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기사’, 장미희와 서지혜가 바로 숨은 흑기사

사실 판타지 장르에서 그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를테면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의 ‘도깨비’나 ‘저승사자’ 캐릭터는 실제적이지 않기 때문에 시청자들에게 납득시키기가 쉽지 않다. 결국 두 역할을 소화해낸 공유와 이동욱이 그 캐릭터들을 납득시키지 못했다면 그 작품은 애초 성립 자체가 되지 않았을 거라는 것. 

그런 점에서 보면 KBS 수목드라마 <흑기사>라는 판타지 드라마를 성립시키는 건, 다름 아닌 샤론과 백희 역할을 연기하고 있는 서지혜와 장미희가 아닐 수 없다. 이 드라마가 가진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 200년 넘게 불멸하는 존재가 갖는 남다른 시간관념, 그래서 전생과 후생을 동시에 들여다보는 관점 등이 모두 가능해진 건 다름 아닌 샤론과 백희라는 두 신비한 존재가 납득되고 있어서다.

장미희는 사실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변함없는 미모와 스타일을 보여줌으로써 <흑기사>가 갖고 있는 ‘보이지 않는 신비한 힘’을 그 이미지 자체만으로도 이해시키는 면이 있다. 시대가 지나도 변함없는 외모는 이 작품이 가진 ‘불멸의 존재’라는 캐릭터와 너무나 잘 어울린다. 게다가 장미희라는 배우가 가진 특유의 분위기 역시 현실감을 뛰어넘어 이야기에 신비한 느낌을 부여한다. 

그가 연기하는 백희는 사실상 문수호(김래원)와 정해라(신세경)의 흑기사 같은 인물이다. 어린 시절 수호가 절망에 빠져 있을 때 그에게 다가와 앞으로 모든 일들이 다 잘될 것이고 행운이 따를 것이라고 말해줌으로써 실제로 수호가 큰 성공을 갖게 된다는 설정은 이 드라마의 주제의식과도 연결되어 있는 부분이다. 그것은 누군가의 한 마디가 한 사람의 운명을 바꿀 만큼의 힘을 발휘한다는 뜻이기도 하고, 또한 누군가의 성공이나 실패가 어쩌면 “운이 좋거나 나빠서 생긴 일”일 뿐이니 거기에 교만하거나 낙담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백희는 문수호와 정해라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덕담과 기도를 반복함으로써 진짜로 그들이 행복해지는 삶의 신비함을 드러내는 인물이다. 그러면서 그런 덕담과 기도가 늙지 않는 천형으로부터 자신을 변화시켜 나이 먹기 시작한 것을 축복으로 받아들이는 인물이기도 하다. 훨씬 원숙해진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장미희가 아니라면 이만큼 잘 소화해내기가 어려운 캐릭터다. 

하지만 <흑기사>에서 진짜로 더 칭찬을 해주고 싶은 배우는 바로 서지혜다. 물론 과거 자신의 잘못 때문에 불멸의 존재로 살아가는 벌을 받고 있는 인물이지만, 샤론은 이 드라마가 가진 독특한 판타지적 느낌을 가장 잘 만들어내는 캐릭터가 아닐 수 없다. 서지혜는 이 캐릭터가 가진 차가움과 쓸쓸함 그러면서도 어딘지 아이 같은 천진함 같은 것들을 실제로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신비롭게 소화해내고 있다.

그가 운영하는 샤론양장점은 그래서 이 캐릭터 자체처럼 느껴진다. 전생의 악업을 끊어내기 위해 옷을 만드는 샤론이란 인물은 마치 동화 속에서 나온 듯한 느낌을 주고, 마치 그의 시종처럼 일하는 양승구 역할을 소화해내는 김설진은 현대무용의 대가답게 일상과 춤동작들을 엮어 비현실적인 느낌을 더해준다. 하지만 이 모든 판타지적 느낌을 하나로 묶어내고 있는 건 역시 서지혜다.

우리는 흔히 자신이 해야 할 것을 대신 해주는 인물로서 ‘흑기사’를 지칭하곤 한다. 그런 뜻에서 보면 장미희와 서지혜는 이 드라마의 확실한 흑기사 역할을 해주고 있다고 보인다. 주인공들은 아니지만 주인공이 겪는 판타지적인 사랑과 운명의 이야기에 신비로운 분위기의 밑그림을 그려주고 있으니 말이다. 그들이 이 드라마의 숨은 흑기사들이라고 느껴질 만큼.(사진:KBS)

‘흑기사’가 말하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KBS 수목드라마 <흑기사>, 이 드라마 수상하다. 판타지 로맨스인데 난데없는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자본화 현상이 거론된다. 최근 들어 부쩍 많이 등장하는 이 용어는 ‘구도심이 번성해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몰리고 결국 임대료가 올라 원주민이 밀려나는 현상’을 뜻한다. 이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 문수호(김래원)가 한국에 들어와 벌이고 있는 사업이 바로 ‘젠트리피케이션’이 벌어지는 공간에서 원주민들을 지켜내는 사회사업이다. 그는 특색 있는 전통을 유지한 동네에 건물과 집들을 사들여 예술가들에게 장기 임대를 해주고 이를 여행 상품으로도 만들겠다고 했다. 

조금은 뜬금없는 이야기처럼 느껴지지만 드라마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게 그렇게 맥락 없는 설정은 아니라는 걸 확인하게 된다. 정해라(신세경)가 절망하게 되는 사건으로 이모가 반전세금을 빼고 대출까지 받아 오래된 한옥집을 덜컥 사버린 일이 이미 이 드라마가 공간에 대한 어떤 메시지를 던지려는 사전포석이었기 때문이다. 재개발 자체가 묶여버린 그 한옥집을 결국 문수호가 사고 정해라와 이모가 머물 셰어하우스를 제공하는 스토리 전개도 그래서 그냥 전개된 것이라기보다는 의도된 것이라 보인다. 

도시 한 가운데 남아있는 샤론양장점이라는 다소 고풍스럽고 어떤 면에서는 판타지적인 공간도 그래서 남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양장점’이라는 문구가 드러내는 전통적인 방식은 우리에게 이미 익숙해져 버린 기성품의 자본적 냄새와는 사뭇 다를 수밖에 없다. 그 곳을 지키고 있는 샤론(서지혜)은 그래서 그 공간과 하나 된 인물처럼 보인다. 200년을 죽지 않고 살아온 불멸의 존재. 물론 죽고 늙고 하는 생멸의 문제는 다소 세속적인 것일 수 있지만, 어쨌든 지켜지고 있는 ‘전통’이라는 의미에서 그 공간의 상징은 남다르다.

그러고 보면 슬로베니아에서 문수호와 정해라(신세경)가 만난 기사의 성이 그런 공간이다. 사람은 100년을 넘어 살기가 힘들지만 그런 성은 몇 백 년을 그 모습 그대로 버텨내기도 한다. 물론 그 성 이전에 공간은 더 오랜 세월들을 머금었을 게다. 다만 그 위에 인간들이 나타나고 누군가는 집이나 성을 짓고 또 누군가는 그걸 부수고 새로 짓고 하는 걸 반복했을 따름이다. 

불멸의 존재와 수백 년을 버티고 있는 건물들은 그래서 그 존재 자체로 ‘젠트리피케이션’이 벌어지는 도시의 자본화 현상을 마치 허망한 짓이라는 듯 비웃는다. 100년을 못사는 인간의 얕은 욕망이 만들어내는 안타까운 파괴의 양상이라는 걸 말해주는 듯하다. 

드라마가 내세우고 있는 문구,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라는 메시지에는 그래서 이 드라마의 공간에도 어떤 울림을 만든다. 눈에 보이는 것에 휘둘려 욕망과 자본이 몰리고 그래서 예술가들 같은 원주민들이 밀려나지만, 알고 보면 그 곳이 그렇게 생기를 갖게 된 건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술가들의 혼 같은 것이다. 만일 공간과 건물이 그저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니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이를테면 사람의 흔적이나 온기 혹은 사랑 같은 것들이 퇴적해 만들어진 총체라고 생각한다면 함부로 그걸 밀어버리거나 그 안의 사람들을 내모는 짓은 할 수 없으리라. 

이것은 <흑기사>가 그려내는 판타지적인 사랑의 이야기와도 맞닿아 있다. 우리가 사는 현실은 눈에 보이는 것들로만 채워져 있는 것 같고 그래서 많은 것들이 우리를 절망하게 하지만, 또한 거기에는 사랑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들이 있어 우리를 다시 살아가게 한다. 자기 존재의 귀함과 아름다움을 잊은 채 살아가던 정해라에게 문수호가 당신은 귀한 존재라고 말해주는 건 바로 그 ‘보이지 않는 것’을 그가 보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가 말도 안되는 판타지를 꿈꾸고 그게 마치 실제 있는 일이나 되는 것처럼 빠져드는 건 눈앞에 보이는 것들로만 가득 채워진 비정한 세상이 그저 전부라고 말하는 것이 너무나 비참한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꿈꾼다. 눈에 보이지 않고 또 어찌 보면 결국은 모두가 사멸하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저버리지 못한다. 그리고 그런 사랑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몇 세기를 넘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불멸의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흑기사>의 판타지 로맨스가 젠트리피케이션을 얘기하는 건 엉뚱한 일이 아니다. 젠트리피케이션이 눈에 보이는 세속적 현상이라면 판타지나 사랑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가치일 수 있으므로.(사진:KBS)

‘흑기사’, 절망 속에서 우리를 살게 하는 힘은 뭘까

절망의 끝에서도 우리를 살게 하는 힘은 도대체 뭘까. KBS 새 수목드라마 <흑기사>는 바로 그 절망의 끝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남들은 해외여행을 다녀올 때, 자신은 여행객들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는 처지에 난데없이 들이닥쳐 뺨부터 후려치는 갑들이 넘쳐나는 일터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며 살아가는 정해라(신세경). 그런데 불행은 마치 폭풍처럼 한 번에 겹쳐져 그에게 몰아친다. 검사인 줄 알았던 남자친구 최지훈(김현준)이 알고 보니 사기꾼이었고, 자신도 버거운 처지에 부양하던 이모 이숙희(황정민)는 그의 전 재산을 날려버린다. 

<흑기사>가 정해라의 이 몰아닥친 불행을 그 시작점으로 삼는 까닭은 이 드라마의 제목에 담겨 있는 것처럼 그를 이 불행으로부터 빠져나오게 해줄 흑기사에 대한 강렬한 판타지와 욕망을 끄집어내기 위함이다. 죽기 직전 자신이 살아왔던 생이 주마등처럼 흘러간다는 이야기처럼, 절망의 끝에서 정해라가 떠올리는 건 그래도 행복했던 시절의 기억이다. 죽겠다 먹은 약에 취해 그 때로 되돌리고픈 마음이 그 행복했던 시절의 기억을 툭툭 건드리고, 그는 그 때 집이 망하지만 않았어도 입게 되었을 샤론양장점에서 맞춘 자주색 코트를 떠올린다. 그 옷을 입기만 했다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었을 것만 같은 느낌.

마치 꿈같은 그 기억 속에서 정해라는 샤론양장점에 들어가 미스터리한 인물 샤론(서지혜)을 만나고 그의 은밀한 제안을 듣게 된다.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정해라에게 샤론은 살고 싶은 이유를 만들어주면 자신이 원하는 걸 한 가지 달라는 것. 그건 다름 아닌 서로의 인생을 바꾸자는 것이었다. 마치 <파우스트>의 메피스토펠레스의 유혹처럼 달콤한 그 제안을 정해라는 아무렇지도 않게 허락한다. 이미 절망의 끝에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은 그에게 못할 선택이 무에 있을까.

꿈처럼 느껴지는 그 일을 겪고 깨어난 정해라는 그러나 자신의 집에 놓여져 있는 자주색 코트를 보며 그것이 단순한 꿈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코트의 힘이었을까. 전날만 해도 모든 걸 끝내려 했던 그는 코트를 입고 별다른 일도 없었다는 듯 회사에 출근해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을 보낸다. 하지만 전날과 달리 그에게 계속 행운이 찾아온다. 점심시간에 재료가 떨어져 혼자만 먹지 않았던 오삼불고기가 탈이 되어 전 직원이 식중독 증세를 보이고, 어쩔 수 없이(?) 정해라는 해외출장을 가게 되는 행운을 얻는다. 그리고 그 출장에서 어린 시절 헤어졌던 성공한 젊은 사업가 문수호(김래원)를 만나는 행운까지.

<흑기사>는 시작부터 판타지를 전면에 내세운다. 정해라라는 인물 앞에 나타난 샤론이라는 불사의 존재가 등장하고, 그의 신탁처럼 정해라는 불행의 끝에서 행운의 시작을 맛보게 된다. 어찌 보면 비현실적일 수밖에 없는 판타지임에도 불구하고 <흑기사>는 왜 이런 판타지를 지금 이 시대에 꺼내놓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무얼 해도 나아지지 않는 현실을 겪으며 스스로를 불행의 아이콘으로 여기게 된 많은 실의에 빠진 이들에게 그래도 우리가 포기하기 않고 버텨내야 하는가 하는 작은 위로를 던지기 위함이 아닐까. 판타지는 그저 환상이 아니라 어쩌면 도저히 버티기 힘든 현실을 그나마 버텨내게 하는 힘이 될 수도 있다. 자신을 끝장내려던 그 지점에서 행복했던 어린 시절의 한 자락 기억이 꺼져가는 삶의 불씨를 다시 지펴줄 수 있는 것처럼.

그렇게 먼 길을 돌아 정해라는 자신의 흑기사가 되어줄 문수호를 만나게 된다. 불행의 끝이 행운으로 이어지고, 그래서 삶의 행복을 이어줄 인연을 맺게 해주지만 그러한 행운은 그 후로도 계속 지속될 수 있을까. 어쩌면 불행과 행운은 동전의 양면처럼 반복되는 것은 아닐까. 정해라가 처한 불행이 남일 같지 않고 그래서 그의 행복을 기원하게 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면 <흑기사>의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가 못내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현실에 지쳐 잘 보지 못했던 삶의 비의를 보여주고 그것을 관조하게 해줄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사진:KBS)

‘하백의 신부’, 코미디로 무장하고 있지만 그 속내는

“중증 강박장애였을 거에요. 완전무결을 위한 강박. 피해망상. 박상철 그 사람 계속 나를 만나고 싶어 했어요. 마지막 구조신호였을 거예요. 마봉열씨도 그렇고 이번 일도. 의사인 내가 봐야할 걸 보지 않고 들어야 할 걸 듣지 않아서 생긴 일들일까요?” tvN 월화드라마 <하백의 신부 2017>의 윤소아(신세경)는 하백(남주혁)에게 정신과 의사로서 환자들의 아픈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 자신을 그렇게 자책한다. 

'하백의 신부(tvN)'

하지만 그녀는 또한 그렇게 정신이 아픈 이들의 삶에 연루되는 것을 버겁게 느낀다. 정신과 의사로서 누구보다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봐야 하는 것이지만 그로 인해 겪을 부담은 피하고 싶은 것. 그래서 하백에게 그 정반대의 감정을 토로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나는 그런 일로 책임감 갖거나 미안해하거나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요. 나는 그냥 내 생각하면서 살고 싶어요.”

하백은 그러나 그녀의 그 말이 진심이 아니라는 걸 확신한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어. 근데 하난 확실하지. 넌 네가 원하는 대로 살지 못할 거야. 넌 애초에 그렇게 생겨먹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그녀의 상황을 자전거 바퀴에 비유해 이야기한다. “내가 바퀴에 관심 있어서 좀 찾아봤는데 자전거라는 게 그렇더군. 넘어지는 쪽으로 핸들을 꺾어야 쓰러지지 않아. 네 마음이 넘어지려는 쪽이 어딘지 너만 모르는 거 아냐? 자꾸 억지로 반대로 꺾으려 하면 쓰러져 골병든다.”

사실 <하백의 신부>가 가진 이야기의 기조는 판타지와 코미디다. 그래서 조금 썰렁한 코미디들이 반복되고 또 허공으로 붕 날아오르거나 고층 건물 옥상에서 떨어지는 소아를 하백이 끌어안고 구해내고, 브레이크가 고장 난 차량 위로 탈출해 내려오는 판타지적 장면들을 보다보면 흥미롭긴 해도 어딘지 너무 가볍다는 느낌을 버릴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99%의 판타지 코미디적 설정들을 잘 들여다보면 이 드라마가 궁극적으로 하려는 1%의 진심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왜 윤소아가 하필이면 정신과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인물로 설정되어 있고, 여기 등장하는 신들이 물과 하늘같은 자연(주로 기후와 관련이 있는)을 관장하는 신들이며, 하필이면 하백의 경쟁자로 등장할 후예(임주환)라는 인물이 리조트 개발 회사의 대표인가에서 드러난다. 

후예가 하는 리조트 개발이란 다름 아닌 자연을 파헤쳐 인공적인 공간을 만들고 그것으로 부를 창출하는 사업이다. 그리고 지금 후예가 만들려는 리조트는 다름 아닌 하백을 대대로 받들어오던 윤소아의 조상들이 살던 터전이다. 그녀는 이 땅을 무려 7배의 가격으로 사겠다는 후예의 제안에 반색하지만 리조트 개발을 둘러싼 하백과 후예 사이의 대결구도는 어쩌면 윤소아를 흔들리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실로 자본의 세상에서 살아가며 돈이 신인 물신을 숭배하는 현대인들에게 <하백의 신부>는 하백이라는 자연을 상징하는 존재를 통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과연 ‘행복한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윤소아는 어떤 길이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까. 

신석을 잃어버린 무라(정수정)와 비렴(공명)은 하백과 대립하며 심지어 그의 신력을 시험하기 위해 윤소아를 위험에 빠뜨리기도 한다. 아마도 이것은 신(자연)이 갖는 무심함일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세상으로 오며 신력을 잃어버린 하백은 바로 그 점 때문에 이들과는 다르다. “배도 고프다며?”하고 묻는 비렴의 질문은 하백이 인간적인 고통이 무엇인가를 깨닫는 특별한 신이라는 걸 오히려 드러낸다. 

윤소아는 신과 인간적 욕망 사이에서 방황하며 헷갈려 한다. 정신과 의사로서 자신의 환자들이 위험에 처하게 된 것을 자신의 잘못으로 여기면서도, 자신은 그런 타인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하는 그런 삶을 살고 싶어 한다. 그녀는 그래서 궁금하다. “신들이 다 이 모양이라 세상이 이 꼬라지인지. 세상이 이 꼬라지라 신들이 포기하고 저 모양인지.”

그럼에도 그녀에게서 발견되는 어떤 희망 하나는 힘들게 살아가며 투덜대면서도 그런 삶조차 고마워하는 마음이 남아 있다는 점이다. “고맙습니다. 또 살려준 거. 그리고 오늘 종일 바쁘게 해준 거.” 그녀가 하백에게 전하는 이 한 마디는 마치 우리가 힘겨운 현실에 나갔다 돌아와 잠자리에 들 때 작은 기도 속에 담는 희망을 닮았다. 99% 판타지 코미디의 외피를 갖고 있는 <하백의 신부>가 그 안에 촘촘히 숨겨놓은 1%의 진심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