터들의 미묘한 감정들이 더해지고, 이야기 구성이 달라지자 쫀쫀한 맛을 낸다. JTBC 월화드라마 <검사내전>이 그리는 독특한 세계의 특징이다.

 

사건은 단 하루에 벌어진 일을 다루고 있다. 한 아주머니가 입에 거품을 물고 진영지청에서 119 앰블런스에 실리고 그 곳에 모여든 형사2부 사람들의 면면들이 먼저 소개된다. 잔뜩 당황한 김정우(전성우)와 낭패한 얼굴이 역력한 차명주(정려원), 놀라서 달려오는 조민호(이성재)와 가슴을 부여안고 쓰러지는 홍종학(김광규) 그리고 이게 무슨 상황인가 의아해하는 이선웅(이선균).

 

그리고 이야기는 이들이 그날 하루 겪었던 저마다의 사연들로 풀어내진다. 가슴을 부여안고 쓰러진 홍종학은 보기만 하면 으르렁대는 이선웅과 차명주를 수석으로서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고 조민호에게 지적을 당하고는 그 스트레스로 위경련 증세를 일으킨다. 어떻게든 화해를 시키려 애쓰지만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고, 결국 한 아주머니가 쓰러지는 사건이 터지자 조민호 부장검사가 줄 스트레스에 결국 쓰러져버린다.

 

김정우는 마치 현진건의 소설 <운수 좋은 날> 같은 하루를 보냈다. 아침부터 스튜어디스와의 소개팅 약속이 잡혔고 맡은 사건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도 의외의 카리스마를 발휘해 팀 내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다. 게다가 차명주가 자신을 자기 팀에서 함께 일했으면 하는 뜻을 전하며 “능력 있다”는 얘기를 연거푸 들은 김정우는 한껏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그건 한 불쌍해 보이는 아주머니를 만나면서 뒤집어졌다. 아들이 해외여행을 보내준다고 비행기표를 끊어놨는데 명의를 준 게 문제가 되어 내려진 수배령 때문에 출국을 못한다고 울며 애원하는 아주머니. 결국 소개팅 약속 때문에 일시 수배령을 풀어주기로 했지만 덜컥 차명주에게 붙잡혀 다시 사무실로 돌아오게 됐다.

 

그런데 놀랍게도 차명주의 그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태도는 의외로 이 아주머니가 전국구 연쇄 사기범이었다는 걸 밝혀내게 된다. 그는 이 연쇄사기범을 검거하게 되면 포상으로 다시 서울로 올라갈 수 있을 거라고까지 상상했지만 거기서 의외의 일이 벌어진다. 연쇄 사기범이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진 것. 혹여나 사망하기라도 하면 그건 검찰의 과잉 압박수사로 오히려 지탄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이선웅은 그 연쇄 사기범이 하이타이를 입에 물고 거품을 냈다는 사실을 밝혀냄으로써 사건은 일단락된다.

 

소재로만 보면 이 이야기는 연쇄 사기범이 해외 출국을 하기 위해 치밀한 계획 하에 진영지청을 찾아와 연기로 수배를 풀려다 덜미를 잡힌 사건이다. 그런데 이 다소 평범해 보이는 사건을 형사2부 사람들이 그 날 가졌던 저마다의 사연을 덧붙이고 그 구성을 극적으로 꾸며내자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게다가 이 사건을 해결하는 형사2부의 이야기가 던지는 메시지도 분명했다. 내부적으로는 이선웅이나 차명주처럼 서로 으르렁대기도 하고, 홍종학처럼 제대로 관리를 못해 위 경련을 일으키기도 하며, 김정우처럼 사건 그 자체보다 인정받고 싶은 욕망과 사생활을 중요시해도 결국 모두의 협업으로 사건을 해결했다는 점이다. 저마다의 감정과 욕망이 다르지만 그럼에도 이들이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은 우리네 사회생활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

 

<검사내전>이 흥미로운 건 거대한 사건들이 아니라 우리네 가까이서 벌어질만한 사건들을 다루고 또 그걸 해결해가는 검사들 역시 드라마틱한 캐릭터가 아니라 마치 샐러리맨 같은 일상적 직업군으로 그려내고 있어서다. 어마어마한 사건을 해결하는 영웅들의 이야기에서 벗어나, 그런 사건들 역시 보통의 평범한 검사들의 티격태격하면서도 이뤄지는 공조로 해결되는 이야기. 바로 이 지점이 시청자들이 몰입하는 부분이 아닐까.(사진:JTBC)

‘1박2일’, 방송 재개 전 고려해야 할 것들

 

KBS 예능 <1박2일>이 돌아온다. 올해 초 정준영의 몰카 사건에 김준호와 차태현의 골프 논란으로 잠정 중단됐던 <1박2일>이 하반기에 돌아온다고 KBS는 공식적으로 밝혔다. KBS는 보도자료를 통해 “초심으로 돌아가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가족 예능 부활을 최우선 가치로 삼겠다”며 “방송 시작일과 출연진 등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정해진 바 없다”고 했다.

 

지난 3월 정준영 사태가 워낙 충격적이었던 지라 <1박2일>이 방송을 잠정 중단한다고 했을 때, 시청자들 중에는 아예 폐지하라는 이야기도 적지 않았다. 그건 당시 사건도 사건이지만, 10여 년을 이어온 <1박2일>이 너무 비슷한 패턴으로 흘러가고 있어 동력 자체를 잃은 것이 아니냐는 비판적인 시선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KBS로서 <1박2일>은 놓을 수 없는 프로그램인 것만은 분명하다. 사실상 KBS에서 <1박2일>이 벌어주는 수익이 만만찮다. 힘이 빠졌다고 해도 연간 수백억에 달하는 광고수익이 존재한다. 잘 나가던 시절에는 연간 매출 500억 원대에 이르러 KBS 예능국 1년 예산에 맞먹는 수익을 거둬들이기도 했었다. 그러니 <1박2일>의 방송 중단은 KBS로서는 경영적으로 봐도 크나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1박2일>은 공영방송인 KBS의 공공적 가치로서도 충분한 프로그램이다. 특히 요즘처럼 해외여행이 일반화되어 있고 심지어 여행을 다루는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해외로 나가는 상황에, <1박2일> 같은 국내의 여행지를 찾아가고 소개하는 프로그램은 그만한 가치를 지닐 수밖에 없다. 그건 우리네 대중들을 위해서도 그렇지만,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을 위해서도 그렇다.

 

이처럼 프로그램이 가진 명분과 가치는 충분하다 여겨진다. 다만 남는 문제는 올해 초에 있었던 불미스런 사건들이 만들어놓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어떻게 일소할 것이며, 나아가 ‘장수 예능’이 갖는 피로감을 떨쳐낼 수 있는 새로운 시도들을 어떻게 넣을 것이고, 무엇보다 이 프로그램의 얼굴들을 어떻게 참신하게 구성해낼 것인가 하는 점이다.

 

어느 것 하나 만만찮은 문제들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은 사실상 한 가지로 묶여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즉 부정적인 이미지를 일소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완전히 새롭고 참신하며 호감 가는 얼굴들을 세우는 것이고, 지금까지 <1박2일>의 고정적인 패턴이 되어왔던 복불복 게임 대신 프로그램을 참신하게 만드는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개발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해결되면 가장 중요한 프로그램의 이미지는 바뀔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 문제 중 무엇이 선결되는 문제일까. 출연자보다는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먼저 고민하는 편이 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 출연자에 맞춘 스토리텔링이란 이제 뻔한 것이 될 수 있어서다. 최근 들어 스타 MC 프리미엄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프리미엄이 아니라 독이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어떤 스타 MC가 들어오면 늘 봐왔던 그 방식이 여지없이 전개되는 걸 시청자들은 여러 차례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즌4로 새로 돌아올 <1박2일>의 스토리텔링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1박2일>이 처음부터 지금껏 해왔던 스토리텔링의 두 가지 요소는 여행과 게임이다. 애초 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만들었던 이명한 현 tvN 본부장은 여행을 소재로 날 것의 예능 프로그램을 하려는 시도를 하면서 너무 아무 것도 준비하지 않고 가는 것에 대한 불안감으로 ‘복불복 게임’을 넣었다고 말한 바 있다. 즉 일종의 자극제 역할로서 게임이 들어갔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1박2일>은 여행보다 게임의 자극 속에 빠져 그 패턴을 반복하는 프로그램이 되어 버렸다. 게임 예능은 이제 SBS <런닝맨>이 거의 전담하고 있는데, 이 프로그램 역시 식상하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그렇다면 남는 카드는 결국 여행이 된다. 해외여행이 일반화되면서 국내여행이 어딘가 폄하된 바로 그 지점을 파고들어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릴 수 있는 스토리들이 발굴되어야 한다. 국내여행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새로운 여행의 스토리텔링.

 

필요하다면 여행과 정착을 오가는 방식도 피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최근의 여행 트렌드는 그저 지나치는 여행이 아니라 한 곳에 머무르며 그 곳 사람들이 살아가는 그 소소한 일상들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전국을 여행하면서도 동시에 정착하며 보여줄 수 있는 ‘장기 프로젝트’도 시도할 만 하다. <1박2일>이라는 제목에 너무 억매여 1박 여행으로만 머물면 한계를 만날 수 있다.

 

국내 여행을 근간으로 하되, 해외 중에서도 한국의 의미를 갖는 곳을 찾는 여행 또한 보다 적극적으로 시도될 필요가 있다. 어차피 글로벌한 시대에 들어선 마당에 해외라고 해서 무작정 피할 필요가 있을까. 물론 해외여행이 많은 건 문제가 되겠지만, 아주 가끔씩 특별한 의미를 담는 해외여행은 국내 여행과 병치시키며 우리네 여행지 역시 해외처럼 좋다는 걸 그 자체로 보여줄 수 있다.

 

기왕에 돌아오려면 제대로 준비하고 와야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을 게다. 초심도 좋지만 지금의 달라진 예능환경, 여행환경 등을 고려하는 일도 중요하다. 초반의 그 열정을 가져오되 지금의 환경에 맞게 유연한 자세로 새로운 여행 스토리를 찾아내려는 노력. 바로 거기에 돌아올 <1박2일>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본다.(사진:KBS)

‘더 팬’, 오디션 그 후, 새 스토리텔링 찾는 음악프로그램

오디션 프로그램이 가장 뜨겁게 우리네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건 2009년부터였다. Mnet <슈퍼스타K>가 그 포문을 열었고, 2010년 이 프로그램의 시즌2는 케이블 채널 역사상 첫 두자릿 수 시청률을 기록하는 놀라운 성과를 냈다. 지상파들도 오디션 트렌드에 뛰어들었고 그 성공작으로 얘기되는 SBS <케이팝스타>가 2011년 방영되며 이 흐름을 이어갔다. 하지만 아마추어들의 데뷔와 심사위원들의 심사로 이뤄지는 이 오디션 트렌드는 이내 꺼져버렸다. 2016년 <슈퍼스타K>는 결국 종영을 선언했고, <케이팝스타>도 2016년 말 ‘더 라스트 찬스’라는 제목으로 대미를 장식했다. 

이후 Mnet <프로듀스101> 같은 프로그램들이 아이돌 연습생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오디션을 시도했지만 이 형식은 이미 지나간 트렌드가 되어갔다. 그것은 경쟁과 성장이라는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내세우는 키워드들이 더 이상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쟁사회 속에서 노력해 성장한다는 일이 점점 현실화되기 어렵다는 걸 알게 된 대중들은 ‘소확행’ 같은 경쟁 바깥에서 스스로 얻을 수 있는 행복을 찾기 시작했고, 수직 계열화된 시스템 바깥에서 순위가 아닌 저마다의 취향을 찾아갔다. 오디션의 사실상 가장 큰 힘이라고 할 수 있는 심사는 이제 ‘지적질’로 받아들여지며 대중들을 불편하게 했다.

이런 시점에 <케이팝스타>를 만들었던 박성훈 PD가 새롭게 들고 온 <더 팬>이라는 프로그램은 이러한 달라진 대중들의 정서를 읽어낼 수 있게 해준다. 먼저 제목에 담긴 것처럼 이 프로그램은 심사가 없다. 유희열, 보아, 이상민, 김이나 등이 팬 마스터로 출연하긴 하지만, 이들은 심사를 하지 않는다. 대신 무대에 올라온 참가자들의 음악을 듣고 팬이 되었는지 아닌지를 밝히는 것이 그들의 일이다. 200명의 팬이 버튼을 눌러야 2라운드에 통과하는 첫 무대에서 MC들도 관객들과 똑같이 표 한 개를 행사한다. 

중요한 건 이 무대에 올라올 자격을 누가 부여하는가 하는 점이다. 결국 어떤 면으로 보면 이 무대에 선다는 건 좋은 기회이자 특혜일 수 있다. 그만한 실력이나 매력이 분명해야 이를 바라보는 시청자들과 관객들이 납득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이들을 추천하는 셀럽이라는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한다. 타이거JK와 윤미래 부부가 나와 소개한 비비는 그 매력적인 보이스와 독특한 재즈적 감성으로 그가 왜 이 무대에 설 자격을 갖추었는가를 설득시켰고, 도끼와 수퍼비가 소개한 트웰브는 팝가수 같은 느낌의 알앤비로 ‘귀르가즘’을 자극했다. 

악동뮤지션 수현이 추천한 오왠 같은 감성 보컬이나 장혜진이 반해 소개한 카더가든 같은 실력파 보컬은 이미 아는 분들은 다 아는 가수지만, 아직 모르는 이들도 적지 않은 가수라는 점에서 <더 팬>이라는 무대가 가진 색깔을 정확히 보여준다. 이 무대는 아마추어든 아니면 프로든 상관없이 팬을 확보하는 자리라는 것. 저마다 색깔이 분명한 음악을 하고는 있지만(아마도 그래서 더더욱 마니아적일 수 있을 게다) 대중적인 인기를 갖고 있지는 않은 아티스트들을 더 많은 이들이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가 거기에는 깔려 있다. 

그래서 <더 팬>은 경연 형식을 갖고는 있지만 그건 하나의 스토리텔링 장치일 뿐, 숨겨진 아티스트들을 소개하는 음악 프로그램처럼 보인다. 경연 형식은 이들에게 주목시키고 그 음악적 색깔을 좀 더 들여다보게 만드는 장치일 뿐, 더 중요한 건 다양한 색깔의 취향을 가진 아티스트들의 발굴이라는 것. 

결국 기존의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사라지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대중들의 다양한 취향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일부 심사위원들의 기준에 맞는 가수들을 순위표 형태로 드러내는 형태였기 때문이다. <더 팬>이 ‘팬심’이라는 말로 드러내는 취향의 경연이 공감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일무이한 한 사람을 뽑아내는 것이 아니라, 이런 저런 다양한 가수들과 음악적 취향들이 존재한다는 걸 이 프로그램은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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