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의>는 왜 조승우와 이요원의 운명을 바꿨을까

 

이제 막바지에 다다른 <마의>에 남은 문제는 다시 원래대로 바뀐 운명으로 인해 관노가 된 강지녕(이요원)이 과연 면천해 백광현(조승우)과 이루어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일 게다. 그간 이병훈 PD의 사극 스타일을 떠올려보면 그 결과를 예측하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다. 결국 어떤 식으로든 해피엔딩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단지 그 과정이 궁금할 따름이다.

 

'마의'(사진출처:MBC)

그런데 이 즈음에서 <마의>가 왜 굳이 출생의 비밀을 활용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거의 대부분의 드라마들이 자극적인 설정을 위해 출생의 비밀 코드를 활용하고 있는 시점에 이런 의구심은 쓸 데 없는 일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마의>가 가져온 출생의 비밀은 여타의 드라마들과는 조금 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출생의 비밀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다르다. 여타의 드라마들이 출생의 비밀 코드를 활용할 때 복수 같은 부정적인 상황을 전제하지만 <마의>는 그런 방식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백광현과 강지녕의 운명이 바뀌게 된 것은 강지녕의 친부인 백석구(박혁권)가 백광현의 친부인 강도준(전노민)의 은혜를 갚기 위해 했던 일이었다. 사내아이로 태어나 바로 죽게 될 운명에 처한 백광현을 살리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는 것. 이것은 아이를 바꾸게 되는 출생의 비밀 코드조차 선한 의지로 그려내는 <마의>만의 특별한 선택인 셈이다.

 

또한 출생의 비밀이 왜 필요했는가 하는 점도 <마의>는 남다른 이유를 갖고 있다. 이 드라마는 마의 출신의 백광현이 어의가 되는 성장과정을 담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조선사회라는 신분사회가 갖는 관습과 편견이 그 장애물로 등장한다. 즉 백광현이 장차 배워야할 의학은 사람의 살을 째고 고름을 빼내는 외과술인데, 이것은 반가의 자제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백광현이 강지녕과 운명이 바뀌는 것은 어찌 보면 백광현에게 가장 낮은 위치로 내려 보내 이 외과술을 하나씩 배워나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된다.

 

이것은 출생의 비밀을 역설적으로 풀어놓은 것이다. 오히려 마의 같은 천한 신분이었기 때문에 백광현이라는 외과술의 대가가 나올 수 있었다는 것. 즉 신분사회의 편견을 넘어서 성장하기 위해 출생의 비밀이 활용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후반부에 이르러 이 출생의 비밀이 드러나고 백광현이 반가의 자제라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은 그가 좀 더 높은 위치, 즉 어의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반이 되기도 한다. 즉 백광현의 운명을 들여다보면 출생의 비밀이 그의 성장의 단계적인 발판이 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마의>가 출생의 비밀 코드가 갖는 자극적인 효과를 노리지 않은 것은 아니다. 헤어졌다 만나고, 몰랐다가 알게 되는 이 출생의 비밀 코드가 갖는 힘은 백광현과 강지녕의 헤어짐과 만남, 또 서로의 진짜 신분을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서도 충분히 활용되었다. 다만 그 출생의 비밀을 설정한 이유가 조선사회라는 틀 안에서 백광현 같은 외과술의 대가를 탄생시키는 과정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꽤 설득력 있게 사용되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렇게 잘 활용된 출생의 비밀 코드에도 폐해는 있다. 그것은 백광현의 성장과정을 잘 다루기 위해 활용된 출생의 비밀이 그 다른 쪽 캐릭터, 즉 강지녕이라는 인물에게는 그다지 좋은 효과를 가져오지 못했다는 점이다. 강지녕은 그저 바뀌어진 운명 속에서 백광현의 그림자 같은 역할을 할 따름이었다. 이요원의 존재감이 미미하게 여겨진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법이다.

 

백광현은 신분을 되찾고 어의가 되기 위한 한 걸음을 남기고 있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강지녕은 관노가 되어 백광현의 도움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이 사극이 얼마나 주인공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는가 하는 점을 새삼 느끼게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의>의 출생의 비밀은 조선사회라는 신분구조 속에서 외과술의 대가로 성장해가는 백광현이라는 인물을 그려내는데 있어 대단히 효과적으로 활용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드라마에서 마구 활용되고 있는 출생의 비밀 코드란 이렇게 내적인 근거가 확실하게 갖춰져야 시청자들에게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마의>에서 허각이 떠오르는 이유

 

"나 인의라는 것 해보고 싶습니다. 그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얼마나 잘난 일인지 정말 나 같은 놈은 꿈도 꿀 수 없는 건지. 나 그거 한 번 해볼 겁니다." 여기서 ‘나 같은 놈’이란 마의인 백광현(조승우)의 신분을 뜻한다. 요즘 사회를 태생부터 미래가 결정되는 스펙사회라고 하지만 조선시대 만큼일까. <마의>가 현재에 던지는 판타지는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마의'(사진출처:MBC)

사극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를 그린다고 했던가. 사람을 살리고도 마의라는 신분 때문에 장 30대를 맞는 <마의>가 그리는 세상은 작금의 스펙사회를 떠올리게 한다. 그 손이 그 손일진대 “짐승이나 만지는 천한 손으로 사람의 몸에 침을 놓는 건 맞아죽어도 싼 죄”로 치부되는 곳이 바로 <마의>의 세상이다.

 

백광현은 다름 아닌 성장의 사다리가 끊겨버린 청춘이다. 그런데 그런 그를 신분이 아닌 하나의 사람으로 바라봐주는 인물들이 있다. 그가 의과시험을 치르게 도와주는 강지녕(이요원)이 그렇고, “자네가 실력만 있으면 되지 출신성분이 뭔 상관인가”라고 말하는 고주만(이순재)이 그렇다. 숙휘공주(김소은)가 저도 모르게 백광현의 매력에 끌려 볼에 입맞춤을 하는 장면도 그렇다. 그녀는 강지녕의 말대로 백광현의 “신분이 아닌 사람을 본 것”이다.

 

<마의>가 절묘한 지점은 바로 조선시대라고 하더라도 이 신분이 무화되는 공간들을 찾아냈다는 점이다. 드라마 초반에 등장했던 이타촌(외국인들이 사는 마을)이 그렇고, 무교탕반이라는 왕에서부터 서민들까지 누구나 와서 먹을 수 있는 음식점이 그렇다. 고주만 영감이 의과시험을 누구나 실력이 있으면 응시할 수 있는 시험으로 만드는 것도 그렇다. 바로 그 공간이 있어 백광현은 낮은 신분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실력으로 1차 시험을 통과할 수 있었던 것. 백광현은 저 <슈퍼스타K2>의 허각이 만들어낸 신드롬을 사극으로 재현하는 인물이다.

 

그가 응시하는 의과시험의 풍경들은 며칠 전 끝난 수능시험을 떠올리게 한다. 시험 전날 자꾸 까먹는 자신을 한탄하며 스스로 머리를 쥐어박고 있을 때 강지녕이 건네주는 요약본은 지금으로 치면 ‘족집게 과외’ 같은 것. 백광현은 그 요약본에서 절반 이상이 시험에 나왔다며 기뻐한다. 우리네 스펙사회에서 그 첫 발이 대학입시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마의>의 백광현이 첫 발을 내딛는 의과시험은 꽤 의미심장해진다.

 

하지만 무엇보다 <마의>가 현재적 의미를 드러내는 건 동물의 병을 돌보고 고치는 마의라는 존재 자체일 것이다. 생명을 고치는 손에 마의가 따로 있고 인의가 따로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중요한 건 생명을 살린다는 것 그 자체가 아닌가. 조선이라는 신분 사회 속에서도 결국 하나의 인간으로 공유되는 지점은 결국 의술이 다루는 몸이다. 양반이건 노비건 몸은 똑같이 병들고 죽게 마련이니까.

 

<마의>를 보면서 그것이 저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현재의 이야기로 느꼈다면 그것은 이 사극이 얼마나 현재의 대중들의 정서를 들여다보고 있는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래서 신분과 빈부의 경계를 무화시키는 공간과 상황들 속에서 그렇게 백광현이 성장하는 모습은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강력한 판타지를 제공한다. 사극은 그렇게 과거를 다루지만 과거가 아닌 현재를 이야기하는 장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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