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지나친 콩트는 야생을 스튜디오로 만든다

 

KBS <12>에 출연한 박태호 예능국장은 “<12>은 진정성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도 했다. 그가 말하는 진정성과 초심은 무엇일까. 그것은 야생이고 여행이며 리얼리티일 것이다. 어디든 무작정 떠난 길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의 교감이나 의외로 터진 사건이 점점 커지는 국면들이 말 그대로 자연스럽게 보여지는 것이 <12>의 진정성이자 초심이다.

 

'1박2일(사진출처:KBS)'

하지만 이번 강릉, 동해로 떠난 <12>은 그 진정성과 초심을 발견하기가 어려운 여행이 됐다. 지나친 콩트 설정이 눈에 띌 정도로 많이 등장했고, 그러면서 여행은 부자연스러워졌기 때문이다. 기차를 타고 좌석 복불복을 할 때까지만 해도 <12>은 본연의 색깔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박태호 예능국장이 그 빈 자리에 앉아 멤버들에게 불편함의 끝을 선사하면서부터 이야기는 점점 콩트로 흘러갔다.

 

물론 재미가 없었다는 건 아니다. 특히 박태호 예능국장은 베테랑다운 임기웅변으로 분위기를 쥐락펴락하며 큰 웃음을 만들었다. 과거 자신이 당했던 까나리카노를 멤버들에게 먹게 만드는 몰래카메라 설정을 보여주기도 했고, 출연자들을 불편하게 만들어 화장실 가는 것조차 한꺼번에 우 몰려가게 만드는 장관도 꽤 흥미로웠다.

 

하지만 재미가 있다고 그것이 <12>의 진정성을 살려주는 건 아니다. 중요한 건 그 재미가 얼마나 진짜냐는 것이다. 예능국장과 출연자들이 기차에서 그것도 같은 자리에서 만날 확률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니 그것은 의도된 만남일 수밖에 없다. ? 일종의 상사와 직원 같은 계급구조를 갖고 웃음을 줄 수 있는 콩트 코미디를 만들기 위함이다. 이런 기차 같은 공간에서의 불편한 동반자콘셉트의 콩트는 이미 과거 <유머일번지> 시절부터 콩트 코미디에 단골로 나왔던 소재다.

 

물론 그것으로 끝났다면 가끔 한두 번씩 나오는 의도된 상황극이라 치부하고 넘어갈 수 있다. <12>의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해 국장까지 프로그램에 나와 아낌없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건 그것이 상황극이라고 해도 충분히 이해되는 일이다. 하지만 그 후로 계속 이어지는 콩트의 연속은 <12>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박태호 국장이 준 용돈으로 잠깐 역에서 내린 출연자들이 국제분식에서 바가지를 쓰는 장면은 아예 그 공간을 스튜디오처럼 여겨지게 만들었다. 급조된 포장마차에 <12> 국제심판(?) 권기종이 주인이 되어 출연자들에게 바가지를 씌우고 돈을 내지 않으려 하자 갑자기 조폭(역할을 하는 사람)이 등장해 돈을 갈취하는 장면은 너무 인위적이라 그것이 <12>인지 <개그콘서트>인지 분간하기가 힘들었다.

 

해변에 도착해서도 콩트는 계속 이어졌다. 이번에는 미녀와 추녀를 비교하는 전형적인 <개그콘서트>형 콩트다. 현장에서 즉석에 섭외된 일반인들과 게임을 하는데 갑자기 미녀와의 데이트를 상으로 내세우는 건 실로 엉뚱한 설정이다. 비키니를 입은 여성을 상으로 세운다는 것이 <12> 같은 가족 예능 프로그램에 어울리지 않을뿐더러, 특히 여성 일반인 참여자에게는 더더욱 의미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비키니를 입은 여성들은 누가 봐도 섭외의 흔적이 역력하다. 카메라 앞에서 자연스런 포즈를 취할 정도면 이미 의도된 상황극 속에 들어와 있었다는 얘기이고, 마침 이들과 비교점을 세우는 오나미나 김혜선 역시 한 편의 콩트 설정으로 투입된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갑자기 뜬금없이 주어진 2시간 휴식에 출연자들이 몸단장을 하는 모습이 보여지더니 해변가에 놀러온 미녀들에게 천거된 출연자들이 한여름 낮의 꿈을 연출하고, 반면 천거 받지 못한 출연자들이 오나미와 김혜선과 함께 지옥을 경험하는 장면들이 병치된다.

 

물론 여기 등장한 비키니 미녀들이 처음부터 섭외된 연예인 지망생이었는지 아니면 현장에서 우연히 만나 섭외된 일반인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이 어느 쪽이든 이 웃음에 <12> 특유의 자연스러움이 사라진 것만은 사실이다. <12>은 여름휴가 시즌인 여행의 시기에 하필 이런 콩트 설정의 특집을 만들었을까. 차라리 여행을 못가 방에 콕 박혀 보내는 <무한도전>식의 콩트라면 이해가 가지만 굳이 동해까지 가서 스튜디오 예능을 할 필요가 있었을까.

 

웃음이라고 다 같은 웃음이 아니다. <12>이 여타의 예능 프로그램보다 우위에 설 수 있었던 힘은 바로 이 다 같지 않은 웃음의 진정성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콩트를 통해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웃음이 아니라 진짜 현장에서 뜻밖에 터지는 웃음이 있었기 때문에 <12>이 있을 수 있었다. 물론 <개그콘서트><개그콘서트> 나름의 웃음의 의미가 있지만 <개그콘서트>를 보며 기대하는 웃음과 <12>을 보며 기대하는 웃음은 다르기 마련이다. 지나친 콩트는 야생마저 스튜디오로 만들어버린다. <12><개그콘서트>가 돼서는 안 되는 이유다. <12>은 박태호 국장이 말하는 그 진정성과 초심으로 돌아와야 한다.

 

지금 강호동에게 필요한 건 야생 수컷호랑이

 

강호동이 다시 방송에 복귀한다고 했을 때 가졌던 기대감에 비해 그 결과가 너무 소소하다는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첫 복귀 신고식을 치른 <스타킹>은 첫 회에 무려 16.2%(agb닐슨)의 시청률을 냈다. 하지만 그 후로 시청률은 13.4%, 10.7%로 뚝뚝 떨어졌다(물론 최근 약간 반등했지만). <무릎팍도사>는 정우성이 게스트로 나온 첫 회에 8.7%에서 시작해 6%대까지 시청률이 떨어졌다. 물론 이 몇 회의 시청률 추이를 갖고 강호동 복귀의 효과를 섣불리 예단하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기대감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스타킹'(사진출처:SBS)

이렇게 된 것은 복귀하는 강호동에게 무언가 새로운 것을 기대했지만 그것이 제대로 보여지지 않았다는 데 있다. 무엇보다 기존에 그가 했던 프로그램으로 다시 복귀했다는 점이 그 기대감을 상당부분 누그러뜨렸다. <스타킹>은 그가 예전에 했던 그 전성기를 한참 지난 포맷의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고, <무릎팍도사> 역시 달라진 토크쇼 환경 속에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 속에서 강호동은 마치 1년 전에 시간이 멈춰진 것처럼 똑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니 1년의 공백이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새로 시작하는 <달빛프린스>는 어떨까. 아직 방영이 되지 않아 어떤 형태일 것인가를 확실히 말하긴 어렵지만 그 형식이 토크쇼라는 것은 분명하다. 매주 게스트가 한 권의 책을 직접 선정하고 그 책에 따라서 주제가 선정되는 북 토크 형식이라고 한다. 강호동을 위시해 최강창민, 용감한 형제, 정재형, 탁재훈이 함께 MC로 투입되었다. <안녕하세요>를 연출한 이예지PD에 대한 신뢰가 있어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감은 높은 편이다. 하지만 강호동은 어떨까. 과연 이 프로그램을 통해 약화된 자신의 이미지를 확실하게 세울 수 있을까.

 

그러기에는 스튜디오에서 이뤄지는 토크쇼라는 점이 그 기대를 상당부분 떨어뜨린다. 너무 많아진 토크쇼들 속에 또 하나의 토크쇼라는 점도 그렇지만, 강호동에게는 특히 더 그렇다. <무릎팍도사>와 더불어 또 하나의 토크쇼를 하는 셈이니 말이다. 어떤 다른 면모를 보여줄 지 확실히 알 수 없지만 토크쇼는 강호동의 진가를 끄집어내기에는 약한 면이 있다. <무릎팍도사>처럼 확실하게 그의 캐릭터를 잡아주는 토크쇼도 쉽지 않은 판이다.

 

강호동의 강점은 실내보다는 야외에서 더 발휘될 가능성이 높다. “시베리안 야생 수컷호랑이!” 강호동이 자신의 MC 이미지를 가장 인상 깊게 만들어낸 것은 <1박2일>에서 이렇게 외쳤을 때이다. 너무 소리를 지른다고 부담스러워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래도 강호동의 최대 자산이라면 바로 그 강인한 인상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한겨울 살얼음이 둥둥 떠 있는 계곡에 서슴없이 들어가고, 밀려오는 파도 속에 몸을 던지는 장면은 다른 그 어느 누구도 그만한 효과를 만들어내기 힘든 강호동만의 특별함이 묻어난다.

 

왜 강호동은 자신만이 가능한 이 야생의 캐릭터를 보여줄 수 있는 예능 프로그램을 하지 않을까(그렇다고 <1박2일>에 들어가란 얘기는 아니다). 하긴 그렇게 그에게 최적화된 예능 프로그램이 없는 상황이긴 하다. 하지만 그래도 만일 강호동을 제대로 활용하겠다면 그 야생의 힘을 끄집어낼 수 있는 형식이 훨씬 유리하지 않을까. 제 아무리 강호동이라는 거물이 있어도 제대로 활용하지 않으면 그만한 효과를 내기가 어렵다. 방송사들의 강호동 활용법에는 그래서 강호동에게나 대중들에게나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