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선물>, 오죽하면 시간을 되돌리겠나

 

가혹한 운명은 과연 바뀔 수 있을 것인가. 유괴범에게 납치되어 결국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온 딸. 아마도 부모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지는 심정이었을 게다. ‘신의 선물인 아이의 죽음은 그래서 그 엄마인 김수현(이보영)으로 하여금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든다. 그런데 그 순간 시간이 14일 전으로 되돌려지며 그 아이를 구할 수 있는 시간(또 다른 의미로서의 신의 선물이다)이 엄마에게 주어진다. SBS 월화드라마 <신의 선물 14(이하 신의 선물)>은 이러한 가상이지만 간절한 부모의 마음을 담고 있다.

 

'신의 선물 14일(사진출처:SBS)'

물론 이런 일은 현실적으로는 일어날 수 없다. 하지만 14일 전으로 되돌려진 김수현은 자신의 딸을 살해했을 거라 믿어지는 연쇄살인범을 직접 추적하게 된다. 김수현은 끝없이 이 다가올 미래를 바꾸려고 새로운 선택들을 하게 된다. 현재의 다른 선택이 다른 미래를 가져올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약간의 상황변화만 있을 뿐 일어날 일은 계속 벌어지는 것을 보며 김수현은 시쳇말로 멘붕(멘탈붕괴)에 빠진다.

 

아이와 같이 만나던 지적장애인 기영규(바로)의 카메라가 부서지는 장면이나 그토록 막으려 했던 연쇄살인범의 피해자인 미미의 죽음도 그녀는 막지 못한다. 김수현은 손을 부들부들 떨며 지갑 속에 사진을 꺼내보지만 운명은 바뀌지 않는다. 함께 찍었던 사진 속에 사라져버린 딸은 이 운명이 결코 변하지 않고 예정된 대로 흘러갈 것이라는 암시를 전해준다.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도 아무 것도 바뀔 수 없다면 그것만큼 더한 고통은 없을 게다. 드라마의 첫 도입부에 일러스트레이션으로 표현된 잔혹동화에 등장하는 엄마의 고통 그대로다.

 

이것은 또한 <신의 선물>이라는 드라마를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고통이기도 하다. 김수현이라는 엄마의 입장에 몰입되어 바라보면 그녀의 긴박감과 안타까움과 당혹감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드라마는 스릴러 장르에 충실하게 시청자들의 기대와 추측을 계속해서 배반하며 그를 통해 보는 이들 또한 멘붕에 빠뜨린다. 범인 차봉섭(강성진)을 잡았다고 여기는 순간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나게 되고, 그래서 또 증거를 찾아내 다시 검거했지만 갑작스런 사고(이것도 누군가 의도적으로 저지른 것이다)로 도주하던 차에 결국 차봉섭은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든 괴한의 야구방망이에 맞고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그 괴한 역시 현장에서 즉사한다.

 

차봉섭의 죽음에도 여전히 사진 속 딸의 모습이 빈자리로 남아있다는 것은 제3의 범인이 있다는 얘기. 운명은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다. 결국 차봉섭도 본래부터 교통사고로 사망할 운명이었다. 대신 사건은 또 다른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차봉섭과 공범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이 사건이 단순한 유괴사건이 아니라 과거에 얽힌 일들에 대한 계획된 복수극이었다는 쪽으로 이야기는 흘러간다.

 

김수현을 둘러싼 인물 모두가 낯설어진다. 그녀를 돕는 기동찬(조승우)은 과거 자신의 형이 살인을 저질렀다고 증언을 했고 그 때 법정에 선 검사가 바로 김수현의 남편 한지훈(김태우)이었다. 또 기영규의 머리가 이상해진 것이 그의 오발 때문이었다는 것도 밝혀졌다. 한지훈은 차봉섭을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나게 해준 장본인인데다 그가 죽은 뒤에도 김수현이 입수한 차봉섭 살인증거인 반지와 목걸이를 숨기는 등의 의심스런 행동을 하는 인물이다.

 

여기에 기동찬의 집을 자꾸 찾아오는 추병우(신구)의 정체나 기영규를 홀로 키우고 있는 이순녀(정혜선) 또한 의심스럽긴 마찬가지다. 이들은 각각 떨어져 있는 인물처럼 초반부에 그려졌지만 지금 현재는 과거의 어떤 사건 하나에 모두 연루된 인물처럼 보인다. 결국 샛별(김유빈)이의 유괴살인사건은 이 모든 사건의 겉면에 불과할 뿐이고 이면에는 이 사건을 촉발시킨 숨겨진 과거사가 있다는 것.

 

의문은 끝이 없다. 마치 양파 껍질을 벗기듯 하나를 벗겨내면 또 다른 하나가 나타나는 식이다. 시청자들은 이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관계와 인물들 뒤에 숨겨진 비밀들 때문에 계속해서 멘붕에 빠진다. 그럴수록 범인이 누구인가와 과거의 숨겨진 사건이 무엇인가가 점점 더 궁금해진다. 이것은 이 <신의 선물>이라는 드라마가 가진 놀라운 동력이다. 되돌려진 시간이 갈수록 문제가 해결되기보다는 더 복잡해지는 것.

 

이 이야기는 그래서 어느 한 아이의 유괴살인사건에서부터 시작하지만 그 어느 사회면 한 쪽을 채우고 시간이 지나면 잊혀졌을 사건이 사실은 꽤 많은 사람들이 연루된 일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기에는 가족은 물론이고 그저 지나치는 행인에서부터 선생님, 검사와 변호사 그리고 형사 심지어 대통령까지도 관계되어 있다. 누군가의 한 죽음이 이토록 많은 이들이 한 작은 선택들의 축적으로 일어난다는 것. <신의 선물>이 굳이 14일 전으로 시간을 돌려 그 죽은 아이의 엄마로 하여금 사건을 추적하게 하는 이유다.

 

세상은 냉혹하고 시간은 과거를 돌아보지 않은 채 앞으로만 달려간다. 그래서 비극적인 사건이 터지고 나서도 거기에 수많은 선택들이 있었다는 것을 잊게 만든다. <신의 선물>은 그 지나쳤던 선택들을 반추하는 시간이다. 마치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처럼 모든 걸 덮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누군가의 비극에 우리가 어떤 식으로든 관여했을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죽 하면 시간을 되돌리겠나. 그들의 비극은 우리와 무관한 일이 아니다.

<별그대>부터 <쓰리데이즈>까지달라진 드라마 속 시간

 

<별에서 온 그대>400년이라는 시간을 훌쩍 뛰어넘는다. 주인공 도민준(김수현)은 조선시대에 별에서 와 현대까지의 시간을 살아낸다. <신의 선물-14>은 유괴되어 살해된 딸을 구하기 위해 14일 전으로 되돌아간 김수현(이보영)의 고군분투를 다룬다. <쓰리데이즈>는 휴가 중인 대통령이 세 발의 총성과 함께 실종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3일 씩 세 챕터로 나눠 총 9일간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신의 선물-14일(사진출처:SBS)'

400, 14, 3. 최근 SBS드라마들은 그 시간 활용법이 달라졌다. 400년으로 늘리기도 하고 14일 전으로 되돌리기도 하며 3일 간으로 압축시키기도 한다. 여타의 드라마들이 으레 그렇듯 순차적인 흐름의 시간 속에 간간히 플래시백을 넣는 단순한 방식과는 사뭇 다른 시간 활용법이다. 왜 이런 변화를 준 것일까. 시간을 다루는 방식이 달라졌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

 

시간의 흐름이 달라지면 자연스럽게 드라마의 공간도 달라진다. 400년의 시간을 다룬 <별에서 온 그대>는 조선시대의 풍경에서 현재의 빌딩 숲으로 변화하는 장면을 오프닝으로 집어넣었다. 긴 시간 동안 달라진 공간 위에서 도민준은 그 시간의 두께만큼의 공력(, 경험, 지적능력)을 쌓게 된다.

 

이 드라마가 특이했던 것은 400년을 뛰어넘은 시간대를 살아가는 주인공이 순간 시간을 멈추는 능력도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시간의 멈춤은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순간이동(공간의 이동)으로 보이게 마련이다. 시간의 변화는 공간도 바꾸고 주인공 캐릭터도 바꾸며 결국은 이야기도 바꾸는 효과를 가져온다.

 

<신의 선물-14>에서 시간은 14일 전으로 되돌려진다. 타임리프 설정이지만 딸을 잃은 김수현이 절망 끝에 강물에 뛰어든 후 일어나는 사건이라는 점에서 이건 그녀의 머리 속에서 벌어지는 찰나의 환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어쨌든 딸이 유괴되어 살해되기 전 시간대로 돌아간다는 설정 하나는 이 여주인공에게 목숨을 걸고 해야 할 미션을 부과한다.

 

보통의 상황에서 평범한 주부가 연쇄살인범을 잡기 위해 현장에 뛰어든다는 것은 결코 쉽게 벌어지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14일 후에서 되돌아온 김수현은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이 가능하다. 시간은 되돌렸지만 사건은 되돌리지 못했다. 따라서 14일을 되돌리는 설정 속에서 김수현은 마치 시간과 싸우는 듯한 긴박감 속에서 사건에 뛰어들게 된다.

 

<쓰리데이즈>는 제목 때문에 3일 간에 벌어진 일처럼 착각되지만 사실은 세 챕터로 꾸며진 각각 3일 간의 이야기를 다룬다. 따라서 총 9일 간의 기록이 되는 셈. 그런데 왜 각 챕터를 굳이 3일이라는 시간으로 한정했을까. 그것은 군더더기 없이 압축된 시간 속에서 보다 집약적인 이야기를 펼쳐 보이기 위함이다. 그림으로 치자면 정밀묘사 같은 것.

 

첫 챕터에서의 3일은 그래서 청수대에서 벌어진 대통령 저격 사건을 다룬다. EMP폭탄이 터지고 모든 전자기기가 꺼져버리자 들려오는 세 발의 총성. 그리고 사라진 대통령. 이 미스테리 안에 담겨진 진실을 추적하는 것. 한태경(박유천)은 이 사건이 자신의 아버지의 죽음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죽음을 목격한 서조분서 순경 윤보원(박하선)과 사건을 풀어나간다. <쓰리데이즈>의 각각의 3일은 그래서 선택적인 시공간을 보여준다. 2회의 3분의 2가 청수대라는 공간에서의 하룻밤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식이다.

 

흔히들 드라마의 시간은 그저 흘러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가끔씩 회상이 들어가지만 그것은 전체적인 흐름과 그 이야기의 속도에 그다지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 하지만 SBS 드라마가 시도하는 시간의 재구성은 지금껏 봐왔던 통상적인 이야기 흐름을 바꾸어놓는다. 드라마가 새롭다고 여겨지는 건 그래서 이 시간을 다루는 방식의 변화를 통해서 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이것은 또한 드라마를 보는 대중들의 시간도 바꾸어 놓는다. 그저 킬링타임용으로 틀어놓고 언제 들여다봐도 이해될 수 있는 느슨한 이야기가 아니라, 한번 쳐다보면 깊게 빠져드는 몰입감을 선사하는 이야기. 그래서 이들 드라마들을 보다보면 어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흘렀지하는 느낌을 갖게 된다.

 

드라마 속 시간의 재구성은 대중들의 시간에 대한 달라진 개념을 바탕으로 한다. 시간은 물론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흘러가는 것이지만, 단지 그런 양적인 흐름이 아니라 질적인 흐름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과거 찬란했던 청춘의 순간에 멈춰서기도 하고, 어느 결정적인 사건의 시간에 멈춰버리기도 한다. 또 앞으로 나갈 수 없어 뒤로 되돌리고픈 시간도 있다. 이 새로운 시간 경험을 대리해준다는 것. 이들 달라진 시간 활용을 보여주는 드라마가 주는 또 다른 재미가 아닐 수 없다.

<신의 선물> 시청률의 여왕 이보영 이번엔 작품이다

 

시청률의 여왕 이보영, 이번엔 작품을 선택했다? <신의 선물-14(이하 신의 선물)>은 마치 미드나 스릴러 영화를 보는 듯한 새로움이다. 유괴된 딸 앞에서 망연자실해 하는 김수현(이보영)과 어딘지 허술하고 껄렁해 보이는 전직 형사 현직 흥신소 사장 기동찬(조승우)의 조합은 벌써부터 앞으로 벌어질 치열한 두뇌게임에 기대감을 자아내게 만든다. 여기에 과거 김수현과 연인사이였던 강력반 팀장 현우진(정겨운)의 존재는 이 스릴러에 멜로적인 변수가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신의 선물-14일(사진출처:SBS)'

이미 복선으로 김수현의 딸 한샛별(김유빈)에게 불길한 일이 벌어질 것임을 예고했고 또 딸을 구하기 위해 김수현의 희생이 필요할 거라는 걸 잔혹동화를 통해 보여주었다. 또 어떤 일로 인해 감옥에 가게 됐는지 알 수 없는 기동호(정은표)와 그의 지적장애 아들 기영규(바로)가 이 사건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들었고, 기동찬의 집을 자꾸 찾아오는 추병우(신구)라는 인물도 그 정체가 궁금한 인물이다.

 

게다가 이 드라마는 이 스릴러적인 장르 속에 타임워프라는 설정이 들어갈 전망이다. 딸을 구하기 위해 2주 전으로 시간을 되돌리는 것. 드라마의 첫 시작을 딸을 구하기 위해 탐스러운 머리칼을 잘라주고, 가시덤불을 껴안고, 눈알까지 빼서 호수에 던져주는 엄마의 잔혹동화로 시작했다는 것은 이 드라마의 성격을 보여주는 셈이다. <신의 선물>은 타임워프라는 가상의 설정을 통해 모성애를 보여주는 어른들을 위한 잔혹동화가 될 거라는 점이다.

 

어쩌면 이 새로움은 기성 우리네 드라마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게는 낯설음으로 다가왔을 지도 모른다. 스릴러나 형사물 같은 장르가 영화로는 괜찮을지 몰라도 드라마로서는 그다지 대중적인 장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지금껏 이 장르로 성공했던 드라마가 극히 드물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우리 드라마에서 스릴러로 성공한 작품이라면 김은희 작가의 <싸인>이 거의 유일하다. 여기에 타임워프라는 설정은 드라마를 더 낯설게 느껴지게 만들 수 있다.

 

<신의 선물>은 그 독특한 이야기와 완성도 높은 대본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에서는 그다지 유리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보영과 조승우 같은 톱 연기자들이 들어간 작품치고 첫 회 시청률이 6.9%에 머물렀다는 것은 이런 불리한 상황을 잘 말해준다. 우리네 시청률 추산 시스템 안에서 시청률을 얻기 위해서라면 멜로를 바탕으로 하고 복잡한 이야기는 훨씬 단순하게 처리하는 편이 낫다. 판타지? 그것도 멜로를 보강하는 차원에서만이 시청률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우리 드라마 현실이다.

 

그렇다면 궁금해진다. ‘시청률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이보영은 왜 굳이 이렇게 불리한 드라마를 선택했을까. “지난해 연기대상 받은 거에 대한 부담은 없어요. 상대 드라마가 이미 자리 잡았기 때문에 시청률의 기대도 없고요. 우리가 즐겁게 촬영하는 만큼 장르 드라마를 열광적으로 좋아해 주는 분들이 있으면 그걸로 만족할 것 같아요.” 제작발표회에서 이보영이 던진 이 이야기는 그녀의 선택기준이 시청률이 아니라 작품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작년 50% 시청률에 육박한 <내 딸 서영이>25% 시청률을 냈던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통해 이미 시청률로 얻을 것은 거의 얻은 이보영이다. 그러니 시청률 때문에 익숙한 드라마를 하느니 좀 더 실험적이지만 의미가 있는 드라마를 하고 싶었을 게다. 그녀는 장르물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끼리 재미있고 즐겁게 미드를 찍는다는 심정으로 촬영 중이라는 그녀의 말 속에는 새로움에 도전하고픈 그녀의 의지가 엿보인다.

 

시청률? 사실 <신의 선물> 같은 드라마는 그 시도 자체가 박수 받을 만하다. 시청률에 경도되어 심지어 막장으로까지 치닫는 우리네 드라마 현실 속에서 이런 완성도 높은 장르물이 시도된다는 것은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 그래서 시청률의 여왕이라는 부담스런 칭호를 과감히 벗어던진 이보영의 선택 역시 박수 받을 만하다. 그녀는 시청률이 아닌 작품을 선택했다. 그리고 이런 진심은 어쩌면 꽤 괜찮은 시청률로 보상받을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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