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억짜리 비주얼 갑 '승리호', 넷플릭스와의 어색한 만남

 

한국 최초의 우주 SF 블록버스터. 아마도 조성희 감독의 영화 <승리호>에 대한 가장 큰 기대감은 바로 이 지칭 안에 들어 있을 게다. <스타워즈>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같은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모험서사들은 우리와는 거리가 먼 할리우드의 이야기로만 여겨온 우리네 관객들에게 <승리호>는 그 제목이 먼저 소개됐을 때부터 어딘가 이질감을 줬던 게 사실이다. 일본 만화를 번역해 방영했던 추억의 만화 <이겨라 승리호>가 먼저 떠오를 정도로.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승리호>는 그러나 생각보다 괜찮은 비주얼 블록버스터의 색깔을 보여줬다. 시작부터 우주쓰레기 청소선 승리호가 다국적 경쟁 청소선들과 우주쓰레기를 놓고 벌이는 추격전은 시선을 잡아끈다.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현란하게 움직이는 우주선들의 이미지들이나, 빈티지한 무게감까지 더해진 미술로 구현된 승리호 내부의 이미지는 할리우드의 비주얼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잘 구현되었다. 

 

승리호의 주역들인 4인방 캐릭터도 저마다의 색깔이 뚜렷하게 나올 정도로 매력적이다. 아웃사이더이면서 아이를 찾기 위해 돈 되는 일이면 뭐든 다 하는 조종사 태호(송중기), 거대한 레이저총을 난사하는 걸 크러시 캐릭터 장선장(김태리), 조직 두목으로 살벌한 문신을 하고 있지만 따뜻한 마음을 가진 기관사 타이거 박(진선규) 그리고 유해진의 목소리가 입혀진 작살잡이 로봇 업동이는 애초 이 작품이 IP의 확장으로 계획하고 있는 캐릭터 비즈니스가 충분하게 느껴지는 매력들을 보여준다. 

 

게다가 2092년 사막화된 지구의 디스토피아를 시각적으로 구현해낸 각종 위성들 속 도시 풍경들도 흥미롭다. 나라나 언어의 구분 자체가 의미 없어질 정도로 다국적화된 그 도시들 속에서 어딘지 비정한 사람들의 어두운 모습들은, 지구로부터의 탈출을 계획하는 UTS의 리더 설리반(리처드 아미티지)이 꿈꾸는 화성의 자연이 살아있는 풍광과 대비를 이룬다. 

 

영화 <승리호>가 공개된 후 여러 언론들이 일관되게 이야기하고 있는 아쉬움은 역시 스토리다. 이렇게 비주얼적으로 잘 구현된 세계와 상반되게 이야기는 너무 평이한 클리셰에 머물고 있고, 보는 이에 따라서는 신파적인 이야기가 공들인 세계를 다소 허무하게 만들었다 여겨질 수도 있다. 스토리는 확실히 아쉽다. 도로시라는 아이를 두고 벌어지는 쟁탈전은 부성애 코드가 강조되면서 너무 뻔한 스토리로 이어진다. 

 

또한 <승리호>라는 한국 최초 우주 SF 블록버스터라는 시도에도 불구하고, 그 우리식의 어떤 해석이나 색깔이 이야기나 연출에서 도드라지게 나타나지 않은 점도 아쉬운 부분이다. 단순한 '국뽕'이 아니라, 글로벌한 우주를 배경으로 한다 해도 우리네 '로컬'의 색깔 같은 차별성이 있었다면 더 좋았을 거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킹덤> 같은 넷플릭스 오리지널이 좀비 장르라는 보편성을 가져오지만 동시에 '조선'이라는 차별성을 내세워 글로벌한 반향을 일으켰던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다소 신파적인 스토리가 그 로컬의 색깔처럼 드리워진 건 <승리호>에 가장 큰 아쉬움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스토리의 아쉬움은 이 작품이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결정한 넷플릭스를 통한 상영이 과연 괜찮은 선택이었는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만일 블록버스터로서의 우주 액션과 비주얼들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대형스크린을 통해 봤다면 그 느낌이 사뭇 달랐을 거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스토리는 단순하지만, 블록버스터로서의 시각적 쾌감이 그 부족함을 채워줬을 테니 말이다. 

 

다만 제작비 240억원이 투입된 <승리호>가 우리네 영화에서는 미지의 세계처럼 여겨졌던 우주를 소재로 끌어와 적어도 이물감 없이 구현해냈다는 점이 분명한 성과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따라서 이 작품이 내딛은 첫 걸음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이번 작품을 통해 갖게 된 노하우가 향후 또 다른 우주 SF에서는 채워지길 기대한다.(사진:넷플릭스)

'펜트하우스', 사람은 없고 작가가 만든 사이코패스들만 넘쳐난다

 

죽고 또 죽고... 벌써 몇 명이 죽은 걸까. SBS 월화드라마 <펜트하우스>는 매회 인물이 죽어나간다. 드라마 시작부터 헤라팰리스 고층 건물에서 누군가에 의해 추락 사망하는 민설아(조수민)로 문을 열었다. 민설아가 떨어질 때 전망엘리베이터를 탄 심수련(이지아)은 그와 눈을 마주친다. 그리고 민설아는 이 주상복합의 상징처럼 세워진 헤라 조각상 위로 떨어져 피투성이가 된 채 사망한다.

 

아마도 이런 시작은 <펜트하우스>가 거대한 욕망의 표상처럼 보이는 헤라팰리스가 민설아 같은 이들의 피 위에 세워졌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드라마는 그 장면에 그런 의미를 담기보다는 이곳에 살아가는 인간 같지 않은 이들이 벌이는 폭력들을 병치함으로써 시청자들의 뒷목을 잡게 만든다.

 

그 폭력들은 지독할 정도로 상투적이다. 돈과 권력을 가진 이들이 그걸 이용해 더 큰 돈을 벌고(물론 여기에도 서민들의 피가 깔려 있다), 불륜과 향락에 빠져 살아간다. 그들만의 네트워크 속에서 아이들도 실력이 아닌 핏줄과 연줄에 의해 성패가 갈라지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의 기회는 박탈된다. 심지어 능력으로 그 곳에 들어오려는 민설아 같은 인물은 감히 그 세계를 넘봤다는 이유로 집단 폭행을 당한다.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제시되지 않는다. 이유라고 하면 저들이 특권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 정도다. 그래서 특별한 이유 없이 저지르는 폭력의 연속은 그들의 악행을 태생적인 것으로 만든다. 그들은 사람이 아니다. 사이코패스다. 없는 이들은 짓밟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밟히는 이들을 죽음에까지 이르게 할 수 있지만.

 

오윤희(유진)의 트로피를 빼앗고 그가 더 이상 성악을 할 수 없게 만들어버린 천서진(김소연)은 심수련의 남편 주단태(엄기준)와도 불륜에 빠지는 '도둑년'이다. 하지만 주단태는 더한 인물이다. 심수련의 친딸인 민설아를 다른 아기와 바꿔치기 하고, 그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살아가는 아기를 심수련에게 친딸로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필요 없어지자 그 산소호흡기를 자신이 떼어버린다.

 

죽은 민설아의 사체를 그가 사는 동네로 옮겨 유기하고 그 집에 불까지 내 자살로 위장한 주단태는 그 지역에 재개발이 이뤄질 거라는 정보를 얻고는 그 사건으로 가격이 폭락한 그 집을 되 사려고 하는 인물이다. 그는 누군가를 제 손으로 살해하는 일이나, 사체를 유기하는 일, 나아가 자신이 하는 재개발 사업으로 수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일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한다.

 

<펜트하우스>에는 사람이 잘 보이지 않는다. 대신 사이코패스들만 넘쳐난다. 그들에 의해 불쌍한 약자들은 억울하게 죽어나간다. 그걸 보며 분노하는 시청자들은 심수련이나 오윤희 같은 인물들이 그들에게 처절하게 응징하고 복수하는 걸 보고 싶어진다. 김순옥 작가가 지금껏 해왔던 '가족 복수극'의 클리셰들이 여기서도 여지없이 등장한다.

 

그러니 등장인물들은 이 가족복수극의 계획된 '공분의 스토리텔링 틀 속'에서 다소 허망하게 죽어버린다. 조상헌(변우민)은 허무하게 자기 집 2층에서 추락사하고, 그와 몸싸움을 벌인 윤태주(이철민) 역시 육교 위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것 같은 장면이 연출되었다.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는 알 수 없다.

 

이렇게 매회 죽음이 아무렇지도 않게 등장(살인, 사체유기 등)하다 보니 시청자들로서는 이 드라마의 이런 자극적 설정들이 하나의 게임처럼 둔감해진다. 처음에는 놀랍지만 차츰 누가 죽어도 그리 놀랍지 않은 느낌이 되어버린다. 드라마가 힘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래서 더 많은 죽음들이 필요하다. 앞으로도 이 죽음의 행진은 계속될 것이다.

 

<펜트하우스>에서 인물들은 그래서 작가가 고안해 놓은 자극의 틀을 위해 소비되는 소모품 같은 느낌을 준다. 개연성은 자극에 가려지고 갈수록 현실감을 잃어간다. 사실 이렇게 계속 어이없는 죽음들이 이어진다는 것 자체가 개연성과 현실감이 사라지고 있다는 증거들이다. 그래서 개연성도 없고 인물들도 소모될 뿐, 인간의 모습으로 그려지지 않는 <펜트하우스>는 위태롭기 그지없다. 거기에는 가난에 대한 지독함 혐오와 죽음에 대한 경시 같은 그림자들이 부지불식간에 들어 앉아 있다.

 

물론 작가가 의도하는 건 자극적인 스토리와 이를 통해 얻어지는 시청률일 것이다. 하지만 그 자극과 시청률이 교환되는 과정에서 인간이나 생명에 대한 가치들은 한없이 가벼워진다. 그저 스토리이고 드라마일 뿐이라고? 아니다. 스토리는 가상이지만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갈 것인가를 에둘러 알려주는 공공의 장이기도 하다. 그러니 그게 별거 아니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시청률의 뒤편에서 어른거리는 건 돈 냄새다. 돈이 되면 뭐든 용서된다는 것. 그건 <펜트하우스> 속 헤라팰리스에 사는 사람들이 하는 생각이다. 드라마는 그게 잘못됐다는 걸 복수극의 형태로 그려내려 하고 있지만, 그 이야기 전개 과정은 마치 헤라팰리스 사람들의 생각처럼 돈이 되면(시청률이 되면) 다 용서된다는 식으로 흘러가고 있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사진:SBS)

‘스토브리그’ 파괴력의 원천은 그 리더십에 있다

 

매회가 쫀쫀하다. 스토리에 빈 구석이 없고 버릴 것도 없다. 게다가 그 스토리를 200% 몰입하게 만드는 연기와 연출이 있다. SBS 금토드라마 <스토브리그>를 보다 보면 작금의 달라진 드라마의 성공방정식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성공방정식의 정점은 야구라는 구체적인 세계에서 가져온 리얼한 이야기를 지극히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바로 그 지점이 아닐까 싶다. 그걸 가능하게 해준 건 백승수(남궁민)라는 개혁가 리더십을 갖춘 인물이다.

 

<스토브리그>가 주목되는 건 현실감이 느껴지는 스토리다. 그 스토리는 당연히 철저한 취재를 통해 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이 작품을 쓴 이신화 작가는 꽤 오래도록 사전 취재를 했다고 한다. 공개된 자문위원만 18명에 이른단다. 물론 실제 자문을 받은 인물들은 더 많았을 게다. 야구라는 특정 전문적 영역을 다루면서 정확한 사전 정보는 필수일 수밖에 없다. 꼼꼼한 취재 덕분인지 <스토브리그>는 실제 현장에서 벌어지기도 하는 리얼한 사건들을 순차적으로 다루며 시청자들을 몰입시켰다.

 

첫 번째 스토리는 프랜차이즈 스타의 트레이드를 다뤘고, 두 번째 스토리는 스카우트 과정에서 벌어지는 비리를 다뤘다. 그리고 세 번째 스토리는 용병 스카우트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치열한 경쟁과 그 과정에서 병역을 기피하고 미국으로 귀화해 스타 메이저리거가 됐지만 부상으로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선수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더 중요한 건 취재를 통해 가져온 야구계에서 벌어지는 사건 소재들을 작가가 보다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냈다는 점이다. 이 작품은 프로야구 팀 드림즈를 소재로 다루고 있지만 야구드라마이면서 동시에 오피스드라마에 가깝다. 야구를 잘 아는 시청자들은 좀 더 깊게 이야기를 즐길 수 있지만, 모르는 시청자라도 보편적인 오피스드라마로 충분히 즐길 수 있게 구성해 놓았다.

 

오피스드라마의 관점으로 보면 작가가 이 야구소재의 드라마를 통해 현실의 문제를 건드리려는 의도가 역력히 드러난다. 백승수(남궁민)라는 새로운 단장이 만년 꼴찌팀인 드림즈에 부임해 개혁을 통해 팀을 성장시키는 이야기. 부진한 성적은 단지 선수들의 실력만이 문제가 아니라 팀 전체가 굴러가는 시스템의 고질적 병폐 때문이라는 걸 전제로 깔고 있다. 백승수라는 시스템 개혁가는 그래서 우리네 사회의 어떤 조직에서도 통용되는 보편적인 현실과 리더십을 담아낸다.

 

백승수라는 리더십에 대해 시청자들이 몰입하는 건, 우리네 사회 현실에서 느껴지는 고질적 병폐들에 대한 개혁에 대한 갈증 때문이다. 드림즈라는 팀 안을 들여다보면 임동규(조한선) 같은 팀 전체가 아닌 개인의 이득만을 추구하는 선수도 있고, 고세혁(이준혁) 같은 스카웃 비리를 저지르는 팀장도 있다. 구단주의 조카인 권경민(오정세)은 적자가 누적된 팀을 은밀하게 해체시키려 한다. 이철민 수석코치(김민상)와 최용구 투수코치(손광업)는 팀을 위해 화합하기보다는 헤게모니를 잡기 위한 파벌싸움의 각을 세운다. 이러니 잘 될 턱이 없다.

 

드림즈를 우리네 사회나 특정 집단의 축소판으로 본다면 이 드라마는 어째서 그 사회나 집단이 바람직한 모습을 갖지 못하는가를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적인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단장이라는 그 위치에서 공정한 시선으로 문제를 들여다보며 어느 쪽에 치우치지 않는 판관의 역할을 하는 백승수는 그래서 우리네 사회에서 어쩌면 가장 필요한 존재처럼 여겨지는 면이 있다.

 

최근 들어 검찰 개혁이니 적폐청산이니 하는 이야기들이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건 그런 시스템의 병폐를 이제는 일소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파벌 없이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반대에도 불구하고 논리와 데이터로서 설득해가며 시스템을 개혁하는 존재로서의 백승수. 그 리더십에 시청자들이 몰입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로 보인다.(사진:SBS)

‘백두산’ 충분한 볼거리·미약한 스토리, 그럼에도 이병헌과 하정우

 

백두산의 화산이 폭발했다? 우리 재난영화 소재로 이만큼 좋은 게 있을까. 그건 단지 화산이 폭발해 도시를 잿더미로 만드는 그런 재난만 있는 게 아니라, 남북으로 갈라진 한반도 정세와 거기에 끼어드는 미국, 중국의 개입 같은 복잡한 상황들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영화 <백두산>은 그래서 그 설정만으로도 충분히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중요한 건 화산 폭발과 지진과 여진 등으로 무너지는 건물 같은 블록버스터급 CG를 제대로 소화해내야 한다는 점이다. 만일 이게 제대로 되지 않으면 유치한 B급 재난 영화가 되어버릴 테니 말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런 우려는 시작한 지 단 몇 분 만에 쉽게 해결해버린다. 우리에게 익숙한 강남역에 건물이 무너지고 아비규환이 되는 그 상황은 우리의 CG 능력도 이제 꽤 수준이 높아졌다는 데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그렇게 시선을 확 잡아 끌어놓고 이제 영화는 백두산에서 앞으로 벌어질 2차, 3차 화산 폭발의 위기감을 고조시킨다. 백두산의 폭발을 예측하고 연구해온 강봉래(마동석) 박사는 거의 확률이 없지만 시도해보지 않을 수 없는 방법을 제안하고, 이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북으로 침투되는 요원들이 이야기가 긴급하게 전개된다. 전역을 앞두고 임신한 아내를 지키기 위해 작전에 투입된 조인창(하정우)은 북에서 만나게 되는 무력부 소속 일급 자원이자 이중스파이인 리준평(이병헌)과 티격태격 위험한 대결을 벌이며 함께 작전을 수행한다.

 

먼저 전제해야 할 건 <백두산>은 말 그대로 블록버스터 영화라는 점이다. 그래서 사실 영화를 끌고 가는 건 특정 상황들이 보여주는 볼거리들이다. 그래서 영화는 마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보는 듯 강남역 붕괴 장면, 북한 침투 시퀀스처럼 하나하나 볼거리의 포인트가 맞춰져 있는 영화로 구성되어 있다. 일반 관객들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가 할리우드 영화를 즐기듯 별 생각 없이 빠져서 볼 수 있는 정도이다.

 

하지만 볼거리에서 살짝 눈을 돌려 이야기의 개연성이나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클리셰를 보기 시작하면 <백두산>은 너무 진부한 작품처럼 여겨질 수밖에 없다. 할리우드 재난 영화의 클리셰들이 곳곳에서 보이고, 남북 간의 관계를 다룬 우리네 영화들의 클리셰들도 여지없이 등장한다. 여기에 백두산이 폭발한 상황에서 중국이나 일본의 아무런 대응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 개연성 부족 또한 적지 않다.

 

그런 개연성 부족을 제작진들도 알고 있었던 것인지, 영화는 의외로 재난장르에 남북관계를 담으면서도 코미디적 요소들을 많이 집어넣는다. 그건 대부분 북에서 만나는 조인창과 리준평의 티격태격 관계의 케미를 통해서 보여진다. 역시 이병헌과 하정우라는 배우가 대단하다 여겨지는 건 이 심각한 상황 속에서 이들은 오히려 힘을 쪽 뺀 연기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만일 이들이 힘이 잔뜩 들어가 저 절체절명의 상황에 과도하게 몰입하기만 하는 연기를 했다면 어땠을까. 그로 인해 영화가 가진 개연성 부족과 클리셰들이 더더욱 도드라져 보였을 게다.

 

<백두산>은 블록버스터 영화로서 보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CG 수준도 높아 보는 내내 스크린에 대한 몰입도도 충분하다. 하지만 스토리의 개연성과 클리셰는 많이 아쉽다. 그나마 이를 상쇄시켜주는 건 이병헌과 하정우의 연기가 아닐 수 없다. 이들의 연기력의 진가가 드러나는 대목이다.(사진:영화'백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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